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28(금) "역대급 비호감 대선? 문제는 상상력이야“
2022.01.28
조회 407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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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심용환 작가

◇ 박재홍> 40일 후면 대선입니다.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리더를 뽑게 되는데요.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이고 대통령이라는 자리,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참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걸 역사를 통해 한번 짚어보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 한판클라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고 연구를 많이 하시는 역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국민역사학자 심용환 작가님, 어서 오십시오.

◆ 심용환> 안녕하세요. 심용환입니다.

◆ 심용환> 우리 진중권 작가님과 김성회 소장님과도 인사하시죠.

◆ 진중권>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 김성회> 안녕하세요.

◇ 박재홍> 두 분이 만나셨어요?

◆ 진중권> 방송에서 만났죠.

◆ 심용환> 방송에서 몇 번 뵀죠.

◇ 박재홍> 심 작가님은 연예인 같은 얼굴을 하고 계세요.

◆ 심용환> 뭐라고 답변해야 되죠? 연예인 같은 얼굴이 있나요?

◇ 박재홍> 뭔가 아우라가 들어오실 때.

◆ 심용환> 아닙니다.

◇ 박재홍> 저도 방송 몇 차례 작가님과 했었는데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바쁘신데 감사드리고 대선이 정말 40일 남았습니다, 오늘로. 작가님도 관련 뉴스 많이 보실 텐데 지금 어떤 국면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 심용환> 힘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 가장 놀라운 건 주변에서 대선 이야기 잘 안 하죠. 그게 제일 신기한 것 같아요. 주변에 만나면 원래 누가 좋냐까지는 조심스러워도 이런 걸 기대한다, 저런 걸 기대한다라는 얘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짜증나, 힘들어 우리가 이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돼 이런 이야기로 가는 게 현실인 것 같아서 많이 속상하기도 하고 이런 때도 있었나 약간 그런, 어렸을 때 복기해 봐도 답답함 속에 있는 건 국민으로서 솔직한 입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게 돼요.

◆ 진중권> 바람직한 거죠. 기대감 제로기 때문에 실망도 안 할 것 같아요.

◇ 박재홍> 기대가 없다, 그렇군요. 그래서 작가님이 어떤 기대가 없는 현실을 보면서 정치적 승리를 거둬본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이거 어떤 의미로 하신 거죠?

◆ 심용환> 정치적 승리를 거둬본 적이 없었다는 말은 어떤 대통령 선거나 어떤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겼다 이말을 의미로 만든 건 아니고요. 예를 들면 실패를 했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자취를 남겼느냐의 문제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69년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 김영삼 원내 총무였죠. 본인이 40대 기수를 외쳤지만 결국은 대선후보에서 패배하잖아요. 그래서 김대중 후보가 후보가 됐는데. 이런 경우는 사실은 이겼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튼 40대 기수론이라는 아젠다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이제 김영삼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잖아요. 약간 이런 경험들. 그게 그 시대 때는 젊은층의 새로운 정치, 이런 걸로 또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런 이야기드라마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 조금 나쁘게 이야기를 하면 사회적인 요구를 정치권이 못 따라가고 있는 수준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좀 해보게 돼서 그런 이야기를 남겼던 것 같습니다.

◆ 김성회> 그러면 이번에 대선 후보가 되신 두 분 말고 최근에 보셨던 여러 정치인 중의 그런 정치적 승리를 경험. 저 사람은 정치적 승리를 해봤네, 혹은 패배를 했더라도 그런 식의 경험을 가진 정치인들 혹시 보신 분이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 심용환> 그 질문은 피해도 되는 거죠?

◆ 김성회> 알겠습니다.

◆ 심용환> 제가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뭐라고 현실 정치를 딱 말씀드리기는 그래서.

◇ 박재홍> 그런가요.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되던 시절 헌법의 상상력이란 책도 내셨어요. 대선 주요 국면 때 사회에 메시지를 내는 책을 주로 내렸는데 당시에는 어떤 메시지를 위해서.

◆ 심용환> 그때는 탄핵 시점이었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어떤 재설계에 대한 기대가 좀 높았던 때 같고요. 저만 헌법에 대한 책을 냈던 것 같지는 않고 엄청 많이 나왔었죠. 그래서 헌법을 다시 돌아보자. 우리나라가 어떤 형태의 정체성의 국가로서의 기초가 있느냐를 많이 물었던 시대 같아요. 사실은 그때는 그런 책을 냈는데 이번에도 그래서 뭔가 새로운 대선. 어떻게 보면 그 점점점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때, 이런 때여서 리더의 상상이라는 책을 냈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특별히 그런 고민들이 좀 부족해지는 상황이 아닌가 약간 그런 생각이 아쉬움이 있습니다.

◇ 박재홍> 리더의 상상력, 저는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참 좋더라고요. 상상력 그러니까 리더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인가요? 리더의 상상력.

◆ 심용환> 그러니까 어느 시점부터 적대감, 혐오, 갈등 그리고 나는 저쪽 정당을 절대 안 찍은 저쪽 하는 건 무조건 다 틀렸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조금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번에 대선주자 각당의 부동산 정책을 봤어요. 봤더니 양당이 다 사실은 100만 호 주택건설로 핵심적인 내용이 있더라고요.

◇ 박재홍> 250만 호.

◆ 심용환> 호수가 차이가 나는데 그런데 냉정하게 따지게 되면 부동산 공급정책을 통해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는 이야기는 공약으로 따지게 되면 전두환 대통령이 500만 호 최초로 얘기했었고 그게 그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던 게 박정희 20년 기간 동안 지었던 게 500만 호였기 때문에 그걸 7년 만에 짓겠다는 건 말이 안 됐었는데 하여튼 화제가 됐었고. 제일 유명한 건 노태우 대통령 때 250만 호, 200만 호. 실제로 해서 인기가 높았는데 실제로 200만 호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 때 이야기했던 게 토지공개념이거든요. 공급을 통해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되 토지공개념을 통해서 통제하겠다라는 이야기인데. 사실 그게 김영삼, 김대중 시기 때는 제대로 되지 않았죠. 왜냐하면 세계화정책의 모순이라든지 아니면 그 이후 외환위기 수습이라든지 그 이후도 한참 지났잖아요. 지금도 양당의 부동산정책이라는 것이 주택공급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 사실은 그만큼 정치적 상상력이 결여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되는 거죠. 역사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 진중권> 이게 상상력이라는 건 항상 미래거든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데려다가 현재에서 실현하는 것 이게 핵심인데. 지금 정치권 보면 다 과거예요. 과거사청산, 적폐청산 등등등. 그러다 보니까 선거가 이 모양이 이꼴이 된 거죠. 정말 안타까워요.

◆ 김성회> 어떤 의미에서는 80년대, 90년대 정치권에서 이야기했고 실제로 만들었던 아젠다만큼 지금 쫓아가는 그림이 안 나온다는 점에서 그때는 하다못해 노태우 같은 사람은 우리가 중공이라고 불렀던, 중국 공산당의 줄임말로 중공이라고 수교까지 하겠다는 이야기를 글쎄요, 지금 그런 정도 비전의 정책을 내놓은 정치인들이 있나 이런 게 저는 요즘 아쉬움이 있어요.

◆ 심용환> 그러니까 실제로 보게 되면 예를 들면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기억하지만 사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하고 유사점이 많잖아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김영삼 대통령 때 금융실명제 같은 경우가 나중에 어찌됐든 김대중 대통령 때 IT정책이나 신용사회로 넘어가는데 중요했거든요. 그러니까 무조건적으로 내가 정당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정책적 연계성에 없었다 그렇게 볼 수 없는 거죠. 그런 것들이 이제 소위 말하는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한 경쟁 시대였고 비방의 시대였음에도 그렇게 그런 식의 어떤 사회적인 전환의 순환적인 효과도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좀 상상력이 떨어지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이런 고민인거죠.

◆ 진중권> 저도 쭉 보게 되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다음 그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다 한일이 있어요. 우리 사회를 진전시켰거든요. 언제부터냐면 이명박하고 박근혜,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는 그게 없어진 거거든요.

◇ 박재홍>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우리 작가님이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의 이름을 가지고 오셨어요. 왜 두 분을 생각합니까?

◆ 심용환> 그러니까 일단은 균형을 맞춰야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실 균형도 균형인데 어쨌든 현재 존재하는 정당들이 연관이 되어 있잖아요. 그랬을 때 자신들의 정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인물에 대해서 재검토할 수 있는 역사가로서의 도움도 될 거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요. 또 하나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과거 우리가 많이 논쟁을 했었던 이승만이라든지 박정희 시대가 얼마큼 지금 우리 현실과 상관이 있냐로 따졌을 때 저는 거리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그게 굉장히 내가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찬양하면 이 정당을 찍어야 되고 이런 식의 사실은 굉장히 무례하기도 하고 너무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야기. 그래서 그런 거보다는 좀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시대를 통해서 많이 바뀐 그것이 오늘날 영향을 주고 있고 장단점이 있고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탐독해보면서 가면 미래로 가는데 있어서 당장 이번 대선이 아니더라도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추구해 봤습니다.

◇ 박재홍> 큰 틀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심용환> 최근에 교양방송 위주로 많이 나왔는데 약간 분위기가 살벌한 것 같아서 긴장돼 있습니다. 솔직한 속내를 말씀드린 거예요.

◆ 진중권> 오늘 금요일 이 시간은 교양시간이에요.

◇ 박재홍> 금요일 2부는 두 분이 공감의 시간이기 때문에.

◆ 김성회> 인상이 더러울 뿐이지 물지 않아요.

◇ 박재홍> 두 분이 순한맛으로 변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작가님도 안전합니다. 헤치지 않아요.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상력은 무엇이었습니까?

◆ 심용환> 뭐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리더십, 하나는 성과라고 볼 수 있는데 리더십으로 따진다면 김영삼 대통령 같은 경우 이런 거죠. 뭐 하나를 마음을 먹으면 그걸 단칼에 한 번에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과에 도달한다.

◇ 박재홍> 추진력이 있었군요.

◆ 심용환> 추진력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죠. 우리가 제일 잘 기억하는 건 하나회 숙청인 거고 금융실명제라든지.

◆ 진중권> 전격적으로 했잖아요.

◆ 심용환> 전격적인. 저도 기억나거든요. 밥 먹다가 갑자기 뉴스 딱 트니까 지금 이 시간부터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 특히 금융실명제 같은 경우는 당시 박지원 경제수석이 반대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금융실명제 하면 4개월 만에 망한다더라 얘기했었고. 82년에 전두환 정권 때도 하려다 못했고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노태우 정권 때도 사실 못했고. 그러니까 하면 좋은데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안 된다는 거죠.

◇ 박재홍> 그러니까 내 돈이면 무조건 네 이름으로 해라 이거잖아요.

◆ 심용환> 그렇죠. 당연한 건데.

◇ 박재홍> 당연한 건데.

◆ 심용환> 그리고 당시 아주 대표적 언론사나 심지어 내 정부의 핵심인사조차 반대하는 상황인데.

◇ 박재홍> 그분도 다른 지분을 많이 갖고 있었군요.

◆ 심용환>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단호하게 밀어붙여서 통과가 됐기 때문에 그러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거고 우리가 보통 김영삼 대통령 하면 하나회 쪽에 많이 관심이 가 있는데 김영삼 대통령의 93년 지지율을 보게 되면 사실 정통성 회복이에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조선왕조 그리고 독립운동사, 민주화 운동사, 이게 정통사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건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만 많이 기억하는데.

◇ 박재홍> 김영삼이 했던?

◆ 심용환> 실제로는 현직 대통령으로 4.19를 혁명으로 칭하고 12.12를 군사쿠데타로 규정하고 그리고 현직 대통령 최초로 효창공원이 임시정부 묘역이잖아요, 최초로 방문했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도 해체한 거거든요. 어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되게 당연한 건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독립운동사나 민주화운동사 같은 경우들에 대해서 얘기 잘 안 있던 때. 그렇게 그런 걸로 비교해 보면 작년에 문재인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 봉안했잖아요. 그것도 사실은 93년 이벤트의 재현인 거죠.

◇ 박재홍> 금융실명제라든지 하나회 척결 그 모든 뭐랄까 개혁적인 일들, 김영삼 전 대통령 본인의 생각이었습니까? 참모들의 이런 것을, 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일까요?

◆ 심용환> 그런 부분을 그동안 우리가 논의하던 방식은 이게 이 인간 생각이야 저 사람 생각이야 이건 정치 비평적 이야기인 거고. 저는 역사적 결론을 따지면서 이야기를.

◇ 박재홍> 중요하지 않습니까?

◆ 진중권> 별로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 심용환> 그렇죠.

◆ 진중권> 그리고 리더십이죠.

◆ 심용환> 그리고 적어도 중요한 건 김영삼 대통령이 마음먹은 다음 관철시킨 건 김영삼 의지이니까 약간 그건 있어요. 뭐가 있냐하면 김영삼 대통령은 띨띨하다, 보고서를 3분 이상 못 읽는다.

◇ 박재홍> 조금 고급스럽게 해 주세요.

◆ 심용환> 조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건 뭐냐면 마지막 외환위기로 무너졌을 때 김영삼 탓으로 돌리거든요. 그런데 그게 과연 김영삼 혼자의 잘못이냐, 그 집단의 잘못이냐 이걸 따져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 진중권> 그 당시에 누가 대통령 자리에 앉았어도 IMF는 피할 수 없었을 것 같고.

◇ 박재홍>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피할 수 없었던 파고였다 이렇게 봐야 하나요.

◆ 진중권> 김영삼 대통령이 얘기를 했잖아요. 머리는 그냥 빌려다 쓰는 거고.

◇ 박재홍> 둥글게살자님이 김영삼 대통령 YS는 공이 실보다 확실히 많은데 IMF가 외환위기가 너무 임팩트가 있어서 공이 묻힌 것 같다는 말씀 주셨어요. 동의하십니까, 작가님?

◆ 심용환> 절대 동의하고요.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고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변호라기보다는 책에도 써놨지만 흥미로운데 우리가 결론을 알잖아요. 그 당시에는 1월달에 한보가 부도나요. 매출 800억짜리 회사가 대출을 7조를 받았거든요. 말도 안 되는 규모인데.

◇ 박재홍> 800억 원에 7조 대출.

◆ 심용환> 그런데 그때 실제로 모든 정치권은 김영삼한테 받은 거다. 계속 국정감사 얘기를 해요. 그러다가 삼성 보고서 파문이라 그래서 삼성이 자동차에 진출하기 위해서 기아차를 인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공식화시켜요. 그때부터는 또 김영삼 정권이 삼성을 후원한다, 그다음에 7월에는 기아가 부도가 나요, 재계 7위였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가 엇갈리는 게 뭐냐면 시작은 재벌들의 싸움인데 7월 이후에는 재벌이 아니라 그때 기아는 이렇게 뭐라고 하죠. 민주 경영, 재벌이 없는 기업구조였잖아요. 그러니까 봐 봐, 재벌이 없어도 이 모양이야라고 하면서 기아가 부도난 다음부터는 이 싸움은 그냥 이전투구가 되는 거예요. 그때 보도를 보면 신문의 아주 구석구석에는 사실은 증시 하락이라든지 미국이 계속 이제 미국 쪽으로만 주식이 올라간다라든지 혹은 아주 소수의 전문가들이 94년 멕시코 경제 붕괴를 이야기한다라든지 그러니까 당시만 하더라도 이것이 일어나는 파고를 예상하지 못하고 계속 정치적인 싸움으로 몰아간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않은 상황이 됐기 때문에 다행이긴 한데. 하여튼 문제를 좀 종합적으로 키웠다는 측면은 있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변명보다 아직까지 사회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너무 떨어졌다라는 것들, 그런 것들을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런데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척결 같은 문제는 기득권을 없애는 문제아니었습니까? 지금도 많은 정부들이 개혁을 이야기하고 할 때 저항이 있지 않습니까? YS는 그러한 저항 어떻게 극복했던 거예요. 언론이라든지 여러 가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었을 것 같은데.

◆ 김성회> 그냥 깡으로 한 거 아닌가요?

◆ 진중권> 보수정당이라서 편한 측면도 있었을 거예요.

◆ 심용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박재홍> 그런가요.

◆ 심용환> 이게 양날의 검이라고 하는데 3당 합당, 야합이라고 하잖아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본인이 3당 합당을 해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안정적 의석수가 의석 속에 있었고 깡이라는 말해도 공감을 하는데. 본인이 민주화 운동가로서 오랜 삶을 살았고 그걸 입증하고 싶었던 의지도 분명 있었던 것 같고 그런데 하나 흥미로운 게 뭐냐 하면 예를 들어서 본인이 공식 재산을 공개를 했어요. 집권 2일차인가 자기 재산 17억 8000억 원을 공개를 했는데 자기 재산 공개하고 그다음에 각료들 공개하면서 공직자윤리법이 바뀌어요. 그때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박중규를 비롯한 자기 측근들 그리고 자기 정당인 민자당 의원들이 문제가 됐거든요. 그때 사실은 공식적 재산등록법과 정치개혁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김대중을 끌어들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적이지만 또 대놓고 도와달라 이야기한 것도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내가 꺼냈을 때 김대중은 움직인다 이건 예상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측면에서 사실은 본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주류 정당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의 주류 세력계열하고 할 때 또 다른 비주류의 정치인인 김대중의 힘을 잘 활용하는 것들, 이런 것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어요.

◆ 진중권> 노동법 날치기도 있죠. 제가 베를린에서 영사관에서 가서 같이 데모했습니다.

◇ 박재홍> 갑자기 진중권의 역사를 갑자기 얘기를 해 주시는데.

◆ 심용환> 그때의 나는.

◇ 박재홍> 윤여전 전 장관도 김영삼 정부의 가장 큰 실책 노동법 날치기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어떤 배경, 상황 속에서.

◆ 심용환> 조금 풀어서 말씀드릴게요. 1차적으로는 저는 그냥 기업이나 정치는 역사화 시켜서 얘기 말씀드리고 싶은데. 1차적으로 거기 좀 전에 이인제 씨가 등장을 합니다. 지금은 거의 밈처럼 기억되지만 그때는 김영삼의 아바타, 그러니까 김영삼이 기대하는 똑똑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서 최연소 노동부 장관이 되죠. 무노동 부분임금을 우리나라 노동부 장관으로 최초로 얘기를 했었고 노조 간 대화를 얘기하다가 10개월 만에 낙마를 해요. 그래서 사실 선례가 됐지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본인이 이게 김영삼의 실패로 가는 길인데 시드니를 가보니까 전 세계가 세계화의 물결이 있다는 거죠.

◇ 박재홍>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 심용환> 시드니, 시드니. 그래서 시드니 선언이라고 해서 집권 1, 2년차는 개혁인데 3년 차 이후부터는 우리나라를 세계 초일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되면서부터 앞뒤가 엇박자가 나가게 되는 과정에서 결국은 이제 아까 말씀하신 대로 노동법 문제에 있어서 비정규직 양산, 정규직 구조의 파괴 같은 것들이 진행이 되죠.

◇ 박재홍> 그래서 세계화 담론이 95년도부터 엄청나게 많이 오면서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도 많이 유행을 했었고 어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도 대학사에 많이 유통됐었고 잘 모르면서 세계화가 무조건 덫인 같은 생각도 들고 그 이후에 97년, 98년 IMF가 오면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빨리 그런 것을 부르짖었던 것도 있었군요, 결과적으로.

◆ 심용환> 그렇죠. 그거에 대한 비판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요. 잘못했다, 혹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고. 다만 이제 노동법 날치기를 했고 그래서 거기서 굉장히 욕을 먹고. 그래서 노동법이 또 개정돼요. 그래서 사실은 그게 우리가 기억하는 건 노동법 날치기만 기억하는데 그후에 그게 노동법 재개정이 되면서 드디어 민주노총 같은 단위가 실제 법적 단위로 인정을 못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지위로 사실상 인정을 받죠.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김대중 정권 때, 김영삼 대통령은 선례를 만드는 건 능한데 구조화가 되게 약하잖아요.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 때 소위 말하면 노사정위원회를 법제화시키면서 비로소 노조와 사측이 법적 기틀을 위해서 대화 시스템을.

◇ 박재홍> 저는 김영삼 전 대통령...말씀하세요.

◆ 김성회> 김영삼 대통령 때 OECD 가입 논의를 하면서 소위 말하면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에 맞춰서 우리나라의 노조법도 개정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그 뒤로도 20년 동안 못한 것이 몇 개 남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때 선진적인 기초를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잖아요.

◆ 심용환> 사실이죠. 완전히 무조건 지금 와서는 노동법 날치기 부분은 문제인데 그 전후에 김영삼 정부의 노동 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진중권> 기업에 따르면 그때 우리가 IMF 직전에 저는 독일에 있으면서 한국이 미쳤다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뭐냐하면 이렇게 뻥이라 그러나요. 그때 난리가 났었습니다. 우리 몽골 제국이 입국을 건설하듯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전 세계를 먹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딱 듣는데 너무 독일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 허황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했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그런 얘기를 했다가 너는 뭐 매국노냐, 니가 물 좀 먹었다고 막 이런 욕을 먹었던 게 기억나거든요. 그러면서 IMF가 딱 오는데 그때 우리 사회 전체가 약간 미쳤던 것 같아요. 헛된 꿈에 부풀어서.

◆ 김성회> 젊은 청취자분들은 이 대목에서 잘 이해가 안 되시는 게 있는데 1997년에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초창기에 보급이 돼서 없던 시절이고 이메일이라는 게 98년, 99년 이쯤 등장을 했고 외신을 본다는 것은 굉장히 소수에게만 주어지던 특혜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너무 우리들끼리 쉽게 얘기하지만 지금 생각하시는 분들은 인터넷 나오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서.

◆ 심용환>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금융실명제 자체를 이해를 못하거든요. 이걸 왜요, 조금 시기적 차이는 고려를 해야 되지 않을까.

◇ 박재홍> YS 김영삼 대통령을 이야기하면 이 얘기를 꼭 해 보고 싶어요. YS오면서 대통령을 풍자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부부 얘기도 이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퇴근해서 나다.

◆ 진중권> 원래 그거 먼저 허용하던 게 노태우.

◇ 박재홍> 그랬습니까?

◆ 진중권> 노태우가 보통 사람입니다, 허용한다 그랬죠.

◆ 김성회> 노태우 이런 거 나오고.

◆ 심용환> 사실 그 부분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적 감각이 탁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노태우 정권이 들어오면서 생긴 균열, 어찌됐던 노태우는 민선 대통령이고 그리고 본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기존 647기 하나회 세력을 날려버렸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보통 사람입니다라면서 뭔가 틈을 만들어 놓은 걸 그틈에 칼을 박는다라고 하나요. 제일 재미있는 건 노태우 대통령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절반이 다 김영삼 대통령 욕입니다.

◇ 박재홍> 욕이에요?

◆ 심용환> 그 욕의 디테일이 너무나 철저하고. 또 하나는 박철언이라고 생각나시죠, 6공의 황태자.

◇ 박재홍> 황태자.

◆ 심용환> 그분의 저서의 절반이 김영삼 대통령의 욕입니다. 그러니까 6공 입장에서 우리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보수적인 길을 열었는데 네가 다 망쳤다라고 얘기하는 거고.

◆ 진중권> 배신자.

◆ 심용환>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 입장에서는 나는 너희들 조금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노태우가 군부를 조절해? 웃기지 마 이게 핵심적인. 그래서 하나회 숙청을 자기가 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 박재홍> 실제로 호랑이 잡은 겁니까?

◆ 심용환> 잡은 부분이 있고 못 잡은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런데 어찌됐든 지금 봤었을 때는 외환위기나 세계화 이런 부분은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초창기 때 만들어졌던 게 지금 우리한테는 너무나 일상적인 게 됐다는 거죠.

◆ 진중권> 하나회 척결을 했다는 건 뭐냐 하면 우리가 우리의 민주화 과정이라는 게 비가역적인 것으로 돌아갔다는 거죠. 그러니까 얼마 전에도 보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분들이 군부여 일어나라! 옛날 같으면 그 말 듣고 섬뜩했던 텐데 요즘은 웃잖아요.

◆ 심용환> 그래도 실제로 일어날 군부도 많았을 텐데 불가능하고. 그리고 사실 이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낯설어 하시는데 저는 과거사 청산을 연구해 보면 전 세계적으로 봤었을 때 실제로 전임 군부의 주요 집단을 다 체포해서 30인까지 끝까지 간 다음에 교도소에 처넣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아르헨티나랑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굉장히 과거사 청산에 있어서도 그때는 금세 사면되고 나오니까 불만도 많고 했지만 과정이 문제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전 세계적 기준에 봤었을 때 그런 같은 사실은 김영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들이었고 저는 보는 거죠. 대범함들 이런 것들.

◇ 박재홍> 한판클라스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님과 함께하고 있고요. 심 작가님이 한 25분 만에 두 패널이 본인이 헤치지 않는 걸 알게 되시면서 혀가 풀리고 있습니다. 잠시만 쉬었다가 갑니다. 한판승부 금요일 2부는 심장이 편안해지는 쫄깃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만든 한판클라스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님과 함께했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 이야기했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 DJ 얘기를 해 볼 수 있습니다. DJ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심용환>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상이에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볼 수 있겠지만 사실 1차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가로서의 탁월성이 포인트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이 말이 좋은 말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의 정치인치고는 예외적으로 아주 오랜 지적훈련을 하셨던 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 박재홍> 지적훈련?

◆ 심용환> 충분히 공부했다는 거죠. 그가 교도소에 있으면서 실제로 굉장히 많은 책을 보고 학습능력이 굉장히 탁월했고 그것을 결국 정책적 방향으로 이미 70년대부터 구현하는 능력들. 그러니까 71년 대선 때 보게 되면 크게 두 가지잖아요. 하나는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가 중요하다. 이게 나중에 대중경제론이 되는 거고 또 하나가 다자안보론이거든요. 방공도 중요하지만.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정책 자체를 부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방공도 중요하지만 남북이 대화해야 하고 주변 국가 끌어들여서 안보체제 만들어야 된다라는 걸 71년에 주장을 했는데.

◇ 박재홍> 71년에 주장을 했습니까?

◆ 심용환> 그렇죠. 그때 이미 다 주장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건 그가 98년 대통령 된 다음에 실제로 핵심적인 사항들을 보게 되면 여튼 간에 노사정위원회 그리고 사회복지 시스템 이런 것들이 구체화된 것이고. 반대편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햇볕정책. 그리고 제가 책에서 굉장히 강조했던 아세안+3. 그러니까 아세안에 한중일이 참여하면서 한중일의 대화 루트를 만들서 어떤 우리가 중간에 서서 북한과 미국을 중재하면서 햇볕정책을 이끄는 것만이 아니라 이건 다 알고 있는 얘기인데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를 해서 일본의 오부치 총리, 중국의 주룽지 총리를 끌어들여서 동아시아의 평화에 담론을 만들었다는 거. 그런 부분이 오랫동안 숙련된 리더십이자 지적 핵심들. 이건 우리나라 정치인으로 사실 흔한 케이스 같지는 않아요. 물론 김영삼 대통령도 흔하지 않지만.

◇ 박재홍> 진 작가님.

◆ 진중권> 책을 몇 만 권을 읽으신 분이거든요. 그리고 진짜 준비된 대통령인데. 정말 모든 게 딱딱딱 준비돼 있었고 이번에 저는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한국사회를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확 바뀐 거고 그때 기억나실 겁니다. 벤처 붐들. 그게 그때는 나랏돈 수쳇 구멍으로 새듯이 샌 것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향후 10년, 20년간 한국의 먹거리 산업을 만들어냈고 지금 존재하는 인터넷 기업들이 대부분 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가 딱 되어 있었다는 게 놀랍고요.

◇ 박재홍> 그래요. 아까 말씀하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Sunshine policy 이게 굉장히 그 당시 나왔을 때는 굉장히 뭐랄까.

◆ 심용환> 느껴지지 않는?

◇ 박재홍> 이솝우화를 바탕으로 이게 옷을 스스로,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죠.

◆ 심용환> 그렇죠. 그 당시 임동헌 씨의 피스메이커 같은 거에 재미있게 나오는데 그당시만 해도 대북정보가 너무 편향적인 거예요.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의 회고가 뭐냐면 이런 사람이면 만날 필요가 있냐 1차적인 거고 나중에 방송에서도 이야기했지만 6.15공동선언 직전에 대화를 오래했잖아요. 그때 한 3차례에서 4차례 정도 더 이상 대화를 못 이어가겠다, 그런 위기도 느꼈고 그걸 견뎌내면서 대화를 이끌어가게 된 거고 가장 흥미로운 게 뭐냐하면 지금도 사실 대북관계할 때 이런 것들 참고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조선왕조를 되게 좋게 여기잖아요.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사회주의 국가는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논리관이 있기 때문에 봉건왕조의 유산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봐요. 그런데 이게 어디서 문제가 생기냐면 김정은이 보기에는 남한의 정당정치가 당쟁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게 우리가 보기에도 당쟁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애초에 우리보다 훨씬 더 조선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당쟁이라고 본다라는 건 쓸모가 없는 거죠, 여야의 싸움이라는 게.

◇ 박재홍> 서인과 남인의 갈등 이렇게.

◆ 심용환> 우리는 붕당이라고 얘기는 해 주는데.

◆ 진중권> 절반의 진리는 있죠.

◆ 심용환> 저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고 북한 입장에서는 이건 정말 쓸모없는 거거든요. 그런 입장을 사실은 그때 처음으로 대화를 해서 풀어가면서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유의 용서와 인내의 리더십이 있는 거 같고요.

◇ 박재홍> 용서와 인내의 리더십.

◆ 심용환> 그만큼 철학이 분명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부분은 좀 이제 한국사회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도 여야를 넘어서 좀 많이 얘기를 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게 이번에도 보면 사실 양대 정당이 있는데 거의 똑같더라고요. 거의 비슷한데 굳이 다른 게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서 선이냐 후냐를 가지고 싸우는데. 그때도 그런 식의 담론을 펼쳤다라면 이제는 좀 양당이 조금 더 허물없이 꼭 양당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사회 자체가 허물없이 남북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나.

◆ 진중권> 저는 김대중 대통령한테 감탄한 게 뭐냐하면 그때는 그때는 빨갱이 소리 들었거든요. 그거를 몇 십 년 동안 들어가면서 끝내 관철시키면서 정상회담 이끌어내잖아요. 그리고 지금 여러 가지 남북관계가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든 진보든 간에 기본적인 틀은 햇볕정책이에요. 아무리 국민의힘에서 아무리 강경어조로 한다 하더라도 자기들도 집권을 하게 되면 남북관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되거든이라고 하면 사실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 패러다임을 깐 분이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 김성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걸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지금의 20대, 30대들 그리고 국민의힘의 이준석 대표도 그렇고 윤석열 후보도 그렇고 그렇게 20년 동안 했던 것이 아무런 성과가 없다라는 판단들을 지금 역사적으로 하신 것 같고. 그래서 이런 식의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 결국 서서히 그들이 하고 싶은 걸 다 나뒀을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훨씬 거꾸로 훨씬 우리가 확실히 적대적이고 확실히 군비증강의 길에 서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테이블에 앉는 쪽이 서로 간 오히려 대화와 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완전히 전환을 가져오는.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이게 되게 당연한 길인데 새로운 세대에게는 자기들이 혁명을 하고 있는 그림. 그리고 그 혁명의 지도자가 윤석열 후보가 되고 그것이 주적은 북한이라는 다섯 글자의 단어로 등장해서 저는 이게 만만치 않은 다시 한 번의 싸움이 될 거라고 보는데.

◆ 진중권> 선거 치를 때 다 그래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군 사열대에 올라가잖아요. 중국군이 어떤 군대입니까? 6.25 때 우리.

◆ 김성회> 박근혜 대통령은 당대표하실 때도 북에 가서 김정일이었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오고 그런 정도의 남북 간의 의지가 있었는데. 저는 지금의 국민의힘의 새로운 정책들은 완전히 궤가 다른 것 같다는 느낌 들어서.

◆ 진중권> 과대평가하면 안 돼요.

◇ 박재홍> 심 작가님한테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심용환> 아니요. 이런 분위기 재미있고요.

◇ 박재홍> 정말 재미있으신 거 맞죠?

◆ 심용환>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런 부분에서 저는 일종의 책 제목을 리더의 상상력이라고 적은 게 우리는 그냥 햇볕정책의 성과에 많이 집중하는데 당시로 돌아가보게 되면 실제로 그 당시 상황도 좋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클린턴 같은 경우 우리가 되게 좋게 생각하잖아요. 클린턴이 김대중을 존경했다. 그런데 클린턴은 외환위기 때 소위 말하는 IMF를 밀고 들어와서 한국에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인 사람이에요. 우리는 대북정책으로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조금만 2년 앞으로 오면 가장 야만적인 대통령이었거든요. 그런데 흥미로운 게 뭐냐하면 그랬던 대통령을 끌고 와서 재벌개혁을 할 때 클린턴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을 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재벌개혁을 요구하게 만들었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이. 그다음에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시 대통령이 들어왔을 때는 계속 대화했잖아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 가면 부시도 기조를 바꾸게 되는 거고. 여기서 중요한 게 그렇게 햇볕정책도 있지만 그 성과를 세계로 부쳐서 아세안 국가를 끌어들이거나 주룽지를 끌어들어 만들었다는 부분인데. 예를 들어 지금 같은 경우는 요즘에 메가시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제가 얼마 전에 철원 답사를 갈 일이 있었는데. 철원이 옛날에 인구가 10만 명이 넘었어요, 일제 강점기 때. 왜 그런가 봤는데 정주영 회장이 통천 출신이거든요. 그러니까 강원도 사람들은 옛날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오는 사람도 있지만 강원도, 통천, 원산, 철원 여기서 활동을 한 거예요. 그러면 이건 가정이지만 메가시티와 중부권 내륙에서 철원, 원산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루트를 이어서 이야기를 만약에 공약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곧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인 평화와 실리를 추구하는 아이디어도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이 김대중 대통령 때는 가능했다는 건데 지금 보면 그냥 원론적 입장에서 안 된다, 된다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김대중 대통령 98년에 정주영 회장이 소떼 500마리 끌고 갔던 것. 그것도 뭐냐하면 통천 출신이니까 평생 금상산과 내 고향에 가고 싶은데 아산에 내려와서 성공하신 분이거든요. 그 욕구. 재미있는 게 정주영 회장이 올라갔을 때 그때 원래 제안했던 건 해주공간이거든요, 개성공단이 아니에요. 그런 플랜들이 다 나와 있는 건데 기업인의 욕구와 소망을 이루어지면서 자신의 정책을 밀어가는 거니까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이념이나 정당의 입장만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

◆ 진중권> 전략적 사유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전략적 사유를 하는 머리를 가진 사람이 사람들이 없어요. 무뇌야, 지금 다.

◇ 박재홍> 갑자기 또. 특정 후보를 말씀하신 게 아니니까요. 양 모든 캠프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심용환> 저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저희도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진중권> 저는 곧 역사가 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한일 관계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는데. 이제 한중일, 동아시아 평화협력을 위해 애를 쓰셨는데. 지금 이제 뭐라고 할까요. 지금의 필요한 상상력은 뭘까요. 지금도 한일 관계가 냉각되어 있고.

◆ 심용환> 일단은 당장은 이 상황 자체가 굉장히 안 좋잖아요. 차이가 뭐가 있냐하면 김영삼 대통령 때는 아마 기억하시겠지만 호소카와 총리라든지 무리야마 총리라든지 일본에 민주화가 많이 이루어지던 그러니까 자민당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좀 좋았고 상황이 좋았던 것치고는 김영삼 대통령이 잘 못하셨죠. 버르장머리 이런 발언. 최근에 웃긴 건 맥락은 못했는데 일본을 버르장머리를 잡는다 이 말 자체만 인터넷으로 굉장히 화제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은 뭐냐 하면 김대중 대통령 때는 오부치 총리인데, 자민당이에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유신 때 납치당해서 죽을 뻔 했을 때 일본 정부가 방지했잖아요. 또 내란음모 사건 조작할 때는 사실은 일본 정부가 자기네 정부가 끼어 있는데도 방기했거든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국제적인 정치인에 대한 일본의 미안함 같은 것들이 사실은 오부치가 그런 거에 대한 책임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오부치가 얘기했던 게 통절히 사죄한다 그러니까 그 당시 한일 공동성명을 보면 통절히 사죄한다는 그 말의 진정성을 믿겠고 미래로 가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개방으로 나가게 된 거거든요. 결국은 김대중 특유의 용서의 리더십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러니까 미래로 나가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묻지는 않겠다. 대신에 너희들도 진정성을 지켜달라라고 하는 용서와 미래 리더십 같은 것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데 지금은 그와 똑같은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더군다나 G2 문제라든지 반중정서 같은 게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퍼즐은 복잡해졌지만 적어도 그런 태도를 많이 좀 상기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정립하는 과정을.

◇ 박재홍> 진 작가님이 전략적 사유를 말씀하시다 말았는데 말씀하세요.

◆ 진중권>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윤석열 후보가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김대중 오부치 선언. 여기에 따라서 한일관계를 가져가야 되는 거고 오히려 요즘은 민주당에서는 자꾸 토착왜구니, 총선은, 대선은 한일전이니 하면서 반일감정들을 조장을 하고 있는데 그 상황이 물론 그때랑 좀 다르죠. 지금은 사실 일본 사회가 상당히 우경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이걸 계속 가져가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다시 김대중 오부치 선언, 이걸 양국에서 이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 심용환> 맞아요. 저도 반성이 되는 게 사실은 반일정서를 강화시켰던 건 역사학회거든요. 아무래도 과거 역사적인 문제가 있다 보니까.

◇ 박재홍> 심 작가님 책임이군요.

◆ 심용환> 현실적으로 책임이 있다 보니까 과거사라는 문제와 현재를 풀어가는 과정. 그리고 정말 좀 냉정하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면 과거의 모든 일들을 미래를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그 질문을 짊어지게 할 필요가 있나라는 회의가 또 역사학계 일각에서 많이 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다양한 지원이.

◆ 진중권> 일본 사회가 어느 정도냐 하면 옛날에 한국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이런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제 아내 쪽이잖아요. 그쪽에서도 친척들마저도 굉장히 반한감정이 굉장히 강해져서 아내가 너무너무 당혹해하더라고요. 이게 우리 쪽에서 이런다면 이런 다음 저쪽에 반사효과가 되거든요.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가면 이러면 사실 한일 관계는 회복이 안 되거든요. 왜냐하면 양쪽 국면이 다 바뀌어야 되어요. 이런 쪽으로 가면 좋겠어요.

◇ 박재홍> 오늘이 일본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진한다고 발표를 해서 우리 외교부가 강력한 유감을 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광산이 뭔지 청취자 여러분께 쉽게 설명해 주시면.

◆ 심용환> 일본이 최근에 추진하던 게 일본의 근현대사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건데. 문제가 뭐냐 하면 문제는 다 똑같아요. 과거의 근현대사의 유산에 조선인 징용, 징병 같은 문제들이 있는데 그걸 배제시키고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겠다 이런 식의 논란이 그것이 사도광산이 됐든 군함도가 됐든 반복되는 모습이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금 주목해 봐야 할 게 뭐냐하면 군함도 사실은 다 요구했는데 안 되고 결론적으로 굉장히 이렇게 군함도에 대한 역사적인 조약을 안 실었잖아요.

◆ 진중권> 일본이 약속을 어긴 거죠.

◆ 심용환> 일본이 약속을 어겼죠. 유네스코에서 약속을 어겼다고 하면서 만장일치로 문제제기하고 지금 그러면 군함도의 세계유네스코유산에 등재가 되냐 안 되냐. 그러니까 다시 탈락 논의가 진행이 되고 있거든요. 이런 것처럼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을 상대할 수 있는 카드가 여러 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약한 나라로서의 한국이 강한 나라로서 일본과 반일싸움을 했다라면 지금은 세계유산이라는 것 자체가 세계 시민으로서 함께 지켜야 될 유산이고 그 안에서 과거사를 반성할 건 반성해도 되고 이렇게 가는 여러 새로운 어떤 보편적 인권, 보편적 새로운 관할권 이런 개념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조금은 다면적으로 접근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루트들이 많이 있다는 거죠. 많이 우리가 감정적으로 힘들지만.

◆ 진중권> 예를 들어 진용문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이 부분을 명기하면서 당신들 등재하는 데 우리가 협력하겠다 적극적으로 이런 식으로 가면서 대립선이 안 그어지잖아요.

◇ 박재홍> 두 분이 상상력을 발휘하면 쉽게 풀 수도 있겠군요.

◆ 심용환> 이건 쉽게 풀 수 없죠. 그동안 해왔던 관성도 있고. 지금은 일본의 강경한 태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어쨌든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부터 먼저 좀 선진국이된 만큼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보자.

◆ 김성회> 저는 결국 미국의 태도일 거라고 봐요. 미국이 지금 중국을 제끼고 뭔가 만들려는 그림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좋아야만 하는데 그게 안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증을 하면서 결국 양국에게 강하게 요구를 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해결의 묘수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데 미국이 너무 일본에게 쏠려 있는 것도 있어요. 한국이 참 어려운 측면이 있죠.

◇ 박재홍>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으면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셨을까요?

◆ 심용환> 제가 무슨 대변인 같은데요. 느낌이 드는데. 그러니까 사실 그 당시에는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뭐냐하면 용서죠, 용서. 지금도 목포에 가면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도 가봤는데 규모가 절반이에요. 그래서 이거 차별하는 거 아니야 해 봤더니 뒷조사를 해보니까 김영삼 대통령 쪽 박물관을 만들 때 한 명이 예산을 들고 튀어서 건물이 작게 지어졌다. 그래서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 많은 분들이 실제로 본 다음 이거 좀 재정집행 잘못된 거 아니냐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김대중대통령박물관에 가면 마지막 패널로 하면 용서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그때 반발이 굉장히 심했어요. 네가 뭔데 우리를 대신해서 전두환을 용서하고 5.18을 용서하고 하냐. 그런데 사실 어찌됐건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가장 많은 원한을 이야기할 사람은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이거든요. 그런데 가장 많은 피해를 봤기 때문에 오히려 과감하게 용서하니까 그 용서 앞에서 사실은 가해자들 입장에서 숙연해질 수 있고 그 용서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정답은 없는 거 같고 김영삼 같은 경우에는 용서할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두들겨팼잖아요. 그래서 두드려 패는 리더십과 용서하는 리더십이 시기적으로 잘 활용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박재홍> 용서 얘기할 때 진 작가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건 상대방이 용서를 인정할 때까지 해야 한다라고 말을 하고. 또 8709님도 진정한 용서는 사과를 먼저 해야지 용서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말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심용환> 거기서는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니죠. 굳이 김대중 대통령 입장을 얘기한다면 용서와 길이라고 봤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다른 거예요. 김영삼 대통령은.

◇ 박재홍> 선용서.

◆ 심용환> 일단 후두려 패는 거죠, 니가 잘못했지? 김영삼 집권 기간 동안에는 전두환 대통령 이런 사람들 한 명도 청와대 초청 못 받았어요. 둘 중에 누가 옳다는 건 아닌데 김대중의 관점으로 본다면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했었을 때 그것이 갖고 있는 권위가 있다라는 거 정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좀 되지 않을까.

◆ 진중권> 처지가 다르잖아요. 김영삼이 용서하면 그건 진짜 욕 먹을 일이고 상대방이 용서를 해야지.

◆ 심용환> 그 부분에서 진짜 지금 우리도 우리의 정치판에서 내가 어떤 포지션을 갖고 그 결과가 국민들을 위한 것이냐 이건 좀 따져볼 필요가 있는 거죠. 응용문제를 잘 풀어야지. 아무데나 적용하는 건 아니다.

◆ 진중권> 두 분 대통령이 적절하게 했어.

◆ 심용환> 만약에 순서가 바뀌었어도 골치아프고.

◇ 박재홍> 부동산 정책 이야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했다 이야기하고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 시절 부동산 정책 또 짚어본다면.

◆ 심용환> 최근 부동산 정책 하니까 저도 입었던 피해가.

◇ 박재홍> 그러세요?

◆ 진중권> 집값 떨어진다고 해서 안 샀나 보다.

◆ 심용환> 그러니까 저희 동네가 너무 많이 올라서. 저희 동네 애엄마들이 난리가 나서 우리의 집 아무튼 그건. 뭐냐 하면 사실 그 부분에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업종이 업적이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노력을 안 한 건 아닌데 예를 들면 김영삼 대통령은 사실 세계화라는 타이틀 속에서 본인이 금융실명제 이후부터 재벌을 이렇게 묶다가 다 풀어주거든요. 그리고 사실은 김영삼은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전두환, 노태우 일당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재벌은 도구죠. 그래서 실제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때 보면 중간에 모든 재벌들이 전두환, 노태우한테 갔다 받친 상납금액이 다 공개돼요. 그 사람들은 다 집행유예 처리가 돼요. 그래서 빼주고 신군부를 이제 박살을 내는 걸로 끝내거든요. 그다음에 김대중 정부로 들어왔을 때 사실상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이었고 거기서 포인트를 뒀던 건 실제로 재벌의 부채비율을 낮춘다든지 아니면 빅딜을 통해서 산업군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하든지 하는 데 집권 2, 3년이 다 가거든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 시기 때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쉬움이 있는데 문제는 그러고 지금 한 20년이 지났는데 공급위주의 해법 혹은 단순 규제 위주의 해법들만 모색된다는 게 좀 아쉬움이 있는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우리 작가님을 거의 보내드려야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이제 혀가 풀렸군요. 이번 대선을 위한 역사적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될 것이냐 그런 고민을 좀 풀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저희도 참 말하면서 민망한 그런 단어이기도 한데 어떤 후보를 뽑아야 될 것이냐 이 시대 필요한 정신은 무엇이고 시대 정신은 무엇인가 이런 부분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서 리더. 어떤 기준이 필요할까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을 때.

◆ 심용환> 마무리 격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가 관심갖는 검찰개혁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상당히 진보된 부분은 있어요, 과거에 비해서는. 왜냐하면 안기부나 이런 사람들이 선거 자체를 좌지우지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김영삼, 김대중 정권기에 확실하게 도달하지 못한 부분은 경제민주화 부분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수많은 개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높은 인권의식과 자유로운 정치의식에 비해서 내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대안. 그건 김대중과 김영삼이 간 길은 아니죠. 거기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면 좋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게 우리나라 대통령제 국가기 때문에 적게는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이 300개고요. 크게는 3000개예요. 그러니까 하다못해 어떤 유명한 국립 예총 대학총장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거죠.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좀 큰일을 해내는 과정들. 그것이 개혁이 됐든 더 큰 선진 경제가 됐든. 그 정도의 막연한 기대를 해 보게 되고요. 앞으로 리더를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많이 좀 공부하고 준비해서 당마다 제대로 된 싱크탱크가 있고 그 소스가 나오고 그래서 정당이 시민들의 요구를 선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빨리 재정비가 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게 저의 솔직한 속내입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예외적으로 학습능력이 뛰어났던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분은 앞으로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에 개인이 똑똑한 사람 나오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뭔가 생각과 아이디어와 담론을 만들어낼 수 그런 구조가 필요하겠네요.

◆ 심용환> 더군다나 지방자치가 일반화됐기 때문에 제왕적 리더십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으니까요.

◆ 진중권> 영웅의 시대는 지난거예요.

◇ 박재홍> 영웅의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거버넌스 (governance) 이러한 이야기를 담론을 만들어내는 그런 구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국은 우리 국민들이 경제민주화. 나의 삶을 나아지게 할 사람이 누구인가 이런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에요, 이번 대선.

◆ 심용환> 그렇습니다.

◇ 박재홍>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시는군요.

◆ 심용환> 약간 차분하게 얘기하면 조심스러운 거고 이게 너무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것 아닌가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 한판클라스 역사 이야기. 굉장히 재미있었고요. 박우재 님이 오늘 귀에 쏙쏙들어왔다. 낭만가롱님,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후기 남겨주셨습니다. 심 작가님의 리더의 상상력 또 책도 함께 참고하시면 더 다양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함께해 주신 심용환 작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용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