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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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 열전에 박재홍.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오늘의 게스트. 보자마자 느낌이 좀 이상했습니다. 마치 우리 집의 가족이 어느 순간 손님으로 들어와서 ‘여기 계십니까?’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박재홍> 반가웠다는 얘기죠?
◇ 이상민> 그건 제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 박재홍> 아유, 방송인이 다 됐어요. 자, 오늘의 보석 같은 게스트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이재명이고요. 오늘 한판열전 게스트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한판승부의 터줏대감, 안방마님이었죠. 김중곤 작가와 피터지게 싸웠던 디베이트의 갓입니다. 갓. 신. 민주당에서 이재명 다음으로 유튜브 구독자 수가 많다죠. 이거는 마음에 안 드는데요. 새 직함도 생겼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선대위 대변인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야,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김성회 대변인 어서 오십시오.
◆ 김성회> 네, 안녕하세요. 김성회입니다.
◇ 박재홍> 이야, 한판열전 섭외를 기다리셨죠?
◆ 김성회> 저는 사실 지금 앞에 인트로를 들으면서 잘못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박재홍> 왜요, 왜요, 왜요, 왜?
◆ 김성회> 대한민국 대표하는 정치 막 이런 거 하니까 저는 사실 한판승부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한 자리 유튜브에 끼워주시는 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급이 너무 높아요. 제가 지금 나올 때가 아닌데.
◇ 박재홍> 아니에요, 아니에요.
◆ 김성회> 방금도 김규환 논설위원하고 고영우 논설위원한테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니, 벌써 이런 데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듣고 보니까 저는 그냥 식구라서 불러주신 줄 알았는데 저는 굉장히 부담스럽네요.
◇ 박재홍>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게 충분히 자격이 되시기 때문에 저희는.
◇ 박재홍> 약간 중진의 느낌인데요.
◇ 이상민> 아무도 섭외하지 않아요. 저희가. 밖에서 본 한판 승부는 어떻습니까? 또 한동안 1월 초에 떠나시고 난 다음에?
◆ 김성회> 밖에서 들을 땐 남이 싸우는 거 보니까 재미있죠.
◇ 박재홍> 요즘 많이 힘들었어요.
◆ 김성회> 수요일부터 나오시는데 그 박모 씨가 하는 분, 제가 잘 모르는 분인데 그분이 너무 이렇게 좀 매끄럽게 하셔서 여기 말고도 제 프로그램 자꾸 다른 데서도 막 이렇게 체감 있는 게.
◇ 박재홍> 포차, 포차.
◆ 김성회> 돌아가는 자리에 불을.
◇ 박재홍> 불태워버렸어요. 지금, 예. 그래서 당시, 파리에 반드시.
◆ 김성회> 그분 나오시는 부분 좀 스킵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김성회 대변인 또 하나하나 저희가 또 열전 루틴대로 짚어보겠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미국 자영업자.
◇ 박재홍> 미국 자영업자.
◇ 이상민> 네, 아메리칸 자영업자. 서울에서 태어나셨고 부모님과 친척 모두 실향민이라고 들었습니다. 군인 집안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좀 어땠습니까? 집안의 분위기.
◆ 김성회> 저 어렸을 때 그렇게까지 알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양친께서 전부 다 황해도 연백 쪽이 고향이셨고 고향 친구였던 저희 고모부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고향 동향이셨던 저희 고모부가 육군 준장이셨고 저희 외할아버지가 또 육군 중장이셨거든요. 그 군인 집안끼리 장성 집안. 이렇게 우리 집안에, 우리 딸이 이렇게 해서 일종의 중매로 해서, 만나서 결혼을 하셔서 집안이 좀 군인풍이 좀 있긴 했죠.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또 외할아버지가 또 아주 유명하시네요.
◇ 이상민> 외할아버님께서 전두환 신군부에 저항했던 군수사령관 중장 출신이셨다고 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최근 영화 서울에 봄에.
◆ 김성회> 서울의 봄의 뒷자리에 서 계십니다. 표는 안 나오고.
◇ 이상민> 영화인의 빈자리.
◆ 김성회> 그 순간에 두 번 등장을 하시는, 그러니까 그 영화에서 등장씬은 거기는 안 나오고 우리 장태원 장군께서 자서전을 한 번 옮기셨는데 그 자리에서 이거 싸워야 된다. 저들이 아무리 그러니까 전두환 쪽이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저기에 항복하는 것은 육군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나는 장태완 장군의 싸우자는 의견에 동의한다라고 말씀을 하셨던 기록을 우리 장태현 장군님께서 해 놓으신 걸 제가 본 적이 있고요. 할아버지께서는 저한테 일체 이런 말씀을 해 주시지는 않았었고 저 어렸고, 나이 차이도 워낙 났으니까요. 그리고 전두환 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전에 전군 지휘관 회의를 한번 열었는데 그때 군수 사령관으로 참여하셔서 군인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고 해서 거기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셨던 장군이셨죠. 결국 그 일로 인해서 군에서는 예편을 하셔서.
◇ 박재홍> 4성 장군을 못 가셨구나. 결국에는.
◆ 김성회> 네, 그렇게까지 못 가시고 그다음부터는 손주, 제가 첫 손주거든요. 외할아버지랑 저랑 나이 차이가 47살밖에 안 나요. 어떤 의미에서 막내 아들 비슷한 이런 거라서 실직자이던 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관악산도 같이 넘고.
◇ 박재홍> 그 피를 이제 우리 김성회 대변인이 이어받으신 겁니다.
◇ 이상민> 그렇다면 우리 김성애 대변인의 어린 시절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 박재홍> 이거 언제입니까? 돌 사진?
◆ 김성회> 예, 그렇네요. 돌 사진 예.
◇ 박재홍> 이야, 옆에 떡도 보이고 요즘은 사과, 사과. 사과도 보이고.
◇ 이상민> 아주 귀엽습니다.
◇ 박재홍> 유복한 집안에서 다음 사진. 오. 그러니까 물론 목마에 태워진 분이 우리 김성회 대표님이신 거고 태워주신 분은 아버님?
◆ 김성회> 저희 외할아버지요.
◇ 박재홍> 그래요? 아까 그 역사의 할아버지, 군수사령관 중장님.
◆ 김성회> 저때쯤이면 아마도, 아마도 잘리기 전이셨던 것 같긴 한데.
◇ 박재홍> 옷을 벗기 전에.
◆ 김성회> 그 무렵에,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무렵에 그만두셔서 나중에 어머님 말씀해 주시는데 그걸 보안사라고 그러나요? 거기 직원들이 매일 그 아파트 앞에 와서 이렇게 지켜보고 있고 몇 년을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상민> 동생분들과 찍었던 사진도 있다고 합니다.
◇ 박재홍> 가족 사진.
◇ 이상민> 한번 보겠습니다.
◇ 박재홍> 어디 계신가요? 맨 왼쪽이 큰형님이신 것 같은데.
◆ 김성회> 하얀 옷이 거고요.
◇ 박재홍> 하얀 옷, 1번 강아지 데리고 있는 분.
◆ 김성회> 중간에 둘째고, 막내 이렇게 저희 삼형제 집안입니다.
◇ 이상민> 아, 아들만 셋.
◆ 김성회> 아버님이 2대 독자셨는데 어머님 아들 셋으로.
◇ 박재홍> 어머니가, 어머니가 정말 큰일 하셨네요. 독자 집안에.
◆ 김성회> 어머님 입장에서는 지금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대목이십니다.
◇ 이상민> 사진 속에 어린이 3명 다, 다 어떤 재능이나 취미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반려견과 함께 찍었던.
◇ 박재홍> 우리 큰형님.
◆ 김성회> 진순이라는 진돗개였는데.
◇ 박재홍> 진순이.
◇ 이상민> 진순이.
◆ 김성회> 저희 여름휴가 때 저희 외할아버지댁에 맡겼는데 개를 풀어서 키우는 걸 좋아하는 우리 외삼촌이 개를 풀어놨다가 개를 아마도 도둑 맞은 것으로 저희가.
◇ 박재홍> 아하.
◆ 김성회> 저때만 해도 안 믿으시겠지만 개장수.
◇ 이상민> 개장수요.
◆ 김성회> 잡아가던 시절이었는데.
◇ 박재홍> 그런 시절이었군요. 저희 집에도 치와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아버님이 산책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오셨어요.
◇ 이상민> 잃어버리고.
◇ 박재홍>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네.
◆ 김성회> 마음이 좀 아픕니다.
◇ 박재홍> 그래서 우리 김성회 소장님이 우리 대변인께서 어렸을 때 그 명문초등학교, 민화초등학교.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리고 경기고.
◇ 이상민> 경기고는 그냥 뺑뺑이로 가는 거라서 큰 의미는 없고요. 어떤 팔악군 출신 아니겠습니까? 기분이 어떻습니까? 보통?
◇ 박재홍> 기분이 어떻습니까?
◇ 이상민> 저는 누려보질 못해서.
◆ 김성회> 그냥 전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같이 살다가 간 거라서 특별히 뭐가 없었고요. 그때만 해도 뭐라고 말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데 강남이 지금처럼 막 이렇게 완전히 나뉘어져 있던 때는 아니었고 굉장히 다양한 친구들이 많이 어울려서 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강남 팔악군이 명문대를 많이 간다는 얘기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때 저희가 60명씩 꽉 채워서 17반이었거든요. 한 학년이 1000명이었어요. 3000명이 한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좋은 대학 가는 사람들이 좀 있긴 했겠지만 굉장히 학교생활은 평범하게 했습니다.
◇ 박재홍> 이야, 경기고 간 사연이 있네.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반포고, 반포고는 아버지가 남녀 공학이라 공부 안 된다. 이사가자. 경기고 앞에 3분 거리의 빌라로 이사 갔다. 이야.
◆ 김성회> 원래 살던 데는 고속터미널 옆에 주공3단지라는 데였는데 요즘 말로 반포자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그냥 주공 아파트였거든요. 그랬다가 중2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포구도 참 좋은 학교인데 그런데 하여튼 그때 아버지는 남녀공학을 다니면 안 된다고 해서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 박재홍> 우리 아들 너무 인기 많을 것 같아.
◇ 이상민> 아, 안 된다.
◇ 박재홍> 공부에 집중 못할 것 같아서. 경기고.
◆ 김성회> 여튼 그래서 이사를 그때는 그냥 뺑뺑이로 가던 때니까 가깝다고 가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튼 최대한 가까운 데로 간다고 그래서 경기고등학교 정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빌라로 이사를 가서 말이 빌라지 연립주택에 가서 사는 거죠.
◇ 박재홍> 경기고 결국 가셨어요.
◆ 김성회> 제 동생도 가고 저도 가고 성공을 했습니다.
◇ 박재홍> 이야, 대단하네. 경기고에서도 평범한 학생이 아니셨던 걸로 취재가 나왔어요.
◇ 이상민> ‘전교생 앞에서 교장 선생님에게 촌지 학원 비리를 따져 묻던 학생이었다.’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를 좀 하신 거 아닙니까?
◇ 박재홍> 쉽지 않아.
◆ 김성회> 전교생은 아니었고 저희 반 친구들끼리 이게 어디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는지 이게 여기서 나오지?
◇ 박재홍> 예, 예.
◆ 김성회> 그때 생활관으로 들어가서 2박 3일씩 교육을 할 때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그때가 전교조가 들어설 때였어서 학교에서 뭔가 민주화의 바람이 불던 때였습니다. 88년쯤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래서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라는 코너가 신설이 됐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하면서 학생회 임원들의 부모들이, 학부모들이 얼마씩의 돈을 걸어 촌지로 전달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 박재홍> 선생님들한데?
◆ 김성회> 교장선생님한테.
◇ 박재홍> 교장선생님한테.
◆ 김성회> 그래서 제가 손을 들고 여쭤봤어요.
◇ 이상민> 얼마 받으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물으셨어요?
◆ 김성회> ‘그 돈은 왜 받으시나요?’ 로.
◇ 박재홍> 이야.
◆ 김성회>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 거였는데 굉장히 불쾌하셔서.
◇ 박재홍> 그떄 80년대 후반. 90년대, 예.
◆ 김성회> 반에 끌려와서 저희 담임 선생님이 그때 권투를 좋아하시는 분이었어요. 교탁 앞에서부터 잽을 날려고 애를 한 바퀴를 돌려서 다시 교탁까지 데리고 오는 거를 자주 하시는 분이었는데. 맞을 뻔했는데 안 때리고 넘어갔습니다.
◇ 박재홍>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 김성회> 모르겠습니다. 찔려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찔려서. 그러면서 이제 열심히 경기고에서.
◆ 김성회> 이거 어떻게 알았지, 그런데.
◇ 박재홍> 학업에 집중하시다가.
◇ 이상민> 여기 한판승부입니다. 소장님은 DB가 많아요.
◇ 박재홍> 고려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에 입학하십니다.
◇ 이상민> 과학자가 원래 꿈이셨습니다.
◆ 김성회> 아버님도 고대 물리학과를 나오셔서 물리학자로 살지는 않으셨는데.
◇ 박재홍> 그러셨구나.
◆ 김성회> 뭐 이과 가서 물리학, 과학자 이런 것들이 다 꿈일 때였잖아요.
◇ 박재홍> 그러네.
◆ 김성회> 그런데 이제 제가 고3 때 아버님께서 앞으로는 환경의 시대가 열리는데 지질학과가 이런 환경 분야에서 앞으로 각광을 나타낼 학문이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추천을 해 주셔서 그래서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 박재홍> 했더니 공부해 보시니까 어떠세요? 정말 환경을 향한 학문이었습니까?
◆ 김성회> 실제로 과 이름도 지구환경과학과로 바뀌고 지하수 포함해서 그런 환경에 대해서 지금도 그 분야에서 아주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 동문들이 많이 있는데 저는 아니었죠.
◇ 이상민> 나는 아니다.
◇ 박재홍> 나중에 의원이 되시면 그런 동문들을 통해서 또 환경 이슈를 제기하실 것이다.
◇ 이상민> 대학 때부터 어떤 정치 꿈나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총학.
◇ 이상민> 부총학생회장을 맡으셨고 학생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군대 갔다 온 후에는 새천년민주당 동대문을 선거 캠프에 계시다가 갑자기 미국 유학으로 발길을 돌리셨어요. 이 과정은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겁니까?
◇ 박재홍> 미국 유학.
◆ 김성회> 이게 앞에서부터 짧게 말씀드리면 뭐 그 당시에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됐지만 저도 대학교 1학년 때 제 옆에 있는 명지대학교의 강경대라는 학생이 백주 대낮에 8명의 사법경찰로부터 쇠파이프로 두개골이 함몰될 때까지 맞아서 심장마비로 죽는 그런 아주 비극적인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내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 거기에 저항하느라 뛰어들었고요. 그러다가 학생회 간부로 투표를 통해서 이과대 학생회장 거쳐서 총학생회 부회장까지 하고 그러고 나서 군 복무하고 나와서 총학생회장 선배들 중에서 출마했던 분을 따라가서 선거운동을 같이 하면서 해 보니까 세상을 바꾸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투표를 통해 바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쉽겠더라고요. 왜냐하면 전체 국민의 70%가 투표하는데 그중에 50%의 지지를 받으면 되니까 전체 국민의 한 40% 정도를 설득할 수 있으면 집권을 할 수 있다라는 메리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 박재홍> 킹메이커.
◆ 김성회> 그 선거는 제가 11표 차로 되게 아깝게 치고. 그래서 과학적인 선거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 이제 여론조사 등을 공부하기 위해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이때 이때 만난 분도 있잖아요. 그 민...
◇ 박재홍> 누구요?
◇ 이상민> 죄송합니다.
◆ 김성회> 민영삼.
◇ 이상민> 네, 맞습니다.
◆ 김성회> 민영삼. 지금은 뭐라고 해야 되죠? 민영삼. 예전에 의원님이었는데 저때는 시의원이셨는데. 동대문을에서 민주당 시의원으로 활동하실 때 같이 함께 일을 하면서 그때 선거구를 같이 일궜는데 어느 날 가보니까 굉장히 먼쪽에 계시더라고요.
◇ 이상민> 빨간 옷 입고 계세요.
◆ 김성회> 민영삼 선배님 혹시 저 알아보실지 모르겠는데 그때 김성회였습니다.
◇ 박재홍> 그러시다가 미국을 갔습니다. 청원의 꿈을 갖고 미국 유학길을 떠나는데. 미국에서는 유학생활이 쉽지 않았고 또 자영업자 생활하셨다고 그래요. 당시 사진이 있습니다. 잠깐 볼게요. 여기 요리하고 계시네요.
◆ 김성회> 요리까지는 아니고 철판에서 소고기랑 양파랑 볶아서 빵에다 끼워먹는 필리스테이크 샌드위치라는 거.
◇ 박재홍> 그 계열입니다.
◆ 김성회> 그런 가게를 했죠.
◇ 박재홍> 가게 사장이셨어요?
◆ 김성회> 사장이라기보다는 제가 저희 가족이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어서 사실 유학 겸 가족들 볼 겸 간 건데. 저희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가 간 지 얼마 안 돼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냥 졸지에 가족들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사람이 돼서.
◇ 이상민> 가장이 돼서.
◆ 김성회> 그래서 공부는 잘 하지도 못했지만 빠르게 포기하고 그리고 자영업자로 뭐 닭집도 하고 샌드위치 가게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 봤습니다.
◇ 이상민> PC방도 하셨고.
◆ 김성회> PC방도 했었죠.
◇ 박재홍> 안 해 본 게 없어요.
◆ 김성회> 벨플라워라는 히스페닉들하고 백인들이 반반씩 섞여 사는 조금 소득이 낮은 동네였는데 되게 재미있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구나.
◇ 이상민> 어떤 게 좀 난이도가 가장 좀 있었습니까? 자영업을 해 보시면서.
◆ 김성회> 자영업의 난이도는 다 비슷한데 지금 방금 보셨던 저 샌드위치 가게가 저게.
◇ 박재홍> 제일 힘들어요.
◆ 김성회> 네. 7평짜리 가게인데. 저 당시의 한 달 렌트비가 한 요즘 그러니까 한화로 한 800만 원 정도 했어요.
◇ 박재홍> 식당 렌트비가.
◆ 김성회> 네. 그러니까 그게 20년 전 일이니까 그 당시에 굉장히 비싼 가격이에요.
◇ 이상민> 엄청난데요.
◇ 박재홍> 800만 원.
◆ 김성회> 많이 파는데 정말 저걸 많이 내야 되니까 조금만 삐끗하면 월세 내기 어려워지는 상황.
◇ 박재홍> 그럼 엄청 잘 팔았네요. 그러니까.
◆ 김성회> 한다고 했는데 저 중간에 아버님 돌아가시기도 했는데. 그런데 이제 가게에서는,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이틀 이상은 문 닫아서는 안 된다. 뭐 사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울면서 샌드위치 구웠죠.
◇ 박재홍> 그러면 우리 김성회 소장님, 우리 대변인님은 자영업자 생활을 굉장히 오래 하셨기 때문에 서민들의 그런 걸 잘 이해하시겠네.
◆ 김성회> 뭐 그래서 일한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그냥 그런 월세 못 내고 전기세 못 내서 고통 많이 당해봤죠.
◇ 이상민> 그런데 이제 손님들이 많이 찾아야 되는데 가게로 총알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거 무슨 얘기입니까?
◇ 박재홍> 총알이.
◆ 김성회> 이건 약간 좀 먼 얘기인데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벨플라워에서 PC방을 하고 있는데 여기가 말이 PC방이지 일종의 공동육아 시스템이었는데.
◇ 이상민> 공동육아요?
◆ 김성회> 애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서 집에 가 있는데 미국은 13살 이하의 아동이 혼자 집에 있으면 이거 아동학대.
◇ 박재홍> 형사 처벌 대상이죠.
◆ 김성회> 그래서 엄마들이 PC방에 떨궈요. 1시간에 그 당시에 돈을 1불. 4시간 하면 4불 정도 하잖아요. 큰 돈은 아니거든요. 그 PC방에 와서 엄마가 마칠 때까지 거기서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겁니다. 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애들이랑 오락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어울려서 노는 일종의 동네 오락실이었는데. 옆옆옆 블록에서 이제 동네에 있는 일종의 불량배들이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다가 공중에다 한 발 갈긴 게 이렇게 말 그대로 포물선을 날아 들어와서 유리창을 깨는 바람에. 저 가게는.
◇ 이상민> 상당히 미국적인 얘기네요.
◆ 김성회> 그래서 저 가게는 그냥 그날로 학부모들이 그런 집에 애들을 다시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 이상민> 그렇죠.
◆ 김성회> 동네 자체는 안전한 데였는데 정말 그런 사고가 나서 되게 안타깝게 문을 닫았던 그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 박재홍> 그래도 자영업만 하신 게 아니라 미국에서 시민활동가 생활도 하셨는데. 어떤 활동하셨던 거예요? 시민활동가로서?
◆ 김성회> 그러니까 처음에 가서 이러저러 하다가 노사모, LA 노사모,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 간사를 하면서부터 이제 뭐 그 주변에 있는 분들하고 많이 어울리기 시작을 했고. 그중에 기억나는 활동은 2007년에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공식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미 연방 하원의 결의안이 있었는데 그 결의안을 만들던 당시에 각 의원들을 설득해야 되잖아요. 미국은 넓으니까. 캘리포니아에서 그런 추진단을 하는 간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되게 작고 미미한 역할이었습니다.
◇ 박재홍> 작지 않은데요.
◇ 이상민> 이게 당시 사진입니까?
◆ 김성회> 그런 걸 하면서 저거는 투표 참여.
◇ 이상민>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 김성회> 투표 참여 운동을 하면서 실제로 투표를 해야 정치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니까 투표 참여 운동도 독려했던 뭐 그런 사진 중에 하나입니다.
◇ 박재홍> 이거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김성회 소장님이 미국에서 신학대학에서 목회학을 전공했다. 목사님이 되실 뻔하셨던 겁니까?
◆ 김성회> 이게 학력에다 원래는 적기도 하는데 학교 이름이 샌프란시스코 띠얼러지컬 세미나리. 한국말로 하면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인데 그 대학원에서 마스터 오브 디비니티, 목회학 석사 과정을 했거든요.
◇ 박재홍> MDB.
◆ 김성회> MDB라고 하죠. MDB라고 하는데. 그거를 이제 출마 이력서에 적으면 여기는 뭐지 약간 이렇게 생각 하실 것 같아서 미국 장로교 교단 소속의 14개 신학교가 있는데 그중에 웨스트 디비전, 그러니까 서쪽에 있는 신학교였습니다. 거기를 그때 노상호 때 만났던 목사님의 꼬임에 넘어가서 전도가 되어서.
◇ 이상민> 전도가 되어서.
◆ 김성회> 예수라는 사내의 인생이 되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게 좀 배워보고 싶어서 그래서 가서 공부를 하게 됐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게 하면서 이제.
◆ 김성회> 그래서 CBS에서.
◇ 박재홍> 하나님이 인도하셨어요. 하나님이 인도하셨어요.
◆ 김성회> 아멘 외치면서.
◇ 이상민> 할렐루야.
◇ 박재홍> 할렐루야.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이상민 크리에이터도 신학대학생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민> 너무 좋습니다.
◇ 박재홍> 이렇게 하면서 김성회 소장님이 미국 생활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
◇ 이상민> 관종 보좌관. 관종 보좌관 이게 무엇일까요?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보좌관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신계륜, 정청래, 손혜원 의원실에 계셨습니다. 그때 민주당은 공채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떻게 좀 제안을.
◆ 김성회> 공채는 언제도 없습니다.
◇ 이상민> 언제도 없습니까?
◆ 김성회> 의원실에서 공채로 뽑으면 뽑는 거고 안 뽑으면 안 뽑는 거고 뽑는 권한 자체는 의원에게 있는데 제가 미국에서 재외국민 선거 담당해서 투표 참여 운동도 하고 시민사회 활동 활발하게 하던 중에 제가 1992년에 대학생 시절로 초선의 신계륜 의원 자원봉사로 캠프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그래서부터 인연이 좀 오래 이어져서 제안을 받아서 국회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2012년 대선 패배 직후인 다음 달에 한국에 귀국해서 신계륜 의원시절부터 국회 보좌관 생활 시작했죠.
◇박재홍> 대선 패배 후에 바로 오셨다. 가야겠다. 내가 한국 돌아가서 정치에 참여해야겠다.
◆ 김성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는데 그때 투표 참여 운동한다고 막 되게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캘리포니아 쪽에 LA 총영사관 관할의 한 70만 명 정도의 한인들이 산다고 저희가 통계상으로 나오는데 그중에 유권자 등록 1만 명이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뭔가 되게 아쉽더라고요. 한국에는 유권자가 널려 있는데 거기는 유권자를 찾기 되게 어려운 거잖아요. 그럼 진짜로 한국에 가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라는 욕심이 들어서 신계륜 의원이 또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들어오게 됐습니다.
◇박재홍> 피가 보글보글 끓는 또 열혈 청년이셨기 때문에 바로 한국에 돌아오셨어요. 저희 열전은 보수의 장성철 보좌관이 당시 보좌관 생활도 소개하시면서 한판열전에 출연하셨었는데 본인은 그 보좌관 탑이었다. 당시 보좌관 시절에 우리 김성회 대변인을 본 적이 있냐 했더니 본인과 레벨이 달랐기 때문에 자기는 그때 몰랐다 이런 취지로 말했던 것 같아요.
◇ 이상민> 팩트입니까?
◆ 김성회> 일단 당이 달라서 모르기도 했을 거고요. 그다음에 거기는 어쨌든 당직자부터 단단하게 다져 올라가서 당직자라서 공채를 한 거고 보좌관은 아니었고 그래서 김무성 의원실에서 당 대표의 비서실장인가까지 올라갔잖아요. 그러니까 보좌관으로서는 저보다 훨씬 높은 급이 맞죠.
◇박재홍> 그렇군요. 그다음에 방송계에서는 두 분이 거의 유구선박 투톱으로 제 활약을 하게 됩니다.
◇ 이상민> 보통 보좌관들은 의원을 서포트하는 게 보통 주 업무 아니겠습니까?
◇박재홍> 보이지 않게.
◇ 이상민> 그런데 김성애 보좌관은 SNS에 자기의 정치적 입장도 내고 유튜브나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게 좀 관종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 이상민> 처음으로. 그러니까 저도 SNS는 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신학 때 친구들이랑 이 페이스북을 해서 그때 미국 애들이랑 맺으면서 시작을 했던 건데 그러니까 좋아요 5개 눌리고 이러던 시절에 하다가 정청래 의원실이 있을 때까지는 친구 공개로만 글을 쓰거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잘 적지 않았었는데 정청래 의원이 그때 잘 아시겠지만 굉장히 억울하게 컷오프를 당했었죠.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 때 컷오프를 당해서 제가 그때 도저히 못 참겠어서 우리는 계속 싸우겠다라고 글을 올려서 그때 굉장한 조회수와 공유가 일어나서 제가 잘 쓴 것이 아니라 하여튼 그 당시에 울분에 찬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보좌관 입장에서 비대위원장에게 대한 비판까지 한 거니까 사실은 좀 꼭지가 돌아서 한 거기는 한데 그걸 통해서 정청래 의원이 후원금도 꽉 찼고 싸울 힘을 얻었지만 정청래 의원이 나는 무소속으로 나가서 다른 당을 당선시키는 일은 하지 않겠다. 말 그대로 백의종군 선언하시면서 전국의 덕헌 유세단이라고 컷오프 돼서 떨어진 사람들 모아서 유세단을 운영했었잖아요. 그 일을 할 때부터 제가 SNS에 처음 한 번 글을 썼고 손혜원 의원이랑 일을 그 뒤에 같이 하게 됐는데.
◇박재홍> 탄핵 국면에 라이브 방송도 하셨어요. 제가 기억이 나요.
◆ 김성회> 그렇습니다.
◇박재홍> 페이스북이었나 그 당시에 그래서 라이브에서 탄핵 관련 이슈를 또 방송 두 분이 같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었고 이분 잠깐 만나봐야 될 것 같아요. 김종인 비대위원장님 잠깐 나와 주세요.
◇ 이상민> 오늘날의 정청래는 내가 만들었다고 봐요. 그때 저기 문 대표가 우리 집을 사흘 밤낮을 찾아왔는데 나를 데려가려면 그 삼고출은 기본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내가 뭘 했냐 결국은 친노의 핵심인 이해찬, 정청래를 내가 컷오브 했던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정청래는 오늘의 내가 만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분위기를 들었으니까 우리 개혁신당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가 질문 드리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어떠셨습니까?
◆ 김성회> 이제 여기서 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 볼 때마다 참 만감이 교차하는데.
◇박재홍> 그러니까 자주 보셨네. 그런 사이.
◆ 김성회> 한편으로는 또 욱하는 마음도 있는 사실 있기는 한데 또 어른으로서 저희들이 배울 게 있으니까 말씀 잘 들어왔었는데 그때 비사를 공개하면 첫날 컷오프 발표하는 첫날 두부를 파는 집이 있는데 모 가게에 저랑 아주 정청래와 가까운 핵심 몇 분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다 엎어야 된다부터 시작해서 다 얘기를 하고 있을 때 정청래 의원이 나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는다. 내가 나가서 새누리당이 되는 꼴은 나는 못 본다 하지만 이 발표를 지금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제가 그때 정청래 의원한테 그럼 저희가 그렇게 하실 거면 공포의 외인구단을 하나 만들자. 너무 오래된 만화라서 잘 모르실 텐데.
◇ 이상민> 잘 모릅니다.
◇박재홍> 정말 모르네.
◆ 김성회> 이현세 작가님의.
◇박재홍> 일부러 모른 척하네.
◇ 이상민> 대학교 이름인가요? 죄송합니다.
◆ 김성회> 세상에 쓸데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야구단을 구성했던 것처럼 컷오프 됐던 사람들이 모여서 한번 해보자고 했던 것을 정청래 의원이 받아들여서 손혜원 의원이 컷오프 된 사람들이 더 컸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더 컷 유세단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당시에 좀 센세이션 했죠.
◇박재홍> 네이밍도 되게 잘하고 또 다음 포스터 잘 만들고 그랬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 김성회> 그래서 어떤 날은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전남 영광 가서 이개호 의원 개소식에서 인사하고 그러고 나서 그 차를 타고 또 거제도까지 가서 변광룡 후보한테 인사를 하고 그다음에 또 부산으로 들어가고 일정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정이었어요. 나중에 정청래 의원이 밥을 못 먹어서 그러니까 입안에 막 뭐가 많이 나니까 이 콩나물밥에다가 간장뿌려도 먹고 그렇게 어렵게 했었죠.
◇박재홍> 이번에 우리 김성회 대변인도 총선 후보의 입장이고 정청래 의원도 후보 입장에서 한번 또 이렇게 당 후보자들끼리 만났을 거 아니에요? 그때 만나셨겠네.
◆ 김성회> 예. 뵀죠.
◇박재홍> 예. 뭐라고 말씀하세요?
◆ 김성회> 아니 뭐 되게 격려 많이 해 주시고 뿌듯해하시고 그렇죠.
◇ 이상민> 손혜원 의원도 지금 소나무당에서 지금 출마한 입장 아니겠습니까?
◇박재홍> 질문하지 마라. 질문하지 말라는 의미야.
◆ 김성회> 손혜원 의원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민주당 후보로서 손혜원 의원하고 같이 못 가는 입장이고요. 손혜원 의원은 손혜원 의원의 정치적 판단이 있는 거니까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박재홍> 역시 정치인이 다 되셨네.
◇ 이상민> 중견 정치인이 다 돼셨어요.
◇박재홍> 아주 정치인이 다 되셨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 만나고 있는데요. 이렇게 또 숨 가쁘게 세 번째 순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이상민> 김성회의 고양 소리입니다.
◇박재홍> 고양 소리. 옳은 소리 김성희 소장님 옳은 소리. 지금 유튜브 구독자가 지금 몇 명이에요?
◆ 김성회> 24만 명 좀 넘습니다. 이재명 대표 다음에 정청래 의원 다음에 저입니다.
◇박재홍> 넘버 3. 현역 의원 원외 중에 1등이네.
◆ 김성회> 아니 원 외 중에서 제가 1등인지는 제가 정확히 모르겠고 원내에 있는 사람 중에 저보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인 건 알고 있습니다.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노하우가 있습니까? 유튜브 채널을 성장하려면 이것만 기억해라.
◆ 김성회> 성실하게 해야 된다.
◇ 이상민> 성실하게.
◆ 김성회> 일주일에 한 번이든 세 번이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포맷으로 똑같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걸 유튜브가 좋아해요. 유튜브라는 곳이 성실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얘는 펑크를 내지 않는 애구나라는 인식을 주면 그 내용을 자꾸 다른 사람들한테 권유를 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좀 채널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서 저는 정말 웬만한 일 없으면 매일 아침 9시에 어기지 않고 방송을 하려고 하고 있고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무슨 예를 들면 술을 먹어서 펑크를 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박재홍> 그러니까 이게 목사님이 새벽 기도 챙기듯이 챙기시는 거예요. 예를 들면.
◇ 이상민> 그럼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그래도 옳은 소리를 진행하십니까?
◆ 김성회> 5시에 일어나서 신문 보고요. 6시에 나와서 아침 인사.
◇박재홍> 5시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세요?
◆ 김성회> 옳은소리 하려면 신문을 안 보면.
◇박재홍> 5시에. 목사님이 설교 준비하듯이. 목사님은 5시에 성경을 보시지만. 우리 김성회 소장님은 신문을. 조선일보 사설을 보라고 얘기합니다.
◆ 김성회> 예, 뭐 그런 건 거죠.
◇박재홍> 한겨레. 한국일보, 중앙일보 찍고.
◆ 김성회> 스크랩하고 그다음에 스크랩 해놓고 아침 인사 나가서 원당역, 화정역 이런 데 가서 아침 인사드리고 8시에 사무실 들어와서 내용 정리해서 9시부터 한 30~40분 정도 방송하고 그러면 또 지역에 지역민들 만나러 나가고 있습니다.
◇박재홍> 이게 이제 어떤 국회의원 후보자가 되는 게 물론 당선이 꿈이시겠지만 후보자로서 며칠 후에 정말로 손수로 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떠세요? 마음이 지금?
◆ 김성회> 저희 이 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이런 겁니다. 벽보 좀 붙여봤으면 좋겠다.
◇박재홍> 벽에 기호.
◆ 김성회>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잖아요. 제가 이번에 정말 느끼는 게 이게 지금 유튜브니까 조금 편하게 하면 부질없음을 느껴요. 그러니까 제가 자의로 뭔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그것이 제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인 것이고 하여튼 주변의 환경, 추풍낙엽처럼 수많은 후보들이 아주 훌륭한 후보들이 막 명멸 사라지지 않습니까? 눈 뜨고 나니까 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고 간절하고 그래서 저희들 업계에서 하는 말인 벽보 붙여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저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고 내일 모레까지 잘 있으면 오늘 이 방송에서 큰 문제만 안 생기는 내일 모레 벽보를 붙이게 되는 거죠.
◇ 박재홍> 음주운전 같은 거 절대 하지 마시고. 입에 대지 마시고.
◆ 김성회> 예, 그럼요. 음주운전 당연히 아예.
◇ 박재홍> 생각도 안 하고. 없습니다. 김한규 의원은 정치가 실력으로 되냐 운이야 운이 많이 작용하죠. 했더니 이분이 하는 얘기가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구기일이다.
◆ 김성회> 정치하는 데 노력 안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노력하는데 노력하는 더 한다고 할 것 없이 다 하는데 그중에 선택받는 건 유권자들이 하시기도 하지만 그냥 어떤 그 바람과 기운과 하늘이 막 다 겹쳐서 그냥 되는 것 같아요.
◇ 박재홍>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 김성회> 그러니까 이게 정말 다른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든 생각인데 겸손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내가 뭘 잘해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 박재홍> 새롭게 하셔서 나오셔야겠네요.
◇ 이상민> 그러니까요. 간증 특집으로.
◇ 박재홍> 예, 간증. 주님이 하셨습니다.
◆ 김성회> 신학대학 처음 다닐 때 그런 기분으로.
◇ 박재홍> 겸손한 마음으로.
◇ 이상민> 그런데 사실 지역구에 처음 도전하실 때 현역 의원이 사실은 굉장히 유명한 현역 의원이 심상정 의원 아니겠습니까? 좀 부담도 좀 있으셨을 거예요.
◇ 박재홍> 심상정 의원.
◆ 김성회> 이제 부담이 굉장했죠. 부담이 굉장했는데 그래서 부담이 굉장하니까 이 지역구에는 도전자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사실 한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심상정 의원이 지난 20년 동안 이끌어오신 대한민국 진보 개혁 정치에 좋은 그런 모델들이 역량을 저는 확인했고요. 다만 앞으로 20년 동안의 진보 교육 정치가 어때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심상정 의원님과 감히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을 가지고 한번 겨뤄보는 것이 정치인으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상민> 진보의 미래를 놓고.
◇ 박재홍> 요즘 고양갑 여론조사 추이를 한번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네, 여론조사는.
◇ 박재홍> 괜찮아요. 제가 한번 소개해 드릴까요? 경인일보가 KSOI 주식회사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23일에서 24일까지 고양갑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ARS 100% 무선전화번호로 했는데 우리 김성회 후보가.
◇ 이상민> 48.3%.
◇ 박재홍> 국민의힘 한창석 후보가.
◇ 이상민> 29.4%.
◇ 박재홍> 심상정 녹색정의당 후보가.
◇ 이상민> 12.4%.
◇ 박재홍> 무소속 김성남 후보가.
◇ 이상민> 2%. 2%입니다.
◇ 박재홍> 여론조사 나오면 약간 가슴이.
◇ 이상민> 날아갈 듯하죠.
◆ 김성회> 이게 최근에 나왔어요. 한동안 여론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고 그리고 심상정 의원께서 지난 선거 때도 초반에 낮은 지지율이 계속 올라갔거든요. 계속 올라가서 특히 아주 밀착형으로 네트워크도 잘하시고.
◇ 박재홍> 지역이 또 그게 많으니까.
◆ 김성회> 제가 관산동 이런 데 가면 벽제농협 이런 데 가면 앞에가 지나가는 통장님 손을 딱 잡고 아유 어머니 파마하셨네 이렇게 하시거든요. 심상정 의원. 제가 거기는 못 이기죠. 그래서.
◇ 박재홍> 10년 이상 같이 얼굴 보신 분들.
◆ 김성회> 그럼요. 숫자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단 생각이 들고 그나마 그 아직도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시는 분들 중에 심상정 의원을 찍겠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시작할 때에 비해서 민주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너 네가 되겠어 이런 의심의 눈초리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사실 김성회 후보가 전 지난 총선에서 슬로건이 소통의 속도가 정치를 바꿉니다. 이거였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좀 슬로건을 준비하셨습니까?
◇ 박재홍> 세대 교체.
◇ 이상민> 세대 교체.
◆ 김성회> 그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해서요. 세대 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지금 시대가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 제가 또 X세대이기도 하고 72년생인데 지금 덕양구 고양시 인구 구성이 X세대가 주력 부대이거든요. 가장 숫자가 많고 그래서 그 지역에서 저와 같은 X 세대와 함께 소통하고 정치를 풀어갈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준비를 해봤습니다.
◇ 박재홍> 고양병에는 김종혁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로 나와 있어요. 우리 한판 승부가 이 고양시 선거에.
◇ 이상민> 고양시 방송인 줄 알겠어요.
◇ 박재홍> 총선이 15일 남았는데 민주당 후보 등록 마감이 지나서 또 공천이 취소되는 그런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다이내믹한 민주당도 그렇고 국민의힘도 그렇고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당 공천 과정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김성회> 갈등이 컸던 만큼 혁신이 됐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이게 사람 바꾸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공천 과정을 쭉 지켜봤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제가 그 사람들의 예선 성적을 대강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본선에서 무난하게 현역 의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제가 진중권 작가 바로 건너편 저 자리에 앉아서.
◇ 박재홍> 이 자리, 이 자리.
◆ 김성회> 현역 의원을 신인이 들어가서 동네 재끼는 게 말처럼 되는 줄 아냐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고 계속 말씀을 드렸는데 실제로 이 공천이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경향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건 뭐냐 하면 그러니까 무슨 이걸 비명 반명 논쟁으로 자꾸 가져가는데 제가 보기에는 민주당의 지지층과 당원들이 지난번에 180석의 의석에 너희들은 무기력했다.
◇ 박재홍> 뭘 했냐.
◆ 김성회> 뭘 해도 그냥 현역 의원 심판이었던 거예요. 현역 의원의 대부분이 사실 친문 친이 뭐라고 불러도 다 다 그 그룹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라. 그리고 3선 이상이 되면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의정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친문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이거든요. 이분들은 친문이라서 나가 떨어진 게 아니라 당신 문재인이랑 친했어 잘러 이런 게 아니라 지난번처럼 그러니까 지금 21대 국회처럼 하려 하지 말라라는 국민의 명령이 반영된 공천이 아니었나.
◇ 박재홍> 그런데 방송 언론에서 많이 프레임 한 것은 친명 횡제, 비명행사였습니다.
◆ 김성회> 그렇게 말하면 지금 등장하는 신인들은요 누구나 현 대표인 이재명 대표를 업고 가려고 하게 돼 있습니다. 그건 지난 20대 선거 때 19대 선거 때 친문으로 다 등에 업고 나왔지 출마한 사람 중에 친문 아닌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선 치를 때 이재명 대표의 측근이라고 해봐야 7인에 겨우 모아서 7명이었어요. 하지만 대선 국면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국회의원들 중에 초선 도전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당 대표 리더십을 따라가는 게 맞고 그러니까 이재명 대표가 뽑은 사람들 막 뽑아서 이 사람들 어디다 쭈르륵 배치해서 쭈르륵 당선시켰으면 모르겠는데 그 초선들이 이재명 대표와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아니면 혁신하기 위해서는 이재명 대표와 함께해야 된다라고 말했다라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 친명으로 삼는다. 그건 제가 보기에는 좀 과다합니다.
◇ 박재홍> 우리 김성회 소장님이 의원 혹시 당선이 만약 되신다면 저 자리에 앉아서 또 인터뷰하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런 갑자기 상상이.
◇ 이상민> 방송적 상상입니다.
◇ 박재홍> 네, 방송 상상.
◆ 김성회> 벽보 붙일 때까지 조심해야 되는데.
◇ 박재홍> 더 물어보고 싶은데.
◇ 이상민>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부터 선거 지원 유세를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좀 어떻게.
◆ 김성회> 당연하죠. 갈등을 크게 하고 싸우는 건 정당에서 되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보는 게 중요한데 싸우고 나서 같이 힘을 합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들이 정말 화학적으로 다 결합해서 한 팀이느냐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정당 정치라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2027년에 대선에서 다시 재집권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무리입니다. 그리고 이 무리 안에서는 대의를 대의엔 동의해도 그 자세한 방법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세력들이 각축하는 가운데 내가 더 맞는 민주당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대선 경선 과정을 치르게 되어 있는 것이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싸웠고 힘을 모았으니까 그걸로 저는 족하다.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이상민> 네, 고양 지금 지역구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구 좀 어떻게 좀 보고 계세요? 판세가 좀 괜찮은 것 같습니까?
◆ 김성회> 전반적으로 느끼는 분위기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글쎄요? 이건 평론가 입장으로 돌아가기 전인데 최근에 이종섭 대사 임명이 아주 결정적이었다고 보고요. 그러니까 거기에 사람들이 부하가 치민 거예요. ‘사과 값은 3000원인데 이종섭을 내보냈는데 왜 저렇게 많이 뭘 하나?’, ‘저게 저렇게 무리할 일인가?’, ‘그러니까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총선 기간에 하면 구설수에 오를 걸 뻔히 알면서도 해야 되는 절박함에 대해서 국민들이 모르겠냐?’ 알죠. ‘그럼 저 대통령은 국민들 눈치를 보지 않는구나.’ 저는 여기에 화가 났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거기에 분노한 민심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대한 대응 조치도 아직도 저는 미흡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선거를 이겨야 되겠다는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 거죠. 옛날의 국민의힘은 하다못해 멍석을 깔고 절이라도 했습니다. 정말 절박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의 국민의힘, 특히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그런 절박함, ‘여당이 과반을 잡지 못하면 정부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라는 절박함이 대통령께 있는가? 이걸 국민들이 이미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상민> 보좌관 생활을 하시면서 지금까지 역대 총선을 많이 보셨을 거 아닙니까? 다른 총선과 달리 역대 총선과 지금 총선 뭐가 좀 다르다고 보십니까?
◆ 김성회> 대통령이 눈치가 너무 없다.
◇ 박재홍> 눈치가 없다?
◆ 김성회> 다른 때는 대통령 예를 들면 대표적인 게 이명박 대통령이 본인 마지막으로 치렀던 2012년 총선 생각해 보면. 자기가 인기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럼 뒤로 한 발 물러섭니다. 미래 권력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다 내주고 한발 물러서서 총선을 지휘하게 합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죠. ‘그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뭔가 막 들어가서 박근혜를 막 잡고 흔들었느냐?’ 그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랬던 관계, 그러니까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긴장관계는 만들었어도 어떻게 해서든 선거를 이기려고 노력을 했는데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한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 박재홍> 그래도 지금 보면 한동훈 비대위원장만 보이고, 대통령은 언론이 사라졌고, 더군다나 김건희 여사도.
◆ 김성회> 23차례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계신 대통령이.
◇ 박재홍> 그분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주어인 기사는 많이 통용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뭘 했다. 뭘 했다.’
◆ 김성회> 지난 2주 동안 윤석렬 대통령의 이종섭 장관 문제, 대파 875원 문제, 이렇게 굵직굵직한 것을 중간에 한 방, 한 방 크게 날려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 박재홍> 다른 게 다 잘 보이고 있다.
◆ 김성회> 대통령이 굉장히 눈에 띄고 거기에 분노를 그러니까 민심이 부글부글 하고 있었는데 민주당의 공천이 잘못됐으니까 그럼 그냥 할까? 하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왜 그러세요?’ ‘그냥 가세요.’ 라고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보일 정도로 대통령이 민심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정부와 의사 선생님 간의 중재자 역할이, ‘제대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김성회> 그렇게 하려고 그랬으면 벌써부터 한 달 전부터 국민의힘의 입장이라는 게 있었어야죠.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입장이라는 게 있었어야죠. ‘대통령님 이렇게 급한 속도로 추진하시면 안 됩니다.’ ‘의사들에게는 무조건 파업하지 말고 대화를 해봅시다.’ 이런 얘기를 하다가 신뢰를 쌓은 가운데에서 지금 자리가 만들어졌다면 모르겠는데 지금 한동훈 비대위위원장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대통령이 양보하는 안을 전달하는 역할밖에 없는 거예요. ‘내가 갖고 있는 중재안으로 양쪽을 설득하겠습니다.’ 라고 해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자격이 있는 거지 협상 아닙니다.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온 봉투를 뜯어서 의협에게 전달하는 일 이상 할 수 있을까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갖고 있는 이번 의대 정원 사태에 대한 본인의 솔루션, 해답이 뭡니까? 없잖아요. 그러니까 의사들 입장에서도 어차피 전달자일 뿐인데 ‘그럴 것 같으면 직접 가서 대통령이랑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라고 할 것이고 국민들도 그걸 뻔히 아니까 봉투를 설마 설령 뜯어서 둘이 모종의 합의가 되거나 이 사태가 좀 누그러진다고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 내용 때문에 중재가 된 것이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한 역할이라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없고요.
◇ 박재홍> 사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실에 대화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죠. 그러면서 갑자기 대통령실에 또 그 입장을 받아주는 모양새를 취하자마자 사람들이 ‘이거 약속 대련이구나.’ ‘이럴 줄 알았다.’ 라고 했는데 2000명은 변함이 없다. 또 대통령실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고 각 지역 의대별로 200명은 계속 고정단체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진짜 안 변하네.’ 이런 느낌도 있어서.
◆ 김성회>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한동훈이라는 정치인과 국민의힘이 갖고 있는 입장이라는 게 존재를 해야 여당 정부와 의협 간에 조정을 하죠. 여기 입장이 없잖아요. ‘다만 대화를 하세요.’ 라고 말하는 건 그럴 것 같으면 직접 가서 얘기하면 되는데 그 중간을 거칩니까?
◇ 박재홍> ‘대화를 하세요.’ 가 아니라 ‘당신의 안은 무엇이냐?’ 이 질문을 하고 싶으신 거군요. 한동훈, 한동훈 비대위원장.
◆ 김성회> 그게 지난 기간 동안 쌓여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신뢰가 거기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그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이거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김성회> 대구, 경북 지역에서 살려달라는 읍소를 하는 건데요. 글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지지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정말 어떤 날카로움, 추상 같은 정의, 공정과 상식에 기반해서 활동을 했다.’ ‘즉 정부가 시키는 방식으로 검사로서 어떤 피의자를 때려잡은 게 아니라 검사로서 마땅히 해야 될 정의를 구현했다.’ 는 이미지를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그냥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이것은 해야 될 수사이기 때문에 했다.’ 라는 서사를 지금까지 쌓아왔는데 그 해당 인물과 만나서 ‘선거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모양새가 돼버린 거잖아요. 국민들이 보기에는 ‘아, 한동훈도 가서 숙이나?’ 대통령은 좀 다릅니다. 대통령은 어쨌든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니까 ‘모두에게 문을 열어놓는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지금 그럴 수 있나요? 그리고 대구, 경북 지역에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저 표가 생길 문제인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이런 가운데 조국혁신당의 기세가 굉장히 좋다. 그래서 거의 지금 비례대표 10석 플러스 알파를 지금 바라보고 있는 상황인데 대변인께서도 지난 총선에서 열린 민주당에서 활동도 하셨었고 열린민주당도 사실 당시에 기세가 굉장히 좋았었습니다. 15% 이상 지지율이 나온 적도 있었기 때문에 이 지지율은 어떻게 갈 거라고 보십니까? 선거 끝까지 간다?
◆ 김성회> 그때는 지금 시점쯤 되면서부터는 벌써 소위 말하는 유튜브를 포함하여서 정치 평론계의 대형 스피커들이 열린 민주당을 굉장히 강하게 때리면서.
◇ 박재홍> 아, 그랬나요?
◆ 김성회> 더불어시민당 쪽으로 그림을 몰아가기 시작을 했죠. 그러면서 급격하게 위축이 됐었고 그걸 그 당시의 말로는 소위 몰빵론이라고 해서 ‘한쪽으로 몰아줘야 된다.’ 라고.
◇ 박재홍> 지금도 빵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
◆ 김성회>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하나 있고 제가 그냥 객관적으로 놓고 평가를 하자면 지금 현재 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연합 같은 경우에는 차기 집권을 했을 경우에 꼭 필요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가들, 해당 분야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을 총망라해 놓은 그런 비례의 모습이고요.
◇ 박재홍> 더불어민주연합은.
◆ 김성회> 그래서 굉장히 안정적이죠. 원래, 원래 정당의 비례를 드릴 분들에게 드려서 우리가 과학기술 분야는 이렇게 또 의료분야, 농업 분야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구성했습니다라고 패키지를 보여드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형태가 전통적인 형태였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좀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국혁신당은 1번 타자, 2번 타자, 3번 타자, 4번 타자, 5번 타자, 다 공격수만 있거든요. 수비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우리는 1회 초에 경기를 끝내겠다.’ 는.
◇ 이상민> 쇄빙선.
◆ 김성회> 네, 그러니까 다 공격수들만 있어요. 그런데 이게 어떤 분들에게 열렬한 지지층들에게는 공격을 잘할 것 같아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데 그런데 이제 실제로 국회에 들어가서의 공격이라는 것은 말로만 되지는 않거든요. 해당 상임위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날카롭게 파고 들어가서 뭔가 문제를 찾아내고 이슈화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해야 하는데 여기서 좀 실력이 갈리겠죠.
◇ 박재홍> 실력은 더불어민주연합이 더 낫다.
◆ 김성회> 그분들은 그렇게 단련되고 훈련된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그래서 조국혁신당을 폄하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좀.
◇ 박재홍> 좀 차이가 있다.
◆ 김성회> 다른 측면이 있다.
◇ 박재홍> 차이가 있다.
◇ 이상민> 다르다.
◇ 박재홍> 그리고 이제 보면 이번 총선에서 또 가장 중요한 이슈가 선거 때마다 보면 영입 인재를 통해서 청년을 많이 내세우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도 청년을 내세워서 청년 팔이한다. 이런 비판이 있었는데. 이번 총선은 여든 야든.
◇ 이상민> 안 팔아요.
◇ 박재홍> 청년을 막 앞세우거나 이렇게 이번 선거에 얼굴로 전면 내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 이슈가 사라지고 청년 투표율이 그래서 줄어들 것이다 이런 우려도 있어요. 우리 대변인께서는 그래도 청년들의 맏형격이시니까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런 흐름.
◆ 김성회> 류호정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가 될 텐데요. 결국은 출마했던 지역에서 포기까지 하는 과정을 쭉 보면서 정의당은 왜 2020년에 저 사람을 1번으로 세워서 선거를 치렀던가. 여기에 대한 평가가 지금 녹색정의당에게 내려지고 있다라고 보여지거든요.
◇ 박재홍> 그렇군요.
◆ 김성회> 그러니까 청년 정치라는 것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연령적으로 그냥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 정치여서는 안 되고 그리고 여전히 극복 못하고 있는 문제이긴 한데. 뭔가 좀 수련과 단련과 검증의 기간이라는 게 필요합니다.
◇ 박재홍> 청년도.
◆ 김성회> 그러니까 외국에 무슨 30대에 총리를 한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우리가 보면서 박수를 치지만 그 사람들은 17살 때부터 시작해서 정당 생활을 20년씩 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30대 중반에 시작해서 50대 갈 만큼의.
◇ 박재홍> 내공.
◆ 김성회> 정치적 경륜을 쌓고 지방의회부터 시작해서 쭉쭉 순서를 밟아 올라와서 30대 초중반에 장관까지 거친 사람들이 총리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냥 어느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 중에 뭔가 스토리가 되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정체성 정치. 이 사람이라는 캐릭터로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는 정치를 자꾸. 왜냐하면 선거운동 기간이 짧으니까. 짠. 이 사람은 짠. 이런 사람이에요. 이렇게 한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홀어머니 밑에서 막 해서 막 사법시험을 통과한 젊은이. 이런 서사들을 어느 당이나 할 것 없이 내세우다가 거기에 대한 평가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 중에서 그러면 제대로 된 의정생활을 해서 초선, 재선, 3선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있느냐. 안타깝게도 잘 없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이게 정책이라고 보는데. 지금 모든 정당에게 꼭 필요한 것은 청년 정치인을 발탁하는 게 아니라 청년 정치인을 키우는 겁니다. 18살 때부터 10년을 키워서. 우리가 10년 키운 인재다라고 그러고 한번 의회에 등장을 시켜보는 정치. 그래도 28살이잖아요. 그런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지. 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에 스토리 있는 사람들로 쌓는 정치는 좀 지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박재홍> 우정희 님이 그렇군요. 정치도 영재 교육이 필요하군요.
◆ 김성회> 그렇습니다.
◇ 이상민> 양성해야 된다.
◆ 김성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저 실제로 다니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절 알아보고 굉장히 극소수인데. 명함 달라고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런 경우들이 있는데.
◇ 박재홍> 그런 아이들을 잡아서. 당에 끌고 가서.
◆ 김성회> 어쨌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애한테 왜 그런 걸 막 하냐 하는데.
◇ 박재홍> 애한테 그런 걸. 19금도 아니고.
◆ 김성회> 19금도 아니고요. 뭐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는 15살 때 이미 아이들이 노동자로 커가니까.
◇ 박재홍> 그러니까.
◆ 김성회> 임금 교섭을 수업시간에 가르치거든요.
◇ 박재홍> 맞아요.
◆ 김성회> 우리도 실제 정치를 가르치고. 특히 정당의 그런 인재들을 육성하는 풀을 만들고 키워야 합니다. 20년째 하는 얘기인데 안 되고 있어서. 저도 일단 꼭 해 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입니다. 맏형까지는 아니고 삼촌쯤 되는데.
◇ 박재홍> 오랜만에 모시니까 이게 할 얘기가 무궁무진한데. 바쁘신 분을.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 거의 온 것 같아요. 이제 오시는 게스트들에게 꼭 드리는 요청이 있습니다.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을 드리는데. 또 이게 25만, 24만 유튜버에게 또 저기 저쪽 화면에 보시면서.
◇ 이상민> 구독과 좋아요.
◇ 박재홍> 애청자 여러분.
◇ 이상민> 옳은 소리다 생각하시고 좀. 애정을 다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박재홍> 애정을 다해서.
◆ 김성회> 구독자 여러분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 이상민> 정수리 인사.
◇ 박재홍> 이게 뭐 약간은 그 후보자는 느낌으로. 이게 90도로 잘 됐네요. 좋습니다. 우리 한판열전 공식 질문으로 마무리하면 될 텐데.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 김성회> A4 용지인데 선거 때 이런 얘기하면 안 되는데. 떨어지는 종이 같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상민> 떨어지는 종이요?
◆ 김성회> 우리가 이렇게 종이를 이렇게 떨어뜨리면 종이가 어디로 떨어질지는 어떠한 물리적 계산으로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날아가다가 저쪽에 떨어지기도 하고 앞에 떨어지기도 하지 이 빈 종이 한 장이 어떤 정해진 자리에 떨어지는 법은 없거든요. 살아보니까 뭔가 계획대로 됐던 것은 하나도 없고 그냥 그때그때 여러분들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냥 꾸역꾸역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게 아닌가 싶어서요. CBS니까 또 다시 편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 박재홍> 신앙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 김성회> 그 순간순간 보여주신 길들을 가게 되었고 제가 전혀 예측 못했던 제가 2018년에 CBS 한판승부의 진행자로 들어와서 박재홍 앵커 같은 기라성 같은 분하고 같이.
◇ 박재홍> 기라성은 무슨.
◆ 김성회> 김동건 작가님하고 방송을 하게 될지도 전혀 몰랐고 또 그런 와중에 이렇게 또 출마를 하게 돼서 한판열전이라는 유명 정치인들이 나오시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 이상민> 유명하시잖아요.
◆ 김성회> 1시간 동안 또 제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나올지도 몰랐고 경선도 정말 어렵게 어렵게 통과했는데 모든 과정 돌이켜보면 부족한 사람, 이제 종이 한 장밖에 안 되는 사람을 주변 분들이 다 도와주셔서 온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상민> 소장님을 좀 뵙지 않았습니까? 여러 차례 뵙는데.
◇ 박재홍> 여러 차례 뵙죠.
◇ 이상민> 오늘 가장 눈빛이 슬퍼 보이세요.
◇ 박재홍> 왜 슬퍼보여요? 왜 왜 왜?
◇ 이상민> 뭔가 진짜 진심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뭔가 느낌이 느껴집니다.
◇ 박재홍> 그 얘기를 노래방에서 마이웨이를 불러야 될 것은.
◇ 이상민> 진중권 교수 쳐다보실 때는 매섭게 보시다가 오늘 본인 얘기하실 때는 굉장히 조금.
◆ 김성회> 진중권 작가 폭로하기 전에 제가 먼저 해야겠는데 오늘도 나가면서 저한테 협박했습니다.
◇ 이상민> 무슨 협박했습니까?
◆ 김성회> 당신을 수렁에 몰아넣을 수 있는 나에게 무기가 있다. 내가 당신에게 후원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라고 하셨는데. 뭐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다른 입장에서 격렬하게 다퉜지만 또 인간적으로 이렇게 후원도 해 주시고.
◇ 이상민> 밝혀도 됩니까? 이런 건?
◇ 박재홍> 후원한 건 뭐
◆ 김성회> 후원한 거야 뭐. 아니, 다 공개 정보이기 때문에.
◇ 이상민> 공개 정보.
◆ 김성회> 가릴 수 없는 내용이라서요. 그리고 진중권 작가가 실제로 언제 써먹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 이상민> 먼저 패를 까시는군요.
◇ 박재홍> 뭐 같이 방송도 했고. 아무튼 오늘 김성회 대변인 오랜만에 뵙는데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떠셨어요?
◇ 이상민> 빨리 좀 선거가 끝나서 결과가 어찌 됐든 당선되더라도 초선한판에 나오시고 뭐 그렇지 않더라도 무조건 다시 나오셨으면 좋겠다.
◆ 김성회> 박 모 씨 때문에 안 될 것 같은데.
◇ 박재홍> 모 방송.
◇ 이상민> 반갑습니다.
◇ 박재홍> 좋았습니다. 아무튼 우리 김성회 소장님. 이제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또 선거 레이스 건강하게 또 잘 선전하시기를 바라보겠습니다.
◆ 김성회> 감사합니다.
◇ 박재홍> 한판열전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고요. 또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역시 또 보석 같은 게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대되시죠?
◇ 이상민> 네. 기대됩니다.
◇ 박재홍> 그분과의 인터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상민>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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