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3/5(화) 김종혁 "'도마 위 생선' 된 민주당 인사들, 국힘엔 두려운 분들"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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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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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김종혁 국민의힘 조직부총장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잠깐만 비켜보세요. 중앙에 있고 싶습니다. 네, 이상민이고요. 왜 중앙이냐? 이분이 바로 중앙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 박재홍> 아유, 재미있어요. 오늘 보석 같은 게스트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아까 말씀드렸듯이 J의 남자입니다. J.

◇ 박재홍> J.

◇ 이상민> JTBC.

◇ 박재홍> J.

◇ 이상민> 3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고요. 네, 중앙의 남자인데 지금은 고양시 중앙에 계신 분입니다. 국민의힘 주요 요직을 맡아오신 프로 요직러시고요. 소개하겠습니다. 국민의힘 김종혁 조직부총장님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김종혁> 안녕하십니까? 김종혁입니다.

◇ 박재홍> 예, 오랜만에 오셨어요.

◆ 김종혁>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 출세한 것 같아.

◇ 이상민> 왜요?

◇ 박재홍> 왜요, 왜요?

◆ 김종혁> 왜냐하면 소개할 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인데 막 오금이 저려.

◇ 박재홍> 오금이요.

◆ 김종혁> 내가 이런 소리 들으면 안 되는데.

◇ 박재홍> 아, 그렇습니까?

◆ 김종혁> 자격, 무슨 아직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 박재홍> 아유, 무슨 말씀을, 저희가 또 다 자격 되는 분 엄선해서 선별을 하고 있기 때문에.

◇ 이상민> 아무나 나오는 게 아닙니다.

◆ 김종혁>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 박재홍> 이상민 크레이터 오늘 최근에 J 방송에 많이 나가시다 보니까 J 많이 강조하시네요.

◇ 이상민> J. 예 장르가 한판승부입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전략적 유대관계. 그럼 오늘 또 김동혁 조직부총장 모시고 또 본격적으로 인생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 순간부터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기자의 꽃.

◇ 박재홍> 기자의 꽃.

◇ 이상민> 기자의 플라워.

◇ 박재홍> 죄송합니다.

◇ 이상민> 강화도에서 출생하셨어요.

◇ 박재홍> 강화도.

◇ 이상민>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황해도 출신이시고...

◆ 김종혁>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12살 때였는데 그런데 제가 40살, 그 아버지 나이가 됐을 때 이렇게 돌이켜보면 우리 아버지는 그 어린아이 자식들, 형하고 저하고 둘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놔두고 눈을 감을 때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또 아버지의 삶을 곰곰히 반추해 보면 그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이하고 좌우 격렬한 대립 속에서 또 전쟁까지 벌어져서 혈혈단신으로 월남을 해서 저희 어머니도 황해도에서 같이 이렇게 따로따로 내려오셔서 만나서 고향 분들끼리 결혼을 하셨는데 그다음에 아이 낳고 짧게 살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 너무 안타깝게 사시다 돌아가셨구나.’라는 그런 안타까움, 그런 마음 아픔이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그 옛날에 클린턴의 전기를 보니까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복자로 태어났잖아요. 클린턴도 ‘자기는 평생 아버지 몫의 삶까지 내가 살아야 된다.’라는 그런 부채의식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그런데 제가 그걸 읽으면서 정말 눈물이 막 날려고 그러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거든요. ‘내가 어렵고, 힘들고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목까지 내가 잘 살아줘야 된다.’ 이런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그게 벌써 50년이 지났어요. 올해가 공교롭게도 그게 50년이 되는 해예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보시면 저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여기 CBS에 나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 소리도 듣고.

◇ 박재홍> 와우.

◆ 김종혁> 그래요. 그리고 우리 어머니, 형제 키우면서 정말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뭐 집 한 칸 있는 거 그때 의료보험도 없을 때 아버지 수술 몇 차례 하면서 다 날려버리고 사골셋방 전전하면서 그래서 우리 형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옛날에는 부끄러워서 제가 얘기를 못 했는데 이제는 우리도 다 나이 들고 그래서 말할 수 있는데 그래서 전 그런 부분에 대해서 형한테도 항상 옛날에 우리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니 이런 제목의 책도 있었지만 좀 어머니, 형에 대해서도 항상 좀 마음속으로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 50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부채의식도 그리고 어머니나 형에 대한 그런 것도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 이상민> 클린턴을 인용하신 걸 딱 듣고 나서.

◇ 박재홍> 꿈이 됐죠.

◇ 이상민> 이 꿈이 대통령이구나. 여기서 확 와닿습니다.

◆ 김종혁> 전혀 아닙니다. 저는 그거.

◇ 박재홍> 나가세요.

◇ 이상민> 정치인 입장을 크게 보시는구나.

◇ 박재홍> 우리 김종혁 부총장은 그런 분은 아닙니다. 책을 읽었다. 이런 것이고 댓글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유구림 님은 JTBC 시사 프로그램 진행하실 때 팬이었어요. 좋아했어요. 이런 말씀 주셨고 평화님은 어제 백석역 사거리에서 명함을 받았습니다.

◇ 이상민> 우와.

◆ 김종혁> 백석역에서 이거 있잖아요. 이거, 2번 김종영 이것 들고 막 손 흔들다가 차 지나가면 또 인사해서 인사하고 이런 일 오늘도 했고, 어제도 했고.

◇ 박재홍> 그렇구나.

◆ 김종혁>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이상민> 명함을 진짜 많이 이렇게 돌리시지 않습니까? 하루에 얼마나 돌리십니까?

◆ 김종혁> 이게 제가 보니까 명함을 돌린 사람과 안 돌린 사람이 완전히 갈리는데 우리가 선거에서 선거를 해본 사람, 선출직 해본 사람, 안 해본 사람 하잖아요. 이 명함을 돌리면 그냥 받는 사람도 받는 분도 있지만 생각해 보세요. 지하철에서.

◇ 박재홍> 바쁜데.

◆ 김종혁> 지하철 시간에 막 가는데 또 추운 날씨에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잘 다녀오세요.’ 전혀 모르는 분들한테 그런 말씀을 드리면서 명함을 드리잖아요. 그러면 어떤 분들은 받고 이러면 그거 받아주실 때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런데 어떤 분은 이렇게, 이렇게 하고.

◇ 이상민> 난 안 받겠다.

◇ 박재홍> 한 5m 전망에서부터.

◆ 김종혁> 그렇죠.

◇ 박재홍> 이렇게 딱.

◆ 김종혁> 이런 것도 있고, 딱 고개 돌리는 분도 있고, 옛날에는 심지어는 이렇게 받고서.

◇ 박재홍> 앞에서 직접.

◆ 김종혁> 이거 이렇게 확 집어던지는 분도 있고, 침 뱉는 분도 있고 이랬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이 명함을 돌리면서 느낀 건 야, 인격 수양이라는 것은 교회나 절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 박재홍> 선거운동 한 30분만 해보면.

◆ 김종혁> 지하철에서 인격 수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박재홍> 그렇구나. 이게 화려한 앵커 생활 하시는 분이 이렇게 외면당하시니까 얼마나 가슴이 아프셔.

◆ 김종혁> 아니, 아니, 가슴이 아픈 건 아닌데 그런데 진짜로.

◇ 박재홍> 민심을 느끼시는 게.

◆ 김종혁> 네, 나중에는 그 민심의 흐름에 변화가 느껴져요.

◇ 박재홍> 하루하루 달라요?

◆ 김종혁> 하루하루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예를 들면 우리 당이 잘할 때, 못할 때 이게 반응이 좀 다르세요. 그래서.

◇ 이상민> 약간 실시간 여론조사 같은 느낌이군요.

◆ 김종혁> 그런 게 있죠. 받는 분들의 어떤 반응, 예를 들면 거기서 인사를 할 때 차를 타고 달리는 분들이 빵빵빵 하면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 흔들고, 손 흔들어주는 분도 있고.

◇ 박재홍> 비키라고 빵 하는 분도 있고.

◆ 김종혁> 심지어는 욕을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 박재홍> 욕이요?

◆ 김종혁> 손가락 욕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 박재홍> 이야, 가슴 아프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습니까?

◆ 김종혁> 아니 그런데 거기에 대고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 박재홍> ‘감사합니다.’라고. 그리고 그 선거 얘기는 우리 후반부에 많이 할 게 있어서 우리 김종혁 부총장님이 기자생활 하셨죠?

◇ 이상민> 그렇습니다. 1987년에 사회부 기자로 중앙일보에 입사를 하셨어요. 기자생활을 토털 33년을 하신 건데.

◇ 박재홍> 오래 근속하셨네.

◇ 이상민> 초년생 김종혁의 시작은 어땠습니까?

◆ 김종혁> 무지하게 힘들었죠.

◇ 박재홍>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경찰 기자, 마가리.

◆ 김종혁> 네, 우리 경찰 기자 알잖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

◆ 김종혁> 이게 일단 딱 들어오면 기경 캡이 딱 불러다가 ‘야 김 보따리 싸갖고 와.’ 이런다고요. 그러면 이제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갈아입을 속옷, 팬티, 양말, 이런 거를 한 보따리를 싸고 오면 야 너는 오늘 예를 들면 ‘너 마포경찰서’, ‘너는 영등포’, ‘너는 뭐 어디.’ 이런 식으로 해서 경찰서로 2진으로 배치가 되면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거예요.

◇ 박재홍> 그렇죠.

◆ 김종혁> 계속.

◇ 박재홍> 방이 하나 있어.

◆ 김종혁> 거기서 숙직실에서 같이 자고, 기자실에서는 또 기자들은 1진들만 들어가니까 2진들은 거기 수습들은 들어갈 수가 없어요.

◇ 이상민> 안 껴주는군요.

◆ 김종혁> 안 껴주는 거지. 그러면 경찰서에서 그 경찰관들하고, 형사들하고 같이 형사계에서 하루종일, 밖에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또 회사 들어가서 회의하고 끝나면 또 다시 경찰서로 가서 거기서 밤에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하여튼 ‘거의 이런 생활도 있구나.’라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힘든 생활이었는데 요즘은 우리 후배 기자들은 그렇게는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옛날에는.

◇ 박재홍>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가 정착이 되고 옛날같이 못하는 거죠.

◆ 김종혁>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죠.

◇ 이상민> 그러면 예전에는 근무시간과 어떤 휴식시간과 경계가 없었겠네요.

◆ 김종혁> 전혀 없어요.

◇ 박재홍> 없었어요. 야만의 시대가 있었어요.

◇ 이상민> 야만의 시대에요?

◆ 김종혁> 야만의 시대인데.

◇ 박재홍> 야만의 시대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지금 얘기하면 낭만인데.

◆ 김종혁> 지나고 나면 재미있어요.

◇ 박재홍> 지나고 나면 재미있는데.

◆ 김종혁> 일단 할 얘기가 지금처럼 생기잖아.

◇ 박재홍> 우리 그 김종혁 기자는 선배로서 어떤 선배였습니까? 무서운 선배였습니까? 좋은 선배였습니까?

◆ 김종혁> 그러니까 우리가 선배들이, 기자들한테 우리하고 기자들, 경찰관들과의 관계, 형사들과의 관계에 있을 때 ‘취재원과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유착되거나 마이너스가 생긴다.’, ‘그러니까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해라.’ 항상 이런 얘기를 들었고. 그 경찰 기자 때 들었던 얘기가 정치부 기자라든가 이런 거 할 때도 항상 그런 것 같아요. 모닥불 쬘 때 겨울에, 추운 겨울에 모닥불을 쬐는데 너무 가까이 가면 뜨겁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김종혁> 너무 멀리 가면 춥잖아요. 그러니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되는데 모닥불이 막 타오를 때는 좀 떨어져 있고 모닥불이 사그러들 때는 다가가고 권력과의 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 이상민> 비유가 참 좋아요.

◇ 박재홍> 수업 받는 느낌이죠. 한판승부도 이렇게 좀 너무 가까이 하지 말고. 너무 멀리 하지 말고.

◇ 이상민> 어디다 하시는 말씀이세요?

◇ 박재홍> 약간 따뜻하게. 아니, 뭐 괜찮아요.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래서. 우리 김종혁 기자로서 또 중앙일보 편집국장까지 하신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 기자로서 할 수 있는 최고 다 하신 거 아니에요? 특파원도 가시고. 기자 생활할 때 가장 화양연화는 언제였습니까?

◆ 김종혁> 역시 뭐 어떻게 보면 경찰 기자 시절이 가장 힘들고 가장 열심히 뛰었던 시기였고.

◇ 박재홍> 그렇구나.

◆ 김종혁> 또 영향력 면에서는 역시 편집국장 할 때가.

◇ 박재홍> 편집국장 할 때가.

◆ 김종혁> 제일 컸었고. 그다음에 세상에 대해서 좀 넓게 보면서 또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거는 특파원 시절이었고.

◇ 박재홍> 특파원 생활의 비밀이네, 이게.

◆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 박재홍> 워싱턴 특파원.

◆ 김종혁> 짭짤한 거 많습니다.

◇ 박재홍> 그런가요?

◆ 김종혁> 왜냐하면 추석 같은 때 있잖아요. 거기 신문 안 나오고 놀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 김종혁> 미국은 근무하잖아요.

◇ 박재홍> 맞네.

◆ 김종혁>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 놀아.

◇ 박재홍> 그때 좋았다.

◆ 김종혁> 서울의 기준에 따라서.

◇ 박재홍> 그러네.

◆ 김종혁> 그러면 그때 특파원들끼리 다 모여서 봉고차 하나 십시일반 내서 빌려서 2박 3일로 골프 치러 가고.

◇ 박재홍> 골프 쳤답니다, 여러분.

◆ 김종혁> 골프채가 되게 싸거든요.

◇ 박재홍> 미국은 싸요.

◆ 김종혁> 엄청 싸잖아요.

◇ 박재홍> 3만 원, 2만 원 막 이렇게 되잖아.

◆ 김종혁> 그러니까 몇만 원씩 하니까 같이 어디 놀러 가서 그랬던 어떤 즐거웠던 추억이 있네요.

◇ 박재홍> 그때 CBS 특파원 함께 놀러 갔던 특파원은 누구예요? 그러면? 이니셜?

◆ 김종혁> 얘기 안 할래요.

◇ 박재홍> 얘기 안 해. 얘기 안 해.

◇ 이상민> 지금 계세요?

◆ 김종혁> 그럴걸요?

◇ 박재홍> 저도 누군지 아는데 말 안 하겠습니다.

◆ 김종혁> 높은 자리에 있어.

◇ 이상민> 높은 자리에.

◇ 박재홍>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몰라요. 저는 몰라요.

◇ 이상민> 신한국당, 민주당, 또 청와대 출입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인은 누가 있습니까?

◆ 김종혁> 물론 그 YS, DJ, JP 이런 분들을 취재를 해 보면 정말 대단하구나. 그 카리스마, 이런 것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제가 개인적으로는 정말 이분들 왜냐면 좀 더 좀 더 그분들보다는 연배가 좀 낮으시지만 함께 옆에서 지켜볼 수 있을 건 박찬종 전 의원.

◇ 박재홍> 사시 패스 하신 분.

◆ 김종혁> 그리고 이인재 전 의원. 뭐 그 두 분을 보면서는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박찬종 고문 같은 경우는 그 뭐랄까. 말하는데 한 번은 그때 96년도인가, 97년인가 그랬을 거예요. 96년이었구나. 96년도에 제가 정치부 기자할 때 어디 저 경복궁, 경복궁 아니다. 대한문 앞에서 무슨 총선을 앞두고 영상 촬영을 하는 홍보를 찍는데 거기서 박찬종 고문이 이렇게 종이 흰 종이 하나 이렇게 뚤뚤 말아오더니 PD한테 이거 몇 초에 끝나야 돼요? 그러니까 1분 30초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10초 전에 얘기해 줘요. 이렇게 얘기하고 딱 말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자자자작 얘기하다가 PD가 10초 전입니다. 그러니까 딱 1분 30초에 끝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래서 아니, 저 그 의원은 제가 그때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박 선배님 이렇게 불렀던 것 같은데. 박 선배님.

◇ 박재홍> 그때부터 정치 준비를 하셨네요. 선배님, 선배님 하시고.

◆ 김종혁> 우리 기자들은 선배라고 그래요. 정치인들한테도 선배라고 그러고.

◇ 박재홍> 어쨌든 그래가지고. 그래가지고.

◆ 김종혁> 그런데 박 선배님, 다 적어갖고 오셨어요? 뭐라고 적었어요 그랬더니 쫙 펴 보이는데 백지야. 백지 왜 가져왔어요 그랬더니 야, 이 사람아 그래야지 내가 좀 뭔가 사전에 준비한 것처럼.

◇ 이상민> 소위 있어 보이게.

◆ 김종혁> 그렇지. 그러니까 뭔가 그런데 그거는 정말로 애드리브로 바로 한 거였는데 그거를 논리적으로 1분 30초 딱 맞춰서 하시는 거 보고 야, 정말로 말씀 잘하는구나. 이런 것을 느꼈고.

◇ 박재홍> 이 당시 정치인들의 낭만이 있었어요. 이때는 그래도 어떤 연설하면 운동장에 모여서 막 유세하던 시절이잖아요.

◆ 김종혁> 그렇죠.

◇ 박재홍> 그때 막 육성으로 연설하고. 그러니까 그때는 저도 초등학생 때 딱 낭만이 있었다고 재미있다, 막 이런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좀 없잖아요, 사실은. 그냥 봉고차 옆에 이 정도 그 정도인데. 별로예요.

◆ 김종혁> 맞아요. 그리고 이인제 고문 같은 경우는 보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답변이 준비돼 있는 사람,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 이상민> 그래요?

◆ 김종혁> 그게 옳든 글든. 그 답변이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있고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김종혁> 하여간 어떤 질문이 나왔을 때 버벅대거나 뭐 그 생각을 하다가 답변하는 걸 못 봤어요. 그러니까 대부분 질문이 나오면 바로 네, 그 질문에 답변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좌좌좌작 얘기하시더라고요.

◇ 이상민> 답변 기계처럼.

◆ 김종혁> 그렇지. 그래서 이분들이 참 준비를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비행기 같이 타고 가면서 부산 내려갈 때 옆자리에서 앉아서 보니까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이 신문의 사설들을 다 이렇게 줄을 쳐놨더라고요. 그걸 열심히 읽더라고요.

◇ 박재홍>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

◆ 김종혁> 그래서 이분들이 공부도 많이 하는구나.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 김종혁 우리 부총장께서는 중앙일보 편집국장도 하셨지만 JTBC 앵커도 하셨잖아요.

◆ 김종혁>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어떠셨어요? 이렇게 신문 기자로 하다가 이거 또 방송 앵커까지 하는 경우는 되게 드문 케이스 아니었어요?

◆ 김종혁> 제가 좀 행복한 경험을 했죠. 자랑을 하자면 제가 사회부 기자일 때 시경캡 알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김종혁> 시경캡. 법조캡도 했었고. 그다음에 정치부에 가서는 청와대 출입 기자 여당 반장.

◇ 박재홍> 좋은 거 다 하셨네.

◆ 김종혁> 그래서 후배들한테 미안하죠.

◇ 이상민> 영광의 시대를 거기서 보내죠.

◆ 김종혁> 한 다음에 이제 나중에 임원 승진을 해서 그 마케팅 본부장을 했는데 한 2년 하니까 이거 나는 기자가 내 적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신문 기자는 국장까지 했으니까 좀 새로운 기자의 길을 걷고 싶다 해서 방송사로 갔었고.

◇ 박재홍> JTBC로 갔고.

◆ 김종혁> 자매 회사니까. 거기서 앵커를 했었는데 거기서도 또 새로운 세계를 봤죠. 기자는 원래 부서를 바꾸면 직업을 바꾸는 거하고 마찬가지거든요. 경찰 기자 할 때는 잠바 입고 다니면서 이러다가 또 법조 출입하면 넥타이 매고 다녀야 되고 또 정치부 가면 또 전혀 다른 세계. 경제부 가거나 문화부 가면 그 다른 문화 속으로 완전히 자기 자신이 녹아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직업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서 그런 면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그런 직장이에요. 그런데 너무 힘들고 그다음에 퇴직 이후가 보장이 되지 않고 남의 얘기 아니에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야죠.

◇ 이상민> 첫 방송 할 때 기억은 나세요?

◆ 김종혁> 그럼요. 그때 뭐.

◇ 이상민> 떨리셨죠?

◆ 김종혁>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화면을 이렇게 보면서 애들 좋아하세요 그러면 우리 애들 참 좋아하죠. 그러니까 그러면 그 화면이 애들이라고 생각하고 애들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보고 얘기하세요. 그러면 좀 온화한 표정을 짓게 되잖아요.

◇ 이상민> 부드럽게.

◇ 박재홍> 그때 그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앵커 잘 하셨어요. 그런데 정치권으로 우리 김종혁 앵커가 가게 됩니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사실상 실세.

◇ 박재홍> 정치인으로 변신하셨는데.

◇ 이상민> 최재형, 윤석열 대선 캠프 혁신위원, 비대위원, 고양병 당협위원장, 조직 부총장까지. 중앙일보 출신이라. 정치에도 중앙에 가계셨습니다.

◇ 박재홍> 중앙이라. 이거 정치 입문 제의는 누구한테 받으신 거였어요?

◆ 김종혁> 정치 입문 제의.

◇ 박재홍> 같이 하자.

◆ 김종혁> 그건 뭐 특별하게 있었던 건 아니고요.

◇ 박재홍> 어느새 와보니까 정치를 하고 계셨습니까? 눈을 떠보니까.

◆ 김종혁> 뭐랄까 최재형 캠프에서 그리고 대선 시기가 오니까 누군가 언론 쪽에. 그렇잖아요. 보니까 따끈따끈하게 나온 애가 누구야. 보니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몇 달 됐던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면 저 사람은 감각도 아직은 살아있을 것이고 그다음에 그쪽의 네트워킹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고 이런 생각들을 하실 거잖아요. 그게 대선 시기가 되니까 좀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사실 그때 제가 회사 그만두고서 앞으로 이제 뭐 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 박재홍> 그랬군요.

◆ 김종혁> 그래서 방송 패널 같은 걸로 아무래도 해 온 게 있으니까 출연하고 있었는데. 그 제의가 오니까 고민을 좀 해 봤어요. 그런데 사실은 어떤 생각을 했냐면 제가 책도 몇 권 소설을 비롯해서 책을 한 4권쯤 썼는데.

◇ 박재홍> 소설.

◆ 김종혁> 소설도 썼어요, 옛날에.

◇ 박재홍> 대단하시네.

◆ 김종혁> 그래서 이거 경험해 보고 이걸로 소설책 한번 써야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러니까 정치부 기자를 했지만 그저 축구 경기를 평론 위에서 해설하면서 보는 거하고 그 안에서.

◇ 박재홍> 플레이어로.

◆ 김종혁> 실제로 뛰는 거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김종혁> 그래서 그동안은 계속 이렇게 논평만 하고 평론하면서 이게 감 놔라, 대추 놔라 했지만 실제로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고 그다음에 책을 한 권 써야겠다라는 그 생각이 더 강했어요. 그래서 이제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나서는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풀리지 않잖아요.

◇ 박재홍> 그러게요.

◆ 김종혁> 일단 한 번 들어가니까 휩쓸려서 쫙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죠.

◇ 박재홍> 그래서 이제 출마까지 앞두고 계신 건데 사실은 언론인과 정치의 삶 어떤 진출할 때 굉장히 좀 고민이 많지 않습니까? 이제 그러면 이게 정치로 가게 되면 언론인의 삶이 또 부정되는 순간도 있을 수 있고 이게 ‘정치하려고 했던 거 아니냐?’ 이렇게 비판도 받기도 하는데 어떠셨어요? 이제 막상 또 생활하시면서 또 그런 얘기를 또 접하시거나 하시면 고민 지점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 이상민> 가족들이 많이 말리셨죠? 보통 다 말리시더라고요. 해라 이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 김종혁> 옛날에 그 정치부 기자할 때 정치부 기자 하다 보면 권유도 좀 받고 그러잖아요. 젊을 때는 저는 그냥 끝까지 있겠다, 언론인으로 있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 박재홍> 제의가 여러 차례 있었군요. 그러니까.

◆ 김종혁> 여러 차례 아니고 좀 있었죠. 좀 있었지만 그게 그 기자 생활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냥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그래서 그냥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그랬더니 그 집에서 저를 아주 가만 안 놔두려고 그러더라고요.

◇ 박재홍> 사모님이?

◆ 김종혁> 그래서 이제 기자 생활을 계속했는데 나중에 끝나고 사실은 저는 글쎄 그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저는 문재인 정부 때 제가 운동권 출신이었거든요. 대학 다닐 때. 그래서 강제 징집 당해서 휴전선에 갔는데 거기서 대남방송을 한 진짜 한 2년 반 정도 듣다 보니까 북한은 진짜 아니구나. 왜냐하면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나 처음에는 무슨 진짜로 낙엽을 타고 압록강을 건너고 솔방울 수류탄 이러길래 저걸 진짜로 그냥 시를 쓰는 건가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하루 듣고 이틀 듣고 열흘 듣고 한 몇 달 듣다 보니까 저걸 진짜로 나한테 믿으라고 하는 얘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에 운동권 대학생이 밤새 보초를 철책선에서 서면서 얼마나 북한이 궁금했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금단의 땅이었는데 매일매일 열심히 들었는데 한 1년 듣고 나서는 야 북한은 이게 못 살 때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다시 돌아왔는데 복학을 했는데 복학하니까 그때 또 대학가의 주체사상이 막 이렇게 막 그때부터 퍼지기 시작하더라고.

◇ 박재홍> NL계열.

◆ 김종혁> NL 계열.

◇ 이상민> 주사파.

◆ 김종혁> 주사파 이른바. 그래서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내가 학생운동을 하더라도 북한을 추종하는 건 난 할 수 없다. 그래서 저는 결별을 했고 하지만 친구들이 다 그쪽에 있으니까 해서 그렇다면 난 신문사에 가야겠다 그래서 신문 기자하고 들어온 거거든요. 신문기자로 들어와서는 그런 경력이 있다 보니까 비교적 왼쪽이나 오른쪽에 대해서 이렇게 적절한 균형을 맞추면서 하는 것으로 그렇게 모토를 삼았고 그렇게 기사를 나름대로는 써왔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제가 특파원도 하고 해외 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자유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훨씬 공산주의 체제보다 우월하고 독재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좀 뭐랄까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에 굉장히 많은 기대도 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탄핵 이후에 들어선 정부니까 좀 잘해달라 이랬는데 처음에 시작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취임사 보면서 정말 굉장히 감명을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 보면 그 운동권이 다 귀족이 됐구나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저는 굉장히 거기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 이상민> 책도 쓰셨잖아요.

◆ 김종혁> 제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그래서 귀족 운동권. 운동권 귀족들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저도 그쪽 출신이기 때문에 그거는 좀 니들은 그거 아니다. 우리가 이러려고 운동한 거 아니지 않니 그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회사 그만두게 나가서 내가 언론사에 계속 있으면서는 이거 비판하기가 좀 곤란하겠다 그래서 나가서 싸워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정작 나오려고 생각하니까 난 나가서 뭐 먹고 살지 이런.

◇ 이상민> 생계적인.

◆ 김종혁> 그런 걱정돼요.

◇ 박재홍> 그러니까.

◆ 김종혁> 하여튼 이런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 박재홍> 그러면서 정치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데 잠깐 대통령님을 만나서 또 김종혁 부총장의 평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 이상민> 우리 김종혁 부총장님 저하고는 전화도 자주 하고 그러지 않았나요? 저하고 함께 했을 때 아니 이거 저랑 함께한 얘기는 좋은 얘기가 하나도 없던데 이거 저랑 함께 한 얘기 에피소드 기억에 남는 거 있습니까? 악담 마시고 좋은 얘기만 바로 올렸다 이런 거 마시고.

◇ 박재홍> 용산에 가보셨습니까?

◆ 김종혁> 그렇죠. 그때 비대위원회 할 때.

◇ 박재홍> 아, 비대위원 할 때.

◆ 김종혁> 지금 우리 이상민 크리에이터가 질문하신 거하고 똑같은데 그 답을 하자면 비대위원으로서 용산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저녁을 먹는데 그때 좀 놀랐던 게 옆에서 우리 정책위 의장이 그때가 언제냐 하면 저때였어요. 그 화물연대 파업할 때.

◇ 박재홍> 초반이었네요, 그러면.

◆ 김종혁> 네, 그래서 화물연대가 파업을 앞두고 있는데 일몰제가 이렇게 적용이 돼서 이쪽을 요구하고 있고 하면서 한참 얘기하니까 이렇게 서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때의 톤은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데 강성으로 가면 좀 이런 톤이었는데 대통령이 다 듣고 있다가 가만히 있더니 그런데요 제가 제 지지율이 1%가 돼도 이거는 막겠습니다 이러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다들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정치인은 그래서 속으로 드는 생각이 저분이 정치를 계속해 온 사람이라면 그런 얘기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냥 그렇게 나는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막아야겠다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굉장히 놀랐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이후에 비대위원 하실 때 어떠셨어요? 정진석 비대위원장 제안 받으셨을 텐데 비대위원 활동하시면서 이건 정치라는 게 이 비대위원의 역할이 좀 있는 것이다 혹은 한계 혹은 또 한계를 넘어서 어떤 이건 내가 역할을 했다 자부하실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 김종혁> 아니, 그런데 비대위원을 하게 된 게 1차 비대위가, 주호영 비대위가 해산이 돼 버렸어요. 왜냐하면 우리 이준석 대표가 소송을 거셔서 그래서 2차 비대위가 정진석 비대위가 선 거예요. 그런데 또 소송을 가처분 신청을 냈어요. 그런데 판사님이 똑같은 분이야.

◇ 박재홍> 맞아요. 그랬죠.

◆ 김종혁>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다들 제가 이 비대위원을 정진석 선배가 이렇게 전화를 해서 좀 해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다들 너 그거 한 달도 안 돼서 해산될 비대위를 도대체 왜 가냐.

◇ 이상민> 그전에 결과도 있었으니까.

◆ 김종혁> 네, 어차피 1차, 1차 해산됐고 2차 들어섰는데 똑같은 판사님이고 그다음에 똑같이 소송을 걸었으니 해산되지 않겠어 가지 마 그랬는데 마.

◇ 박재홍> 가지 마.

◆ 김종혁> 왜냐하면 그러면 너 이미지만 깨진다. 그런데 제가 그때 그랬어요. 그러니까 몰라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정치 오래 안 한 사람의 어떤 특징이겠지만 야 내가 정치 어차피 시작해서 당원이 됐는데 당이 어렵다고 그래서 와달라고 그러면 당원은 가서 복무를 해야지 뭔 소리냐 내가 보면 지금 우리가 위기 상황인데 나라도 가서 도와야겠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가서 그 2차 비대위가 판결에 의해서 생존을 했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다른 판단이 나왔죠.

◆ 김종혁> 6개월 동안 계속됐고 그래서 저는 많이 배웠죠. 그때 회의하면서 이게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 박재홍> 당에서.

◆ 김종혁> 당정 간의 관계는 어떻고 일부를 봤겠지만 많이 그런 걸 경험을 했습니다.

◇ 이상민> 2차 가처분 재판정에서 비대위원 당시 자격으로 이준석 대표를 만난 거 아닙니까? 그때 좀 어떠셨어요?

◆ 김종혁> 최종 그러니까 결심할 때였어요. 그게. 결심할 때였는데 결심 공판 할 때였는데 저는 전주혜 의원이 계속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변호사, 우리 담당 변호사가 함께 나를 와달라 그래서 최후 진술을 좀 해달라 이런 거였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뭣도 모르고 갔어요. 그런데 갔더니 앉으라고 그러더라고요. 앉더니 나중에 판사님이 나한테 진술을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 박재홍> 그냥 간 건데. 준비한 것도 아닌데.

◆ 김종혁> 저 그거 하는 줄 몰랐어요. 준비 안 하고 갔는데 갔더니 거기서는 그 가처분 신청에서는 원고, 피고가 아니고 채권자, 채무자예요. 제가 채무자야 소송을 건 사람이 채권자고 채무자로서 앉았지. 나 빚도 안 줬는데 왜 채무자지. 그런데 하여튼 진술을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준석 대표를 봤는데 사실 저는 이준석 대표를 되게 좋아했거든요. 이준석 대표가 처음에 당대표가 됐을 때 정말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우리 보수에도 드디어 젊은 보수가 대를 잇겠구나라고 해서 지지했던 사람이어서. 그런데 좀 착잡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좀 어쨌든 물론 비판을 했죠. 여태까지 당과 관련해서 당대표가 외부의 탄압에 의해서 외부의 탄압에 저항해서 싸운 건 몰라도 자기 당에 대해서 가처분 신청 낸 건 나 처음 봤다. 뭐 그런 얘기부터 시작해서 이준석 대표가 법원이 주장하는 어떤 당원당규의 어떤 엄밀성 이런 것들을 당원당규라는 것은 정치적 약속이기 때문에 이것을 헌법이나 법률과 같은 체제로 계산을 한다면, 판단을 한다면 우리 당뿐만 아니라 모든 당의 당원당규에는 모순된 내용이 너무나 많다. 그런 것을 기준으로 하면 안 된다. 뭐 이런 얘기들을 제가 비판을 했더니 이준석 대표가 좀 화가 나셔갖고 왜 여기서 정치를 하십니까? 뭐 이런 표현을 했던 것 같아요.

◇ 이상민> 아, 재판정 내에서.

◆ 김종혁> 네, 반박을 하면서 저도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좀 씁쓸하더라고요.

◇ 박재홍> 그리고 또 과정을 거쳐서 현재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서 조직 부총장을 맡으셨어요. 그러니까 당의 조직 부총장인데 이것도 굉장히 요직 아닙니까?

◇ 이상민> 높은 자리죠.

◆ 김종혁>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매우 요직이지만 저는 허수아비예요.

◇ 이상민> 무슨 말씀이세요.

◇ 박재홍> 다른 사람이 할 때 요직인데 내가 하니까 허수아비다.

◆ 김종혁> 왜냐하면 그 시기가, 시기가 당무감사를 앞두고 만약에 조직부총장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그런 거죠. 그런데 우리 당무감사 다 끝나서 이제 공천관리 공관위로 다 자료는 다 넘어가고 비대위가 꾸려졌는데 조직 부총장과 기획부총장은 있어야 되잖아요. 당연직으로 있어야 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럼 조직부총장을 누구로 할 것이냐 그런데 전화가 오셨길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전화를 하셨길래 제가 아니 비대위원장님 저는 당원인 건 맞고 비대위원을 했지만 제가 당 조직에 대해서 뭘 알겠습니까? 초보인데 제가 맡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한 칼에 그게 깽깽깽깽 속된 말로 하게 된 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런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유, 그렇게 따지시면 저는 정치 자체가 초보입니다. 초보 비대위원장입니다.

◇ 박재홍> 이때 바로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님 잠깐 나와주세요.

◇ 이상민> 예, 저 한동훈이고요. 저는 정치 자체가 처음인데 안 도와주시면 어떡합니까? 선배님 도와주시길 바라고요.

◇ 박재홍>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 김종혁> 뭐 저렇게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 박재홍> 비슷하게 합니까?

◆ 김종혁> 거의 비슷하게. 비슷하게 그래서 그 말씀 들으니까 마치 어쨌든 새로운 새 무대에 담겠다고 하시는 거고 지난번에 비대위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거는 선거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당의 부름이니까 가서 복무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또 그것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잖아요. 제가 의원도 아닌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간다는 것도 영광스럽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죠.

◇ 박재홍> 그래서 이제 국민의힘 안에서도 중앙에 계셨습니다. 세 번째 인생의 결정적 순간 세 번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이상민> 나의 고양.

◇ 박재홍> 고양.

◇ 이상민> 고양입니다. 고양시 병의 단수 공천. 단수 공천 또 아무나 받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 박재홍> 현역은 홍정민 의원이죠. 더불어민주당.

◇ 이상민> 그렇습니다. 고양 병. 어떤 고양 병으로 좀 만들고 싶으세요?

◆ 김종혁> 고양 병은 제가 이제 거기서 삼십 년째 살고 있거든요.

◇ 박재홍> 아, 그러셨구나.

◆ 김종혁> 아버지하고 약속 그러니까 94년도에 처음에 이사를 왔어요. 그 지역에 그런데 제가 고양동에 정착하게 된 게 사실은 그때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분당과 일산 이런 데가 있었잖아요.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저희 아버지가 벽제 공동묘지에 그때 묻혀 계셨거든요. 그런데 어릴 적에 그때는 그때 시외버스를 타고 갔어요. 그래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에 가서 시외버스 타고 아버지 산소에 터덜터덜 가는데 그 어린아이 사춘기 때잖아요.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때니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94년도에 우연히 이 고양에 신청을 했는데 일산의 아파트가 된 거야. 그러니까 94년도 12월이었는데 이 이사를 오는데 드는 생각이야. 우리 아버지가 이 막내 아들을 보고 싶어서 나를 여기 불렀나 보다. 이게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집사람하고 우리가 고향도 없는데 고향 어차피 서울이고 나는 강화도에서 태어났다가 어린 시절에 서울로 와서 여기를 그냥 고향 삼아서 살자. 그래서 그냥 거기서 살기 시작해서 사실은 30년을 살았고 중간에 미국 연수도 가고 해외 특파원, 워싱턴 특파원 하느라고 한 5년쯤 미국에 살았는데 그때마다 다시 돌아왔어요. 왜냐하면 그때 고민도 좀 했어요. 딴 데로 갈까 그때 집값이 조금만 옮겨가면 그랬는데 아버지하고 약속을 지키자라고 생각을 해서 거기서 그냥 살았는데 결국은 여기서 제가 출마까지 하게 되고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이러라고 나 여기 있으라고 그랬나 이런 생각도 약간 주술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들들은 평생 그거를 지우지를 못해요. 그 그리움 같은 게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저는.

◇ 이상민> 고향을 돌보는 느낌인 거죠?

◆ 김종혁> 고향은 실제로 제 고향이에요. 우리 애들도 여기 태어나서 자라고.

◇ 박재홍> 30년을 사셨으니까.

◆ 김종혁> 네, 30년 살았으니까.

◇ 박재홍> 한판 승부가 고양이랑 인연이 많네요. 그렇죠. 우리 김성혜 소장도. 김성혜 고향 왔어요. 고향 다행히 두 분이 함께 대결을 안 하게 됐습니다.

◇ 이상민> 댓글에서도 껌놀라 님께서 한판 승부 패널 출신 김종혁, 김성혜 올해 모두 국회에 입성하자 이 댓글도 있어요.

◇ 박재홍> 댓글은 편파적으로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국민의힘에게는 굉장히 험지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 김종혁> 엄청 험지죠. 거기가 24년 동안에 6번의 선거가 있었는데 다섯 번을 민주당이 이겼고 한 번만 국민의힘이 그때 보수당이 이겼고 지난 12년 동안을 계속 12년 동안 그러니까 24년 중간에 중간에 한 번 했고 양쪽으로는 민주당이 계속 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엄청 험지죠. 저는 그냥 낙하산이 아니라 제가 사는 곳이니까 바꿔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나왔어요. 왜냐하면 고양이 한때 2006년도에 뉴스위크가 미래가 기대되는 10대 도시 이래갖고.

◇ 박재홍> 고양시가.

◆ 김종혁> 네, 전 세계 10대 도시를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일산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아시다시피 지금 고양시 일산의 어떤 현 주소는 집값으로 따지는 건 좀 속물스럽기는 합니다만 분당 제 친구 거기 간 누구야 전영기 전 국장은 나하고 집 차이 너무나. 집값은 반 그다음에 평촌에 비해서도 그렇고 교통 문제, 일자리 문제, 노후화된 주택 문제에 너무 문제가 많아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전혀 민주당 집권 기간 동안에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낙후되고 악화됐기 때문에 이런 문제 저는 제 고향이 이렇게 되는 거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좀 고쳐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출마를 하게 됐습니다.

◇ 이상민> 민주당에서는 이기현 전 민정비서관이 확정이 됐죠. 이분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 김종혁> 제가 보기에는요. 몇 번 만났거든요. 엄청 점잖은 분이에요. 그리고 그 주변에도 얘기 들어보니까 신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친화력도 있대요. 그래서 저도 긴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홍정민 의원과 경선에서 이겼잖아요. 그래서 1차 경선에서 3명으로 3명이 경선을 해서 다시 2명하고 이겼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전화도 해서 축하한다고.

◇ 박재홍> 또 아주 아름다운 경쟁의 모습이군요.

◆ 김종혁> 네, 그랬더니 뭐 왜냐하면 제가 민주당 출입기자할 때 당에서 나를 봤대. 나를 잘 기억을 못하겠어요. 솔직히 그런데 제가 나이도 꽤 많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를 해서 그냥 어떤 때는 선배님, 형님 이렇게 하니까 그냥 전화를 해서 아유 고생했다고 페어플레이 하자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 이상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김종혁의 경쟁력은 하면 뭡니까?

◆ 김종혁> 저는 한판 승부죠. 아니, 진짜로 한판 승부를 엄청 듣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또 약간 진보 성향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보수 쪽에서도 엄청 많이 듣더라고요. 그래서 한판 승부 들었다고 저녁에 집에 퇴근하면서 들어서 나 목소리 들으니까 알겠네. 심지어 이런 분도 있어요.

◇ 박재홍> 그랬군요.

◆ 김종혁> 당신이 김종혁이구나. 목소리만 들었는데.

◇ 박재홍> 김상혜 소장도 그런 말을 해요. 한판 승부 많이 들었다 그런 얘기하는데 이게 또 이렇게 이런 영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또 아름다운 또 경쟁을 잘 하시길 바라고 공천 작업이 막바지인데 국민의힘 공천은 무음 공천이다 또 고인물 공천이다 이런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만.

◆ 김종혁> 그렇죠. 그러니까 그 2개가 참 모순 관계인 것 같아요. 만약에 물갈이를 싹 하려면 전략공천을 해야 되는데 전략공천을 하면 검사 공천이다, 용산 공천이다. 물갈이하려면 뭔가 거기다가 페이버. 그러니까 특혜를 잔뜩 주거나 상대방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무슨 공작을 하든가 이래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물갈이는 되겠죠. 그 대신에 이거는 공정하지 않아 이런 주장이 나올 거고 또 그럼 공정하게 하자라고만 하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래도 유리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딜레마인데 이 중간선을 어떻게 타느냐 그래서 혁신에 대한 것도 채워나가고 그다음에 후유증도 최소화하고 이런 것들을 정말 그건 예술 작품처럼 해야 되는데 저희는 상대적으로 약간 좀 안정성 쪽으로 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지금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히 공정한 거는 얘기했잖아요. ‘검사들 줄줄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것이다.’

◇ 박재홍> ‘30명 할 거다.’ 이 얘기도 있었고.

◆ 김종혁> ‘윤석열 사단이 전부 다, 다 깔게 될 것이다.’, ‘용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전부 다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계속 방송에 나와서 저도 패널 하면서 얘기했는데 결과는 제가 맞았잖아요. 지금 그렇게 됐습니까? 오히려 검사 공천은 제가 보니까 민주당이 하고 있어. 그렇잖아요. 민주당에서 충성했던 분들 다 지금 요직으로 가서 좋은 자리에 지금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이거 보면 어느 쪽이 공천이 공정한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이가 없어요.

◇ 박재홍> 그런데 공관위 내부에 친윤계인 이철규 의원, 그리고 한동훈계라 볼 수 있는 장동혁 사무총장 간의 미묘한 파워게임이 있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

◆ 김종혁> 안 보이니까 제가 알 수는 없지만.

◇ 박재홍> 안 보였어요? 파워가 안 보이니까.

◆ 김종혁> 파워는 안 보이죠. 그런데 뭐 전기가 안 보인다고 전기가 없는 건 아니잖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김종혁> 저기 보면 이 형광등이 들어오는 걸 보면 ‘저기가 전기가 흐르고 있구나.’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는데 저는 이게 적어도 용산과 당, 혹은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내지는 공관위원과 장동혁 사무총장 간에 전혀 아무런 갈등이 없다라고 얘기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똑같은 사람을 놓고 서로 판단이 다른데 그걸 똑같이 일사불란하게 갈 수 있어요. 그건 독재 체제나 가능한 거죠. ‘야, 야 인마 시끄러워.’, ‘야 이대로 가.’ 던져주면 쪼로록 ‘네, 알겠습니다.’ 하고 줄줄 읽으면 그러면 잡음이 없는 거죠. 그런데 적어도 우리가 토론을 할 때도 그렇고 우리 신문사에서나 방송국에서 ‘어떤 기사를 내보낼까?’ 할 때도 토론하잖아요. 갈등이 심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결정이 내려지면 가는 거고 그게 건강한 집단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냥 저도 기자였기 때문에 기자들은 자꾸만 그런 걸 강조하고 싶어서.

◇ 박재홍> 갈등 국면을?

◆ 김종혁> 네, 윌러브 트러블이잖아요. 기자들의 뭐랄까 구호는 갈등이 있으면 좋아하지 뭐. 그런 정도의 갈등은 충분히 이해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 박재홍> 이제 아까 윤희숙 전 의원이 저희 방송 일부에 나와 가지고 국민의힘이 현재 상승세다라는 어떤 여론의 흐름이 있지만 실제 또 지역구 가서 띄워보니까 그건 또 다른 것 같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던데 어떠세요? 실제로 지역 가보시니까 느끼는 민심,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 김종혁> 저는 그러니까 윤희숙 의원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절대로 교만하거나, 해이되거나, 풀어지면 안 된다.’ 그건 맞는 말씀이잖아요. 그 선거라는 건 일주일 전에도 뒤집히잖아요. 여러 번 봤어요. 옛날에 그 안기부에서 괴문서 작성해서 그거 돌리다가 잡혀서 그다음 날 딱 보도가 되고, 그날 잡히고 그다음 날 선거에서 정말 그 이전까지 했던 모든 예상이 다 뒤집혀버렸거든요. 그럴 정도로 그건 몇십 년 전 얘기지만 선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뒤집히기도 해요. 그래서 저희도 수시로 문자를 받는 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계속 문자를 보내요.

◇ 이상민> 그래요.

◆ 김종혁> 우리.

◇ 박재홍> 비대위원장 명의의 문자가 오니까.

◆ 김종혁> 출마자들한테 ‘말을 절대로 조심해 주십시오.’, ‘예비후보나 후보들은 당의 얼굴인데 언어 표현을 절대로 조심하십시오.’라고 계속 보내고. 그런데 그거 맞거든요. 우리 지난번에 얼마나 몇몇 발언 파문 때문에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거는 이번에는 비대위원장이 앞장서서 저부터 발언 조심하겠는데 여러분들 조심해 주십시오라고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만약에 저희가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어떤 새로운 분위기로 이끌어간다면 우리가 과거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조금은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 박재홍> 민주당 얘기해 보겠습니다. 민주당 공천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죠?

◇ 이상민> ‘아수라 공천이다.’

◇ 박재홍> ‘아수라 공천이다.

◇ 이상민> ‘아수라 공천.’

◆ 김종혁> 맞습니다.

◇ 박재홍> 이거 어떤 의미입니까?

◆ 김종혁> 그러니까 아수라 아시잖아요. 음식을 놓고, 소수의 음식을 놓고 서로 먹겠다고 아귀 다툼을 벌이면서 그러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그런 장면이 생각이 나잖아요. 딱 그런 것 같아요. 거기는 보니까 무슨 당에 대한 생각도 없고, 자기 지지자들에 대한 생각도 없고, 그 당이 이어왔던 전통과 질서, 명예, 이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고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냥 ‘이재명 대표를 위한,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그런 작업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거는 잘 잘못을 떠나서 참으로 이래도 되나?’ ‘이게 아무리 경쟁당이지만 이런 식으로 해도 되나?’

◇ 박재홍> 그래도 국민의힘도 결국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권의 지지를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의원으로 다 공천되는 거 아닙니까? 윤석열의 국민의힘 아닙니까?

◆ 김종혁> 우리 당에서 다 그렇게 하죠. 그런데 저 당은 안 그렇습니까? 민주당에서도 다들 이재명 대표를 그 자체를 뭐랄까? 문제에 있다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서 ‘이 이재명 대표가 우리 당의 대표다.’라는 것들을 부인하지는 않잖아요.

◇ 박재홍> 예.

◆ 김종혁> 당을 당의 강령이라든가 당 자체를 무슨 문제가 있다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아니잖아요. 지금 날아갈 위기에 처한 분들이 대부분 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제일 두려운 분들이에요. 박용진 의원, 얼마나 우리, 얼마나 세게 공격했습니까? 아니, 그리고 김종민 의원은 안 그렇고, 그다음에 이원욱 의원도 마찬가지고, 윤영찬 의원도 마찬가지고, 조응천 의원은 안 그렇습니까? 보면 그 당에서 가장 화력이 좋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지지자들을 끌어내면서 국민의힘을 비판했던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다 도마 위에 생선이 돼버렸잖아요. 칼질이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서 목이 잘릴지, 꼬리가 잘릴지, 허리가 잘릴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 돼버렸잖아요. 저는 이런 공천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거기다가 무슨 본인의 대장동 사건과 관련됐던 변호사들, 이런 분들이 다 공천을 받거나 아니면 또 심지어는 부인의 비서를 했던 분이 무슨 여성특구인가 한 곳으로 공천을 받는다는 얘기도 있고 또 무슨 검사들이나 옛날에 우호적인 검사들, 이런 분들이 다 요직으로 가서 좋은 자리로 가고, 그런 거 보면 누가 봐도 이건 공정성의 문제잖아요. 그 공정성이 너무나 훼손돼서 이상해요.

◇ 박재홍> 일단 김혜경 씨의 수행비서 논란, 권향엽 전 비서관은 일단은 사천 논란이 있어서 그랬는지 경선으로 하겠다라고 민주당이 아예 방침을 바꾸기도 했고 ‘비서는 아니었다.’, 그 부속실에 뭡니까? 부실장이었다. 이런 해명이 있긴 했습니다.

◇ 이상민> 개혁신당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개혁신당 하면 이준석 대표가 이슈죠. 화성 을에 출마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지역구가 젊은층이 많은 도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준석 대표의 파급력 영향력 어떻게 보십니까?

◆ 김종혁> 이준석 대표는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상당히 어떤 기대했던 보수의 미래를 맡길 만한 정치인이다라고 기대를 했었어요. 그 기대가 많은 실망으로 바뀌었고 그 실망은 저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고요. 보수적인 분들은 많이 느끼고 그다음에 중도적인 분들도 역시 ‘아유, 아닌가 봐.’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이준석 대표가 만약에 떨어지면 저는 아마 정치적으로 굉장히 큰 타격, 아마 한동안은 재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거나, 아니면 그냥 사라지거나, 이런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지 처음에는 노원에 출마하시려고 했다가 그건 ‘나는 노원의 아들이다.’, ‘안 떠나겠다.’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다시 대구 쪽 얘기를 했다가 거기 또 간 좀 보니까 그게 잘 안 될 것 같지 않았나 싶어요. 만약에 그게 좀 될 것 같았으면 갔겠죠. 아니니까 또 화성으로 벨트로 나갔는데 그 화성 그쪽에 가서 ‘보수가 어려운 지역에서 나와서 나오겠다.’, ‘거기 새로운 뭘 보여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거기 이원욱 의원이나 양형자 의원하고 같이 트리오로 가시는 거 아닌가요?

◇ 이상민> 반도체 벨트.

◆ 김종혁> 그런데 글쎄요. 양형자 의원이 보수는 아니잖아요. 이원욱 의원도 아니고 다 민주당 분들이었는데 ‘조금 논리 자체가 궁색하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 박재홍> 이제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다시 재추진하겠다.’, ‘몇 가지 사항을 더 추가해서 하겠다.’ 이렇게 이런 움직임이 있어서 이 부분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 김종혁> 그건 민주당의 자유니까 그건 본인들의 권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다시 하면 더 떨어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 박재홍> 아, 그래요?

◆ 김종혁> 지지하는 게 너무도 명백하게 ‘이거 하나를 가지고 선거를 치르겠다.’, ‘우리는 김건희 여사로 선거 치를 거야.’ 무슨 다른 거 필요 없고 정책이 됐든, 미래가 됐든, 국민의 삶이 됐든, 말로는 민생이라고 그러지만 우리가 노리는 거는 그냥 김건희 물귀신, 이걸로 해서 선거를 치러야 돼.

◇ 이상민> 물귀신.

◆ 김종혁> 이런 이런 느낌을 너무 주기 때문에 이미 약발, 속된 표현입니다만 약발 떨어져서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 박재홍> 그런데 지금 제3지대 조국혁신당이 여론조사상으로 좀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조국혁신당 같은 경우는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강성인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당이기도 한데. 그런 당의 약간 지지율이 상승세에 있다는 것은 그 부분에 또 공감하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한데요.

◆ 김종혁> 민주당이나 진보 성향의 분들에서는 상당히 지지하지 않겠어요. 저는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각자 국민들은 각자 국민들 나름대로의 판단이 있는 거고 그걸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잖아요. 그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조국신당에 대해서는 그런데 저는 좀 너무 이상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1심, 2심에서 너무 코미디잖아요. 지금 2심까지 실형을 선고 받았고 그다음에 대법원으로 가면 확정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불을 보듯 뻔하고. 왜냐하면 부인도 똑같은 걸로 해서 비슷한 연루된 혐의로 해서 대법원에서 4년형이나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어떤 어떻게 보면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가 그게 갑작스럽게 무슨 대통령을 탄핵을 하겠다.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키겠다라는 걸 내세우면서 그러면서 정당을 창당을 하고 표를 달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저는 이해가 잘 안 되거든요. 그럼 다른 범죄, 이런. 그리고 또 그거는 정치범도 아니잖아요. 사실 그 범죄는 전부 다 일반 범죄예요. 그리고 굉장히 죄질이 안 좋은 화이트컬러 범죄라고 볼 수도 있어요. 입시와 관련된 거라든가 이런 것들. 그런 분이 저렇게 당당하게. 뭐랄까, 창당을 하고 거기에 지지를 얻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서로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사무쳤구나. 상대방이 미우니까 우리 편에서 어떤 이유를 대든지 간에 무조건 우리 편이라는 것은 난 지지할래라는 그런 분들도 꽤 많이 늘어납니다. 이거는 저를 포함해서 우리 정치인, 기성 정치인들이 모두가 다 여야를 떠나서 반성해야 될 부분이죠.

◇ 박재홍> 이낙연 대표는 광주 출마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새로운미래에. 어떻게 보니까 그 파괴력을 일단은 더불어민주당에 탈당하신 분들이 또 추가로 합류할 것이다. 이렇게 했다가 임종석 전 실장이 합류를 안 하면서 약간은 또 좀 뭐랄까, 그 열기가 식은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만.

◆ 김종혁>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은데 이게 아직 한 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지금 선거라는 게 원래 살얼음판을 걷는 길이긴 하지만 저희보다는 지금 민주당 그 그룹에 더욱더 그 얼음이 얇게 있는 것 같아요. 강을 건너가야 되는데 저희도 조심조심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 이상민> 살얼음.

◆ 김종혁>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조심. 언제 또 잘못해서 와지직해서 빠져버릴까 봐. 그럴까 봐. 그런데 저희가 보기에도 민주당은 지금 여기저기에 강을 건너가는데 구멍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얼음이 녹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건너긴 건너야 되는데. 저걸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예를 들면 통진당 계열의 분들을 많이 수용을 해서 하겠다는 것도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다음에 조국당과 지금 연대를 하겠다라고 하는데 그건 또 어떤 반응이 나올지. 그다음에 이낙연 당,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가 과연 어떤 정도의 위협이 될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지뢰밭이기도 하고 깨진 얼음이기도 한데. 그 모든 것을 다 다 피해나가서 건너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상처를 입지 않고 건너거나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너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 박재홍> 36일 남았으니까 수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고.

◆ 김종혁> 그렇죠.

◇ 박재홍> 여야 모두.

◆ 김종혁>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 박재홍>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라는 말씀까지 듣겠습니다. 이제 끝날 시간이 거의 다 돼서요. 우리 김종혁 부총장님께 요청해 드릴 게 있습니다.

◇ 이상민>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을 여기 카메라 보시고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박재홍> 저 카메라를 자녀들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면서.

◇ 이상민> 고양 시민이다 생각하고 좀 해 주십시오.

◇ 박재홍> 액션.

◆ 김종혁> 청취자 여러분, 한판승부 제가 1년 넘게 출연을 했었는데요. 제가 34년 동안 기자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한판 승부를 보면서는 이게 굉장히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하는 그런 방송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 출연하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 박재홍 앵커가 적절하게 제재도 하고 균형도 잡아주고 그런 균형추의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정말 이 한판승부 같은 프로그램이라면 더욱더 이게 장수하고 시청률도 더 높아지고.

◇ 이상민> 구독, 구독.

◇ 박재홍> 그래서.

◇ 이상민> 좋아요.

◆ 김종혁> 구독과 좋아요를 많이많이 눌러주십시오.

◇ 이상민> 감사합니다.

◇ 박재홍> 감사합니다. 우리 균형적이라는 말씀. 우리 당에도 그리고 또 방심에도 꼭 전달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청취자 대표로.

◆ 김종혁> 삐졌어.

◇ 박재홍>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 김종혁> 얘기할게요.

◇ 이상민> 고맙습니다.

◇ 박재홍>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 내 인생의 한 줄 요약. 우리 김종혁 부총장님의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 김종혁>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은 인생. 그게 제 모토입니다. 그래서 그 우리 집 가훈은 할 바에는 잘 하자예요. 왜냐하면 그게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급훈이었어요. 그런데 처음에 들어가서 웃었어. 저게 무슨 급훈이야.

◇ 박재홍> 할 바에는 잘 하자.

◆ 김종혁> 할 바에는 잘 하자.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까 할 바에는, 그 우리 선생님이 전차부대 장교 출신이었거든요. ROTC. 그런데 살아보니까 할 바에는 잘 하자가 상당히 그 의미 있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제가 저를 생각하면서 저는 어릴 때부터 왜냐면 어릴 때 굉장히 어려웠잖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김종혁> 좀 어머니 가게가 장사가 잘못되면 그 근심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들어오면 제가 어머니한테 엄마, 가게 장사 잘 안 됐어? 그러면 너희들 먹고 살 일만큼 다 됐어, 걱정하지 마. 이런 얘기를 할 때 그게 사실 어린 나이에도 다 알거든. 그게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제가 그럴 때마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을 거야. 항상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내 인생을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인생을 만들 거야. 이렇게 각오를 했고 그게 내 삶의 태도가 됐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제 삶의 가치관은 그거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자. 그리고 우리 자식들한테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자. 그런 게 제 가치관입니다.

◇ 이상민> 오늘 특별히 가족 얘기가 참 많이 나와서 그런데 가족들에게도 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 박재홍> 오늘 나온 거 아세요? 한판열전 하는 거 우리 가족들이?

◆ 김종혁> 근데 우리 집사람은 명함 돌리느라고.

◇ 이상민> 바쁘시군요.

◆ 김종혁> 내가 이거 좀 이거 좀 보라고 그랬더니. 아니, 이거 돌려야 되겠다고.

◇ 박재홍> 돌려야 되겠다고. 명함을 돌리고 계실 우리 사모님께 한말씀하세요. 고생 많다.

◆ 김종혁> 우리 집사람. 여보, 당신 나 때문에 정말 고생이 많고 내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또 우리 애들도, 우리 아들도 지금 이렇게 뭐야, 계속 같이 돌면서 명함 돌리고.

◇ 박재홍> 그렇군요.

◆ 김종혁> 저희 딸은 이제 사위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같이 미국에 있는데 거기서 또 뭐 만들어주고 그래요. 카드 뉴스 만들고.

◇ 이상민> 카드 뉴스로.

◆ 김종혁> 그래서 하여튼 어떻게 보면 온 가족이.

◇ 이상민> 온 가족이 선거캠프네요.

◆ 김종혁> 온 가족이 캠프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는 그 가장에 대한 생각이 되게 강해요. 이게 좀 가부장적이지만 우리 아버지가 못해준 걸 나는 자식들한테 좀 잘 해 줘야지. 내가 울타리가 되어 줘야지. 나는 못 받았던 걸 해 줘야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지금 이 단계에서는 애들과 집사람이 내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박재홍> 이 영상은 또 우리 가족에게 꼭 보여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마지막만 봐. 마지막 5분만 봐.

◇ 이상민> 마지막만.

◇ 박재홍> 한판열전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어떠셨어요?

◇ 이상민> 옛말에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연애를 하거나 사랑을 하면 딱딱하고 좀 냉철했던 사람도 부드러워진다.

◇ 박재홍> 그렇지.

◇ 이상민> 사실은 JTBC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좀 냉철한 앵커로만 봤거든요. 차갑고.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이상민> 그런데 고양과 사랑에 빠지신 이후로 좀 부드러워지신 것 같다.

◇ 박재홍> 가족 얘기하시니까 오늘도 굉장히 따뜻했어요, 초반에.

◇ 이상민> 로맨티스트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김종혁> 저 원래 털털해요.

◇ 박재홍> 선거, 레이스 시작이 됐는데 끝까지 선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또 보석 같은 게스트와 함께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김종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