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0/29(금) "문헌학자가 답사한 대장동...이 땅에서 어떻게 4천억이?"
20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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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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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작가

◇ 박재홍> 한판클라스. 오늘은 가을도 깊어가고 또 몸은 비록 스튜디오에 저희가 있지만 청취자 여러분들께 상상력을 동원해서 서울의 거리, 대서울의 거리를 함께 걷고자 합니다. 대서울을 걷는 도시문헌학자이자 답사가이십니다. 김시덕 작가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시덕> 안녕하십니까? 김시덕입니다.

◆ 진중권> 안녕하세요.

◇ 박재홍>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과도 인사 나누십시오. 두 분은 혹시 오늘 처음 만나십니까?

◆ 김시덕> 뵙기는 처음 뵙지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 김성회> 저는 뵙기는 처음 뵀습니다.

◆ 진중권> 오늘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 박재홍> 그렇군요.

◆ 김시덕>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진 선생님 팬이어서 굉장히 영광스럽습니다.

◆ 진중권> 감사합니다.

◇ 박재홍> 훈훈한 시작입니다. 제가 도시문헌학자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그러니까 도시를 연구하시는 건데 문헌을 기반으로 어떤 도시의 역사 뭐 이런 걸 연구하신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

◆ 김시덕> 원래 저는 문헌학이라는 연구를 하는 사람인데. 책 자체를 연구하는. 물질적인, 그 종이가 닥나무로 만들었냐, 비단이냐부터 이게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까지. 그걸 문헌학이라고 하는데 그 방법론을 도시에 적용했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진중권> 그러니까 문헌학의 방법론을 도시 탐구에 적용한 거라는 거죠?

◆ 김시덕> 쉽게 말씀드리면 간판 읽으면서 이게 가지는 맥락을 찾아낸다든지.

◇ 박재홍> 간판을 읽으시면서도?

◆ 김시덕> 네네.

◇ 박재홍> 그러면 굉장히 좀 거리를 걸을 때 피곤하시겠네요. 간판 하나하나를 보면 다양하게 생각이 나시니까.

◆ 김시덕> 사실 그렇습니다.

◆ 진중권> 재미있죠.

◆ 김시덕> 보르헤스라는 소설가 유명한 분이 계신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만 써서 노벨상 못 받은 분. 이분이 한 말이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 이라고. 저는 그 문자 그대로 그렇게 받아들여집니다.

◇ 박재홍> 작가님이랑 같이 걸으면 심심할 게 하나도 없겠네요. 간판 하나에도 1시간 설명을 하실 수 있는.

◆ 김시덕> 많이들 재미있어하시더군요.

◆ 진중권> 다 의미가 있고 기호가 있고 상징이 있고 그걸 읽어내는 게.

◆ 김성회> 문헌학 말씀하시니까 원래 예정에 없던 질문인데 갑자기 제가 궁금한 게, 특히 21세기 들어서 우리가 모든 정보를 디지털에다 저장하고 있잖아요. 저만 해도 벌써 카세트테이프, 플로피디스크 5.25인치에다 3.5인치까지 해서 하드에서 이제 넘어왔는데 이게 한 200년만 지나가면 조선왕조실록은 되게 읽기가 쉬운데 그때 컴퓨터에 저장장치가 없으면 21세기 초반의 데이터라는 건 다 사라지지 않을까 항상 이런 걱정을 하거든요.

◆ 김시덕>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사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싸이월드라든지 그 앞에 프리챌 같은 게 이미 많이 날아간 상태죠.

◆ 김성회> 그러니까요.

◆ 김시덕> 정확한 지적이시라서 중기적으로는 제가 아는 어떤 건축가분은 서버 5개를 운영하더라고요. 가장 마지막은 미국 중부지역에까지. 이쪽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서. 그런데 그렇게 해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200년 뒤에 운석이 떨어질 수 있고 그래서 결국은 남는 거는 돌이지 않을까, 돌에 새긴 기록. 그래서 왕들이나 종교적 문서는 돌에 새기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돌이라서.

◇ 박재홍> 벽화죠.

◆ 김시덕> 벽화도 맞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제가 대서울을 걷는 답사가다 이렇게 소개를 해 드렸어요. 이제 대서울하면 또 듣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어서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 주시면.

◆ 김시덕> 그러니까 서울이 위대하다는 뜻의 그레이트(Great)가 아니라 서울시만 가지고 서울을 얘기하면 안 되고 서울 바깥과의 관계까지 봐야 한다는 뜻에서 그레이터(Greater), 확장된 서울이라는 뜻입니다.

◇ 박재홍> 서울을 지역적으로 확장.

◆ 김시덕> 지역적으로 인간적으로. 특히 저는 술을 싫어하지 않는데 사당, 이수 쪽에서 가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사당역에서 남태령 넘어서 경기 남부로 가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쭉 20분씩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은 그럼 서울시민인가, 서울시민이 아닌가. 그런데 이분의 삶까지 포괄해야 서울이라는 걸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의 길에서 쓰는 2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이 돼버린다.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보고 있는 겁니다.

◆ 진중권> 답사를 정말 다니시나요? 이렇게 막 돌아다니고 걸어다니고?

◆ 김시덕> 네네. 예를 들어 어제는 전라북도 전주에 다녀왔는데요. 와보니까 한 2만 5000보 걸었더라고요.

◇ 박재홍> 그러시군요. 끊임없이 걸으시면서 느끼시고 기록하시고.

◆ 진중권> 저 같은 경우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내가 한 번도 안 가본 서울시내 뭐가 보이면 그냥 내리거든요. 내려서 이렇게 한번 걸어가보고.

◇ 박재홍> 그러세요?

◆ 진중권> 네. 그러면 굉장히 뭐랄까, 대개는 옛날 골목들이 남아 있는 데죠. 그런데 굉장히 마음이 옛날 생각도 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것도 사라지겠지 등등등등.

◆ 김시덕> 모험심도 들고.

◆ 김성회> 제가 사는 동네도 재개발이 많이 됐는데 뒷골목골목에 가면. 그래서 아내랑 산책할 때 주로 골목길을 다니거든요. 그러면 무슨 우유배달소, 신문보급소 이런 거 아직 남아 있는 풍경들을 보면서 한쪽에는 10억이 넘는 아파트가 있고 선 하나가 그어지는 것에 따라서 재개발이 안 된 데는 아직도 옛날 동네가 유지되는 거 보면 되게 좀 신기하다, 서울이라는 동네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큰길에서 보는 것과 골목의 풍경이 굉장히 다르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 김시덕> 지금 마지막 말씀이 중요한데 큰길에서 차를 타고 몰면 도시계획상으로도 앞에는 그럴듯한 건물들을 세우게 돼 있어서 가려지는데 한 블록 딱 들어가면 그때부터 펼쳐지는 세계가 있죠. 가려진 세계. 예를 들어 영등포에서 목동을 바라봤을 때는 CBS만 보이지만 그 뒤에는 신월동이라고 하는 거대한 철거민 정착촌이 있는. 그걸 보기 위해서는 걸을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진중권> 대서울 연구를 하시는데 아까 조금 전에 다른 지방도 갔다 오셨고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그건? 아니면 별도의 프로젝트인가요?

◆ 김시덕> 별도의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합니다. 우선은 도시만 바라보긴 하지만 도시 배후에 있는 농촌도 같이 이해해야 된다라는 게 있고 최근에 말죽거리. 말죽거리는 워낙에 유명한 강남 개발의 스타트이지만 한편으로는 옛날 광주군 언주면의 조그마한 읍이었거든요, 읍 소재지.

◇ 박재홍> 경기도 광주의.

◆ 김시덕> 경기도 광주가 원래는 넓을 광, 진짜 이름 그대로 넓은 땅이었는데 서울에 다 뺏기고 지금 협주가 됐습니다. 저 구석에.

◆ 김성회> 그럼 언주중학교도 그 언주면에서 나온 거군요.

◆ 김시덕> 대왕면도 그렇고.

◆ 진중권> 대서울의 개념이 그럼 어디까지입니까? 주로 경기도인가요? 아니면 더 멀 수도 있는 거죠?

◆ 김시덕> 네네. 어디까지 서울에 직장을 둔 또는 그쪽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출퇴근하느냐. 제가 볼 때는 가장 지금 남쪽으로는 오송 정도까지.

◇ 박재홍> 오송?

◆ 김시덕> 오송, 청주의 젊은 친구분들이 집을 얻고 아침에 경부고속도로 버스 타고 출근합니다.

◇ 박재홍> 그러면 그 대서울이 청주까지 갈 수 있는.

◆ 김시덕> 그게 전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연결되는 전 과정이.

◇ 박재홍> KTX?

◆ 김시덕> 그렇죠. KTX와 버스.

◆ 김성회> 그러면 잘하면 대서울이 강원도까지도 뻗어가겠습니다.

◆ 김시덕> 강원도 춘천, 원주는 저는 대서울이라고 봅니다.

◇ 박재홍> ITX. 연결되니까.

◆ 김시덕> 맞습니다. 그래서 원주 분들이 약간 박탈감이 있죠. 춘천은 ITX 해 주는데 우리는? 우리도 해 달라.

◆ 진중권> 그러니까 도시가 참 그렇거든요. 저는 제가 유학을 했잖아요, 베를린에서. 가족이 거기 살고 있어서 방문하는데 내가 유학할 때랑 하나도 안 달라졌거든요. 건물은 그대로이고 가게 몇 개만 바뀌었고 케밥집에 가게 되면 그 젊은이가 벌써 백발이 돼 있어요.

◇ 박재홍> 주인은 그대로고?

◆ 진중권> 주인은 그대로이고 이러는데 우리는 그냥 우리 동네만 해도 눈 뜨면 다 변하고 단독주택들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필로티 구조를 가진 연립들이 쫙쫙쫙쫙 올라가고 이런 거 보면 상실감도 느껴지고 이런 느낌이 들거든요. 너무 빠르죠, 변화가.

◆ 김시덕> 맞습니다. 한국이 워낙에 스타트를 늦게 한 나라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 종종 질문을 받는 게 그럼 언제까지 이게 발전, 개발하고 철거하다가 멈출 것이냐, 일단. 제 생각에는 1기 신도시까지는 재개발하고 끝나지 않을까. 기억하시겠습니다마는 1기 신도시 만들 때 모래가 부족해서 바다 모래 썼잖아요. 이때 부식이 엄청나게 일어났다는 게, 그때 아르바이트한 지인도 있는데 피부가 상하고 막, 알바하다가.

◆ 진중권> 철근 다 녹슬 텐데.

◆ 김시덕> 맞습니다. 얘네까지는 아마 재건축을 한 뒤에 좀 일단 멈추지 않을까, 큰 틀에서.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서울을 많이 답사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도시에 남은 화석을 찾아다니는 과정으로 비유하시기도 했고. 개발 전과 후의 모습이 공존하는 걸 '시층'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거 그림으로 한번 사진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딘가요, 저기가?

◆ 김시덕> (옛날) 풍납토성이고 최근 모습까지. 오른쪽에 (타워가) 솟아났죠. 처음에는 풍납토성을 전체를 복원하자는 입장이었어요, 어릴 때는. 원래 근본주의라서. 그런데 어느 순간에 생각한 게 이것대로가 지금 서울이 아닌가. 어느 정도 파괴되고 이 상태로 멈춘 상태로, 엉켜 있는 상태로. 그래서 보면 백제시대의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이 있고 그 뒤로 조선시대 말부터 현대까지 만들어지는 빌라 같은 게 쭉 있고 그 뒤로 21세기의 상징인 롯데타워가 올라가고 있는. 층층이 있는. 이것 자체를 인정하자. 이건 바람직하고 이건 아니고. 그래서 김포 장릉도 마찬가지지만 이거를 굳이 없애서 조선시대를 복원시키는 게 과연 우리의 도시의 미래인가, 예를 들어서. 그런 식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입니다.

◇ 박재홍> 다음 사진 있나요?

◆ 김시덕> 동대문입니다. 조선시대의 이간수문과 식민지 시대의 경성운동장, 동대문운동장. 21세기의 의류 도매시장들이 층을 이루고 있죠. 조선, 식민지, 현대 한국.

◆ 진중권> 그런데 동대문운동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 김시덕> 사라졌는데 스탠드가 남아 있습니다.

◆ 진중권> 아, 스탠드가 남아 있군요.

◆ 김시덕> 저런 걸 찾아내는 게 화석을 찾아낸다라는 것이죠.

◆ 김성회> 아, 저 조명 스탠드.

◆ 김시덕> 일부러 남겼습니다.

◆ 김성회> 야구장 조명이 하나 남아 있는 거죠?

◆ 김시덕> 2개 정도 남겨놓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진중권> 제가 안타깝더라고요. 참 그게 이제는 도시라는 게 층층층층 시간 층이 쌓이는 건데 그거를 우리는 그냥 다 무시하고 거기에다가 그냥 건물만 지었고 아까. 물론 그것도 발전이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긴 하지만 너무 축적된 시층에 대한 배려 이런 것들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 김시덕> 맞습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택지개발인 거죠. 신도시 개발. 저는 범강남 사람인데, 말하자면 한강 남쪽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산 사람인데. 원래 60년대까지는 강남 하면 영등포였고 지금 강남은 영동이고 대충 천호까지 강남으로 말했습니다마는 이쪽 지금 가보면 다 아파트만 있다라는 인상을 받잖아요. 그런데 원래는 한성백제의 유적이 한가득했거든요. 식민지 때 확인된 것만 왕릉이나 귀족 무덤이 300개쯤 있었다고, 송파구 쪽에. 그래서 오죽 많았으면 적석총, 돌을 쌓아 만드는 무덤들이라 이게 굴러다니면서 흙만 있어야 되는 동네에 돌이 있어서 석촌동이 되는, 돌마을 동네. 이걸 영동 개발할 때 70년대에 다 파괴해버리고 열몇 개 남아 있죠. 그리고는 아파트 지은 다음에 역사가 없는 강남과 역사가 있는 강북이라는 대조를 만들고 있는. 저는 이거는 도굴이자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원래 강남에는 역사가 분명히 있었는데.

◆ 김시덕> 있었는데 없애버리고 조선만 중요하고 백제는 안 중요하고.

◆ 진중권> 석촌동의 석이 그 돌이구나.

◆ 김시덕> 72년 뉴스 보니까 어느 돌장이분이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그래서 그냥 깨고 있고 돈벌이로 생각한다고. 그러면서 열심히 깨고 있더라고요, 왕릉의 거대한 돌들을.

◇ 박재홍> 요즘 김포 장릉 주변에 고층 아파트 짓는 것도 논란인데 그러면 이것도 시층적인 개념으로 보면 인정해야 된다, 이렇게 봅니까?

◆ 김시덕> 안 그래도 들어오기 전에 PD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보셔서 말씀드렸는데 저는 입장이 명확합니다. 저는 이거는 불법과 합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불법과 합법.

◆ 김시덕> 사실은 서민 문화를 찾는 데 관심이 있다 보니까 왕릉이나 왕실의 족보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데 이거를 인허가해 준 관청과 건설업체가 불법적 소지가 있는 걸 알았냐, 없느냐를 추궁할 문제지 이게 인조의 아버지가 추존왕인데 이게 가치가 있고 없고는 저는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대법원까지 가서 문화재법을 손댄다면 그때 따질 문제인 거지 지금 단계에서는 인허가가 날 것인가, 안 날 것인가에 대한 인지 여부가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관계로 딱 한 곳만 라디오 답사를 떠나볼 텐데. 그래서 오늘은 어디로 갑니까? 서울 안입니까, 밖입니까?

◆ 김시덕> 서울의 첫 확장 지역인 성남을 보겠습니다.

◇ 박재홍> 요즘...

◆ 김시덕> 특별하게 의도한 건 없습니다.

◇ 박재홍> 대장동을 의도하신 건 아니죠? 알겠습니다.

◆ 진중권> 정치적 상황하고는 아무 관계 없이...

◆ 김시덕> 아무 관계 없이 성남을...

◇ 박재홍> 갑자기 대장통 토론해야 되는 줄 알고 두 분이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았어요.

◆ 김성회> 저 성남의 성 자가 재 성(城) 자죠? 흙 토 변에 이룰 성.

◆ 김시덕> 네. 남한산성이란 성의 남이란 뜻이죠.

◆ 김성회> 남한산성의 남쪽이군요.

◆ 김시덕> 네네.

◇ 박재홍> 그래요. 서울과 수도권의 경계 성남시에 대해서 한번 산책을 해 보겠습니다. 원래 강남 바로 밑에 위치한 곳이잖아요. 성남이. 그렇죠?

◆ 김시덕> 바로 밑이죠.

◇ 박재홍> 그래서 원래 있던 도심에 해당하는 중원구, 수정구 그리고 2000년대에 형성된 판교신도시가 있는 게 분당구. 포함해서 성남시가 된 거고. 개괄적인 설명 성남시가 어떤 도시인지 그거부터 좀 해 주시죠.

◆ 김시덕> 지금 잘 소개를 해 주신 것처럼 성남은 세 도시로 이루어져 있죠, 말하자면. 그러니까 서울 강북지역의 철거민들이 트럭에 실려서 십몇만 명이 간 지금의 구도심, 광주대단지라 불렸던. 이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광주단지, 성남단지, 성남시. 서울시가 경기도 땅임에도 불구하고 관할할 때는 광주대단지라고 불렀고 나중에 경기도가 인계받은,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로 인계받은 뒤로는 성남단지라 불렀고 그 다음에는 성남시가 되는. 이때 사실 주민들은 서울에 편입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가 독립시키라고. 그래서 분리가 되지만.

그런 구도심이 있고 이것과 전혀 무관하게 분당 신도시가 1기로 만들어지고 그리고 판교가 만들어지고. 그래서 여기부터 남쪽으로 가면 수원과 오산, 화성까지 해서 지금 아산까지 가고 있는 상태이고. 한편으로는 판교가 워낙에 성공한 신도시다 보니까 그 주변 지역을 지금 야금야금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보시면 아실 텐데요. 사실은 거기는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갈 땅이 아닙니다. 분당이 개발된 뒤에 성남시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그전에 있던 자연 부락들, 자연 마을들에 대한 향토지를 낸 적이 있는데 낙생면에 들어갑니다. 보면 낙생면 외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지명이 없어요. 고개 이름, 산 이름만 있지 마을 이름은 한 서너 개? 다른 지역은 풍부한데. 이거 자체가 사람이 안 살았던 산골짜기라는 거고. 그 대장동 바로 아래가 유명한 막국수로 유명한 고기리. 용인 수지.

◇ 박재홍> 거기가 거기군요.

◆ 김시덕> 그쪽 분들은 산길 따라서 수원까지 장 보러 다니고, 하루 걸려서. 평야로 안 내려갔었습니다. 그런 곳까지 개발할 정도로 판교와 분당에 대한 개발 압력, 수요가 높다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 박재홍> 지금 제작진이 사진 하나 띄워주셨는데 저기가 어디입니까? 희망대공원.

◆ 김시덕> 성남 희망대공원이라고 광주대단지랄까? 구도심의 원형 같은 곳입니다.

◆ 진중권> 그런데 그게 왜 광주가 붙었을까요? 경기도 광주라는 건가요?

◆ 김시덕> 그거입니다.

◆ 진중권> 아, 그래서.

◆ 김시덕> 예전에는 서울 가락동이라든지, 강남구까지 광주였기 때문에.

◆ 진중권> 그렇군요.

◆ 김시덕> 그중에서도 가장 개발이 낙후된 쪽이 성남, 분당 이 일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서울시가 이 지역을 찍어서 철거민을 보내겠다고 했고 경기도나 광주군도 여기가 어차피 개발이 안 되는 낙후한 곳이다 보니까 하라고 그래서 시작이 되는 거죠.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 박재홍> 광주대단지가 역사적인 곳이잖아요.

◆ 김시덕> 역사적인 곳이죠.

◇ 박재홍> 사연을 좀 설명을 추가적으로 해 주시면.

◆ 김시덕> 지금 희망대공원 말씀 나왔습니다마는 워낙 이렇게 사람이 안 사는 곳이다 보니까 육군교도소가 남한산성 아래에 있었잖아요.

◆ 진중권> 맞아요. 우리는 남한산성 간다고 그랬었어요.

◆ 김시덕> 그게 바로 저 희망대입니다. 부대 이름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군부대 이름이 희망대다 보니까 지명이 되어버리는. 희망대 지역.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잘 아시다시피, 더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산을 깎아서는 십몇만 명을 쏟아부었죠. 원래 서울시의 계획은 100만 명 정도가 살 수 있는 남서울을 만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어차피 당시는 서울시가 확장하던 시점이라 아마 남서울 정도로 도시가 확장되면 흡수할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해 보니까 너무 어이가 없는 계획이어서 십몇만 명 보냈는데 이미 난리가 났던 거예요. 우물에서는 전염병이 퍼지고 공동화장실 안 만들고 해서. 그래서 1단지를 만들고 2단지까지 만들 계획에 있었습니다. 2단지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은 서울시가 투입하는 게 아니라 1단지 땅을 분양해서 그 분양비로 돌리겠다는 계획. 여기서부터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광주대단지 사건까지 가게 되는 것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저는 특별하게 뭔가 사건을 염두에 둔 건 전혀 아닌데 성남 구도심 개발 상황을 보면 제가 요즘 78년에 나온 성남시지(誌)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 박재홍> 성남시지.

◆ 김시덕> 성남시가 만들어진 직후에 만든 최초의 보고서인데 보면 원주민들한테는 당시 시가의 10분의 1 값으로 후려쳐서 매입을 했고.

◇ 박재홍> 땅을.

◆ 김시덕> 네, 구도심을. 그리고는 분양할 때는 철거민들 또는 일반 입주민. 서울시가 땅을 팔기 위해서 엄청 홍보를 했습니다. 새로운 택지가 나타났다고. 사실은 전혀 다르지만. 그러다 보니까 일반 분양자도 왔고 했는데 분양가가 당시 강북의 최고 지역 값인 거의 천몇백 원 값 수준으로 내놓으라고. 전형적인 이익이 잘 나는 구조인 거죠.

◆ 진중권> 이번 사건의 원형이 이미 그때 만들어졌네요.

◆ 김시덕> 그러니까 전국이 택지 개발할 때 그렇습니다마는 성남은 특히 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 의도를 하고 오지 않았습니다.

◇ 박재홍> 그 얘기 한 다섯 번째 하고 계셔서 청취자 여러분들이 충푼히 이해하고 계실 것 같고. (웃음) 또 한때 인터넷에서 성남 인셉션이라는 풍경이 화제가 됐는데 영화 인셉션의 장면이 연상되는 풍경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 김시덕> 맞습니다.

◆ 진중권> 비슷하네, 진짜.

◆ 김시덕> 언덕을 계속 깎아서 집을 만들다 보니까 몇 군데 포인트에 서면 위아래가 혼동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러다 보니까 겨울 되면 얼어서 차도 못 다니고 워낙 20평씩 쪼개서 만들다 보니까 재건축도 힘들고.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까 서울시가 성남시처럼 외곽에 내보내려는 계획이 대단지 사건으로 중단되죠. 후에는 관악구, 신림, 봉천이라든지 도봉구라든지 또는 양천구, 신월동 같은 곳에 서울시의 끄트머리에 철거민을 보내는 식으로 바꿉니다, 전략을.

그리고 20평은 너무 심했다 그래서 30평을 주겠다고 했는데 양천구, 신월동 사례인데 30평을 주겠다고는 했는데 너무 부담이 되는 거예요, 철거민들한테는. 두 집안이 공동등기랍니다. 그리고는 쪼개요. 그래서 15평씩 쪼개고는 집을 세트로 만들어요. 디귿자나 기역, 니은 붙인 것처럼. 그걸 짝꿍집이라고 부릅니다. 그게 서울에서 마지막 철거민 강제 이주. 어떤 면에서는 성남에서의 사례가 모범이 돼서, 타산지석이 돼서 30평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안타깝죠.

◆ 진중권> 1968년에 광주대단지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흔적이 지금 남아 있나요?

◆ 김시덕> 현재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마는 옛날 경찰서가 지금 성남경찰서가 돼 있고 시청이 있던 곳이 모 쇼핑몰이 됐는데 바로 앞에 최근까지 구시청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쯤 철거됐더라고요. 현재는 흔적이 거의 없는 걸로 봐야 되겠습니다. 다만 길이 흔적이죠.

◇ 박재홍> 당시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요라고 2*** 님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당시 이제 철거민들이 대책을 요구하면서 데모하고 했던 그 사건을 말하는 거죠?

◆ 김시덕> 사실은 이걸 임미리 선생이 경기동부라는 책에서 설명을 잘했는데 전 단계, 후 단계로 나눠서 봐야 됩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던, 임산부가 남편이 2시간 걸려서 천호동 거쳐서 버스로 강북 간 다음에 결국 먹을 게 없다 보니까 나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얘기들은 초기 단계, 초기에 트럭으로 철거민들을 실어 보낸 다음에 대책 없던 시절이고 그다음에는 서울시가 PR을 잘하다 보니까 부동산 업자들이 몰려들어서 어느 정도 분양이 됩니다. 그때 철거민들은 대부분 딱지를 팔고 나갑니다. 그런데 그냥 순수하게 판 게 아니라 성남시지, 78년 나온 책의 증언에 따르면 구청에서 돌렸대요, 구슬을. 돌려서 땅을, 딱지를 받는데 그러고 나면 철거민의 몇 배가 되는 폭력배들이 둘러싸고는 팔라고. 오토바이 부대라고 불렀답니다. 그렇게 해서 강제로 전매권을 사서 몇 번 돌리는. 그러다 보니까 서울시는 이것도 막아야 되겠고 한편으로는 이거 어떻게든지 빨리 매입을 완료시켜야 2단지를 만들 수 있으니까 거기서 사실은 그래서 임미리 선생이 지적한 부분인데 철거민만의 문제인가, 이게 과연. 사실은 다시 들어간 일반인들 그리고 일부 투기업자들이 뒤엉켜서 벌어진 사건이 사실은 광주대단지다라는.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박재홍> 당시 무허가 판자촌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도시 빈민들이 지금의 성남시에서 생존 대책을 요구하시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그런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서 당시 외곽으로 밀려나서 살게 된 그런 도시가 됐어요. 그러면 당시에 또 농촌 경기도 시절 주민들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분들은 다 어디 가신 거예요, 그러면?

◆ 김시덕> 대부분 원주민분들께서 아마 말씀드린 것처럼 서울시가 워낙에 가격을 후려치다 보니까 대체로는 재정착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원래 목동 같은 경우는 공영개발 할 때 어떤 부분들이 재정착하셨어요. 그런데 성남 구도심은 불행하게도 그런 경우는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당, 판교도 마찬가지고. 분당과 판교 쪽 예를 들어보면 그쪽도 결국 땅을 다 팔고 나가시는, 다른 데로. 나가면서 마지막 요구 조건으로 망향비 하나 세워달라고, 비석 하나.

◇ 박재홍> 저건가요? 중앙공원한산이씨문화유적.

◆ 김시덕> 이거는 분당의 핵심이 한산 이씨 땅인데. 이때 개발한, 설계한 분의 말씀 들어보면 워낙 돈이 많은 문중이시라 보상은 필요 없고 분당 한복판에 우리 집성촌을 하나 남겨달라고. 그게 분당중앙공원이자 한산이씨문화유적. 저건 세력이 있는 사람들. 그런데 분당과 판교 사이에 동간마을이라는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 진중권> 여기 동간마을 묘향비가 나왔네요.

◆ 김시덕> 이 비석 하나 남겨두고 신도시를 만든다니까 고향 산천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국가를 위해서 땅을 내놓겠다고 비석을 세워놓고 갔는데 지금 저 공원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에서는 안내판에 표시도 안 해 놨어요. 그림만 설명해 놓고. 모르면 알 수 없는 상태로. 대부분 정착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 진중권> 목동은 참, 내가 철거 반대 데모를 나갔었는데.

◇ 박재홍> 대학생 시절에.

◆ 진중권> 개발하기 전에 철거 반대 데모를 나갔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때 같이 데모했던 놈들이 장가가더니 거기로 들어가더라고요.

◆ 김시덕> 그때 데모하면서 받은 게...

◇ 박재홍> 미리 답사를 하고.

◆ 진중권> 이 배신자들아.

◇ 박재홍> 이번 대선 국면에 성남시가 때아닌 또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논란 때문입니다. 물론 작가님도 대장동 가보셨을 것 같아요.

◆ 김시덕> 네네.

◇ 박재홍> 어떤 곳입니까, 대장동? 저희가 항상 개발 의혹, 개발 의혹만 얘기하고 있는데 좀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런 개발까지 가게 된 곳인지.

◆ 김시덕> 사실 답사 관점에서 봤을 때는 단순한 문제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개발될 땅이 아닙니다. 산골짜기예요, 사실은.

◇ 박재홍> 대장동이?

◆ 김시덕> 그런데 너무 지금 판교가 뜨다 보니까. 판교가 특히 IT타운이 되면서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미국 서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직장에서 멀어지는, 땅값이 올라가서. 그래서 이런 수요가 있기 때문에 억지로 개발된 땅에 가깝다는 게 제 인상이었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억지로 개발된 곳이다.

◆ 김성회> 그럼 무조건 오를 땅이 아니었네요?

◆ 김시덕> 그렇습니다.

◆ 진중권> 원주민들은 그러면 거기서 농사를 짓던 분들인가요? 더러.

◆ 김시덕> 그렇죠, 맞습니다. 대체로 농촌지대였습니다. 지대였고 일부는 손 탔겠지만 하지만 원주민분들이 계셨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일각에서 다들 투기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는 저는 약간 모독적인 상황이라고 보고요. 다만 이런 식의 사례가 성남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국에 몇십 년간 있었던 일인데 지난 몇 년간 부동산값이 너무 올랐잖아요. 너무 성공을 해버린. 그래서 이게 주역에, 저는 주역을 취미로 보는데, 동양학자다 보니까.

◆ 진중권> 화천대유.

◆ 김시덕> 주역의 핵심은 너무 뜨면 결국은 가라앉습니다. 뒤에 궤가 나와요. 너무 떴기 때문에 그늘이 온다라는 식으로. 너무 떴기 때문에 드러나버린, 너무 빛을 받아버려서. 그렇게 제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너무 4000억까지 올라갔군요.

◆ 김시덕> 너무 올라버렸습니다.

◇ 박재홍> 한 400억 올랐으면 괜찮았을 텐데.

◆ 김시덕> 이제까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전국에... 강남 개발할 때도 그렇고. 심지어 영동 개발은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자금 마련용이라는 게 거의 공공연한 사실이라서.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박재홍> 도시 개발 때문에 원래의 땅을 떠나셔야 했던 분들의 사연도 들으신 게 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얘기가 어떤 게 있으실까요?

◆ 김시덕> 고양 일산신도시 만들 때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일산 가보시면 초가집이라는 지역이 하나 있습니다.

◇ 박재홍> 초가집?

◆ 김시덕> 초가집. 생각하시는 초가집이에요. 그런데 고양지역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던 동그란 초가집이 있었습니다. 밤가시 초가라 부르는데 전국에서 거기만 있었어요.

◇ 박재홍> 밤가시 초가.

◆ 김시덕> 밤가시 초가. 지금도 문화유산으로 되어 있는데 가보면.

◇ 박재홍> 모양이 밤가시같이.

◆ 김시덕> 동그래요. 중국 사천에 있는 것 같은 동그란 지붕이 있는. 이게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거 싹 밀어내고 일산신도시를 지었고 어느 한 분의 종부께서 마지막에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그걸 지키다가. 그래서 한 채가 남게 된 거라고. 그래서 가보시면 그냥 초가집 있고 그러시지 마시고 일산도 농촌 고양 시절이 있었다는 거를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진중권> 일산에 우리 아버지 산소가 있었는데 세상에 그걸 다 파내고 거기다 또 아파트를 짓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산 자들의 욕심이 심한 거 아니냐, 이런 생각도 들었고.

◆ 김시덕> 한편으로는 그거를 음덕으로 말하는 분도 있으시더라고요.

◆ 진중권> 그래요?

◆ 김시덕> 좋은 곳에 무덤 쓰셔서 후손들이 덕을 보는.

◇ 박재홍> 보상비 때문에?

◆ 진중권> 그게 보상비가 얼마 안 되는데.

◆ 김시덕> 그래서 그게 협상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보상비가 얼마 안 되는 곳이 있고 사실 성남이 요즘에 나쁜 경우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 진중권> 우리는 보통 공원 묘역이니까 무슨 그게 아니라서.

◇ 박재홍> 갑자기 낭만을 얘기하다가 보상비를 얘기하니까 정신이 확 드는데요. 한판클라스 오늘은 김시덕 작가님, 서울을 답사하시는 분, 전국을 답사하시는 분인데 답사가님과 함께 대서울을 걷고 있습니다. 성남시에서 우리 작가님이 주목한 게 원도심인 북부 그리고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남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셨는데 이 갈등이 곳곳에 드러난다면서요. 사진을 보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 김시덕> 지금의 성남 원도심과 분당 사이에 있는 성남시청이 있고 모란시장이 있죠. 대부분의 도시들이 혁신도시를 만든다고 완전히 중심으로 옮겨버리는 바람에 구도심이 죽어버리는 데 반해서 그나마 성남시청을 구도심과 분당 사이에 만들어서 온건한 대책을 마련했다는 느낌을 줍니다마는 사실은 구도심과 시청 사이는 그린벨트 지역이고, 어떤 의미에서. 모란시장이 있고 시청의 문은 분당을 향해 있어요. 사실은 신도시로 옮긴 게 되는데 그 모란시장이 의미가 좀 깊습니다.

◇ 박재홍> 모란시장.

◆ 김시덕> 모란시장이 어떤 곳이냐면 광주대단지가 만들어지고 나니까 김창숙이라는 예비역 장군이 그 12배에 달하는 땅을 개발하겠다고 그래서 모란직할시를 만들겠다고 계획을 내세웠다가 모란단지 사기사건이라는 것으로 최종 징역 5년을 받고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지금도 보면 모란이라는 지명이 보이죠. 모란역이니 모란시장. 그때의 흔적입니다. 김창숙의 흔적. 그리고 그 모란이라는 이름은 평양 모란대에서 온. 어머니를 두고 왔대요, 평양에. 그래서 그걸 기억해서 모란이에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모란이라는 게 구도심에서 분당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는데 그 모란시장의 모란시장역에 내려가보니까 낙서가 있더라고요, 남자화장실에. 낙서를 읽는 게 문헌학의 핵심이거든요.

◇ 박재홍> 화장실 벽에 있는 낙서도?

◆ 김시덕> 벽에 낙서가 있더라고요. 성남 것들 분당 넘어오지 말아라.

◇ 박재홍> 성남 것들 분당 넘어오지 말아라.

◆ 김시덕> 어디나 지역 갈등이 있지만 성남과 분당은. 성남 구도심과 분당은 그중에서도 극을 달하는 갈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랬는데 판교가 이제 떨어져나가니까 분당 주민이 또 반대하시는 일이 벌어지고.
◇ 박재홍> 핵심은 돈인가요?

◆ 김시덕> 돈이고.

◇ 박재홍> 부동산값.

◆ 김시덕> 이 단어를 쓰는 게 모르겠습니다마는 계급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성남 구도심은 서울 강북의 철거민, 하층이 온 거고 분당은 1기 신도시의 성공 사례로서 강남을 워너비하는 분들이 오신, 중산층 도시이고. 여기서 오는 용납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랬다가 판교가 더 뜨니까 분당 중산층분들이 자기 지위를 뺏길까 봐 두려워하는 게 있어서. 원래는 동서로 갈라서 판교구와 분당구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그러지 말고 남북으로 자르자고. 반씩, 반씩 해서. 어떻게든지 분당을 안 놓치겠다고 하는 그런 게 있어 보입니다. 서울시가 조장한 게 있는 게 성남시 내에서 좀 교통도 많이 돌리고 일체성을 만들어야 되는데 지하철 8호선은 성남 구도심으로 가고 분당선은 분당을 가고 신분당선은 판교로 가고 분할해서 서울로 보내요. 서울 지하철 8호선은 목표부터가 광주대단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서울지하철이지만 대부분 성남을 통과합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는데 이렇게 분할 통치, 디바이드 앤 컨트롤.

◆ 진중권> 그러니까 지금 이 세 지역을 가려면 지하철로는 한참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되잖아요.

◆ 김시덕> 그렇죠, 그렇죠. 그 지역 사이로는 버스로 한참 돌아야 되고.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거죠.

◇ 박재홍> 대장동 얘기를 좀 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제 이재명 지사가 대장동 개발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다, 이렇게 홍보를 하고 계시죠. 업자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는데. 도시개발 역사를 오랫동안 관찰하신 입장에서 봤을 때 부동산적 관점 말고. 그렇게 보셨을 때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 대장동 개발 사업 어떻게 판단하시고 어떤 의미가 있는, 응축된 곳이다라고 판단하시는지.

◆ 김시덕> 개발사로 봤을 때에는 성남의 남은 지역이 있었습니다, 개발되지 않고. 그게 성남 비행장이 있다 보니까 묶여진. 그리고 남부저유소라는 게 있는데요. 이건 약간 안보 문제이긴 합니다마는. 성남의 서북부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드디어 마지막으로 손대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사실 이번에는 대장동만 터졌지만 백현동도 있고 금토동, 고등동, 시흥동 등이 성남 서북부에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대통령이 쓰기 위한 성남공항이 있다 보니까 서쪽 지역의 개발이 전혀 안 됐었어요.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손 대고 있는.

그러니까 이 부분이 잘 개발이 된다면 성남으로서는 어느 정도 주체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번 대장동에서도 드러났듯이 인허가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게 원래 될 수 없는 땅을 풀다 보니까 억지로 되는 거거든요. 꼭 대장동 사실 사례로 재미있는 건 금토동, 고등동 이쪽인데. 약간 무리를 많이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라도 개발을 해야 될 만큼 성남에 살고 싶어 하는 분들의 요구가 크다라는 그런 욕망이 느껴집니다.

◇ 박재홍> 욕망.

◆ 김시덕> 욕망. 강남 4구, 5구, 6구에 살고 싶은 욕망.

◇ 박재홍> 그 욕망이 투영돼서?

◆ 김시덕> 투영돼서 개발을 하면 안 되는 지역 비행기 인접 지역이라든지 바로 골짜기까지도 파고 들어가야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저는 읽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 욕망이 폭발했네요.

◆ 김시덕> 폭발했고 너무 폭발했죠.

◆ 진중권> 그런데 거기가 서울도 인근 지역 여럿이 있는데 거기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건 아무래도 강남과의 근접성 때문.

◆ 김시덕>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확장 강남이라고. 지금 그게 평택 지나서 아산, 천안까지 가 있는 건데 그 스타트를 끊은 게 광주 대단지였던 것이고 그걸 가난한 사람들이 가서 정말 땅 긁어가면서 만들어낸 것을 중산층들이 획득하고 있는. 철거민들도 벽에 밀려나고 또 차지하고 그 과정인 거죠.

◇ 박재홍> 그래요.

◆ 김성회> 사실 언제였지? 1980년대 제가 반포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꽃동네가 있으니까 고속터미널이 사실 서울의 끝이었잖아요. 조금 지나니까 대치까지 개발이 돼서 거기가 서울의 끝이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내곡동까지 뻗쳐나가면서 서울의 경계가 늘어나는 장면들이 저 어렸을 때는 한강에 백사장도 있었고 말죽거리가 실제로 시골동네였는데 그 서울의 확장이 이렇게 되면서 갑자기 정치적인 얘기를 해서 죄송하기는 한데 그 길목길목마다 우리 이명박 대통령이 꽃동네, 대치동, 내곡동으로 본인의 부동산을 옮겨가는 과정을 보니까 이게 서울 확장이랑 그대로 맞닿아 있는데 이게 이제 성남을 지나서 천안까지 지금 가고 있는 건가요, 그럼?

◆ 김시덕> 네.

◆ 진중권> 천안에 땅을 사야 되나요?

◆ 김시덕> 이미 천안, 아산은 늦었고요. 사실은.

◆ 진중권> 늦었습니까?

◆ 김시덕> 평택 서부라든지 화성 서부에 있으면.

◇ 박재홍> 이건 작가님의 개인적 입장이라는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시덕> 개인적 입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말씀을 잘해 주셨는데요. 전형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전초기지로 내보내서 개발시키면 중산층이나 상층이 지배하는. 서초동 꽃동네는 잘 아시다시피 수많은 법조인들이라든지 정치인들이 투기한 곳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이분들이 결국 이상하게 철거민촌은, 꽃동네에는 불이 많이 나더라고요. 열몇 번의 불이 났습니다, 서초동 꽃동네는. 결국은 다 불타버리고 간 건데.

◆ 진중권> 그러니까 그게 이제 이게 사고가 아니라.

◆ 김시덕> 사고라고 말하지만 진상을 아무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데 이분들이 마지막 화재가 난 다음에 도저히 못 견디고 서울경찰청 소속의 어느 땅에 갔어요. 임시로 있다가 흩어졌는데 그 땅이 나중에 타워펠리스가 됩니다. 바로 옆이 이명박 대통령의 땅이 또 있는. 그러니까 참...

◆ 진중권> 슬픈 일이네요.

◆ 김시덕> 반대로 말하면 철거민들 잘 따라가면 투자가 되는. 아마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걸 잘 아시는 것 같아요.

◆ 김성회> 그러니까 이게 사실은 노태우 정부까지 이어지는 이 흐름에서 서울을 확장하는 정책이 있었던 거고 이게 20세기 한국식의 발전이라고 하면 이제는 사실은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해서 이제 큰 광역도시망을 연결하는 구조로 바뀌어가는 흐름 아니겠습니까?

◆ 김시덕> 맞습니다.

◆ 김성회> 그런 데서 저희들이 또 지금하고는 또 다른 형태의 부동산들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거기서.

◆ 김시덕> 맞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메가시티들이 만들어지는데 아마 결국은 3개 또는 2개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서울권이 있고 부울, 포항권이 있는 거고 중간에 청주, 대전, 세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니까 청주까지는 저는 대서울이라고 보고요. 여기서 대전, 청주, 오송 등이 독자적인 메가시티가 될 것이냐, 아니면 서울에 연결될 것이냐가 이제 포인트라고 봅니다.

◇ 박재홍> 작가님과 같이 성남부터 서울까지 여기저기 천안까지 막 왔다 갔다 걷다 보니까.

◆ 진중권> 그런데 이게 사회학에 다 들어 있네요. 그러니까 철거민이 진짜 외진 땅에 가서 쫓겨나서 거기다 집을 지으면 조금 이따가 거기 밀어버리고 불을 낸다라든지 해서 밀어버리고 거기에다가 아파트 뭘 짓고 그러면 그걸 분양하는 놈들은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거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사회의 이른바 상류층들이 거기에 들어와서 살고 이게 계속되고. 그러니까 성남 얘기가 굉장히 가슴 아프거든요. 구성남하고 분당 사이의 화장실에 넘어오지 말라 이게 무슨 어느 나라에도 그런 건 없잖아요.

◆ 김성회> 왜요, 서울 시내에,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제가 전세 살던 아파트에 임대동이 따로 써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이해를 했는데 그 지도 옆에 놀이터에 괄호 열고 임대라고 괄호 닫은 걸 보고 제가 받았던 충격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같은 단지 안에서 놀이터도 주거민용 놀이터가 있고 임대단지용 놀이터가 따로 있다라는 구분을 자기네 아파트 앞에다 지도에다가 그려놨다는 이 만용. 그러니 뭐 성남의 축소판이 벌어지는 거죠.

◆ 김시덕> 그러니까 성남이 유일한 사례가 아닌 거죠. 보편적인 게 가장 압축돼 있는 게 성남인 것 같습니다.

◆ 진중권> 우리가 이렇게 천박해도 되는 건가.

◇ 박재홍> 그러니까 이게 도시, 개발 그리고 작게는 내가 사는 집 이걸 우리가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고 너무 지금 억억 이러고 있으니까 이걸 또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될까. 철학적으로 좀 걸으시면서 우리 작가님도 나름 정립을 하셨을 것 같은데.

◆ 김시덕> 사실 결론은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저는 도시의 확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거고, 억지로 떠밀려서. 그러니까 사당동 투쟁 있지 않았습니까? 80년대 중반에. 사당동은 제2의 광주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했었는데 여기 보면 서울역 앞에 양동지역의 철거민들이 정말 트럭에 실려서 떨어져보니까 산속이더라. 그래서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노들섬에 떨궈놨대요. 여기 있을래, 사당동 갈래 해서. 사당동 가서 그해 겨울에 벽돌 구워서, 흙으로. 살다 보니까 전기 깔아주고 상수도, 하수도 깔아주니까 사당도 투쟁이 나서 밀어내고는 중산층이 살게 되는. 이 과정의 반복으로서의 도시로 저는 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중심을 보는데 중심은 쾌적하잖아요. 이 쾌적한 걸 위해서 특히 서울권에서는 경기도가 희생해 왔다. 특히 최근에 꽃동네 바로 옆에 군부대 하나가 최근에 이전을 했죠. 그러면서 대규모 개발이 되고 있죠, 서초역 근처가. 이 군부대는 어디로 갔는가, 저는 거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디로 갔냐면 안양과 광명 사이의 박달동이라는 데로 갔습니다. 거기에 군부대가 그 앞에도 6개쯤 있었어요. 하나 더 생긴 겁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없으니까 얕보는 거예요. 또는 안양, 군포, 의왕권에도 군부대도 의왕의 끄트머리 수원지역으로 보내려고 하다가 그 지역분들이 우리가 표가 적으니까 얕보는 거냐고. 결사항전을 해서 막아내기도 하고. 이게 도시 역사 그 자체라고 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대서울의 확장, 이것도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부동산 호재가 새로 생긴다라고 상업토로 볼 수도 있겠고 어떤 한 면에서는 또 계급적인 차이가 또 다른 지역으로 전가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 김시덕> 그렇죠. 서울 사람들이 주로 경기도에 전가를 시키죠.

◆ 진중권> 어렸을 때만 해도 300만 서울시민 여러분 이랬는데 지금 그게 1000만이 됐고 경기도도 합치면 2000만이 됐으니. 그 많은 사람들 어디서 온 거예요, 도대체.

◆ 김시덕> 그러니까 그게 온 지방에서 끌어들이고 있고. 요즘에 압축도시 얘기 많이 나오잖아요. 답사를 하다 보면 특히 전라도 쪽이 그런데 분명히 클 만한 도시가 아닌데 인구가 느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은 그 지역분들이 되게 좋아하세요. 우리가 드디어 성장한다. 그런데 그게 제가 볼 때는 마지막 불꽃에 가깝다고 보거든요. 주변 농촌지역 인구를 마지막으로 끌어들이는 거예요. 이분들은 이제 다시 서울이나 부산으로 올 겁니다.

◆ 진중권> 올 거고.

◆ 김시덕> 그런데 지금 늘고 있는 걸 기뻐하면서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혁신도시도 만들고.

◆ 진중권> 그 주변의 농촌은 사멸하는 거죠.

◆ 김시덕> 사멸로 가는 거죠.

◇ 박재홍> 이제 우리 작가님께서는 또 그런 집과 주택과 개발 관점에서 또 대선주자들의 공약도 보실 것 같은데 요즘 보면 뭐랄까요, 너나 할 것 없이 250만 호, 280만 호, 막 몇십만 호 이런 식의 정책을 내세우시잖아요. 그런 걸 보시면 어떤 마음 드세요?

◆ 김시덕> 현재 아직 부동산 정책이 많이 발표가 안 된 상태라서 200만 호, 500만 호 건설은 너무 구호적인 것이고요. 실제로 얼마나 하냐의 문제인데 아직 2기,3기 신도시가 안정된 상태도 아닌 것에서 더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저는 사실 정말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거는 도시 내부거든요. 이 내부를 층고 제한시키고 용적률 제한시키면서 자꾸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 당신이 가시오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내가 강남에 살아봐서 아는데 별로 안 좋더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나도 살게 해 달라고 하는 요구가 있는데 자꾸 밀어내고 있어서. 저는 이거는 자꾸 현실을 눈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도시 개발보다도 내부 지역에 대한 재개발을 좀 많이 풀어줬으면 하는. 보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 지역 하남 같은 데 가보면 느끼는데, 강동구 하남. 서울 쪽, 강동 쪽은 20~30층 야트막합니다. 그런데 미사 쪽은 쭉쭉 올라가 있어요. 그래서 어느 지역 시장님을 만났었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삼십몇 층짜리 아파트가 전임 시장 때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나는 끔찍하다고, 그게. 38층이. 어떻게 홍콩, 싱가포르처럼 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저는 반대로 왜 되면 안 되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올릴 만큼 올리고, 수요가 있으니까. 해서 교통이 나빠지고 하면 그때 이 사람들이 빠져나가겠죠. 저는 자본주의 논리로...

◆ 진중권> 좀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올려놓고 차 막히면 나가겠지.

◆ 김시덕> 그런데 자본주의 논리로 가야지 이걸 너무 강남이 소중해서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 박재홍> 작가님 문헌학자이셔서 뭔가 다 짓지 말고 흙집에서 살자 이런 말씀 하실 줄 알았는데.

◆ 김시덕> 전혀 아닙니다.

◇ 박재홍> 30층을 이렇게 초고층 짓고.

◆ 김시덕> 저는 더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시장 원리를 바탕으로?

◆ 김성회> 그러니까 지금 서울시내 개발도 마찬가지로 큰도로 바로 붙어 있는 곳은 용적률을 높이 해 줘서 빌딩을 짓는데 바로 뒤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게 용적률이 낮아서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신도시를 개발하는 것보다도 거기 용적률을 올려서 소위 말하면 직주근접이 가능하도록 구조를 만들자는 주장에 또 동의를 하시는 거겠네요, 그럼?

◆ 김시덕> 맞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말씀하신 것처럼 임대주택 문제가 있지만 저도 다니다 보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은 외장도 다르게 하고 벽 색깔도 다르게 하거든요, 딱 구분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층을 올리면서 그 대신에 임대주택을 늘리면서 이분들의 머릿수를 늘려서 표를 무시 못 하게 만드는 단계까지 가야 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릴* 님이 작가님 방송을 들으시면서 뭔가 이 주택이나 개발에도 서로 차별이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그러면 정부 정책적으로도 아까 분당과 옛날 성남 이러면서 넘어오지 마라 이런 식의 어떤 계급적 갈등을 좀 줄일 수 있는 개발 방식이랄까 그런 건 없을까요, 대안적으로?

◆ 김시덕>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층고 제한과 용적률을 좀 완화시켜서 그 대신에 도시 내에 임대주택을 많이 만드는 방식. 일단은 생각할 수 있는 단계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2기, 3기 신도시 답사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우선 너무 멀고 특히 계양신도시 예정지를 갔다 왔다가 좀 놀랐던 게 농민들이 악에 받쳐 있어요. 가보면 플래카드들이. 이렇게까지 해서 언제까지 이걸 해야 되는가. 우리가 전시 상황도 아닌데. 언제까지 밀어내고 긁고 시청도 없애버리고. 역사가 5000년 되는 나라라고 하는데 가보면 역사를 못 느낍니다. 강남 개발했던 것처럼. 이건 좀 이제 좀 줄이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어떤 개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또 새로운 생각 포인트를 오늘 전해 주신 것아요. 한판클라스 오늘은 문헌학자이자 답사가인 김시덕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김시덕>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