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2/6(화) 임종석 "내가 당선되면 친문 구심점? 왜 나만 갖고 그러나?"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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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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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 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오늘의 게스트 저와는 굉장히 참 가깝습니다.

◇ 박재홍> 왜 그래요? 왜 가까워요?

◇ 이상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요.

◇ 박재홍> 그래요. 성동에 살아요.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유권자가 나왔네. 예, 예.

◇ 이상민> 오늘 슈퍼 갑질 제가 하겠습니다.

◇ 박재홍> 슈퍼 갑질. 오늘의 게스트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이분이 직접 한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뭐 기억나시죠? 현재는 책방 사장입니다. 문재인이고요. 오늘의 게스트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제 오른팔이죠. 86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제가 출마 선언 이후에 여기저기서 공격을 받고 있어서 제가 아주 속상해요. 오늘 한판열전에서 솔직한 심경 다 말해줄 겁니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 박재홍> 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어서 오십시오.

◇ 이상민> 숨이 차네요.

◇ 박재홍> 우리 실장님 만족하셨습니까? 오늘 소개.

◆ 임종석> 저는 뭐 이상민 크리에이터 완전 광팬입니다. 저거.

◇ 이상민> 제 영상을 다 보고 오셨다고 합니다.

◇ 박재홍> 마치 지난 2월 4일날 미리 녹화하고 온 것 같아요. 임종석 전 실장님은 드디어 저희가 방송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신 거죠?

◆ 임종석> 예, 요즘에 뭐 성동구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 박재홍> 그렇군요. 지역 주민들 만나시러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나오시고 최근까지는 뉴스도 많이 나오셨기 때문에 그 얘기는 차근차근 짚어보고 일단 저희가 한판열전이기 때문에 우리 실장님 인생, 또 어린 시절부터 쭉 짚어보면서 현안까지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그러면 임종석 전 실장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 순간부터 짚어봅니다.

◇ 이상민> 첫 번째 순간입니다. 임길동입니다.

◇ 박재홍> 임길동

◇ 이상민> 임길동, 임길동. 별명이 아주 많으셨는데 임길동을 제가 꼽아봤습니다. 우선 전남 장흥에서 4형제 중에 셋째로 출생을 하셨습니다.

◇ 박재홍> 3번이요 3번.

◇ 이상민> 대학교 때 유명하지 않습니까? 총학생회장과 전대혁 의장을 역임하셨습니다.

◇ 박재홍> 예, 전대협 의장.

◇ 이상민> 임종석 학생은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 박재홍> 학창시절에 임종석.

◆ 임종석> 고등학교 때요, 대학교 때요?

◇ 이상민> 다릅니까? 이미지가

◇ 박재홍> 일단은.

◆ 임종석> 많이 다릅니다.

◇ 박재홍> 대학 가기 전에, 중, 고등학교 때 임종석은 어떤 학생이었는지요.

◆ 임종석> 굉장히 조용했어요.

◇ 박재홍> 그래요?

◆ 임종석> 샌님 범생이. 그러니까 제가 중학 워낙 시골에서 서울에 와서 많이 쫄기도 했고.

◇ 박재홍> 장흥에서 서울까지.

◆ 임종석> 그리고 이제 중학교 3학년 중반 무렵에 제가 신장염을 크게 앓아서.

◇ 이상민> 신장염.

◇ 박재홍> 꽤 길게 앓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시점 때까지 앓았으니까 굉장히 길게 알았죠. 뭐 중학교 3학년 때는 학교도 자주 거르고 그럴 정도로 그때 많이 더 이렇게 내성적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제 친구들은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는 걸 저는 너무 좋아하는데 ‘네가?’, ‘네가?’ 이래요.

◇ 박재홍> 네가 총학생회장을, 전대협 의장을 할 줄 정말 몰랐다.

◆ 임종석> 깜짝 놀랐다고 그러죠. 제가 워낙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대체로 조용히 했었으니까.

◇ 박재홍> 그래도 신장염 앓았으면 되게 또 병원을 자주 가셨을 거예요.

◇ 이상민> 그렇죠.

◇ 박재홍> 제 동생도 신장염 앓았어가지고 병원 한 번 가면 한 두세 달 입원하기도 하고 막 그랬었으니까 고생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고등학교 때 시절 사진을 저희가 준비해 봤는데 우리 임종석 학생. 왼쪽에 해맑은 스포츠머리에 저게 고등학교 시절 맞죠? 그렇죠? 몇 학년 때입니까?

◆ 임종석> 고등학교 때 제일 가장 친했던 친구고요. 아마 저기 어디 수학여행 가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네요.

◇ 박재홍> 그렇군요. 굉장히 기분 좋은 표정으로 뒤에 있는 학생은 거의 선생님 같은, 그런. 역시 당시에도 우리 임종석 학생은 굉장히 또 리즈 시절에 잘생겼어요. 잘생겼어요.

◇ 이상민> 근데 이 대학 학과의 정보를 보니까 굉장히 독특합니다.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 굉장히 무섭게도 느껴집니다.

◇ 박재홍> 당시에 무기재료공학과가 굉장히 인기 많은 상위학과였어요.

◆ 임종석> 지금 우리 크리에이터 지금 웨폰 메테리얼 하는 거예요.

◇ 이상민> 웨폰 쏘는 거 있지 않습니까?

◇ 박재홍> 웨폰 메테리얼.

◇ 이상민> 빵야 빵야 쏘는 거, 그거 아닙니까?

◆ 임종석> 신소재.

◇ 이상민> 신소재입니까?

◆ 임종석> 신소재 공학이죠.

◇ 박재홍> 요즘 말하면 반도체 하는 그런 재료.

◆ 임종석> 그렇습니다. 요새는 재료공학이라고도 하고, 세라믹 공학이라고도 하고, 반도체 신소재 공학이라고도 하고 다양하더라고요. 학교별로.

◇ 박재홍> 그런데 원래 무기재료공학은 어떻게 신청하니까 선택을?

◆ 임종석> 글쎄요. 뭐 딱히 무기재료공학이었다기보다는 제가 고3 때는 유전공학 했었고 그리고 재수해서 무기재료공학을 한 거니까 딱히 어느 분야를 그 시점에 정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아까 제가 고등학교 때 많이 이렇게 내성적이었다고 그랬잖아요. 제 꿈은 좀 평범했어요.

◇ 박재홍> 평범한 학생.

◆ 임종석> 그냥 뭐 특별한 꿈은 없었고.

◇ 박재홍> 공학 박사?

◆ 임종석> 좀 막연하게나마 연구자, 혹은 또 교수, 그래서 그냥 조금 사치를 부리면 뭔가 밤새 뭔가 물리 문제, 수학 문제가 안 풀려서 밤을 꼴딱 새다가 잠든 뭐 이런.

◇ 이상민> 학자.

◆ 임종석> 그런 걸 연상해 보곤 했었어요. 정말 멀리 와버렸죠.

◇ 박재홍> 그러다가 지금 한양대에 가서 임길동이 됩니다.

◇ 이상민> 임길동이 되어 버렸어요.

◇ 박재홍> 어쩌다가 임길동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까? 임길동.

◆ 임종석> 이제.

◇ 박재홍> 학생운동의 길에.

◆ 임종석> 제가 전대 부장 당시에 수배가 돼서 조금 다른 사람들보다 경찰이 집중적으로, 대규모로 저를 쫓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런 수배 중에 제가 집회에 자주 나타나, 기자회견도 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런 별명이 생겨서 나중에는 정말 근거 없는 별의 별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고요.

◇ 박재홍> 수배 기간에 기자회견을 한 10번을 하셨다고 하는데.

◆ 임종석> 아마 기자회견과 집회에 나타나고 이런 거, 경찰이 이렇게 그때는 집회가 있다고 그러면 학교를 몇 중 포위를 해요. 그런데 어쨌든 나타나고, 그러면 나타난 건 확실하니까 이제 다시 봉쇄를 할 거 아니에요?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임종석> 그런데 어쨌든 없어지고 뭐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이제 그런 별명이 생긴 거죠.

◇ 박재홍> 어떻게 뚫으신 거예요? 변장술, 목은?

◆ 임종석> 어떻게 그럽니까? 그때 경찰의 봉쇄라는 게 뭐 보통 어디든 한양대다, 연세대다 하면 어마어마한 병력이 오니까 봉쇄되기 전에 들어가야죠.

◇ 박재홍> 빨리, 미리, 미리, 미리, 이제 박힐라.

◆ 임종석> 나올 때는 그러면.

◇ 박재홍> 나올 때는 그러면.

◆ 임종석> 봉쇄 풀리고 나와야죠.

◇ 이상민> 진짜 생각을 되게 심플하게 하셨네요. 전략을.

◆ 임종석> 그러니까 이제 그 안에 며칠이 굉장히 고통이죠.

◇ 박재홍> 그렇구나

◇ 이상민> 그 당시 임길동의 사진을 한번.

◇ 박재홍> 임길동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 이상민> 확인해보습니다.

◇ 박재홍> 기자회견하는 모습, 사진 기자들입니까?
◆ 임종석> 저거는 다 기자들이고요. 저거는 임수경 학생 대표 평양 방북에 대한 걸 발표하는 기자회견입니다.

◇ 박재홍> 아하, 그렇군요. 그리고 또 하나의 사진이 있는데.

◇ 이상민> 이 사진입니다.

◆ 임종석> 투쟁가입니다. 광주의 조선대학인데요. 당시에 이철규라는 분이 의문사를 하셨는데 누가 봐도 고문에 의한 것으로 깊은 의심이 됐었고 그분 장례식이 광주에 있었는데 제가 수배 중에 저기도 가게 돼서 그때 사진 같습니다.

◇ 박재홍> 수배 중에 나타났다가 경찰 나오기 전에 다시 또 사라지고 이렇게...

◆ 임종석> 저때는 거의 속도전이었습니다. 정말.

◇ 박재홍> 그렇죠.

◆ 임종석> 제가 올 걸 예상 못했으니까 빠른 시간 안에 제 할 말을 하고 봉쇄되기 전에 사라지는 그런 거.

◇ 박재홍> 그러면.

◇ 이상민> 임길동 맞네요.


◇ 박재홍> 당시에 운동권 혹은 대학생들,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실장님의 존재는 굉장히 뭐랄까? 좀 정신적 지주 같은.

◆ 임종석> 글쎄요. 제가 몇 번 말씀드렸는데 저도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연구자를 꿈꿨는데 군부 쿠테타 세력이 저의 일상을 다 무너뜨리고 평범한 꿈을 부수면서 들어온 거죠. 그래 뭐 도망가고 싶었는데 겨우겨우 버텨내면서 있다 보니까 어째서 제가 전대부장을 하게 됐단 말이에요. 그럼 그 시절에 세대들의 정서라는 건 비슷하니까 제가 어쨌든 상징적인 이런 존재로 떠오르면서 많이들 잡히지 마라, 잡히지 마라라고 기대를 해줬던 것 같아요.

◇ 박재홍> 학교에도 보호도 해주고.

◆ 임종석> 그때는 시민들도 거의 대부분 시민들이 또 학생들을 보호해 주고 할 때니까.

◇ 박재홍> 그러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은 굉장히 속상하셨을 것 같은데. 뭐라고 하셨어요?

◆ 임종석> 그때 많이 늙으셨죠.

◇ 박재홍> 수배 당시에 사진도 많이 화제인데 이 사진. 500만 원. 한양대 총학생회장, 수시로 변장하고 다님.

◇ 이상민> 저 사진은 어떤 장면을 이렇게 사로잡는 거예요?

◆ 임종석> 아마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게 재밌는 게 제가 숨어 있던 아파트 현관에도 저게 붙어 있었어요.

◇ 박재홍> 아, 그래요?

◆ 임종석> 그런데 처음에는 저 사진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명수배 사진이 붙었는데 사진이 너무 괜찮게 나와서 한 번 바꾼 걸로 제가 기억해요.

◇ 이상민> 잘생기게 나온 거.

◆ 임종석> 굉장히 저 무서워 보이는, 날카로워 보이는 영상으로.

◇ 박재홍> 그렇구나. 근데 현상금 500만 원인데 저게 당시 요즘 돈으로 어느 정도인 거예요? 500만 원이면?

◆ 임종석> 글쎄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80년대 중반이니까 500만 원이면 되게 큰 돈일 텐데. 지금도 큰 돈인데, 500만 원이.

◆ 임종석> 저런 것도 있었고. 또 2 계급 특진의 현상금 1000만 원이라는 게 실제로 거의 뭐 설득력 있게 돌아다니기도 했고. 실제로 제가 구속됐을 때 3명이나 승진시켰어요.

◇ 박재홍> 그랬구나.

◆ 임종석> 제가 좋은 일하고.

◇ 이상민> 잡혔다는 얘기인가요?

◇ 박재홍> 3명이 승진됐답니다.

◇ 이상민> 그렇게 반대로 얘기하시니까.

◇ 박재홍> 3명 승진시켰다는, 사진 하나 더 있어요.

◇ 이상민> 사진 더 있습니다.

◇ 박재홍> 수배 사진. 이거는 이제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던 사진이라고 하는데. 맨 왼쪽이 이제 임종석 전 실장님. 내무부 치안본부. 내무부라는 별칭.

◆ 임종석> 1987 영화에도 치안본부가 나오잖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요.

◆ 임종석> 그 치안본부죠.

◇ 이상민> 그렇게 수배생활 중에는 개인적인 질문인데 끼니는 어떻게 했습니까?

◆ 임종석> 끼니요?

◇ 박재홍> 그러니까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 이상민> 들키면 어떻게 해요?

◆ 임종석> 학교에 있을 때는 이제 학교에서 해결을 했었는데 이제 학교를 거의 경찰이 거의 늘 날마다 점령하고 있으니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고. 뭐 이런 작은 아파트를 친구가 구해줘서 거기에서 밥 해 먹었어요, 제가.

◇ 이상민> 그래요?

◆ 임종석> 친구 밥도 해 주고 양말도 빨아주고.

◇ 이상민> 먹다가 막 도망가고 막 이런 풍경이 연상되는데. 그건 아닙니까?

◇ 박재홍> 그런 상황은 없었다. 그런데 또 이제 임종석 실장님 얘기하면서 항상 또 빠질 수 없는 얘기가 외모 얘기인데요. 그 와중에 또 이제 한참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쟁쟁한 연예인들을 꺾고 1위에 올랐다. 그 당시에 어떤 연예인들을 꺾으신 겁니까?

◆ 임종석> 저도 뭐 들은 얘기니까. 나중에 그 하이틴이라고 하는 잡지, 여고생 잡지였다고 그러고요.

◇ 박재홍> 여고생 잡지.

◆ 임종석> 누가 보셔서 잠깐 본 것 같기도 한데. 뭐 제가 주윤발을 꺾고 1등을 했다고.

◇ 이상민> 그래요?

◇ 박재홍> 근데 뭐 사실 잘생기셨어요.

◇ 이상민> 그럼요.

◆ 임종석> 근데 이건 좀 배경이 있어요, 사실.

◇ 이상민> 그래요?

◆ 임종석> 그해에 참교육을 내세운 전교조가 그 해에 설립이 돼요. 그 해에 고등학생들, 중고등학생들한테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게 전국적으로 1500명 교사가 해직이 돼요. 그래서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아마 4.19 이후로는 처음으로 중학교 특히 고등학생들이, 거의 전교생들이 모여서 때론 울고 때론 침묵하면서 우리 선생님 돌려달라 하던 해가 그 해예요.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이례적으로 본인의 선생님, 그것도 학교에서 가장 따뜻했던 선생님들이 어찌 보면
해직이 됐거든요. 그러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일시적으로 굉장히 높아졌던 때예요. 아마도 그런 배경에서 그랬지 않을까. 그때 주윤발 인기라는 게 뭐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는데 어찌 감히 제가.

◇ 박재홍> 주윤발, 주윤발.

◇ 이상민> 주윤발.

◇ 박재홍> 저희 초등학교와.

◆ 임종석> 영웅본색.

◇ 박재홍> 영웅본색, 맞아요. 또 다 보셨네요.

◇ 이상민> 수배 중에도 봤어요?

◇ 박재홍> 수배 중에도.

◆ 임종석> 나중에 봤어요.

◇ 이상민> 나중에.

◇ 박재홍> 맞아요. 전교조는 기억납니다. 저도 갑자기 조회 시간에 왔더니 전교생 다 모아놓고.

◇ 이상민> 바바리코트 입고.

◇ 박재홍>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하시는 그런 모습도 봤는데.

◆ 임종석> 학교마다 굉장히.

◇ 박재홍> 맞아요.

◆ 임종석> 흔한 모습 중의 하나였어요. 1500명의 교사가 해직이 됐어요.

◇ 박재홍> 기억나요, 기억나요.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이후에 이제 정치권에 입성을 하게 됩니다. 영입 제의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받으셨던 겁니까?

◆ 임종석> 그렇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님으로부터 공천장을 받았습니다.

◇ 이상민>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김대중 대통령 처음 뵀을 때.

◆ 임종석> 글쎄요. 무거운, 또 한편으로는 이제, 근데 인자해 보이시는데 굉장히 무거운 느낌, 묵직한 느낌, 그런 느낌이셨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이때 이제 16대 총선, 이때도 성동구에 출마하셨네요.

◆ 임종석> 그렇습니다.

◇ 박재홍> 이세기 한나라당 4선 의원을 꺾고 최연소 당선. 최연소. 몇 살이었습니까, 그때?

◆ 임종석> 34살이었습니다.

◇ 박재홍> 34살. 지금 밖에 있는 엔지니어가 34살 같은데. 그렇지? 맞아, 우리 한별 씨.

◇ 이상민> 끄덕끄덕거리고 있습니다.

◇ 박재홍> 34살에, 저 나이 때 국회의원 됐구나.

◇ 이상민> 아니, 어떻게 4선 의원을 꺾을 수 있었습니까?

◇ 박재홍> 그러니까.

◆ 임종석> 글쎄요. 이제 어떻게 당시 이제 지금도 그때 함께했던 당원들은 그때가 가장 즐거웠고 좋았다고 회고를 하시는데. 조금 선거를 시작하면서부터 제 고민이 뭐였냐면 자꾸 시장이든 상가든 가보면 싸우지 마라. 지금도 사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인데.

◇ 박재홍> 정치 하면 싸우지 마라.

◆ 임종석> 제가 고민고민하다가 선거 시작할 때부터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흑색선전을 일치하지 않겠다

◇ 박재홍> 네거티브.

◆ 임종석> 네거티브하지 않겠다. 한 번이라도 제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이 젊은 사람에게 무슨 기대를 걸 수 있겠느냐. 그걸로 선거를 끝까지 치렀어요. 저는 끝까지 안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필 우리 이세기 의원님께서 선거 시작 때부터 저를 빨갱이로 몰아붙이셨어요.

◇ 박재홍> 전대협 의장입니다, 저 사람은. 빨갱이.

◇ 이상민> 수배 받은 적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게.

◆ 임종석> 근데 제가 빨갱이라고 해도 사람이 너무 순하게 생겼잖아요.

◇ 박재홍> 외모, 외모.

◇ 이상민> 또 얼굴 얘기입니까?

◇ 박재홍> 기승전 외모.

◆ 임종석> 어쨌든 묘하게 성동구에서만 그게 큰 이슈로 점점점점 자라났어요. 저보다 훨씬 중진이셨던 의원님은 저를 이제 그렇게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공격을 하셨고. 저는 그래도 끝까지 안 하겠습니다. 아무렴 제가 더 약점이 많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한 게 굉장히 나중에는 큰 응원을 받게 됐고 선거 막바지로 갔을 때는 어디서나 유세차를 대면 금방 500, 600명 심지어 한 1000명까지도 불어나는 이런 독특한, 그래서 그 선거를 제가 꽤 많이 이겼어요. 제 기억에는 한 1만 4500표, 이렇게 이긴 것 같아요.

◇ 박재홍> 차이만.

◆ 임종석> 많이 이겼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그 이후에는 또 실장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또 만나뵙게 되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 당시 사진이 있습니다. 한번 볼까요?

◇ 박재홍> 이게 언제쯤입니까, 이 사진이?

◆ 임종석> 저게 아마 대통령 되신 다음 사진 아닐까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임종석> 노무현 대통령도 깨끗해 보이십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요.

◇ 이상민> 두 분 다 아주 젊으신데.

◇ 박재홍> 그러니까요. 그러다가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동의안 가결되는 그런 과정이 있는데. 그때 또 사진 자료가 있는데. 이때 이제 박관용 국회의장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임종석 당시 의원이 이제 호소를 강하게 하는 그런 장면. 다음 사진. 이것도 국회에서.

◆ 임종석> 제가 아마 성인이 되고 가장 많이 울어본 날 같아요. 거의 제가 실신할 정도였으니까. 차마 믿어지지 않았고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국회에서. 저희는 이제 저 직전에, 의결 직전에 단상을 지키고 있었거든요. 매우 소수였죠. 그런데 그걸 그렇게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일어나는 기막힌 일을 눈앞에서 겪게 된 거고, 넋이 나가더라고요.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제 정치 인생의 한 페이지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임종석> 노무현 대통령께서 참 후보 시절에 제가 마지막 한 두 달을 수행을 하면서 유세 사회를 제가 다 봤어요.

◇ 박재홍> 대통령 후보 시절에.

◆ 임종석> 그래서 감격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탄생, 바보 노무현의 대통령 탄생을 함께 하게 됐고 또 재선을 해서 여당 국회의원으로 하게 됐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 박재홍> 당시에는 뭐 상대당뿐만 아니라 또 같은 당 내에서도 분열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게 또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던 거죠.

◆ 임종석> 물론입니다. 그리고 저 장면이 1시간 이상 아마 생중계됐던 걸로 나중에.

◇ 박재홍> 그렇죠.

◆ 임종석> 알았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또 저런 아픔을 또 지나오면서 또 정치 여정을 겪어오셨는데. 임종석 전 실장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두 번째입니다. 미스터 함박입니다.

◇ 박재홍> 여기서 또 웃는 얘기로 가겠습니다.

◇ 이상민> 함박스테이크 아니고요.

◇ 박재홍> 함박스테이크 아니고.

◇ 이상민> 눈물 흘린 사진을 봤지만.

◇ 박재홍> 사실은 웃음.

◇ 이상민> 실장님한테는 아주아주 유명한 별명이십니다. 미스터 함박. 미스터 함박 웃음. 웃는 모습이 정말 많이 찍혀서 생긴 별명인데요. 실장님을 웃게 한 문재인 전 대통령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 박재홍> 잠깐만 나와주세요. 문 대통령 님, 왜 이렇게 임 실장님 어디가 이렇게 좋으셨어요?

◇ 이상민> 저랑 같이 잘생겼잖아요. 인물 덕을 좀 본 거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언제였습니까?

◆ 임종석> 제 기억에 처음에 뵌 거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아마 노무현 정부 시절에 지금 조금 제가 헷갈리는데 민정수석 때 아니면 비서실장 때였던 것 같아요. 대북송금 특검안에 대한 연장 여부를 가지고 저, 김영춘 의원, 김부겸 의원 몇몇 분들이 같이 청와대 앞에 가서 면담했던 게 아마 제 기억에 첫 때인 것 같아요. 그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니까 저는 알고 있었어. 그게 아마 첫 대면이었지 않을까 그렇게 기억합니다.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사실은 문재인 정부 첫 대통령 실장이 되셨던 건데 사실은 문재인의 사람에 대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을 잘 못하지 않았었습니까? 실장님에 대해서? 그런데 어떻게 임명이 딱 됐을까 그 부분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세요.

◆ 임종석> 글쎄요. 저도 궁금합니다.

◇ 박재홍> 아, 그래요.

◆ 임종석> 이제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이제 2012년에 한 번 실패를 하셨잖아요.

◇ 이상민> 대선에서.

◆ 임종석> 네, 대선에서. 그리고 17년을 앞두고 굉장히 좀 확장된 통합과 연대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2012년에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뭔가 조금 더 사람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밀어내지 않았느냐 이런 평가가 있었거든요. 17년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제 저한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절반 이상 좀 채워달라고 주문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비교적 충실하게 미운 털 박혀가면서 그 역할을 했고 그래서 캠프에도 문재인 캠프는 새로운 얼굴들이 대체로 본부장들을 맡았었고. 또 아시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 1기에도 사실은 그전에 친문이었다고 불리는 분들이 오히려 자리를 내주고 좀 그렇지 않은 분들. 저같이 굴러온 돌들이 오히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는데 거기에는 문재인 대통령님의 그런 긴 시간의 고민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저도 선거를 잘 치르고 인수위가 없는 정부를 출범하면서 저한테 비서실장을 맡기실지 미처 짐작을 못했고.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굉장히 일 열심히 하셨어요. 열심히 하셨는데 한동안 넥타이 색깔이 같아가지고 청와대 감금설이 있었습니다.

◇ 이상민> 합성이 아니냐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 박재홍> 실제 격무였죠? 너무 힘드셨죠?

◆ 임종석> 그렇습니다. 제가 20개월을 했는데 마지막 한 두세 달은 여기 좀 더 하면.

◇ 박재홍> 죽겠다.

◆ 임종석> 죽겠다 이러다가 오후에 한 3시경 되면 이게 뒷머리가 이렇게 부어오르는 느낌 같아요.

◇ 이상민> 그래요?

◇ 박재홍> 그래요?

◆ 임종석> 그래서 더는 육체적으로도 힘들더라고요. 제가 2019년 1월에 퇴임해서 20개월 만에 이제 초대 비서실장 역장을 내놓았는데.
◇ 박재홍> 너무 행복하셨어요. 내려왔을 때?

◇ 이상민> 약간 후련하셨겠어요, 어느 정도는.

◆ 임종석>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 박재홍> 근데 재직 기간 동안 치아를 6개나 뽑으셨다고 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통령실에서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 도우실 때 너무 힘들어서 치아 뽑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저는 대통령실이 얼마나 힘들면 참모들이 치아를 뺄 정도로 스트레스.

◆ 임종석> 문재인 대통령님은 저보다 임플란트가 한 2배 많으시고 그래요. 저는 이제 재임 중에 뽑은 건 아니고 재임 중에 그거를 못 했어요. 치과 치료는 오래 걸리잖아요. 몇 번 전체 이가 들떴다 가라앉는 게 몇 번 반복이 됐는데 나와서 이제 6개를 한 거예요.

◇ 박재홍> 후유증이네. 그러니까 청와대 근무 후유증으로.

◆ 임종석> 그렇죠. 이제 전체 이가 들뜨는 게 몇 번 되고 나니까 전체적으로 약해져서 그래서 나와서 등산 많이 하면서 체력 보강하고 뭐 이도 좀 임플란트도 하고 그랬습니다.

◇ 박재홍> 그렇구나. 피곤해서 막 쉬고 싶을 때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 1시간 산책하라고 했다고 하셨는데 한숨 자는 게 나은데 왜 산책을 하라고 할까.

◇ 이상민> 몸도 아픈데.

◇ 박재홍> 어른들은 되게 산책하면 힘이 나는데 사람마다 처방이 다르거든요. 산책하셨어요?

◇ 이상민> 워낙 저...

◇ 박재홍> 산을 좋아하시니까.

◆ 임종석> 문재인 대통령이 산도 좋아하시고 꽃과 나무를 워낙 좋아하세요. 그래서 첫 저한테 산책하자고 경내 산책하자고 하시더니 저 나무는 뭔지 아냐 했는데 제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 박재홍> 나무, 나무.

◆ 임종석> 그래서 제가 나중에 따로 한 두 번 나가서 익혔어요. 그리고는 그다음 나갈 때 대통령님 참 뭐 무슨 나무가 참 좋습니다. 무슨 꽃이 좋습니다.

◇ 박재홍> 그 정도로 이제 공부를 하셨고.

◆ 임종석> 구내식당 가는 걸 좋아하셨고요. 그래서 제가 직원들 불편해합니다 해도 이렇게 갑자기 이 그날 회의 마지막 점심 직전 멤버들 또는 이제 당신께서 조금 의논했으면 하는 멤버들하고 직원 식당을 참 자주 가셨어요.

◇ 박재홍> 사장님이 사내 식당 오면 굉장히 불편하죠.

◆ 임종석> 아주 불편하죠.

◇ 박재홍> 사장님이 사내 식당 너무 좋아하셨네. 그래가지고 이제 사장님이 해외 순방 갈 때 그렇게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미스터 함박. 별명이 그때 생겼어요. 사진 볼게요. 미스터 함박. 우리 함박이 어디 계십니까?

◇ 이상민> 저기, 유독 밝아요.

◇ 박재홍> 오른쪽에 두 분. 저분이 나가시는 분 같아요. 얼른 다녀오시고 오지 마시라는 표정이에요. 다음 사진. 뒤에도 우리 또 임종석 실장님이 굉장히 아주 행복한 얼굴로.

◆ 임종석> 그거야 뭐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되시지 않나요?

◇ 박재홍> 하긴 군대 있을 때 대대장님 휴가 갈 때 정말 좋았어요. 사실은. 부대가 평안했어요.

◆ 임종석> 아무래도 이제 나가시면 비서실장은 책임은 무거운데 그래도.

◇ 이상민> 댓글에서도 부장님 출장 가서 기분이 좋은 회사원 같다 이런 또 평이 있었습니다.

◆ 임종석> 그랬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근데 그때 이제 대통령이 순방 갔을 때 우리 임종석 실장님이 국정원장 장관, 통일부 장관 대등하고 비무장지대에 시찰한 걸 두고 또 자기 정치 아니냐 이런 비판받았던 기억나시죠?

◆ 임종석> 네, 국회에서도 한 번 가서 혼났습니다.

◇ 박재홍> 그때 아마 선글라스 멋있게 쓰고 가셨던 것 같은데.

◆ 임종석> 제가 햇볕에 눈을 못 떠요.

◇ 박재홍> 그래서 또 멋있었어요. 그 사진이.

◆ 임종석> 제가 봐도 그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 이상민> 아, 본인께서 보시고.

◇ 박재홍> 사람들께서 대통령 꿈꾸고 있구나 그게 또 바로 또 이렇게 이제.

◆ 임종석> 사실은 제가 비서실장 자격으로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을 대동한 게 아니고 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고 이제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하는 이행위원장이었어요. 그래서 그 자격으로 이행위원회가 가게 됐는데 제가 위원장이다 보니까 그리고 저 공군 PX에서의 그 선글라스를 쓰라고 줘서 썼는데.

◇ 박재홍> 아, 공군에서 준 거구나.

◆ 임종석> 하필 사진이 잘 나와서.

◇ 박재홍> 이 공군 PX 선글라스가 파일럿이 쓰는 선글라스거든요. 멋있어요. 또 탑건이 쓰는 선글라스이기 때문에 간지가 멋이 있기 때문에 그랬어요.

◇ 이상민> 근데 이후에 또 청와대를 나오시게 된 거 아닙니까? 청와대 나올 때 대통령 이야기를 못 들어드린 것도 참 많았다 이렇게 또 하셨어요. 그렇다면 대통령이 부탁 요청했을 때 안 들어준 것도 참 많았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비서실장이었습니까?

◇ 박재홍> 예스맨이 아니었습니까?

◆ 임종석> 제가 처음에 비서실장 인사를 우리 언론인들 춘추관에 인사하러 갔을 때 성심껏 모시되 예스맨이 되지는 않겠다. 그리고 이제 아마 퇴임할 때 지금 우리 이상민 크리에이터 얘기하시는 못 들어드린 것도 많다 그러는 것 같은데 저는 뭐 당연히 참모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대통령께서 훨씬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갖고 계셔도 또 참모들이 볼 때 아닐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 말하지 못한다면 그건 전 참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모실 때 제 나름의 철학이 있습니다. 뜻은 거역해도 말씀은 거역하지 마라. 그래서 저는 면전에서 안 됩니다 소리는 거 거의 안 해요. 다시 한 번 검토해 보도록 해 달라. 또는 그리고 한 2~3일 또 뭉개요.

◇ 이상민> 뭉개요.

◆ 임종석> 그러면 이제 그리고 또 한 번 다시 불러서 퇴근하시면 저희들 고민은 좀 다릅니다. 몇몇 분들의 신중한 몇몇 학계 분들의 의견을 다시 수렴해서 보고를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또 마지못해 그러세요. 그럼 또 2~일 뭉개요. 근데 이 며칠이 대통령께서 다시 쭉 한번 생각하시고 또 다른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대통령께서 최종적으로 생각을 바꾸신 일들이 꽤 있었죠. 그래서 제가 누구를 모실 때는 대통령님이라고 해서 항상 옳을 수는 없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임종석> 어느 조직이든 보스의 생각이 항상 옳을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거를 반발하거나 거절하면 조직이 전체적으로 또 어려움이 생기니까 그래서 저는 뭐야 뜻은 거역하되 말씀은 거역하지 마라. 제가 간혹 후배들한테 드리는 충고입니다.

◇ 박재홍> 사무관을 모실 때.

◆ 임종석> 예.

◇ 박재홍> 임종석 전 실장 함께하고 있는데 이분 말씀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님 하실 말씀 있으시죠?

◇ 이상민> 이낙연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비법이 무엇인지요?

◇ 박재홍> 아까 말씀을 주셨던.

◆ 임종석> 제가 지금 설명드린.

◇ 박재홍> 홍준표 시장님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네요.

◇ 이상민> 홍준표입니다. 내가 자유한국당 대표였을 때 문 대통령과 한 번 딱 만났어요. 왜 한 번이냐. 내는 들러리에 설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한 번밖에 안 만났다. 내 그래 봅니다.

◇ 박재홍> 그래서 그 실장님이 문 전 대통령이 가장 아쉬웠던 게 야당과 공과 사를 가리지 않고 많이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안 만나셨던 게 아쉽다 이런 말씀하셨던데.

◆ 임종석> 그런데 사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국회와 특히 야당과의 대화를 강조하셨고 그래서 아예 여야 정부의 상설협의체를 만들자고 계속 하셔서 꽤 여러 번 회의를 했어요. 그런데 1야당이었던 우리 그 당시에 자유한국당인가요? 홍준표 대표님은 아니, 야당의 N분의 1로 들어가면 내 들러리 아니냐. 어쩜 그걸 정확하게 지적하세요.

◇ 이상민> 말씀을 왜 그래 해요. 방자하다.

◆ 임종석> 여기서 이제 홍준표 대표님은 여야정 상설협의체와 별도로 따로 한번 대통령께서.

◇ 박재홍> 제1야당 대표를 만나다가.

◆ 임종석> 제1야당 대표를 따로 만났었었는데 저는 그때도 제가 권해드리기도 했고 그러시면 좋겠다. 아무래도 1야당으로서는 다른 소수 야당들과 같이 늘 상설협의체에서만 대통령을 본다면 조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홍준표 대표를 대통령께서 따로 한번 보셨는데 저는 그런 게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 그런 소회를 제가 나중에 말씀드린 거예요.

◇ 박재홍> 만약에 나중에 임 실장님이 대통령 되시면 자주 만나시겠다.

◆ 임종석> 사실 저희는 대통령 모실 때 저나 안보실장이나 정책실장이나 국회를 자주 가서 여야 없이 보고를 자주 드렸었거든요.

◇ 박재홍> 맞아요. 국회 운영위원회 자주 열었던 것 같아요, 기억에.

◆ 임종석> 운영위원회뿐만 아니고 아예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별도로 국회를 가서 비공개 보고를 많이 드렸어요. 왜 UA 문제로 오해가 생겼을 때도 제가 김성태 원내대표.

◇ 박재홍> 가셨죠?

◆ 임종석> 그럼요. 가서 충분히 설명드리고 판을 깨든지 아니면 선배님이 함께하자고 정리를 해 주시든지 그래서 잘 됐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임종석> 지금은 너무 이 정부 들어서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번도 안 만났잖아요.

◇ 박재홍> 안 만났죠. 한 번도 안 만났죠.

◆ 임종석> 저는 이건 상상을 못 해 본 정치예요.

◇ 박재홍> 그래요.

◆ 임종석> 문 대통령께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왜 그러시는지.

◇ 박재홍> 문.

◇ 이상민> 아니, 가면이 없어가지고 못하는데. 대담을 보세요. 이제 그거 내일 틀어집니다. 방송을 보세요.

◇ 박재홍> 밤 10시에 100분간. 영수회담도 안 했는지.

◇ 이상민> 녹화 방송입니다.

◇ 박재홍> 아, 녹화 방송. 임종석 전 대통령 실장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인생의 결정적 순간 세 번째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넘어갑니다.

◇ 이상민> 친문 구심점.

◇ 박재홍> 이야, 친문 구심점.

◇ 이상민> 중구 성동구 갑에 출마 선언을 하셨습니다. 지역구 도전 16년 만이시죠? 어떤 마음으로 좀 임하게 되셨습니까?

◆ 임종석> 고향에 온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요즘 날마다 느끼는데요. 정확하게는 16년만은 아니고 12년에.

◇ 이상민> 12년.

◆ 임종석> 제가 당시 민주통합당 총선 시기에 사무총장을 했었어요. 이제 공천은 일찍 확정된 상태였는데 딱 이맘때쯤이겠네요. 이제 2월로 들어가면서 그때는 민주통합당이 여러 세력이 통합이 되다 보니까 훨씬 더 공천 갈등과 내부 균열이 심했었어요. 그래서 이제 견디기 어려운 지점까지 왔고 누군가는 상황을 희생해서라도 수습해야 할 지경이 됐고.

◇ 박재홍> 현 정치의 상황이.

◆ 임종석> 그때 당시에.

◇ 박재홍> 아, 그 당시에.

◆ 임종석> 특히 총선 때의 어떤 공천 갈등을 둘러싸고 그래서 제가 이 사무총장을 사퇴하면서 공천을 반납하고 지역구를 내놓게 됐죠.

◇ 이상민> 반납은 어려운 일 아닙니까?

◆ 임종석> 아프더라고요. 정치인이 당선될 수도 있고 낙선될 수도 있는데 낙선되면 또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하면 되는데 지역구를 내놔야 된다는 거는 좀 가족. 정치인에게 가족과의 생이별 같은 매우 아팠고 이번에도 지역에 가니까 그때 얘기들을 많이 해 주시더라고요. 잘 왔다고.

◇ 박재홍> 그러셨군요. 사진 자료 한번 보겠습니다. 이 사진이 지금 최근에 찍으신 사진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 임종석> 네, 맞습니다. 아마 성동구 용답동 상점가 시장을 다니던 중에 찍힌 사진 같습니다.

◇ 이상민> 용답동.

◇ 박재홍> 누구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밝게 웃으시는 거예요? 지금 유모차인가요? 저게?

◆ 임종석> 조금 불편하신 어머님이셨는데.

◇ 박재홍> 휠체어군요. 휠체어.

◆ 임종석> 원래 사진은 어머님까지 같이 나왔는데 저희가.

◇ 박재홍> 어머니의 보호를 위해서. 네, 또 유권자의 눈높이로 또 아이컨택하는 모습을 또 보여주셨어요.

◇ 이상민> 그런데 도전이 쉽지 않습니다. 출마 선언하신 이후로 당 내에서 너무나 많은 비판이 쏟아지지 않습니까? 이거 뭐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해서 그런지 이재명 대표의 라이벌이 될까 봐 이런 비판이 있는 거다. 이런.

◇ 박재홍> 가장 큰 핵심이 비판점이 뭐냐 하면 실장님이 원내에 진입을 하면 지금 당내 계파가 구심점이 없는데 오시면 친문의 맏형으로 구심점이 될 것이다. 차기 대권 구도에 이재명 대표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거기 때문에 견제를 좀 받고 있다라는 설이 있습니다.

◆ 임종석> 괜한 억측들이죠.

◇ 박재홍> 억측들입니까?

◆ 임종석> 지금 총선 결과에 따라서 모든 정치 상황이 달라지는 판에 사실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얘기겠습니까? 왜 저만 갖고 그러나 모르겠어요.

◇ 이상민> 나만 가지고 그래.

◇ 박재홍> 오늘 제목 이걸로 할까요? 임종석, 왜 나만 갖고 그러냐? 총선이 60여 일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 왜 그러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런다고 보세요? 실장님은?

◆ 임종석> 글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지난번에 문재인 정부 3년차에 2020년이죠. 치러진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했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거의 180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 임종석> 저는 그때 그 결과가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을 결과가 나자마자 했었는데 어쨌든 많은 현역들이 계시고 또 새로 정치할 자원들은 새로 도전하는 분들은 많고 하니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데 그래도 이제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기서 더 균열, 더 분열하면 이제는 분열하는 쪽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제가 계속 호소드리는 겁니다. 누가 더 단합하고 내부 통합을 공고히 해서 국민들 속으로 확장하느냐에 이번 선거는 달렸다. 그래서.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에 보여주시길 바란다. 그러니까 책임 있는 자세라 하면 돌려서 공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말아달라 혹은 불출마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워딩이 아니냐라는 해석이 있고 이게 우리 실장님을 향해서 하신 말이다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는데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 임종석> 뭐 원칙적인 말씀이시겠죠.

◇ 박재홍> 원칙적인 말씀이다.

◆ 임종석> 제가 듣기로는 오늘 그 뒤에 어느 기자가 물었더니 저에 대한 얘기는 아니라고 하시고.

◇ 박재홍> 또 아니라고 했습니까?

◆ 임종석> 그렇습니다마는 제가 직접 들은 거는 아니어서.

◇ 박재홍> 알겠습니다. 그래서 또 저희 김현정 뉴스에 출연하셔서 어제죠? 모두 윤석열 검사에 속았다. 추미애 집안 싸움 그만하자 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걸 속았던 겁니까? 윤석열 검사에게?

◆ 임종석> 윤석열 정부 탄생에 문재인 정부 책임 아니냐 이런 분들 말씀을 쭉 들어보면 결국 왜 윤석열 검사 같은 인물을 애시당초 발탁을 했느냐.

◇ 박재홍> 뭐 총장으로까지 시켰느냐.

◆ 임종석> 물론 총장도 그다음이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했느냐 이런 얘기시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제가 모두가 속은 거다. 그러니까 그때 당시의 민주당 분위기는 기존에 정치 검찰의 어떤 여러 이런 행태에 대한 불신이 컸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고 당시 윤석열 검사가 국회에 와서 한 행동이나 발언들이 굉장히 참신해 보였던 게 사실이잖아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하는 그런 대목들이. 그래서 17년 1월 당시에 보면 지금 이재명 대표께서도 후보 시절에 어느 방송에 1호 대선 공약이 뭐냐는 질문에 억강부약 사회 만드는 거다. 윤석열 검사 같은 사람 검찰총장 시켜서 정부의 부패를 일소하고 싶다 그랬던 걸 보면 모두가 그런 어떤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속은 거다. 그러면 검찰총장이라는 가장 중립적인 자리에 있어야 될 사람이 항명을 하고 정치할 결심을 하고 그걸 이용한 그 윤석열 당시 총장을 탓해야지 면접에서도 본인이 가장 검찰개혁을 잘할 수 있다고.

◇ 박재홍> 당시에 윤석열 후보가.

◆ 임종석>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언제가 뿌리냐?

◇ 박재홍>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

◆ 임종석> ‘하기 시작하면 결론이 나지도 않고 내부 균열은 커진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모두가 자제하고 하나 되자.’ 이런 취지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 실장님 출마하실 예정인 서울 중구 성동갑 전략선거구로 지정이 됐다고 하는데 그 전략공천하겠다는 얘기죠?

◆ 임종석> 그런 의미는 아니죠. 그러니까는 사고지구당이거나, 현역 의원이 아니거나, 또 불출마를 선언했거나, 이런 지역은 당원 단계에서 자동으로 전략공천지역으로 묶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전략공천을 할 수도 있고, 전략 경선을 할 수도 있고, 그건 다 열려 있는 것이죠.

◇ 박재홍> 그렇군요. 만에 하나 우리 실장님이 해당 지역구에 혹시 다른 인물이 전략공천이 되는 경우가 혹시 생기면.

◆ 임종석> 왜 신년에 그런 부정 타는 말씀을 하십니까?

◇ 이상민> 부정탄...

◆ 임종석> 섭섭합니다.

◇ 박재홍> 모든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또 계획을 세우셔야 되니까.

◆ 임종석> 사과하세요.

◇ 박재홍> 사과하세요.

◇ 이상민> 사퇴하세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플랜 B는 혹시 생각하고 계세요? 아직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까?

◆ 임종석> 저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당이 권한을 행사하는 거긴 하지만 선거잖아요. 성동구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 박재홍> 인물 경쟁력.

◆ 임종석> 그리고 성동구민들의 성동구 당원들과 구민들의 여론도 굉장히 중요한 거기 때문에 저는 지금은 성동구 지역위원회의 모든 당원과 임종석 후보가 혼연일체로 똘똘 뭉쳤다 자신합니다.

◇ 박재홍> 아하, 그렇군요. 그래서 실장님이 공천을 해당 지역구에 받으시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희숙과 임종석, 둘 중에 누가 경제를 더 잘하겠습니까? 이렇게 아주 도발적인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임종석> 경제 얘기 나오면 저 정말 땡큐죠.

◇ 박재홍> 아, 그런가요? 경제 얘기 나오면 땡큐다.

◆ 임종석> 오히려 지금 현재 민심이 이렇게 악화된 원인도 결국은 민생 파탄과 경제 실정입니다.

◇ 박재홍> 그럼 결국 정권 심판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 임종석> 그렇습니다. 저는 기저에 흐르는 이번 총선의 민심, 시대 정신은 경제 실정, 민생 파탄, 윤석열 정권 심판일 거라고 저는 거의 확신합니다. 실제로 모든 민생지표가 거의 IMF 환란 이후에 최악입니다.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윤희숙 씨 같은 경제학자들이 다 해놓은 이야기들이에요. 모든 언론을 종합해보면 보십시오. 개인회생도 역대 거의 최고죠. 법인 파산도 그렇죠. 또 저 체불 임금도 그렇죠. 소상공인 폐업도 그렇죠. 소매 판매도 이십수년 만에 최악이죠. 물가 높죠. 금리 높죠. 정말 골목 상가나 전통시장 다녀보면 민망해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인사나. 민망해서 명함을 건넨다는 게 너무 미안해요.

◇ 박재홍> 너무 어려우셔서.

◆ 임종석> 그런데 무슨 그런 경제 전문가가 있으면 진작 이 윤석열 대통령 옆에 붙여서 좀 챙기지 그랬어요. 경제 얘기가 이슈가 된다면 100번 환영이고 그리고 경제학 공부를 했다는 것과 경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천양지차고 그 사이에는 큰 강이 놓여 있죠. 많은 국정 경험, 국회의 경험, 행정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이죠.

◇ 박재홍> 그렇군요. 아마도 윤미숙 전 의원이 두 분이 만약에 후보로 붙어서 양자 토론을 할 경우에 경제 비판할 때 문재인 정부 시절에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강하게 비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능하지 않았냐?’, ‘이 서울 집값 너무 많이 올렸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 그럴 수도 있어요.

◇ 이상민> 부동산 3법 얘기하면서.

◇ 박재홍> 그럼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임종석> 겸허히 인정해야죠.

◇ 박재홍> 아, 겸허히 인정한다.

◆ 임종석> 저는, 사실은 저로서는 좀 아쉬운 지점이 이런 거예요. 세계적으로 양적 완화가 완전히 보편적으로 지금 진행이 돼 있고 또 팬데믹 코로나 상황이 와서 정부는 서민경제 지원을 위한 재정 확대를 계속하고 있으면 당연히 제일 위험이 먼저 올 때는 부동산이죠. ‘저는 처음부터 이 문제가 어렵다고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 박재홍> 부동산 문제를.

◆ 임종석> ‘부동산이 가장 위험하고 정부가 여러 조치를 취하겠으나 실제로 부동산이 많이 상승할 위험이 높다.’, ‘정부가 이런 조치를 하겠으니 국민들께서도 잘 견뎌주시고 이러이러한 노력에 함께해 달라.’ 하면서 무슨 대책들을 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이거를 잡겠다고 너무 목표를 세우니까 많은 정책을 빈번하게 내게 되고.

◇ 이상민> 맞아요. 너무 많아 나갔어요. 사실은.

◆ 임종석> 그것이 앞서 말씀드린 양적 완화, 재정 확대에서는 효과를 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국민들의 거기에 대한 실망은 누적되고 그래서 저는 모든 정책이 정부라고 해서, 정치권이라고 해서 국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잘 소통하는 거, 그리고 진심으로 설명하고 다가서는 게 사실은 해결책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게 제가 정치를 하면서 배우는 점입니다.

◇ 박재홍> 현 정부에서 또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요인 중 하나가 어떤 ‘남북관계 문제’, ‘위장된 평화’, ‘굴욕적인 평화였다.’ 이렇게 비판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문재인 정부 초반 지지율 70~80% 기록할 정도로 굉장히 큰 지지 많이 받았었고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도 굉장히 분위기 좋게 갔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결론적으로는 잘 안 돼서 어떤 문재인 정부가 초반에 제일 많이 힘을 쏟았던 그 부분이 성사가 다 안 됐던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 임종석> 제가 이 정부에 저보고 딱 한 두 가지만 충고하라면 하나는 ‘저희는 부동산값이 올라서 민심의 된서리를 맞이했습니다마는 지금 부동산 PF 관리 잘하시라고.’, ‘이 위기 관리 잘하지 않으면 총선 후에 그거하고 우리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이런 어려움을 맞이할 수 있다.’ 는 경고 드리고 싶고 또 하나가 지금 말씀하신 건데 문재인 정부 때는 한반도에서 긴장이나 전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5년이었습니다. 저희가 평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노이에서 이 남북 간, 북미 간 평화 열차는 멈춰 서서 저희는 거기서 정상까지 가지 못한 실패를 경험한 건 맞지만 지금 정부는 아예 북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처음부터 적으로 규정하고 북은 더 하고 또 이쪽도 더 하고 이러면서 지금 저는 올해 안에 서해안에서 충돌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 박재홍> 국지적인 도발 상황이.

◆ 임종석> 이 관리 정말 잘하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점은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결국 평화라는 건, 안보라는 거는 두 개로 하는 거예요. 하나는 강한 군대, 또 하나는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철학과 정책, 두 개가 같이 가야 평화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지 강한 군대 하나만 가지고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강한 군대로 얘기하자면 문재인 정부 때 대한민국의 국방력, 군사력이 가장 강화됐죠. 한미 간의 미사일 지침도 없어졌고, 국방비 증액도 가장 높았고, 저희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군대가 강해지도록 전략적, 전투력이 강해지도록 끝없는 추세를 했거든요. 지금은 강한 군대만 이야기해요.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아예 평화를 과연 평화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지, 남북 간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지 매우 의심케 하는 행동들을 하고 있잖아요. 저는 매우 위험한 상태까지 이르고 있다.

◇ 박재홍> 문재인 정부에서 어떤 국지적인 도발이나 이런 건 없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핵무기 고도화는 계속 진행돼 왔던 거 아니냐?

◆ 임종석> 핵무기 개발도.

◇ 박재홍> ICBM이 이렇게 더 개발돼서.

◆ 임종석> 하노이 회담이 실패하기 전까지는 멈춰 있었죠.

◇ 박재홍> 멈춰 서 있었다.

◆ 임종석> 그러니까 남북 간의 대화가 진행될 때는 오히려 항상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은 지체되거나 정체가 됐었어요. 남북 간의 대화가 끊기고 북미 간의 관계가 악화될 때 북한의 핵무기든, 전략미사일이든 고도화됐던 거죠. 그거는 자료를 찾아보면 금방 증명할 수 있는 일이니까.

◇ 이상민> 지금이 문재인 정부였다면 좀 달랐을까요?

◆ 임종석> 저는 많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

◇ 이상민>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말미에는 남북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그런 사건도 있었고 해서.

◆ 임종석> 예를 들면 제가 그때 얘기를 했는데 북쪽이 위성을 쏘니까 우리가 군사합의서.

◇ 박재홍> 위반이다.

◆ 임종석> 부분적으로 파기했잖아요. 북이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 파기를 해버리잖아요. 그 군사합의서 우리 군이 제안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북이 받아들이다시피 해서 한 것이거든요. 이것이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막아주는 매우 중요한 완충 역할을 해왔는데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면 그것을 완전 파기한 북한이 물론 잘못이지만 왜 국제적으로 그 유엔 안보리 위반은 국제적으로 함께 제재에 들어가면 될 텐데 왜 섣불리 우리에게 더 소중한 합의를 깨버려서 왜 우리 군은 그런 합의서를 냈겠어요?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군사력과 한미 연합방위력으로 중고도, 고고도에서 충분히 군사정보 수집이 가능한 반면에 북은 용이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전략적 판단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요. 그런데 빌미를 줘서 마찬가지에요. 지금도 이렇게 강대강으로만 치달으면 만에 하나 작은 국제적 충돌이나 고조된 긴장 상태가 일어난다면 피해를 우리가 크게 입겠습니까? 북이 크게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하면서, 평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좀 국정운영을 해달라.’

◇ 박재홍> 남북 간에 채널이 지금 남아 있는 게 있습니까?

◆ 임종석>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럼 어떻게 합니까?

◆ 임종석> 저는 최소한의 위험을.

◇ 박재홍> 관리할 수 있는.

◆ 임종석> 관리할 대화 장치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박재홍> 염려가 되네요.

◆ 임종석> 매우 염려스럽고요. 북이 이렇게 앞으로는 교전 상태 두 나라로 가자, 아예 이래버렸잖아요. 그렇게 되면 NLL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옵니다.

◇ 이상민> NLL.

◆ 임종석> 이게 국제법 적용하면 우리에게 유리하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올해 충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 박재홍> 그럼 분명히 우려를 많이 하고 계시다.

◆ 임종석> 국제법을 들고 자기들이 국제법 기준이라고 그은 서해 경비 한계선을 강조하면 우리는 이게 올라가 있거든요.

◇ 박재홍> 또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 말씀해 주셨고. 지금 화제를 좀 바꿔보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 검찰이 또 재수사가 필요하다 해서 재수사에 들어갔죠.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 수사 아니냐, 이런 비판도 있고. 아니다, 이 수사 제대로 안 된다 해서 다시 재수사 명령한 거다, 이렇게 또 검찰에 정당하다.

◆ 임종석> 뭐 철저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하고요.

◇ 박재홍> 그래요?

◆ 임종석> 왜냐하면, 특히 제 경우만 말씀을 드리면 저는 이미 4년 전에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어요. 검찰이 그때 임종석 봐주고 싶었겠습니까? 기소 못 했어요. 기소유지가, 공소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고요. 그래서 제가 비서실장할 때 정무수석을 했던 한병도 의원만 억지 기소를 했어요. 작년에 무죄가 났어요. 어떻게 다시 저를 뭘로 수사를 하고 공소유지를 한다는 건지 저도 궁금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비판하시는 분들은 당시에 친문 검찰이 아니었냐. 제대로 수사 안 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문재인 정부 하에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겠느냐. 살아있는 권력을.

◆ 임종석> 누가 다시 얘기할까요? 누가 중앙지검장이었고 검찰총장이었는지.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임종석> 어떻게 그런 논리가 가능합니까?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그러면 선거제 얘기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 박재홍> 이재명 대표가 결단을 했습니다.

◇ 이상민>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제 안에서 승리의 길을 찾겠다, 이렇게 얘기하시면서. 민주개혁 선거 대연합을 구축하겠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이 부분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임종석> 저는 이재명 대표가 잘 하셨다고 이미 입장을 밝혔고요. 이 선거제 문제가 지금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시 과거 병립형으로 돌아간다면 민주당이 큰 비판을 면치 못할 겁니다. 물론 지금 현재대로 가자고 하면 다시 이른바 준위성정당 문제가 되겠죠.

◇ 박재홍> 그렇죠.

◆ 임종석> 그런데 그거는 이재명 대표가 양해와 사과와 함께 양해를 구했지 않습니까? 현재 야권으로써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경제 실정과 민생 파탄에 대한 윤석열 정권 심판을 목표로 하고 전체 모든 야권과 시민사회들까지 함께하자는 취지에서의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해 간다면 저는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어려운 상황에서 어쨌든 이재명 대표가 그건 잘 결정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원투표 안 부친 것도 정말 잘했고.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런데 이 민주개혁 선거 대연합이라면 이 바구니 안에는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냐.

◆ 임종석> 글쎄요. 그거는 안에 계신 분들이 해 나가겠죠. 제가 뭐 제 코가 석자인데.

◇ 박재홍> 일단 중구 성동부터.

◆ 임종석> 제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임종석 전 실장 뵙고 있고요. 지금 3지대 얘기 좀 잠깐 해 볼까요? 지금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지금 이낙연 대표와 함께할 것 같았던 조응천, 이원욱 의원이 불참한 상태인데. 일각에서는 지금 이원욱, 조응천 의원은 또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함께할 것이다. 그래서 3지대가, 빅텐트가 무산되지 않을 것이냐라는 전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 임종석> 지금 제가 이준석 신당에 대해서까지 얘기하는 건 좀 주제 넘는 것 같고요. 민주당에서 탈당을 하시면서 제3지대를 구축을 위해 노력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처음부터 아무리 안에서 힘들어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선순위가 있고 급한 일이 있고.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단합해서 윤석열 정부의 이 폭주를 4월 10일날 멈춰세우는 데 힘을 모으고 그 이후에 내부 경쟁은 해도 늦지 않다는 게 제 입장이었는데. 지금이 제일 힘든 것 같아서 나가시면 훨씬 힘들 거다. 그런데 저는 지금이 그런 상황으로 보이고요.

◇ 박재홍> 제일 힘든 상황일 것이다.

◆ 임종석> 앞으로 저보고 전망해 보라면 아마도 민주당을 탈당하셔서 제3 정당 구축을 하고 있는 노력은 우선적으로 호남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따라서 그 운명이 결국 결정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윤석열 대통령이 KBS와의 녹화로 신년대담을 지금 진행했고 또 방영이 되는 걸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김건희 여사 문제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수위의 얘기가 나올 걸로 보십니까?

◆ 임종석> 글쎄요. 국민이 다 아는 애처가신데.

◇ 박재홍> 애처가.

◆ 임종석> 뭐라고 하실지 제가 예측하기는 어렵고. 다만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녹화 대답입니까?

◇ 박재홍> 대통령실에도 20개월 근무하신 입장에서 국민과의 대화 혹은 신년 기자회견 형식을 빌리지 않고 한 언론과의 녹화 대담 방식인데. 이 부분이 국민과의 소통의 적절한 방식이냐.

◆ 임종석> 그 한 언론도 최근에 가장 윤석열 정부가 많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언론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참 민망합니다. 제가 더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 박재홍> 민망하다.

◆ 임종석> 뭐 들어봐야 알겠죠, 우선. 들어봐야 알겠고. 사전 질문지 없이 했다는 얘기는 참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고.

◇ 박재홍> 그런가요? 왜 그렇습니까? 그래도.

◆ 임종석> 소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을 이럴 때 하는 겁니다.

◇ 박재홍> 소가 웃을 일이다.

◆ 임종석> 소가 웃을 일이다 하는 거는 이럴 때 하는 거죠. 사전 질문지가 없으면 왜 녹화를 했습니까? 사전 질문도 예상을 했을 것이고 긴 시간 편집도 했을 것이고. 국민들 수준을 정확하게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고. 그런 태도로는 무너져가는 민심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하는 정중한 경고 말씀드립니다.

◇ 박재홍> 임종석 전 대통령 실장을 만났습니다. 마무리할 시간이 됐는데요. 아주 1시간 동안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아주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요청은 뭡니까?

◇ 이상민> 마지막 요청은 아주 어렵습니다.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을 저쪽 카메라를 보시고.

◇ 박재홍> 저쪽 카메라를 보시면서.

◇ 이상민>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박재홍> 전대협 의장으로서. 전 대통령 실장의 함박미소를 지으시면서. 한판승부, 유튜브 채널 구독과 좋아요.

◇ 이상민> 구독과 좋아요.

◆ 임종석> 어떻게 합니까?

◇ 박재홍> 저쪽을 보면서 그냥 여러분,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를 해 주십시오라고 해 주시면 됩니다.

◆ 임종석> 여러분,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박재홍> 네, 감사합니다. 아주 성실하게. A 플러스, A 플러스입니다. 마지막 질문.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한판승부 공식 질문입니다.

◆ 임종석>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박재홍>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 임종석> 늘 두려웠습니다. 촌놈이 서울 올라올 때도 두려웠고 평범한 공학도를 꿈꿨던 사람이 당시에 공안 정국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에 맞서야 할 때도 너무 두려웠고 또 한 귀퉁이에서 참여하면 될 줄 알았더니 어쩌다 제 팔자가 전대협 의장이라는 책임을 맡게 될 때도 여러 번 정말 도망가버릴까 할 정도로 두려웠고. 처음에 국회의원 출마할 때도 또 문재인 대통령 모시고 비서실장 할 때도 늘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책임져보려고 노력을 했고요. 그래도 늘 도망가지 않고 견뎌내면서 해 왔던 저한테 따뜻한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 박재홍> 앞으로 남은 정치 여정도 이 두려움과의 싸움 계속해 나가겠다는 각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다가오는 또 총선에서도 선전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임종석 실장님 어떠셨어요?

◇ 이상민> 저는 사실 너무 좀 두려웠습니다.

◇ 박재홍> 뭐가 두려웠어요?

◇ 이상민> 임종석 이름만 검색하면 과거에 투쟁하셨던 모습만 나오니까 무서운 분으로 굉장히 인식이 돼요.

◇ 박재홍> 함박웃음, 함박웃음.

◇ 이상민> 그런데 상당히 부드러운 분이었다는 걸 제가 사실은 두 번째 만났습니다. 혹시나 지역에서 마주치더라도.

◇ 박재홍> 성동구에서.

◇ 이상민> 더 부드러움을 알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 임종석> 저 순한 사람입니다.

◇ 박재홍> 오늘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신 임종석 실장님께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도 저희는 보석 같은 게스트와 함께 또 한판열전을 진행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상민> 감사합니다.

◇ 박재홍>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