*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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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김성회 소장, 김경진 전 의원
■ 대담 : 나태주 시인
◇ 박재홍> 전쟁 같은 대선이 끝나고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후보들 사이에 네거티브 공방도 많았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많이 피로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부에서는 정치 공방은 저 멀리 보내버리고 지치고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뽑힌 풀꽃을 쓰신 분이세요. 나태주 시인과 함께하는 한판클라스 준비했습니다. 회장님, 어서 오시죠.
◆ 나태주>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회> 들어오는데 명함을 주셔서 제가 선생님께 명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 나태주> 제가 명함 돌리는 게 취미거든요.(웃음)
◇ 박재홍> 유재석 씨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인협회 회장 명함을 돌리신 걸 굉장히 인상 깊게 받습니다. 저도 아나운서 부장 명함 잠시 이따 드리겠습니다.(웃음)
◆ 김성회> 저는 끈 떨어진 선대위 대변인 명함을 드렸지 뭡니까?(웃음)
◆ 김경진> 저는 2년 전에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서 명함을 안 갖고 다녔어요. 죄송합니다.(웃음)
◆ 나태주> 다음에는 명함 돌리는 걸 조심하겠습니다.(웃음)
◇ 박재홍> 아닙니다. 너무 좋았어요, 저는. 우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풀꽃이라고 제가 설명드렸고 이 시에 대해서 아시는 분도 있는데 딱 들으시면 이 시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제가 잠깐 낭송을 해 보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 기억하시죠? 김경진 의원님 이 시 기억나시죠?
◆ 김경진> 교보문구 위에 플래카드로 긴 시간 동안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은 나태주 시인님께서 썼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고 저렇게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글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로 광화문 지나갈 때마다 했었거든요. 직접 쓰신 시인이구나.
◇ 박재홍> 굉장히 솔직한 정치인이세요. 대개는 다 안다고 가정하고 얘기하는데 몰랐다고 굳이 얘기하세요. 이런 정치인 어떻게 생각하세요? 되게 좋은 분이죠?(웃음)
◆ 나태주> 당연하고요, 정상적이고.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가야 되고 우리가 다 같이 그렇게 해야죠. 그 시 사실은 제가 너무 울궈먹는 것 같아요. 그거 하나 갖고서 계속 그냥 이야기를 10년 가깝게 얘기를 하는데 그게 2012년이거든요. 올해가 2022년이니까 10년 됐어요. 그러니까 그 시를 쓴 것은 2002년이에요. 그러니까 시가… 10년 정도 있어야 좀 알려지고 그리고 10년 정도 더 있어야 시를 모르는 분들, 시하고 관계없는 분들도 '그렇구나' 이렇게 알게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게 쓴 지 20년 됐어요. 그런데 저는 여적 그 시를 이렇게 울궈먹고 있으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 김성회> 우리 이미자 선생님도 동백 아가씨로 평생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계시니까요. 이런 하나의 시를 가지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제가 정말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 나태주> 안도현 씨 같은 경우는 연탄재 시인이잖아요. 안도현 씨 하필이면 연탄재냐고. 그거 시 때문에 그래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를 위해 한 번이라기 때문 그렇게 뜨거워본 적 있었냐. 그 시 때문에 그렇거든요. 신동엽 선생님 같은 경우는 금강의 시인이죠. 우리 또 윤동주 시인은 별의 시인이고 또 김용택은 섬진강을 다 가져버렸고 그렇게 됐어요. 영랑 선생은 모란꽃의 시인이고 그렇게 됐어요. 저는 그래서 풀꽃이라도 가졌으니까 고맙게 생각합니다.
◇ 박재홍> 사실 풀꽃이지만 그 풀꽃 안에 담긴 건 사랑이잖아요.
◆ 나태주> 그렇죠.
◇ 박재홍> 우리 선생님의 시에는 그 바닥에는 사랑이 딱 깔려 있으신 것 같아요, 사랑.
◆ 나태주> 이게 반어법이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니까 자세히 안 보면 안 예쁘다라는 뜻이고요.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우니까 오래 안 보면 사랑스럽지 않다. 그리고 얼른 내가 나만 그렇다고 해야 되는데 제가 조금 그때 머뭇거렸나 봐요. 나만 그렇다 하기 전에, 너도 그렇다고 해야 내가 좋을 것 같아서 제가 그때 학교 교장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아이들한테 예쁘지 않냐. 실은 애들이 말을 안 들었던 애들이에요. 중요한 겁니다.
◇ 박재홍> 까칠하고.
◆ 나태주> 까칠하고 말을 안 듣고 그런데 그런 아이들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다.
◇ 박재홍> 오래 봐야 되는군요.
◆ 김성회> 이게 그러니까 아내한테 고백하는 시는 아니군요.
◆ 나태주> 그렇다고 물어봐요. 그런데 아닙니다. 우리 집사람은 그걸 패러디해서 이렇게 얘기해요. "자세히 봤더니 늙었다, 오래 봤더니 더 늙었다. 나태주라 그렇다." 그렇게 얘기해요.(웃음)
◇ 박재홍> 자세히 보니 더 늙었다. 너도 늙었다.(웃음)
◆ 김경진> 그런데 저런 건 있어요. 맥락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부인하고 결혼하면 처음에 부인이 해 주는 반찬 때문에 미쳐버리거든요.
◇ 박재홍> 너무 맛있어서?
◆ 김경진> 맛이 없어서. 왜냐하면 엄마가 해 주는 입맛에 평생을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엄마 맛이 제일 맛있어요.
◆ 김성회> 저는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 박재홍> 저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 김경진> 그런데 그러다가 한 차츰 10년 지나서 20년 지나면 이제 마누라가 해 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여기에 길들여지니까 보면.
◆ 김성회> 저는 첫날부터 아내가 해 주던 게 제일 맛있던데요. 다르시네요.(웃음)
◇ 박재홍> 원래 이런 방송이 아니었는데.
◆ 김성회> 방송에 나와서 거짓말하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 박재홍> 그런데 우리 시인님의 시를 보면서 가까이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그 말에 굉장히 위로를 받았어요, 사실은. 사춘기 자녀를 보면서 굉장히 공황 상태가 오거든요, 갑자기 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 시를 보면서 사랑에도 인내가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시를 통해서 조금 알게 됐어요.
◆ 나태주> 우리가 현재 우리 젊은 친구들이나 우리 국민들 전체가 제가 할 얘기는 아닙니다마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 박재홍> 자존감.
◆ 나태주>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나의 모습이고 자존감은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봤을 때, 제가 표현한다면 쭈그러진 깡통처럼 보이는 거예요. 밖에서 다른 사람에 보일 때는 그저 그럴 듯하고 높아 보이고 번쩍거리는 것 같은데 실제로 돌아서서 자기를 볼 때는 '오늘 나는 아주 또 오늘 망했네, 별로네'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얼마나 이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을 올려주느냐. 이게 우리같이 시 쓰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경진> 그러니까 우리 시인님은 벌써 정년퇴임하신 거죠?
◆ 나태주> 15년 전에.
◆ 김경진> 저는 지금도 할머니 생각이 나는게요. 잘했든 잘못했든 할머니는 "너는 잘될 거다. 너 하는 건 무조건 옳다," 잘못했어도 그렇게 얘기해 주시거든요.
◇ 박재홍> 손주를 바라보면서.
◆ 김경진>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제 내면에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보면. 이게 사랑이 담겨져 있는 말, 사랑이 담겨져 있는 구절 이게 보면 안에서 자기 내면에 힘이 생기는 에너지고 자양분인 것 같아요.
◇ 박재홍> 할머니가 시를 항상 써주셨군요, 우리 손주를 향해서.
◆ 김경진> 할머니가 제 마음속의 시의 자양분이죠.
◆ 나태주> 그럼요. 저도 참 실수를 많이 했죠. 아이들 선생 할 때도 또 서투른 부모 노릇할 때도 애들한테 엄하게 하고 강퍅하게 하고 억누르기고 하고 그랬는데 그게 지나고 보니까 늙어서 보니까 매우 미안하고 나이 먹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가 아버지, 어머니 때 잘못한 걸 한 대를 건너서 손자들한테 하니까 손자들 입장에서는 아버지·어머니한테서 못 느끼는 바짝 붙어서 보는 그 부모의 어떤 엄격한 것보다 한 다리 건너서 보는 좀 느슨하지만 따뜻하고 평화로운 그걸 그리워하는 것이죠.
◇ 박재홍> 대개 자식은 부모님들이 기대치가 있어요. 공부를 못하면 부모들이 화가 나거든요. 그런데 손주를 바라보면 기대치가 아무것도 없고 존재로 사랑스럽다고 하던데요. 맞습니까?
◆ 나태주>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볼 때도 조금은 여유롭게 기다리면서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죽자 살자 막 이렇게 씨름하듯이 사는 것보다 했더라도 그때는 샅바를 풀고 조금 편안하게 얼마나 수고했냐. 나도 지쳤는데 너도 지쳤겠지. 이런 시가 발상의 전환 이것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 김성회> 저는 그런 분이 저희 외할머니이신데 저희 어머니가 큰딸이시고 그래서 외할머니가 마흔일곱에 저를 얻으셨어요. 그러니까 막내아들 같기도 하고 큰손주 같기도 하고 그래서 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사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굉장히 큰 제 일부를 잃었다고 생각하는데 모친상이나 조부상 이런 것은 밖에 알리기는 해도 외조모상이다 이러면 사실 어디 가서 이 슬픔을 나누기가 참 어려워서, 항상 저도 외할머니라는 존재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존재가 남아 있더라고요.
◆ 나태주> 제가 끝나고서 명함을 주셨으니까 제 책을 하나 꼭 드리고 싶어요.
◇ 박재홍> 명함을 드려야지 책을 받을 수 있는 거군요.(웃음)
◆ 나태주> 제가 이번에 쓴 책이 하나 있어요. 책 선전하는 게 아니고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박재홍>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나태주> 잊어도 좋겠다. 13살까지의 기억을 쓴 책인데.
◇ 박재홍> 13살까지의 기억이요?
◆ 나태주> 13살까지요. 300페이지가 넘습니다, 그 책이. 그런데 그 책의 핵심이 외할머니예요. 저는 외할머니가 없었으면 저는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끝없이 아버지네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아버지네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런데 오로지 저를 받아서 그야말로 뭐라고 그럴까. 이민 간 망명객을 받듯이 그렇게 저를 보호해 주고 길러주신 분이 외할머니인데 그분하고 살았던 그 13살까지의 그 삶의 기억과 경험이 저로 하여금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적인 어떤 삶의 기초가 됐습니다.
◇ 박재홍> 우리 시인님께서 외할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쓰신 게 있어요. 제가 잠깐 읽어드릴게요. 외할머니 나태주.
시방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외할머니는. 손자들이 오나 오나 해서 흰 옷 입고 흰 버선 신고 조마조마 고목나무 아래 오두막집에서. 손자들이 오면 주려고 물렁감도 따다 놓으시고 상수리묵도 쑤어 두시고 오나 오나 혹시나 해서 고갯마루에 올라 들길을 보며. 조마조마 혼자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시방도 언덕에 서서만 계실 것이다,흰 옷 입은 외할머니는.
◆ 나태주> 눈물 겹죠.
◆ 김경진> 그렇네요. 갑자기 저 생각이 나네요. 옛날에는 먹을 게 참 귀했잖아요. 시골에서 가을에 조금 차가워졌을 때 나무에서 말랑말랑한 감 있잖아요, 조선감 홍시. 그거 따먹으면 정말 맛있거든요. 겨울에 이게 항아리독에다 이걸 집어넣어놔요, 보면.
◇ 박재홍> 그렇죠, 저장고같이.
◆ 김경진> 그러면 일주일에 2~3개 정도 빼먹을 수 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물컹 나네요.
◇ 박재홍> 그런데 우리 시인님은 어르신들도 좋아하시지만 젊은이들도 우리 시인님을 너무 좋아한다고 해요. 그래서 BTS 제이홉, 가수 태연. 우리 회장님, 시인협회 회장님의 팬이라고.
◆ 나태주> 제가 시를 쓰는 촌사람인데 오늘날 문화 패턴이 조금 문제가 있다는게 아니라 참 새롭습니다. 왜냐하면 연예인하고 이렇게 시너지 효과라고 그럴까?
◇ 박재홍> 콜라보?
◆ 나태주> 콜라보가 안 되면 시집이 안 팔려요. 그걸 출판사에서 압니다. 그래서 저는 이종석이라고 하는 탤런트하고도 책을 냈고요. 이번에 유라라고 하는 여자 가수하고도 또 책을 냈어요.
◆ 김성회> 유라 씨 가사를 참 잘 쓰는 것 같은데.
◆ 나태주> 만나보니까 예쁘더라고요.
◇ 박재홍> 이종석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튜브상으로는.
◆ 나태주> 그래요?
◆ 김경진> 지금 나오네요.
◆ 나태주> 저 친구 키가 커서 나는 키가 작잖아요. 머리 하나가 더 있어요, 이렇게. 그런데 나를 자기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을 텐데 손을.
◇ 박재홍> 어깨동무하고.
◆ 나태주> 형님처럼 탁.
◇ 박재홍> 그렇군요. 젊은 친구들과 작업을 해 보시니까 어떠세요? 감성 어린 시에 기본적인 것은 똑같죠?
◆ 나태주> 배우죠.
◇ 박재홍> 배우세요?
◆ 나태주> 배운다고 저희들이 배우고 말투를 배우고 삶의 태도를 배우고. 지금 젊은 애들은, 친구들은 분명합니다. 그 생각이나 판단이. 그리고 말을 들어보면 "좋아요, 맞아요" 이런 말을 해요.
◇ 박재홍> 젊은이들이?
◆ 나태주> 옛날에는 좋아요 안 했어요. 얻다 대고 좋아요예요? 그걸 좋아요 그렇게 말을 안 하죠. 그리고 맞아요도 그렇게 맞아요 똑부러지게 안 합니다. "맞은 것 같은데요."
◇ 박재홍> 맞아요, 맞아요 같은데요.
◆ 나태주> "글쎄요." 글쎄요가 많았어요. 지금은 글쎄요가 없습니다. 애들이 분명해요. 글쎄요가 없어요.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쁘고. 그런 것들을 애들한테 말투를 배우고 또 삶의 태도를 배우고 단순해요. 그런데 분명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도 내가 어떤 에디터 편집자를 만났는데 너 시집갈 때가 됐지 않아? 서른 중반쯤 돼요. 사십 넘어가 아기 낳으면 안 돼. 사십 넘어서 애 낳으면 너 60살이면 애가 20살밖에 안 되잖아. 그때 군대 갈 때 너 어떻게 할 거야, 면회 갈 거야, 60살 넘은 할머니된 엄마가? 일찍 가야 돼 그랬더니 너무 느긋하게 나는 엄마하고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좋은데요? 옛날 같으면 시집 안 가면 밀어냈어요. 말하자면 밥상에서도 저 끝에 앉히고 그리고 집안에서도 왕따시키고 왜 시집 안 가고 여기 있어?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많이 풀려서 나이가 먹어도 엄마하고 같이 살겠다고 엄마도 굳이 볶지 않고. 그래서 세상이 많이 변해서 이런 것들을 다니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느끼고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시를 워낙 친근하게 알다 보니까 이제 젊은 친구들이 우리 선생님과 굉장히 친하다고 생각해서 느닷없이 상담을 신청한다거나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도 꽤 있을 것 같아요.
◆ 나태주> 있죠, 있죠. 아주 기분 좋은 일입니다.
◇ 박재홍> 기분 좋으세요?
◆ 나태주> 좋죠. 왜냐하면 저같이 늙은 사람인데 그야말로 2080이죠. 20대가 80대한테 그게 바로 BTS 노래가사집 '작은 것들을 위한 시'예요. 그러니까 20대의 청춘의 시를 노년이 이걸 보고 노년의 감각으로 20대 80대면 60년 간격이, 반세기 간격이잖아요. 반세기 이미 지나간 사람이 반세기 뒤에 오는 사람이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하는 거예요. 우리 없을 때는, 우리 때 없었을 때는 저런 게 있었구나. 저런 것을 지금 하는구나.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가. 그래서 저는 20대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하고 매우 좋고. 그리고 또 내가 좋아져요. 내가 그 20대 친구들, 10대 친구들 얘기를 듣고 같이 하고 서로 대화하고 느끼고 배우고 그러면 내가 많이 좋아집니다.
◇ 박재홍> 그런데 대개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나 연륜도 있으신 분들은 어린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그 생각을 고쳐주고 싶거든요. '그건 아니고~' 그렇게 하는데 우리 선생님은 들으시면서 기분 좋으시고 있는 그대로 들으시 것 같아서.
◆ 나태주> 얼마나 감사해요. 애들한테 받는… 지난번에 저기 이 친구는 지금 서울에 있는 은행원인데 아주 좋은 독자였는데 공주에 있다가 서울로 왔어요. 왔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선생님 꽂피고 새 우는 봄날에 가겠어요," 그렇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로 시를 썼어요. 그 친구한테 써서 보내줬습니다. "그래, 꽃 피고 새 오는 봄날에 만나러 오겠다는 말에 나의 대답은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라는 말 끝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방울. 보고 싶다, 많이. 그리고 고마워." 이렇게 써서 보냈어요. 이 사람 문자메시지로 보냈어요. 그랬더니 대뜸 우와, 멋진 시, 슬픈 시. 한 편이 "ㅜㅜ. 선생님, 곧 갈게요." 이렇게 또 왔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냥 기분이 좋은 거예요.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그 친구가 나한테 시를 하나 준 거예요.
◆ 김경진> 그 말씀을 하시니까 저는 고려대학교를 나왔거든요. 고려대학교에서 한 3km 가면 경희대학교가 있어요. 그런데 경희대학교 학교 내 캠퍼스에 꽃이 봄이 되면 너무 예뻐요. 거기 벚꽃, 목련, 개나리해서.
◇ 박재홍> 캠퍼스 예쁘죠, 경희대.
◆ 김경진> 특히 사범대학교 미술대 사잇길이 대단히 꽃이 예쁜데. 연례행사처럼 저는 경희대 벚꽃 구경을 저녁에 꼭 한 번 씩 가요,일부러. 누구랑 같이 가면 같이 가서 소맥 한잔 잔디밭에서 할 수 있으면 최고지만 안 되면 저 혼자라도 가요, 봄에. 그런데 선생님 시 갑자기 보니까 지금부터 한 3주 후쯤이면 아마 경희대에 봄꽃이 가장 만개할 텐데 올해도 반드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나태주> 세월이 아무리 이렇게 뒤숭숭하고 산불이 덜컥 그렇게 났는데 작년에 원체 비가 안 왔대요. 저한테 고로쇠물을 보내주는 울릉도 친구가 있는데 그게 2월 말에 오는데 3월이 돼도 안 왔어요. 이유는 날씨 탓 비나 눈이 안 와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봄은 올 테니까 봄을 맞이해서 우리가 좀 푸근하고 아름답게 편안하게 푸르게 잘 싱싱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팬들과 마주보며 사인도 해 주시는데 대개는 마주보면서 사인을 하는데 우리 선생님은 옆에 앉혀놓고 사인을 해 주신다고…
◆ 나태주> 옆에 앉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옆에 이렇게 앉아 있으면 동료 같은.
◇ 박재홍> 수평적인.
◆ 나태주> 이건(마주보면) 뭔가 문초당하는 것 같고.
◇ 박재홍> 검사 출신, 검사.(웃음)
◆ 김경진> 죄송합니다.(웃음)
◆ 나태주> 문초당하는 것 같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데도 그리고 대립하는 것 같고. 이게 중요해요. 그래서 생텍쥐페리가 말하기를 사랑이라는 건 마주보는 게 아니고.
◇ 박재홍> 같이 보는 것이다.
◆ 나태주>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걸 이용해서 이렇게 앉아서 사인할 때 앞에 서 있는 게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옆에 의자 갖다 놓고 앉으라고 그러면 이분이 앉은 사람이 별소리를 다 합니다. 심지어 나 일주일 전에 이혼했어요. 그래서 눈물 그렁그렁한 사람이 있어요.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 박재홍> 이혼했다.
◆ 나태주> 그 사람 나쁘네요 그러면 '그렇죠' 하면서 눈물 그렁그렁해요. 옆에 앉아 있으면 이게 수위가 맞아서 친구가 돼요. 아주 좋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의자 두 개 꼭 달라 그래서 옆에다 앉혀요. 그리고 가능하면 길게 써줍니다, 손가락이 좀 아프지만… 저는 글씨를 많이 써서 류머티스 관절염이 생겼어요.
◇ 박재홍> 5,000장 쓰셨잖아요.
◆ 나태주> 많이 써서. 그래도 가능하면 많이 써주고 그리고 그 사람도 나한테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이게 최초의 만남이고 최후의 만남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렇습니다. 여기서 만나서 방금도 하고 그러시겠지만 이 순간에 만나는 건 우리가 최초의 만남이고 최후의 만남이다. 내일 다음에 또 프로그램에서 선생님들이야 만나시겠지만 그건 그다음에 만나는 최초와 최후의 만남이다. 그래서 저는 사인할 때도 아주 열심히 될 수 있으면 많은 글을 여기에 써줍니다. 저는 그래서 사인을 지난 연말에는 500권도 했어요.
◇ 박재홍> 500권?
◆ 나태주> 교보문구에서 500권을 실어왔는데 10상자를 실어왔는데 그걸 한 일주일을 했어요. 500권을 다 사인을 했어요. 왜냐하면 내 책인데 사람들이 원하잖아요. 그래서 이 시인은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돌봐주는 감정의 서비스맨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공공의 일을 하는 분들도 그렇고 다 뭔가 조금 앞서 있거나 가졌거나 좋은 것이 있다면 그건 서비스맨이다 그런 생각을 해서 다른 사람을 좀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챙겨주고 동행해주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우리 시인님 오셔서 많은 청취자들이 너무 좋아하시네요. *** 님. 피로감이 싹 가십니다. 너무 좋은 시간 감사드리고 오늘자로 더 팬이 됐다는 말씀을 보내주셨고 *** 님은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에게 시를 들려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풀꽃 시는 꼭 저에게 속삭여주시는 것 같다는 말씀 많이 해 주시는데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시인 나태주 시인님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오늘 이 시간에 시를 배운다고 하면서 대선 기간 동안 정치 때문에 힘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라고 저희가 말씀드렸는데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대선 기간 지나오시면서.
◆ 나태주>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죠. 왜 이렇게 그래서 시계가 있다면 빨리 확 돌려버리고 싶었어요. 우리 국민들이 다 그랬을 거예요.
◇ 박재홍> 3월 9일로.
◆ 나태주> 그런데 끝난 다음에 보니까 또 세상이 아무 일도 없이 또 잠잠해졌어요.
◇ 박재홍> 너무 조용하죠, 또?
◆ 나태주> 너무 조용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큰일 하시는 분들이 더 큰 국가나 민족을 생각하시면서 잘 해주실 것으로 믿고 결국은 저는 금강가에 서서 이렇게 홍수가 됐을 때 봅니다. 금강물이 흙탕물이 돼서 벙벙하게 흘러가요. 큰일 났다, 언제 저게 맑아질까. 그런데 일주일이면 맑아집니다. 그래서 서로가 생각을 하면서 서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면서 살다 보면 언제쯤 되면 맑아지는 그런 우리 세월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급격하게 맑아질 거예요, 조용해지고 평화로워지고.
◇ 박재홍> 그렇군요.
◆ 나태주> 그렇습니다.
◇ 박재홍> 또 한쪽은 지지하시는 분이 돼서 좋으신 분이 있고 또 다른 한쪽은 지지하시는 안 돼서 슬퍼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 나태주> 특히 글쓰는 사람들. 글쓰는 사람들이 감성적이기 때문에 패닉 상태.
◇ 박재홍> 감정적으로 일체화돼서 많이 실망하시는 분들이 계셨을 것 같아요. 우리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 나태주> 저는 비정치적인 사람이라.
◇ 박재홍> 알겠습니다.
◆ 나태주> 이것도 며칠 전에 쓴 시인데요. 이거 꼭 관계되는 건 아닙니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별은 아스라고 멀어 가질 수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별이 없다고 말하거나 별이 소용없는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가슴속에 별이 있는 사람과 별이 없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적어도 가슴속에 별 하나 숨기고 그 별의 안내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달라도 뭔가 많이 다르다. 가슴속 별을 따라가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그 자신 별이 되는 순간이 끝내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하늘이 흐리다 해서 별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저는 이 시간에 별이 가까이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이 좀 멀어진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별은 있다. 그리고 날이 흐렸다고 해서 비가 온다고 해서 별이 없다고 부정하지 말자. 언젠가는 별이 오고 때가 되면 기다리면 기회가 되고 좋은 것이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언제나 합니다.
◇ 박재홍> 가슴속의 별. 여러분의 별은 어떤 것입니까?
◆ 김성회> 약간 분위기를 깨는 말이기는 한데요. 우리 김종인 위원장님께서 항상 별의 순간. 슈테른슈툰데를 말씀하시는데 별의 순간에 대한 시가 아니었나.
◇ 박재홍> 가슴속의 별.
◆ 나태주> 아니에요, 이건 전혀… 우리 아들한테 써준 시예요.
◇ 박재홍> 아들?
◆ 김성회> 물론 저는 농담이었습니다.
◆ 나태주> 우리 아들이 별이 없어요.
◇ 박재홍> 우리 선생님 아드님이?
◆ 나태주> 이거 우리 아들이 들으면 안 되는데… 별이 없어요. 국가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별이 없어요. 별이 없다는 것은.
◆ 김성회> 아버지한테 안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요.
◆ 나태주> 제가 아마 별을 가려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 박재홍> 아버지가 너무 크시면 스스로 빛나기를 못할 수도.
◆ 나태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 박재홍> 누구누구의 아들이다.
◆ 나태주> 시 쓰는 아버지의 약간 삐딱한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상태와 생활태도 그리고 가난한 집안 이런 것 때문에 그런데 걔한테 내가 참 죄지은 것 같아요. 내가 어려서부터 너한테 별을 안내해 주지 못한 것이 많이 아프다. 내가 또 저기 도박 근절하는 그런 모임에서 나를 보고 시를 하나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참 내가 어떻게 그걸 써줘요. 그런데 썼어요.
◇ 박재홍> 도박 근절?
◆ 나태주> 썼는데 도박 근절. 이것도 우리 아들한테 미안한 얘기인데 우리 아들을 빗대서 써줬어요.
◇ 박재홍> 아들.
◆ 나태주> 도박. 특히 컴퓨터나 이렇게 어떤.
◇ 박재홍> 오락.
◆ 나태주> 오락 이런 걸 통해서 이거 인천 강연하러 가서 인천터미널에서 한 시간 동안 기다리는데 거기 화면에 그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보고 거기서 썼어요.
"아들아 멈추어다오. 아들아 이제 그만 그쯤에서 멈추어다오.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은 들길이나 산길이나 오솔길도 아니고 어둠의 길,낙망의 길, 낭떠러지의 길이다. 네가 보고 있는 빛은 진짜의 빛, 생명의 빛이 아니고 그 반대의 빛이다. 아들아, 그만큼 그 자리에서 멈춘 다음 발길을 돌려다오.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초록의 세상을 봐라. 작지만 크고 가난하지만 넉넉한 세상이 바로 그 세상이다. 너의 어리석음을 굳이 나무라지 않으마. 지금까지의 오류를 탓하지도 않으마. 인생에서의 지름길, 빠른 길은 절대로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어디쯤, 어느 때쯤인가 인생은 끝나게 돼 있고 짧은 한 편의 연극같이 언젠가는 막이 내리게 돼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인생도 부질없고 무의미한 인생은 없다. 길면서도 짧고 짧고서도 긴 것이 인생. 부디 내 앞에 주어진 짧고도 길고, 길고도 짧은 인생을 사랑해라. 그러면 그쯤에 멈출 수 있고 발길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들아, 너의 지혜를 믿는다. 너의 머리 위에 뜬 너의 별이 너를 잘 이끌어줄 것을 믿는다."
그래서 거기서 청탁한 사람한테 보냈어요. 그래서 많은 좀 별을 잃고 흔들리는 살기 팍팍한 청년들이 별을 찾아서, 자기 별을 찾아서 갔으면 좋겠어요.
◆ 김성회> 선생님, 우리 시를 40~50대 가장들이 이를 악물고 받아적은 다음에 본인들의 사춘기 아들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 나태주> 마음이 아파요.
◇ 박재홍> 사랑을 넘어 도박 근절을 위해서도 시를 쓰시는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나태주 시인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올해로 등단하신 지가 몇 년 되신 겁니까?
◆ 나태주> 지금 51년.
◇ 박재홍> 71년에 하셨으니까 51년.
◆ 나태주> 시를 쓴 건 61년. 오래 썼어요. 저는 16살 때 꿈이 있었는데 그게 좀 가당치 않죠. 그런데 저는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도 이야기를 해 줍니다. 보이스 비 엠비셔스 이런 거 하지 말아라. 소년이여, 대망을 가져라? 그거 대망을 가져서 뭐할 거예요? 작은 꿈을 가져라. 저는 그 마음 압니다. 심지어 북해도에 내가, 훗카이도 대학에 가서 보기도 했고. 했는데 저는 16살 때 시인이 되고 싶었고 예쁜 여자한테 장가가고 싶었고 그리고 고향이 서천이지만 떠나서 공주에 살고 싶었어요. 그걸 위해서 저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지금도 시인이 되고 싶어서 계속 살고 있는 거고요. 우리 집사람 있을 때는 예쁜 여자 만났다고 그러고 없으면 안 만났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저는 우리 집사람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인생의 큰 행운이다. 아까 외할머니 말씀 김 선생님이 하셨는데, 외할머니 만난 거하고 집사람 만난 게 저는 인생의 큰 행운이다.
◇ 박재홍> 두 여성이 인생을 바꿨군요.
◆ 나태주> 집사람이 가방 메서 택시 타는 데까지 와서 택시 잡아서 돈은 내가 내지만 택시 잡아서 넣어주고 잘 다녀와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집사람이 있어서 낡고 병들고 안 예쁜 여자지만 그런 여자가 참.
◇ 박재홍> 조강지처,
◆ 나태주> 조강지처가 술지게미 조자하고 쌀겨 강이거든요.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면서 젊은 날, 힘든 날, 팍팍한 날을 같이 넘긴 여자. 그래서 술지게미 조 자에다가 쌀겨 거든요. 하여간 보리밥도 아니에요. 쌀밥은 더욱 아니에요.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면서 근근이 근근이 이렇게 젊은 시절을 넘긴 아내가 조강지처잖아요.
◆ 김경진> 옛날 시골에는 맛있는 거 먹을 기회가…
◇ 박재홍> 없었죠.
◆ 김경진> 그러니까 잔칫날 누구 동네에서 회갑 잔치를 하든지 아니면 상가집. 그때 가면 보통 동네분들이 다 모아서 전 지지고 계란 부꾸미 지지고 이런거 하잖아요, 보면. 그때 할머니나 어머니나 누구 가까운 분들이 있으면 몰래 슬쩍 오라고 그래서 사과 하나 쑥 주머니에 넣어주시잖아요.
◇ 박재홍> 외할머니가.
◆ 김경진> 그러면 몰래몰래 가지고 나가서 맛있게 먹잖아요. 그런데 이게 어르신들 돌아가시고 나면 그런 게 현실적으로 없어지는 것 같아요. 시골 고향집에 가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부모님 돌아가시면 이게 사실은 명절에 가면 바리바리 싸주시잖아요, 먹을 거나 고추나 이런 것들. 그런데 그때는 귀찮았어요. 젊었을 때는 귀찮았는데 나이 들어서 이게 누가 싸주시는 분이 없어지면 뭔가 가뿐하기는 한데 뭔가 허전해…
◇ 박재홍> 그렇죠.
◆ 김성회> 저희 외할머니께서 그렇게 빈대떡을 잘 구워주셔서 명절마다 옛날에는 진짜 맷돌에 갈다가 나중에는 전기 맷돌에 갈아서 이렇게 해 주시고는 했었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신 다음에 제가 전기 맷돌을 사서 제가 할머니 적통을 지금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 김경진> 김성회 주부시군요.
◆ 나태주>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아름답고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좋은 가치는 생명의 가치. 두 번째는 사랑의 가치. 그래서 살아서 사랑하자. 그 생각입니다. 저는 사실상 몸이 많이 불편한 사람인데 아침에도 기독교 아닌 분들한테는 죄송한데 부처님이라도 좋아요. 오늘 하루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6시 거기까지 잘 갔다가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살아 있는 가치. 그래서 우리 시 쓰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살아 있는 존재를 더욱더 아름답게 싱싱하게 생명답게 살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것.
◇ 박재홍> 생명의 언어군요, 시라는 것은.
◆ 나태주> 그럼요.
◆ 김경진> 그러니까 아마 불교에 그런 게 있을 거예요, 보면. 모든 살아 있는 생이 아름다운데 그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매 순간순간마다 고민과 선택의 상황이 생기거든요, 보면. 고민하는 거, 고뇌하는 것 자체가 되게 아름다운 거라는 거예요, 보면. 끊임없이 우리가 그 아름다운 생을 생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있는 거 아니에요, 보면. 그래서 그게 어떻게 보면 고민과 선택의 꽃밭, 보석길 속에 우리가 있는데. 그걸 보석이라고 보고 아름다운 꽃이라고 보면 이게 정말 위대한 인생 속에 있고 이게 힘든 과정이라고 보면 정말 지옥 속에 있고 그런거죠.
◇ 박재홍> 김경진 의원님은 우리 나태주 시인님보다 더 말씀을 많이 하고 계세요.(웃음)
◆ 김경진> 죄송합니다.(웃음)
◇ 박재홍> 사랑합니다. 그 생명을 사랑합니다. 우리 시인님의 중요한 모티브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 시인님에게 사랑이란 뭡니까?
◆ 나태주> 사랑이 가장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 박재홍> 그런가요?
◆ 나태주> 15년 전에 병원에서 죽을 환자가 돼서… 의사가 죽을 때가 됐다 이렇게 하는데도 안 죽었거든요. 그러고서 살아 나왔는데 살아 나오면서 몇 가지 제 나름대로 미션을 갖고 나왔어요. 다섯 가지의 책을 쓰겠다. 첫째 고향에 대한 책을 쓰겠다, 썼어요. 풀꽃에 대해서 쓰겠다. 시에 대해서 쓰겠다. 그다음에 병에 대해서 쓰겠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쓰겠다. 그래서 썼는데 사랑에 대한 책은 정말 쓰고 나서도 그렇게 부끄럽고 송구스럽고 불만족스럽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자신없는 것이 사랑인데 그래도 제가 70살 가깝게 돼서 사랑에 대한 제 나름대로 답을 시로 하나 쓴 적이 있어요.
◇ 박재홍> 듣고 싶습니다.
◆ 나태주> 사랑에 답함.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봐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가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게 제가 70살 넘어서 낸 사랑에 대한 고백이라고 그럴까? 솔루션, 해답? 거기까지예요. 저는 정말로 사랑에 대한 얘기는 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사랑에 대한 시를 쓰거든요. 그러니까 예쁜 걸 예쁘게 봐주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우리 할머님 말씀하셨는데 할머니가 우리가 꼭 예뻐서 예쁘게 봐주셨을까요? 안 이쁠 때도 마음에서 저 밑에서 나오는 어떤 측은지심 때문에 아이고, 저 어린 것,불쌍한 것, 안쓰러운 것. 그래서 예쁘게 봐주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리고 꼭 좋기만 했을까요?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고… 싫은 것도 없었을까요? 잘 참아주면서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나중까지 나중까지 오래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의 원형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부모와 사랑, 자식과의 사랑을 회복하고 그리고 더 증진하고 좋게 하는 것이 저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 사랑, 사랑 하면 남녀 간의 사랑 아니겠습니까, 선생님?
◆ 나태주> 남녀 간의 사랑은 생명의 근원.
◇ 박재홍> 생명의 근원이고.
◆ 나태주> 생명의 근원인데 이게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살벌하게 하지 말고 그냥 타인인지감수성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 박재홍> 타인인지감수성.
◆ 나태주> 타인. 그래서 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늘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 시각으로 나를 보는 것. 메르켈 총리가 말했듯이 타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는 거죠. 저 사람은 지금 나를 어떻게 볼까, 저 사람 입장은 지금 어떨까. 나도 배고픈데 저 사람은 더 배고프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그래서 조금 앞서가는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타인을 더 배려하고 생각해 주고 그리고 그 자리를 좀 남겨주고 하는 이런 것이 정말로 사랑의 기초이고 이게 또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것들이 더 좀 좋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런데 우리 사람들이 진짜 자의식이 강하잖아요,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우리가 좀 더 고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선거도 내가 이겨야 하고.
◆ 나태주> 내가 하나지만 하나인 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 아닌 모든 너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박재홍> 너의 도움 없이…
◆ 나태주> 그리고 또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게 있어요. 내려놓기도 해야 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끝없이 끝없이 다음 세대에게 좋게좋게 내려주고 나눠주고. 그리고 모르겠어요, 이게 또 내가 막 나가는 말인지… 힘이 있거나 돈이 있거나 지식이 있거나 뭔가 좋은 것이 있는 사람은 조금씩 주변 사람들한테 이렇게 나눠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잔치 얘기를 했는데요. 우리나라 잔치라는 것은 그것은 말하자면 못 먹고 힘들고 그러기 때문에 나눠먹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 박재홍> 나누기 위해서.
◆ 나태주> 나누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그 핑계 대고. 그게 잔치, 제사. 이런 게 나누기 위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런 동시에 잘 살고 잘 먹고 이런 사람만이 아니고 더 안 좋은 사람들한테 더 많이 나누고 그러기 위해서. 옛날에 대감이 가면 큰 상을 넷이 들고 왔다고 그럽니다, 대접을 하는데. 그런데 대감은 거기서 조금 먹는다고 그래요. 그러고서 그 상을 다음 벼슬아치한테 넘겨서 먹고. 그래서 저 밑에까지 내려가면 그 상이 바닥이 날 때까지 물리고 물리고 물려서 대감이 먹은 음식을 끝까지 다 먹는다고 그래요.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이런 나눔의 정신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내려주고 양보하고 하는 이런 것이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타인인지감수성 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경진> 그런데 선생님, 궁금한 게 저 어렸을 때는 도서관에 책 구경하기도 쉽지가 않았거든요, 저 국민학교 시절에. 그런데 요새는 유튜브라고 할까 세상의 온갖 지식들이 그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그냥 다 이해할 수 있어서 머릿속이 꽉 차 있는데.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 순수함이랄까 조그마한 들꽃의 보랏빛 가을의 색깔만 봐도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머릿속에 가득 차서 그런지 그 느낌이 없어요, 요새는.
◆ 나태주> 그건 나이가 드셔서 그런 게 아니고요. 우리 삶이 바뀌어서 그렇습니다. 지금 아이들도 그런 것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애들이 난폭한 겁니다. 그냥 막 급한 거고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도시, 자연 이런 속에서 균형이 깨져서 그렇습니다. 영국 속담에 그런 말이 있죠.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시는 시골을 만들었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자꾸 어린 세대들한테 자연과 함께 그리고 약간의 어떤 생각을 깊이해서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바쁘고 너무 빡빡하고 너무 반짝이고 너무 외면이 잘 살고 잘났고 그걸 방송이나 이런 매체들이 그걸 계속 보여주잖아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면이 점점 빈한해지고 그리고 뛰어야 되는 거죠. 서울대학교 아이들은 더 많이 뛰어야 할 걸요? 그래서 구름다리 카이스트나 서울대학 뭐 이런 데 구름다리 넘어서 나는 이제 됐어,여기서 쉬어야지. 무슨 소리예요, 거기서부터 더 뛰어야죠. 그러니까 막 그냥 속이 타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 데도 쉴 틈이 없고 아무 때도 자기 안식이 없고 그러니까 삭막한 거예요.
◇ 박재홍> 김경진 의원님도 고대 법대 가서 검사가 됐거든요. 검사 돼서 계속 뛰다가 정치인이 됐는데 또 계속 뛰다가 저기까지 오셨어요.
◆ 김경진> 그런데 간혹가다가 술 한 잔씩을 하면 어느 순간에 약간 울컥하는 느낌이 요새는 많이 없어졌지만 최근 몇 년까지는 있었던 게, 가령 어렸을 때 아버지가 풀밭에서 수박 따서 이렇게 딱 하면 풀 냄새하고 수박 향내하고 묘하게 섞인 그 냄새가 있거든요, 풀수박 냄새. 그다음에 가을에 이렇게 국민학교 가려고 하면 가는 길에 약간 쌀쌀하고 차가우면서도 코스모스 흔들리는 이 모습들. 그다음에 이게 가을에 들국화의 보랏빛 색깔들이 이런 것들이 하면서 마음속에 울컥울컥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차츰 없어져가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 다 이제…
◆ 나태주> 아닙니다. 그게 재산이세요. 재산이시라고요.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좋을 수도 있고요.
◇ 박재홍> 그게 재산이다.
◆ 나태주> 재산이시라고요. 그러니까 돈만이 아니고 재산. 이상이라고 하는 시인 소설가가 그랬잖아요. 추억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 말을 했는데 추억이 참 좋은 거죠. 그래서 그 추억을 어른들이 만들어주신 거예요. 아까 빈대떡 말씀하셨잖아요. 그것도 추억을 어른들이. 그래서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인생은 기억이더라고요.
◇ 박재홍> 기억.
◆ 나태주> 기억. 남는 게 기억밖에 없어요. 아무리 훌륭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도 끝나고 나서는 아무것도 없어요. 기억밖에 없어요. 내가 참 요즘에 많이 울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배들이 자꾸 가시거든요. 우리 친구들도 가고. 그런데 어떤 선배는 교육장도 하고 높은 일을 많이 하신 분인데 그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3일인가 4일 동안 자기가 받은 감사패, 상패, 기념패를 망치로 두드려패서 마대자루로 몇 포대를 만들어서 갖다 버렸대요. 그게 말하자면 그때는 빛나고 아주 좋았는데 당신이 늙고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까 사진은 태우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얼마나 좋은 재질에다가 해 놓은 기념패, 상패, 감사패가 이렇게 있는데 이게 증거로 남기면 자기 이름이 밟힐 것 같고 쓰레기가 되고 그래서 그냥 부셨다고 그랬는데… 그걸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 박재홍>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나태주 시인님을 1분 후에 보내드려야 되는데 너무 아쉬운데요. 선생님, 우리가 그래도 이러한 삭막한 시대에 왜 시를 읽어야 되는가 짧게 1분 말씀 주십시오.
◆ 나태주>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시를 읽어야 되고요. 그리고 우리는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우리가 아름답게 해야 하는데 바로 그 감정에서 행복이 오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시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야 돼요. 살려면 시를 읽어야 됩니다.
◇ 박재홍> 우리의 메마른 감정, 우리의 메마른 사랑, 메마른 생명을 역동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책꽂이에 있는 시집을 꺼내서 다시 그 시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오늘 나태주 시인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청취자들께서 너무 귀한 시간이었다 말씀해 주셨는데요. 오늘 먼 걸음, 귀한 발걸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한판클라스 나태주 시인과 함께했습니다.
◆ 나태주> 특별한 분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3/10(월) 나태주 “선거에 지친 이들에게…시를 읽읍시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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