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23(화) 이원욱 "제3지대 통합 위해 당명·대표·공천까지도 양보 가능"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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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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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이원욱 미래대연합 공동대표


◇ 박재홍>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반갑습니다. 이상민입니다. 오늘의 게스트, 소개하기도 전에 정말 욱합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분이세요. 이분은.

◇ 박재홍> 욱.

◇ 이상민> 네. 한번 소개해 볼까요?

◇ 박재홍> 힌트가 있어요. 욱, 힌트가 있습니다. 소개해주시죠.

◇ 이상민> 요즘 창당 준비로 굉장히 분주하신 분입니다. 친환경 에너지 전문가이자 화성 을, 경기 화성 을 최초 3선.

◇ 박재홍> 3선.

◇ 이상민> 의원이신.

◇ 박재홍> 3선 짜장. 죄송합니다.

◇ 이상민> 땡 쳐주세요. 미래대연합 공동대표 이원욱 의원님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이원욱> 안녕하세요.

◇ 이상민> 불의를 절대 참지 못하시는 분이에요.

◇ 박재홍> 그렇습니까? 욱하는 걸 많이 보니까.

◇ 이상민> 불의가 보이니까 바로 뛰쳐나와서 미래대연합 차리지 않습니까?

◇ 박재홍> 이상민 크리에이터가 초반에 이렇게 텐션 높기 쉽지 않은데.

◆ 이원욱> 불의 맞습니다.

◇ 이상민> 그렇습니까?

◆ 이원욱> 불의 맞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원욱>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 박재홍> 욱 하고 나오셨습니까?

◆ 이원욱> 예.

◇ 박재홍> 예, 알겠습니다. 두 분이 또 다른 방송에서 만나신 경우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 이상민> 그렇습니다. 장르만으로 시작되는 모 방송에서...

◇ 박재홍> 그 방송에서 요즘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 이상민> 아니에요, 아니에요. 가짜 뉴스입니다.

◇ 박재홍> 요즘 제작진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던데.

◇ 이상민> 이게 불의입니다. 욱 한 게 이것밖에 없어요.

◇ 박재홍> 다른 방송에 요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힘이 쭉 빠져서 목동에 오고 있다는.

◇ 이상민> 그렇지 않습니다.

◇ 박재홍> 이때 오늘 한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원욱 미래대연합 공동대표님과 함께 또 인생 이야기를 같이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갑니다.

◇ 이상민> 약골에서 강골로. 충남 보령에서 2남 1녀 중에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 박재홍> 충남 보령.

◇ 이상민> 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처럼 살았다. 이렇게 또 얘기를 해 주셨어요. 어린 시절 하면 또 어떤 장면이 또 떠오릅니까? 1988이라는 게 드라마를 보면 굉장히 여러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어떻게 사신 겁니까?

◆ 이원욱> 저희 아버님이 월남전 때, 베트남 전쟁 때 부두의 하역 노동자로 가셨었거든요. 그래서 어찌 됐든 돈을 꽤 많이 벌어오셨는데 오자마자 친구가 사업한다고 그랬는데 돈을 빌려줬다가 완전히 쫄딱 망했습니다.

◇ 이상민> 아이고.

◇ 박재홍> 아하.

◆ 이원욱> 그래서 진짜 서울 길음동, 지금은 뉴타운으로 바뀐 달동네가 저희 살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그때 생계는 유지해야 되고 등등 하시니까 저희 어머니는 삯바느질 하셨고 저희 아버지는 그 날 어떻게 운이 좋으셨죠. 그 이후에 서울은행이라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은행의 전신.

◇ 박재홍> 서울은행 알죠.

◆ 이원욱> 예 서울은행 수위로 취직을 하셨어요.

◇ 박재홍> 수위로.

◆ 이원욱> 그런데 수위가 보통 그 당시에는 숙직이라고 하는 걸 썼거든요.

◇ 박재홍> 맞아요. 네, 네.

◆ 이원욱> 그러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숙직을 서야 되는데 보통 젊은 사람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숙식 서기 싫어하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 이원욱> 그러니까 그 숙직비를 대신 받기 위해서 한 달 동안 집에 안 들어오시고 계속 숙직을 하신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막내니까 초등학교 다니고 이럴 때였으니까 얼마나 예뻤겠습니까? 막내 또 내리사랑이라고.

◇ 박재홍> 그러니까 막둥이 너무 예쁘죠.

◆ 이원욱> 그러면 주말에는 저를 숙직실에 데려가 가지고 거기서 잠도 자기도 하고.

◇ 박재홍> 같이 재우셨구나.

◆ 이원욱> 그런데 최근에 저희 아버님이 치매기가 조금 생기셨어요. 심하지는 않으신데 지지난주인가 집에 갔더니 저를 보시면서 밤에 일지 잘 써야 돼. 그러니까 그 당시의 생각이신 것 같아요.

◇ 박재홍> 서울은행 숙직 근무할 때 그 기억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 이원욱> 그 기억으로 돌아가셔가지고 저한테 원욱아 일지 잘 써야 돼. 일지 잘 써야 돼. 그거 잊지 마. 꼭.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짠하셨겠네요. 눈물 나셨겠다.

◆ 이원욱> 그럼요.

◇ 박재홍> 그래요. 그 아버님이.

◆ 이원욱> 그게 어렸을 때의 저희 가정에 대한...

◇ 박재홍> 아버님이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면서 키운 막둥이였는데 막둥이가 이렇게 또 잘 커서.

◆ 이원욱>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모여가지고.

◇ 박재홍> 의원님이 아버님에 대해서 말씀 주셨는데 사진 한번 볼게요. 어릴 적 사진. 우리 아버님. 이원욱 의원님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물론 가운데 있는 어린이가 우리 이현욱 의원님. 저기가 몇 살 때죠? 그러니까.

◆ 이원욱> 7살 때입니다.

◇ 박재홍> 7살 때.

◆ 이원욱> 그러니까 아버님이 월남전 때 그때 부두 노동자로 가셨다가 돌아오셔서 가족들끼리 저는 기억은 잘 안 나긴 하지만 사진 때문에 기억이 좀 나는 거고요.

◇ 박재홍> 그게 약간 개울 뒤에 천이 있네요.

◆ 이원욱> 해운대.

◇ 박재홍> 해운대?

◆ 이원욱> 해운대 여행을 갔습니다.

◇ 박재홍> 아, 부산 또 가기 쉽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가장 좋은 관광도 가시고, 기분 좋았고 아버님이 베트남 갔다 오시고.

◆ 이원욱> 그리고 저 옷을 또 어머니가 삭발을 해서 양복 비슷하게 이렇게.

◇ 박재홍> 굉장히 고급 옷이에요, 저거.

◆ 이원욱> 네, 고급 옷을 만들어주신 거예요.

◇ 박재홍> 막둥이에게 요셉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혔듯이 또 우리 아들 막둥이 아들이 가장 좋은 옷을 입히셨구나.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는데 가장 부모님을 속을 끓게 했던 자식이었다. 왜 이렇게 속을 썩이셨던 거예요?

◆ 이원욱> 그러니까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고대 법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 박재홍> 하라는 공부를 안 하고 고대 법대 들어갔다는 건 공부 한 건...

◆ 이원욱> 아니, 아니, 고등학교에 들 갔는데.

◇ 이상민> 무슨 말씀이세요? 어떻게?

◇ 박재홍> 그러니까 약간...

◆ 이원욱> 당연히 집안...

◇ 박재홍> 논리가 좀 안 맞지 않았습니까?

◆ 이원욱> 집안에서는 드디어 우리 집 안에도.

◇ 박재홍> 판, 검사가 나오겠구나.

◆ 이원욱> 판, 검사가 하나 나오겠구나. 아니, 변호사가 나오겠구나. 이런 저희 사실은 가까운 집안에서는 제가 제일 좋은 대학을 첫 번째로 간 케이스였습니다.

◇ 박재홍> 고대 법대면 고려대에서 가장 높은 학과였고. 그렇죠. 하여튼. 전화 오고 있어요. 괜찮아요.
생방송 중에 함께하고 계시는.

◆ 이원욱> 죄송합니다.

◇ 박재홍> 라디오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청취자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원욱 의원님과 함께. 혹시 김종민 의원님이 혹시 통합 관련해서.

◆ 이원욱>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 이상민> 그것도 아, 그렇게요? 어떻게 보셨어요? 김종민.

◇ 박재홍> 김종민 맞아요.

◆ 이원욱> 네.

◇ 박재홍> 이야. 그냥 찍었는데.

◇ 이상민> 바로 속보가 나올 뻔했습니다.

◇ 박재홍> 바로 속보. 지금 그거 할 때가 아니야. 빨리 와서 통합 얘기해야 돼. 김종민 위원장은 이미 나오셨던 거니까 하시고 가시면 돼. 그래서요?

◆ 이원욱> 그래서 저희 고대를 들어갔는데. 촉망 받았죠. 집안으로부터.

◇ 박재홍> 그러니까 얼마나 기대를 많이 받았겠어요?

◆ 이원욱> 그랬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를 하고 다니고, 맨날 몸에다가 최수탄가루 묻혀가지고 들어가고 이러니.

◇ 박재홍> 그런데 고대가 사실 등록금 내는 은행이 서울은행이에요. 당시에 맞죠?

◆ 이원욱> 네.

◇ 박재홍> 그러니까 아버님이 또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끼셨겠다.

◆ 이원욱> 그렇죠.

◇ 박재홍> 제가 딱 그 말씀 들으니까 그게 생각이 나.

◆ 이원욱> 그리고 제가 고대의 안암동 캠퍼스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이원욱> 그 바로 옆에 있는 서울은행 안암동 지점. 거기가 고대 등록금을 내는 곳이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 잔 곳도 거기입니다. 아버지가 수위를 하실 때.

◇ 박재홍> 그래요? 엄청 의미가 있네요.

◆ 이원욱>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하고 감옥까지 가는 데 얼마나 속을 썩으셨겠어요. 진짜.

◇ 이상민> 아이고.

◆ 이원욱> 죄송하죠. 지금 생각하면.

◇ 박재홍> 그런데 감옥에는 왜 가셨던 거예요? 대학교 때 20개월 옥고를 치르셨다고 하는데.

◆ 이원욱>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만 그 당시만 해도 ‘전두환 독재 정권’, ‘광주에 5.18 피를 먹고 자란 흡혈귀 전두환’. 제가 보통 유인을 쓸 때 그렇게 썼었습니다. 첫줄을. 그 ‘전두환 대통령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군부독재정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 그래서 이거를 위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게 됐고 최종적으로는 서울 가락동에 저희가 있었습니다.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당시 정치원수원 방화 사건으로.

◇ 박재홍> 그러니까 과거 국민의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쭉 과거로 올라가 보면.

◆ 이원욱> 법통이 조금씩은 연결되는데 지금 국민의힘하고는 많이 다르죠.

◇ 박재홍> 많이 좀 다른데 어쨌든.

◆ 이원욱> 그걸 똑같이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 이상민> 지명수배가 됐고.

◆ 이원욱> 아니 그때는 감옥 갔고.

◇ 박재홍> 굉장히 평범하게 말씀하시는데요. 어려운 얘기를.

◆ 이원욱> 그래서 20개월 살았고.

◇ 박재홍> 20개월 살았고.

◆ 이원욱> 목포교도소.

◇ 박재홍> 아, 목포에서 이야, 어떠셨어요? 그 교도소에서?

◆ 이원욱> 목포 교도서는 예전에 여명의 눈동자라고 하는 그 드라마 있었죠.

◇ 박재홍> 최재성 씨, 채시라 씨.

◆ 이원욱> 채시라 나오고. 거기에 1번 513 부대인가 하여튼 마루타 실험을 하는 장소가 하나 있는데 그게 제가 살았던 곳입니다.

◇ 박재홍> 촬영지?

◆ 이원욱> 네. 제가 나온 직후에 그게 목포교도소가 이사를 갔어요. 그러면서 거기가 잠깐 비어 있을 때 거기서 촬영을 하게 했죠. 그게 일제 때 지은 건물,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원욱> 지금 서대문 형무소 자리 거기 가서 보면 일부 건물이 남아 있는데 거기보다도 훨씬 열악한 이런 곳이었습니다.

◇ 박재홍> 어떠셨어요? 막 그 찬 바닥에서 주무시고.

◆ 이원욱> 그건 젊은 시절이었으니까요.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 박재홍> 재미있으셨어요? 젊었기 때문에? 오늘같이 영하 15도, 14도일 때 생각 안 나세요?

◆ 이원욱> 옛날에 그 당시에는 유담프라고 하는 걸 이름을 불렀는데 이렇게 철판으로 이 요만으로 돼서 거기다 뜨거운 물을 넣고 그리고 발 밑에다가 넣고 잡니다. 그러면 그게 대신 온기를 대신 해주는 거죠. 나머지는 다 난방시설은 없었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원욱> 그냥 마룻바닥에 감옥이라고 하는 것이 유리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비닐 한 장 이렇게 창문에다가 비닐 한 장, 왜냐하면 유리를 깨가지고 자해라든가 이런 걸 할 수 있으니까.

◇ 이상민> 그 당시에 옥중에서 어머니께 또 편지를 쓰셨다면서요? 저희가 사진을 좀 준비했습니다. 이 사진이죠.

◇ 박재홍> 예,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 이원욱> 그거는 옥중에서 쓴 건 아니고요.

◇ 이상민> 아닙니까?

◆ 이원욱> 들어가기 마지막, 제가 민정당 정치연수원에 데모 하러 가기 전날 밤.

◇ 이상민> 전날 밤에.

◇ 박재홍> 그래요?

◆ 이원욱> 17일 날 썼는데 18일 날짜로 부모님께 보낸 거죠.

◇ 박재홍> 1985년 11월 18일입니까?

◆ 이원욱> 18일. 17일 날 밤에 쓰고. 그다음 날 이제 제가 감옥에. 아마도 그 현장에 있을 때 보실 것이다라고 해서 날짜를 쓴 거죠.

◇ 박재홍> 눈물 흘리며 쓰셨네요. 그렇죠? 눈물자국 맞습니까?

◆ 이원욱> 네. 지금도 저거 보면 눈물 나고 그러죠. 어머니가 갖고 계시더라고요.

◇ 박재홍> 보관은 굉장히 잘하셨네요, 어머니가.

◆ 이원욱>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구순 때 어머님이, 부모님이 31년생입니다, 두 분 다.

◇ 박재홍> 그러시구나.

◆ 이원욱> 지금 아직 살아계시고. 건강하셔요. 아버지님이 조금 치매기가 좀 있으셔서 그렇지. 구순 때 가족사를 책을 하나 만들어 드리려고. 사실은 뭐 굉장히 소설 같은 집안들입니다. 저희 시대 때는 대부분이 그런 가정환경을 갖고 쓰면 소설 같은 이런 집안들이 저만 있는 게 아니고 다 있는데.

◇ 박재홍> 그 세대의 분들이 다 스토리가 있는.

◆ 이원욱> 그런데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해서. 구순 때 만들어드리려고 그러는데. 바로 또 그때 코로나가 온 거예요.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인터뷰 같은 걸 못하지 않았습니까? 재작년, 재작년에 저걸 하나, 가족사를 만들어 가지고.

◇ 박재홍> 삶은 껴안음이다라는 책으로.

◆ 이원욱> 거기다가 저 책 그 내용도.

◇ 박재홍> 같이 넣어서.

◆ 이원욱> 편지도 실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의원님이 감옥 생활도 하시고. 그래서 일선 노동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 이원욱> 노동 현장에서 한 3년 정도 했는데요. 철일 주로 했고요.

◇ 박재홍> 철일?

◆ 이원욱> 철철, 쇠일, 쇠.

◇ 박재홍> 쇠질.

◆ 이원욱> 쇠와 관련된 거.

◇ 박재홍> 용접?

◆ 이원욱> 용접, 밀링. 선반, 특히 선반은 제가 아주 거의 A급 기술자 정도 됐습니다.

◇ 박재홍> 선반을 잘하셨다.

◆ 이원욱> 그다음 밀링. 하여튼 뭐 웬만한 금형도 만들고. 아주 어려운 고난이도의 나사 깎는 거. 이런 것들. 암나사 깎는 거는 되게 힘들거든요.

◇ 박재홍> 그거 되게 기능올림픽 옛날에 그런 것도 하고.

◆ 이원욱> 그 당시에는 제가 위장취업을 해서. 위장취업을 해서.

◇ 이상민> 그럼 이름도 바꾼 겁니까?

◆ 이원욱> 그렇죠. 등등 해서. 만약에 걸렸으면 공사문서 위조, 이런 걸로 다 들어갔겠죠. 지금은 공소시효 지나서 상관이 없는데. 친구가,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다 블랙리스트로 저희들은 여 찍혀 있어가지고 어디도 저희 이름으로 취직이 안 될 때였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원욱> 그러니까 친구한테 '야, 나 이렇게 해야 되겠는데 네 주민등록증 줘라'. 그래서 그 훔친 건 아니고. 그런데 그거 가지고 이름도, 사진도 바꾸고 등등 해서 취직을 했었죠.

◇ 박재홍> 그래요 이렇게 하면서 우리 또 의원님의 어린 시절, 대학 시절까지 살펴봤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한번 짚어볼게요.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숲 같은 정치입니다.

◇ 박재홍> 숲 같은 정치.

◇ 이상민> 이후에는 여의도에 입문하셔가지고. 보통 이런 분들 많거든요.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 하시다가 정치권에 출마하시거나.

◇ 박재홍> 인재영입, 인재영입.

◇ 이상민> 발탁이 돼서 인재영입되거나.

◇ 박재홍> 그렇죠.

◇ 이상민> 그런데 당에 공채 당직자로 들어가셨어요?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 박재홍> 당 공채, 공채.

◆ 이원욱> 제가 97년도 그전에 약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그 이후에 '이거 가지고는 세상을 바꾼다는 게 좀 힘든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노동, 그러니까 큰 대기업을 취직을 해 보려고 했는데 번번이 실패를 했습니다. 사실은 '기아자동차 노동자로 위장취업해서 한번 대기업 노동운동을 해 볼까', 이런 생각 가지고 노력을 했는데 못하고 조그마한 대림자동차라고 오토바이 만드는 회사.

◇ 박재홍> 대림, 그렇죠.?

◆ 이원욱> 거기에 1차 밴더. 하청업체에 취직을 해서 한 직원이 한 100여 명 정도 되는 노동조합을 한번 만들고.

◇ 박재홍> 노조 위원장.

◆ 이원욱> 안 하고.

◇ 박재홍> 안 하고.

◆ 이원욱> 왜냐하면 제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잡히는 순간이 또 구속이잖아요.

◇ 박재홍> 지하에서.

◆ 이원욱> 그렇죠.

◇ 박재홍> 지하에서 노동운동.

◆ 이원욱> 그리고 다른 거기 실제 노동자 형님을 노조 위원장을 하게 하고 등등. 그러니까 노동운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현장 운동으로부터 자리를 뜨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뭐하고 먹고 살지'. 이러다가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을 했는데. 취직은 안 되고. 그래서 그러고 시간이 좀 흘러흘러 몇 년 흘러가지고 97년도가 됐어요. 그때가 김대중 대통령 처음 당선되던 해였는데. 그런데 이번에 정권 교체를 못하면 진짜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같이 하던 사업을 제 직원으로 있던 친구한테 '야, 이거 너 다 가져'. '나는 지금 선거 캠프에 가서 뭔가 청소라도 해야 되겠어'.

◇ 이상민> 올인 해야겠다.

◆ 이원욱> 그래서 실제로 그러고. 설훈 의원, 설훈 의원한테 찾아갔죠. 대학교 선배님이라서 제가 알고 있었거든요. '청소라도 좀 해야 되겠습니다'. 그랬더니 '야, 그래서 잘됐다'. '지금 일손 부족해 죽겠는데'.

◇ 박재홍> 청소 할 사람이 필요하다. 와서 청소를 해 줘.

◇ 이상민> 마침 잘됐다.

◆ 이원욱> 실제로 그래서 청소도 하고.

◇ 박재홍> 진짜 청소했어요.

◆ 이원욱> 그리고 서류정리도 하고. 사실 정치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주 고급스러운 일을 할 수 없었고요. 나이도 어렸고. 그래서 심부름도 하고 이러면서 해서 대통령께서 이겨주셔서 그러면 다른 업무를 전환하려고 이런저런 구상을 좀 했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봐야 되겠다'. 그런데 설훈 의원께서 '야, 이번에 정권 교체가 됐는데 좀 똘똘한 후배들이 그냥 당에서 좀 일할 수 있는 후배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한번 공채하는데'. 98년도 8월인가 7월 정도 됐는데요. '한번 신청해 보면 어떻겠냐'. 그래서 입사 지원을 하게 됐고. 또 됐어요. 그래서 '그래, 몇 년 더 봉사하자'.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급여는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정권이 유지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래서 당직자 생활을 했는데 그게 몇 년만 봉사하자라고 하는 게 한 10년 이상은 하게 됐죠.

◇ 박재홍> 당직자 생활 10년 넘게 하신 거예요?

◆ 이원욱> 다 해 봤습니다.

◇ 박재홍> 그렇구나.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의원 생활을 언제 하시냐 하면. 언제죠?

◇ 이상민> 화성에 처음 출마하셨는데 낙선하셨고.

◇ 박재홍> 낙선했어요?

◇ 이상민> 네. 그다음부터는 줄줄이 당선 아닙니까?

◆ 이원욱> 그렇죠.

◇ 박재홍> 3선.

◇ 이상민> 처음에는 손학규 대표, 당시에. 정세균 의원을 찾아가가지고 '나 화성시 좀 출마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간청을 하셨다면서요.

◆ 이원욱> 맞습니다.

◇ 이상민> 이유가 있습니까?

◆ 이원욱> 그러니까 당시에. 이제 제가 손학규 대표께서 당시 종로 선거에 나가셨거든요.

◇ 이상민> 18대 총선이었나요?

◆ 이원욱> 2008년도. 종로에 출마하셨을 때 제가 가지고 선거 총괄을 보고 있었습니다.

◇ 박재홍> 당직자로서.

◆ 이원욱> 네. 그래서 그런데 공천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조직국에 있는 후배한테 전화가 와요. '형님, 여기 이번에 화성이 하나에서 두 개로 나눠졌는데'. 인구가 늘어나서 사십 몇만 정도가 돼가지고 두 개로 분구가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공천 신청자가 아무도 없다'. 그때가 민주당이 제일 참패한 선거였거든요.

◇ 이상민> 81석 얻었을 선거.

◆ 이원욱> 그렇죠. 그래서 그런데 거기가 또 굉장히 험지, 민주당으로 보면. '이런 곳이어서 아무도 없다'. 그래서 '형님, 나가보면 어떠냐'. 그래서 한번 가봤더니 괜찮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꽤 도시 지역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리고 동탄 1기 신도시가 일부 입주를 시작을 하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 박재홍> 혼란기군요, 그러니까.

◆ 이원욱> 여기 젊은 사람들 이렇게 새로 신도시가 생겨서 입주하면 괜찮은데 왜 여기 아무도 없지? 그래서 '대표님한테 저 좀 보내주십시오'. 그랬더니 '아니, 지금 내 선거 하다가 어딜 가려고'.

◇ 박재홍> 나 돕다가.

◆ 이원욱> 그렇죠. 그래서 '안 된다'. 아니. 마지막에는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대표님 시절에 경상도에서도 민주당 사람들 출마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경기도 도지사 출신이 대표님을 하고 계시는데 경기도에서 출마조차 못하는, 후보조차도 제대로 못내는 그런 당을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해서 간청을 많이 드렸고. 정세균 당시 정책위 의장이셨던 것 같은데. 하여튼 많이 도와주셨고요. 그래서 이 후보 등록 하루 전에 마지막 공천을 받습니다.

◇ 박재홍> 극적이었네요, 그러면.

◆ 이원욱> 네. 그래서 신청 못할 뻔했어요. 서류 준비를 못해서.

◇ 박재홍> 경쟁자도 다행히 막 많이 없었고.

◆ 이원욱> 없었고.

◇ 박재홍> 거의 없었고.

◆ 이원욱> 네. 공천 신청자가 없었으니까요.

◇ 박재홍> 그러니까 험지니까 사실상 이렇게 막 찍어서 막 가고자 하는 분도 없고. 또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났다, 이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 이원욱> 일부의 그 과정에서 또 신청하고 이런 경우가 있긴 있었는데 하여튼 큰 문제는 아니었고요.

◇ 박재홍> 그래서 선거운동 하고 당선이 되신 거네요, 그러면.

◆ 이원욱> 떨어졌죠.

◇ 박재홍> 아, 그때 떨어지고.

◆ 이원욱> 네.

◇ 박재홍> 그때 떨어지고 계속 도전해서.

◆ 이원욱> 떨어졌는데요. 그러니까. 저도 굉장히 깜짝 놀란 게 사실 제 이원욱이라고 하는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거 아니에요?

◇ 박재홍> 신인이니까.

◆ 이원욱> 그전에 하나도 없었고.

◇ 박재홍> 신인이고 당직자로만 10년 근무했었고.

◆ 이원욱> 후보 등록 하루 전에 가가지고 공천받았고. 그러니까 지역에서 연고도 없고 뭐 이런 상태인데 득표율이 36%인가, 37%인가를 봤습니다.

◇ 박재홍> 아, 그랬군요.

◆ 이원욱> 네, 그리고 이제 당선자가 그 당시 한나라당 박보환 선배님이 당선이 되셨는데 그분이 54% 그리고 민노당이 10 몇 프로를 빼가요.

◇ 박재홍> 아, 당시의 민노당.

◆ 이원욱> 네.

◇ 박재홍> 의미 있었죠, 당시에.

◆ 이원욱> 그러니까 진보 그룹을 만약에 합한다면 이게 거의 한 45%가 넘어서는 수준. 그래서 여기가 지형이 정말 좋은 곳이구나.

◇ 박재홍> 알고 보니.

◆ 이원욱> 라고 하는 걸 알게 됐죠.

◇ 박재홍> 떠나면 안 되겠다.

◆ 이원욱> 당시 또 신인 후보. 그러니까 국회의원이 아닌 신인 후보가 나와서 수도권에서 제가 최다 득표했어요.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상민>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 이원욱> 네, 네. 그래서 그 지역을 떠나지 말고 내가 계속 도전해야겠다. 이제 위원장이 됐죠. 그래서 그다음 선거부터 그러면 그다음부터 거의 수도권 최다 득표 수준으로 3번 연속.

◇ 이상민> 속된 말로 날아다니셨군요.

◇ 박재홍> 자연스럽게 자랑도 해 주시고. 그래서 지금 우리 의원님이 3선을 하셨는데 사실 이 기자들 사이에서는 또 의원님의 별명이 패션 테러리스트다.

◇ 이상민> 아, 그렇죠.

◇ 박재홍>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는데 이거는 약간 또 유머 코드가 있으니까 한번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 찍으신 사진인데.

◇ 이상민> 저게 어떤 룩입니까?

◆ 이원욱> 저도 모르겠어요.

◇ 이상민> 저게 어떤 코드인지 제가 궁금합니다.

◇ 박재홍> 저는 뭐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엄청나게 심할 줄 알았는데 저는 뭐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 이상민> 같은 비슷한 감성이었습니까?

◇ 박재홍> 저는 뭐 저거는 테러까지는 아닌데.

◆ 이원욱> 저게 40대 초반이니까 테러죠.

◇ 이상민> 아, 그래요?

◇ 박재홍> 아, 40대 초반에.

◆ 이원욱> 네.

◇ 박재홍> 그러니까 아래, 위가 다른 옷인 거죠?

◆ 이원욱> 60대, 70대는 괜찮은데 사실 제가 봐도 지금 테러입니다.

◇ 이상민> 인정하시네요.

◆ 이원욱> 저게 그때 2008년도에 선거에 나가서 떨어졌지 않습니까?

◇ 박재홍> 떨어지고.

◆ 이원욱> 떨어지고 나서 그때 끝나갈 무렵에 중앙당 당직자들한테 전화가 와요. 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을 가야 되겠는데, 인사를 몇 명이 가야 되겠는데 선배님이 인솔 팀장이 돼가지고 좀 같이 갔으면 좋겠다. 당시 제가 중앙당 당직자 신분이었습니다. 아직 퇴사하기 전. 그래서 제가 그러자 그러면서 차비도 일부 내주고 등등 해서 같이 갔는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저거 말고 단체가 한 열댓 명 정도 갔거든요. 단체 사진이 있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저를 부르면서 사진을 찍어주시면서 그 당시 당직자 때 실장이었습니다, 실장. 직책이. 이 실장, 실망하지 마라. 야, 나 봐라 나 이러시면서 다음에 충분히 될 테니까 실망하지 말고 일어나고 단둘이 사진 하나 찍자 해서 찍어주신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좀 옷 좀 좋은 거 입고 갈걸.

◇ 박재홍> 아니에요. 그래서 저렇게 옷을 입으니 오히려 또 서민 쪽으로 입은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과 잘 어울리시는 그런 사진이 나온 것 같고.

◆ 이원욱> 그리고 실제로 옷이 없었습니다. 맞아요. 지금, 지금도 제가 입은 옷이 한 15만 원짜리.

◇ 이상민> 그런데 지금은 되게 스타일이 가격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되게 좀 댄디하게 잘 입으신 거 아닙니까?

◆ 이원욱> 이거 최근에 한 2년 전에 샀나 이런 거니까.

◇ 박재홍> 발전하신 겁니까? 아니면 누가 코치를.

◆ 이원욱> 코오롱 뭐 세이브 플라자.

◇ 이상민> 아니, 상호 언급하지 마세요.

◇ 박재홍> 아니, 상호 말고. 상호 말고.

◇ 이상민> 상호가 중요하지 않아요, 옷을 잘 입고 못 입고는요.

◇ 박재홍> 아니, 보좌관들의 협조입니까? 아니면 뭐 집에서 우리 사모님이?

◆ 이원욱> 주로 옷은 제가 고릅니다.

◇ 박재홍> 그래서 큰일 났던 부분이 많았군요.

◆ 이원욱> 저것도 제가 고른 거였어요.

◇ 박재홍> 조언을 많이 들으시기 바라요, 의원님.

◆ 이원욱> 제가 색맹이거든요, 적녹색맹. 홍록기 씨처럼.

◇ 이상민> 홍록기 씨.

◇ 박재홍> 홍록기 씨와 친분이 있으세요? 갑자기.

◇ 이상민> 홍록기 씨 깜짝 놀라시겠어요.

◆ 이원욱> 옷을 아주 그냥 독특하게 입고 나오시잖아요. 왜 저렇게 입고 나오지 그랬더니.

◇ 박재홍> 그래서 아무튼 의원님이 많이 발전을 해서 3선 의원 되셨고 옷도 잘 입으십니다.

◇ 이상민>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의정활동을 열심히 3선까지 하시는데 의원님 하면 또 생각나는 게 이 개딸로부터의 문자폭탄. 사무실 난동까지 굉장히 많은 공격을 받으셨어요. 결국 그래서 3선까지 하고 당직자 10년 생활을 했던 당을 떠나게 됐는데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 이원욱> 정말 힘들었죠. 힘들었죠. 그러니까 당을 떠날 때는 진짜 상상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 박재홍> 탈당을?

◆ 이원욱> 예, 제가 27년 당직 했더라고요. 그래서 민주당을 등진다라고 하는 거는 저는 상상조차 진짜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이 자리에 있지. 그리고 실제 그래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는 날 눈물도 좀 나기도 하고.

◇ 박재홍> 그렇죠.

◆ 이원욱> 제가 그러니까 이랬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이재명 대표 경기도지사 때, 성남시장 때 굉장히 가까운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믿기 때문에 지난 대선 때 저를 전략. 아니, 조직본부장을 해달라라고 해서 조직본부장도 했고 전국에서 저를 제가 그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냐. 하여튼 그런 평가도 받았고 그러면 어찌 됐든 졌죠, 졌는데 선거라고 하는 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고 이런 건데 그다음 지방선거 때 본격적인 실망이 시작이 됩니다.

◇ 박재홍> 아,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

◆ 이원욱> 네.

◇ 박재홍>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 이원욱> 일단 송영길 대표가 인천을 떠나가지고 서울시장으로 가는 과정. 이거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거는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서울시민을 우롱하는 행위지 거기다가 인천시 시민들도 우롱하는 행위지 이게 말이 되냐라고 하는. 그래서 사실 송영길 대표를 전략 공천에서 배제하려고 한번 제가 전략공천 위원장을 맡았었어요. 그래서 했는데 그게 실패했죠. 말하자면 그 당시에도 지금, 그 당시는 개딸이라고는 안 했습니다만 강성 팬덤들에 의해서 그게 실패하고 그 직후에 이재명 대표가 송영길 대표가 비워줬던 인천 계양 을로 이제 가는 걸 보면서 그때 제가 견결히 반대했거든요. 아주 말이 안 된다. 이거 진짜 왜냐하면 정치인이 자기 대통령 후보가 후보였던 사람이 바로 패배하고 어디 나가가지고 당선되겠다라고 하는 것 자체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이미 분당에 선거가 열리고 있는데 자기 정치적 고향이라고 하는 곳에서 선거가 있는데 거기도 아니고 민주당 입장에서 제일 좋다라고 하는 계양으로 가는 이런 것들은 큰 정치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당신한테도 안 좋고 당에도 안 좋다. 이건 아마.

◇ 박재홍> 직접 말씀하셨어요?

◆ 이원욱> 그럼요. 그래서 이것을 이렇게 이렇게 한다면 이거는 진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 패배할 수 있는 아주 큰 단초를 제공할 거다. 그런데 그때 또 지금으로 불리는 개딸들. 개딸들이 문자 폭탄을 엄청 보내고 계양에 이재명을 계양하라 뭐 이런 캠페인도 하고 그러면서 결국엔 당시에 박지현 비대위원장 총대를 메고 거기에 공천을 하게 되죠.

◇ 박재홍> 그때 어떤 문자 받으셨어요? 충격적인 문자 혹은 여러 가지 협박?

◆ 이원욱> 뭐 그 정도야 뭐 그것까지 공개하기는 그런데 다 까먹었습니다.

◇ 박재홍> 아, 그래요.

◆ 이원욱> 그런데 그래서 선거는 결국 패배하게 되고 경기도지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호남을 제외하면 다 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표하는 날. 개표하는 날 새벽에 재명이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하네.

◇ 이상민> 글을 적으셨죠?

◇ 박재홍> 네, SNS에.

◆ 이원욱> 제 페이스북에다.

◇ 박재홍> 기억납니다.

◆ 이원욱> 네. 이제 그게 저하고 이재명 대표가 멀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상민> 그 글에 막 캡처해서 강성 팬덤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막 글을 유포하고 그래서 막 이원욱 이 사람 봐라 하는 거냐 이렇게 질타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 이원욱> 그리고 뭐 살해 협박도 있고 막 그랬죠.

◇ 이상민> 그래요?

◆ 이원욱> 네.

◇ 박재홍> 살해 협박까지.

◇ 이상민> 그 당시에도.

◆ 이원욱> 그 페이스북 내 댓글에.

◇ 박재홍> 참 이거 보면 정치 오래 하셨고 현장에 오래 계셨지만 그런 살해 협박 수준까지 받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사실 좀 야, 이거 우리 정치가 여기까지 왔나.

◇ 이상민> 좀 심하다.

◆ 이원욱>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저는 그런 거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협박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니까 개인적 두려움에 떨거나 이러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면에서는 꽤 심장이 강한가 봐요. 그런데 야, 이게 정치가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그런 거에 대해 이제 비판적 생각도 갖게 되고 돌아보는 계기도 되죠. 나도 혹시 그러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이제 저도 더 조심하려고 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 박재홍> 무서운 얘기를 해서. 우리 의원님이 자격증이 특이한 게 있다고요?

◇ 이상민> 네, 숲 해설가 자격증.

◇ 박재홍> 갑자기.

◇ 이상민> 네,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는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런데 숲 해설가 자격증을 저희 제작진도 보유하고 있어요. 이광재 프로듀서가.

◆ 이원욱> 그러세요?

◇ 박재홍> 네, 굳이 또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신 분을 저희가.

◇ 이상민> 이건 어떻게 해야 딸 수가 있는 겁니까?

◆ 이원욱> 저는 청주에서 땄습니다.

◇ 박재홍> 아, 청주에서.

◇ 이상민> 연고가 또 있나요? 이런 것도?

◆ 이원욱> 아니, 저는 그 당시에 국회의원 선거 떨어지고 원외위원장 할 때 2010년도 지방선거가 돌입을 하는데 이번에 지방선거를 화성에서 한번 이겨봐야 되겠다. 그래서 정말 시장은 대강 자수성가한 사업가, 그 동네 토박이. 완전히 원주민들의 영향력이 강하니까 토박이 출신. 그리고 그 나머지 시의원, 도의원 이런 사람들은, 후보들은 다 시장 선거에 하나라도 표가 될 만한 사람. 경상도 출신, 충청도 출신, 호남 출신. 당시의 화성이 한 700~800명 시장 시 공무원이 그 정도 됐는데 한 20% 정도가 호남 출신이었습니다, 공무원 중에. 그런데 과장으로 승진한 공무원이 한 명도 없었어요, 호남 출신 중에. 그 정도로 호남이, 호남 출신들이 소외 받던 곳. 그러니까 호남 사람들이 그러니까 일반, 일반 시민들도 호남 출신들이 굉장히 소외를 받아가지고 야, 이번에 거기 시의원 후보를 한 명을 내면, 기초의원 후보를 한 명 내면 호남 사람들을 완전히 똘똘 당선시켜서 뭉칠 수 있겠구나 이런 것들이 선거 전략이었죠. 그래서 2010년도 선거를 했는데 460표 차이로 이깁니다. 화성 시장이. 그러고 나서 그때부터 뭐야 도대체. 도대체 우리 동네가 어떻게 된 거야? 한나라당 지지자들. 이원욱이 도대체 어떤 놈이야. 돈도 없다는데. 왜. 동네 정가에 좀 알려지기 시작을 하고 그러면서 그러면 2년 동안 그때부터 총선 준비할 때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나의 자질을 좀 키워야 되겠다. 그리고 마음을 좀 정화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 해서 첫 번째 기후강사 자격을 한번.

◇ 박재홍> 기후 강사 자격.

◆ 이원욱> 네, 화성 YMCA에서 하는 자격 시험 교육을 받기 시작을 하고요. 환경에 좀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 박재홍> 신재생 에너지 의원.

◆ 이원욱> 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숲 해설가를 한번 공부를 해 봐야 되겠다. 어디가 제일 좋나 했더니 사람들한테 문의를 했더니.

◇ 박재홍> 청주가 제일 좋다.

◆ 이원욱> 청주가 제일 빡세게 가르친다.

◇ 이상민> 나름 메이저.

◇ 박재홍> 학교가 있어요? 학교가?

◆ 이원욱> 숲 해설가 그건 아니고 뭐였더라 단체가 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산림청으로부터 위탁받아가지고 교육을 시키는 거죠. 40회 4시간씩.

◇ 박재홍> 160시간을 공부하셨구나.

◆ 이원욱> 그리고 그 시간 아니어도 주말이면 가가지고 실습. 정기 교육 시간 빼고.

◇ 이상민> 어떤 실습을 합니까? 숲 해설가는. 나무를 보고 이게 어떤 나무구나 바로 알고.

◆ 이원욱> 그런 거는 잘 안 가르쳐주고요.

◇ 이상민> 안 배웁니까? 안 가르쳐주는군요.

◆ 이원욱> 식물 도감은 잘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강 이 숲이라고 하는 곳이 생태환경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그 속에서의 공존은 어떻게 하는가. 최재천 교수님께서 대표적인 생태학자시잖아요. 그분이 얼마 전부터 경협이라고 하는 용어를 써요. 경협.

◇ 박재홍> 경협.

◆ 이원욱> 네, 경협. 자연을 관찰해 보니 경쟁하면서 협력하더라. 자연은 그렇다. 생태는 그렇다. 경협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을 하시는데 우리 제가 그 단어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도 좀 싸움만 하지 말고 경협을 하면 좋을 텐데. 하여튼 그런 생태가 어떻게 자연이 경협을 하는가, 공존하면서 살아가는가라고 하는 거를 주로 현장 실습 때 가르쳐주세요.

◇ 박재홍> 환경 얘기하니까 또 대통령님 갑자기 생각나는데 잠깐 나와주시죠. 대통령 님.

◇ 이상민> 안녕하십니까. 제가 감기 기운이 좀 있어가지고. 어쨌든 제가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누가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그 RE100인지 200, 300인지. 제가 이번에는 공부를 제대로 했습니다.

◇ 박재홍> 네, RE100.

◇ 이상민> 정말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원전이 핵심 아니겠습니까? 제 말이 틀렸다는 분도 계신데 이 전문가인 우리 숲 해설가. 이거 해설 플리즈. 부탁드립니다. 그렇습니다.

◇ 박재홍> 질문 답변 간단하게 해 주셔도 돼요. 원전 문제, 신재생 에너지.

◆ 이원욱> 제가 RE100이라고 하는 거가 애플이라든가 구글 이런 데서 처음 시작됐을 때 그래서 거기서 이미 우리나라 삼성이라든가 현대하이닉스 이런 데다가 요구를 시작을 했습니다. 당신네 재생에너지로 해서 제품을 생산하겠다라고 하는 계획서를 갖고 와라고 했는데 그때 저도 RE100이라고 하는 용어를 2019년도에, 18년도인가 이때쯤에 처음 접하게 되고 그런데 주로 임원들도 한번 만나보고 했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고요. RE100 단어도 모르고. 그래서 야, 이거 큰일 났다. 한번 실무 환경과 관련된 실무 담당하는 대기업의 직원들을 한번 모아봤어요. 주로 과장급, 차장급 이런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당시 삼성전자의 차장이었던가, 과장이었던가 젊은 여성이었는데 제 눈에는. 그때 이러는 거예요. 의원님, 이 자리 마련해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애플이라든가 구글에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 이 계획서를 갖고 와라 뭐라고 하는 거를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인데 우리 임원들한테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래서 그거를 몇몇 그렇게 해서 환경단체들 등등 해서 같이 그 모임을 한 6개월 정도 있다가 RE100 이니셔티브라고 하는 걸로 발족을 시키죠. 그러면서 발족시키기 시작하면서 임원들도 들어오게 되고 좀 고위층. 최고 경영자 이렇게 여기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상무급이라든가 전무급 등등이 기업에 들어와서 은행이라든가 하여튼 RE100과 관련된 금융제도 이런 것들이 같이 시작을 하죠. 그래서 RE100이라고 하는 게 진짜 굉장히 중요한 의제로 처음에 만들어지는 데 역할을 했다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좀 있고요. 제가 초선 때부터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 관련 관심이 많아가지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기후 강사, 숲해설가 이런 걸 하다 보니까 이거를 실천적으로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은 뭐야 결국 에너지 아니야 그러면 그건 결국 재생에너지 아니야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초선 때 2년 차인가. 한 12년도에 국회의원이 됐으니까 14년도 정도에 신재생에너지 백과사전이라고 하는 책을 내게 되고요. 그리고 초선 말기에 미래 에너지 백과사전 그리고 재선 말기에는 수소 에너지 백과사전이래서 에너지 백과사전 시리즈로 3권을 만듭니다. 대부분 다 세 권 다 우리 청소년을 위한 에너지 입문서라고 붙여서 쉽게 써 보라고 쓴 거예요.

◇ 박재홍> 의원님이 직접 쓰신 거예요?

◆ 이원욱> 아니, 보통 같이 쓰죠.

◇ 박재홍> 전문가들과 함께. 백과사전이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번에 4선 되시면 또 쓰실 내용이.

◆ 이원욱> 원래는 에너지 입문서 3권으로 끝장을 내려고 했는데.

◇ 박재홍> 끝장내려고 했는데 또 남았구나.

◆ 이원욱> 그렇죠. 이제 수소 에너지 백과사전 증보판을.

◇ 이상민> 증보판.

◇ 박재홍> 수소 에너지.

◆ 이원욱> 얼마 전에 내게 됐는데, 4년 만에.

◇ 박재홍> 아, 그렇구나.

◆ 이원욱> 그런데 이게 사람들이 처음에 그러니까 4년 전에 그 책을 냈을 때 환경단체에서 막 단체 구입. 그다음에 일반 대학에서도 부교재로 쓰게 했다고 단체 구입.

◇ 박재홍> 잘 됐어요. 잘 팔렸어요.

◆ 이원욱> 많이 팔렸습니다. 수소와 관련된 인문서적 성격이 없는 거예요. 전부 전문서는 많은데.

◇ 박재홍> 아, 그렇구나.

◆ 이원욱>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거에 요구. 나 그 책 좀 구해 보고 싶은데 의원실로 막 전화 오고 그래서 그 책이 없더라. 이제 인터넷도 판매가 안 되고 막 그러니까 그 책을 좀 구해 볼 방법이 없냐. 그리고 저희도 갖고 있던 걸 다 나눠줬고 그래서 증보판을 내게 됐죠. 많이 팔았습니다.

◇ 박재홍> 증보판도 더.

◆ 이원욱> 많이 팔았습니다.

◇ 박재홍> 네, 알겠습니다.

◇ 이상민> 나중에 이거 합본으로 나옵니까? 하나로 뭉쳐서.

◆ 이원욱> 4년 전에, 4년 전 그렇게 할 때는 남은 책들이 좀 있어서, 1, 2권이. 이렇게 박스에 담아서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 박재홍> 증보판. 4선 때 내시는 걸로 하고 세 번째 순간 넘어가 볼게요.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 세 번째.

◇ 이상민> 제3지대 빅텐트입니다.

◇ 박재홍> 이렇게 해서 빅텐트 지금 텐트 치고 계실 곳 혹은 큰 집을 만드실 예정인데 미래대연합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 이원욱> 미래대연합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스스로가 자강의 노력을 하자.

◇ 박재홍> 자강.

◆ 이원욱> 그래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엮어갈 것인가라고 하는 거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보여드리자, 국민들한테. 그리고 국민들이 지금 요구하는 거는 결국에는 지금 신당을 추진하거나 신당을 만든 제3지대 정당들이 저는 도토리 같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하여튼 그런 도토리 같은 정당들이 도토리가 나쁜 건 아닙니다. 아주 국민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이죠. 그래서 5개가 있는데 이거를 빅텐트로 하나로 뭉쳐보자.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고요. 왜냐하면 그래서 나머지 4개, 4개. 저희를 제외하면 4개인데 이 4개가 그래도 국회의원 3명이 이거를 빅텐트를 만들어보자라고 하면 조금 더 힘을 얻지 않겠냐라고 하는 그런 심정에 지금 그래서 아직 물밑 대화들이 조금 아까 김종민 의원이 전화 왔듯이.

◇ 이상민> 비밀을 노출할 뻔했어요.

◆ 이원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박재홍> 활발하게 지금 물밑에서 뭔가 대화가 진행될 때 진 겁니다. 방송중일 때 막 전화하고 예, 그런데 지금 도토리 5개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도토리 5개 중에서도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얘기도 나오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같은 경우는 빅텐트 골든타임이 지났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하는데 의원님 말씀 들어보면 아까 김종민 의원 말씀 들어보면 제3지대 통합의 8부 능선까지 넘어갔다가 그게 또 개혁신당 창당으로 이어지면서 약간 빅텐트 어떤 골든타임이 지나간 부분도 있다라는 말씀에 동의도 하셨는데 지금 어떤 상황인 거예요? 그러면요?

◆ 이원욱> 천하람 위원장이 또 하신 말씀은 아니 빅텐트와 데드라인 사이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골든타임과 왜 데드라인 사이에 있는 거지?’ 이렇게 얘기도 하시고 그래서 실제로 제가 직접 그래서 이준석 대표를 만나보기도 하고 하는데 전혀 안 하겠다라고 하는 생각은 아니고요. ‘어떤 절차와 시기에 하는 것이 가장 국민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느냐?’ 이거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다 차이가 좀 나는 거지 그래서 그런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 미래대연합은 의원 3명하고 박원석 정의당 의원 출신 전 의원, 그다음에 정태근 국민의힘 출신 전 의원, 이렇게 5명이 있는데 5명에서 하는 얘기들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우리로부터 마음을 비우자’ 그리고 ‘양보하면 된다.’ 양보하면.

◇ 이상민> 양보.

◆ 이원욱> ‘우리가 뭔가를 가지려고 하면 이거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국회의원 3명이 다른 데 양향자 의원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데 국회의원 3명이 ‘진짜 다 버릴 테니까 우리 한번 모아보자.’라고 ‘양보한다면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냐?’ 그리고 전직 국회의원 2명까지 있고 이런데 그래서 그런 진정성들을 조금 조금씩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 박재홍> 개혁신당에서도?

◆ 이원욱> 네.

◇ 이상민> 지금 안 그래도 1차 비전, 대화, 28일에 미래대연합, 개혁신당, 새로운 미래 이렇게 진행한다고 하는데 어떤 대화들이 또 오고 갈까요?

◆ 이원욱> 그게 의제는 아직까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엮어갈 것인가? 사실 흙수저니, 절망이니 이런 얘기들이 나온 것이 꽤 대한민국에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근본적으로는 불평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중산층이 붕괴된 이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따뜻한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 볼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지금 임금구조를 보면. 정확한 수치는 아닙니다만 얼추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가 100을 받으면 대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65만 원을 받고요. 중소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는 55만 원, 비정규직은 35만 원, 그러니까 누군가 100만 원을 받을 때 누군가 35만 원을 받고 있는 겁니다. 이게 우리나라의 인구구조의 불평등 문제인데 이거를 어떻게 하면 좀 갭을 좁혀가지고 예전에 1970년대 이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80%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고요. ‘이 갭을 어떻게 좁혀낼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거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대한민국이 좀 고민할 정치권이 특히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냐?

◇ 박재홍> 1865님이 ‘같이 제대로 합쳐서 제대로 된 선택지를 꼭 만들어 달라.’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개혁신당이 지난 토요일 날 창당 행사를 하면 세 가지 단어가 있었습니다. ‘개혁신당은 보수정당이다.’ ‘민주정당이고 자유정당이다.’ 이 세 가지 단어, ‘보수, 민주, 자유’의 가치를 강조했는데 그러면 미래대연합은 이 보수라는 단어도 함께 포용할 수 있습니까?

◆ 이원욱>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가 아우러지는 정당, 지금 예를 들어서 국민의힘이라든가 아니면 민주당 내에도 단일 색깔은 아니거든요. 이념적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투표 성향으로 보면, 표결 성향으로 보면 가장 보수적인, 최근에는 보수적인 표결 방식을 채택해 왔고요. 그리고 가장 진보적인 사람은 정의당보다 더 진보적이기도 하고 이 스펙트럼이 다양하니까 중간지대, 제3지대의 것에 모이는 사람들도 ‘극우와 극좌만 아니라고 한다면 보다 중도 진보, 중도 보수를 포괄하는 스펙트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모여야 합리적 정책 결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정당이 유의미한 득표를 해서 최소한 교섭단체 이상이 된다면 양 극단화된 정치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재홍> 양보, 양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러면? 양보의 수준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저게 무슨 양보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이상민> ‘말만 양보다.’ 이럴 수도 있으니까요.

◆ 이원욱> 그러니까 자리 일단 자리, 자리라 함은 그러니까 무슨.

◇ 박재홍> 공천?

◆ 이원욱> 아니, 공천도 돼요. 우리가 당대표를 하겠다. 뭘 하겠다. 이런 거 아니고 예를 들어서 양형자 의원님께서는 ‘한국의 희망이 당명을 좀 갖고 가고 싶다.’, ‘그리고 내 당 밑으로 들어와라.’, ‘이미 당이 만들어져 있는데 뭐가 또 창당하고 그러냐?’, ‘그래도 좋다.’ 그런데 이름이 정말 좋은지 안 좋은지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만 만약에 그것이 결정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거 수용할 수 있다.

◇ 이상민> 그런데 각 그룹이 걸어온 길도 다르고, 궤적도 다르다 보니까 화학적 결합은 정말 어려울 거다. 왜냐하면 정책 조율하다 보면 또 노선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최근에는 이준석 전 대표가, 이준석 대표죠.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주장을 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보십니까? 결국은 조율을 해 나가야 되는데.

◆ 이원욱> 저는 꽤 유의미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 이상민> 그래요?

◆ 이원욱> 어떤 의미에서 그러냐면 지하철을 타는 사람과 안 타는 사람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농어촌 지역에 계신 분들은 혜택을 못 보잖아요. ‘그런 분들에게까지도 전체 교통비를 지급을 해서 보편적 복지 차원을 만들어주고 대신 일정 부분에 지하철 운임비는 폐지하자.’, ‘타고 다니는 거 폐지하자.’ 그거는 도시에 사시는 분들만 혜택을 보는 거를 전체 노인 어르신들한테 넓혀놓는 거기 때문에 꽤 유의미한 제도라고 보고요. 이준석 대표가 과거에 해왔던 몇몇 가지 젠더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들 때문에 제가 그 공약을 보면서 딱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만약에 이원욱이 발표했으면 갈라치기라고 안 했을 텐데.’ 그런데 조금 더 세밀한 부분은 좀 필요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한 달에 1만 원씩 12만 원을 주겠다.’라고 했는데 ‘12만 원은 좀 작지 않은가?’라고 생각도 들고 이걸 바우처 제도를 좀 더 도입을 한다면 바우처 제도는 이게 돈을 안 쓰면 국가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지자체나 국가가 가져가는 거니까 예를 들어서 한 1년에 30만 원 정도까지도 올려서.

◇ 박재홍> 꼭 필요하신 분은 쓸 수 있게 하고 귀속된 건 귀속되게 하고.

◆ 이원욱> 이런 식의 제도로 한다면 일부는 예를 들어 이준석 대표가 얘기했듯이 12만 원은 다 일괄 지급하고 나머지.

◇ 이상민> 부족분에 대해서는.

◆ 이원욱> 저는 바우처 제도로 하고.

◇ 이상민> 바우처로 하고 있다.

◆ 이원욱> ‘이렇게 해서 조금 더 하면 그 수용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어르신들도 이제는 65세부터 혜택을 받는데요. 그것도 순차적으로 늘려가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 이상민> 노인회하고 마찰은 어떡합니까?

◆ 이원욱> 풀어가야죠.

◇ 박재홍> 중요한 말씀하셨어요. 사실 당 이름, 당대표 자리, 혹은 다 공천까지도 다 포기할 수 있다. 통합을 위해서라면.’

◆ 이원욱> 저는 그렇습니다.

◇ 박재홍> 의원님만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김종민 의원, 조응천 의원님도 같은 바람이세요?

◆ 이원욱> 저희 3명 의원은 그래요.

◇ 박재홍> 그래요?

◆ 이원욱> 예.

◇ 박재홍> 예, 이낙연 전 대표 말씀, 입장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이낙연 대표님.

◇ 이상민> 이낙연입니다. 요즘 저에게 ‘지역구를 출마해야 한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계양 을을 얘기하던데 우리 이원욱 의원님께서는 ‘제가 광주로 출마해야 된다.’ 이렇게 보시는 겁니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이원욱> 대표님 죄송합니다.

◇ 이상민>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 이원욱> 죄송합니다. 이 대표님.

◇ 박재홍> ‘광주로 나가셔야 된다.’, ‘호남으로 나가야 된다.’

◆ 이원욱> 그러니까 광주든, 호남이든 호남의 상징이라고 하는 게 광주니까요. 좀 정면 승부를 걸어주셨으면 좋겠다.

◇ 이상민> 정면 승부요?

◆ 이원욱> 네, 그러니까 이낙연 대표에 대한 광주에서의 비호감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원욱> 그런데 가보면 굉장히 높은데 실제 여론조사 이런 거를 봐도 굉장히 높게 나오고요.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하여튼 반도 안 되게 이재명 대표에 대한 호감도가 반도 안 되거든요. 제가 수치까지 말씀드리면 또 어디 찾아야 되니까.

◇ 박재홍> 유튜브라서 큰 문제는 없긴 합니다만.

◆ 이원욱> 보통 한 작년 9월 정도에 갤럽인가 어디에서 조사를 했는데 민주당 지지도가 한 70% 정도 나왔고요. 광주에서, 호남에서. 그리고 저희가 이재명 대표 지지도가 35%인가 이 정도 나왔으니까 굉장히 낮은 거죠. 그런데 이분들의 생각은 대부분 '왜 분열해'. '지금 윤석열 저 거대 악이 있는데'. '거악 앞에서 단결해서 싸워야지'. 그런데 어찌 됐든 분열 프레임이라고 하는 거를 자유로울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더 큰 원천적으로는, 참 이거는 제가 볼 때도 이낙연 대표께서 억울한데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이 싹 거의 이낙연 때문이다, 이렇게 몰려버린 거예요. 그건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때 조직본부장을 하면서 이낙연 대표 하는 모습을 봤을 때 현장에서의 막바지 실수, 이런 것들은 좀 있었지만 저희들이 짜준 일정대로 다 가서.

◇ 박재홍> 최선을 다했다.

◆ 이원욱> 다 가시고 거기서 이재명 대표를 위해서 진짜 찍어달라고 하시고. 그런데 '왜 이낙연 대표한테 다 몰려가지'. 하여튼 그런 면에서는 억울한 측면들이 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어찌 됐든 억울하건 억울하지 않건 그게 현실인 거죠. 그래서 그거를 극복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 박재홍> 호남으로 가야 된다. 광주로 가야 된다.

◆ 이원욱> 그렇죠. 정면승부 할 방법뿐이 없다.

◇ 박재홍> 그런데 이낙연 전 대표 일각에서 원칙과 상식 의원님들 중에 '대선 출마하지 마셔야 된다'. 또 '불출마 선언까지도 해야 된다'. '그래야지 진정성이 좀 인정된다', 이런 얘기까지 하시는데. 의원님은 어떻게 판단하세요?

◆ 이원욱>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건 일종의 오버였고요.

◇ 박재홍> 그건 아니에요?

◆ 이원욱> 그러니까 저희가 요구했다고 이렇게 나오는데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 박재홍> 그런 적은 없고?

◆ 이원욱> 그런데 이런 건 있었죠. 이낙연 대표께서 김부겸 전 총리를 만났을 때 '내가 대권, 당권에 무슨 관심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겠나'.

◇ 박재홍> 그런 말씀은 하셨다.

◆ 이원욱> 그러니까 이게 오히려 이낙연 대표께서 하신 말씀이지. 저희가 '불출마를 전제로 뭘 해 보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낙연 대표께서 저희를 만나면 '내가 무슨 욕심이 있겠나'. 그러니까 '그런 거 없으니까 믿고'. 그리고 내가 진짜 이 혐오 정치, 양극단에 대한 혐오 정치, 분열의 정치. 분열공화국이라고 하잖아요. 이거에 대한 진영 정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극복하는데 '이제 남은 정치 인생 밀알이 돼 보겠다'. 이런 말씀은 자주 하세요.

◇ 박재홍> 이낙연 대표도 어떤 3지대가 함께 가야 한다, 이 부분에서 굉장히 공감을 하시는 것 같고. 현재까지 논의 수준을 보면 몇 퍼센트입니까? 3지대가 통합될 수 있다. 빅텐트, 큰 집.

◆ 이원욱> 퍼센테이지로 보기는 좀 애매한데요.

◇ 박재홍> 그런가요?

◆ 이원욱> 그러니까 이게 되면 갑자기 내일도 될 수 있고.

◇ 박재홍> 그래요?

◆ 이원욱> 안 되면 또 진짜 끝까지 안 될 수도 있고, 이런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가장 어렵게 되는 걸림돌이 뭡니까?

◆ 이원욱> 그러니까 이게 따로 살다 보니까.

◇ 박재홍> 따로 또 같이.

◆ 이원욱> 그러니까 같이의 문제보다는.

◇ 박재홍> 함께.

◆ 이원욱> 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나, 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나. 뭐 이런 것.

◇ 박재홍> 신뢰에 문제가 있다. 그렇군요.

◆ 이원욱> 부부 사이도 그렇잖아요. 처음에 만나가지고.

◇ 박재홍> 결혼할까 말까.

◆ 이원욱> 사랑을 할 때 결혼하기 전에. 이때는.

◇ 박재홍> 밀당의 관계입니까?

◆ 이원욱> 관계가 있고. 특히나 둘이서 좋을 때는 괜찮아, 연애할 때는. 그런데 결혼식이라고 하는 절차를 들어가기 시작하면 집안과 집안의 계약관계가 되지 않습니까.

◇ 이상민> 혼수 이런 것도 있고.

◆ 이원욱> 그때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이런 것처럼. 하여튼 그런 신뢰의 문제. '쟤들이 진짜 마음 비운 거야'. '또 다른 얘기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이 지금 걸림돌 같은데. 그것만 해소된다면 당장 내일도 가능합니다.

◇ 박재홍> 신뢰의 문제만 해소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신뢰는 뭡니까? 다음 대선까지 무조건 우리가 함께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수준인가요? 아니면.

◆ 이원욱>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런 건 아니다.

◇ 이상민>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 이원욱> 지금까지, 지금은 좀 빅텐트의 설계 도면을 만들어보자. 하여튼 이 정도의 상황에서의 신뢰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집을 지으려면 설계 도면이 먼저 국민들한테.

◇ 박재홍> 그렇죠.

◆ 이원욱> 우리 이런 설계 도면이 있는데 표 주시렵니까? 그래서 한번 믿어주시렵니까? 이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대선까지라고 하는 거는 큰 건물을 짓는 건데 만약에 1단계 설계되면 그다음에 2단계 1층 짓고, 2층 짓고, 3층 짓고, 이렇게 가는 거지.

◇ 이상민> 골조.

◆ 이원욱> 어느 날 갑자기 이 10층짜리 건물이 설계 도면에서 쫙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 박재홍> 80일도 선거 안 남았는데 빨리 시간 좀 급하신 거 아니에요, 사실? 시간 많습니까?

◇ 이상민> 집을 짓기에는.

◆ 이원욱> 한번 생각해 보세요. 3일 전. 3일 전에.

◇ 박재홍> 창당했네요.

◆ 이원욱>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저렇게.

◇ 박재홍> 갈등설.

◆ 이원욱> 갈등이 생기면서 지금 완전히 집안이 망가질 것 같은 이런 거 상상도 못하셨잖아요.

◇ 박재홍> 그러네요.

◆ 이원욱> 지금부터 아마도 제가 한 한 달 전쯤에 기자들이 물어봤을 때 '앞으로 한 100번의 변화는 있을 거야'.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 이상민> 100번.

◆ 이원욱> 네. 100번은 아니어도 이게 좀 과장된 표현입니다. 수십 번의 변화. 전국에 그냥 팍팍팍 바뀌는.

◇ 이상민> 이제 시작입니까?

◆ 이원욱> 네. 이제 시작되는 거죠. 이런 것들이 있을 건데. 각 당에 특히나, 각 당의 공천이 굉장히 불공정 공천이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측들이고요.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또 민심의 변화, 이런 것들도 굉장히.

◇ 이상민> 그러면 지금 윤한갈등은 봉합된 게 아니라고 보시는 거네요.

◆ 이원욱> 아직 봉합 안 됐죠. 안 됐죠. 그런데 이런저런 정치권 내에서 들리는 소문들, 소식들 이런 걸 들어보니까 대부분이 팩트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 박재홍> 갈등은 맞다.

◆ 이원욱> 갈등, 갈등의 팩트는 맞는 것 같다.

◇ 이상민> 약속이 아니다.

◆ 이원욱> 그러니까 저는.

◇ 박재홍> 약속은 되려 아니다.

◆ 이원욱> 저는 어제 모 방송국에 나가서는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라고 하는 게 하루 지나서는 그렇게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문제는 '야, 이게 깨지면, 진짜로 깨지면'.

◇ 박재홍> 3지대에게는.

◆ 이원욱> 아니, 그거 3지대의 문제를 떠나서 국민의힘이 완전히 다음 총선에서 참패하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 때문에 어떤 갈등을 봉합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냐. 이런 것들이 보편적 관측이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또 이 봉합된 게 또 어떻게 또 다른 방향으로 갈지 그 안에서 3지대의 움직임이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되는 그런 상황인 것 같군요. 이원욱 대표님과 함께 말씀 나눴는데요. 한판승부, 유튜브 한판열전, 마지막 순서 가기 전에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는 것을 저희 카메라를 보시고.

◇ 이상민> 이 카메라를 보시고. 정식 코너입니다.

◇ 박재홍> 구독자. 피할 수 없습니다.

◆ 이원욱> 안녕하세요. 국회의원 이원욱입니다. 오늘 한판승부 나왔는데요.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랑해요.

◇ 박재홍> 충격적입니다. 이렇게 정성들여 해 주신 의원님이 처음이었어요. (웃음)

◇ 이상민> 왜 국민한테는 욱 안 하는 겁니까? 질문이 좀 이상하지만 왜 이렇게. 저자세로 왜 이렇게.

◇ 박재홍> 의원님 덕분에 설 전에 60만 넘을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질문, 한판승부 공식 질문.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 이원욱> 어저께 제가 나태주 시인의 너에게 감사라고 하는 시를 제 페이스북에다 올렸는데. 조금 아까 드렸던 말씀도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그리고 양보한다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저는 비우면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비워야 채워지고.

◇ 박재홍> 비우면 강해진다.

◆ 이원욱> 그리고 아마 이런 것들은 국민들이 다 보시거든요. 저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저희들이 그나마 마음을 비웠으니까 된 거야. 그것이 또 지금은 손해 본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들한테는 커다란 설 전에 만약에 우리가 빅텐트가 만들어진다면.

◇ 박재홍> 선물까지.

◆ 이원욱> 밥상에다 아주 커다란 걸 드리는 거고. 그게 정치하면서 느끼는 보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더 마음을 비우고 너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감사하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한테 감사합니다. 한판승부 감사합니다. 우리 한판승부를 지켜봐주신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 박재홍> 지금 댓글이 좋은 게 너무 많이 있어요. '매력 있으시다'. '창당 잘 되시기 바랍니다'. 마우스웨어 님. 재희 님은 '의원님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방송이었다'. 진로보현 님은 '간절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공감의 말씀 주셨는데. 양보, 양보의 정치. 총선 전에 어떻게 마무리되고 제3지대가 어떻게 또 마무리될지 저희도 관심 있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민 크리에이터, 오늘 어떠셨어요?

◇ 이상민> 저는 사실 이원욱 의원 하면 살아오신 그 궤적도 그렇고 굉장히 투쟁과 욱 하시는.

◇ 박재홍> 욱 하실 줄 알았어요.

◇ 이상민> 그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부드러운 남자일 줄 몰랐습니다.

◇ 박재홍> 저 아버님과의 사연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 이상민> 이원욱이 아니라 다음에 뵐 때는 이원유로 부르겠습니다. 부드러운, 기름처럼 부드러운 해서.

◇ 박재홍> 온유하다. 오늘 이원유 의원님.

◆ 이원욱> 제가 충청도니까 맞습니다. 그렇지유?

◇ 박재홍> 그렇지유. 그래유. 우리는 원래 다 부드러워유. 한판열전. 이원욱 대표님과 함께했고요. 오늘은 여기까지고요.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또 보석 같은 게스트와 함께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상민> 감사합니다.

◆ 이원욱>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