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2/1(목) 한영애 "일상의 언저리에 내 노래가 늘 함께 있으면 좋겠다"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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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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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
■ 대담 : 가수 한영애


◇ 박재홍> 박재홍의 한판승부 2부 한영애 씨의 라이브 여울목으로 시작했습니다.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가수 한영애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 한영애> 안녕하세요. 노래하는 한영애입니다.

◇ 박재홍> 아니, 어떻게 앉아서 노래를 바로 부르셨는데 이렇게 리허설도 없이 저희가 리허설 없이 부탁드렸는데.

◆ 한영애> 그러니까 반주 테이프에. (웃음) 저도 어색해요.

◇ 박재홍> 지금 유튜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 1만 명의 관객들이 유튜브에 동접을 해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 한영애> 반갑고요. 감사드리고요.

◆ 박성태> 저는 헤드폰 빼고 반주 없이 넋 놓고 들었는데 정말 혼술집에서 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듣는 듯한. 직접 정말 영광으로 들었습니다. 정말 그 느낌에 딱 맞는 어떤 뭐랄까요. 필이 그대로 나오시는 그 노래를 듣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 진중권> 저는 듣다가 들판이 있고 시내가 있는데 막 다니다 왔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 박재홍> 그러니까요. 가사도 음미할수록 눈물 나와요. ‘참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 한영애> 그래도 아직 꿈을 놓지를 않았나 봐요. 그렇죠?

◇ 박재홍>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꿈을 놓지 않고 있는데. (웃음) 오랜만에 정말 우리 한영애 선생님을 CBS라디오에 모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굉장히 많은 팬들이 궁금해하고 계십니다.

◆ 한영애> 요즘 아무래도 콘서트 다가오니까 음악 준비하고 체력 단련하고 그러고 지내고 있습니다.

◇ 박재홍> 얼마 전에 이효리 씨랑 방송 출연하셨던 모습 보고 제가 너무 인상 깊게 봤는데.

◆ 한영애> 재미있던 건 저에게 연락드릴게 하셨는데. 제 얘기는 빠지고 효리 씨의 안부와...(웃음)

◇ 박재홍> 무슨 말씀이세요. 그 투샷이 정말로 인상적이었어요.

◆ 한영애> 그래요?

◇ 박재홍> 그 대선배 앞에서 한영애 선생님이 노래 이끌어가는 모습이 굉장히 좋았고.

◆ 한영애>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줬어요, 그 친구가. 고맙죠.

◇ 박재홍> 방금 불렀던 ‘여울목’이라는 노래가 사실은 이제 해바라기를 거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셨다가 1986년에 다시 가수로 돌아오시면서 발표했던 그 곡이었죠?

◆ 한영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굉장히 뜻깊고 이 노래 자체가 굉장히 서정적이잖아요. 멜로디도 그렇고. 그래서 이 노래를 하면서 좀 울컥하기도 하고 노래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고 갔는데도 스튜디오에 들어가면서 그때 프로듀싱을 맡았던 선배한테 ‘오빠, 노래 어떻게 하는 거지?’ 한 10년 만에 프로다운 노래를 하려니까 굉장히 긴장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 박재홍> 1986년에 발표했던 곡이니까.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에.

◆ 한영애> 아이고, 왜 그러세요!

◇ 박재홍> 죄송합니다.

◆ 진중권> 꼭 그렇게...

◇ 박재홍> 용서해 주세요.

◆ 한영애> 그 짧은 시간에 계산이 되셨어요?

◇ 박재홍> 그래서 오랜만에 팬들을 위해서 1년 6개월 만에 콘서트를 기획하고 계세요. 3월 17일.

◆ 한영애> 17일 일요일인데요. 마포아트센터에서 하거든요. 여러분들 많이 오시면 좋겠고요. 무엇보다도 이제 ‘봄이 오려나?’ 모두 이런 이야기도 하는데 그래도 뭐 봄 머리가 이미 드러난 때 아니겠어요. 그래서 오셔서 정말 아무 걱정 없이 무거웠던 겨울 좀 다 내려놓으시고 함께 흐드러지면 좋겠다.

◇ 박재홍> 콘서트 제목이 ‘다시 봄’이에요. 그 제목만 들어도 설레는 것 같아요. ‘다시 봄’

◆ 한영애> 그렇습니다.

◇ 박재홍> 제목은 선생님이 지으신 거예요?

◆ 한영애> 이번 콘서트는 묘해요. 제가 의견을 하나도 내지 않았고 우리 프로덕션 대표님하고 또 기획사의 대표님이 두 분이어서 내신 거예요.

◇ 박재홍> 그래요?

◆ 한영애> 그래서 ‘한 번쯤은 좀 따라가보자. 아마 좋은 소스가 있을 거야, 길이 있을 거야’ 그래서 전혀 참견하지 않고 지금 진행하고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3월 17일 오후 5시. 다시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간.

◆ 한영애> 여러분, 마포예요.

◆ 진중권> 제가 마포 주민입니다.

◆ 한영애> 마포에서 합니다.

◇ 박재홍> 우리 진중권 교수님이 콘서트 꼭 가고 싶다고.

◆ 한영애> 그런데 제 콘서트에서는 초대손님이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 빼고는. 40주년 아니면 특별한 앨범을 낼 때만 있는데. 이번에는 주최 측과 저희 대표님이 초대손님이 다섯 분이 있다는 거예요.

◇ 박재홍> 그래요?

◆ 한영애> ‘어떻게 하라고?’ 너무 당황을 했죠. 그래서 초대손님도 다섯 분이 계시고 그렇습니다.

◇ 박재홍> 한영애 선생님은 사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인 창법을 갖고 계십니다.

◆ 한영애> 가수는 다 그렇지 않나요?

◇ 박재홍> 아니에요, 이를 테면 JTBC의 ‘히든싱어’ 같은 프로그램.

◆ 진중권> 금방 들키죠.

◆ 한영애> 맞아요. 저희가 얘기 듣기로 나갈 수가 없대요. 금방 들키고 제 목소리를 닮은 사람이 지원자가 몇 년 동안 나오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뭐 안 하고 있죠.

◇ 박재홍> 누구도 흉내를 못내서 다 들킬 수밖에 없어서.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우리 선생님 노래를 리메이크한 후배들이 70명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굉장히 놀라운 숫자더라고요.

◆ 한영애>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후배 가수들 70명이 다시 부르고 싶고, 가수로서 또 따라하고 싶고, 흉내내고 싶고 그 노래가 너무 좋은 후배들이 70명이나 된다는 거잖아요.

◆ 한영애> 그런데 근래에 더 이렇게 바깥으로 드러나나 봐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마침 콘서트에 오겠다. 같이 부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뭐 여러 해서 ‘바람’을 부른 신예원 씨, 또 코뿔소 불렀던 이소정, 강태관, 요즘에 싱어게인3에서 ‘루씰’ 불렀던 임지수 씨 또 범주라는 이름으로 프로듀서 역할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범주 씨가 ‘누구 없소’ 해서 다섯 명이 오시는데 어떻게 그들을 빛나게 해드려야 되나. 저 그거 고민하고 있어요.

◇ 박재홍> 진정한 고수가 할 수 있는 말이네요. 선생님은 존재로 빛이 나니까 게스트로 오는 그 후배들을 어떻게 빛이 나게 해 줄까.

◆ 한영애> 그들이 빛나야죠. 그리고 얼마나 고마워요. 자신의 무대가 아닌데 와서 최선을 다하려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죠.

◇ 박재홍> 거장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제 검색해 보니까 1976년에 데뷔하셨다라고.

◆ 한영애> 그렇습니다.

◇ 박재홍> 해바라기 보컬로 활동하셨던 거죠?

◆ 한영애> 4인조, 그러니까 남녀 4중창단인데요. 그때는 통기타 음악이라고 그랬었죠. 그래서 저는 보컬을 맡았었고 기타도 잠깐 쳤지만 그런 다음에 금방 저는 연극 극단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10년 정도 있다가 86년도에 재데뷔한 거예요. 솔로로.

◇ 박재홍> 그러니까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음성이 너무 좋으세요.

◆ 한영애> 감사합니다.

◇ 박재홍> 체력 관리 어떻게 관리하시는 거예요, 도대체?

◆ 한영애> 그냥 보통 할 수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운동하고요. 연습하고 일주일에 거의 산에 가요.

◇ 박재홍> 산에 가세요?

◆ 한영애> 가고. 등등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관리는 하려고 노력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박성태 실장님과 진 교수님이 팬의 심정으로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시는데 질문해 주세요. 우리 선생님께 궁금해서 평상시에 못 물어보셨던 거.

◆ 진중권> 대학에서 연극 전공하셨고 또 배우로 무대도 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뭐였는지?

◆ 한영애> 기억에 남는 것들. 아무래도 데뷔작보다는 작품 공연 횟수를 많이 한 ‘무엇이 될고 하니’라는 연극이 아무래도 저에게는 기억에 많이 남고요. 또 하나 정말 많이 남는 것은 ‘초혼’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대사 없이 ‘아이고’만 계속하는 작품이 있어요. 그 작품이 기억이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 진중권> 대사가 항상 음악적일 것 같은데요.

◆ 한영애> 맞아요. 그랬다고 화려한 화성을 쓰고 이런 건 아니었고 화성악을 쓴 것은 아니고 그냥 ‘아이고, 아이고’ 그 사랑하는 어떤 어르신이 떠나가신 다음에 그 이후에 3일 동안에 있는 일을 하는 공연이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즐거웠고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 진중권> 가수의 정체성하고 배우의 정체성하고 이게 겹치는 건지. 아니면 어떻게 가수가 되신 거예요?

◆ 한영애> 많이 겹치기도 하죠. 저희 연극 스승님이 노래는 연극처럼 하고, 연극 대사처럼 하고 연극 대사는 노래처럼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요. 딱 연관이 되어 있긴 하지만 정서면에서 몰입도면에서는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좀 차이가 있겠죠. 그래서 둘 다 굉장히 잘 선택했었고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노래한 계기는 재수 시절 다니면서 그때는 왜 다 통기타를 칠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심심하면 선배가 하는 카페 가서 괜히 노래도 하고 여기 가서 뭐 하고 그냥 잘한다 하면 또 가서 하고 이렇게 나를 닮은 이를 찾아다니다가 그냥 해바라기도 하게 되고 ‘이게 아닌 것 같아’라고 연극, 뮤지컬로 가보고도 했다가 이제 30살 돼서 ‘아, 그것이 음악이든 연극이든 무엇이 됐든 나는 무대에 어떤 일을 택할 것이다’라고 결정한 게 처음이죠.

◆ 진중권> 궁금한 건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 하고 배우로서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의 느낌이 같아요, 다른가요?

◆ 한영애> 글쎄요, 관객을 쳐다보지 않아서. (웃음)

◆ 진중권> 몰입을 굉장히.

◆ 박성태> 저는 예전에 노래를 잘한다는 건 사실 음정이나 박자, 이 정도만 알았었는데 사실은 많지는 않지만 선생님 앞에서 부끄럽지만 나이를 좀 먹다 보니까 그 가사가 의미하는 바 절묘하게 멜로디를 살려내고 또 미세한 음색으로 그걸 또 다 보여줘야 정말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정에 공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제일 잘 부르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따로 그런 비법이라고 하면 그렇고 나는 어떻게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지 그런 게 있는지.

◆ 한영애> 아무래도 저는 가수이기 때문에 노랫말을 굉장히 중시 여기죠. 그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아까 시냇가에 다니고 오셨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좋았어. 됐어. 내가 표현을 한 거야!’ 이런 기쁨이 있어요, 사실. 그래서 그 노랫말에 어떻게 충실히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행위자가 확실한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그중에 몇 퍼센트 정도 감동이 전달되겠죠. 그리고 건방진 이야기이긴 하나 사실이어서. 그 솔로 재데뷔할 때 ‘나는 그림처럼 노래하지 않을 거야. 조각품처럼 노래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음의 뒤통수가 분명히 있을 거다. 다 만지면서 할 거야’ 그런 것들이 다 종합적으로 해서 어느 부분이 나와지고 그게 느껴진다면 너무 제가 영광인 거죠.

◇ 박재홍> 그러니까 연극을 하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콘서트도 저도 몇 번 가보고 또 진행도 봤을 때 ‘누구 없소’ 노래하실 때 보면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대화를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 있는 대화를 하는 그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소통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한영애> 그렇습니다. 우리 보통 얘기할 때 그러잖아요. ‘여보세요?’ 그러면 저쪽에서 ‘네, 왜요?’ 반응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걸 무대에서 같이 하면 좋겠죠. ‘거기 계세요? 거기 누구 없소?’

◇ 박재홍> ‘네, 여기 있어요’ 이렇게 대답하는...

◆ 한영애> 공연장에서 그렇게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 진중권> 배우가 딱 다른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배역이 딱 되는 것처럼. 그런데 아까 처음에 딱 노래하실 때 첫 시작하는 모드가 약간 접신 모드 같았어요. 딱 이렇게 하시는데. 싹.

◇ 박재홍> 화면이 딱 갈라졌어요. 맞아요.

◆ 한영애> 이제 가수들마다 배우들도 그렇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글쎄? 몰입 훈련 같은 걸 좀 하지 않을까 싶네요. 몰입에 대한 무엇.

◆ 박성태> 감정을 표현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연극 무대에 섰던 그런 것들이 노래하면서도 많이 드러나고 그러겠네요.

◆ 진중권> 좀 전에 말씀하신 게 노래를 조각처럼 하고 어루만지고 사실 제가 지금 책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공감각에 관한 거거든요.

◆ 한영애> 그래요?

◇ 박재홍> 학문을 다시 이제 시작하셨어요. 우리 선생님 1970년 데뷔하실 때 전국 신인가수 선발대회에 출전을 하셔서 당시 ‘가버릴 때까지’ 노래를 부르셨는데 당시 악단장이 우리 선생님이 내려올 때 ‘자네는 이런 데 나오면 안 돼’ 이렇게 말씀하셔서.

◆ 한영애> 그거 기억하죠. 거기 페스티벌에 한영애는 왜 나갔대요? 몰라요, 왜 나갔는지 모르고. 저 그때 극단에 있을 때인데. 리허설을 끝나고 갔는데 그때 김광석 선생님께서, 모르는 분이세요. 저는 물론 존경하고 아는 분이고 개별적으로는 이렇게 대면이 없던 분인데 ‘이봐, 이봐’ 그러면서 지휘봉으로 보면대를 막 치면서 부르세요. 그래서 ‘저요?’ 그랬더니 맞다고. ‘자네 말이야, 이런 데 나오지 말아. 이런 데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어리니까 ‘왜 저러시지? 무슨 말씀이시지?’ 그랬는데 그게 굉장히 오랫동안 저에게 나름대로의 답도 주고 화두처럼 이렇게 좀 갖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 박재홍> 선생님께서 어떤 뜻으로...?

◆ 한영애> 그건 비밀이에요.

◇ 박재홍> 비밀이에요? 그렇군요.

◆ 한영애> 저 혼자만 생각하고 있는. ‘이봐, 이봐’ ‘저요?’ 그러고 갔더니 ‘자네 이런 데 나오지 말어. 이런 데 나오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많은 힘이 됐고.

◇ 박재홍> 선생님이 지금까지 정규앨범이 6장 내셨던 거죠?

◆ 한영애> 그런데 해바라기 때도 사실 2장이 있어요. 2장 있고 그 이후에도 다른 것들이 있죠. 그러나 제 데뷔 때부터 제가 가수라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에 그때부터 치는 거죠.

◇ 박재홍> 그 가운데 2장이 대한민국 100대 명반이에요.

◆ 한영애> 영광인가요?

◇ 박재홍> 그 이후부터 그럼 이게 100대 명반이 2장이나 있으시면 엄청난 거 아닌가요?

◆ 한영애> 어떻게 그 안에 들어 있네요. 그런데 음반이라는 것이 저는 이제 노래로 작사로 몇 곡 작곡에 참여를 했지만 너무나 많은 분야가 모이는 데잖아요. 작곡, 작사, 편곡, 연주, 엔지니어 그다음에 제일 중요한 대중들. 그래서 그게 항상 ‘제 거다’ 아니면 뭐 이렇게 ‘기쁘다’ 막 크게 그렇게 오지 않고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늘 그런 마음이에요.

◇ 박재홍> 정말 많은 앨범들이 있고 그런데 다 사랑하는 손가락이시겠지만 그래도 좀 더 알려졌으면 좋았던 노래들 혹은 앨범 있으셨다면 어떤 게 있으셨을까요?

◆ 한영애> 알려졌다기보다 2014년도 돼서 오래됐네요. 샤키포라는 앨범이 그 해에 나왔는데 그때 우리 세월호 참사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 앨범 나왔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지나간 앨범이 있는데 이제부터 다시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열심히 부를까 합니다.

◇ 박재홍> 2014년에 내셨던 앨범들 더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말씀이시고요. 요즘은 한국 가요계를 보면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인정받고 있고 후배들 모습 보시면 어떤 걸 느끼십니까?

◆ 한영애> 훌륭하다, 좋다. 왜냐하면 저희 때만 해도 어디 진출하려면 영어가 아니면 안 되고 자국의 언어를 가지고 갈 수 없고 뭐 이런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쨌거나 일단 진행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죠.

◇ 박재홍> 또 젊은 친구들에게 가수로서 선배로서 조언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말씀을?

◆ 한영애> 잘하고 있는데 무슨 조언을.

◇ 박재홍> 진정한 어른이시군요. 있는 모습 그대로 후배들을 인정해 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언을 한다면?

◆ 한영애> 그들이 거기에서 잘하면서 스스로 자기에 대한 문제점이랄지 이런 것들을 킵하겠죠. 다만 이제 개인적으로 아무개, 아무개 저 친구들은 한 40살쯤 된 다음에 음악 좀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오래하는 사람이 몇인가? 오래한다고 꼭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 재능 있는 친구들 좀 아쉬운 친구도 있고 관심 있게 계속 보는 친구도 있고 그렇죠.

◇ 박재홍> 가장 관심 있게 보는 친구는 누구세요?

◆ 한영애> 비밀이에요.

◇ 박재홍> (웃음)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들으면 어떤 의미에서 계속해서 어떤 우리 선생님의 노래 세계가 넓어지고 또 깊어지는 것. 어떤 의미에서 외람되지만 또 스스로 배워가시는 듯한 그런 생각도 듭니다.

◆ 한영애> 저는 돌아가실 때까지 ‘발전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박재홍> 그러세요?

◆ 한영애> 네.

◆ 박성태> 노래를 듣다 보면 정말 그 앞서 얘기한 대로 기가 호흡에 다 실려서 부르시는데 사실 40년 전부터 하셨고 그럼 그때의 감정과 지금 또 그 노래를 부를 때 감정. 이런 것들이 다르고 그것들이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

◆ 한영애> 그래서 좋아요. 들으시는 분들은 ‘한영애가 부르는 거야’라고 생각하셔서 그냥 글쎄요, 감성이 달라졌다라는 것까지 느끼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책하고 다른 게 우리는 새로운 극장에 새로운 관객에 새로운 연주에 어떤 다른 공간을 느낄 수가 있잖아요. 책은 한 번 써놓으면. 그렇죠? 힘들어지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굉장히 본인은 좋은데 들으시는 분들은 ‘아, 변했어’라는 느낌을 가지실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러나 본인은 계속 변하고 발전하길 바랍니다.

◇ 박재홍> 오랜 시간 무대에 올라가시는데 30년 전 무대에 올랐을 때 기분과 지금 또 무대에 올라가실 때 느낌이 어떠세요?

◆ 한영애> 늘 새롭죠.

◇ 박재홍> 늘 새로우세요?

◆ 한영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 음악은 늘 새로워야 된다. 빈 캔버스여야 된다. 특히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행위 전에 깨끗한 그 빈 마음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세상을 제가 그려내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주제예요. 늘 새로워야 되는 것.

◇ 박재홍> 늘 새로워야 된다.

◆ 한영애> 그리고 늘 흥분되고. 왜냐하면 대중, 관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최고예요. 관객이 있어야지만 뭐가 좀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 있죠.

◇ 박재홍> 관객과 눈으로 혹은 그 공기 속에 소통을 하시면서.

◆ 한영애> 맞습니다.

◇ 박재홍> 우리 가수 한영애 씨 뵙고 있는데요. 3월 17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기획하고 계십니다. 약 한 2분 정도 남았습니다, 선생님. 우리 팬들에게 어떤 가수로 좀 기억되고 싶다 그런 바람이 있으시다면? 물론 아직도 활동할 시간이 많이 남아계시겠지만.

◆ 한영애> 저는 글쎄요. 어떤 가수보다는 늘상 일생의 어떤 언저리에 제 노래가 이렇게 이렇게 있으면 좋겠어요.

◇ 박재홍> 삶의 배경음악으로.

◆ 한영애> 네. 어떤 식이든 간에 이렇게 좀 구석구석 일생에 있으면 좋지 않나 그걸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구석구석 일생에 한영애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콘서트를 기대하고 바라고 있는 관객 팬 여러분께 팬 보고 싶다, 그런 말씀 한말씀 듣고 오늘 선생님과의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 한영애> 여러분 분명히 봄이 시작될 겁니다. 3월 17일날 오셔서 우리 한번 함께 흐드러져 보아요. 다시 봄입니다.

◇ 박재홍> 흐드러져 보아요. 이 한 말씀 속에 팬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은 우리 한영애 선생님의 마음과 진심이 잘 전해진 것 같습니다. 오는 3월에 꼭 선생님과 함께 한 무대에서 호흡하시고 그 느낌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귀한 노래까지 들려주셨어요. 가수 한영애 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한영애>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