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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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박원석 새로운미래 책임위원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저희 평소에 보석 같은 게스트라고 소개하지 않습니까?
◇ 박재홍> 네.
◇ 이상민> 오늘은 원석 같은 게스트입니다.
◇ 박재홍> 원석.
◇ 이상민> 세공이.
◇ 박재홍> 오늘의 원석 없습니다. 오늘의 원석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오늘의 게스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와 주신 분입니다. 시민운동의 주축 세력으로 활약하셨고요. 대한민국 양당제 타파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계신 분이죠. 새로운 미래 박원석 책임위원님 어서오십시오.
◆ 박원석> 네 안녕하십니까?
◇ 박재홍> 원래 한판 열전 게스트를 저희가 탁 웃으면서 모시는데 오늘은 우리 박원석 의원님이 굉장히 방송에 여러 가지로 아침에 또 김현정 뉴스에 출연을 하셨고 굉장히 좀 인터뷰 톤이 높았습니다. 그렇죠? 오늘 포즈도 약간 궁극적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 박원석> 그래서 제가.
◇ 이상민> 저희는 싸울 힘이 없습니다.
◆ 박원석> 제가 사실은 반성을 좀 했어요.
◇ 박재홍> 아, 그러셨어요?
◆ 박원석> 제가 웬만해서 인터뷰를 하거나, 심지어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목소리를 잘 높이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 너무 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 게 아닌가 싶어서 이 자리를 빌어서 청취자들께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재홍> 응원 문자도...
◆ 박원석> 오늘 좀 차분하게 해 보겠습니다.
◇ 박재홍> 오늘은,
◇ 이상민> 오늘만 했는데.
◇ 박재홍> 저는 저희 현안은 후반부에 다르고 전반부는 또 이렇게 의원님의 정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단은 좀 따뜻하게 시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민> 우리 박원석 의원님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거리의 정치입니다. 의원님께서는 서울에서 출생하셨고 그런데 수원에서 자라셨습니다. 승부욕이 좀 강한 아이였다면서요? 박원석 어린이는?
◇ 박재홍> 어린 시절.
◆ 박원석> 글쎄요. 돌이켜보면 매사에 지기 싫어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정도의 승부욕은 없었고 다만,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옳지 않다. 혹은 이건 옳다.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키도 작고 체격도 좀 왜소한 편이지만 어릴 때도 그랬거든요. 키도 좀 작고 약간 어떻게 보면 힘이 없어 보이는 그런 어린 아이였었는데 가끔씩 어른들이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 박재홍> 어떨 때 깜짝 놀랐어요?
◆ 박원석> 이를테면 동네에서 친구들하고 사소한 무슨 시비나 이런 거를 해서 왜 싸움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 박원석> 그런데 어쨌든 제 동생이 하나 있는데 밑에. 그 동생이 누구한테 맞고 왔어요. 자기보다 힘이 센 아이한테. 그래서 그 집 앞에 제가 찾아가서 요즘 말로 하면 농성을 한 겁니다. 한밤중이 될 때까지.
◇ 박재홍> 한밤중이 될 때까지 나와라.
◆ 박원석> 그래서.
◇ 박재홍> 내 동생을 때린 사람 나와라.
◆ 박원석> 그 부모님이 나오셔서 사과하고 달래서 저를 돌려보냈던 적이 있어요.
◇ 이상민> 쟁취했었네요.
◆ 박원석> 그래서 그 뒤로도 제가 인생 살면서 농성을 많이 했는데.
◇ 박재홍> 그러니까 이게 성공의 기억이 중요한데 그 작은 농성 성공의 기억을 우리 박원석 어린이의 성공의 기억이 평생을 만드는 거예요.
◆ 박원석> 동네에서 아이 저 쪼만한 놈이 보통이 아니다. 이런 소문을 내고 어른들 사이에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저도 어렴풋이 나고요. 아무튼 그런 것처럼 그게 승부욕이랄까요? 아무튼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접지는 않은 편이었어요.
◇ 박재홍> 그래서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하셨어요. 원래는 철학을 하고 싶었는데 사회학과를 갔다. 사회학과 선택 이유는 뭐였습니까? 의원님?
◆ 박원석>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요.
◇ 박재홍> 그래요?
◆ 박원석> 왠지 좀.
◇ 이상민> 이거 특별했다고 얘기했어야지.
◆ 박원석> 아니, 왠지 좀 멋있어 보였어요.
◇ 이상민> 사회학과가요?
◆ 박원석> 이 사회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했는데.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어렴풋이 어쨌든 이 사회학이라는 게 어쨌든 이 사회에 대해서 다루는 학문이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거대 담론.
◆ 박원석> 그래서 어쨌든 나는 저게 멋있어 보여서 사회학과를 가겠다. 이러고 갔는데 철학과 가나, 사회학과 가나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 박원석> 취업도 안 되고.
◇ 박재홍> 하긴 뭐 철학이나 사회학이나 이렇게...
◆ 박원석> 부모님은 특별히 거기에 대해서 반대 이런 건 없었는데 좀 평이하게 무슨 영문과를 가거나, 아니면 사범대를 가서 교사가 되거나, 그러면 저희 부모님은 약간 소심이셨으니까 ‘그런 남들이 택하는 무난한 걸 택하지 듣도 보도 못한 무슨 사회학이냐?’ 우리 부모님은 사회학이 뭔지 모르셨으니까.
◇ 박재홍> 그럴 수 있죠.
◆ 박원석> 저도 정확히 알지는 않았지만 담임선생님이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왜 굳이 하필이면 왜 사회학이냐? 다른 과를 갈 수도 있는데.’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그래서 똑같이 얘기했어요. ‘좀 멋있어 보인다.’ 그랬더니 한 번 이렇게 쳐다보니 한숨 쉬고 그냥 써 주시더라고요.
◇ 박재홍> 그래요.
◇ 이상민> 학교에 들어가셔서 처음부터 학생 운동을 하시지는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미팅도 좀 하고 좀 여유로운.
◆ 박원석> 누구나 대학교 1학년 들어가면 그러잖아요.
◇ 박재홍> 그럼요. 미팅해야죠.
◆ 박원석>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는 거의 놀았어요. 집회 이런 것도 잘 안 나가고 물론 그때는 제가 88학번인데.
◇ 박재홍> 88학번.
◆ 박원석> 워낙 학생운동이 최전성기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학교에서 집회가 없는 날이었었습니다. 어떤 이슈로든지. 때문에 무슨 집회에 참여하고, 뒤풀이하고 이런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 같은 거였는데 거기에 전념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 이상민> 의외로 아니었다. 의외로 아니었다.
◆ 박원석> 그냥 남들 따라서 혹은 선배들이 오늘 한번 집회에 참석하라고 그러면 가는 정도 수준이었고요. 대학교 1학년 때니까 자유로워져서 술도 마시고, 미팅도 하고, 그런 류의 대학생활을 거의 한 1년 동안 집중해서 보냈었죠. 처음부터 무슨 학생운동 이런 걸 크게 이렇게 관심을 갖거나 몰두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 이상민> 그러시다가 아내분을, 학생운동을 하시다가 만났다.
◆ 박원석> 학생운동이라기보다도 제 아내하고 제가 2학년 때 말하자면 커플이 돼서 연애를 했는데.
◇ 박재홍> CC.
◇ 이상민> CC.
◆ 박원석> 대학교 2학년 때가 89년이었습니다. 그때도 시위가 굉장히 격렬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남대문 앞에서 여러분들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이철규 열사라고 그분이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하셨던 분인데 중앙대 미대 출신이고 그분이 실종이 됐는데 변사체로 돌아온 거예요. 그리고 그 실종 전후로 해서 안기부의 추적을 계속 받았던 상황이었고 의문사죠. 일종의. 그에 대한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게 89년이었습니다. 그 이슈로 집회를 하고 남대문시장이었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해요. 거리 시위를 나가는데 그때는 약간 비폭력 시위를 한다고 그래서 길거리에 드러눕는 이런 시위를 했습니다. 드러누워가지고 다 연행당하는. 그런데 내가 연행당할 차례가 다가오는데 저렇게 보니까 한 여학생들 대여섯 명이 사법경찰한테 끌려가고 있더라고요. 거의 질질 끌려가고 있는데 보니까 그중에 하나가 제 아내, 그때는 친구였죠. 제가 벌떡 일어나 가지고 그 몸을 날려서 그 여학생들과 사법경찰을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는 거기에 잡혀갔죠.
◇ 이상민> 영화네.
◇ 박재홍> 그 영화.
◆ 박원석> 그리고 저는 잡혀가서 죽도록 맞았죠. 닭장차 안에서. 아니 그런데 그게 그때 저는 아내하고 연애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내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구하겠다. 이런 게 아니었고 그냥 약간 본능적인 거였어요. 그랬는데 아침에 실컷 맞고 밤새 훈방이 돼가지고 학교에 왔는데 실컷 맞고.
◇ 박재홍>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 박원석> 학생회실에 일찍 와가지고 제가 걱정이 됐든지 밥을 사주더라고요. 식당을...
◇ 박재홍> 사모님이, 아.
◆ 박원석> 그때만 해도 그냥 친구였는데 그러면서 어떻게 서로 이런 애정이 싹 터서 커플이 되고, 지금까지 연애를 하고, 10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 박재홍> 야, 서로.
◆ 박원석> 숱하게 헤어졌어요. 그 사이에.
◇ 박재홍> 그 사이에? 그래도 서로 떠나지 않고 그러면서 평생의 동지가 되신 거네. 그래서 그 학생운동을 좀 하시고 시민운동에 참여하십니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셨던 거죠?
◆ 박원석> 94년도에 참여연대가 창립했는데요. 제가 91년, 92년에 학생운동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사회운동을 해야 되겠다. 그런데 그전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을 하러 현장에 가는, 이를테면 사회운동 방식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때는 현장에서 다 그만두고 올라올 때였어요. 그런 데다가 사회주의권이 다 동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이른바 사회 변혁의 전망 같은 거에 대해서 회의가 많이 퍼져 있을 때였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런 정리되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학생운동 인연으로 만났던 선, 후배들끼리 조그만 시민단체를 하나 만들어서 연남동에 사무실을 두고 ‘어떻게 우리가 이 사회운동에 기여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고 박원순 시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에 인권변호사였고 이분도 안식년을 영국, 미국을 다녀온 다음에 ‘뭔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고요. 지금은 서울 교육감이신 조희연 교육감, 성공회대 교수시잖아요. 사회학자시고 조희연 교육감도 만나서 당시에 그분들이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저희는 20대 중반, 중후반이었었고. 그래서 그분들을 만나면서 서로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고민들이 비슷하다는 걸 확인하고 새로운 시민운동을 한번 시작해 보자. 일종의 권력 감시 운동을 한번 우리가 해 보자. 과거에 80년대 사회운동은 이른바 독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운동이었는데. 그런데 정권이 어떻게든 변해가면서 타도는 안 되고 정권의 성격은 조금씩 변해가기 때문에 이 정권 타도 운동이나 권력 타도 운동이 아니고 감시 운동을 해야 되겠다. 그게 훨씬 더 지속적이고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앞으로의 그런 사회에 필요한 그런 운동의 형태가 아닌가 싶어서. 그때 모여서 구상을 했던 게 참여연대 같은 사법 권력을 감시하고 또 국회 권력을 감시하고 행정부 권력을 감시하고 이런 어떤 권력 감시 운동의 형태를 구성을 하고. 94년도에 처음에 참여연대를 만들 때 발기인이 한 200명 정도 됐습니다. 대부분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하고 저희처럼 젊은 청년들, 사회운동을 하고자 하는. 그 200여 명이 발기인으로 나서서 참여연대라는 조직을 만들고 90년대 중후반에 세상을 한번 흔든 거죠.
◇ 박재홍> 사실은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정착이 안 되는 시기였고. 그래서 처음 초창기지 않았습니까? 그럼 거기 본인의 인생을 던진 건데 사실은. 어떠셨어요? 이제 다 취직하고 혹은 다 사시 보고. 미래를 찾아 떠났는데.
◆ 박원석> 저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 박원석> 너무 즐거웠던 게 그 이전까지 학생운동은 그야말로 학생 운동이잖아요. 그리고 굉장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어떤 사회 변화에 관한 그런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여기는 학생이 아닌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과 만나서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런 추상성 수준이 아니라 그분들이 갖고 있는 구체적 전문성을 통해서 이게 뭔가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이런 운동을 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고. 정말 초기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어요.
◇ 박재홍> 너무 좋았다.
◆ 박원석> 일하느라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사실은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저를 만든 거의 대부분은 시민운동을 하는 20년 동안에 배우고 훈련된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요. 그러면서 실제 많은 변화들을 이뤄냈고. 지금 이를테면 이게 꼭 성공적인 개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같은 제안을, 정책 제안을 최초로 했던 게 참여연대였습니다.
◇ 박재홍> 공수처.
◆ 박원석> 그리고 부패방지법이라는 그 법을 제안을 하고 그 입법운동을 최초로 했던 것도 참여연대였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지금 기초수급자들 다 생계급여 받잖아요. IMF 직후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내셔널 미니멈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을 해서 1년 만에 그 법이 만들어지는 그런 결과를 냈기 때문에 굉장히 어떻게 빠르게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그 변화의 가운데에서 사회가 정상화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돌이켜보면 참여연대의 초기 활동, 그리고 그 이후에 보였던 것은 굉장히 사회적 메시지도 컸고 울림도 컸고 그 기세가 있었어요, 사실. 그래서 의원님이 활동하시면 빼놓을 수 없었던 활동이 있었어요. 2008년?
◇ 이상민> 2008년 한미 FTA 쇠고기 협상 당시 광우병 촛불 집회가 열렸는데 집회 주동자로 몰리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 박재홍> 주도하셨어요?
◆ 박원석> 몰렸다는 건 조금 약간 어폐가 있고요. 주도했다고 봐야죠.
◇ 이상민> 주동자였다.
◇ 박재홍> 다 지나가니까 이제 본인이 주도했다고.
◆ 박원석> 왜냐하면 그런데 전형적인 의미의 주동자는 아닙니다. 그게 5월이었어요. 5월 2일, 3일인가 첫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대부분 중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그 소고기 촛불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너무 신기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집회가 점점 커지면서 열리는데 이게 자발적인 집회로 시작을 했지만 집회 규모가 커지니까 관리가 필요하잖아요. 누군가는 마이크도 있어야 되고 무대도 만들어야 되고.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또 이게 집회하다 보면 안전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그런 것도 방지해야 되고.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모여가지고 긴급하게 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국민대책회의라는 기구를 구성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말하자면 실무를 총괄하는 상황실장을 맡게 됐던 거였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 날 제가 그 주도자가 돼 있더라고요. 특별히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 이상민> 상황실장이니까.
◆ 박원석>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그 집회 자발적으로 시작된 시민들의 집회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역할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제가 주도자로 몰려서 수배가 되고. 급기야는 구속이 됐죠. 조계사 가서 3개월 농성하다가 조계사 나와가지고 잡혀가지고 구속이 됐고 이듬해에 석방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제가 학생운동할 때 구속됐던 이후에 오랜만에 그때 30대 후반이었는데 다시 서울구치소에 가서 관에서 주는 밥 먹고 한동안 있다가 왔습니다.
◇ 이상민> 좀 어떤 게 많이 달라졌습니까? 그 당시와는?
◆ 박원석> 김대중 정부 때 이 교정 행정에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어요. 그때 천정배 법무부 장관 시절에 이 수형자들 인권 문제가 여러 각도에서 제기가 되면서 시설 개선도 많이 이루어졌고 시설뿐만이 아니라 이를테면 교도관들이나 이런 교정 당국의 처우라 그럴까요? 수형자들에 대한. 그런 것도 많이 개선이 돼가지고.
◇ 박재홍> 활발했어요?
◆ 박원석> 아니, 바닥에 바닥에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따뜻한 온돌이.
◇ 박재홍> 따뜻한 온돌이.
◆ 박원석>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 감옥 갔을 때 추워가지고. 제일 힘든 게 추운 거였어요. 마룻바닥에. 그런데 이게 어느새 바닥에 불이 들어오는 그런 곳이 됐더라고요.
◇ 박재홍> 이명박 대통령이 하실 말씀이 있대요.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MB입니다.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박원석 의원 때문에 내 아침 이슬에 노래도 불렀잖아요. 쇠고기 협상은 절대 졸속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뭐 반박할 거 있어요?
◆ 박원석> 반박할 게 많은데요. 어디서부터 해 드릴까요?
◇ 이상민> 논현동으로 와서 하세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이분도 또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시장 오세훈입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거부 운동도 하셨죠? 투표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왜 나쁜 투표라고 하셨나요?
◇ 박재홍> 이거 비슷했어요.
◆ 박원석> 아니, 그런데 갑자기 그때 무상급식이 2010년도 지방선거를 흔들었지 않습니까?
◇ 이상민> 그렇죠.
◆ 박원석> 그래서 2010년 지방선거에 민주당이 특히 야권 연대를 해서 대승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시장이 당선이 됐습니다. 그때 새벽까지 한명숙 전 대표하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 이상민> 그렇죠.
◆ 박원석> 새벽에 오세훈 시장 쪽으로 기울어지고 아주 간발의 표차로 확정이 됐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분이 무상급식 뒤집기에 나선 거죠. 오세훈 시장이. 그래서 아무도 오세훈 시장한테 그런 주문을 안 했는데 주민투표를 내걸면서 만약 주민투표가 성사가 안 되면 내가 시장직을 그만두겠다. 저는 지금도 좀 물어보고 싶어요. 오세훈 시장님한테. 그때 왜 시장직을 거기다 거셨냐. 시장직 걸라고 아무도 얘기 안 했거든요.
◇ 이상민> 아무리 반대 측에 있었지만.
◆ 박원석> 그래서 그때 이게 정치인으로서 뭔가 내가 운명 같은 이 대권을 향한 그런 프로젝트.
◇ 이상민> 승부수.
◆ 박원석> 승부수였던 거냐.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위험한 거였어요. 왜냐하면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굉장히 높았고. 주민투표라는 게 성사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게 투표율이 20%가 넘어야 성사되는데. 이런 정책을 가지고 주민투표해서 20%를 넘긴다는 게 투표율이 20%가 안 넘으면 개봉도 안 해요. 그냥 투표가 무산되는 겁니다.
◇ 이상민> 그렇죠.
◆ 박원석> 그래서 저 투표는 나쁜 투표다. 우리 아이들 밥그릇을 뺏으려고 하는. 그래서 나쁜 투표 거부 운동을 시민단체들이 벌였고 제가 거기서 집행위원장을 했어요. 그 뒤로 오세훈 시장을 다른 자리에서 만났는데 제가 그거 했던 걸 모르시더라고요. 굳이 말씀은 안 드렸어요.
◇ 박재홍> 굳이.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박원석 의원님이 현실 정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인생의 두 번째 결정의 순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이상민> 한국 정치 비주류입니다. 아무래도 참여연대 활동을 하셨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대해서 좀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정의당이었습니까? 민주당 입당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했을 텐데요.
◆ 박원석> 일단 제가 정치에 참여하게 됐던 배경을 좀 말씀을 드리면.
◇ 박재홍> 배경이.
◆ 박원석> 2008년에 광우병 촛불집회를 하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100일간 매일 집회가 이루어지는데 마침표가 안 찍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재협상을 요구를 해서 부분적인 재협상이 이루어졌지만 그 부분적인 재협상으로는 당시에 이 광우병 위험성이 충분히 예방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시민들은 연일 거리로 나오고. 결국에는 이게 제도권에서 이게 해결이 돼야 되는데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총선에서 져가지고 의석이 80몇 석인가밖에 안 됐어요. 그러니까 도저히 이게 국회 안에서는 뭘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쉼표도 마침표도 못 찍고 거리에서 촛불이 일어났다가 거리에서 쓰러지는 이런 상황이 된 거예요. 나중에 이걸 돌아보면서 제도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깨달았습니다. 결국 사회운동은 문제를 제기하고 이슈를 만드는 역할은 해도 그거를 어쨌든 마침표를 찍고 쉼표를 찍고 뭔가에게 완성을 시키는 것은 제도 정치의 역할이구나. 그런데 그게 빠지면 이게 안 되는구나. 그리고 나서 제가 감옥 갔다 와가지고 이렇게 있는데 교육감 선거를 하더라고요.
◇ 박재홍> 서울시.
◆ 박원석> 재보궐선거. 재보궐선거. 그때 곽노현 전 교육감이 출마했는데. 곽노현 교육감 선거 캠프에서 좀 도와달라. 이건 비정당 선거잖아요.
◇ 이상민> 그렇죠.
◆ 박원석> 교육감 선거는. 그리고 저는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 곽노현 교육감이 시민 후보였어요. 교육감 후보. 그래, 내가 현실 선거에 한번 참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해서 선거 캠프에 참여해서 유세도 하고 선거 기획도 하고 전략 논의도 하고 이런 걸 해 봤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수위원회도 그때 함께 했었는데 교육감 인수위원회에도 참여를 했었는데 이게 정말 중요하구나. 제도 정치라는 게 이걸 깨닫고 있다가 2012년 총선 앞두고서 정치권에 오게 되면서 당시에 시민운동에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참여를 했는데 대부분 다 민주당. 그런데 민주당하고 통합하기 전에 시민통합당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문성근 대표가.
◇ 박재홍> 기억나네요.
◆ 박원석>그것과 민주당이 통합해서 문성근, 문재인 이런 분들이 시민통합당에 계셨어요. 그게 민주당과 통합해서 민주당이 됐는데 저도 거기에 참여해서 총선으로 가자 이런 제안을 받았죠. 그런데 저는 대한민국 정치가 좀 달라지려면 결국 양당 정치 바깥의 충격이 좀 있어야 된다. 그러려면 민주노동당부터 이렇게 통합진보당까지 이렇게 성장해 온 진보정당의 목소리가 좀 더 커져야 그 충격으로 양당 정치가 변화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통합진보당에 참여해서 비례대표 후보가 돼서 국회의원이 됐던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사실은 시민운동하면서 정치를 하면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해서 정치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4년 정치해 보시니까 어땠어요? 할 수 있었습니까?
◆ 박원석>쉽지가 않더라고요. 이게.
◇ 박재홍> 쉽지 않았어요.
◆ 박원석>국회라는 게 정말 중요하고 결국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시민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지금 21대 국회를 두고서 최악이다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 박재홍> 그런데 매번 다 최악이라고 얘기해요.
◆ 박원석>제가 19대 국회 할 때는 그때가 최악이었어요.
◇ 박재홍> 최악을 하면서.
◆ 박원석>그러니까 이게 최악을 계속 갱신하는 이런 국회를 하고 있어서 좀 근본적으로 정치인들이 돌아봐야 된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지금도 선거를 불과 한 50일.
◇ 박재홍> 50일. 딱 정확하게 50일.
◆ 박원석>안고 있는데 남기고 있는데 제가 출마 결정을 못 했어요. 제가 출마 결정을 못한 게 지금 제 3지대 정당의 포지션도 어렵기도 하지만 제가 과거에 국회의원이었을 때 돌아보니까 이게 거의 30분 단위로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하는데 되는 건 없더라.
◇ 박재홍> 현역 의원을 활동을 하면 30분 단위로 끌려다녀요?
◆ 박원석>아니, 그러니까 일정도 많고 오라는 데도 많고 30분, 1시간 단위로 끌려다니는데 되는 건 별로 없더라. 결국에 또 야당이고 소수 정당이면 더 어려워요. 여당이면 그래도 좀 여지가 있습니다. 어쨌든 당정 협의도 하고 정부 정책에 그 아이디어나 의견이나 이런 걸 반영시킬 여지가 있는데 야당은 그것도 힘들고 야당은 그냥 샤우팅 하는 거예요. 특히 소수 정당은 샤우팅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샤우팅하는 거를 꼭 국회에 들어가서 해야 되나 이런 생각도 어쩔 때는 들고 지금도 고민이 많은데 물론 저 스스로 의미 있는 그런 어떤 대변자로서의 역할 목소리가 좀 약하거나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법 그 사람들이 만들고자 하는 제도 그 사람들이 요구하고 싶은 정책 이런 거를 말하자면 대신하는 그런 역할은 했다고 나름 자부를 합니다만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는 글쎄요. 제 스스로도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고.
◇ 박재홍> 그래도 의정활동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뽑히시기도 하셨죠.
◆ 박원석>아니 뭐 그런 거는 많이 뽑혔는데 그런 거 많이 뽑힌다고 다음 선거에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 이상민> 그래요.
◆ 박원석>제가 처음에.
◇ 이상민> 평가는 또 평가고.
◆ 박원석>국회에 들어가서 상임위에서 그러니까 다선 의원들이 계시잖아요. 다선 의원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니 박 의원은 보니까 국정감사 잘하는 의원 무슨 이런 거 많이 뽑힐 것 같은데 그거 하나도 소용없다. 나 그거 4년 내내 뽑혔는데 그다음에 떨어졌다.
◇ 박재홍> 백봉 신사상 막 이런 거.
◆ 박원석>네, 그런 경험도 들려주시고 제가 2012년도에 처음 상임위 배치가 돼가지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갔는데.
◇ 박재홍> 기재위 갔는데.
◆ 박원석>네, 기재위에 이쪽 야당 석에는 문재인 당시에 대권주자가 앉아 계셨고 반대편 여당 수석 쪽에는 박근혜 대선주자가 앉아 계셨어요 그런데다가 야당 당시 기재위원들 중에 이낙연 총리도 계셨고 이낙연 총리를 그때 처음 만났습니다. 상임위에서. 그다음에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영선 또 중소벤처.
◇ 이상민> 어마어마했네요.
◆ 박원석>이인영 통일부 장관.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하고 상임위를 같이 해서 그분들이 장관이 된 게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 박재홍> 의원님도 당시 민주당이었으면 지금 한 자리 했을 텐데.
◆ 박원석>아마도 그럴 수 있었겠죠.
◇ 박재홍> 아까워, 아까워. 그러니까 인생의 선택이 중요한 거야.
◆ 박원석>아니, 그래서 당시에 이렇게 돌아보면 그 기재위의 라인업이 어마어마했던 거예요.
◇ 박재홍> 실력 있는 분들이 많았다.
◆ 박원석>네, 여당 쪽에도 최경환 전 기재부 장관 이런 분들이 계셨고 그런데 그때 5월달에 국회를 개원했잖아요. 12월이 대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정감사를 10월에 하잖아요. 국정감사는 없어요. 사람이. 다 선거하러 가지 저하고 야당 의원 몇 명하고 특히 지방국감 가면 거의 의원들이 안 오고 다 대선 캠프에 차출 나가서. 그랬던 기억이 나고 아무튼 많이 배웠습니다. 이게 국회에서 정책을 다룬다는 게 정말 어렵기도 한 일이지만 특히 기획재정위처럼 국가재정 또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이런 부처를 소관 두고 있는 관리부처로 두고 있는 상임위에서는 보면 이렇게 안목을 크게 가질 수가 있고.
◇ 박재홍> 사실 실력이 있어야 돼요.
◆ 박원석>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공부가 많이 되고 좋았는데 문제는 이게 힘이 없다 보니까 법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 박재홍> 소수당으로서.
◆ 박원석>네, 왜냐하면 법안 발의하려면 10명의 국회의원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테면 약간 진보정당의 색채가 강한 선명한 이런 법 같은 경우에는 도장 받기도 어려워요.
◇ 박재홍> 그때 도장 받으러 갈 때 제일 잘 도와줬던 의원이 누구였어요? 민주당.
◆ 박원석>아니, 당시만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님들이 많이 도와주셨고 김현미 전 장관이 그때 상임위 간사를 하셨어요. 전반기에. 기재위. 그런데 간사하시면서 하여튼 제가 부탁한 건 다 들어줬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래서 저는 굉장히 고마워했고 그래서 제가 기재위에서 김현미 개라고 스스로 저를 지칭하고 다녔습니다.
◇ 박재홍> 김현미 개입니다.
◇ 이상민> 의원님께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9시간 28분. 이거 대단한 것 아닙니까? 이거 어떻게 이렇게 길게 하실 수 있었던 겁니까?
◆ 박원석>그게 참 필리버스터 어떻게 시작되게 됐는지 아시죠?
◇ 박재홍> 필리버스터.
◆ 박원석>원래 테러방지법을 갑자기 당시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게 국가 무슨 위기 상황이라 그러면서 직권 상정을 한 거예요. 그래서 원래 그거에 대한 반대 토론을 신청해 놨었습니다. 저도 반대 토론자 중에 한 명이었는데 민주당에서 무제한 토론 카드를 들고 나온 거예요. 필리버스터 국회법에 있는. 그래서 토론 신청해 놨다는 사람들이, 놨던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무제한 토론자 순서대로 된 거예요. 제가 네 번째인 겁니다. 1번이 김광진 의원 또 2번이 누구 3번이 은수미 의원 4번이 전 거예요.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길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일단 자료를 잔뜩 준비해서 올라갔죠. 그런데 은수미 의원이 제 앞에서 했는데 10시간 15분인가를 했어요. 아니, 그래서 제가 그걸 기다리다가 지치겠더라고. 난 잠도 좀 자야 되는데.
◇ 이상민> 자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습니까.
◆ 박원석>밤을 꼴딱 새고 은수미 의원이 아침에 끝냈어요.
◇ 박재홍> 대단하신 분이네. 그분도.
◆ 박원석>저도 같이 잠을 못 자고 그거를 왜냐하면 또 몇 시간 전에 들어와 있으래. 끊기면 안 된다고. 들어가 있다가 그것도 기다리는 데 지치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쭉 했는데 하다 보니까 시간이 몇 시간이 됐는지도 몰라요. 모르는데 저기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이석현 부의장이 사회 보셨는데 지금 거의 한 9시간 넘게 하셨는데 괜찮으시냐 다음 의원도 계시니까 체력 생각해서 이렇게 하셔라. 그래서 그 정도 했구나. 그런데 그런 걸 의식하게 되잖아요. 은수미 의원이 앞에서 10시간 15분을 했으니까 이게 저는 정의당 의원인데 당시에 저한테 문자 오는 분들이 은수미 의원 신경 쓰지 말고 쓰러질 때까지 해라 이런 문자를 보내는 분들이.
◇ 박재홍> 더 해라. 12시간 해라. 그냥 죽어라. 기절해라. 죽는 건 아니고 기절해라.
◆ 박원석>네, 당시에 지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이었는데 그 시장 비서실에 누구를 통해서 제가 아는 분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를 전해왔어요. 쓰러질 때까지 해라. 신경 쓰지 말고.
◇ 박재홍> 본인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씀하시네요.
◇ 이상민> 자기 일 아니라고.
◆ 박원석>그런데 가만히 제가 생각해 보니까 정의당 의원인 제가 은수미 의원의 기록을 깨면 제 뒤에 할 민주당 의원은 그걸 의식하고 또 그걸 깰려고 들 거예요. 그다음에 정의당은 질 수 없다 그러고 또 그걸 깰려고 들 거예요. 그러면 언론들이 그때부터 이거를 비꼬기 시작할 겁니다. 기록 경쟁하냐. 이건 안 되겠다. 내가 그냥 아예 이 기록 경쟁을 끊어버려야 되겠다 해서 아직 체력이 있었는데 9시간 28분 하고 제가 끊은 겁니다.
◇ 박재홍> 더 할 수 있었나요?
◆ 박원석>더 할 수 있었는데. 실제입니다. 이거는.
◇ 박재홍>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 박원석>실제로. 그래서 기록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그래서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종걸 원내대표였는데.
◇ 박재홍> 고맙다.
◆ 박원석>정의당에서 기록 경쟁 안 하는 걸로 하고 끊었으니까 의원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5시간씩만 하시라. 대체로 5시간, 6시간 정도 했는데 그 또 욕심 많은 정청래 의원이 은수미 의원 기록을 깬다고 11시간 가까이.
◇ 박재홍> 그분은 또 이제 그런 부분 있어서.
◆ 박원석>당내 원내대표의 당부도 있고 11시간 가까이를 했는데 마지막 주자가 이종걸 원내대표였습니다. 그래서 필리버스터의 기록은 이종걸 원내대표가 갖고 계세요. 12시간 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면서.
◇ 박재홍> 본인은 원내대표로서 깨야겠다 싶은 생각을 하셨구나.
◆ 박원석>뭐 원내대표니까 할 일이, 할 말이 많았겠죠.
◇ 박재홍> 12시간 대단한 거네요.
◆ 박원석>그런데 9시간.
◇ 이상민> 노래 부르시는 분도 있어요.
◆ 박원석>그렇죠. 우리 강기정 의원 같은 경우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당시에 공천 탈락이 확정돼서 굉장히 속상하신 상황에서 울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9시간 27분을 하고 내려왔는데 제일 힘든 게 발바닥이 너무 아픈 거예요.
◇ 박재홍> 계속 서 있어야 되니까.
◆ 박원석>네, 이게 이제 체중이 발바닥으로 집중되니까 그래서 계속 이렇게 발을 움직이면서 했는데도 발바닥 아픈 게 제일 힘들었고 배가 너무 고프더라고요. 배가. 왜냐하면 말을 하니까.
◇ 박재홍> 맞아요. 당 떨어지고.
◆ 박원석>그렇다고 무슨 물을 많이 마시면 또 화장실을 가야 되니까 힘들죠. 화장실 가면 안 된다는 또 강박 관념이 있어서 그런데 또 우리 안민석 의원이 그분도 재미있는 분이잖아요. 의장님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허락을 받아가지고 필리버스터 중간에 화장실 갔다 오는 기록을 또 만들었습니다.
◇ 이상민> 그건 제외가 됩니까?
◆ 박원석>그렇죠. 그래서 아무튼 9시간 27분 했더니 내려왔는데 의원실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의원님 후원금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통장에. 그때 밤새 지켜본 시민들이 후원금을 보내주고 이미 그때 지역구에 후보 등록을 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이걸 다 바꿔가지고 필리버스터 4번 타자 해서 기호도 4번이었어요. 좀 그렇게 해서 인사 다니고.
◇ 이상민>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슈퍼챗 비슷하게 느껴지네요.
◆ 박원석>지금처럼 유튜브 문화가 있었고 슈퍼챗이 있었으면 대박 났을 거야. 그런데 그런 건 아니었거든 그때는.
◇ 이상민> 그렇죠.
◇ 박재홍> 그렇군요. 이게 또 지금 우리 의원님의 가장 화양연화 시절이었던 것 같아.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눈빛이 초롱초롱해지십니다. 댓글이 나고 있습니다.
◆ 박원석>그러게요. 이런 얘기라도 해야지 오늘 뭐.
◇ 이상민> 갑자기 또 슬퍼지셨어요.
◇ 박재홍> 갑자기 슬퍼졌어. 좋은 생각. 그래서 사실은 그때 지역구로 다시 갔었어야 됐는데 지역구 됐어야 되는데 아쉬운 마음도 있으시죠?
◆ 박원석>소수 정당이 참 선거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개인기나 이런 걸로 지지율도 좀 봤다가 결국 선거 막판이 되면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한 데다 사표 심리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표가 한 표인데 그 한 표가 사표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본능적인 경계심들이 누구나 있습니다. 유권자가. 저도 그래요. 그거는 그래서 쫙 빠집니다. 마지막에 되면 지지율이 제가 두 번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렀는데 언제나 스타트는 지지율 한 20% 정도에서 시작합니다.
◇ 박재홍> 그때 느낌이 어때요? 딱 여론조사 20% 그렇게 할 수 있어.
◆ 박원석>느낌 좋은 정도가 아니고 길거리에 나가보면 내가 당선될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구나.
◇ 이상민> 그런데 마지막 되면 반토막도 더 이하로 나는 거예요. 이게 양당 구도의 이게 두터운 벽인 거죠.
◇ 박재홍> 두 번 정도 그러면 진짜 좀 상처받으셨겠네. 일어날 수 없겠네.
◆ 박원석>다리가 풀려서 선거를 또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박재홍 앵커 방송 앵커랑 방송이나 하고 살지 뭐 이러고.
◇ 박재홍> 그러니까 빈자리가 많아요.
◆ 박원석>여러 생각이 많이 납니다.
◇ 박재홍> 그러면 지금도 아직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나가실지 말지 아직 결단을 못 하신 거예요?
◆ 박원석>결정을 못했어요. 지금은 더군다나 당 만들기를 하고 있는 과정이어서 개개인의 선거보다 거기에 집중을 했는데 그조차도 지금 별로 좋은 결과를 못 내고 있어서 국민들 보기에 민망하고 송구스럽고 그렇습니다.
◇ 박재홍> 우리 박원석 새로운미래 책임위원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아픈 얘기 결정적 순간 세 번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이상민> 잘못된 만남.
◇ 박재홍> 이 얘기.
◇ 이상민> 개혁신당과의 통합 선언 11일 만에 합당이 철회가 됐습니다. 의원님께서는 개혁신당과의 만남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아니라.
◇ 박재홍> 이 얘기 오늘 오전부터.
◇ 이상민> 노래 제목이 아니라 진짜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얘기하셨어요.
◇ 박재홍> 아픈 얘기.
◇ 이상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 겁니까?
◇ 박재홍> 너무 이렇게 아픈 얘기를 좀 이렇게 날카롭게 물어보시고 우리는 좀 약간 부드럽게 물어봐 주세요. 의원님 오늘 어떠셨어요? 마음이? 잘못된 만남이라 본인이 표현하셨는데.
◆ 박원석>선언을 2월 9일날 했잖아요.
◇ 이상민> 그렇죠.
◆ 박원석>그리고 나서 설 연휴 끝나고 사실상 2월 13일부터 그게 통합 프로젝트가 가동된 거고 그렇기 때문에 한 일주일 된 거죠. 정확히 얘기하면 선언으로부터는 한 열흘 열 하루가 됐지만 당시에 통합 선언을 할 때 좀 갑작스럽게 했잖아요.
◇ 박재홍> 저희도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 박원석>왜냐하면 이게 전권을 위임받고 협상 대표들이 하다 보니까 협상의 내용이나 내막을 다른 어쨌든 당 지도부들을 잘 모른 채로 진행이 된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 쪽에서는 김종민 대표가 수상을 했는데 김종민 대표는 그래도 그 중간중간에 충실히 이낙연 전 대표나 저희 최고위원들한테도 상의를 한 편입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좀 급하지 않냐라는 의견을 냈어요. 그러니까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논의해야 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걸 좀 확인해 보고 선언을 해야지 선언부터 해 놓고 확인하자 그러면 이게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날 수도 있다. 막연하게 그때는 그런 걱정을 좀 했습니다. 더군다나 당명도 개혁신당으로 하고 공동대표 체제로 하고 당명을 개혁신당으로 한다는 거는 그거는 사실 흡수 통합의 모양새인데 굳이 꼭 그래야 되나 이런 의견이 있었고 대한민국 정당법상에는 합당은 흡수합당과 신설합당밖에 없어요.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흡수되는 것은 바람직한 통합의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에 신설합당으로 가야 되고 그러려면 당명을 새로운 중립적인 당명으로 만들어야 된다 이게 제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논의가 관찰이 안 되고 어찌 됐건 서두르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서둘러서 통합 선언을 했는데 제가 잘못된 만남이라고 표현했던 거는 확인해야 될 것들을 확인하고 그리고 신뢰가 좀 형성이 돼야 될 것들이 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통합을 선언하고 그걸 추진하다 보니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 문제가 아닌가 이렇게 싶습니다.
◇ 박재홍> 사실은 오늘 이낙연 대표에게는 기획된 파기였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합당된 지도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파기를 기획했다. 이거 자체도 약간은 좀 성립되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결과론적으로 말씀하셨던 게 아닌가라는 얘기도 있지만 새로운미래 측에서 어떤 부분이 기획된 파기였다 이렇게 판단하셨던 겁니까?
◆ 박원석>의아한 대목은 이런 거죠. 지난주 목요일날 다소는 좀 갑작스럽게 그 직전에 의원 5명이 돼가지고 분위기 좋았습니다. 국고보조금도 받고 이랬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준석 대표 쪽에서 배복주 씨에 대해서 당직도 공직도 안 된다 뭐 이런 글 페이스북에 썼어요. 그 전날인가.
◇ 박재홍> 합의되기 전에?
◆ 박원석>아니, 그 전날인가, 15일인가. 그런데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건 본인의 의견이니까.
◇ 박재홍> 2월 15일.
◆ 박원석>그 이전에도 배복주 씨 문제로 근 한 달 동안 윤석 대표가 이런저런 유튜브 방송 나오면서 그분이 통합의 걸림돌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 박재홍> 저희 방송에서도 말씀 많이 했죠.
◆ 박원석>저는 그거는 이해가 전혀 안 되고요. 그분이 여기를 대표하는 분도 아니고 그렇게 유명한 분도 아닌데 국민들이 금복주는 알아도 배복주는 몰랐는데 이번에 다 알게 됐어요.
◇ 이상민> 금복주요.
◆ 박원석>이준석 대표 때문에.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가 만든 겁니다. 저거를. 그런데 본인 페이스북에 그런 의사를 밝히는 건 좋은데 이낙연 대표도 그걸 밝혀달라라고 요구를 하는 거예요. 요구 1번. 두 번째로 선거 캠페인과 정책 발표의 전권을 자기한테 달라.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협상도 회의도 하지 않겠다. 그다음 날 있었던 최고위원회, 금요일날 있었던 최고위원회를 취소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이낙연 대표나 저희 입장에서는 아무리 통합이 중요하고 합당이 중요해도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정당이라는 건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법적 결격사유가 없는 한 누구나 당원이 될 수 있고 피선거권이 있는 한 누구나 도전 의지를 가질 수 있어요. 절차에 따라서 심사해서 자격이 안 되면 공천을 안 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거를 선언해 달라. 이낙연 대표한테 그건 못한다. 그거는 배복주가 아니라 누구여도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 박재홍> 특정인을 지목해서 할 수 없다.
◆ 박원석>그런 거 하지 말자고 양당에서 그런 패권 정치나 낙인 찍는 정치, 그리고 좌표 찍는 정치 그런 거 싫어서 나온 사람들이 여기서 이걸 만드는 건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라고 그러냐 그거 못한다. 두 번째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낙연 대표로 한다가 합의 사항이다.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하되 그 합의문에 나와 있습니다. 때문에 선거에 관해서는 통합 합의 사항과 다른 얘기를 하려면 그건 다시 정치적인 조정이나 논의를 거쳐야지 그거를 일방적으로 양보한다. 이준석 대표한테 전권을 준다. 이렇게 선언할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어요. 그다음 날 오후가 돼서.
◇ 박재홍> 그다음 날이라면 16일?
◆ 박원석>네, 16일인가요? 17일인가요? 하여튼 금요일날. 토요일.
◇ 박재홍> 토요일.
◆ 박원석>금요일날, 금요일날 오후가 돼서 연락이 왔습니다. 앞서 두 가지를 포함해서 지도부 전원은 지역구에 출마하자 이런 세 가지 제안에 대한 답을 오늘 밤 9시까지.
◇ 박재홍> ‘6월 16일 금요일 9시까지 달라?’
◆ 박원석> ‘밤 9시까지 달라.’, ‘밤 9시까지 이에 대해서 이이준석 대표 측이 원하는 바대로 답을 주지 않으면 통합 합당을 깨겠다.’ 그랬다가 바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깨겠다는 말이 부담스러워하는지 ‘재검토하겠다.’
◇ 이상민> 재검토.
◆ 박원석> 그래서 ‘아니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거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더군다나 이낙연 대표한테 ‘특정인을 배제한다는 얘기를 선언하라고 하면 이거 어떻게 하냐?’ ‘이낙연 대표가 아니면 김종민 의원이라도 해달라.’, ‘김종민 의원이 그걸 어떻게 하냐?’, ‘박원석 의원이라도.’, ‘박원석 의원이 그걸 어떻게 하냐?’ ‘설득은 해볼 수 있겠다. 당사자한테.’ ‘이만저만해서 상황이 쉽지 않으니 굳이 비례대표 출마해야 되겠느냐? 이런 설득은 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런 건 안 된다.’ ‘선언해 달라.’ ‘글쎄 그거는 그런 정당하지 말자고 여기 온 건데 어떻게 그런 걸 선언하냐?’ 그리고 ‘선거운동 전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침에 기자회견을 잡은 거예요. 다 알려진 겁니다. 기자들한테. 그래서 통합 재검토를 선언할 것처럼. 그런데 안 했어요. 밤사이에 어떤 설득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는데 그다음에 들고 나온 게 표결입니다. 최고위 안에서. 그래서 표결은 ‘당원자격심사위를 구성하자.’ 당원자격심사위 줬습니다. 그거 구성 못할 게 없고 다른 당에도 다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마찬가지로 선거 캠페인 정책 발표의 전권, 기타 등등을 표결로 어쨌든 정하겠다.’ ‘그런데 그거는 최고위원회 표결 사항이 못 된다.’ ‘정치적 조정을 다시 거쳐야 되는 문제다.’ ‘왜냐하면 통합 합의 사항에 관한 거기 때문에.’ 오늘 김용남.
◇ 박재홍> 정책위의장.
◆ 박원석> 정책위의장이 방송에서 그럽니다. ‘그거는 선대위 발족 전까지 한시적인 캠페인과 정책 발표에 전권을 달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 아니었고요. 처음에는.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있는 거고.
◇ 이상민> 아, 그래요?
◆ 박원석> 그러면 선대위 발족 논의를 먼저 하면 되잖아요? 순서상으로도 선대위 발족, 선대위 구성에 관한 논의를 먼저 해놓고 ‘그때까지 과도적으로 그러면 이거 며칠만 이렇게 합시다.’ 이게 아니에요. 선대위 구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충돌로 오지 않았겠죠. 그런데다가 그 어느 당에서나 당원 자격 심사를 한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한 달 내내, 그리고 통합 선언을 한 이후로도 공식, 비공식 회의 자리에서 앉을 때마다 배복주, 배복주 얘기를 하면서 마치 이 사람을 제거해야 뭔가 통합이 되고 뭐가 되는 것처럼 얘기를 해 왔거든요. 그게 없었다면 당원자격심사위원회 구성하자는 거 가지고 누가 그걸 반대하겠어요? 오늘도 반대 안 했어요. 당원자격심사위원회 구성하자는 거에 대해서 심사 받으면 되는 거니까. 무슨 결격 사유가 있으면 당원이 안 되겠죠. 그러나 배복주라는 사람이 전장연 박경석의 아내라는 이유로, 또 이분도 장애인 단체 출신이기 때문에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서 이준석 대표하고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과거에 그런 차원에서 이준석 대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저 사람은 배제돼야 된다라고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비판하면 저 당에서 다 나와야 되는 거랑 똑같은 얘기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윤 대통령한테 검찰 독재라고 그러면 저 국민의힘에서는 당원이 못 되는 거고 이재명 대표한테 ‘어쨌든 사당화한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때문에 물러나야 된다.’ 이런 얘기하는 사람들 다 축출돼야 된다는 논리하고 같은 거지 않습니까? 오늘 그런 비유를 씁니다. 이준석 대표가 어제인가요? ‘이재명 사법리스크 비판하던 사람이 민주당 들어간다면 말이 되느냐’ 그게 왜 말이 안 됩니까? 민주당 사법리스크 비판하는 사람 지금도 많아요. 민주당 내에. 그게 어떻게 당원이 될 수 없는 사유죠? 그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 지금 책임 있는 의견을 밝혀야 된다. 전향서 내라는 얘기잖아요. 실제 전향서 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과거에 이준석 대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특정 개인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민주정당입니까? 그게 제3지대의 새로운 정당의 모습이에요? 그게 민주정당의 지도자의 모습입니까? 그런 면에서 제가 보기에는 너무 무리한 요구, 무리한 주장을 해왔고 그게 불신이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한 거고, 오늘 같은 결과를 낳은 거죠. 뭐 구구절절이 저도 이제 와서 이런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관계 확인차 말씀을 드리는 거고 지난 일은 지난 일입니다. 어쨌든 개혁신당은 개혁신당대로 잘했으면 좋겠고 저희 새로운 미래는 새로운 미래도 잘했으면 좋겠고 3지대에서 양당 정치 극복하고자 서로 간에 노력해서 한번 만나서 이게 진영과 당을 뛰어넘어서 해 보고자 했으나 저희의 능력과 또 역량이 그리고 뭐랄까요? 정치력이랄까요? 이런 것들이 부족해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서는 이낙연 대표도 사과를 했고 국민들한테. 저도 사과를 드리고 제가 오죽하면 ‘오늘 아침에 정치 다 그만둬야 된다.’고 얘기 했습니다. 실제 저는 고민하고 있어요. 진짜 정치 그만둘까?
◇ 박재홍> 그런데 사실 2월 2일 날 저희가 이준석 대표랑 인터뷰를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제가. 그때도 보면 ‘빅텐트 왜 안 되냐?’ 했을 때 ‘통합 작업을 할 때 한 달 넘게 안 된다고 하는 인사가 있었다.’ 그게 배복주 부대표였던 것 같고 ‘그 문제 때문에 안 되고 있다.’ 라고 그때는 실명을 거론 안 했었어요.
◆ 박원석> 아니 그러니까 실명 거론을 그 뒤로 했는데요. 실명 거론을 하든, 안 하든 특정인을 배제하는 건 할 수가 없는 거죠.
◇ 박재홍> 그래서 2월 명절 시작할 때 통합됐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가 2월 12일 날 이준석 대표의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월요일이었죠. 연휴 마지막 날. 그때 이준석 대표는 ‘새로운 분이 입당 안 한 걸로 파악하고 있다.’ 라고 본인은 그렇게 통합 작업이 이루어진 이유 자체도 자신은 통합 그분이 입당 안 한 걸로 새로운 미래에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은 통합 작업을 진행했다라고 본인은 그렇게 얘기를 했었기 때문에.
◆ 박원석> 2월 10일날 입당.
◇ 박재홍> 입당을 했죠. 맞죠? 그게 사실이니까 서로.
◆ 박원석> 배복주 씨가 언제 입당했는지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2월 10일 온라인으로 하니까. ‘2월 10일 날 입당했다.’ 고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아니 그런데 배복주가 도대체 이준석 대표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결국 이런 것 같아요. 이준석 대표의 지지자들이 특정한 어떤 말하자면 이슈 내지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하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페미니즘, 그다음에 무슨 PC주의, 정치적 올바름. 그런 맥락에서 지지자들이 그것 때문에 강하게 비토를 한다. 그런데 지지자들한테 그걸 설명을 해줘야 됩니다. ‘정당에 누구나 들어와서 정당원이 되겠다는 걸 막을 장치는 없다.’ ‘그리고 그분이 피선거권이 있는 한 절차에 들어가서 후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그거를 막을 방법은 없다. 도전하는 거를.’ ‘그러나 어쨌든 내가 당대표이기 때문에 내 권한 하에서 그런 걸 내가 반대하겠다.’ 이렇게 설명하면 돼요. 그리고 본인 페북에 쓰는 것도 OK입니다. 그거 가지고 뭐라 그럽니까? 그런데 왜 그거를 특정인이나 타인들한테도 당신들도 이 입장을 밝히라고 얘기합니까? 그거는 전부 다 이준석이 되라라는 얘기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 박재홍> 또 하나는 배복주 부대표 역시 그렇게 싫어한다는 사람이 당대표인데 배복주 부대표 입장에서는 ‘또 왜 개혁신당이 그렇게 하셔야 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라는 게 있어요.
◆ 박원석> 배복주 부대표한테 물어보면. ‘자기는 이준석하고 정치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고 3지대에 동의해서 여기 온 거고 그 새로운 미래에 입당한 거지. 본인이 개혁신당에 입당한 것도 아니고 이게 통합이 된다니까 그렇게 가는 거지만 자기는 공존할 수 있다.’ ‘이거는 서로 간의 배제 영역이 아니고 토론의 영역이다.’ ‘전장연의 그 시위 방법에 대해서는.’ 그걸 배제 영역이라고 밀어내는 순간에 그때부터는 이건 원칙에 관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또 특이하게 수서역에서 박경석 씨를 우연히 만나가지고 돌아가고 있는 박경석 씨를 우연히 불러다가, 또 굳이 불러다가 간담회 하자고, 차담회 하자고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 올리고 그런 관대한 모습을 보여놓고 또 한편으로는 ‘배복주는 안 된다.’ 뭔지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또 하나 얘기 나온 얘기는 ‘새로운 미래에서 홍보본부장 혹은 수석대변인 자리에 우리 박원석 의원님을 임명하려 했는데 다른 세력이 반대했다.’ ‘그 부분이 또 갈등 요소가 됐었다.’
◆ 박원석> 그거는 갈등 요소는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굳이 그걸 해야 된다고 얘기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수석대변인 얘기를 첫 자리에서 나왔는데 ‘이준석 대표가 상황이 어렵고 지지자들이 동의해서 좀 양보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 양보했고 저도 괜찮다고 했어요. ‘제가 무슨 당직을 꼭 맡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저는 갖고 있지 않고 ‘당직을 안 맡아도 저 정도쯤 되면 어디 가서 무슨 역할이든지 하면서 이 통합이나 내지는 이 당의 총선 전략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생각을 마치 제가 당직을 못 맡아서 무슨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이랬다는 거는 사실을 왜곡하는 거고 저희 쪽에 협상대표로 나왔던 김종민 의원도, 또 이낙연 대표도 그걸 강하게 주장한 바가 없어요. ‘그냥 반대하더라.’ ‘자기 쪽 사정을 얘기하면서 그거 안 된다고 얘기하더라.’ 그래서 초기 당직을 생각해 보세요. 법적 대표 이준석, 원내대표 양향자, 사무총장 김철근, 그다음에 수석대변인 허은아 다 준 겁니다. 다. 어렵다. 그래서 마지막 남아있는 게 공동대표라는 자리하고 이 선거 총괄 선대위원장이라는 그것도 사실 상징적인 역할이죠. 그건 남아 있는데 그것마저도 이낙연 다 밀어내고 내가 하겠다라고 한다면 과한 거죠.
◇ 박재홍> 과한 거였다.
◇ 이상민> 이 마찰의 여러 가지 모습이 있겠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공관위원장으로 모셔오는 문제도 사실은 파열음이 좀 있었습니다.
◆ 박원석> 아니 그거에 대해서는 처음에 아이디어가 나왔고 다들 특별한 반대가 있었다고는 안 해요. 그런데 그거는 아이디어지 확정된 게 아니잖아요. 마치 확정된 사실처럼 기정사실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죠.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그리고 여러 후보들이 등장을 했고 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갔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거는 정식으로 재논의를 해야 될 문제인데 마치 이게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그리고 어제인가 이준석 대표 관훈토론 끝나고 기자들하고 차담회하면서 이낙연하고 김종민이 나가면 이원욱, 천하람을 최고위원으로 보임하고 김종인 위원장 모셔다가 전권 드리겠다. 그런데 그게 아침에 최고위원회에 그런 충돌이 있는지 몇 시간 안 돼서 일이거든요. 너무 머리가 빨리 돌아서 그런지 이미 이낙연, 김종민은 나갈 거다. 그러면 최고위원회 체제는 이렇게 정비하고. 그래서 저희가 저게 지난주부터의 행동이.
◇ 박재홍> 기획된 거다.
◇ 이상민> 기획 아니냐.
◆ 박원석> 일종의 기획이거나 계산이구나. 이런 느낌이 강하게 든 거예요.
◇ 박재홍> 그런데 또 그 부분에 대해서 또 상황을 기자들이 물어보길래 가정법으로 대답한 거다. 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게 또 너무 기획으로.
◆ 박원석> 그에 대해서는 코멘트 안 하겠습니다. 뭐 묻는다고 다 대답합니까?
◇ 박재홍> 그리고 또 이 공관위원장 의사를 이준석 대표가 함익병 씨한테 제안을 했는데 내부 반대로 불발됐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제안한 것이다라고 김종민 의원이 했던 발언 중에 있는데 그건 또 맞나요?
◆ 박원석> 뭐가 김종인 위원장이.
◇ 박재홍> 그러니까 이준석 대표가 공관위원장을 함익병 씨를 제안했는데 내부 반대로 불발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제안한 내용이었다.
◆ 박원석>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 이외에도 거론된 분들이 몇 분 계세요.
◇ 박재홍> 그래요? 셀럽. 셀럽 얘기가 나오길래.
◆ 박원석> 근데 함익병 원장님 저도 뭐 아는 분인데. 방송도 같이 하고.
◇ 박재홍> 저희 저희랑 코너도 같이 하신 분이에요.
◆ 박원석> 그런데 누군가가 좀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그건 또 특별히 반대에 대한 반대가 없어서 그냥 넘어간 거고. 또 다른 어떤 분에 대해서는 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또 넘어가고. 이게 아직 확정이 안 된 거예요.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그런데 김종민 의원이 그 얘기를 한 거는 이낙연 대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만났.
◇ 박재홍>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 박원석> 만났잖아요.
◇ 박재홍> 만났죠.
◆ 박원석> 만나서 그 자리에서 공관위원장도 좀 건의드리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함익병 원장님을 얘기를 하더라는 겁니다.
◇ 박재홍> 김종인 위원장이 이낙연 대표 앞에서 함익병 원장을 얘기했다.
◆ 박원석> 이준석 대표도 그 얘기를 했었고요. 그래서 이게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아이디어 아니냐라는 추정을 김종민 의원이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 박재홍> 그래요. 결국 이제 두 당이 따로 가기로 된 거죠?
◆ 박원석> 그렇죠. 이게 불안정한 상태에서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간에 뭔가 이게 기력을 소모하느니 각자 가서 이번 총선에서 각자의 지지들을 모아서 기여할 수 있는 걸 기여하고. 또 저는 협력의 여지가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박재홍> 협력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 박원석> 이게 통합이나 합당은 아니지만.
◇ 박재홍> 그래요.
◆ 박원석> 선거에서 협력할 여지는 있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어차피 양당 체제를 극복하자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면 그런 목표 하에서 협력의 여지가 있을 수 있죠.
◇ 이상민> 그런데 연인도 싸웠다가도 다시 만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거가 아직 좀 남아서 다시 그런 여지는 없습니까?
◆ 박원석>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결혼을 또 하는 건 좀 그렇죠.
◇ 이상민> 결혼을 또 합니까?
◆ 박원석> 왜냐하면.
◇ 박재홍> 대화는 할 수 있고.
◆ 박원석> 결혼식장 앞에서 지금 돌아선 건데 다시 결혼하자, 이런 거는 좀 유권자들 보기에도 민망한 얘기고. 대화하고 데이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상민> 데이트도.
◇ 박재홍> 그럼 손익계산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통합 작업을 딱 한 이후에 결국 서로의 갈 길을 가기로 했고 서로 잘 되길 바란다라고 양당 모두 얘기를 했어요. 오늘 이준석 대표도 얘기했고 이낙연 대표 역시 그런 말씀, 맥락을 하셨는데. 이제 누가 더 타격을 받았던 것일까라고 한다면 양자 모두 타격을 입었겠죠.
◆ 박원석> 아니, 다 루저 된 거죠.
◇ 이상민> 승자가 없군요.
◆ 박원석> 누가 위너라고 볼 수가 없고요. 다 루저 된 거고. 결국 양당의 그런 패권 정치, 독선 정치, 또 오만함, 이런 것들을 비판하면서 거기서 나와서 그와는 좀 다른 정치를 해 보자고 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클 수 있는 이견, 이런 것들을 조정을 못하는구나. 이게 지켜보시는 국민들한테 또 다른 실망을 안겨드렸을 것 같아요. 그 점이 사실 가장 송구스럽고 마음이 아픈 대목이고요. 제가 오죽하면 오늘 아침에 이러려면 다 정치하지 말자. 정치할 자격들 없다. 저부터 포함해서. 이런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건데. 실제로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이 3지대 정당을 하는 목적이 도대체 뭐냐, 각자. 무슨 정치를, 어떤 정치를 보이기 위해서. 윤석열과 싸우고 이재명과 싸우기 위해서 이걸 하자는 거냐. 아니면 거기서 팽 당해서 나와서 할 일이 없으니까 이걸 하자는 거냐. 아니면 양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국민들 앞에 보이고자 하는 거냐. 그럼 그 새로운 정치가 뭐냐. 이런 거에 대해서 각자 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봐야 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박재홍> 총선을 50일 앞둔 상황에서 이낙연 대표가 오늘 새로운미래로 다시 돌아가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민주당 상황도 좋지 않은 상황 아닙니까? 탈당하시는 분도 있고. 그래서 새로운미래, 다음 플랜 가장 시급한 건 뭐라고 판단하십니까?
◆ 박원석> 가장 시급한 것은 당을 빨리 수습해서 빨리 선거 체제로 가야 합니다. 내일쯤 공관위원장을 모시게 될 것 같아요.
◇ 박재홍> 새로운미래 공관장이 바로 발표가 돼요?
◆ 박원석> 그리고 나서 선대위 전환 계획도 준비가 돼 있고요.
◇ 박재홍> 그렇군요.
◆ 박원석> 그래서 좀 전까지도 제가 그 회의를 하다가 방송을 하러 왔고. 그리고 그동안에 새로운미래 쪽에서 창당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발표하지 못했던 2월 4일날 창당하고 그 뒤로 바로 합당 논의하는 바람에 국민들한테 새로운미래가 어떤 정치를,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설명드릴 기회가 없었는데 좋은 정책 공약들은 다 준비가 돼 있거든요. 그걸 차차 말씀드리는 그런 어떤 순서들을 가져나갈 거고. 이번 선거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선거를 치르겠다고 조만간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 박재홍> 공관위원장은 현역 의원입니까?
◆ 박원석> 아닙니다. 외부에서 모시려고 하고요.
◇ 박재홍> 정치인입니까?
◆ 박원석> 그런 것까지 제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유도심문하지 마세요. 우리도 약간 신비주의를 해야지.
◇ 이상민> 신비주의. 민주당은 현역 하위 평가 정체불명의 여론조사 논란이 계속되면서 비명 학살이 현실화되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가 나오고 있고. 그렇다면 민주당의 현역 이탈이 지금 가속화되는 거 아닐까. 그러면 그 현역 의원들이 새로운미래로 가는 거 아니냐. 이런 또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 박원석> 그런 전망도 있고 이른바 지라시라고 하는 그런 글도 돌고 하는데. 고민이 굉장히 많으실 것 같아요. 지금 민주당의.
◇ 박재홍> 의원들, 현역 의원들 중에 탈당 고민하시는 분들이.
◆ 박원석> 탈당 선언하신 분도 있고 기자회견해서 이게 무슨 제대로 된 공천이냐. 결국 이재명 대표 사당화의 연장 아니냐. 이런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내에 남아 싸우겠다. 이런 입장을 밝히는 분들도 있고. 아직 아무 말씀 없으시나 컷오프 대상에 들어간 걸 확인한 분들도 있고. 지금까지는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아마 좀 그 목소리가 집단화되지 않을까 저는 예상합니다.
◇ 박재홍> 집단화.
◆ 박원석> 왜냐하면 이게 비명,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친문, 이분들이 주로 그게 된 것 아니냐. 이런 평가들이 있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 박원석> 그러면 아마 당내에서 좀 이게 부당하다. 이 공천은 잘못됐다. 이렇게 공천하면 선거 진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목소리가 조만간 집단화되지 않을까. 최종적으로 그분들이 탈당을 해서 새로운미래에 합류하게 될지 어쩔지는 모르겠어요. 저희로서는 그게 합류가 된다면 큰 힘이 되고 또 이번 선거에 굉장히 중요한 모멘텀이 될 거라고 봅니다만 그렇다고 누가 누가 탈당해서 우리 쪽으로 오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잖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자기 정치 인생을 거의 실존적 고민을 하고 있어요.
◇ 박재홍> 그러니까요.
◆ 박원석> 그 실존적 고민의 순간을 존중해야죠. 그걸 옆에 가가지고, 막 옆구리 찔러가지고 이리로 오시라고 얘기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 박재홍> 집단화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그 규모는 어느 정도.
◆ 박원석> 일단 서른한 분이래요. 하위 20%에 들어간 대상이. 그중에 거의 한 90%가 이른바 비명이면서 지난 대선에 이낙연 대표를 도왔거나 이낙연 대표가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런 평가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저도.
◇ 박재홍> 뭐 언론에 나오는 얘기는 그 정도 얘기라고 얘기하시고.
◆ 박원석> 그 정도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 그중에 어느 정도 집단화 될지 그거는 잘 모르죠. 저 잘 몰라요. 민주당을 안 해 봐서.
◇ 이상민> 민주당은 안 해 봐서.
◆ 박원석> 그런 건 김종민 의원한테.
◇ 박재홍> 김종민 의원님, 지금 엄청 전화 받고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 박원석> 전화도 많이 받고 많이 만나시는 것 같아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 우리 박원석 의원님께는 이 요청은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요청은 저희가 그냥 스스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민> 인권보호 차원에서.
◇ 박재홍> 오늘 굉장히 힘든 하루를 보내셨기 때문에 오늘 나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에. 그러면 한판열전 공식 질문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 박원석> 제 인생 한 줄로. 그 비주류 인생이지만 후회는 없다.
◇ 박재홍> 후회는 없다.
◆ 박원석> 앞으로도 꼿꼿한 비주류로 살겠다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재홍> 뭔가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는데.
◇ 이상민> 애잔합니다, 오늘.
◇ 박재홍> 와중에 댓글에 박원석 의원님 멋지시고 응원합니다. 박원석 의원님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 박원석> 감사합니다.
◇ 박재홍> 많은 댓글이 오고 있기 때문에.
◆ 박원석> 수많은 악플 가운데 좀 댓글이 좀 그래도.
◇ 박재홍> 응원 많아요, 정말.
◇ 이상민> 원석들을 건져내고 있습니다.
◇ 박재홍> 합리적인 분입니다. 이렇게 또 많이 주시고. 힘내세요. 이렇게 많이.
◆ 박원석> 고맙습니다. 우리 한판승부 애청자들이 최고십니다.
◇ 박재홍> 아무튼 오늘 어떠셨어요? 우리 이상민 크리에이터.
◇ 이상민> 저는 사실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동안 뉴스쇼에서 많이 드시지 않았나요?
◇ 박재홍> 그렇죠.
◇ 이상민> 한판승부에도 좀 자주 나와주셨으면.
◆ 박원석> 이적입니까?
◇ 박재홍>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여튼 오늘 의원님 굉장히 힘든 하루셨는데 또 진솔하게 말씀 많이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또 새로운미래에서 열어갈 정치 여정에도 저희도 함께 응원드리겠습니다. 한판열전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또 다음 주 화요일 7시 30분에 또 보석 같은 게스트와 함께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박원석> 고맙습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2/20(화) 박원석 "이준석, 회의 때마다 배복주 배복주…민주정당 맞나"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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