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2(화) 이준석 "이재명 피습에 음모론 제기? 굉장히 부끄러운 일"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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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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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이준석 가칭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



◇ 박재홍>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 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오늘의 게스트 저는 개인적으로 이분은 조회수 폭격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빵빵 터집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 박재홍> 아, 폭격기입니까?

◇ 이상민> 네, 그렇습니다.

◆ 이준석> 시작하기 전에 제가 오랜만에 또 박재홍 아나운서 뵙는데 이번에 상 타셨던데요.

◇ 박재홍> 아이고...

◇ 이상민> 소개 안 했습니다. 네.

◆ 이준석>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

◇ 박재홍>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예. 이준석 대표가 자주 나와주셔서.

◆ 이준석> 저희 방송이 참 영광입니다.

◇ 박재홍> 저희도 방송에 항상 도움 감사드리고 오늘 보석 같은 게스트 이미 나오셨는데 그래도 한번 소개해 주세요.

◇ 이상민> 이미 나왔지만 후 순서로 하겠습니다. 등장만 했다 하면 화제인 자타공인 상계동 홍보대사 박근혜 키즈에서 이제는 대체불가 정치인으로 변하셨고요. 최근에 국민의힘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선언한 가칭 개혁신당의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이준석> 안녕하십니까?

◇ 박재홍> 네, 드디어 오셨어요.

◇ 이상민> 대표급에서 위원장으로 격하가 됐습니다.

◇ 박재홍> 그게 궁금하셨구나.

◇ 이상민>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 이준석> 이게 원래 보면 IT 기업 같은 데 가보면. IT 기업에서 요즘 하도 IT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많이 하다 보니까 창업자들이 대표이사를 안 해요. 보통 그래서 무슨 직함을 달고 보면 ‘이사회 의장’ 이렇게 해요.

◇ 박재홍> 맞네, 맞아요. 맞아요.

◆ 이준석> 왜냐하면 맨날 걸어가지고 계속 수사 받으러 오라고 하니까 그래서 대표는 천하람으로 지금 이렇게 세워놨습니다.

◇ 이상민> 거기는 잡혀 들어가라는 얘기입니까?

◇ 박재홍> 잡혀가도 하람이가 잡혀가도록.

◇ 이상민> 무슨 말씀이세요?

◇ 박재홍> 스스로, 스스로 변호하도록. 변호사잖아요.

◆ 이준석> 그거랑 정반대 이야기인 게 천하람 위원장한테 사실 천하람 위원장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1살 아래니까 편하게’ 그러래요. ‘대표 나 이번에 하면 내가 뭘 해야 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람아 내가 봤을 때는 그 잠수함 영화 많이 봤지?’ 그랬더니만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잠수함에 보면 잠수함 영화가 되게 간단하거든요. 그리고 찍는 데도 돈 얼마 안 들고 왜냐하면 빈 방 안에서 계속 찍으니까. 주 대사가 보통 뭐냐면 함장이 이렇게 ‘올라가라’, ‘내려가라’ 이런 거 지시하고 자기 어디 화장실 갈 때나 자리 비울 때 있으면 지금부터는 엑소가 지휘한다 이런 게 있어요.

◇ 박재홍> 엑소.

◆ 이준석> SOS 컨 이렇게 그러니까.

◇ 박재홍> 엑스오피스.

◆ 이준석> 이그젝티브 오피스인데 이게 부함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보통 ‘화장실 갈 때나 아니면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리 비우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그러는데 천하람 위원장한테 ‘그래서 이제는 네가 그걸 해야 되는 거 아니니?’ 그랬더니만은 또 하람이는 기분 좋아가지고.

◇ 이상민> 이 전략을 모르고 그냥 하셨군요.

◆ 이준석> 농담이고 저는 이런 거예요. 천하람 위원장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사실 저는 박근혜 키즈라 아까 소개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아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거고 저는 지금도 제가 대표나 아니면 창당위원장 역할을 맡으면 식상하잖아요. ‘또 이준석이야?’ 이번에는 천하람 위원장이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게 참 제 역할이다 싶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지금까지 제 앞에 있었던 선배들 중에 그거를 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거든요.

◇ 박재홍> 앞에 갈 사람, 혹은 2인자를 키워주는 그런 정치인들.

◆ 이준석> 그러니까 내가 지금 굳이 해야 되나 싶을 때 빠지는 게 저는 재주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실 그거를 제가 앞으로 정치하면서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정강정책위원장이 왜 되셨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굉장히 길게 해 주셨는데 그럼 우리 이준석 위원장님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한번 볼까요?

◇ 이상민> 첫 번째입니다. 상계동 지니어스입니다.

◇ 박재홍> 상계동 천재?

◇ 이상민> 네, 우선 서울에서 출생을 하셨고요. 1남 1녀 중에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 상계동으로 정착하게 된 게 아버님의 직장과 관련이 있고 처음엔 또 이렇게 번듯한 아파트 이런 게 아니라 반지하에 또 사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이준석> 제가 2016년에 상계동 처음 출마를 했는데 그때 저도 주민등록등본에만 제가 기억하고 있던 상계동, 상계2동 지금의 순복음교회 뒤편에 보면 오성빌라라고 있어요.

◇ 박재홍> 오성빌라.

◆ 이준석> 이게 유튜브에 가보면 저도 깜짝 놀랐는데 90년대 초나 아니면 80년대 말에 상계동 모습을 누가 영상으로 남겨놓은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노원역이 지금 가보면 주변이 완전 문화의 거리라서 사실은 술 마시는 거리가 됐는데 그전에는 논밭이었어요. 제가 논밭이던 시절에 상계동에 처음 전입한 거죠. 그러고 나서 몇 년 지나니까 아파트촌이 생긴 거죠.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살던 곳은 반지하였는데 이게 지금 가서 보니까 사람이 살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거기 원래 옛날에는 위층을 사면 지하를 하나 줬대요. 그런 게 있었대요. 그래서 위에 살던 집주인이 하나 밑에 받은 지하를 살려고 세를 준 거죠. 거기에 처음 전입했던 거고 거기에서 몇 년, 2년인가 살고 상계동에 그 당시 들어서 아파트촌에 전세로 들어간 거죠. 저희 아버지 직장이 서울역의 대우여가지고

◇ 박재홍> 대우.

◆ 이준석> 원래 미생의 모델이 대우 상사거든요.

◇ 이상민> 미생, 아, 드라마 미생.

◆ 이준석> 미생 드라마 모델이.

◇ 박재홍> 무역 상사.

◆ 이준석> 네, 무역 상사, 대우 상사 빌딩에서 서울 스튜어스에서 찍었고 이렇게 하는데.

◇ 이상민> 장그래, 네.

◆ 이준석> 그런데 그 대우빌딩의 아버지가 출퇴근하시는데 서울역까지, 상계역에서 34분, 가장 그래도 출퇴근할 만한 거리면서 지하철이 있고 대신 집값은 저렴한 편인 곳에 정착을 한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대표님 그 어린 시절 때문에 강남 정서만 가득했던 국민의힘에 어떤 강북 정서를 심을 수 있었던.

◆ 이준석> 솔직히 말하면 국민의힘에 정치하는 사람 중에 강북 정서가 있는 사람은 어릴 적에 강북 생활 기억이 있는 사람은 저랑 오세훈 시장밖에 없어요.

◇ 이상민> 오세훈 시장.

◆ 이준석> 이름이 알려진 사람 중에서는. 나머지는 보통 유년기를 거의 영남에서 보냈거나 아니면 강남에서 보냈죠. 그게 약간 차이고 그리고 사실 강북 정서라는 것이 그게 대단하다기보다는 가끔씩 드러날 때가 있어요.

◇ 박재홍> 이를테면 어떤 순간?

◆ 이준석> 오세훈 시장님 보면 정책 같은 걸 협의를 제가 많이 했잖아요. 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오 시장님 그때 아마 가장 밀접하게 일을 했을 텐데 공약 같은 것을 궤를 보면 오 시장님은 대중교통 공약이나 이런 거 이야기하면 되게 좋아하시고 되게 바로바로 반영을 해요.

◇ 박재홍> 본인이 또 타보기도 했었을 테니까.

◆ 이준석> 예전에 오 시장님이 워낙 외모도 훤칠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리고 또 오 변호사 시절부터 해서 방송을.

◇ 박재홍> 방송 많이 했죠.

◆ 이준석> 저 사람은 왠지 강남 사람일거예요. 공교롭게 국회의원도 강남 을에서 처음 하셨어요.

◇ 박재홍> 그러네요.

◆ 이준석>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 보궐선거 때 많은 사람들이 공격했던 거예요. 민주당에서. 제가 그때 찾아낸 게 오 시장님 강북구 삼양동의 판자촌에서 살던 모습 사진을 찾아가지고 반격을 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서울시 공약 보면. 서울시 정책 보면 약간 궤가 재미있어요. 뭐냐면 ‘서울 런’이라고 애들 온라인 교육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하는 거 이런 것도 사실 국민의힘의 다른 정치인들은 크게 생각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무상 수강 프로그램 비슷한 거 이런 거, 그리고 이번에 보면 ‘서울의 기후 동행카드’라고 해서 대중교통 무제한권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도 제가 제안하고 있을 때 되게 관심을 갖고 보셨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준석> 사실 지금까지 국민의힘에 다른 영남 베이스나 아니면 강남 베이스 정치인들 보면 이거 나오는 게 메가 서울 무슨 부동산 재건축 할 때 아니면 부동산 실거주 의무 이런 거 다 이런 게 부동산 정책이 주인데 그래도 약간 삶에 닿는 정책을 내는 사람들은 좀 다른 궤가 있다.

◇ 박재홍> 그래서 우리 대표님이.

◇ 이상민> 우리 위원장님 별명 중에 한때 ‘상계동 박보영’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 박재홍> 박보영?

◇ 이상민> 어린 시절에도 그런 별명이 유효했는지 어린 시절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 박재홍> 이게 돌잔치인가요? 이야, 어린 시절.

◆ 이준석> 저게 반지하죠. 그러니까.

◇ 박재홍> 딸기와 배, 아주 가득 어머니가 차려주셨고 고민형인가요? 저게?

◆ 이준석> 마시마로 같이 생겼는데요.

◇ 이상민> 마시마로.

◇ 박재홍> 마시마로.

◆ 이준석> 그때 마시마로가 없었으니까 비슷하게 했죠. 귤도 있고.

◇ 박재홍> 의젓하게 앉아 있습니다. 다음 사진 한번 볼까요? 이거는 몇 살 때인가요? 이 사진은?

◆ 이준석> 저게 한 2살 됐을 때 아닐까요? 저게 저 오성빌라입니다. 옆에 저 반지하로 보이는 게.

◇ 박재홍> 그렇구나 상계동에 오성빌라. 그리고 또 하나의 사진, 이때.

◇ 이상민> 갑자기 확 커버렸어요.

◇ 박재홍> 확 커버렸어요.

◆ 이준석> 온곡초등학교 학예 발표회, 사회 보도 할 때.

◇ 박재홍> 초등학교 이전부터 이미 발표 및 방송에 재능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 이준석> 저때는 심지어 온곡 국민학교였네요.

◇ 이상민> 국민학교.

◇ 박재홍> 그러니까 맞네, 맞네. 그래서 우리 위원장님, 이준석 전 대표님이 엄친아시잖아요, 사실. 강북 감성을 알지만 엄친아. 서울과학고 출신인 거죠? 그렇죠?

◇ 이상민> 맞습니다. 이후에는 카이스트 합격하셨는데 카이스트 포기하고 하버드 합격 되니까 바로 하버드로 진출하셔서.

◇ 박재홍> 하버드 칼리지.

◇ 이상민>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또 전공하십니다. 얼마나 공부를 잘하신 겁니까?

◆ 이준석> 이게요, 좀 봐야 되는 게 과학고 이게 되게 청취자분들 들으면 위화감 드는 얘기지만 이게 시대마다 과학고 입시도 좀 다르긴 한데. 제가 과학고에서 카이스트 갈 때는 저희 때 서울대가 원래 비교내신제라는 게 있었어요. 저희 전에까지. 그게 뭐냐 하면 과학고는 똑똑한 학생들끼리 모여 있으니까 내신을 내는 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수능 퍼센트대로 내신 퍼센트를 주는 비교내신제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폐지된 다음부터는 내신 성적을 그대로 그냥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140명 정도 학생이 저희 때는 있었거든요. 제가 한 40등 했을 거예요.

◇ 박재홍> 그러니까 과학고에서 4등급, 5등급은 다른 학교 전교 1등인데 어차피.

◆ 이준석> 그러니까 그런데 저희 때는 140명 중에 40등이니까 제가. 제 성적으로는 서울대를 못 갑니다.

◇ 박재홍> 내신.

◆ 이준석> 제가 만약에 일반고를 갔더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저희 안에서는 그래서 국제올림피아드 이런 거 금메달 따온 친구들 외에는 서울대에 도전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 박재홍> 서울대 안 가고 하버드 갔다는 거예요.

◆ 이준석>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 이상민> 오만 아닙니까?

◆ 이준석> 아니요. 그래서 제가 설명드리는데.

◇ 이상민> 오해가 있을 것 같아요.

◇ 박재홍> 가만히 좀 계세요.

◆ 이준석> 그때 그냥 말씀드리면 140명 중에 한 40명 정도는 서울대, 30-40명 정도는 서울대, 그다음이 한 중간에 한 70명 정도가 카이스트, 그다음에 한 20명 정도가 또 카이스트인데 이 전형이 약간 달랐어요. 그래서 가운데 카이스트 한 70명 정도는 인성면접이라는 게 있었어요.

◇ 박재홍> 인성면접.

◆ 이준석> 그래서 인성면접이라는 것만 통과하면 다 붙여주던 시절이 있었어요. 저는 인성면접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인성면접을 통과하면 다 되는 식이라서.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저는 수능도 보지 않았고 입시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의외로 저희 카이스트에 거의 자동 합격했던 그 중간에 있는 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준비했어요.

◇ 박재홍> 유학반이 있었군요, 그러니까.

◆ 이준석> 유학반은 학교에 없었고요. 저희가 그냥 SAT 이런 거 한번 봐보자 이렇게 해서. 저희가 대부분 비슷해요. 수학이나 과학은 만점이고 영어는 외국 학생들보다 좀 부족하고. 그런데 그때 뭐가 있었냐면. 과학고가 이거 제가 어제 방송에서 했던 것 같은데 김현정 뉴스쇼에서. 과학고가 집중탐구라는 게 있어요.

◇ 박재홍> 집중탐구.

◆ 이준석> 그게 뭐냐면 1년에 한 번씩 자기가 알아서 연구를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논문 비슷한 보고서를 쓰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과학전이라고 이런 경진대회도 출품하고 이렇게 하고. 저희는 의무가 있어요, 1년에 한 편씩 쓰는 게. 저희가 그런데 유학 가는데 낼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는 저기 학교 실험실에서 이렇게 연구하고 이런 것들을 영어로 번역해서 논문 형식으로 낸 거예요. 그런데 저희 때 유학 실적이 거의 전 세계 최고였습니다. 서울 과학고등학교가.

◇ 박재홍> 서울 과학고등학교가 하버드나 아이비리그 가는 실적 자체가.

◆ 이준석> 제 140명 친구들 중에서 MIT만 5명이었을 거예요. 그건 전 세계 최고 비율이었습니다.

◇ 박재홍> 하이스쿨에서.

◆ 이준석> 140의 5라는 거는.

◇ 박재홍> 그렇구나.

◆ 이준석> 사실 4% 되는 건데. 그런 학교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걸 보고 그때 어디가 난리 났냐면 외고가 난리난 겁니다. 그래서 대원외고, 한영외고 이런 데 난리 났는데. 제가 이걸 왜 말씀드리냐면. 이때부터 외고에서 이공개 논문 쓰기 열풍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저랑 나이 차가 한 몇 살 안 나는 걸로 알려진 모 장관의 자녀 같은 경우에도 그런 외고의 입시 컨설팅 때문에 그런 경로를 가다가 최근에 좀 곤란한 상황을 겪은 것 같은데.

◇ 이상민> 모 장관.

◆ 이준석> 그런데 그겁니다. 저희 과학고는 논문이 필수였어요, 학교에서. 유학이랑 관계없이. 그걸 번역해 내면서 저희가 그런데. 저희가 아까 말했듯이 SAT 성적이나 이런 건 조금 덜한데 연구 실적이 좋아가지고 저희가 대학을 많이 간 것처럼 외부에 알려지니까 유학계에서는 그걸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뜬금없는 외고에서 자연계 논문 쓰기가 열풍이 되면서 저희야 학교에 실험실도 있고 다 하지만 그분들은 외국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조금씩 알음알음으로 연구실 찾고 이러다가 무리수가 터져가지고. 그때 하나의 트렌드였던 거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상민> 이후에는 하버드를 들어가셨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들어가셨는데. 4학년 1학기 때까지 한 번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 다니셨다. 이거 팩트입니까?

◆ 이준석> 4학년 1학기 때까지는 제가 컴퓨터 고치는 걸 했어요.

◇ 이상민> 아르바이트 하신 건가요?

◆ 이준석> 제가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을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근로 장학생 비슷한 거죠. 학교에서 컴퓨터 고치는.

◇ 박재홍> 학내에.

◆ 이준석> 하드디스크 교체해 달라면 교체해 주고 그다음에 윈도우XP 깔아달라면 깔아주고 그런 거 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그게 윈도우XP, 요즘에야 윈도우 까는 데 5분이면 되지만 그때는 한 번 깔면 2시간씩 걸리고 그랬거든요. 뭐 이것저것 잡아주고. 그게 딱 그런데 공부하기 좋은 아르바이트죠, 그러니까. 누가 오면 깔도록 시켜놓고 내 공부하고. 그런데 시급은 시급대로 받으니까.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준석> 그래서 그런 거 하면서 많이 벌었었는데. 4학년 1학기 때 저도 논문을 써야 되니까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한테 '신용카드 한 장 보내주면 안 되냐고'.

◇ 박재홍> 신용카드 한 장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 이상민> 좀 도와달라.

◆ 이준석> 그전까지는 그게 있어요. 뭐냐 하면 미국 유학생들이, 그때 제가 보스톤에 있었었거든요. 보스톤에 있는 유학생들이 각 계급이 있어요. 경제 계급에 따라가지고. 뭐냐 하면.

◇ 박재홍> 2세.

◆ 이준석> 재벌 2세도 있었고요. 저 1년 위에. 최근에 동네 떡볶이 드신.

◇ 박재홍> 그래요.

◆ 이준석> 있었고. 그리고 밑으로 쭉 내려가 보면 뭐가 있냐면 한국 들어갈 때 뭐 타고 가느냐로 계급이 갈렸어요.

◇ 박재홍> 비즈니스?

◆ 이준석> 아니요. 경로.

◇ 박재홍> 경로. 그러니까 몇 번 쉬고 가냐? 원스탑, 투스탑.

◆ 이준석> 제일 돈 많은 사람은 뉴욕까지 가가지고 대한항공 KE086편. 바로 땅콩회항 그 편입니다. 그거 타고 가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한 1800불, 그 정도면 그 당시에 한 200만 원 가까이 됐던 표를 갖고 왔던 거고. 약간 중산층이나 아니면 그것보다 경제상황 안 좋으면 유나이티드 항공206. 시카고에서 갈아타고 나리타에서 갈아타고 서울 들어가는 편으로.

◇ 이상민> 위원장님은요?

◆ 이준석> 저는 그러니까 이런 거였어요. 제가 벌어서 쓰는 동안에는 무조건 유나이티드 그거였죠.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준석> 그런데 마지막에 하도 그거 할 때는 대한항공 두 번 탔나. 마지막에 논문 쓰고 이럴 때는 정신 없을 때는.

◇ 박재홍> 그러니까 이게 유학생활 자체도 굉장히 이렇게 풍족한 상황에서 하시는 건 아니고. 어떤 근로 장학생활 하면서 또 어렵게 어렵게.

◆ 이준석> 지금 따지고 보면 약간 궁상이었죠.

◇ 이상민> 궁상이요?

◇ 박재홍> 그런데 이제.

◆ 이준석>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뭐냐 하면 사실 그러니까 비행기값 그렇게 해서 차이 나면 한 6-700불 차이 나는 거였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그런데 다른 거 좀 아끼면 되는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궁상이었죠.

◇ 박재홍> 그래도 대표님이 과학고 출신이신데 영어를 굉장히 잘하잖아요. 옛날에 TVN 뇌색남.

◇ 이상민> 거기 출연하셔가지고 버터 발음을 안 쓰면 저도 실력이 있다. 극찬을 받아주셨고. 그 방송인 타일러 씨 있지 않습니까? 동그란 안경 쓰신 분. 그분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영어를 잘한다, 이렇게 또 호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 박재홍> 그분이 유시 버클리 출신이에요.

◇ 이상민> 네. 4개 국어 하신다면서요?

◆ 이준석> 중국어를 좀 하는데 옛날에 요즘도 거의 다 까먹었어요, 중국어. 단어를 다 까먹어버렸어요. 그런데.

◇ 이상민> 이름 뭡니까? 이준석은?

◆ 이준석> 리춘시.

◇ 이상민> 리춘시.

◆ 이준석> 그런데 그 타일러 씨가 저는 더 놀랐던 게 뭐냐 하면 제가 옛날에 어디, 타일러 씨가 유명해지기 전에 제가 어디 동아시아 연구원인 데서 강의하는 데 거기 학생으로 와 있더라고요. 그때 저 강의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거고. 이런 게 있잖아요. 한국에서 예전에 가장 재미있는 영어에 관한 에피소드가 영어 잘한다는 사람들 모아놓고 반기문 총장 얼굴 가린 다음에 영어하는 거 틀어줬더니만 영어 더럽게 못한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평가하던 걸 이렇게 본 적이 있는데. 글쎄요. 저는 발음이라는 것도 여러분 생각해 보면 발음 잘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발음 잘하는 거는 저도 굴릴 수 있어요. 그런데 소통에 있어가지고 가장 중요한 거는 적확한 단어를 쓰는 것이냐, 이런 게 중요한 거거든요.

◇ 이상민> 여담으로 윤 대통령은 영어 실력이 어떻습니까?

◆ 이준석> 영어는 하는 것과 보고 있는 건 다른 거거든요.

◇ 이상민> 표정이 안 좋아지시는데요.

◇ 박재홍> 벌써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가지고.

◇ 이상민> 죄송합니다. 영여 실력만.

◇ 박재홍> 빌드업이 조금 너무 빨랐어.

◆ 이준석> 60년생과 그리고 또 한동훈 장관님이 73년생인가. 그런데 그리고 85년생이 영어에 대한 접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 일률평가는 안 되고. 윤 대통령이 영어는 잘하시는 것 같아요, 그 나이 대에서는. 60년생 중에서는. 노래 부르는 거 보니까.

◇ 이상민> 왜 또 이렇게 비꼽니다.

◆ 이준석> 아니, 왜냐하면 연설은 보고 읽잖아요. 그런데 영어는 확실히 영어에 대한 톤이나 이런 감이 있긴 있는 것 같아요.

◇ 이상민> 롱 타임 어고.

◇ 박재홍> 그걸 또 성대모사 하는 이상민 크리에이터는 진짜 영어를 잘하시는 분이에요.

◇ 이상민> 저는 영어를 진짜 못합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0개 국어예요. 한국말도 못합니다.

◇ 박재홍> 이준석 가칭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 한판열전을 만나고 있는 그럼 우리 인생의 두 번째 결정 순간 넘어가 볼까요?

◇ 이상민> 두 번째입니다. 헌정사 최초입니다.

◇ 박재홍> 헌정사 최초라는 단어를 달기 시작합니다, 이준석 대표와.

◇ 이상민> 첫, 첫 정치 입성. 2011년 12월입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으로 이준석 위원장님을 임명을 했는데요. 이때 나이가 26. 그때 당시 떠올리시면 어떻습니까?

◆ 이준석> 제가 지금도 제가 G메일을 쓰는데. G메일 메일함에 해서 검색을 해 보면 그때 주고 받은 이메일들이 남아 있어요.

◇ 박재홍> 제안을 메일로 받으신 거예요?

◆ 이준석> 아니요, 전화로 얘기한다면 실무적으로 그 당시에 소위 말하는 박근혜 대통령 모시던 그 비서관 중에 정호성 보좌관이 저한테 이게 하시기로 하셨으면 인적 사항을 좀 체크해야 되는데 좀 적어서 보내달라 이런 걸 했는데 보내드렸던 그게 남아있는데 저는 처음에 거절했어요.

◇ 박재홍> 왜요?

◆ 이준석> 절차가 이렇게 된 거예요. 지금 하남시에서 당협위원장을 하셨던 이창근 위원장이라고 계세요. 그런데 이분이 대우증권에 계셨어요, 예전에. 한선교 의원 보좌관도 하시고 대우증권에 계셨거든요. 그런데 그 대우증권에서 저희가 후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저희 교육봉사단체가. 그런데 그 교육봉사단체에 저희가 제가 하버드 출신이고 이러니까 봉사단이 되게 잘 됐어요. 저희가 서울학부 후배들이랑 같이 했는데.

◇ 박재홍> 배나사.

◆ 이준석> 네, 수학 가르치는 단체였는데 수학을 되게 잘 가르쳐서 저희가 성적을 많이 올렸어요. 그런데 원래 보통 봉사단체가 성적 내기 되게 힘들거든요. 저희가 좀 약간 집착 같은 게 있어가지고 애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쳐서 되게 올렸어요. 그래서 저희가 동시에 한 400명 정도 가르치는 단체가 돼버렸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CSR이라고 굉장히 사회공헌에 대해서 기업들이 관심이 많았는데.

◇ 박재홍>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 이준석> 그때 대우증권이 산업은행 산하에 있던 곳이었으니까 약간 공기업 성격이 있는 곳에서 이런 걸 운영했는데 너무 잘 된다 그래서 그때 MB 대통령이 저 불러가지고 막 포상도 하고 막 이랬었어요. 그때 저랑 같이 청와대에 불려갔던 게 배움을 하는 사람들의 이준석과 공부의신 강성태.

◇ 이상민> 강성태 씨.

◆ 이준석> 네, 그래서 그래서 그때 저희 둘이 그 대표적인 교육 봉사 사람으로 선발돼서 가서 오찬도 가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그다음에 그 웃긴 게 뭐냐면은 대우증권에서 잘 됐다고 해서 이창근 그 당시 비서관이 추천한 거예요. 박근혜 대통령 쪽에다가. 그래서 저를 보러 오셨더라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래서 아직도 기억나는 게 그냥 저는 그냥 보러 오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헤어질 때 그때는 안봉근 비서관.

◇ 박재홍> 다 추억의 이름들이 계속 나오고 있네요. 초창기 때.

◆ 이준석> 안봉근 비서관의 선배죠. 안봉근 선배한테 얘기했던 게 뭐냐면은 다시 볼 일 없겠네요. 기억이 나거든요. 한 달 뒤에 비대위원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랬을 때 처음에 제가 사실 그래서 비대위원이 뭔지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사실 비대위원이 뭔지 몰라가지고 제가 그때 저희 아버지한테 얘기했더니만은 아버지가 그때 아버지 친구가 유승민 의원이니까 유승민 의원한테 물어봤던 거예요. 이걸 이창근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추천해서 이렇게 한다는데 이게 뭐니 그랬더니만 유승민 의원이 이창근이가 그랬다고.

◇ 박재홍> 대구 사투리로.

◆ 이준석> 그러더니만 알아볼게 하더니만 준석이한테 하지 말라 그래라 이렇게. 왜냐면은 이런 거죠. 그러니까 박근혜 비대위에 대한 확신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 어느 정도 있었겠느냐. 그리고 친구 아들내미니까 결국에는.

◇ 박재홍> 실질적인 조언을.

◆ 이준석> 얘가 어차피 프로그래머인데 정치에 와서 소비되는 그냥 하나의 젊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으셨겠죠. 그래서 진심어린 조언으로 하지 마라 그랬던 건데 제가 그래서 안 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박 대통령 쪽에서 한 번 더 전화 와가지고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박 대통령이 저한테 하셨던 말씀이 제가 지금 와서 오픈하는 건데 당이 위기라서 요청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위기이기 때문에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랬어요.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준석> 이 문장을 제가 어디서 그대로 썼냐 하면 갈비집 선언에 썼습니다. 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위기입니다. 저는 이 말을 잊지 않고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저한테 그 말했던 거를.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되게 장황하게 하시는 분 아닌데 딱 한 문장씩 던질 때는 누군가 그걸 베이비 토크라 욕하지만 듣는 사람은 굉장히 생각하게 하는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당이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그렇다면 그때 어릴 때는 또 허세가 있어가지고 대한민국 위기라는 데 가야지 뭐 이런 거.

◇ 박재홍> 그래서 그때 사진 있어요. 여러분. 사진 한번 볼까요? 사진.

◆ 이준석> 좋습니다.

◇ 박재홍> 완전 젊어요. 완전 젊어요.

◇ 이상민> 세 분 다 젊습니다.

◇ 박재홍> 세 분 다 젊네요.

◆ 이준석> 제가 여기서 한 가지 그냥 아무도 관심 안 가질 팁을 하나 말씀드리면. 제가 정치하면서 제일 놀라운 인연 중 하나가 누구냐면 요즘 방송 많이 나오시는 민주당 임세은 부대변인 있잖아요. 제가 교육봉사단체 할 때 대우증권에서 사회봉사단에서 저 담당하던 직원이 임세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그때.

◇ 박재홍> 신기합니다.

◆ 이준석> 교육 봉사단체를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했는지는 아마 지금은 저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임세은 부대표님한테 물어보면 인증을 잘해 줄 겁니다. 공교롭게도 CSR 사회공헌 팀의 담당자였어요. 저희 쪽. 그래서 정치권인데 무슨 인연이냐 이런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당시에 지금도 참 당대표 이후에도 대표님의 어떤 정치에 대해서 비판적 시선이. 당시만 해도 또 굉장히 힘들지 않으셨어요. 젊은 나이에?

◆ 이준석> 제가 오늘 실제로 말씀드렸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저를 유승민 의원이 영입했다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요. 그건 옛날에 어릴 때 인턴 할 때 잠깐 한 거고요.

◇ 박재홍> 의원실.

◆ 이준석> 박근혜 대통령이 하자고 했을 때 오히려 유승민 의원은 하지 말라고 그랬고요. 나중에 제가 비대위원 시작하고 나서 3일 뒤인가 조선일보에서 단독으로 이준석은 유승민 인턴 한 적이 있다 이렇게 띄웠어요.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절 불러가지고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진작 말씀 주시지 그랬어요.

◇ 박재홍> 알았으면 안 했을 수도 모르겠군요.

◇ 이상민> 딱 그렇게 한마디하신 거예요?

◆ 이준석> 네, 그래서 아니, 그런데 저는 인턴이라는 걸 그때 한 달인가 했는데 그게 제가 정치 이력도 아니고 해서 굳이 말씀드릴 생각을 안 했다 했는데 숨기려는 의도도 당연히 없고 그런데 그거를 그걸 들으면서 제가 느낀 게 뭐냐면 그때 이미 박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은 약간 거리감이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오히려 거꾸로 태극기 부대가 저를 공격할 때는 유승민 의원이 저를 비대위원 시켰다 이런 거 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모든 당사자는 알아요. 그게 아니라는 걸.

◇ 이상민> 그렇군요. 서로 호칭은 어떻습니까?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은 우리 이준석 위원장님을 향해서.

◆ 이준석> 이 위원 그랬죠, 항상.

◇ 이상민> 이 위원.

◆ 이준석> 네.

◇ 이상민> 아, 준석 씨 이렇게 안 하고.

◆ 이준석> 네, 전혀 그런 거 없어요, 이 위원 이렇게 얘기하고. 박 대통령이 저한테 계속 존칭만 하셨어요.

◇ 박재홍> 한번 직접 목소리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님?

◆ 이준석> 안녕하십니까? 이 대표, 오랜만입니다. 키즈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데 예전에 그런 말씀하셨죠? 제가 이준석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봤을 거라고. 왜 그렇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빨리 답변 좀.

◇ 이상민> 그냥 아까 말했듯이 무슨 말을 해도 저는 그때 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정도의 후광이 있는 인물이었고요. 저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이게 되게 웃긴 게 뭐냐 하면. 비대위 회의를 처음 하는데 저는 그때 솔직히 김종인 위원장이 어떤 분인지도 몰랐어요. 경제민주화가 뭔지도 몰랐고.

◇ 이상민> 그럴 수 있죠, 충분히.

◆ 이준석> 노태우 대통령 경제수석을 하셨다고 그러는데 제가 그때 정치 뉴스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몰랐는데 그래서 이상동 교수도 뵙고 하면서 되게 대단한 분들이니까 놀랐는데 비대위 회의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던 게 뭐냐 하면 이런 일이 있어요. 제가 언제 회의를 하고 나면 그 원탁에서 사람들이 회의하고 쓱 무리 지어가지고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이렇게 둘러앉아서 얘기를 하거든요. 불이 탁 꺼지는 거예요.

◇ 박재홍> 암전.

◆ 이준석> 예, 그래서 내가 누가 불을 껐지 이렇게 했는데 옆에 누가 농담 삼아서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이제 보시면 알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 버릇이 좀 있으시다.

◇ 이상민> 어떤 버릇이.

◆ 이준석> 방 나갈 때 불 끄고 나가시는 거.

◇ 이상민> 아, 자연스럽게.

◇ 박재홍> 아, 사람 있어도.

◆ 이준석> 아니, 그런데 그게 그건 되게 놀라워요. 그러니까 저희가 어디 약간 미화하는 프로그램이나 이런 데서 보면은 옛날에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에 계실 때 옛날에 그 변기에다가 벽돌을 넣고 이렇게 물 절약하려고 하셨다 이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제가 의식하지 않으려고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 약간 보면 그런 게 있어요. 확실히 어릴 때부터 그게 체득된 약간 그런 근검절약 이런 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보면 저는 어쨌든 항상 저 옆에 앉혔으니까 A4 용지에 그때 해서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네 번 접어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나씩 꺼내시거든요. 그래서 이걸 보고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저게 수첩 공주다. 써와가지고 읽는 거다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옆에 써왔나 보면 아무것도 안 쓰여 있어요.

◇ 이상민> 아, 그럼 종이만 꺼내신 겁니까?

◆ 이준석> 뭐를 하는 종이었냐 보니까 제가 말하면 다 적으세요. 옆에 사람들 얘기하는 거.

◇ 이상민> 아, 메모를 하기 위한.

◆ 이준석> 그러니까 메모용이었지 사실은 누군 항상 보면 이걸 누가 써줘가지고 수첩공주다 이렇게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자기가 메모 자기가 읽는 거예요. 나중에 말할 게 있으면. 그러니까 그런 걸 보면 사실 정치인한테는 사실 같이 경험해 본 거는 언론에서 셰이핑하는 거랑 실제는 좀 다를 수도 있구나라는 그때 많이 깨달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이준석> 그리고 이런 것도 막 제가 비대위원 할 때 마침 박 대통령이 환갑이 되셨거든요. 제일 기억나는 게 뭐냐 하면 그러니까 그분은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엄하고 무서웠던 게 뭐냐하면 이런 게 있어요. 이제 제가 그때 제일 어렸으니까, 비대위원 중에. 그리고 저를 아껴 하셨으니까. 그때 생신날 제가 케이크 들고 가는 역할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케이크를 딱 들고 파란색 파리바게트 이렇게 케이크 케이스에 이렇게 가는데 딱 가지고 딱 가니까 우리가 최근에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하기로 했는데 파리바게트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실 그게 아주 정확한 건 아닌 게 파리바게트 하시는 분들도 소상공인이고.

◇ 박재홍> 소상공인이고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기는 하죠.

◆ 이준석> 그때 프랜차이즈에 대한, 소상공인 프랜차이즈에 대한 어떤 규제 같은 게 좀 하려고 저희가 정책을 낼 때였어요. 그때 대형마트 영업 규제도 있고 이렇게 프랜차이즈 것도 했는데 그런 게 탁탁 바로 나와요. 그러니까 저는 물론 탄핵을 당하시고 했는데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되게 복잡한 감정을 국민들이 갖고 있겠지만 저는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가 그게 2012년이고, 2016년에 그분이 탄핵되고 재판 받으시는 거 보면서 어디부터 어디가 잘못된 건가 굉장히 헷갈리더라고요. 저분이 사치하는 걸 본 적도 없고 했는데. 저분이 노후에 여생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 몇 백억을 속된 말로 다른 주머니로 축제했다는 혐의라는 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지 이런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항상 제 인스타그램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보면 제가 그때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한 20일 연속으로 술만 먹었던 적도 있었어요.

◇ 박재홍> 그래요.

◆ 이준석> 이게 정치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라는 생각하면서. 뭔 말하다 여기까지 왔지.

◇ 이상민> 네, 그렇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계속해서 세 번 낙선을 하세요. 상계동에서 도저히 이건 좀 아픈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지역구입니다. 어려운 지역구 국민의힘 의원으로서 후보로서 할수록 어려운 지역구이고 그걸 또 알면서도 지원하셨었고.

◆ 이준석> 제가 노원 병에서 마지막 선거 나갔을 때 44% 받았거든요. 이번에 이준석 빠진 노원 병이 만약에 된다면 그러면 실제 여기에 판세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지금도 그래서 제가 상계동에서 요즘도 아침마다 사람들 밖에 나가서 인사하고 이렇게 하는 게 굉장한 책임의식이 있었어요. 상계동에 대해서. 왜냐하면 제가 상계동을 처음에 2016년에 맡겠다고 했던 것은 저한테 강동구로 가라 이런 것도 있었고 제가 중학교는 여기 바로 옆에 월촌중학교 나왔으니까. 목동.

◇ 박재홍> 양천구로 가라.

◆ 이준석> 양천구로 가라는 사람은 없었어요. 양천구 이제 손들고 나올 수 있었겠죠. 공천 경쟁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 서울의 제일 어려운 지역구를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관악 을 아니면 노원 병이거든요. 당이 영남화가 되다 보니까 영남의 지지자들이 바라보기에는 어차피 서울 아니야 이런 관점이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지지자들은 알죠. 상계동이나 관악 같은 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런데 그게 보수정당이 가장 뼈아픈 지점이죠. 험지에서 뛰고 노력했을 때 그거에 대한 어떤 제가 생각했을 때는 가면서 노무현 대통령까지는 아니더라도 험지 돌파 모델을 생각하고 간 건데. 한 번 떨어지면 두 번 떨어지면 세 번 떨어지면 조롱이 오는구나. 심지어 두 번째는 보수정당 공천도 아니고 바른미래당이었어요. 바른미래당으로 전국 최고 득표율 한 거거든요.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준석> 그런 것도 참 신기하더라고요.

◇ 이상민> 일각에서는 마삼중이다 이렇게 또 비판하고 있지, 조서하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막 세 번을 떨어지면서 낙선하면서 후회하신 적 솔직히 있으실 것 같아요.

◇ 박재홍> 없었어요.

◇ 이상민> 없었습니까?

◆ 이준석> 네, 왜냐하면 그게 어차피 기간으로 따지면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딱 4년이거든요. 공교롭게 제가 4년 동안에 세 번의 선거를 치를 기회가 있었던 거예요. 이게 8년째가 되고 네 번째 기회가 있는 건데 글쎄요. 정치하면서 제가 아까 천하람 위원장 얘기했지만 저는 26살, 7살에 시작해서 12년 동안 그래도 유의미하게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있는 거고 오히려 제가 천하람 위원장한테 이번에도 얘기했던 건 뭐냐 하면 너는 내가 가진 10년의 여유라는 게 없을 거다. 너는 나보다 더 빨리 성장해야 된다. 그러니까 하람아 너도 이번에 전당대회에서 네가 황교안 대표랑 이런 사람까지 제치고 3등 했던 거는 누가 뭐래도 그건 너희 성장이었다. 그러면 이번에도 한 단계 성장하는 걸 해야 되는 거 아니니? 이렇게 하면서 잘 생각해 보면 이번에 다른 도전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20대 때 도전했기 때문에 도전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큰 비용은 아니었지만 너도 39인데 이번에 무의미하게 예를 들어 국민의힘 내에서 개혁하겠다 이런 소리하다가 또 무의미해지면 마흔 셋, 그다음에 마흔 여덟 이렇게 가는 거다. 43, 45, 7 이렇게 가는 거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무조건 성장해야 된다 그 얘기를 계속했던 거죠. 저는 그 세 번의 선거가 저한테 큰 성장에 도움이 됐어요. 제가 이런 거죠. 제가 만약에 덜컹 어디 가가지고 영남이나 아니면 어디 강남 이런 데서 당선되는 정치를 했다 그러면 제가 당대표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됐다 하더라도 미시적인 선거 정책을 짜는 데 있어서 굉장히 못했을 거예요. 지금 와서 대선을 복기해 보면은 호남 편지라고 하던 것들 그리고 호남에다가 거의 500만 장의 편지를 보낼 생각한 거 그거 몇십억 들었던거든요. 저희가. 그런데 거기서 호남에서 20만 표, 30만 표 더 와가지고 결국엔 이겼다는 생각도 저는 해요. 그런데 그거요. 저 상계동에서 매번 하던 거예요. 상계동에서 10% 유권자에게 항상 예비후보자 홍보물 보낼 수 있거든요. 제가 손편지 다 보내고 사람 하나 이름 바꿔가지고 보내고 그 정도 해야지 강북에서 버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대선도 전 그렇게 치르고 싶어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게 영남 선거나 이런 거 치르던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어요. 그 표 하나하나를 긁어야 되는 그 아쉬움이라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맨날 이상하게 보였겠죠. 제가 왜 후보한테 지하철 인사를 해달라고 했겠어요? 그거 하면 그거 안 하면 절대 여론조사만 가지고는 선거를 치를 수가 없거든요. 가가지고 내가 인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경멸의 눈빛으로 보면 지나가는지 아니면 나한테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는지 이런 것들이 실시간 여론조사거든요. 후보는 항상 그걸 놓치면 안 돼요. 저는 작은 선거를 나가든 큰 선거를 나가든 그걸 항상 하려고 전당대회에 나갔을 때도 저는 지하철 인사였어요. 그런데 이런 게 와닿지 않았겠죠.

◇ 박재홍> 그래서 이제 우리 대표님이 그렇게 정치 여정을 걸어오다가 큰 변곡점이 있었죠. 바로 당대표로 되는 그런 선거였는데 이준석 돌풍이 그야말로 일어납니다. 헌정사 최연소 당대표가 되시는데 원래는 김웅 의원을 지원을 하셨었는데 갑자기 팔공산만 5번 오르던 분이라고 주호영 대표에게 이렇게 하더니 빡빡 올라가더라. 눈을 돌려보니까 김 의원이 약간 좀 억울해하셨던 것 같아요. 그 진상이 뭐예요? 맞습니까? 이게.

◆ 이준석> 저 원래 김웅 의원을 원래 제가 친한 형님이니까 도와주려고 이번에 그때 그리고 김웅 의원이 나간다 했을 때 초선이고 신선한 이미지 해서 2등, 3등 하는 여론조사 나왔어요. 그래서 그럼 이번에 웅이형을 도와야지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김웅 의원도 사실 검사 그만둔 다음에 변호사업을 하기 전에 바로 정치에 뛰어든 케이스예요. 그래서 김웅 의원이 굉장히 재산이나 이런 것들도 그 이력에 비해서 검소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선거 전략 자체가 제가 봤을 때는 김웅 의원도 처음인데 정치권 진입해서 의원 된 지 1년밖에 안 된 상황이니까 신선하긴 한데 제가 봤을 때는 약간 좀 선거운동상으로 맥이 빠지는 방식으로 한 거예요. 그때 뭐냐 하면 캠핑카를 타고 돌아다니겠다 이랬는데.

◇ 이상민> 흑역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 조차도.

◆ 이준석> 제가 그래서 웅이한테 형 뭐하는 거야 하면서 안 되겠다 하면서 내가 나가야지 이래서 이렇게 그래서.

◇ 이상민> 답답해서 뛰신 겁니까?

◇ 박재홍> 그런데 본인이 됐어요.

◆ 이준석> 그런데 나간다고 약간 군부를 뗐는데 갑자기 시작 여론조사 15%인가, 16%가 나온 거예요. 그게 시작 첫 여론조사인데 나경원, 주호영 두 분 사이에 끼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했는데 좀 요란하게 하면서 막 그때 막 일론머스크가 도지 코인 이런 거 하고 이러니까 로켓 상승하고 이럴 때였는데 그거 짤방 가져와가지고 이렇게 막 도지 강아지가 이렇게 막 깃발 꽂는 거 이런 사진 올리고 하면서 그때부터 거의 도지코인 수준으로 지지율이 수직 상승해서 막판에 여론 지지 지지율 60% 나온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캠페인을 하니까 그 당시에 국민의힘은 충격에 휩싸인 거죠.

◇ 박재홍> 그때 연설을 되게 잘하셨어요. 대구, 경북 합동 연설했나요? 그 연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그 연설. 그 연설이 사실 전국적 의미에서 이 사람이 당대표 해야겠다라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시점이 아니었을까요?

◆ 이준석> 저는 제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는 그 당시 2012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부르면서 한 거였지만 정치를 하면 이게 멋있다라는 건 2004년도에 오바마 연설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때 제가 탄핵의 강을 넘자는 대구에서 연설을 할 때 그때 나경원 의원이 제 경쟁자였으니까 뭐하셨냐 하면은 대구, 경북 신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 짓겠습니다로 연설하셨거든요. 그거에 제가 비교해 봤을 때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에서 연설문을 스스로 쓰는 사람이 없구나. 나 대표님도 경력이 굉장히 훌륭하신 정치인인데 나 대표님도 어려운 선거도 많이 치렀고 때로는 눈물 흘리고 이런 정치의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거를 연설문에 담아내기만 했었어도 저러지 않았을 텐데 보좌관이 있었구나 그 생각을 하게 됐던 거죠. 그런데 그런 걸 보면서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한 모든 연설문은 제가 다 썼습니다.

◇ 박재홍> 그러신가요?

◆ 이준석> 가끔 축사 같은 거 어디 가서 할 때만 시간 없어 누구한테 부탁하고요. 연설문은 제가 다 썼습니다. 지금까지. 그런데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박재홍> 연습 하셨어요? 그때? 아니면 연습하시겠죠. 그렇죠. 원고를 써놓고?

◆ 이준석> 연습 못 했습니다.

◇ 박재홍> 아, 연습 못한 상태에서 그냥 원고 한 다음에 그냥 소화해서?

◆ 이준석> 그때 대구 그건 진짜 일필 위주로 쓴 겁니다.

◇ 박재홍> 일필 위주로.

◆ 이준석> 왜냐하면 그게 제일 기억나는 게 그 전날 어디 갔다 피곤해서 대구에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가지고 몇 시간 안 남기고 그냥 썼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대표님에 대해서 연설을 많이 하셔야 된다.

◆ 이준석> 사실은 박성민 대표가 계속 그렇게. 연설이라는 거는 제가 관종이 아니면 갑자기 혼자 가가지고 연설하겠습니다. 이럴 수가 없잖아요. 제가 진짜 관종미가 있고 뭔가 건수를 잡아야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제가 가끔 가다가 연설하고 싶어지면 정론관에 가서 국회 소통관에 가지고 하나씩 하고 이러는데 그때 지난번에 가장 최근에 소통 갔었을 때가 눈물의 연설.

◇ 박재홍> 맞아요. 박정훈 대령 관련 이야기.

◆ 이준석> 그런데 박정훈 대령 얘기하면 눈물 나더라고요. 진짜. 그때 저는 진짜 그때 탈당 결심했어요. 약간.

◇ 이상민> 그때부터.

◆ 이준석> 왜냐하면 제가 그때, 그때 왜 울었냐고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경북 포항의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지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경북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리고 군인으로서만 평생 살아온 박정훈 대령이라는 분이 저는 그분들에 대해서 알지 못하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이 뭔가 권력자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를 그것도 최상병이라는 억울한 그런 사람에 대해서 진실을 캐려는 수사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항명수괴죄를 적용해서 감옥에 넣으려고 했다. 저는 이거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제가 이해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저는 그게 제가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최대 오해, 최소 오히려 칭찬해 줘야 일이 아닌가 이런 거였는데 그거를 항명수괴죄를 적용하려고 했다. 이거는 저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 박재홍> 그때 사실상 탈당을 결심한 그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대표님이 애써 오셨던 부분. 또 그 과정에서 또 후보자와의 갈등. 윤리위 징계까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데 지금 돌아보셨을 때 후회되시는 부분이나 혹은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장면.

◆ 이준석>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때 저한테 한번 선택의 기회 있었어요. 대선을 이기는 방향으로 가야 되냐 아니면 후보에게 알랑거리는 방향으로 가야 되냐. 둘 다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든 시점이 있었어요.

◇ 박재홍> 언제였습니까?

◆ 이준석> 그게 11월 초에 후보가 선출됐거든요. 그런데 12월쯤 되니까 '이거 아니다, 이거 아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때 보니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걸 자꾸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제가 가장 황당했던 게 뭐냐면 우리 당 의원들이 첫 번째 뭐가 있었냐면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이나 이런 거 관련 건이 나왔을 때 그 누군가가 요청해서 우리 당의 교수 타이틀을 갖고 있는 모든 의원을 동원해서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해 달라는 식으로 온 거예요.

◇ 박재홍> 학문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는 논문이고.

◆ 이준석> 제가 그때 그 명단을 보아 하니 제가 참 무슨 차별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속된 말로 정 교수 하시는 분도 없거니와 별로 다들 무슨 겸임교수, 연구교수 하시는 분들이거니와 그때 명단에 올라온 분들이. 이거를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본인들이 지식인으로서 이거를 옹호했을 때 '당신들이 학계에서 얼굴 들고 살 수 있겠느냐'를 제가 물어봤는데 '그래도 안 하면 저희 굉장히 문제 삼을 분위기인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대표님'.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그때 눈 지그시 감고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거 때문에 우리가 타격 입어도 저는 대선 이기게 할 자신 있습니다'. '의원님들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것 때문에 저를 차라리 욕하라고 하십시오, 후보 쪽에서'. '제가 하지 못하겠다고'. '그래도 의원님들은 어쨌든 본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그때 안 하는 방향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게 사실 얼마나 후보 측에서 노발대발했다는 걸 전해 들었거든요.

◇ 박재홍> 그 얘기 많이 합니다. 대통령이 가장 민감한 부분은 여사 관련 문제고.

◆ 이준석> 그런데 저는 그게 제가 그때 제가 당대표로서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거 안 해도 제가 이거 우리 선거 이길 수 있도록 제가 충분히 메꿀 수 있는 그 힘이 있으니까 절대 이것 때문에 개인 하나 희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무의미한 희생입니다' 그랬어요. 당신들이 여기서 연구교수, 겸임교수 하는 사람들 아니면 정규 교수도 몇 분 계셨죠. '이게 아니라 한들 국민들이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겠느냐'. '내가 유의미한 일이라 그러면 당신들이 나서는 거에 대해서 내가 찬성하겠다'. '그런데 무의미한 일에 당신이 나서게 하는 거면 내가 당대표로서 당신을 지켜야 되는 거지.' '이게 후보가 하라는 답시고, 후보 쪽에서 하라는 답시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 박재홍> 돌아보면 하기 힘든 말인데요. 그래도 하셨군요.

◆ 이준석> 그게 제가 당대표로서 모든 당내에서 제 의사판단에 있어서 했던 판단의 과정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선거 이기고 지는 거에 있어서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지 마라'. 그런데 그게 사실 이게 한 예로 든 하나의 케이스고요. 굉장히 빈번했어요. 그런데 그거 하나하나가 쌓이면 후보 측에서는 '이준석이 우리를 엿먹이려 한다'라고 판단했겠죠. 그런데 그런 식인 거예요, 지금도 보면. 그러니까 저는 이게 그 철학이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사람을 갈아넣어가지고 어떻게 정당이 운영될 수 있겠느냐. 국회의원 정도면 독립된 헌법기관이고 이 사람 하나하나를 그걸 병법의 축자투입이라고 그러는데. 안 되는 전장에 계속 투입해서 사람 바보 만들면 나중에 정작 싸워야 될 때 누가 남아 있어서 싸우겠느냐. 아니나 다를까 제가 대표 되고 물러나고 난 뒤부터 웃긴 일들이 잦아졌잖아요. 이 사람들이 계속 끌려다니면서 연판장을 쓰지 않나. 뭘 갑자기 이상한 데 끼어들어가지고 누구 보호한다고 이상한 소리를 해야 되지 않나. 저는 이거를 우리 의원님들이 그 당시에 이해 못했어서 그렇겠지만 다 망가지셨습니다. 지금 초선 의원들이 그런 거 하다가. 제가 있을 때는 제가 파도를 막아주면서 '나를 차라리 욕하라 그래라' 하면서 막아줬던 것들이지만 지금은 얼마나 웃깁니까? 연판장을 이쪽으로 썼다 저쪽으로 썼다가 나중에는 연판장을 써서 김기현 대표 지키자고 그랬는데 다음 날 김기현 대표 짤리고 희한한 일이 벌어지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 이준석> 이거 막아주는 게 얼마나 대표로서 속된 말로 진짜 처맞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막아줬던 건지를 요즘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 박재홍> 이렇게 해서 이준석 대표가 당을 나오셨어요. 그래서 세 번째 결정적 순간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민> 세 번째입니다. 넥스트스텝입니다. 유행가 중에 넥스트 레벨은 있거든요. 넥스트스텝, 이거 무슨 뜻입니까?

◇ 박재홍>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

◆ 이준석> 그때 대문자 N, 소문자 e, 나머지 다 대문자에서 넥스트스텝을 썼었죠. 그런데 그게 사실 IT 하는 사람들은 잘 알지만 스티브 잡스가 쫓겨나가지고 애플에서 자기가 창업한 회사인데.

◇ 박재홍> 맞아요.

◆ 이준석> 30살 돼가 쫓겨나가지고.

◇ 박재홍> 드림웍스로.

◆ 이준석> 넥스트라는 회사를 또 차렸어요, 자기가.

◇ 박재홍> 그 회사가 넥스트.

◆ 이준석> 넥스트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그런데 그 넥스트라는 회사가 운영체제를 만드는, 넥스트스텝이라는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였고 워크스테이션까지 같이 파는 회사였는데. 그거 만들어서 나중에 그거를 잘 만들어 가지고, 새로운 상품을 잘 만들어 가지고 나중에 애플이 다시 망해가는 지점에 애플을 다시 접수합니다.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그래서 이걸 제가 쓴 걸 듣고 사람들이 '그러면 나중에 국민의힘을 다시 들어가겠다는 얘기입니까?' 그런데 그런 얘기라기보다는 거기서 애플에 비유되는 거는 보수진영이겠죠. 그런데 저는 보수 진영에 있어가지고 결국에는 오만 난리 쳤던 사람들이지만 저는 저걸 지탱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왜냐하면 제가 보수 역량을 이제 너무 잘 알거든요. 오늘도 사실 이재명 대표가 그런 피습을 당했다고 했을 때 저는 바로 제가 거기에 대해서 '이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 박재홍> 입장 밝히셨죠.

◆ 이준석> '무사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경찰은 빨리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혹시라도 신당을 지지하는 분들 중에서 여기에 대해서 음모론이라는 걸 얘기하는 분들이 좀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무슨 유튜버 중에 보면 '이게 조작극이니'. 뭐 이렇게 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보수 유튜브 분들은.

◇ 박재홍> 네, 맞아요. 지금 벌써부터.

◆ 이준석> 굉장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물론 이거는 진영을 바꿔서 진보 진영에서도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완전히 진영이 바뀌지는 않지만 극단적인 그런 사람들 때문에 여론이 형성되고 이런 걸 막아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도 보면 비대위원이라는 사람을 임명했는데 과거에 극단적인 발언들이 나와가지고 문제 됐던 것처럼 이미 보수진영에서는 그런 수준의 담합 외에는 사람들이 너무 싱거워서 소비를 못해요. 이런 게 있는 거예요. 저한테 맨날 공격하는 보수 유튜브를 공격하는 요지가 뭐냐 하면 '이준석이는 왜 국민의힘 소속일 때 왜 이재명을 안 까느냐'.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희한한 게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이준석이가 대선, 지선 때 너무 괴롭혀서 짜증났다'. 이재명 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데 틀린 말이 있으면 저는 거기에서 지적을 해요. 그 지난 1년 반 동안 이재명 대표는 수사받으면서 조용히 살았거든요. 지금 보수 진영이 저한테 그렇게 공격했던 사람의 논리는 뭐냐 하면 '이재명 대표가 가만히 있어도 가서 좀 때려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치의 수준이라는 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갔는지. 그 기간 중에 이재명 대표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지적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정치가 그렇게 된 거예요. 예전에 우리가 문모닝이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 박재홍> 아침에 일어나면 문재인.

◆ 이준석> 아침이랑 문재인 대표를, 그 당시 대표를.

◇ 박재홍> 비판하는.

◆ 이준석> '까고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니냐'. 지금은 '이재명 모닝을 안 하면 왜 네가 보수냐'. 이런 식으로 된 거예요. 그럼 제 입장에서 이재명 대표는, 저는 이재명 대표한테 억하심정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아니면 제가 열등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저는 솔직히 말하면 제가 대선 때, 지선 때 이재명 대표, 지선 때 이재명 대표가 총괄 선대위원장 했거든요. 저랑 붙어서 제가 이재명 대표한테 지선 때 제가 승리했다고 생각해요.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제가 왜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재명 모닝을 해야 되는 건지.

◇ 박재홍> 오늘 테러를 보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걱정을, 한국 정치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우리 이준석 대표 같은 경우도 대중교통 많이 이용하시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댓글에도 '조심하셔야 됩니다'. 이런 말씀도 많이 하시는데. 오늘 좀 사건을 보셨는데 박근혜 당시 대표였죠. 대표도 이제 그 커터칼 그것도 있었고. 그 외에도 송영길 전 대표도 대선 국면에서 그 망치로 테러를 당하기도 했었고.

◆ 이준석> 그런데 누구 한 명이 그렇게 일을 벌이려고 작정하면 경찰, 경호원 50명, 100명 있어도 못 막아요.

◇ 박재홍> 오늘도 경찰이 41명 있었다잖아요.

◆ 이준석> 오늘 이재명 대표의 글 보니까 열성 지지자인 것 같이 접근하시는데 그럼 사실 정치인 입장에서 그런 상황을 다 우려해서 정말 지지해 주신 분들, 고마운 분들을 멀리 할 수도 없는 거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사실 송영길 대표님도 편하게 사람들 만나다가 그렇게 하신 건데. 정치인에게는 약간 숙명과도 같은 거죠. 그런데 그거를, 사실 그런데 요즘 보면 정치인들만 그런 게 두렵겠습니까, 보면? 요즘 묻지마 이런 폭행이나 이런 사건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데. 그게 다 뭐겠어요? 사실 사회가 극단화, 양극단화가 심해지다 보니까 그런 일이 있는 걸 텐데. 이번에는 특히 이분이 어떤 정치적 의도나 이런 걸 가지고 이재명 대표를 피습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이 정치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좀 되게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제가 그래서 정치하면서 이번에 저는 기계적 중립이나 이런 걸 하는 3단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지향점은 미래로 보내자는 얘기를 할 거거든요.

◇ 이상민> 미래.

◆ 이준석> 과거에 놓고 해서 이재명 대표가 옛날에 어쨌니. 윤석열 때 어쨌니, 이랬니 하면 얘기하긴 재미있는데 넘을 수 없는 그런 강이 생겨버려요. 저는 그게 되게 안타깝더라고요.

◇ 박재홍> 그래서 오늘 이낙연 전 대표가 저희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가지고 '이준석 대표와 할 수 있는 게 있겠냐' 했더니 '당연히 또 화합해야 될 대상이고 또 상호보완적 결합을 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이렇게 말을 했고 '협력은 당연하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해석을 이준석 전 대표의 입장에서 이거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 이준석> 저는 이낙연 대표는 제가 항상 말하지만 사석에서는 한 번 딱 뵀던 분이고 그것도 저를 초대한 게 아니라 손학규 대표를 초대했는데 제가 최고위원이랑 같이 가서 막걸리를 총리 공간에서 한 적이 있는데. 근데 여럿이 보는 자리니까 뭐. 그리고 그때는 제가 깊은 대화를 나눌 사이도 아니었고 그때 이낙연 총리의 뜻이 정치 개혁에 있다면 저는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얘기해 볼 여지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정치 개혁이 뜻이라면. 그래서 핵심은 곧 다가올 4월 총선에서 ‘두 분이 이념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선거 연합으로도 혹시 함께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대표님이 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판단하고 있나요?

◆ 이준석> 저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제가 정치할 때는 저는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생각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먼저 지향점을 세우고 거기에 동의하는 분들과 함께 정치하고 싶은 건데 현실에 소위 말하는 너무 적응하다 보면 지향점 자체가 모호해지거든요. 그래서 이낙연 대표, 이낙연 총리님과 제가 그런 정치 개혁에 대한 얘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만나보면 어떤 분들은 정치 오래 하셨던 분일수록 내각제 하자, 이런 거 선호하시는 분도 있고 그런데 저는 이낙연 총리가 어떤 입장이신지 모르니까 그런 게 저는 그런 거는 적어도 확인을 하고 가야 되지 않을까

◇ 박재홍> 그럼 두 분이 아직 직접 만남을 하신 건 아니신 상태네요. 그러면 두 분의 만남 자체가 1월 중에 혹시 있을 수 있을까요?

◆ 이준석> 예측을 하지 않겠고요. 그리고 이낙연 총리님도 지금 오늘 당장 이재명 대표의 피습이나 이런 것 때문에 정치 일정을 중단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다 그런 건 존중해야죠. 그런 어떤 개인이나 아니면 지금까지 이낙연 대표가 소속된 당의 어떤 상황이라든지 그건 다 인정해야 되는 거고 너무 서두를 필요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박재홍> 아직 시간이 있습니까?

◆ 이준석> 저는 저의 창당 스케줄은 내일부터 저희가 당원 가입을 시작하거든요.

◇ 박재홍> 댓글에 지금 언제 온라인 당원 모집하냐고 물어보고 있는데 내일부터 온라인 당원 모집한다.

◆ 이준석> 사이트는 다 만들어졌고 테스트를 했고요. 여러분이 도메인을 모를 뿐입니다.

◇ 박재홍> 도메인은 오늘 SNS에 공개하십니까?

◆ 이준석> 한글 도메인도 있고 영문 도메인도 있거든요.

◇ 박재홍> 그래요?

◇ 이상민> 다양하게 또 만들어 놓으셨어요.

◆ 이준석> 한글 도메인으로 약간 때려 찍을 수 있는 분이면 지금 때려 찍어서 맞출 수도 있을 걸요.

◇ 이상민> 어, 그래요?

◆ 이준석> 네.

◇ 박재홍> 뭐죠? 때려 찍어 보세요.

◇ 이상민> 퓨처.

◆ 이준석> 한글 도메인이라니까요.

◇ 박재홍> 죄송합니다.

◆ 이준석> 영문 도메인은.

◇ 박재홍> 준스톤, 준스톤?

◆ 이준석> 영문 도메인은 맞추기 힘들 수 있는데 한글 도메인은.

◇ 박재홍> 기억 신당?

◆ 이준석> 아주 좀 센스 있는 분 맞출 수도 있어요.

◇ 박재홍> 센스가 없어서 알겠습니다.

◇ 이상민> 신당에는 누가 합류하느냐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허은아 의원도 거취 기자회견을 내일 하기로 예정을 하셨고요. 문병호 전 의원도 합류하기로 했고 더 있습니까? 혹시 더 굵직굵직한 인물들?

◇ 박재홍> 이상민?

◇ 이상민> 저요?

◇ 박재홍> 아니 그러면 좀 의외인 것 같아요.

◆ 이준석> 네, 네, 네.

◇ 이상민> 굉장히 정치인스러운 말투를, 네, 설렜습니다.

◇ 박재홍> 댓글에 ‘개혁신당.KR’이라고 많은 분들이 올려주고 계십니다. 맞습니까? ‘개혁신당.KR’.

◆ 이준석> 저는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 이상민> 이상민 의원도 혹시 포섭이 가능합니까?

◇ 박재홍> 이 이상민 말고.

◆ 이준석> 이상민 의원님은 제가 저희는 편하게 소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민 의원님도 사실 워낙 다선의 중진 의원이시고.

◇ 박재홍> 5선이시잖아요.

◆ 이준석> 저는 이상민 의원님이 생각하는 바를 여러 번 들은 바 있는데 함께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 박재홍> 오, 그래요?

◆ 이준석> 이상민 의원님의 어쨌든 정치적인 행보라는 것도 무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제가 재촉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밀쳐내거나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우선은 기다리고 바라보는 상황인 거죠.

◇ 박재홍> 최근에 기본 정책으로 언론 관련 정책을 낼 계획이다라고 SNS에 밝히신 것 같아요. 언론인 출신이 합류합니까?

◆ 이준석> 그거는 그 후에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론인들의 정책에 대한 정책을, 언론에 대한 정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기 위해서 제가 친한 현장 기자들과도 얘기를 많이 해봤고요.

◇ 박재홍> 그래요?

◆ 이준석> 또 언론사에서 언론사 사주에 가까운 분들하고도 얘기를 좀 해봤어요.

◇ 박재홍> 그러셨어요?

◆ 이준석> 그리고 오늘 최종적으로는 언론노조 측과도 한번 얘기를 했습니다. 언론노조 측과도 제가 구상하고 있는 정책이라는 것들이 합리적인지 이런 것들을 했는데 많은 주체들이 동의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언론 정책에 대해서는 꼭 저희가 한번 제대로 된 정책을 준비하고 싶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라든지 어떤 매해.

◆ 이준석> 그렇죠. 공영방송, 그리고 민영방송 같은 경우에도 지금 보면 저는 ‘종합편성 채널도 그렇고, 채널에 대한 승인권, 인허가권 자체를 국가가 가지고 있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언론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이거든요. 요즘 솔직히 옛날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영광이고 이렇기 때문에 기업들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걸 유지하려고 했지만 요즘은 사실 유튜브나 아니면 넷플릭스나, 다른 중계 채널이 많아지면서 그 채널 자체가 옛날보다는 메리트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그러면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기 위해서 인허가제보다 오히려 다른 방법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도 하고요. 공영방송도 왜 맨날 우리가 KBS, MBC 사장 선임을 가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홍역을 겪어야 되는지.

◇ 박재홍> 그 문제가 언론노조의 문제의식이죠. 모든 언론들의 문제의식이에요. 사실은.

◆ 이준석> 저는 그리고 우리가 항상 경제민주화라는 걸 얘기할 때 경제민주화는 이런 겁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들에게 아주 공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분배될 때 그게 경제민주화라고 보는 거거든요. 그 말인 즉슨 우리가 주주 자본주의에만 경도돼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이윤을 내면 당연히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 되는 것이고 그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직원들에게도 돌아가야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사실상 경제 민주화의 원칙 중 하나인데 저는 지금 언론에 있어가지고는 ‘공영방송은 국가와 정치권, 이 모든 전권을 휘두르는 모양새로 지금 가고 있고 또 민영 방송국 같은 경우에는 사주가 당연히 영향을 끼치는 건 당연한데 저는 그것만이어서도 좀 곤란하다.’ 이런 관점을 좀 갖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 부분은 언론인으로서 또 어떤 열매가 나올지 한번 더 기대하면서 바라보겠습니다. 거의 마무리할 때가 됐는데 우리 이상민 크리에이터가 질문하고 싶은 거 하나 골라보세요. 한동훈 위원장?

◇ 이상민> 한동훈 위원장이 지금 전국 순회에 나서지 않았습니까? 한동훈 위원장이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천하는 과정이 공정하고 멋져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기는 공천이어야 되겠습니다. 4월 10일 이후에 제 라이프, 제 인생은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이 발언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준석> 목소리는 따라가고 있는데 끊어 읽기가 좀 안 들려요.

◇ 이상민> 기술력으로 좀 극복해 보려고요.

◇ 박재홍> 궁금한 거. 오늘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서. 원래 폼이 완벽하게...

◆ 이준석> 요체는 끊어 읽기인 것 같은데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답변이나 좀 해주세요. 이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상민> 한동훈 비대위원장 ‘내년 3월 10일 이후에 인생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건데 지금 상태로 이길 수 있을까요?

◆ 이준석> 이기고 싶어 하는 사람 많았죠. 황교안 대표가 지고 싶었겠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이기면 대통령이 눈앞인데.

◇ 박재홍> 그렇죠.

◆ 이준석> 저는 이기는 거에 집착하기에는 당의 진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영화나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지휘관이 내 병력이 실제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수행할 수 있는 전쟁인지를 보고 전장을 고르고 전투를 벌여야 되는데 그 영화 중에 보면 그런 거 있어요. 이게 또 비유를 하면 그 사람이랑 대립돼서 그런데 절대 한동훈 위원장이 그 사람과 어떤 개인적으로 매칭된다는 게 아니라 약간 안 되는 전투의 예를 보면 ‘히틀러 몰락’ 이런 거 보면 존재하지 않는 부대를 지휘하잖아요. 그러니까 ‘슈타이너를 어디로 보내라.’ 막 이런 거.

◇ 박재홍> 지하 벙커에서.

◆ 이준석> 그렇게 하는데 막 옆에 사람이 ‘그 사람 이미 없는데요.’ 막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거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서류상의 부대를 지휘하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오해가 있을까봐요. ‘절대 사람 대 사람 대변하는 그런 전술적인 인물을 얘기하는 건데 그런 상황이 되면 큰일 난다.’ 그래서 저는 이런 거예요. 당장 노원구는 제가 탈당하면서 노원 갑, 을, 병의 위원장이 없습니다. 당협위원장이. 그럼 노원에서 어떻게 이기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거에 대한 명시적인 하나의 사실 빌드업이 없으면 저는 실컷 기분 내고 나가지고 그런데 병력이 없어서 못 지키는 사람도 나올 수 있고.

◇ 박재홍> 갑자기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나 계획은 있다. 링 위에서 점점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 이준석> 그런데 저는...

◇ 박재홍> 아무튼 유명한 말이죠.

◆ 이준석> 저는 보는 게 뭐냐면. 정치가 사실 보면 전투하는 것만 밖에 보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병참이 80%입니다. 선거를.

◇ 박재홍> 지원, 뒤에서 지원하고.

◆ 이준석> 병참이 80%입니다.

◇ 박재홍> 빌드업.

◆ 이준석> 나중에 초한지에서 전국 통일을 한 다음에 가장 우리가 봤을 때 대단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한신도 있고, 장량도 있고, 전술가들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나중에, 그다음에 국가를 이끄는 큰 역할을 맡게 된 거는 병참했던 소하거든요. 소하가 없었으면 한신이니 장량이니 아무리 똑똑하고 가가지고 병력이 없는데 뭘 하겠어요? 그러니까 유방도 한 번 싸우다가 병력 다 날려먹고 이러면 소하가 다시 몇만 명 보내줘가지고 싸우고 이랬던 건데 저는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정치권에 많지 않다는 게 큰 문제다.

◇ 박재홍> 오늘 인터뷰를 또 텍스트로 보내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삼국지 정치한다고 뭐라고 하실 것 같은데 한동훈 위원장님.

◆ 이준석> 오늘은 초한지였습니다.

◇ 이상민> 예, 저는 지금 외연 확장을 위해서 지금 전국 사회를 돌아다니니까요. 게임하듯이 정치하지 마시고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이제 위원장님을 보내드릴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평상시보다 5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금 참여하시는 분도 늘고 있는데 아쉽지만 우리 위원장님 내일 또 그 사이트 공개도 하셔야 되고.

◇ 이상민> 바쁘십니다.

◇ 박재홍> 제작진들도 약간은 다크서클이 내려왔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오시는 분들 꼭 요청하는 게 있어요.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을 부탁드린다고 저 카메라를 보고 한 문장만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박재홍의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 드립니다. 그리고 재건축 조합도 함께해 주시고요.

◇ 이상민> 재건축 조합.

◇ 박재홍> 얘기 해 주세요.

◆ 이준석> 한판승부 구독자 여러분, 구독자 여러분이 아니죠. 한판승부를 전부 다 구독해 주셨으면 고맙겠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게 지금 말이 헛 나오는 게 개혁신당에 많이 가입해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준석.KR’ 가시면 연락망이 있고요. 그럼 내일 저희가 가입 주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미 주소를 유추해서 당원 가입하시는 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락망은 그것과 별개로 또 가입해 주셔야 된다.’ 그래서 ‘이준석.KR 가서 연락망에 많이 가입해 주시라.’ 이게 10만 명, 100만 명이 되면 저는 이번에 큰일 났나 봅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상민> 본말이 전도된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아니, 괜찮아요.

◇ 이상민> 저희 채널을 구독을 해 주시라는 말이 주가 돼야 되는데.

◇ 박재홍> 아니에요. 괜찮아요. 같이.

◆ 이준석>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 이 나라 개혁해야죠.

◇ 박재홍> 이미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끝으로 한판열전의 공식 질문 내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 이준석>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요.

◇ 박재홍>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예, 대표님 행복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정치하시면서?

◆ 이준석> 저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당하고 난 다음에 정신 나간 사람들을 안 봐서 너무 좋아요. 그게 제가 우리 예전에 국민의힘에 있으면서.

◇ 이상민> 청정구역에 들어간 사람처럼.

◆ 이준석> 국민의힘 있으면서 정말 좋은 기억도 많고 제가 탈당 선언문에서 얘기했지만 정말 당원들 눈에 밟히고 했지만 최근 한 1년 동안 당을 주도하는 사람 중에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 사람들과 좀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고 저는 그래서 아쉬우면서도 요즘은 그래도 홀가분합니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홀가분합니다.

◇ 박재홍> 내일 또 창당 작업 바쁘신데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우리 이상민 크리에이터 오늘은 어떠셨어요?

◇ 이상민> 개인적으로는 워낙 달변이시라는 걸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이상민> 대표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 내려놓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니까. 다음에도 또 출연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재홍> 네, 그래요. 또 신당 창당 그 작업 가운데 인터뷰 요청을 꼭 드릴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도 보석 같은 게스트와 만나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이준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