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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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도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보통 이런 얘기 많이 하죠. 나 영세업자다. 죄송합니다.
◇ 박재홍> 초반부터 약간 무리했어요.
◇ 이상민> 소상공인을 위한 위트였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의 보석 같은 게스트는요. 우리 대통령께서 먼저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롱롱 타임 어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한판열전에 제가 존경하는 형님이 나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랑 같은 서울대 법대 검사 출신으로 4선 중진입니다.
◇ 박재홍> 네.
◇ 이상민> 취미는 드론 날리기라고 들었는데 드론을 왜 날리는 거야? 그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도 지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국민의힘 권블리, 권영세 의원님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권영세> 네, 안녕하세요. 권영세입니다. 어쩜 그렇게 똑같이 하세요?
◇ 이상민> 대통령께서 이렇게 말을 합니까?
◆ 권영세> 연구를 따로 하신 것 같아요.
◇ 박재홍> 예, 예, 또 심혈을 기울여서?
◇ 이상민> 의원님 오시고.
◇ 박재홍> 장관님 오신다고 해서 제가 열심히 준비를 해봤습니다. 요즘 선거 때문에 굉장히 바쁘시죠?
◆ 권영세> 예,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 바쁜 시간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한판열전에 나와주셨는데 우리 의원님의 인생 이야기를 한번 자세히 더 따뜻하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권영세 전 장관님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 이상민> 멋쟁이 신사입니다.
◇ 박재홍> 멋쟁이 신사.
◇ 이상민> 멋쟁이 신사. 서울 용산에서 출생을 하셨습니다.
◆ 권영세> 예, 예, 그렇습니다.
◇ 이상민> 초등학생 때부터 독서광이다. 이런 평가를 받으셨다고요?
◆ 권영세> 예, 책 읽는 거를 옛날에도 좀 좋아했던 것 같고 이렇게 좀 자기 칭찬하려고 그러면 저는 좀 오글거리는데.
◇ 박재홍> 그런 적 있습니다.
◆ 권영세> 일종의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사실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당연히 책을 못 읽습니다마는 어떤 면에서 책 읽는 게 조금 힐링 같은 면도 되게 복잡한 거에서 벗어나 가지고 그 책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면 좀 약간 정신적으로 쉴 수가 있으니까.
◇ 박재홍> 그 세계에 들어가니까?
◆ 권영세> 예, 그렇죠.
◇ 박재홍> 주로 어떤 책 읽으세요? 의원님?
◆ 권영세> 제일 좋아하는 거는 역사책입니다.
◇ 이상민> 역사책.
◇ 박재홍> 지성인이여서 저희가 기대한 건 추리소설 이렇게.
◆ 권영세> 추리소설도 옛날에 저기 많이 읽었고요. 저기 미국 추리소설.
◇ 박재홍> 아가사 크리스티, 뭐 이런 거, 고전들.
◇ 이상민> 만화책도 혹시 읽으셨습니까? 만화책?
◆ 권영세> 제가 만화책을 많이 못 봤습니다.
◇ 박재홍> 지성인이세요. 왜 그러세요? 진짜?
◇ 이상민> 역시 장관은 달라.
◇ 박재홍> 장관은 달라요, 장관은 달라요.
◆ 권영세> 그래서가 아니라 옛날에 만화책들, 만화방도 있었고 옛날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만화 보는 거를 조금 약간 못하게 하는 게 있어서.
◇ 박재홍> 약간 탈선의 장소인 듯한 그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 권영세> 그래서 저는 비교적 모범생이었던.
◇ 박재홍> 비교적 모범생.
◆ 권영세> 가끔씩 일탈도 있지만.
◇ 박재홍> 비교적 모범생 너무 겸손하게.
◇ 이상민> 의원님의 과거 사진, 지금 바로 보겠습니다.
◇ 박재홍> 가족 사진 올려주세요. 이야, 우리 권영세 의원님 가족 사진인데.
◆ 권영세> 이게 제가 돌 때쯤 됐을 때 같네요.
◇ 박재홍> 어, 그러면.
◇ 이상민> 어디 계신가요?
◇ 박재홍> 가운데.
◆ 권영세> 저 밑에 가운데.
◇ 박재홍> 가운데 있는 아이. 아유, 그렇습니까? 어머님 아버님 계시고.
◆ 권영세> 지금 돌아가셨고 맨 왼쪽이 우리 큰누님, 큰누님도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 박재홍> 아이고, 그러시구나.
◆ 권영세> 예, 예, 그리고 오른쪽이 형, 그다음에 왼쪽이 우리 둘째 누나 이렇습니다.
◇ 박재홍> 아하, 원래 4남매셨구나.
◆ 권영세> 하나가 아직 나오기 전입니다.
◇ 이상민> 아, 5남매이세요, 그러면? 이야.
◆ 권영세> 옛날에는 그 저기 3남 2녀 이렇게들 많이 낳지 않습니까?
◇ 이상민> 보통, 대게.
◆ 권영세> 그렇죠. 그렇죠. 그러다가 2남 1녀, 그러다가 1남 1녀 그러다가 요즘에 아예 안 낳아서 걱정이죠.
◇ 박재홍> 그러니까요. 그때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런 캠페인은 없었어야 됐어요.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그래야 되나 이렇게 싶었는데.
◇ 이상민> 산아제한.
◇ 박재홍> 돌아보면 그거.
◆ 권영세> 옛날에는 왜 예비군 훈련 가면 이렇게 정관 수술을.
◇ 박재홍> 맞아요. 기억나요. 기억나요.
◆ 권영세> 이런 얘기 있었잖습니까?
◇ 박재홍> 맞아요. 맞아요.
◆ 권영세> 그러니까 산아제한 때문에 그랬죠.
◇ 박재홍> 맞아요.
◆ 권영세> 그런데, 그런데 요즘에 세상이 바뀌어져가지고 옛날에 인구 폭발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그랬는데.
◇ 이상민> 애니메이션도 있지 않았습니까?
◆ 권영세> 예, 예, 예,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인구가 없어서 지구가 멸망한다고 그러니까 이게 참 아이러니네요. 진짜. 그리고 흐름을 읽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박재홍> 그게 리더 역할이고.
◆ 권영세> 정치 리더의 역할인 것 같아요.
◇ 이상민> 우리 다음 사진 한번 볼까요?
◇ 박재홍> 사진 하나 더 있어요. 아, 이 사진.
◇ 이상민> 예.
◇ 박재홍> 우리 의원님이.
◆ 권영세> 예, 이거는.
◇ 박재홍> 가운데에 계신 것 같은데.
◆ 권영세> 이거는 언제 사진이죠?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거 맞나?
◇ 박재홍> 예, 의원실 제공입니다. 어떤 건물인지 모르겠는데 어릴 적 사진이고. 예.
◆ 권영세> 롱다리는 롱다리네요.
◇ 박재홍> 롱다리.
◇ 이상민> 다리가 굉장히 깁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저희가 또 많은 게스트 의원님들 뵙고 하지만 진짜 우리 의원님이 키도 크시고 좀 다리가 긴 편이신 것 같아요.
◆ 권영세> 이것도 오늘 이게 좀 자랑 비슷한 얘기, 저는 굉장히 작은 사람인 줄 알아요.
◇ 이상민> 아, 신장이?
◇ 박재홍> 그러니까 예.
◆ 권영세> 그래서 그러니까 실제로 이렇게 요즘도 지역 같은 경우 제가 두 번째니까 처음 뵙는 분도 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 박재홍> 용산 지역, 그래서.
◆ 권영세> 용산에서 생각보다 키가 크시네요. 이렇게 해요.
◇ 박재홍> 맞아요. 저도 의원님 처음 뵀을 때 키가 되게 크셨네요. 이렇게 말씀을 드렸었는데 키가 커서 장점이 많으셨죠? 그래도 키가 커서 그래도 인기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 권영세> 뭐 큰 거가 좋죠. 작은 것보다는 좋죠. 키 큰 사람은 사실 키 큰 거에 대해서 그렇게 장점을 잘 모르는데 키 작은 분들은 좀 불편해하시는 거가 많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 이상민> 롱다리의 역사, 다음 사진으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박재홍> 롱다리의 역사. 이거.
◇ 이상민> 아, 바로 길게 나옵니다.
◇ 박재홍> 고등학교 때 사진인가요? 저게?
◆ 권영세> 이거는 저기 그때는 교련복, 옛날에는, 옛날에는 왜 군사훈련을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했잖습니까? 여기는 겉멋이 좀 들었을 때죠.
◇ 이상민> 어디 산입니까? 저기가?
◆ 권영세> 어디 저기 소풍 갔을 때 같은데 예, 예. 멀지는 않았겠죠. 그 당시에 멀리는 안 가니까 수학여행이 아니라 소풍이니까.
◇ 박재홍> 다음 사진, 다음 사진이. 이것도 아마 고등학교 때 사진인 것 같은데.
◆ 권영세> 이거는 좀 모범생처럼 보였네요.
◇ 이상민> 모범생처럼.
◇ 박재홍> 전교 1등.
◆ 권영세> 예, 예. 이게 지금 고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 박재홍> 지금 그 댓글로 라치오 님이 우리 배재고 선배님이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 권영세> 네, 맞습니다.
◇ 이상민> 오.
◇ 박재홍> 배재고.
◇ 이상민> 배재고등학교.
◇ 박재홍> 배재고 후배님이 또 방송을 열심히 보고 있네요.
◆ 권영세> 예, 배재가 인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92회 졸업생이니까.
◇ 박재홍> 92회. 이야, 역사가 오래됐네요.
◆ 권영세> 그렇죠. 지금 한 백몇십 회 졸업생들이 있겠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학교입니다.
◇ 이상민> 배재학당.
◆ 권영세> 예, 배재학당. ‘연세대학하고 배재하고 1885년에 둘 다 세웠다.’고 그러는데 ‘내 어디든 연세는 사실 86년인데 좀 약간 1년 사기 쳐서 당긴 거야.’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 이상민> 화내면 어떡합니까? 거기서?
◆ 권영세> 그런 주장도 있다.
◇ 이상민> 그런 주장도 있다.
◇ 박재홍> 서울대 출신이시기 때문에 연세대에 대해서 굉장히 매몰차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포츠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특히 축구 좋아하신다고요? 의원님?
◆ 권영세> 뭐 공으로 하는 거는 다 좋아합니다.
◇ 박재홍> 그래요, 그러세요?
◆ 권영세> 공부하는 것 중에서도 탁구 정도, 이상하게 탁구는 잘 안 돼고.
◇ 이상민> 아, 그래요?
◇ 박재홍> 여기 안 되고.
◇ 이상민> 농구도 잘하십니까?
◆ 권영세> 농구도 좀 하고요.
◇ 이상민> 오.
◆ 권영세> 그리고 야구는 별로 할 기회가 이렇게, 야구는 공간하고 이런 것들이 따로 필요하니까 하지 못하고 제일 대중적이고 만만한 게 축구 아닙니까? 그렇죠? 공만 하나 있으면 어디든지 책가방 놓고.
◇ 박재홍> 글로벌하죠.
◆ 권영세> 예, 예.
◇ 박재홍> 글로벌 스탠다드.
◆ 권영세> 아프리카에서도 공 하나 놓고 이렇게.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권영세> 아프리카에 좀 어려운 나라에서도 애들이 쫓아다니면서 축구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 박재홍> 꿈을 향해서.
◆ 권영세> 그렇죠. 그러니까 비교적 우리들한테 쉽게 할 수 있는 거니까 축구를 좋아하죠.
◇ 박재홍> 의원님이 국회의원 축구단에서 주전 골키퍼로 가시겠네요.
◆ 권영세> 그래서 제가 다른 운동을 하다가 이 무릎, 왼쪽 무릎, 십자인대를 한 70% 끊어 먹었어요. 그리고 측방, 그 당시에 측방인대, 후방인대도 좀 뜯어져서 그래서 한 1년 가까이 기브스를 했고 그 당시에 우리가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주변 근육을 보강해서 그냥 쓰라고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이 축구를 격한 거는 못하니까 그중에서 골키퍼는 그래도 좀 낫지 않습니까?
◇ 이상민> 아니, 얼마나 격하게 하시는 거예요?
◇ 박재홍> 평상시에는 굉장히 젠틀한 신사신데 운동 플레이어가 되면 굉장히 또 거칠게 하시나 봅니다.
◆ 권영세> 그래서 축구는 골키퍼를 주로 했죠. 골키퍼를 했죠.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잠시 또 우리 의원님에 대한 홍준표 시장의 말씀을 들어볼게요.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홍준표입니다. 저 과하면 또 홍준표죠. 내가 축구 걱정하느라 요즘 머리가 아파요. 이강인이 때문에. 권 장관, 권 장관은 어느 축구 선수 가장 선호합니까?
◇ 박재홍> 좋아하는 축구 선수 질문, 네.
◆ 권영세> 왜 정치하는 분이 축구 선수를 붙들고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잘 모르겠네요.
◇ 이상민> 홍준표 시장이.
◇ 박재홍> 저희도 궁금해요. 왜 이렇게.
◆ 권영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왜 그러십니까?
◇ 이상민> ‘축구 안 보련다.’ 이러시고.
◆ 권영세> 그냥 대구시만 걱정하시지.
◇ 박재홍> 대구 FC도 관여하시고 옛날 경남FC 구단들도 하셨기 때문에 아마 축구에 관심 많으시는 것 같아요.
◆ 권영세> 뭐 역시 손흥민 선수죠.
◇ 이상민> 손흥민.
◇ 박재홍> 손흥민.
◆ 권영세> 지금 왜 저기 일반 채널에서 축구 스포츠 채널에서.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세> 왜 토트넘 특집 같은 거 하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 권영세> 그거 자꾸 봐서 우리 집사람이 좀 불평이 많습니다.
◇ 박재홍> 아, 그만 좀 봐라. 손흥민 스페셜 골만 모아놓은 장면.
◇ 이상민> 우와.
◆ 권영세> 100등부터 하는 거.
◇ 박재홍> 맞아요 저랑 똑같이 보시네.
◆ 권영세> 그다음에 손흥민이 MOM.
◇ 박재홍> 매치업.
◆ 권영세> 뽑힌 그런 것들, 이런 것들을 하는 걸 보면 참 잘하더라고요.
◇ 박재홍> 의원님도 소일은 저랑 비슷하게 하시네. 저도 정치 잊으려고 그런 스포스 많이 보는데.
◇ 이상민> 의원님 사모님도 대단한 분으로 들었습니다.
◇ 박재홍> 사모님이?
◇ 이상민> 하프를 연주하시는.
◆ 권영세> 하피스트입니다.
◇ 이상민> 예, 하피스트 네.
◆ 권영세> 그래서 전문, 그러니까 하프를 그냥 전공했다가 아니라 지금도 애들 가르치고 그다음에 원래 연주도 하고 연주는 요즘 나이가 있어서 잘 못하는데 작년, 재작년이구나. 재작년에 연주도 하고 그렇습니다.
◇ 이상민> 되게 크기가 크지 않습니까?
◆ 권영세> 그렇죠. 그렇죠. 제 키만하죠.
◇ 박재홍> 그리고 참 이게 하프가 비싸가지고. 하프만 사기만 해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이런 루머가 있는데.
◆ 권영세> 그런 아주 말이 안 되는 얘기들이.
◇ 박재홍> 죄송합니다. 가짜 뉴스네요. 이거 가짜 뉴스입니다, 여러분. 그런 질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이상민> 공부를 해야 대학을 가죠.
◆ 권영세> 아주 명백한. 그런데 사실은 하프는 그게 이게 소모성 기계 장치들이 많아서 이게 이게 닳아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프로페셔널들이 이 바이올린이나 현악기들은 몇 억짜리를 쓰는데 하프는 제일 비싸봐야 1억 정도 되니까 다 그 미만이죠. 그런데 우리가 재산 신고를 하면 저희 집사람이 하피스트이기 때문에 하프 몇 대 쓰던 것들 하면 맨날 재산 신고할 때마다 그 특이한.
◇ 박재홍> 하프, 하프. 자동차보다 더 비싼 하프.
◆ 권영세> 자동차보다 안 비싼데.
◇ 박재홍> 안 비싼데.
◇ 이상민> 고급스럽겠어요.
◆ 권영세> 그게 매번매번 나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우리 의원님께서 검색, 권영새를 검색하면 항상 나오는 게 패션.
◇ 박재홍> 패션입니다.
◇ 이상민> 패셔니스타.
◇ 박재홍> 정치부 기자들한테 질문하면 또 여기자들이 의원님 하면 옷을 잘 입으신다. 그 얘기를 항상 많이 해요.
◇ 이상민> 실제로 한국맞춤양복패션문화협회, 이곳에서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상을 수상하셨어요.
◇ 박재홍> 지금 사진 의원님 또 옷을 잘 입으세요, 보면. 코디를 우리 의원님이.
◆ 권영세> 그냥 뭐 편하게 제가 입고 나옵니다. 편하게 저는. 일종의 공식 비슷하게 제가 즐겨 입는 것을 늘 입고 좀 약간 딱 맞춰서 입고 헐렁헐렁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요.
◇ 박재홍> 헐렁헐렁한 거 안 좋아하고.
◆ 권영세> 그래서 딱 맞춰입는 거를 좀 좋아해요.
◇ 박재홍> 저렇게 입으셔야지 편하시구나.
◆ 권영세> 그런데 뭐 패셔니스타들이 지금 많지 않습니까? 지금 한동훈 위원장도 그렇고 의원 중에 장제원 의원인가요? 거기도 굉장히 패셔니스타고. 뭐 저기 옷 잘 입는 의원 저 말고 많습니다.
◇ 이상민> 이 사진을 보니까 김은혜 전 수석도 반한 모양입니다.
◇ 박재홍> 옆에서. 뒤에서.
◆ 권영세> 근데 저 사진이 반한 게 아니라 저 때가 언제냐 하면 2022년 1월 3일인가. 그때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물러나고 제가 원탑으로 총괄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김은혜 의원이 대변인이라서. 당시 선대본부에.
◇ 이상민> 그렇군요.
◆ 권영세> 그래서 거기 기자들하고 백브리핑 하던 자리입니다.
◇ 이상민> 패션에 감동한 게 아니라.
◇ 박재홍>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옷 잘 입는 정치인이 되셨는데. 사실은 서울법대 나오셨어요. 법학과를 가야겠다. 결심은 대개 의원님 학창 시절은 되게 공부 잘하시는 분은 다 의대, 법대를 가긴 했는데. 의원님은 어떻게?
◆ 권영세> 저도 사실은 저는 공대 쪽, 제가 기계 만지는 것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 박재홍> 아까 드론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 이상민> 얼리어답터라고 들었습니다.
◆ 권영세> 저기 그러니까 IT 기계도 좋아하지만 드론도 좋아하고 그전에는 RC 헬리콥터 그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건.
◇ 박재홍> 리모트 컨트롤러 하는 거죠.
◆ 권영세> 리모트 컨트롤 RC. 그런 것들을 하는데. 그 우리 방에 가면 또 RC 탱크가 있습니다.
◇ 이상민> RC 탱크.
◇ 박재홍> 그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 권영세> 그런 거 좋아해요. 그런데 그 탱크가 독일 탱크인데 제가 한독의원연맹 회장을 할 때 독일 측 독한연맹 회장을 하던 친구가 저기 그 친구가 있는데.
◇ 박재홍> 아무튼.
◆ 권영세> 그 친구가 우리 방에 와가지고는 자기가 군을 탱크 장교로 저 탱크를 몰았다고 그러면서 저한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데 어쨌든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래서 공대를, 요즘에는 사실은 전부 의대인데.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세> 옛날에는 의대도 있지만 공대 쪽을.
◇ 박재홍> 전자공학과 많이 갔죠.
◆ 권영세> 많이 갔죠. 공대 쪽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그냥 저희 우리 아까 가족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다 문과라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분위기가 문과로 가다 보니까.
◇ 박재홍> 또 책도 많이 읽으시고.
◆ 권영세> 문과 쪽으로 가서 그냥 법대를 가게 됐습니다. 이제 법대는 좀 재미없어요.
◇ 이상민> 그래요?
◆ 권영세> 법대는 약간 기술적인 학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 박재홍> 그래요?
◆ 권영세> 사실은 지금처럼 로스쿨로 가서 그건 전문학교로 두고 학부 시절에 경제학이라든지.
◇ 박재홍> 경영학이라든지.
◆ 권영세> 역사학이라든지.
◇ 박재홍> 정치학이라든지.
◆ 권영세> 정치학이라든지 이런 거를 다양하게 본 뒤에 로스쿨로 진입하는 게 시스템 자체는 맞다고 봐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의원님께서 77학번이시고 윤석열 대통령이 두 학번 아래라고 들었습니다.
◆ 권영세> 네, 들었습니다.
◇ 이상민> 대학 시절에 윤석열 후배를 보고 저 사람 참 듬직하다, 이런 평가를 하셨다고요? 어땠습니까? 첫인상?
◇ 박재홍> 그때도 풍채가 있으셨나요?
◆ 권영세> 지금 풍채가 좀 있었죠.
◇ 박재홍> 그랬나요?
◆ 권영세> 풍채가 지금 같지는 않은데.
◇ 박재홍> 지금 같지는 않은데.
◆ 권영세> 그때보다는 좀 슬림했었는데. 그때도 좀 눈에 띄었어요. 제가 형사법학회라는 데.
◇ 박재홍> 그렇죠. 회장 하셨죠.
◆ 권영세> 회장을 하면서 리크루트를 하는데 회원들을 모집하는데 당시에 2학년들하고 1학년을 동시에 모집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그 2학년들은 사회 계열로 들어갔다가 2학년 때 비로소 법대를 들어오고 1학년은 처음부터 법대로 들어와서 입시 제도가 바뀌어가지고.
◇ 박재홍> 그렇군요.
◆ 권영세> 어디서 운동하고 이러는 데서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가지고 우리 저기 학회 같이 하자 그래서 같이 하기 시작을 했죠. 그게 인연이죠.
◇ 이상민> 그때도 약간 도리도리 이런 거 했습니까? 아니, 선배님, 그런 게 아니고 법학은, 이렇게. 알았습니까?
◆ 권영세> 그때는 그런 거 없습니다.
◇ 박재홍> 그때는 그런 거 없었어.
◆ 권영세> 처음 도리도리는 요즘에는 없어지실 것 같은데.
◇ 이상민> 요즘에는 잘 안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그렇죠. 맞아요, 맞아요.
◆ 권영세> 뭐 그 형사법학회가 사실은 법대에서 좀 두드러진 학회라서 지금 박진 장관도 그 학회 출신이고.
◇ 박재홍> 그러시구나.
◆ 권영세> 최재형 의원도 거기 출신이고 그렇습니다.
◇ 박재홍> 엘리트 코치네요. 법학관에, 서울법대 안에.
◆ 권영세> 저 빼고.
◇ 이상민> 저 빼고.
◆ 권영세> 그런데 이제 그 두 분들은 저기 위고 제가 중간이기 때문에 우리 대통령하고 나머지 분들하고는 잘 바로 연결은 안 되겠지만 저는 위 아래 2년, 3년 선배 또 2년 후배 이렇게 되니까 미리 다 알았죠.
◇ 박재홍> 그러니까 이제 의원님께서 그 모든 분들과 소통을 하시고 그랬던 것 같아요.
◇ 이상민> 윤석열 대통령은 9수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법고시. 의원님께서는 단번에 통과하셨습니까?
◆ 권영세> 저도 단번에 아닙니다.
◇ 이상민> 아닙니까?
◆ 권영세> 공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라서. 그래서 제가 한 3수 정도 저는 한 것 같아요.
◇ 이상민> 3수요?
◇ 박재홍> 그러셨구나.
◇ 이상민> 그럼 좀 낙담이 좀 크겠어요. 3수라고 하더라도.
◆ 권영세> 뭐 그런데 공부를 안 했으니까 떨어지는 게 당연하죠.
◇ 박재홍> 그래서 검사를 하셨습니다. 검사를 직접 선택하신 이유는?
◆ 권영세> 이 판사는 조금 판사하시는 분들은 물론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고 좋은 일인데 조금 남이 만들어준 거를 판단만 하는 거는 좀 재미없고.
◇ 박재홍> 주장.
◆ 권영세> 검사들은 자기가 사건을 만들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권영세> 그래서 그런 면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매력적으로 좀 보였죠.
◇ 박재홍> 그런 부분을 또 검사를 선택하시면서 많이 말씀하시고.
◇ 이상민> 그렇죠. 그다음에 검사 생활을 하신 다음에는 더 공부를 하겠다. 이렇게 해서 하버드 케네디스쿨, 로스쿨 이렇게 또 진학을 하셨어요. 그러면 정말 공부를 하겠다는 집념이 더 컸던 거 아닙니까?
◆ 권영세> 그런데 제가 사실 아까 공부를 참 안 했는데.
◇ 이상민> 얼마나 안 하셨길래 그러세요.
◇ 박재홍> 아니, 그런데 서울법대와 사시 패스 하신 분이 공부 안 했다고 하면.
◆ 권영세> 법대 학장도 하시고 나중에 ICJ 국제사법재판소 국제형사사법재판소 소장도 하시는 아주 송상현 교수라고 법대 유명한 분이 계신데. 제가 대학원 박사 과정을 들어가니까 면접 인터뷰 하는 데서 당신은 학교 때 그렇게 공부를 안 하고 하러 박사를 하러 들어왔어. 그래 했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면접하신다고 그래서 미리 준비를 했죠. 그래서 그때는 공부하기 싫었는데 나중에 와서 보니까 이게 공부를 안 하면 안 되겠더라.
◇ 이상민> 솔직하게.
◆ 권영세> 솔직하게. 그래서 마음 고쳐먹고 공부하고 있으니까 붙여주십시오.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붙여주셨어요. 박사는 다 마치지는 못했죠. 제가 검사하고 있을 때여서. 그런데 제가 검사를 하면서도 조금 그러니까 좀 이렇게 잘 안 하는 과정들을 많이 갔어요. 제가 아마 하버드 케네디스쿨이 행정 정책 이런 거 학문을 가르치는 데인데 굉장히 실용적이고 굉장히 괜찮은 데입니다. 프로그램들도 좋고. 그리고 여기 졸업하신 분들도 굉장히 많죠.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세> 우선 조정훈 의원도 그렇고 박진 의원도 그렇고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검사 출신 중에서는 제가 처음 간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 권영세> 그래서 그걸 먼저 갔고. 그다음에 로스쿨도, 그래서 로스쿨을 1년 케네디스쿨을 1년 생각을 하고 와서 그렇게 했는데 아주 저기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기 검사 시절에 공무원들 해외 보내주는 게 있는데 그거를 우연찮게 저는 독일로 가게 됐어요.
◇ 이상민> 파견 검사.
◆ 권영세> 파견 검사. 그것도 공부가 아니라 이 독일 법무부에 파견이 돼서 당시에 독일이 92년도니까 독일이 90년 통일을 하고 통일된 지 2년 돼서 통합 작업, 체제 통합 작업에 굉장히 바쁠 때거든요. 그런데 92년쯤 될 때는 우리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은 아직 들어가기 전이지만 굉장히 어려울 때가 돼서 우리나라도 곧 통일이 된다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동서독의 통일 체제 통합 작업을 배워오라고 그래서 거기를 갔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관심이 있어가지고 미국은 언제 한번 꼭 가야 되겠다 하다가 검사 그만두고 가게 된 거죠. 그런데 독일 법무부 같은 경우도 사실은 체제 통합 작업 이런 거는 검사들이 가서 하는 거가 좀 쉽지 않거든요. 일반 검사들은 그냥 독일 법무부에서 검찰청을 간다든지 이래가지고 아니면 학교를 간다든지 이렇게 하는데 좀 희한한 데를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박재홍> 그렇군요.
◇이상민> 이런 얘기도 하셨어요 2000년에 미국 JFK 기념관에 가셔서 나도 뭔가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셨나 봐요. 그래서 두상을 사서 오셨는데 어느 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상도동 자택에서 내가 산 것보다 더 큰 두상을 발견하고 선물 받은 것이라는 얘기를 딱 듣고 누구는 사고 누구는 또 선물 받고 이게 뭐냐 이런 또 마음가짐을 가졌다면서요.
◆권영세> 누구는 조그마한 거 사고. 선물 받은 거 크고. 모양은 똑같은 거였는데 지금도 지금 아쉽게 생각을 하는 게 그 저기 캐네디의 두상이 어디로 없어졌어요. 그래서 그 뒤에 다시 찾지는 못할 것 같고 저쪽 매사추세츠 주립대학에 유메스 보스턴 쪽에 캐네디 기념관이 있어서 거기서 그런 걸 팔아서 거기를 갔는데 거기 갔더니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아직 못 사고 있어요. 지금 요즘 미국을 몇 년 못 갔는데 혹시 그 사이에 마련해 놨으면 하나 또 다시 사러 가야죠.
◇이상민> 당근 해야겠네요. 당근.
◆권영세> JFK는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렇게 매력적으로.
◇박재홍>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
◆권영세> 이제 바람 피운 거 말고.
◇이상민> 왜 그러세요. 너무 좋은 것만 얘기하셔야죠.
◇박재홍> 사모님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딱 짚고 말씀해 주셨어요.
◆권영세>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주 저기 굉장히 매력적인. 그래서 나중에 YS 돌아가셨지만 그 흉상 관련해서, 두상 관련해서도 얘기하면서도 본인도 JFK에 대해서 대통령에 대해서 좋아했다고 그래서 그 얘기했더니 그런 걸 그쪽에서 전해왔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상민> 그렇군요.
◇박재홍> 그래서 JFK의 정치 인생처럼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자리매김하십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이상민> 보수의 구원 투수입니다. 구원 투수는 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정치를 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은 언제부터 가지셨습니까?
◇박재홍> 인문 과정.
◆권영세> 제가 97년에서 98년으로 정권 교체가 되면서 그 당시 검찰이 굉장히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보고 그때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런 얘기도 있지만 이게 정치가 바로 서야지 검찰도 바로 서고 다른 것도 다 바로 설 수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무렵에 나오게 되면서 처음에 조금 콜을 받았죠. 그러니까 그때 미국 가기 직전인데 그런데 처음에는 거기 나가서 이렇게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바로 되겠나 싶어서 그리고 애초에 미국의 스쿨에 어드미션을 받아놨으니까 이거 미국을 먼저 갔다 오자 해서 미국에 가서 2년 있는데 그때 2002년도에 보궐선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 같이 여러 분이 들어왔는데 그런데 그때 마침 영등포을이 비어서 제가 거기에 들어가게 됐죠.
◇이상민> 이회창 총재가 직접.
◆권영세> 이회창 총재 그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YS 이런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그래서.
◇이상민> 이리 오세요. 오세요.
◆권영세> 저도 그런 재주가 있으면 훨씬 더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됐을 텐데.
◇이상민> 이거는 한판 승부 이상민 스쿨에서 배우시면 됩니다.
◇박재홍> 영등포 을에서 3선을 지내셨다가 이후에 좀 낙선의 아픔도 있으셨어요. 그때는 어떠셨습니까?
◆권영세> 충격이었죠. 그러니까 처음에 젊은 나이에 비교적 마흔 초반에 됐으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그 탄핵의 어려움도 뚫고 3선을 했는데 그때가 처음 떨어진 때가 제가 소위 사무총장이 저주 얘기하는 시가 사무총장 시절입니다. 비대위가 그때는 정말 지금도 우리 당이 조금 어렵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때는 우리 당이 한 100석 정도 할까 말까 이런 때였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비대위가 박근혜 비대위가 생기면서 비대위 사무총장으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 별의별 일들이 다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걸 사실은 처리하다 보니까 그리고 공천도 사실 거의 주도하다시피 하니까 제가 지역에 내려가서 선거운동할 틈이 없었어요.
◇박재홍> 지역을 못 돌봤군요.
◆권영세> 예, 그래서 그때는 낙선을 하게 됐고 그랬는데 그건 지금도 정치인들한테 특히 국회의원들한테는 어느 나라나 영원한 숙제입니다. 그게 왜 그러니까 국회의원이 중앙에서 그 지역을 대표해서 나가서 중앙정치에서 몰두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몰두하는 게 맞는지 이게 사실은 그러니까 우리 의회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라는 보수주의의 원조라는 분이 그분도 사실은 고민을 하면서 그러나 중앙 정치에 몰두를 해야 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요즘도 그렇게 하다가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박재홍> 지역구 가지 않으면 지역의원으로서.
◆권영세> 그래서 물론 구의원 그다음에 시의원이 있고 서울 같은 경우에 구청장도 있고 그래서 그런 지역의 민숙원 사업들 같은 경우는 그쪽에서 해결하고 그다음에 이 국회의원은 중앙정치에서 중앙 일만 하고 이렇게 분업을 해야 되는 게 맞는데 그게 원칙적으로 맞는데 그게 안 돼죠.
◇박재홍> 주민들은 또 의원님께 또.
◆권영세> 그리고 실제로 또 중앙정치를 통해서 지역 사업들을 풀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죠. 예를 들어서 철도 국기 같은 경우는 철도 지하화 같은 경우는 철도 자체가 이게 중앙정보의 소관 사항이니까 그거는 사실은 시의원 구의원이 못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식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저기 동의를 합니다.
◇이상민> 장관님 하면 또 이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근혜입니다. 제가 대통령 재임할 때 또 주중대사로 임명되지 않았습니까? 주중 대사로서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 좀.
◇박재홍> 중국에 또 계셨던 거에 대해서 굉장히 또 좋은 기억 많으시다고 들어서.
◆권영세> 그러니까 저기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하고의 인연은 사실은 제가 2007년 경선 때 돕지도 않고 저는 중립을 했는데 아까 방금 말씀드렸듯이 비대위 사무총장을 하면서 제가 이 공천 작업도 하고 또 2012년 말에 그때도 또 구원투수로 다 바뀌면서 막판에 제가 들어가서 총괄 책임을 지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인연으로 저기 가까이 하게 됐는데 그래서 처음으로 중국 대사를 발령을 받았는데 그것도 또 검사 출신 중에서는 이 외교관 대사 나간 게 제가 두 번째입니다. 한 분은 주미하고 주 유엔 대사를 하신 돌아가신 현홍주 대사라고 아주 탁월하신 분이 계신데 그분이 있고 그다음에 제가 두 번째인데 중국하고 그 당시에 우리 한중 관계가 굉장히 좋았을 때라서 그 당시에는 굉장히 바빴습니다. 거의 장관들이 중국의 거의 동시에 한 두 명씩 와 있는 경우가 많고 의원 대표단들은 굉장히 주말이고 할 거 없이 오고 또 중국에서 그 당시는 우리를 대우도 많이 해 줬습니다. 의원들이 좀 많이 가거나 그러면 시진핑 주석도 만나고 리커창 만나고 이렇게 됐죠. 그래서 그런 식이었는데 그리고 자리도 자리 배치도 나중에 후임 정권에서는 이해찬 대표가 총리가 대통령 특사로 갔는데 저기 시진핑 주석은 저쪽에 갖고 약간 옆으로 홀대하는 식의 사진이 나와서 그때 문제가 됐던 적 있습니까? 그때는 그런 일 없었습니다.
◇박재홍> 그랬군요.
◇이상민> 시진핑 주석하고는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이런 게 사실 궁금하죠.
◆권영세>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거는 시진핑 주석이 그때가 그 김정은에 대해서 잘 모르고 김정은 초기 시절이니까 김정일이 살아있을 때 김정은을 데리고 시진핑 주석을 소개를 해 줬는지 안 해 줬는지 그런데 김정일이가 죽기 직전에 기차로 중국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김정은이를 데리고 가서 이 선을 보였는지 이런 얘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자기를 포함을 해서 중국 지도부에서는 김정은을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식이었죠. 그리고 사실은 그때만 해도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홀대를 했습니다. 기억나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부임하기 직전에 최용해 북한의 실력자죠. 거기에 군복 입고 시진핑을 만나러 갔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옷 갈아입고 오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비교적 괜찮아졌는데 이 한중 관계가 사드 이후에 좀 안 좋아지고 지금도 이렇게 아직 회복이 전혀 안 되고 있어서 그런 부분을 좀 아쉽게 생각을 합니다. 중국이 그리고 또 중국이 우리한테 대해서 굉장히 좀 언짢게 하다 보니까 안 좋게 하다 보니까 우리 국민들도 중국에 대해서 감정이 반중 정서가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정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중국도 그리고 중국이 자기네들이 그러니까 국력에 걸맞는 크기에 걸맞는 역할을 하려면 지금처럼 이렇게 오만하거나 무례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재홍> 앞으로도 의원님께서 한중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 또 큰 역할을 해 주실 것 같고.
◆권영세> 한중 관계를 건강한 한중 관계로.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고 대등한 한중 관계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박재홍> 이런 가운데 의원님이 정치인 생활을 하시다가 지난 대선 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으셨어요. 이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의 입당을 이끄셨습니다. 말씀하신 그 형사법.
◆권영세> 그 인연도 있지만 제가 2017년도 대선 때 2016년 말부터 반기문 총장이 그 당시 보수의 유력한 후보였었죠.
◇이상민> 바른정당.
◆권영세> 예, 그런데 바른정당으로 안 갔습니다. 그냥 그랬는데 그런데 반 총장이 들어와서 1월 초에 들어와서 그때 자유한국당하고 바른정당하고 나눠져 있으니까 이게 2당으로 가면 어쩔 수도 없고 저당으로 가기도 그렇고 이쪽에서 러브콜들이 계속 오는데 그런 상태에서 참모도 없고 그다음에 어느 정도 비용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돌아다니려면. 비용도 없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2월 1일인가요? 제가 기억하기에 귀국한 지 한 달도 안 돼가지고 불출마 선언을 했죠. 그때의 상황을 보고 지금 보수에 지금 당시에 유력한 후보는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고 또 거기에 최재형 후보가 있었는데 그분들이 반기문 총장처럼 미처 제대로 꽃이 피기도 꽃이 피우기도 전에 여러 가지 인력이라든지 조직이라든지 정치자금이라든지 이런 부분 때문에 무너지면 보수로서는 더 이상 대안이 없으니까 그런 부분 때문에 아주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때는 저기 반기문 총장 때처럼 이렇게 당이 나눠져서 여기 가야 될지 저기 가야 될지 고민할 때가 아니니까 무조건 들어와라. 들어와야지 제대로 된 서포트를 받을 수가 있고 그래서 합법적으로 이게 비용 문제도 왜 저기 마련하려면 불법적인 문제도 생길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당 틀에서 하면 합법적이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본인들이 동의를 해서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박재홍> 당시에 대통령이 당에 입당을 하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사실은 그 입당 과정이 이준석 대표와 또 우리 대통령과의 갈등의 초기 원인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권영세> 제가 굉장히 아쉽게 생각을 하죠.
◇박재홍> 그때만 어떻게 잘 했었으면. 이런 얘기도 있었고.
◆권영세> 그런데 패싱은 절대 아닌 게 이게 그날 금요일인데 아마 급작스럽게 결정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무렵에 고민들은 있다가 아침에 전화를 해서 오후에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좋다 시간을 낼 텐데 그러면 어디가 좋겠냐 그랬더니 당사도 좋고 아무 데나 좋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럼 당사로 들어온다는 얘기는 들어온다는 얘기죠. 그래서 저기 제가 이준석 대표가 그때 마침 순천에 가 있었고 그다음에 김기현 원내대표도 어디 지방에 가 있어가지고 그러니까 그럼 제가 맞아야 되니까 그래서 그 대신 이준석 대표는 혹시 섭섭해 할지 모르니까 연락을 해라. 그리고 저도 연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락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하필이면 그날로 했다 그래서.
◇박재홍> 본인은 그때 휴가였을 거예요. 아마 휴가.
◆권영세> 행사 때문에 갔었죠. 왜냐하면 당시에 서범수 의원이 비서실장이었는데 거기도 아마 같이 갔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게 공식적인 거라고 제가 기억을 하죠.
◇박재홍> 그렇군요.
◇이상민> 이후에는 또 한 번 구원 투수로서 활약을 하시죠.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을 하고 선대위를 해체한 사건 모두가 기억을 할 겁니다. 당이 혼란스러울 때 선대본부장을 맡으셨어요. 원탑이죠. 고민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권영세> 당연히 있죠. 제가 아까 저기 얘기를 하면서 그러니까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의 사무총장 그때도 사실은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때 나는 떨어졌지만 우리가 152석인가 하는 좋은 결과를 낳고 그다음에 사실은 선대위에 대통령 선거 선대위에는 전혀 안 들어갔습니다. 그때 저랑 의견 차이가 좀 있어서 하고 그래서 들어갔는데 마침 그때도 한 10월 그때는 12월 선거니까 9월 말 이때쯤에 와서 이 총괄을 좀 해달라 해서 들어가면서도 굉장히 무거웠었는데 그때도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맨날 그런 것만 이 팔자가 그런지 이번에도 사실은 저는 그전에 여러분들이 그러니까 의욕적으로 선대위원장, 총괄본부장을 하고 싶어서 이거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본부장을 해달라는 얘기 총괄본부장을 해달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제가 그럼 할 사람 많고 지금 지지율도 좋으니까 나는 특보단장을 하겠다 그러고 물러나면서 전반적인 걸 보고 있었는데 그럼 잘 안 되니까 그 무렵에 해산이 되면서 1월 2일인가 3일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걸 연락받은 건 1일날이고요. 그래서 그거를 수락을 하면서 아까 그 김은혜 의원이랑 아까 그 사진이 찍혔어요. 사진인데 그때도 어쨌든 이거 이것저것 볼 것 없이 가서 해야 하는데 그런데 참 마음은 무겁죠. 원래 선거라는 게 특히 대선 같은 거를 생각을 해보면 이겼을 때는 이 공신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졌을 때는 역적이 하나 혹은 둘입니다.
◇박재홍> 역적은 하나 혹은 둘.
◆권영세> 후보까지 들어가거나 아니면 이 총괄본부장은 분명히 역적이고 그런데 요즘 저기 민주당 보니까 후보는 역적이 아닌 것 같아요.
◇박재홍> 뼈가 있는 말씀이세요.
◇이상민> 당시에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후보는 연기만 해달라 이 발언이 이슈가 됐었어요. 이 발언 지금 생각해 봐도 좀 지나치다고 보시는지.
◆권영세> 좀 지나치다고 보죠.
◇박재홍> 그렇군요.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의원님의 역할이 굉장히 많이 거론이 됐고 사실은 국무총리, 국정원장 등 여러 직위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총선 이후에도 총선 잘 마치시면 그 외에도 또 다른 역할도.
◆권영세> 저는 원래 하마평 전문입니다.
◇박재홍> 그런가요?
◆권영세> 2013년에도 제가 하마평으로 단골 하마평 올라가는 거 있었는데 농담이고 일단은 지금은 선거에 집중을 해야지 그 선거에 집중하고 또 그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중앙에서 이 장관이고 이런 활동을 하는 거를 지역에서 좋아하는 분도 계시지만 또 지역에 전념하기를 좋아하는 분도 계시니까 일단 지역의 용산이 굉장히 큰 변화가 필요한 데고 그 변화들이 굉장히 큰 변화들입니다. 철도 지하도 몇 십 조가 들어가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용산공원 문제도 간단하지 않고 그다음에 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바꾸는 것도 그것도 옛날에 30조니까 지금은 한 50조 가까이 들어갈 겁니다. 그런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그런 거를 제대로 해내려면 좀 붙들고 앉아 있어야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지역구 얘기는 잠시 후에 좀 더 해보면 좋을 것 같고 우리 의원님이 또 특이한 게 당에서 인재영입위원장 많이 하셨잖아요.
◇ 이상민> 맞아요.
◇ 박재홍> 인재영입위원장 인재영입도 많이 하셨는데 인재영입 못했던 분 중에 혹시 또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실 것 같아서.
◆ 권영세> 인재영입위원장은 많이 하지는 않고요. 대통령 후보 모셔올 때 그때는.
◇ 이상민> 총선 때.
◆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이라는 타이틀로 해서.
◇ 박재홍> 그 때는 앵커.
◆ 권영세> 후보만 했는데 그때 중에서 지금 이번에 이거 와중에 들어온 분들도 있고 그 이후에.
◇ 박재홍> 그러세요?
◆ 권영세> 이후에 들어온 분도 있고 보자, 여전히 못 들어온 분들이 몇 분은 그러니까 그때 이렇게 트라이 했던 분들이 들어와가지고 얘기하기는 그렇고.
◇ 이상민> 예의상.
◆ 권영세> 예, 예.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아니, 저는 예전에 이렇게 사담하시면서 정관용 선생님을 한번 영입하는 리스트가 있었던 것 같은데.
◇ 이상민> 시사자키.
◆ 권영세> 거기도 다.
◇ 박재홍> 비화를 살짝 들었었는데 그 얘기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권영세> 사적인 대화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해서. 예, 좋은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네. 그러면 우리 의원님의 인생 결정적 순간 세 번째로 한번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민> 리턴 매치입니다.
◇ 박재홍> 네, 리턴 매치.
◇ 이상민> 총선이 22일 남지 않았습니까? 용산에서 두 번째 선거를 치르시는 건데요. 마음가짐은 좀 어떠세요?
◆ 권영세> 저는 사실 선거를 여태까지 다른 지역에서 치를 때도 마찬가지로 특히 처음은 모르겠는데 두 번째 이후부터는 ‘본인에 대한 평가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저 친구가 그동안 지역을 위해서, 그리고 혹은 자기 지역의 대표로서 중앙정치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했는지 인정을 받으면 당선이 되는 거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부족하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상대에 따라서 크게 좌우되지는 않겠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이상민> 지난 선거에서 강태웅 후보와 890표 차. 이번에는 좀 어떻게 보십니까?
◆ 권영세> 글쎄요. 당시에는 사실은 강북이 다 떨어질 때 아닙니까? 저 빼놓고 다 떨어질 때인데. 제가 그때는 정말 열심히 다녔죠. 요즘도 열심히 그에 못지않게 다니고 있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그때보다는 좀 나은 것 같은데 아직도 선거는 한 20여 일 동안 얼마든지 변수가 있습니다.
◇ 이상민> 아직 모른다?
◆ 권영세> 대개 긍정적인 변수보다 사고치는 변수들이 많은데 그러니까 아직 좀 예단하기는 이르죠. 개인이 사고를 치든지, 정당이 사고를 치든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려면 열심히 다니면서 ‘자기가 뭘 하겠다.’ ‘자기가 뭘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열심히 다녀야죠.
◇ 박재홍> 사실은 또 용산이라는 지역구가 대통령실이 그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상징적인 지역구 아니겠습니까?
◆ 권영세> 네, 그렇죠.
◇ 박재홍> 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정권 심판론을 주장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용산 지역구에서 그런 부분이 어떤 큰 프레임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민주당의 그런 주장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 권영세> 그런 거가 조금 관심을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갖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 그게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이렇게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그게 심판으로 해서 좀 부담되는 부분도 있을 수가 있지만 용산이 정치1번지가 돼서 여기에 의미를 더 두는 분들도 있고요. 그리고 용산이 그로 인해서 조금 더 제대로 발전을 해야 되는데 구도심에서 여러 가지 좀 부족한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 이런 부분들도 평가를 하는 기준으로 많이 생각하실 거라고 봅니다.
◇ 박재홍> 용산에는 굉장히 비싼 아파트들, 부촌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또 개발이 덜 된 지역도 있기 때문에 그 중간에서.
◆ 권영세> 그게 참 어렵습니다.
◇ 박재홍> 중간으로 모으시는 게 필요하죠. 어떤 대안이 있으십니까?
◆ 권영세> 그래서 전체적으로 올리는 게 중요하니까. 용산에서는 지금 구도심에 좀 주거 환경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개선을 시키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재개발, 재건축이 굉장히 중요한데 사실은 지난 정부와 지난 서울시장 같은 경우는 개발이라든가 이런 거에 대해서는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 토목 공사니, 뭐니 이러면서 좀 비하하는 표현도 쓰기도 하고 그랬던 분들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여기 재개발, 재건축이 늘어진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지금 새 정부에서는 우선 중앙정부부터 시작해서 서울시장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적극적이고, 그리고 사실 서울에서 좀 이 서울 시민들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괜찮은 주거를 원하는 거를 공급할 수 있는 게 서울 도심에서 빈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세> 용산공원에다가 무슨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 주장도 있기는 있었습니다마는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까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서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서 주거 환경을 개선을 시키면 부대적으로 그런 차이도 좀 줄어들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이상민> 아무래도 이태원 같은 경우에는 ‘이 상권이 좀 회복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도 좀 포인트인 것 같아요.
◆ 권영세> 이태원은 지난번에 이태원 참사 이후에 조금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부분은 그러니까 용산 참사의 피해자분들하고도 조금 상인들하고 이렇게. 상인들이 잘못한 건 없으니까요.
◇ 박재홍> 그렇죠.
◆ 권영세> 그래서 잘 협의를 해서 이렇게 조그마한 추모비 같은 것도 만들고요. 제가 듣기에 추모비도 너무 크면 상인들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 자그마하게, 그러나 마음을 다해서 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좀 영향은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사실은 코로나, 그다음에 또 우리 중국 관광객들, 이태원 하면 특징이 국제적인 거 아닙니까?
◇ 이상민> 그렇죠.
◆ 권영세> 그러니까 일본이라든지 중국에서 관광객들이 들어오는 게 문제였었는데 요즘에 조금씩 풀리긴 합니다마는 아무래도 한중 관계가 지금 여전히 그렇게 좋지 않으니까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는 것, 그다음에 우리 전체적인 경기가 아직 외부적인 사정들로 인해서 그렇게 좋지 않은 것. 이런 부분들이 좀 부담이죠. 그래서 제가 저기 관광공사하고.
◇ 박재홍> 한국관광공사.
◆ 권영세> 한국관광공사하고 MOU를 맺어가지고 오히려 관광 차원에서 조금 더 활성화시키는 거. 그다음에 우리 전임 현임도 그렇습니다마는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이태원 지역의 중소상공인들 자영업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조금씩은 개선이 되고 있는데 더 해야죠.
◇ 박재홍> 그래서 의원님이 서울 용산의 후보이시고 여기 현역 의원이시기도 하고. 그런데 아까 저희가 나경원 전 의원과도 인터뷰 진행했습니다만. 최근 국민의힘이 상승세 흐름을 타다가 약간 좀 악재가 좀 있고 해서 수도권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의원님도 상징적인 지역구이시기 때문에 또 선거에 또 힘을 보여주셔야 되는데 어떻게 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 권영세> 우선 지금 위기는 어떤 면에서는 민주당이 여태까지 공천이 참 문제가.
◇ 박재홍> 사천 논란도 굉장히 많이 있고.
◆ 권영세> 사천 논란도 많고 오늘 박용진 의원이 또 떨어지고 그다음에 양문석 후보는 아직도.
◇ 박재홍> 계속 있죠.
◆ 권영세>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아마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결집을 한 측면도 있고요. 그다음에 최근에 여러 가지 좀 우리한테 불편한 이슈들이 있어가지고 그런 부분들이 좀 복합적으로 좀 영향을 줬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선 첫 번째는 후보가 더 열심히 뛰어야 되겠지만 두 번째로 외부적인 요소들 같은 경우는 공정하고 정의로우면서 또 그다음에 국민의 눈높이에도 어느 정도 맞는 해결책들을 만들어내야죠. 구체적으로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만 좀 슬기롭게 그런 외부적인 요소들을 정리를 해 줘야지 이 선거 전체가 좋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 박재홍> 그래도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원이시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 이상민>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면 어떤 게 있을까요?
◆ 권영세> 뭐 대통령께서는 지금 민생, 그러니까 지금 다른 걸 다 떠나가지고 지금 경제 상황이, 민생 경제 상황이 물가도 그렇고.
◇ 박재홍> 사과 얘기 맨날 나오죠.
◆ 권영세> 사과 얘기, 푸르트플레이션이라고 과일값 인플레이션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어디 가서 보니까 과일이 좀 약간 크기는 하지만 한 덩이에 1만 원짜리가 있던데 그건 좀 너무 심했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오늘도 어디 현장에 가가지고 하나로마트인가요? 어딘가 가셔서 그러니까 물가 대책을.
◇ 박재홍> 특단의 대책을 조금 준비해라 말씀도 했고.
◆ 권영세> 그런 걸 얘기를 하셨는데. 그런 식의 어떤 민생에서 지금 우리 국민들이 제일 불편하게 생각하는 점을 파악해서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거는 사실은 여당만이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동훈 위원장인가요? 누군가 얘기했듯이. ‘야당은 그냥 말만 하는데 야당은 실천할 수가 있는가?’ 여당은 실천할 수가 있죠.
◇ 이상민> 국민의힘은 합니다.
◆ 권영세> 국민의힘은 합니다죠.
◇ 박재홍> 그런 의미에서 국민들이 안심하시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한동훈 위원장이 오늘 중앙선대위 발대식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씀을 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 지금까지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 권영세> 뭐 정치인으로서 사실은 정치도 정치가 좀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개 그러니까 정치부 기자 오래 하신 분들도 사실은 정치권에 들어와서 바로 이렇게 이게.
◇ 박재홍> 턴어라운드가 안 되는군요. 전환이 안 되는군요?
◆ 권영세> 행위자로서 바로 전환하는 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은데. 비교적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혹시 아쉬운 점이 있으면 뒤로 얘기를 해야죠. (웃음)
◇ 박재홍> 뒤로 얘기하겠다고. 저희가 물어볼까 봐 뒤로 얘기하겠다고 말씀을 해 주셨었어요.
◇ 이상민> 의원님께서는 5선이 되면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 어떤 게 있을까요?
◆ 권영세> 그러니까 우리 정치의 큰 이슈들에 대해서 좀 천착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 미래 먹거리 부분이라든지 그다음에 국가로서의 생존과 관련된 장기적인 이슈가 우리 출산율.
◇ 박재홍> 저출산 문제.
◆ 권영세> 저출산 문제 아닙니까? 이런 부분이라든지. 그다음에 지금 국제적으로 굉장히 좀 굉장히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올해 말에 미국 대선 결과. 그다음에 거기하고 연동돼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그다음에 중국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런 모습에 따라서 우리는 굉장히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반도가 바로 이런 데에 굉장히 큰 파워들이 각축하는 한복판에 있고 또 경제적으로도 또 우리가 교역량이 우리 GDP의 한 80%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국제적인 이슈에 영향을 받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국제정세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헤쳐나가야 될지 이런 큰 문제들에 대해서 좀 천착을 해 보고 싶습니다.
◇ 박재홍> 그게 또 현 정부 들어서 중국 관계에 또 우려가 많은데요. 또 이 정부의 가장 확실한 중국 통이시기 때문에.
◆ 권영세> 뭐 그렇지는 않은데 어쨌든 아무래도 경험은 있으니까요.
◇ 박재홍> 한판열전의 마지막 공식 질문.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 권영세> 변화와 도전. 뭐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검사로 살면서도 평범한 검사의 삶은 아니었고 정치로도 이게 지역도 바꾸고 또 이렇게 구원투수로 불려나가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불려 나가고. 이렇게 변화라든지 도전 요소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항상 도전을 잘 극복을 해서 나중에 결실을 잘 맺어야죠.
◇ 박재홍> 지금 가장 바쁘실 시간에 이렇게 또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한판열전.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또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또 보석 같은 게스트와 함께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상민> 감사합니다.
◆ 권영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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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3/19(화) 권영세 "용산이 이제 정치 1번지, 지역 개발 위해 여당 필요"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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