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30(화) 김무성 "전략공천? MB때 부산 무소속연대 5명 당선 기억해라”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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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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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오늘의 게스트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두렵고 떨리는 분입니다.

◇ 박재홍> 두렵고 떨리는 건 주로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데 신학생이.

◇ 이상민> 하나님 다음으로.

◇ 박재홍> 하나님 다음으로 떨립니까?

◇ 이상민> 가장 떨립니다.

◇ 박재홍> 그리고 원래 김규완 논설위원장이 방송 끝나면 바로 가시거든요. 그런데 지금 밖에 서성이면서 계속 지금 방청하고 있어요. 들어오세요. 그냥.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보석 같은 게스트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제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분 성대모사로 제가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무성입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새누리당 당대표, 그리고 6선 국회의원까지 지냈습니다. 정치판을 보니까 너무 느슨해졌습니다. 그래서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 7선 도전에 나섰습니다. 돌아온 무성대장 김무성, 김무성 전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김무성>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박재홍> 김무성 대표님을 드디어 저희가 방송에서 뵙네요. 항상 저희가 성대모사로 뵙다가 또 실물을 저희가 만나니까 뭔가 저희는 연예인분.

◇ 이상민> 네, 그렇습니다.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 박재홍> 참 오늘 방송을 위해서 부산에서 직접 올라오셨다고요?

◆ 김무성> 네, 이것 때문에 왔다가 끝나고 또 바로 밤기차 타고 내려갔습니다.

◇ 박재홍> 아이고, 차비라도 제대로 드려야겠는데. 대표님 요즘 그런데 방송 출연이 좀 많으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라디오 전화 인터뷰나.

◆ 김무성> 그동안 언론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많았으나 당분간은 침묵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피해오다가 정치판 돌아가는 게 너무 그냥 안 좋은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제가 좀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다. 이래서 한 군데 시작하니까 여러 군데서 다 해달라고 해서 오늘 이렇게 이 바쁜 시간에 포기하고 지금 올라왔습니다.

◇ 박재홍> 얼른 내려가셔서 부산 민심을 다독이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이상민> 감사해요.

◇ 박재홍> 감사드리고 그러면 우리 김무성 대표님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첫 번째입니다. 상도동계 막내입니다. 의원님의 대표적인 어떤 수식어라고 볼 수가 있겠죠. 먼저 대표님의 어린 시절부터 좀 살펴보겠습니다. 부산에서 출생을 하셨고요. 어릴 때부터 리더십이 아주 강한 그런 학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한번 사진부터 한번 볼까요?

◇ 박재홍> 어린 시절 사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이게 고등학교 때입니까?

◆ 김무성> 예, 중, 고등학교 다닐 때.

◇ 박재홍> 중고등학교. 어린 시절에 청소년기 때도 굉장히 뭐랄까요? 외람되지만 잘생겼다는 말씀 많이 들으셨죠?

◇ 이상민> 네, 우직한, 네.

◇ 박재홍> 네, 인정하고 계십니다.

◇ 이상민> 너무 반응이 없습니다.

◇ 박재홍> 다음 사진, 다음 사진. 이것도 역시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었던 것 같고 아주 키가 훤칠하셨어요.

◇ 이상민> 그러니까요.

◇ 박재홍> 다음 사진. 이 사진, 저 사진 서 있는 분이 대표님이죠?

◆ 김무성> 네, 접니다.

◇ 박재홍> 저기 어디 놀러 가셨던 거예요?

◆ 김무성> 설악산 수학여행 가 폭포수 위에서 위험하게 사진 찍었습니다.

◇ 박재홍> 위험하게 삽니다.

◇ 이상민> 다 물이니까. 저기는 또.

◇ 박재홍> 그러니까 당시에는 SNS가 없을 때였는데.

◆ 김무성> 그러니까요.

◇ 박재홍> 그때도 위험한 사진 찍으셨네요.

◇ 이상민> 저게 바로 인스타, 인별그램 감성 아니겠습니까?

◇ 박재홍>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표님 어린 시절 어떤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학생 때 본인의 과거를 한번 회상해 보시면 모범생이었다. 아니면 리더십 있는 그래도 그냥 공부는 좀 했다.

◆ 김무성>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때 4. 19 데모가 있었습니다.

◇ 이상민> 4. 19.

◆ 김무성> 그런데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데 우리 반 애들을 끌고 운동장을 다니면서 그때 내용도 모르고 데모야, 데모야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쉬는 시간 때마다 나와 가지고 온 운동장을 돌아다녔을 때가 있었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뭔가 민주화 운동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김무성> 뭐 그런 것 같습니다.

◇ 이상민> 투쟁의 피가.

◇ 박재홍> 그렇구나. 그래서 어린 시절에 데모하다 경찰서에 끌려가셔가지고 어머니께서 속이 많이 상하셨다고 하는데 많이 혼나셨어요? 대학 시절, 어린 시절.

◆ 김무성> 고등학교 다닐 때 3선 개헌을 시도했을 때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도하면서 그 당시에는 보통 그냥 자기 학교에서만 데모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경북고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서 안국동 로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 가면 남자 고등학교 13개가 있습니다. 그 13개 고등학교 학생회장들을 제가 비밀리에 다 접촉을 해서 5월 모 시에 어디서 다 터져 나오자 이렇게 모의를 했었는데 그중에 한 학생이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해서 그 학생들이 전부 경찰서에 잡혀가 가지고 어느 날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나가 보니까 저 혼자만 나와 있고 아무도 안 나와 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경찰한테 잡혀가지고 가서 조사를 받고 학교로 와서 학교 선생님한테 제가 감금당하다시피 하고.

◇ 박재홍> 감금.

◆ 김무성> 그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에 큰 피해를 봤습니다.

◇ 박재홍> 아 그러셨어요? 어떤 피해를 당하셨어요?

◆ 김무성> 여러 가지 차관 들어오게 돼 있는 것도 막히고 그런 어려움을 좀 당했었습니다.

◇ 박재홍> 대개는 이 자리에 나오신 분이 대학생 때 어떤 학생운동 경력을 말씀하셨는데.

◇ 이상민> 그렇죠.

◇ 박재홍> 우리 대표님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시내의 고등학교를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셨던 리더십이 있으셨네요.

◇ 이상민> 그렇습니다. 대학생 때는 혼자서 무전 여행, 자전거 무전 여행을 좀 다니셨다면서요?

◆ 김무성> 한번 인생에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여름방학 때 당시 삼천리 자전거.

◇ 이상민> 삼천리 자전거.

◇ 박재홍> 그렇죠. 저때도 삼천리 자전거 있었어요.

◆ 김무성> 사서 서울에서 호남 지방으로 내려가서 다시 L자로 해서 부산까지 가는 여행을 했는데 그때 서울에서 수원까지만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었고 수원부터 그 밑에는 전부 자갈밭입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상민> 그 당시에는.

◆ 김무성> 도시로 가면 아스팔트가 있지만 도시 외곽지역 아스팔트길 있는데 그것을 7박 8일 동안 해서 부산에 도착했는데 그 과정에서 태풍도 만났고 또 뙤약볕에 제가 실신하기도 했었고 그래서 그때 그 여행이 참 저에게는 인생에 큰 도움이 됐는데 온몸이 그냥 새카맣게 타고 화상을 입고 할 정도로 힘든 도전이었는데 부산에 딱 도착하고 나니까 이 세상을 제가 다 얻은 것 같아요. 그래서.

◇ 이상민> 완주하셨으니까.

◆ 김무성> 그때 제가 이 세상일이라는 것은 시작하면 반드시 끝이 온다. 그래서 어려움에 도전하는 그런 불굴의 의지를 갖다가 그때 배웠던 게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 자전거 여행하셨던 사진 아까 잠깐 봤었던 것 같은데 그 혼자 가셨던 겁니까? 아니면.

◆ 김무성> 처음에 2명이 시작했는데.

◇ 이상민> 지금 이 사진이에요.

◇ 박재홍> 이 사진.

◆ 김무성> 알겠습니다. 중간에.

◇ 박재홍> 많이 힘들어 보이십니다. 저게 몇째 날이에요?

◆ 김무성> 저기 한 5일째 정도.

◇ 박재홍> 5일째. 발단 전기의 절정.

◆ 김무성> 중간에 한 친구는 몸이 좀 비대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 포기를 했어요. 그래서 저 혼자 다 했습니다.

◇ 박재홍> 자세히 보니까 자전거에 기어도 없네요. 그냥.

◆ 김무성> 예 기어가 없습니다.

◇ 박재홍> 기어 없는 자전거네. 진짜 힘드셨겠네요. 오르막길 가실 때도 그랬고.

◆ 김무성> 오르막 갈 때는.

◇ 박재홍> 끌고 올라가고.

◆ 김무성> 끌고 올라가고.

◇ 박재홍> 그 여행이 오늘의 김무성을 만들었다.

◇ 이상민> 큰 성취를 얻은 거 아니겠습니까? 대학교 시절에.

◇ 박재홍> 여행을 안 가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도 여행 한번 갑시다. 자전거 여행. 이런 가운데 김무성 대표님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을 정도로 YS와의 인연이 깊어지십니다. 첫 만남이 언제였던 겁니까?

◆ 김무성> 제가 포항에서 철강공장의 공장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소위 말하는 광주사태라는 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때 모든 걸 언론 통제를 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그 내용을 몰랐죠. 그런데 제 옆집에 광주 출신의 어느 여성이 살았는데 옆집에 그 집 부인이었는데 ‘우리 집이 불타고 있는지 좀 알아봐 달라. ’ 그래서 저희 집안에서 전남방직이라는 공장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돌리는 수화기 전화 있지 않습니까? 그걸 가지고 그 집 주소 정내과라는 병원을 하셨는데 거기에 피해가 없는지 알아가지고 피해가 없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는데 그 과정에서 광주의 참상을 제가 남보다 빨리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나라를 지키려고 훈련받은 군인이 그 총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발포를 했다는 이 사실에 대해서 젊은 혈기가 비분강개해서 나도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겠다. 이렇게 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생명 부지에 김영삼 당시 지도자, 민주화 투쟁의 지도자를 찾아가서 제가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연이 시작되는 거예요.

◇ 박재홍> 그런데 신기한 건 대개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 들어갈 수 있는데.

◇ 이상민> 그렇죠.

◇ 박재홍> 대표님은 공장장이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쉽게 말하면 사측이야. 사측에서.

◇ 이상민> 사측인데.

◇ 박재홍> 사측 임원이 갑자기 이 사건의 비분강개. 자체가 좀 약간 직급은 임원이었지만 노동자성이지 않나.

◇ 이상민> 굉장히 진보적인 기업가.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김무성> 저는 지금 보수, 진보를 나누는 것이 참 잘못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상민> 그래요?

◆ 김무성> 이념이지 않습니까? 좌우를 나누고 우 중에서도 진보적 우파, 보수적 우파 이렇게 분리하는 것이.

◇ 박재홍> 중도 우파.

◆ 김무성> 정확한 분리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처음 가서 YS에 갔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나 지금 이렇게 공장장 했던 누군데 나 지금 같이 하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김무성> 우선 경남 선배이기 때문에 제가 24기 후배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저도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겠다. 저한테 역할을 달라, 이렇게 말씀드려서 시작이 되었는데. 그때 김영삼 당시 총재는 수시로 연금이 되었거든요.

◇ 박재홍> 감옥에 갔죠. 가택연금.

◆ 김무성> 그리고 항상 그 기관원들이 미행을 하고 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연금이 되니까 내 분신과 같은 김덕영 비서실장과 만나서 대화를 하라. 이렇게 해서 그때부터 김덕영 실장과 같이 민주산악회,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민추협을 창립하는데 민추협 창립 멤버로 참여를 했고 당시 관철동 뒷골목에 수협 중앙회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옥탑방을 갖다가 박종웅 전 의원의 이름으로 무역회사를 한다고 위장해서 그 세를 얻었는데 그때 그 세금 한 1000만 원 들어갔습니다. 그때 제가 500만 원을 부담해서. 그때부터 참여하게 됐는데 그 당시에 그 옥탑방에다가 우리 책상 같은 거 갖다 올려놨는데 밤 되면 경찰들이 와가지고 그걸 전부.

◇ 박재홍> 압수해 가요.

◆ 김무성> 아니, 밑으로 도로변에 다 내려놔요. 그럼 그다음 날 우리 올라가서 다시 경찰과 싸워서 집기, 비품을 올리는데 그때는 엘리베이터를 꺼버려요. 그래서 9층까지 그걸 등짐을 지고 올라가서 놓고 그다음 날 아침에 또 하면 또 그게 또 내려와 있고 또 올라가고 그런 짓을 며칠간 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떼려야 뗄 수가 없는. 함께 하셨던 모습을 저희가 또 사진 자료를 준비해 봤는데요.

◇ 이상민> 사진.

◇ 박재홍> 저기 저 우리 대표님 누구십니까? 서 있는 분이요?

◆ 김무성> 오른쪽에.

◇ 박재홍> 오른쪽에. 코트.

◆ 김무성> 저기 기독교 방송국 앞입니다.

◇ 이상민> 그래요?

◇ 박재홍> 종로 시절.

◆ 김무성> 저때 최루탄 엄청나게 많아 맞습니다. 그런데 최루탄이 사과탄을 갖다가 밑으로 굴려야 하는데 경찰들이 던져서 중간에 터지게 하거든요. 그러면 그 플라스틱 파편이 눈이나 이런 데 박히면 큰일 납니다.

◇ 이상민> 그렇죠.

◆ 김무성> 그래서 YS를 갖다가 차에 태우려고 이래 하면 절대 차를 안 타십니다. 그러면 홍영길 선배하고 저하고 둘이서 YS 팔을 비틀고 해서 차에 억지로 태우고 그런 기억이 납니다. 저 왼쪽은 임향순 선배입니다.

◇ 박재홍> 다음 사진 한번 볼까요? 이 사진은.

◆ 김무성> 저게 부산 수영만입니다.

◇ 이상민> 수영.

◇ 박재홍> 1987년.

◆ 김무성> 8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YS 주도로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있다가 김대중 당시 총재죠. 그분이 평화민주당을 분당을 해 나갑니다.

◇ 박재홍> 평민당.

◇ 이상민> 분당.

◆ 김무성> 그래서 YS가 화가 나서 부산의 수영만에다가 100만 명의 군중을 모으겠다. 이렇게 선언해서 일주일 만에 100만 명을 모으게 된 거예요.

◇ 이상민> 정말요?

◇ 박재홍> 저기서 100만 모인 걸 기뻐하시고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분이 대표님이신 거죠?

◆ 김무성> 네, 접니다.

◇ 박재홍> 저때는 정치가 낭만이 있었어요. 사실은. 100만 명 군중도 모이고. 연설도 정말 이게 정치인의 연설이구나 싶었던 그런 장면도 많이 연출되셨고.

◆ 김무성> 사자후를 토했죠.

◇ 이상민> 사자후를 토했어요.

◇ 박재홍> 그렇죠.

◆ 김무성> 저 바로 제 앞에가 김동영.

◇ 이상민> 김동영.

◆ 김무성> 돌아가신 김동영 장관이고. 그 왼쪽이 서석재 의원입니다.

◇ 박재홍> 옛날 사진들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 이상민> 그러니까요.

◇ 박재홍> 사진 하나 더 볼까요? 이 사진입니다. 옆에 갸름한 신사가 김무성 대표님이십니다.

◇ 이상민> 이건 좀 멋있습니다. 이건 좀 멋있습니다, 솔직히.

◇ 박재홍> 양복 모델 느낌인데.

◇ 이상민> 그러니까요.

◆ 김무성>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 박재홍> 그러네요. 저때 무슨 말씀, 별로 중요한 말씀 안 하시는 것 같은데.

◆ 김무성> 아니, 저 책을. 저 책을 제가 YS 관련된 책을 제가 편저를 했거든요. 그래서 책 출간된 걸 갖다가 보고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상도동계 막내로서 생활을 하셨는데. 처음 한 일이 현관에서 새배 오시는 분들 인사하고 신발을 정리하는 거였다. 맞습니까?

◆ 김무성>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 박재홍>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래요, 아니래요. 그 정도는 아니래요. 그 정도는 아니고.

◇ 이상민> 이건 너무 비약입니까?

◆ 김무성> 신발 정리할 정도는 아니고. 손님들 안내도 하고. 또 총재님 오시기 전까지 대화도 하고 그런 정도 했었죠.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너무 비약이었다고.

◇ 박재홍> 당시 상도동, 동교동, 이런 얘기 많이 했는데. 상도동 정치만의 매력, 뭐였을까요?

◆ 김무성> 그런데 YS라는 분이 굉장히 열린 분입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를 좋아하시고. 우리 대선배들이 방에 가서 YS한테 말씀드려서 건의를 해서 어떤 결정을 했는데 그래서 결정이 되면 바로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가 내려오거든요. 그런데 젊은 비서들이 그걸 보고 이거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바로 쫓아 올라갑니다. 방에 올라가서 우리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거는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면 고민하시다 그 자리에서 바로 또 결정을 번복하십니다. 이것이 그렇게 사고의 유연성이 있는 분이 YS였고. 철저하게 민주주의 신봉자였습니다.

◇ 이상민> 민주주의.

◆ 김무성> 그래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반드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상의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시고 최종 결심을 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저는 YS한테 민주주의를 배웠습니다. 지금도 제가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된다는 의지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치권이 반민주적으로 지금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거대한 조직, 국회나 당 같은 이런 거대한 조직은 민주주의의 견제 기능이 없으면 결국은 타락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그런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저는 민주주의를 복원시켜야 되겠다 하는 그런 사명감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당시에는 정치부 기자들이나 언론이 그렇게 많지 않아가지고 취재를 그냥 바로 그 집으로 갔다고 하던데. 아침밥도 같이 먹고.

◆ 김무성> 그렇습니다.

◇ 박재홍> 출입처가 그냥 상도동, 동교동.

◆ 김무성> 그때는 칼국수가 시래깃국.

◇ 박재홍> 시래깃국.

◆ 김무성> 상도동 그 집이 좁은 집이거든요. 100평이 안 되는 집입니다. 아주 옛날 집이죠. 그런데 그 지하실에 식탁도 볼품 없는 식탁에 의자도 쭉 갖다 놨는데 이 기자들이 원래 술을 잘 하시지 않습니까? 밤 늦게까지 술 먹고 집에 들어갔다가 새벽 되면.

◇ 박재홍> 해장으로 와요?

◆ 김무성> 바로 이제 상도성을 쫓아와가지고 저기 식당에 가서 시래깃국 먹고 그다음에 올라가서 YS 동작 살피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있으면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을 때니까 전부 전화를 걸어가지고 이제.

◇ 박재홍> 공중전화.

◆ 김무성> 전화를 걸어가지고 구두로 기사를 보고하죠.

◇ 박재홍> 그래요.

◆ 김무성> 그러던 시절이 있었죠.

◇ 박재홍>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말씀 나누고 있는데요.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두 번째입니다. 애증의 관계입니다.

◇ 박재홍> 애증의 관계.

◇ 이상민> 김무성 전 대표님 하면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 박재홍> 그렇습니다.

◇ 이상민> 2005년 박근혜 대표의 제안으로 사무총장도 맡으시고 2007년에는 캠프 좌장 등을 맡으셨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당 대표까지 또 역임을 하셨는데요. 그런데 대표님께서 과거 인터뷰에서 박근혜하고 나는 악연이었다. 차라리 안 만났어야 됐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거 지금도 유효한 발언입니까?

◆ 김무성> 한때 참 제일 가까웠던 사이에서 지금 멀어진 사이가 돼 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그 말대로 된 거죠. 제가 국회 재경위원장. 야당일 때 노무현 대통령 시절입니다. 이 현재 부총리 시절에 제가 재경위원장이 되었는데 비록 제가 야당의 상임위원장이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은 어떤 법이든지 내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통과시키겠다 해서 그때 많은 법안이 올라와서, 정부 입법이 올라와서 이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면서 참 보람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평소에 한 번도 차담도 해 보지 않은 그런 사이였는데 저한테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했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표께서. 그래서 대표님, 사무총장은 당대표의 큰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건데 대표님하고 저하고 그동안 대화를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저를 뭘 믿고 그걸 갖다가 중요한 일을 맡으라고 하십니까. 그러니까 이제 오랫동안 저를 지켜봐왔다는 거예요. 그래도 지금 현재 재경위원장 이걸 내가 보람되게 지금 하고 있는데 지금 6개월밖에 안 됐는데 이걸 좀 더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양을 몇 번 했더니 막 화를 내시는 겁니다. 당이 이렇게 어려워졌기 때문에 당. 제가 당 사무처 출신이거든요. 당문을 잘 아는 당신한테 이걸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당을 위해서 그걸 갖다가 좀 해 줘야지 그렇게 거절만 하느냐. 그래서 화를 내길래 제가 또 마음이 약해져가지고 사무총장을 맡았는데 사무총장을 맡아서 들어가서 보니까 한 달에 2억 4000만 원 적자가 나고 있어요.

◇ 박재홍> 아, 그래요?

◆ 김무성> 통제를 했습니다. 박근혜 당대표실에 쓰는 판공비까지 제가 다 통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당 사상 최초로 도입한 게 책임당원제.

◇ 박재홍> 책임당원제.

◆ 김무성> 당비 되는, 당비를 내는 당원 제도. 그 책임당원 제도를 민주당보다 제가 먼저 도입한 거예요. 그때 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굉장히 그걸 반대를 했습니다. 왜 반대를 했겠습니까? 당비를 내는 것이 개혁인데 그것은 당비 내는 당원 하면 책임당원하고 책임당원 하면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당비 내는 책임당원의 비중이 높아질 것 아니냐. 그러면 박근혜 대표 측이 더 많아진다. 이명박 당시 시장보다. 그래서 그걸 그때 반대한 겁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싸워가지고 그것을 그 제도를 시행을 했는데 제가 10개월 그만두고 나올 때 한 달에 7000만 원 흑자를 만들고 나왔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당을 개혁을 많이 했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러면 이 국민의힘은 김무성 사무총장 전 후로 나누는군요. 그런데 박근혜 캠프에 참여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마자 YS가 상도동으로 불러가지고 1시간 넘게 나무랐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셨어요? 왜 네가 가노. 어디 가노. 우리 남이다.

◆ 김무성> 이제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께서 저를 불러가지고 심히 나무라셨고 저는 이미 몸을 실었는데 지금 제가 빠져나오면 또 그 캠프에서 배신자가 되지 않습니까? 각하 새끼가 배신자란 말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제가 좀.

◇ 박재홍> 각하.

◆ 김무성> 애교스러운 또 항변도 하고 그래서 결국은 허락을 받고 나와서 더 열심히 했었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당시에 그런데 MB가 될 거라고 하시면서 안 될 걸 알면서도 그럼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도우셨던 겁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게 하기 위해서 도우셨던 겁니까?

◆ 김무성> 저는 사무총장 10개월 하는 동안 박근혜 대표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또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일체 뭐 간섭도 안 하시고 저를 믿고 모든 걸 맡겨주셔가지고 그런 좋은 방향으로 많이 개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콤비네이션 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명박 당시 시장은 또 포항의 영흥초등학교라는 데를 졸업하셨는데 그 학교를 저희 아버지가 만든 학교거든요. 그런데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MB는 제가 자기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박근혜 쪽으로 가버리니까 섭섭한 마음이 상당히 있어가지고 그래서 MB 대통령 되고 난 뒤에 저는 아무 죄도 없는데 저를 공천해서 탈락시켜버린 겁니다.

◇ 박재홍> 이쯤에서 한 말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잠깐 나와주실까요?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이명박입니다. 아니, 그래 내가 내 정권 때 특임장관 내가 제의했잖아요. 그런데 왜 안 들어온 거야. 같은 기업가 출신 내 현대잖아, 현대. 했어야지. 아직도 섭섭하게 생각해요. 그래요. 특임 장관 재임하셨어요.

◆ 김무성> 당시 소고기 파동 기억나시죠.

◇ 박재홍> 네, 소고기 파동.

◆ 김무성> 그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에.

◇ 박재홍> 광우병.

◆ 김무성> 광우병 파동이죠. 그때 집권 초기에 한 1년 반 내지 2년 사이에 개혁 작업을 다 해야 되거든요. 그걸 한참 추진하던 과정에서 그 말도 안 되는 광우병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미친 소를 수입해서 우리나라 국민들 다 죽이려고 한다 이런 말을 갖다가 퍼뜨리면서 광우병 파동이 크게 번졌는데 100일 동안 우리나라 심장부인 광화문이 마비되었지 않습니까? 그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언론으로부터 조각 차원의 대폭 개각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그런 대폭 개각은 하기 싫고 하니까 대칭점에 있는 친박의 좌장이라 하는 저를 정무장관을 시켜서 이것을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 차기 이명박 대통령이 1차로 졌습니다마는 그다음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치의 중심에 있는 정무장관을 맡아가지고 그 일을 갖다 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겠다 하고 약속을 하고 밤늦게 박근혜 대통령 집에 보고를 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이유를 들면서 하지 말라 하는 반대말 듣고 또 그 말을 또 내가 제가 어기기 어렵기 때문에 그다음 날 다시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서 그때.

◇ 이상민> 약간의 번복처럼 됐군요.

◆ 김무성>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런 또 사연이 있었군요. 올해도 하실 의사도 있으셨는데 박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서 결국 안 하게 됐다라는 것이군요. 이런 가운데 결정적인 사건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 이상민>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를 하셨고요.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일 때는 대표님이 개헌 발언을 해서 또 이슈의 중심에 서셨습니다. 대표님의 소신이었겠지만 자기 정치하는 거 아니냐, 대통령도 계신데 이런 또 비판이 있었을 것 같아요.

◆ 김무성>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제가 그때 기자회견 했던 그 방법이 옳았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내무부 차관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 청와대도 2년 근무를 했었고 우리나라가 이토록 크게 발전한 데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참 탁월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마는 대한민국의 애국심이 높은 그리고 부지런했던 헌신적이었던 공무원의 힘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됩니다. 광화문 종합청사는 일요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반을 잘라가지고 150km 밖에 있는 세종시로 행정구역의 반을 잘라 보내는 그 비효율의 극치를 앞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항상 저는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민과 한 약속은 지켜야 되겠는데 행정부에 반을 잘라 보내는 것은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그래서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첨단산업 5개 업종을 5대 재벌에 첨단산업 5개 업종을 그 지역에 유치함으로써 이것은 넘어가자. 이렇게 이제 제안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에 과천 같은 경우도 행정도시가 되면 자족 도시가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경마장이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과천이 자족도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5대 재벌의 첨단 산업을 유치하는 것은 그대로 하고 또 박근혜 대통령이 이야기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 말도 맞으니 행정부의 반을 잘라서 보낼 것이 아니라 헌법상 독립기관이 있습니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등이 있습니다. 이게 사이즈가 똑같아요. 약 7400~500명 정도. 그래서 헌법상 독립기관을 세종시로 보내자 이렇게 제가 기자회견을 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이 옳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김무성> 그런데 이제 그것을 30분 만에 당시 박근혜 대표의 입이라고 했던 이정현이 나와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 오늘부터 김무성은 좌장이, 친박 좌장이 아니다. 배신자다.

◇ 이상민> 배신자다.

◆ 김무성> 이렇게 이제 저를 모독을 했어요. 그때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제가 공식적으로 헤어지게 된 겁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러면서 2016년에 공천 학살이 있습니다. 공천 학살. 살생부 파문이 일고 또 부당한 공천을 의결할 수 없다라고 생각을 하시고 최고회의를 열지 않고 부산 영도로 가십니다.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그 유명한.

◇ 이상민> 옥새 들고 나르샤.

◇ 박재홍> 네, 이게 또 회자가 되는데. 대표님께 아픈 기억일 수 있는데 사진을 잠깐 보겠습니다. 우리 대표님 아주 슬퍼 보입니다. 이게 사진 나오는데 당시에 무슨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대표님.

◆ 김무성> 제가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누명을 지금.

◇ 이상민> 아, 누명이죠.

◆ 김무성> 8년째 뒤집어 쓰고 있는데.

◇ 박재홍> 나르샤 아닙니까?

◆ 김무성> 네, 분명한 사실은 저는 지금까지 옥새를 본 일이 없습니다.

◇ 박재홍> 들고 간 적 없다.

◆ 김무성> 당시에 제가 당대표였었었는데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저는 상향식 공천을 당원 단계를 다 그렇게 바꿨거든요. 그런데 당시 공천관리위원장. 그리고 최고위원 중에 소위 말하는 친박들. 그때는 단일 지도 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 체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부 표결에 의해서 하는데 저는 그 9분의 1의 권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공천을 결정해서 최고위원에 올리면 그것을 의결해야만 비로소 효력을 발생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의결이 끝나면 사무총장 책임하에 당인을 공천장에 찍으면 그걸 가지고 공천받은 사람이 선관위에 제출함으로써 후보 등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아주 부당한 공천이 자꾸 올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걸 갖다가 수정을 요구하고 그래서 공방이 시작된 거죠. 그래도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는 타협이기 때문에 제가 양보를 해서 타협을 해서 몇 개를 넘겼는데 예를 들자면 공천 신청을 받았는데 현역의원 25개 지역에서 현역 의원 단수 신청이 된 겁니다. 단독 신청. 그럼 공천이라는 것은 빨리 결정을 해서 내려가서 뛰게 만들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25명의 현역 의원이 단독 신청한 현역 의원이 우연하게도 저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것을 공천을 안 주고 제일 마지막 날까지 그걸 붙잡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공천관리위원회의 횡포가 있었고 그다음에는 대표적으로 유승민, 이재호 등등이, 주호영 이렇게 6명을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다 했는데 여론조사에서 3등, 4등, 5등 한 사람을 공천을 결정해서 올라왔어요.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그거는 공천 부정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잘못된 부당한 공천은 내가 최고위원회에서 의결할 수 없다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고 저도 지역구에 하루는 가야 될 거 아닙니까? 그때 저는 처음에 영도구만 우리 선거구였는데 그 선거부터 중구가 또 합쳐졌어요. 중구는 처음이기 때문에 그게 한번 내려가려고 가서 영도다리 위에서 수심에 차서 영도 다리 난간 위에. 그런 장면입니다.

◇ 박재홍> 노래 잘하시네.

◆ 김무성> 그런데.

◇ 박재홍> 거기서 노래를 부르셨구나. 영도다리.

◆ 김무성> 그런데 원유철 당시 원내대표가 저를 설득하러 내려왔는데 이것을.

◇ 박재홍> 기억난다.

◆ 김무성> 당시 우리 당의 홍보위원장이, 전문가라는 사람이 국회에 뛰어라라는 제목으로 선거 홍보 영화를 만들었어요.

◇ 이상민> 캠페인을 했었죠.

◇ 박재홍> 그때 바바리 코트 입으시고?

◆ 김무성> 아니, 그건 아니고.

◇ 박재홍> 그거 아니에요.

◆ 김무성> 빨간 유니폼을 입고.

◇ 이상민> 다리에서 마라톤.

◆ 김무성> 서강대교도 뛰고 국회 경례도 뛰고 하는 걸 미리 찍어 놓았던 그 동영상을 편집을 해서 제목을 김무성 옥새 들고 나르샤 이렇게 해서 SNS에 대거 이것을 퍼뜨린 겁니다. 제가 다 뒤집어 쓴 거죠.

◇ 박재홍> 그랬군요.

◆ 김무성> 정말 억울합니다.

◇ 박재홍> 그때 옥새 가지고 가신 게 아니었다. 그냥 9명 중에 1명이 의결권만 있었던 것이고 나중에 결정되면 사무총장이 당인을 찍는 건데 옥새랑 무관한 것이었다.

◇ 이상민> 당에 있었다.

◇ 박재홍> 당시에 장성철 소장이 대표님 보좌관이었고. 당시에 이른바 살생부 리스트 갖고도 많이 고민하셨었던 거죠.

◆ 김무성> 그건 지금 제가 그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 박재홍> 진실.

◆ 김무성>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신동철 비서관이 있었습니다. 현기환 정무수석은 거기 간 지 얼마 안 됐고 신동철은 오래 있었기 때문에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그 내용을 또 형제같이 친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서 그게 저기에 들어온 겁니다. 신동철의 표현에 의하면 나쁜 놈들이다. 말하자면 친박 핵심 멤버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면서 누구 누구 누구 다, 이번에 공천 다 날린다. 그 명단이 쭉 있었어요. 그걸 보고 그.

◇ 박재홍> 수첩에.

◆ 김무성> 제 측근이 그걸 술술 적어 온 겁니다. 그 명단을 보니까 친박 중진들도 많이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정두원 의원이 들어가 있었어요. 정두원, 김용태 등이. 그런데 그때 국회에 농성한 일이 있어가지고 상임위별로 교대로 농성을 하는데 아침에 저는 격려 방문을 하러 가는데 복도에서 정두언을 만났어요. 그런데 정두언을 만난 김에 제가 지금 이런 게 있는 모양인데 내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걱정하지 마라. 저는 그렇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정두언이 그걸 갖다가 조선일보 기자한테 그걸 흘려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거는 외부로 결국 나가게 되면 우리 당만 손해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부로 그걸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 그게 신문에 보도가 되고 해서 그러나 그걸 내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들었다 하는 출처를 다 밝힐 수 없지 않습니까? 그때는 제가 다 침묵으로 제가 다 뒤집어 쓰고 말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 김무성>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박재홍> 그래요. 이쯤에서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한번 모시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정말 예전에 저한테 한번 만나자고 요청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수감되고 나서야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누가 우리 사이를 막은 건지 정말 분합니다. 정말 화가 나는데 그러지 말고 제 북 콘서트 한번 오시는 거 어떨까요? 북 콘서트 남에서 합니다. 북에서 하는 게 아니라.

◇ 박재홍> 박 전 대통령과 화해하고 싶다라는 말씀도 최근에 하셨던 것 같은데요.

◆ 김무성> 그건 제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린 건데 처음에 그냥 한 번 인터뷰 할 때 그 이야기를 했는데 그 뒤로 인터뷰 할 때마다 이걸 물어서 대답을 안 할 수는 없고 하자니 제가 또 너무 또 예의 없이 또 자꾸 공개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생각이 되고 해서 이 정도로 그 이야기는 삼가겠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얘기를 하고. 이런 가운데 우리 대표님 관련해서 또 유명한 사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이 사진은 안 볼 수가 없어요. 여의도 노룩 패싱. 이거, 이거. 대표님도 쿨하게 웃어주시니까 저희도 마음이 놓이면서 이때 장성철 소장이 해명한 얘기는 이거는 보좌관들한테 들어라 한 게 아니라 인터뷰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배려하는 차원에서 빨리 치우기 위해서 했던 거다 이런 건데 한번 말씀해 주세요. 대표님.

◆ 김무성> 제가 그때 당에서 굉장히 골치 아픈 일이 있고 그래서 너무 괴로운 심정이 있어서 며칠 좀 푹 잠겨서 숨었다 오려고 하다가 일본을 갔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기자들이 저를 따라다녔으니까.

◇ 박재홍> 알겠습니다.

◆ 김무성>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라드는 거 아시죠?

◇ 박재홍> 예, 알죠.

◆ 김무성> 그럼 한 3일 숨어서 쉬다가 그 복장도 저렇게 가벼운 복장이지 않습니까? 하필이면 저 가방에 연두색. 그 심각한 시기에 저 사람 놀러 갔다 온 것 같다 그런 누명 뒤집어 쓸 것 같기도 하고 하는데 또 나오려고 하는데 장성철 보좌관이 전화가 와서 바깥에 기자가 꽉 차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자동문이 딱 열리는데 보니까 제 비서가 바로 서 있어요. 그래서 장난기도 발동하고 해서 가방을 이 밀어줬는데 그걸 처음에 저기 방송이 어디 나갔을 때는 별로 그런 반응이 없었는데 하여튼 매 시간 저게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저게 보도가 되고 제가 볼 때는 한때 제가 대권주자 1위로 오래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를 죽이려고 좌파 언론들이 준동한 거라고 저는 지금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런 거는 ‘며칠 동안 뉴스를 안 보면 된다. ’ 왜냐면 제가 큰 잘못한 것도 아니고 아니 내 비서 보고 가방 이리 밀어준 건데 그게 왜 갑질입니까? 그래서 뉴스 안 보고 집에 있다가 부산에 일이 있어서 지역구 가면서 제 딸 집에 가서 딸이 부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때 내 손주가 아주 어렸는데 그 딸 집에 들어가니까 그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더니 가방 미는 흉내를 내. . .

◇ 박재홍> 순식아.

◆ 김무성> 순식아 그래서 나 깜짝 놀라서 딸 보고 ‘얘 쟤가 저거 어디서 보고 저런 짓을 하느냐? ’ 그러니까 매 시간 TV에, 뉴스에 나온다는 거.

◇ 박재홍> 할아버지.

◇ 이상민> 저희 패러디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 김무성> 그래서 또 억울하게 제가 갑질하는 의원으로 됐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 이상민> 오해라고 합니다.

◇ 박재홍> 함께 일했던 보좌관들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다라고 해명을 하고 있습니다.

◇ 이상민> 웃다가 목이 결렸습니다.

◆ 김무성> 제가 같이 일하고 싶은 의원 1위였지 않습니까? 제가 갑질했으면 그런 게 되겠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네.

◇ 이상민> 알겠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서 손주가 흉내내는 걸 보시면서 유쾌하게 넘기셨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만나고 있는데요. 인생의 세 번째 결정적 순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 이상민> 세 번째입니다. 돌아온 무대입니다. 무성 대장, 대표님께서 다시금 여의도 무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지금 부산 중영도구에 출마 선언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6선을 하셨기 때문에 7선의 도전, 이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마음가짐으로도.

◇ 이상민> 현실 정치.

◆ 김무성> 저는 흔히들 저보고 ‘은퇴해놓고는 왜 나왔느냐? ’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지금까지 은퇴 선언을 한 일은 없고.

◇ 이상민> 한 적이 없군요.

◆ 김무성> 21대 불출마 선언.

◇ 박재홍> 불출마 선언만 있었어요.

◇ 이상민> 맞아요.

◆ 김무성> 대권 불출마 선언을 했고 그런데 지난 4년간 말하자면 재야에서 정치를 좀 더 자세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 않습니까? 오랜 공직생활 끝에 쉬게 되었는데 그래도 결국은 기본적인 애국심 때문에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고 마포포럼을 만들어 가지고 전직 의원 7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매주 저희들은 세미나를 합니다.

◇ 박재홍> 전직의원이 70명이 있어요.

◆ 김무성> 네, 국정 현안 가지고 매주 세미나를 하면서 3시간 동안 토론을 하는데 그러면서 현실 정치를 지켜보니까 낯이 뜨거워서 정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타락이라는 표현을 제가 썼는데 너무 과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올바른 길을 가지 않고 옆길로 가는 걸 타락이라고 그러는 거거든요. 지금 현재 우리 국회가 그러지 않습니까? 국민적 심정은 국회를 갖다가 몽둥이 찜질을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악의 근원이다. ’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지금 정당 정치가 완전히 반민주적으로 퇴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회에서도 너무 질서가 없고 장관 청문회를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마는 장관 지명 받은 사람 나름대로 거기서.

◇ 박재홍> 전문가로.

◆ 김무성> 능력이 인정받아서 지명 받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청문회 할 때 그 장관 후보를 죄인 취급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계속 모욕을 주지 않습니까? 이게 정말 너무나 국회가 참 저급화되어 가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그 장관 후보들도 문제예요.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모욕적인 질문을 할 때 ‘왜 나한테 모욕을 주십니까? ’, ‘왜 저한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 이렇게 이야기하면 될 텐데 그냥 이거 시간만 때우면 된다. 그 모욕을 당하면서 그냥 참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저것도 반민주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질서를 바로잡아야 되겠다.

◇ 박재홍> 그렇군요.

◆ 김무성> 제가 이번에 당선되면 7선 의원이 되기 때문에 나이도 제일 많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될 것이고.

◇ 박재홍> 어른으로서.

◇ 이상민> 어른으로서.

◆ 김무성> 그래서 완전히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국회의 질서를 잡아서 국회의 품격을.

◇ 박재홍> 질서를 잡으러 간다. 품격을 회복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당 공천 기준에 따르면 부산 중영도구가 전략공천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대표님이 지금 나가신다고 선언한 상황인데 현재 상황은.

◆ 김무성> 지금 우리 당에서 저까지 5명이 예비후보 등록을 했는데 5명이 다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그중에서 누구를 한 명을 정해서 전략공천 한단 말입니까? 민주정당에서 그런 일이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 이상민> 사천은 안 된다.

◆ 김무성> 정당이라는 것은 선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공천이라는 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적합한 인물을 뽑는 것이 공천 아닙니까? 그런데 그리고 선거법에 경선해서 낙선한 사람은 그 당의 선거에 출마 못하게 그걸 묶어놨거든요.

◇ 박재홍> 맞아요.

◆ 김무성>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가 진영의 벽이 높게 되고 진영 대결인데 ‘50%의 우파 국민들의 지지를 갖다가 얼마큼 많이 받느냐? ’ 이 게임이거든요. 그 민주당 현재 지금 분열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당만 분열되지 않은 공천을 하면 무조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전략공천을 하게 되면 5명 중에 1명을 특별하게 잘난 사람 것도 아닌데 도토리 키재기했는데 지적하게 되면 나머지 4명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중에 1명은 이준석 신당으로 갈 거 아닙니까? 그럼 우파표가 분열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선거 지는 거죠. 그 지역에 지난번 선거 때 민주당 후보가 무려 45%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선거 지려면 전략공천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짓 하지 말라 이거죠.

◇ 박재홍> 혹시 전략공천을 하거나 혹은 공천에서 탈락되시는 경우가 혹시라도 있으면 무소속 출마 혹은 더 나아가서 무소속 출마 연대도 구상하고 계실까요?

◆ 김무성> 제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직후에 공천을 못 받았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 박재홍> 말씀했죠, 아까.

◆ 김무성> 박근혜 쪽 좌장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공천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당한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제가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와 가지고 무소속 연대를 결성해서 부산에서만 다섯 명을 당선시켰습니다. 그래갖고 전국적으로 15명을 당선시켰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일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당에 이야기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 무소속 연대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도 올 수는 있겠군요.

◆ 김무성> 이제는 이준석 신당이 있으니까 그걸로 가겠죠.

◇ 박재홍> 대표님도 혹시 가실 수 있어요?

◆ 김무성> 저는 거기 갈 생각이 없습니다.

◇ 박재홍> 아하, 그렇군요.

◇ 이상민> 네, 국민의힘에서.

◇ 박재홍> 그러면 대표님 입장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원하시지만 그런 일이 혹시라도 발생하면 대표님 혹시 무소속으로 출마하실 의사는 있으신 거예요?

◆ 김무성> 그런 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거는 지려고 그런 공천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매 4년에 한 번씩 반복되는 일입니다. 이길 수 있는 선거를 공천 잘못해서 선거에 지고 탄핵당하고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선거에 이기려면 그런 짓 하지 말라. ’ 하는 경고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한동훈 비대위원장 요즘 행보를 보면 일단은 대통령실과도 약간의 갈등 국면도 있었습니다. 사천 논란도 있었고, 또 특정 지역에는 본인의 어떤 전략적인 판단일 수 있겠습니다만 특정 인물을 거론하면서 손을 들어주는 장면을 연출한다거나 혹은 ‘윤희숙과 임종석 누가 더 경제를 잘하겠느냐? ’ 이런 얘기를 하면서 어떤 특정인을 거론하기도 하고 하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행보는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 김무성> 253개 선거구 중에 우리 당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재고시킬 수 있는 인물, 또 ‘이 사람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런 지역구다. ’ 이런 경우에 극소수의 전략공천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마포에는 전임 위원장이 그분 훌륭한 분입니다마는 어쨌든 지난 선거에서 세 번 떨어졌지 않습니까? 이번에 나가면 또 기초조사는 다 했겠죠. 또 안 된다고 판단되니까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되거든요. 그게 자객 공천입니다.

◇ 박재홍> 자객.

◆ 김무성> 네, 그러니까 우리 당에서 볼 때는.

◇ 박재홍> 전략공천에서.

◆ 김무성> 민주당에 몇 명 정도는 이거는 도저히 눈 뜨고 못 보겠다 하는 그런 분들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거는 김경률 그분이 ‘본인이 거기 가서 한번 이겨보겠다. ’ 하니까 그런 거 손 들어주는 것은 비대위원장이 있을 수 있는 일이죠.

◇ 박재홍> 그건 충분히 할 수 있다.

◆ 김무성> 또 원희룡 장관이.

◇ 박재홍> 인천 계양을.

◆ 김무성> 이재명 잡겠다. 그것도 얼마나 용감한 일입니까? 그런 예외는 몇 개 인정해줘야 되죠. 그걸 가지고 사천 논란은 나는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대통령실과의 갈등이 좀 있었지 않았습니까? 어제 오찬도 2시간 37분 했다. 대통령과 이 부분인데 갈등이 완전히 봉합됐다고 판단하십니까? 아까 일각에서는 ‘전혀 봉합된 거 아니다. ’, ‘공천 국면 가면 더 불거질 것이다. ’ 이렇게 예상하는 분도 있습니다.

◆ 김무성> 봉합 안 되면 선거 지는데요. 봉합해야 됩니다. 현재 그 봉합된 걸로 봐야죠.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화두가 됐던 게 유승민 전 의원인데.

◇ 이상민> 그렇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이 국민의힘에 잔류하는 것으로 입장을 냈고요. 공천 신청을 하지 않겠다. 이렇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이 유승민 의원의 생각 어떻게 또 판단하십니까?

◆ 김무성> 저는 흔히들 알려지기를 ‘유승민, 이준석은 같은 티켓이다. ’ 이렇게 다들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이미 그 ‘동일 티켓이 아니다. ’, ‘그 둘이는 가는 길이 다르다. ’

◇ 이상민> 노선이 다르다.

◆ 김무성> 그렇게 나는 이미 이야기했었고. 또 유승민 의원은 얼마 전에 제가 또 인터뷰할 때 절대 그 신당으로 가지 않는다. 유승민 의원을 품어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말씀대로 지금 유승민이 그런 아주 훌륭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또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도 또 한 번쯤 또 쉬는 것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 박재홍> 쉬는 것도 괜찮다.

◆ 김무성> 유승민 의원에게 또 다른 역할을 또 주면 되는 겁니다.

◇ 박재홍> 그런데 오늘 오후에 단독보도 나온 것은 안민석 의원이 있는 민주당, 오산 지역구에.

◆ 김무성> 오산.

◇ 박재홍> 유승민 의원의 공천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데. 그러니까 경기도를 유승민 후보를 내세움으로 해서 또 선거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라는 해석도 있을 것 같아요.

◆ 김무성>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건 본인이 동의를 해야 되기 때문에.

◇ 박재홍> 그렇군요.

◆ 김무성> 그렇게 해서 우리의 험지이고 상대의 표밭인 그런 데 가서 한 번 결전을 치르는 것도 좋고. 그래서 결국은 또 낙선하더라도 좋은 성적으로 하게 되면 또 다른 발탁이 또 있는 거고. 그게 여당이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지금 대통령실과 지금 여당에서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들이 결국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 문제 아니겠습니까?

◇ 박재홍> 김건희 리스크.

◇ 이상민> 대표님께서는 김건희 여사가 깨끗하게 사과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대통령실 분위기는 어떤 것 같으세요? 사과할 것 같습니까?

◆ 김무성> 저는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니, 제가 매일 뉴스를 보지 않습니까? 며칠 전부터 뉴스에 김 여사의 입장이라고 하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사과해서 해결된다면 사과하고 싶다. 이미 그런 의사를 표했지 않습니까?

◇ 박재홍> 당 관계자에게 그런 말을 전했다라는 보도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데.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아직 없고 또 특정 언론, 혹은 KBS와의 단독 인터뷰로 진행될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고.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다면 총선 치르기 훨씬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 김무성> 수월해지죠.

◇ 박재홍> 그런데 하실까요?

◆ 김무성> 그런데 억울한 점이 많지만 어쨌든 국민들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시는 분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럼 국민의 마음을 달래줘야죠. 그런 차원에서 그 정도의 자세는 취하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기자회견 형식이든 혹은 인터뷰 형식이든 그 문제에 관해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필요는 있겠라는 말씀. 3지대,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이 지금 계속 열심히 하고 있고.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또 이낙연 전 대표의 개혁미래당도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움직임은 어떻게 판단하세요?

◆ 김무성> 그게 다 공천 싸움입니다. 민주당의 경우에 이낙연 대표를 지지했던 현역 의원이 36명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지역에 유난시리 특보라는 이름을 가지고 선거 준비를 하던 사람이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낙연을 지지했던 의원들이 그게 죄라고 공천을 갖다 못 받으면 어떡하느냐 해서 자기들끼리 뭉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공천 못 받을 게 확실하니까 신당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이준석 신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낙연 신당, 이준석 신당이 앞으로 성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양당이 공천을 잘못해서 분열된 공천을 하게 되면 억울한 심정을 가진 거기에 낙마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리로 가서 붙어서 세가 커질 것이고. 공천을 잘 하면 그 세가 약해질 것이다.

◇ 박재홍> 그 결정적 순간은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가 될까요? 2월 중하순, 혹은 어느 정도?

◆ 김무성> 이제 컷오프.

◇ 박재홍> 컷오프.

◆ 김무성> 컷오프 되면 바로 이동할 겁니다.

◇ 박재홍> 컷오프. 컷오프 되는 시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한 2월 중하순 정도가 될까요?

◆ 김무성> 그거는 각 지역마다 쭉 해서 내려오겠죠. 주로 수도권부터 해서 내려오겠죠.

◇ 박재홍>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만나고 있는데요. 청취자 질문이 하나 와서 이거만 한번 여쭙고 마무리를 가겠습니다. 대표님, 재작년에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대표님 내정됐다가 철회했던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궁금합니다라고 문자를 주셨는데. 저도 그 뉴스가 기억이 나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내정 그 보도 봤던 기억이 났는데.

◆ 김무성> 다 지난 일인데. 대통령 선거에 이기고 당선인 시절에 그쪽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모시고 싶다. 그래서 저는 아니, 내가 자리 달라고 선거 운동한 거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갈 생각이 없다 하고 사양을 했어요. 그런데 평통 뭐 좌총 등 관변단체가 지금 다 자경화돼 가지고 제역할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맡아서 가지고 다른 관변 단체들과 같이 연대를 해서 제대로 기능을 좀 만들어 달라는 그런 취지다. 아마 그렇다면 하겠다. 그런데 인사라는 거는 절대 입 밖에 내면. 저는 YS한테 그런 걸 배웠거든요. 저는 우리 마누라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어요. 그런데 그때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받은 사람이 임기를 채우겠다 해서 다 안 그만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몇 달의 세월이.

◇ 박재홍> 해체가 됐구나.

◆ 김무성> 지나갔습니다. 그럴 때 저는 말 안 했는데. 말하자면 그 권력.

◇ 박재홍> 주변에 있는 분들이.

◆ 김무성> 주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자꾸 이야기함으로써 그게 많이 알려지게 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를 정치하다 보니까 또 반대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반대파들이 아주 상당한 강도로 항의를 한 모양입니다.

◇ 박재홍> 그래요.

◆ 김무성> 그래서 그 전임자가 그만두니까 온 언론에서 저를 지상발령을 냈는데.

◇ 박재홍> 지상발령을 냈는데.

◆ 김무성> 지상발령을 냈는데 진짜 발령은 안 오고. 그래서 또 언론에서 억측 기사가 자꾸 나오고.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느냐 하니까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서 빅스피커가 좀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고민 중이다. 그럼 나는 안 한다. 내가 언제 자리 달라고 했느냐. 해달라고 해서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나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다 하고 제 스스로 그걸 그만두겠다고 한 겁니다.

◇ 박재홍> 그런데 호사가들이 이런 또 지라시성 얘기를 했어요. 대통령님이랑 우리 대표님이랑 술 한잔 하시고 싸웠다.

◇ 이상민> 그때 틀어졌다.

◇ 박재홍> 그때 좀 인사가 틀어졌다.

◆ 김무성> 전혀 그런 사실이 없고.

◇ 이상민> 사실이 없습니다.

◆ 김무성> 대통령도 그런 분이 아닙니다.

◇ 이상민> 그런 분이 아니다.

◇ 박재홍> 여러분, 그런 분이 아니랍니다.

◇ 이상민>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 박재홍> 그런 분 아니실 것 같아요. 대표님도 그런 분이 아니시고요.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내 인생의 한 줄 요약, 한판열전 공식 질문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대표님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 김무성> 정치한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 이상민> 아니, 왜요?

◇ 박재홍> 왜 후회하세요? 왜 후회하세요?

◆ 김무성>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공인된 삶이라는 게 너무 힘듭니다.

◇ 박재홍> 그러셨구나.

◆ 김무성> 가정에 너무 불충실합니다. 저는 딸 둘, 아들 하나인데 언제 커가지고 시집 갔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지금 제가 저 손주가 다섯이거든요.

◇ 박재홍> 그러세요?

◆ 김무성> 그런데 손주를 자주 봐야 되는데 자주 못 보고 있습니다.

◇ 이상민> 배우시잖아요. 자녀분께서.

◆ 김무성> 아들이. 우리 아들도 제 아들이란 이유로 캐스팅이 잘 안 돼요.

◇ 박재홍> 되면 또.

◆ 김무성> 몇 번 올라가다가 커트 당하고 커트 당하고. 그래서 이제 우파 정권이 들어서서 좀 해 볼라 보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아들한테 맨날 원망 듣습니다.

◇ 박재홍>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 이상민> 잘 될 겁니다.

◇ 박재홍> 술술 잘 풀리시고. 또 우리 할아버지 흉내 냈던 그 손주도 건강하게 잘 크기를. 오늘 부산에서 오늘 방송을 위해서 올라와 주셨는데요. 건강하게 잘 내려가시길 바라고. 이상민 크리에이터, 오늘 김무성 대표님 뵙고 어떠셨어요?

◇ 이상민> 김무성 대표님, 근엄하고 굉장히 무서운 분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이렇게 까불 정도로. 고맙습니다, 까불 정도로 굉장히 좀 장난을 잘 받아주시고 합리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재홍> 장성철 소장이 그렇게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좋은 분이었다는 말씀이죠. 저희도 오늘 직접 확인을 했습니다. 오늘 감사드리고요. 한판열전, 오늘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 7시 30분에도 보석 같은 게스트와 만날 것을 약속드리면서 저희도 물러갑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김무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