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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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 한판열전> (19:30~20: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이상민 크리에이터
■ 대담 :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 박재홍>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리고 조금은 날카롭게 짚어보는 한판열전의 박재홍입니다.
◇ 이상민> 네, 이상민입니다. 오늘 게스트 처음으로.
◇ 박재홍> 처음으로.
◇ 이상민> 현직 장관급 게스트 아니겠습니까?
◇ 박재홍> 장관급, 이야, 그러네요.
◇ 이상민> 빠르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
◇ 박재홍> 오른팔.
◇ 이상민> 노무현 정부 국정상황실장, 강원도지사 3선 의원을 지내셨습니다. 현재는 유튜버이자 꾸준히 책을 내고 계신 작가이십니다. 바로 이 책의.
◇ 박재홍> ‘같이 식사합시다.’
◇ 이상민> 같이 밥 먹자는 내용이죠.
◇ 박재홍> 예. 우리 끝나고, 방송 끝나고 같이 아닙니다.
◇ 이상민> 알겠습니다. 최근 국회 사무총장, ‘이제 그만하렵니다’라고 선언하신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님.
◇ 박재홍> 다시 받아, 다시 받아 하면서.
◇ 이상민>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님 어서 오십시오.
◇ 박재홍> 어서 오십시오.
◆ 이광재>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와우, 이광재 사무총장님.
◇ 이상민> 식사해야죠.
◇ 박재홍> 식사해야죠. 오늘 추운 날씨에 CBS 스튜디오까지 감사합니다.
◆ 이광재>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재홍> 요즘 많이 바쁘시지 않으신가요?
◆ 이광재> 바쁘죠?
◇ 박재홍> 예, 어떤 일로 가장 바쁘십니까?
◆ 이광재> 아무래도 예산 국회가 남았으니까.
◇ 박재홍> 그러니까요. 네. 국회 일정 때문에 바쁘시고.
◇ 이상민> 그게 그렇게 힘드십니까? 이제? 이제 그만 할래 이렇게 선언하시고자 하는 이유가.
◆ 이광재> 왜냐하면 빨리 그만둬야 또 새로운 일을...
◇ 박재홍> 새로 또 물량이 네, 그래요. 좋습니다. 오늘 이광재 사무총장님의 인생 이야기. 젊은 시절부터 한번 저희까지 꼼꼼하게 한번 짚어보면서 깊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광재 사무총장님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첫 번째부터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첫 번째입니다. 강원의 아들.
◇ 박재홍> 강원의 아들. 이야, 이제 강원도지사를 지내셨고.
◇ 이상민> 그렇습니다. 강원도 평창.
◇ 박재홍> 평창.
◇ 이상민> 올림픽 했던 그 장소 아니겠습니까? 7남매 중에 둘째로 출생을 하셨고요. 어릴 때 집이 굉장히 좀 북적북적했다 이런 얘기를 또 들었습니다. 형제끼리, 형제가 많은 집안은 항상 형제끼리 에피소드가 있어요. 치고받고, 싸우고, 화목하고 막 이런 거 있지 않습니까?
◇ 박재홍> 그런데 7남매면 굉장히 뭐랄까? 부모님이 이렇게 금슬이 좋으셨거나.
◆ 이광재> 가끔 갔다 오면 2년에 한 번씩 동생이 태어났으니까.
◇ 이상민> 어떤 기분입니까? 그거는?
◆ 이광재> 네?
◇ 이상민> 지금 어떤 기분이에요?
◇ 박재홍> 집 안에 7남매가 있다. 9명이네요. 그렇죠?
◆ 이광재> 7명이죠.
◇ 박재홍> 그러니까 부모님까지 하면 9명.
◆ 이광재> 네, 요즘 모이면 아버님 얼마 전에 생신했는데 우리가 모이면 다 30명이거든요.
◇ 박재홍> 그럼 축구팀 만들어서 서로 경기할 수 있겠다.
◆ 이광재> 그래서 우리 아버님이 강자 원자인데요. 함자가. 그래서 제가 강원의 아들인데.
◇ 이상민> 정말 강원의 아들이네요.
◆ 이광재>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게 야, 우리 다 모여 살자. 그 모여 사는 동네 이름이 뭐냐? 강원랜드다.
◇ 박재홍> 와우, 와우, 와우, 재미있었어, 재미있었어.
◇ 이상민> 1위가 있습니다.
◇ 박재홍> 재미있었어요. 재미있었어요. 그럼 우리 사무총장님은 그 7남매 중에 몇 째이신 거예요?
◆ 이광재> 둘째예요.
◇ 박재홍> 둘째 넘버2? 저희 아버지도 7남매 중에 넘버2였는데. 그러셨구나.
◇ 이상민> 좋은 자리입니까? 넘버2가?
◇ 박재홍> 2인자가 약간 애매한 자리예요. 첫째는 아버님이, 부모님이 다 몰아주시는데 2등은 약간 뒤에서 반발하는 5남매를 약간 통솔하면서 다 형님 알아서 하실 거니까.
◆ 이광재> 일단 먼저 맡는 일은 없죠.
◇ 박재홍> 먼저 맡는 일이 없다.
◆ 이광재> 2인자가 그런 게 중요하죠.
◇ 이상민> 2인자 시절, 어린 시절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사진. 어린 시절. 우리 이광재 사무총장님께서 가운데에 있는 분이 우리 이광재 사무총장님이신 거죠? 그렇죠?
◆ 이광재> 네.
◇ 박재홍> 이 사진이 좀 흐리네요.
◇ 이상민> 포스가 있어요.
◇ 박재홍> 그래도 뭔가 젊은 시절에 아주 그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사진이고 왼쪽에 있는 건 형님이신가요? 그러면?
◆ 이광재> 아닙니다. 아버지이십니다.
◇ 박재홍> 아버님이세요? 아버님이 엄청 젊으시네.
◆ 이광재> 우리 아버님 젊으세요. 저를 21살에 낳으셨으니까.
◇ 박재홍> 그러시구나. 그런데 멋쟁이세요. 가족 자켓을. 가족 자켓을 입으시고 아버님이 어머니 옆에 계시고 다음 사진 한번 볼까요? 다음 사진. 이 사진은 대학생 시절인 것 같습니다.
◆ 이광재> 아니에요. 저게 고등학교 학력고사 시험 마치고.
◇ 박재홍> 다 틀려, 다 틀려. 예.
◆ 이광재> 무전여행을 떠났는데 그 당시에 광주를 갔었거든요. 저기가 조선대학교예요.
◇ 박재홍> 조선대학교에서.
◆ 이광재> 당시 82년 겨울이었으니까 80년 광주항쟁 직후였어요. 아주 참담했었어요. 저때 무전여행을 광주로 갔었는데 내가 살면서 광주를 잊지 않겠다. 이런 결심을 한 여행이었죠.
◇ 박재홍> 저 두 분 중에 잘생긴 분이 사무총장님이신 거죠? 오른쪽에 잘생긴 분. 연두색.
◇ 이상민> 그런데 어릴 때부터, 사실 어릴 때는 뭘 먹고, 놀고, 그냥 본능적인 거를 이렇게 얘기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누구는 부자로 살고, 또 어떤 친구는 가난하게 살고,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셨다면서요?
◆ 이광재>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는 당시에 탄을 깨서.
◇ 박재홍> 연탄.
◆ 이광재> 연탄의 탄을 깨가지고 학교에서 떼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예, 예, 예.
◆ 이광재> 그런데 눈이 막 내리는 날이었는데 그게 그 겨울이었는데 육성회비를 못 낸 그 부모님을 불러가지고 아버님을 그거 깨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 박재홍> 학교에서 선생님이?
◆ 이광재> 네, 선생님이 그 아버님을 육성회비 내는 대신에 그러니까 그 친구는 정말 안절부절 못하고.
◇ 박재홍> 재홍이 아버님, 왜 육성회비를 안 내셨어요? 이거 깨세요. 이렇게 한 거예요?
◆ 이광재> 그러니까 그걸 보면서 이게 저렇게까지 해야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많이 들면서 왜 누구는 부자로 살고, 누구는 가난하게 살고,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좀 반항심 때문에 제 숙제를 안 하니까 그때 꽤 옛날에 야, 너 이거 안 하면 한 대, 그다음에 화장실 청소해, 안 하면 2대, 이렇게 차츰 늘어나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그래서 아주 저때 약간 좀 힘들었었어요.
◇ 이상민> 그때 몇 학년이셨어요? 그때?
◆ 이광재> 그때가 3학년 때였어요.
◇ 박재홍> 3학년, 우와, 3학년 때부터 이 어떤 빈부의 문제, 어떤 계급의 문제를 눈을 뜨셨구나.
◆ 이광재> 계급의 문제는 아니고.
◇ 이상민> 불합리하다 이런 거.
◇ 박재홍> 불합리하다. 친구의 아빠가.
◆ 이광재> 친구의 아픔이죠.
◇ 박재홍> 그래요. 그리고 평창 중학교를 다니시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원주로 유학을 갑니다. 그때 홀로 자취 생활을 했다. 중학생 때. 어떠셨어요?
◆ 이광재> 아버님이 평창 시골에 있어는 안 되겠다. 도외지로 나가라. 그래서 원주 중학교로 2학년 1학기 때 왔어요.
◇ 박재홍> 원주.
◆ 이광재> 와가지고 봉산동이라는 데서 자취생활하면서 도시락 싸서 열심히 살았죠.
◇ 박재홍> 저도 평창에 군 생활 3년 해봤고 그런데 원주도 또 다르거든요. 어렵지 않으셨어요? 이게 영동, 영서잖아요. 그러니까 약간.
◆ 이광재> 그런데 자취 생활할 때 어려운 점은 많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친구를 정말 잘 만났어요. 아주 집에, 그 집에 갔는데 정말 장서가 있었어요. 어마어마한 책이 있는 걸 보고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은인이죠. 그런데 그 친구 덕에 사회에 눈을 뜨게 됐는데 제가 좀 잘 될 때는 그 친구가 ‘봐, 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그러고 제가 좀 어려운 시절을 갈 때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지금도 만나는 좋은 친구가 있죠.
◇ 박재홍> 그때 좋은 책들이 많이 있었나 보네요.
◆ 이광재> 예, 그때.
◇ 박재홍> 책을 읽으셨길래, 장서 중에.
◆ 이광재> 그때 닥치는 대로 읽었죠.
◇ 이상민> 그래요.
◇ 박재홍> 그래서 그 소년 이광재가 연세대 화공과를 들어가게 됩니다.
◇ 이상민> 화학공학과에 뜻이 계셨던 겁니까? 아니면 뭐?
◆ 이광재> 아니 저는 제가 당시 원주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지학순 주교가 계시는 제야의 메카였어요. 제가 영향을 많이 받았죠. 성당에 다니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 상태로 살다가는 대학 가면 데모를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일단 공과대학을 가자. 그러면 일단 먹고 살 수 있으니까. 7남매 중에 제가 둘째니까 그래도 또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냐? 그래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야학교사 생활을 했어요. 이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이 주로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 때문에 오셨는데 그러다가 학교에 데모가 있었는데 이 사법경찰이 도서관까지 와가지고 여학생을 막 머리끄댕이를 막 끌고 가고 이런 걸 보면서 안 되겠다.
◇ 박재홍> 안 되겠다.
◆ 이광재> 싶었죠.
◇ 박재홍> 그래서 학생운동.
◇ 이상민> 듣기로는 수사관들을 피하려고 막 도피 활동을 하시는 중에 에피소드가 많다면서요?
◆ 이광재> 제가 이 책을 같이 보시면.
◇ 이상민> ‘같이 식사합니다.’ ‘같이 식사합시다.’
◇ 박재홍> 대놓고 이렇게 홍보를.
◇ 이상민> 예, 괜찮아요. 잘 보여요.
◆ 이광재> 충청도에서... 제가 전국 학생운동 기관지 편집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충청도에 가서 막노동도 했고, 부산의 영도에 살면서는.
◇ 박재홍> 주물공장.
◆ 이광재> 주물공장에 다녔는데 주물공장이라는 게 점심시간 되면 그 쇳물 있잖아요. 쇳물 한 바가지를 이렇게 흙을 판 다음에 거기다 넣으면 좀 있으면 굳잖아요. 그럼 그 위에 물만 냄비에 얹어놓으면 금방 끓어요. 거기다가 라면 끓여 먹고 그런 시절을 지낸 적도 있죠.
◇ 박재홍> 그런데 부산에서 체포당하셨다면서요?
◆ 이광재> 부산에서 잡혀서.
◇ 박재홍> 보안사 요원들에게.
◆ 이광재> 망리동의 보안사에 갔다가 두 눈을 가리고 양쪽 차 옆에 사람이 타고 중간에 오줌을 넣겠다고 그러니까 추풍령 휴게소더라고요. 그러니까 아, 내가 서울로 가는구나. 서울로 가면 당시 안기부로 갈까? 보안사로 갈까? 남영동 대공분실로 갈까? 이게 고통스러운 시간인데 이 기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는구나 이런 시절이 있었죠.
◇ 박재홍> 이름만 들어도 사실은 무시무시한, 당시에.
◆ 이광재> 당시 박종철 우리 서울대학교.
◇ 박재홍> 고문 치사 사건.
◆ 이광재> 고문 치사 사건이 있었던 아주 가슴 아픈 곳이죠.
◇ 박재홍> 남영동에서 한 달간 조사 받으셨죠?
◆ 이광재> 20일 좀 더 그랬죠.
◇ 박재홍> 힘드셨겠습니다.
◆ 이광재> 쉽지는 않았죠. 당시에 어떤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이 책상은 굉장히 귀퉁이에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 '고문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런 시절이 있었죠.
◇ 이상민> 부산에서 도피 생활을 하시다가 귀인을 한 분 만나시는데 그분이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들었습니다.
◇ 박재홍>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 이광재> 그러니까 제가 부산에 처음 가서 부산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지금 김정호 국회의원이에요. 그분 소개로 부산대학교 앞에 책방에서 만나서 부산에 터를 잡았는데. 그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노무현 변호사를 한 번 뵌 적이 있었죠.
◇ 박재홍> 첫인상이 어떠셨어요?
◆ 이광재> 노무현 변호사님 소탈하시잖아요. 그래서 변호사 이러면 굉장히 좀 잘 나가는.
◇ 박재홍> 엘리트, 엘리트.
◇ 이상민> 권위 의식.
◆ 이광재> 소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소탈하신 분이구나'. 그런데 연설 이런 거 할 때 보면 굉장히 격정적이고.
◇ 박재홍> 그렇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 변호사님의 만남을 통해서 정치계에 사실상 들어가게 된 거죠,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 이광재> 그렇죠. 국회의원 처음 되셨을 때 제가 그때 23살이었고 노무현 국회의원은 42살이셨어요.
◇ 박재홍> 23살, 42살.
◆ 이광재> 그때 코리아나호텔에서 인터뷰를 한 3시간 정도 했는데 끝나시고 나니까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정치를 잘 모르는데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달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23살한테 비서실 구성의 전권을 저한테 준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운전하는 친구는 지금도 봉하마을에 있습니다. 제 친구인데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됐죠.
◇ 박재홍> 23살이면 어떤 인생의 꿈도 펼칠 계획이 있으셨을 테고. 그런데 이제 '이분과 함께 해야겠다'. 어떻게 마음을 결단하셨어요?
◆ 이광재> 일단 저는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 상당히 높은 신분이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그런데 23살짜리 저를 한 3시간 이상 인터뷰를 하시고 이게 참 가슴에 와닿았어요. '나는 정치를 잘 모르는데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달라'.
◇ 박재홍> 사무총장님한테?
◆ 이광재> 네, 저한테. 그러니까 노무현 국회의원, 나를.
◇ 박재홍> 나를. '자네가 함께 쓰시게'. 이렇게.
◆ 이광재> '역사 발전의 도구로 쓰일 수 있게 해 달라'. 이 말씀을 하시는 거 보고 참 울림이 있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럼 나중에 그러면 '23살이었던 나에게 어떻게 전권을 다 주셨냐'. 이런 질문 안 해 보셨어요, 대통령에게?
◆ 이광재> 그건 못 여쭤봤어요.
◇ 박재홍> 못 여쭤보셨어요?
◆ 이광재> 상당히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봅니다.
◇ 박재홍> 그래요?
◆ 이광재> 제가 당시에 특별한 게 없었거든요.
◇ 박재홍> 이전에 보좌관 경험 있으셨던 건 아니고 국회 경험도 있으셨던 건 아닌데, 23살인데.
◆ 이광재> 그렇죠. 그때 당시에 노무현 의원 보좌관이 저였고 그 이해찬 의원 보좌관이 유시민 선배였어요. 그래서 그때 매일 즐겁게 지냈죠.
◇ 박재홍> 그때부터 젊은 시절에 함께 보내셨다라는 겁니다. 이쯤 해서 우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잠깐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상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주십시오'. 이렇게 말했던 겁니까?
◆ 이광재> 그렇죠.
◇ 박재홍> 이때 목소리 잠깐 들으시니까 우리 총장님이 잘 못 쳐다보시는 약간 좀 그리움.
◆ 이광재> 아무래도 순정을 바친 분이죠.
◇ 박재홍> 순정을 바친 분이다.
◇ 이상민> 사진이 준비가 안 됐지만 제가 우연히 노무현 대통령의 의원실 사진을 보다가 '그 옆에 잘생긴 사람 누구지'. 했는데 총장님이셨어요. 진짜로 너무 잘생긴. 왜냐하면 인물이 딱 좋으시니까 그때도 선이 굵게 나오신 그 사진이더라고요.
◇ 박재홍> 열전에 나온 게스트에게 잘생겼다는 말은 처음입니다, 원장님.
◆ 이광재> 감사합니다.
◇ 이상민> 금태섭 의원한테 이런 말 안 했어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요즘 영입 작업이 한창이던데. 우리 이상민, 그러니까.
◇ 이상민> 저는 정치 안 합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
◇ 박재홍> 우리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님 뵙고 있고요. 인생의 결정적 순간 두 번째로 가보겠습니다.
◇ 이상민> 두 번째입니다. 순정을 바쳤답니다.
◇ 박재홍> 순정을 바쳤다.
◇ 이상민> 네. 말씀하신 것처럼 노무현 의원의 최연소 보좌관으로 국회에 입성하시고요.
◇ 박재홍> 23살에, 23살에.
◇ 이상민> 그런데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 박재홍> 순탄치가 않았어요
◇ 이상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 그리고 종로, 부산에서도 낙선을 합니다.
◇ 박재홍> 낙선합니다.
◇ 이상민> 종로에서 당선이 안 되셨나요, 그때?
◆ 이광재> 한 번 되셨다가.
◇ 박재홍> 한 번 됐고.
◇ 이상민> 한 번 되셨고.
◇ 박재홍> 그다음에 부산에 내려가서 낙선 됐죠.
◇ 이상민> 그렇게 해서. 그러면 이거 막 엎치락뒤치락하는 순간에 대책 회의도 엄청 많지 않았겠습니까?
◆ 이광재> 월급 받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 박재홍> 그러니까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영화 같은 걸 보면 당시 종로에 있다가 부산 내려가서 낙선했던 그 장면 나오는. 영화 제목이 노무현 이야기였나요? 어쨌든 그때 보좌진들이 막 울고 막 너무 힘들어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저게 정치란 저런 거구나'. '선거란 저런 거구나'. '정말 이게 승자독식이라서 지면 정말 다 울고 끝이 나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총장님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하시는 과정에 '월급 받은 거 별로 없다'. 했는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 이광재> 저희 집사람이 기자였거든요.
◇ 박재홍> 기자셨어요?
◆ 이광재> 정치부 기자였는데 노무현 국회의원을 취재하러 왔다가 취재 대상이 저로 바뀌었죠.
◇ 이상민> 연애 대상으로.
◇ 박재홍> 취재 일정을 잡으시다가.
◆ 이광재> 힘든 시절이 많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 박재홍> 사랑하셨구나.
◆ 이광재> 그러니까 저희를 사실 나이가 한 20살 정도 차이 나잖아요.
◇ 박재홍> 42살, 23살.
◆ 이광재> 그런데 반말 같은 거 안 하세요. 그리고 진짜 동업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셨는데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꾸는 이런 정치 동업을 하는 거야'. 이런 말씀으로 그리고 또 솔직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또 틀린 건 틀렸다고 하시고. 이런 면에서 정말 우리가 항상 그러죠. '우리를 맨날 낙선하는 곳으로 인도해 주시지만 참 미워할 수 없는 분이구나'.
◇ 이상민> 그러면 광재 씨라고 부릅니까?
◆ 이광재> 뭐 광재 씨도 그렇게 할 때도 있고.
◇ 박재홍> 그렇군요. 선거날 지면 캠프 분위기 어때요?
◆ 이광재>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가 2000년 부산에 떨어지고 나서 노무현 국회의원이 정치 그만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 박재홍> 담배 태우시는 모습 보면서.
◆ 이광재> 그래서 제가 '우리가 도대체 얼마가 있냐'라고 해서 있는 대로 뭐냐 하면 돈을 탈탈 긁어서 부산 전역에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라고 플래카드 붙이고 서울로 도망갔죠, 우리가.
◇ 박재홍> 그만하신다고 그래갖고 보좌관들이 이렇게 해서 도망갔어요.
◆ 이광재> 그런 적도 있고 96년도에 종로 선거 떨어지고 나서는 정치를 그만하시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이분을 붙잡으려면 이게 당시에 당원들한테 제일 많이 드는 게 식사값이니까.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그래서 제가 청진동 거기다가 종로구. 거기다가 내가 80평짜리를 얻어가지고서 또 식당을 하지 않았습니까? 소꼽동무라는 거. 소꼽동무라는 걸 해서 다시 또 하니까 이제 종로에서 다시 정치를 하시기로 했고. 그리고 2002년 경선 때는 우리가 돈이 너무 없었어요. 없어가지고 제가 우리 아내 몰래 집을 팔았어요. 벤처에 투자한다고.
◇ 박재홍> 사모님을 대신해서 다시 한 번 치겠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그때 그러면 나중에.
◆ 이광재> 아니,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 박재홍> 과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이광재>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대통령 선거를 나가는데 이건 뭐 경선 비용이 없으니까.
◇ 박재홍> 집을 팔았어요?
◆ 이광재> 그래서 집을 벤처 투자한다고 했죠. 벤처는 맞잖아요, 노무현 벤처.
◇ 박재홍> 선거는 벤처죠, 모임이죠. 노무현에게 투자한 거네요.
◆ 이광재>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는 지지도 1%짜리 후보였거든요. 그러니까 진정한 정치 벤처 맞잖아요.
◇ 박재홍> 어떤 부분을 보시고 그렇게 집까지 팔았어요? 사무총장님을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고.
◆ 이광재>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이 굉장히 쉬워요.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그래서 '어떻게 하다 이렇게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를 쓰시게 됐냐'라고 하니까 학생운동 한 친구들을 변론을 해야 되면 좀 있으면 변호사가 정지될지도 모르니까 본인이 직접 뭐냐 하면 변론한 준비서면을 쓰고 이렇게 하셨대요. 그러다 보니까 가난한 사람, 여러 명의 사람을 보는데 하루를 이런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두 남녀가 사랑하다가 이혼할 때 보면 '너 1만 원 가지고도 위자료에 싸우는 게 인생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의 변론 활동을 하면서 생사고락,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고 분노하는지 알게 된다. 그걸 보면서 '노무현, 이 국회의원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정말 같이 있으면 매력이 있어요.
◇ 이상민> 매력이 있다.
◇ 박재홍> 그럼 연설을 잘 했던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 이광재> 어떻게 보면 사람의 얼굴을 한 정말 진정한, 진실한 정치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 박재홍> 방송 진행을 잘하려고 해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겠군요.
◆ 이광재> 당연하죠. 이상민 씨 사랑하시잖아요.
◇ 이상민> 네? 저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이 퍼스트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하셨던 젊은 나날들 한번 사진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박재홍> 우리 노무현 전 대통령님 굉장히 젊으신 얼굴이네요. 저게 무슨 날이에요?
◆ 이광재> 저게 무슨 날이냐 하면 저기 국회의원 선거 떨어지고 나서.
◇ 박재홍>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하는데.
◇ 이상민> 다들 퀭합니까, 이렇게?
◇ 박재홍> 표정이 안 좋아.
◆ 이광재> 저희가 덕유산에 모였죠. 덕유산에 모였는데.
◇ 박재홍> 아, 덕유산에 모여서.
◆ 이광재> 저녁에 술 한 잔 먹고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 박재홍> 캠프파이어.
◆ 이광재> 네, 그때 노무현 국회의원이 이런 거예요. 저기 다 이호철 선배 부인이고요.
◇ 박재홍> 아, 삼철 중에 하나인.
◆ 이광재> 네, 그리고 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봤어요. 남편이 정치하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 반대해요. 그런데 우리 아내한테 이제.
◇ 박재홍> 기자님.
◆ 이광재> 뭐라고 답할까 내가 물었는데 우리 집사람이 그러더라고. 어차피 뭐 노동력을 팔거나 물건을 팔거나 이러는데 나라를 파는 게 안 낫겠어요. 내가 말린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래서 너 장가 제일 잘 갔다 그랬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때 인정받았던 그 시간이고.
◇ 이상민> 다음 사진.
◇ 박재홍> 다음 사진 한번 보겠습니다, 다음 사진. 이거 캠파이어네. 그렇죠? 캠파이어.
◆ 이광재> 그렇습니다. 여기서 떨어지고 나서.
◇ 박재홍> 그럼 저때는 떨어지고 난 다음에 캠프파이어 때 무슨 얘기하세요? 기억은 잘 안 나시겠지만 앞으로 나아갈 여정에 대한 나를 믿고 따라라.
◆ 이광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또 떨어지고 나면 또 다음 계획을 세우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여름방학 끝나면 가을, 겨울방학 언제 오지 하듯이 막막할 때였죠.
◇ 박재홍> 저기 서 있는 분이 사무총장님이죠?
◆ 이광재> 저죠.
◇ 박재홍> 네, 지금이랑은 또 완벽하게 다르게 완전 외람되지만 미소년.
◆ 이광재> 저때는 민주당사에서 저기 투표를 하면 상당히 압도적 1위를 제가 하고 그랬어요.
◇ 이상민> 야, 여기서 또.
◆ 이광재> 그런데 이런 자랑하면 안 되는데.
◇ 박재홍> 아니, 아니에요. 미나 미리, 미나 미리.
◇ 이상민> 잘생기셨다니까.
◇ 박재홍> 그러시구나.
◆ 이광재> 그렇습니다.
◇ 박재홍> 어쩐지 저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정말 잘생긴 얼굴이라 하는데 실제로 입증이 됐습니다.
◇ 이상민> 네, 입증됐어요. 마지막 사진 보겠습니다.
◇ 박재홍> 마지막 사진, 다음 사진. 이 사진은 어떤 사진입니까? 저기는 우리 사무총장님이.
◆ 이광재> 저기는 저는 없고요. 저기 이제.
◇ 박재홍> 대통령 뒤에 있는 분이.
◆ 이광재> 우리가 잘해 보자 뭐 이런 거죠. 부산 선거. 그런데 떨어졌죠.
◇ 박재홍> 아, 저거 저 선거 때 떨어지고 나서 다시 시작합니다. 플래카드 쓰고 도망갔던 그 선거.
◆ 이광재> 보통 이제 야, 정치 그만해, 그만해. 그런데 다시 했는데 처음 그 국민이 위대하다고 생각드는 게 저때 심정이 어떠세요? 그러니까 부산분들이 좀 야속하지 않으세요라고 하니까 뭐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냐. 그래서 그걸 인터넷에 올렸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고 바보 노무현이라고는 이게 막 댓글들이 달려드니까 조금 이따 그 댓글들이 노사모가 생기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을 책임져라라는 쪽으로 글이 막 옮겨가더라고요. 그러니까 결국은 이게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진정한 킹 메이커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국민 경선에서도 또 이겼고. 그렇죠.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요. 그럼 그때의 어떠한 바람. 바람이 불었던 거 아닙니까?
◆ 이광재> 그렇죠.
◇ 박재홍> 그때 그 바람이 부는 걸 보면서 어떤 거 느끼셨습니까? 역사가 부르고 있다.
◆ 이광재> 아니,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게 처음으로 인터넷이 나오고 우리가 글을 쓸 때였거든요. 하이텔 이런 데 쓸 때였죠.
◇ 이상민> 하이텔.
◇ 박재홍> 아, 하이텔. 모뎀, 모뎀. 들어는 봤나? 모뎀.
◇ 이상민> 너 전화를 이렇게 많이 써 이때 이 시절 아닙니까?
◇ 박재홍> 띠 띠 띠띠띠 뭐 이런 거예요. 그래서 그때 하이텔 때.
◆ 이광재> 거기에 이제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이런 글들이 모이면서 전국적으로 노사모가 생기고 돼지 저금통을 모으고 이런 거 보면서 한국 국민이 87년 6월 항쟁을 만들었다면 2002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 이것도 또 하나의 시민혁명이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이광재 좌의정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오른팔이셨는데 아이디어맨이다. 특히 반짝이면서도 덤벙대는 스타일이었다. 맞습니까?
◆ 이광재> 그렇죠. 저는 좀 사람이 좀 부실하거든요. 저는 좀 구태의연하는 걸 좀 싫어해요.
◇ 박재홍> 구태의연을 싫어한다. 강원도의 힘.
◆ 이광재>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이 저한테 했던 최고의 칭찬은 이거예요. 마른 하늘에서 구름을 만들어 가지고 비를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좀 황당한 얘기긴 한데요.
◇ 박재홍> 네, 마른 하늘에서 구름을 만들어서 비를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창조력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 이광재> 그러니까 이제 좀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거. 부산에서 떨어지고 난 다음에 종로로 뛰어들어가지고 정면 승부를 한다든지 청와대에 있을 때는 뭔가 이게 한미, 미국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주도로 뭔가 미국을 끌고 와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한미 FTA 같은 거를 하자든지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에 한국으로 오게 되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에 도전하자든지 그러니까 좀 더 좀 좀 저는 혁신적이고 좀 과감한 편이에요. 그런데 생각을 많이 하죠.
◇ 박재홍> 그 아이디어가 우리 사무총장님에게서 나왔다.
◆ 이광재> 다는 아니지만.
◇ 박재홍> 그러면서 참여정부에 입성을 합니다. 대통령 당선됐을 때 어떠셨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막 집에 월급 갖다 준 적도 없고 힘든 생활 하시다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나라를 국정 운영을 하게 된 거잖아요.
◆ 이광재> 저는 그 청와대 안에 있었어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안 갔어요.
◇ 박재홍> 아, 취임식 안 갔어요?
◆ 이광재> 저는 노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로서 거기 현장에 취임식에 가서 그런 것보다는 준비를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안 갔고 그리고 제가 노무현 대통령하고 찍은 사진이 거의 없어요.
◇ 박재홍> 두 분이서 찍은 사진이.
◆ 이광재>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하고 같이 찍으려고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리를 비켜주고 이분을 객관화시켜줘야 된다는 게 참모의 소신이다 이런 생각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렇죠.
◇ 박재홍> 그러셨군요. 국정상황실장을 하셨습니다.
◆ 이광재> 네.
◇ 박재홍> 어떤 자리입니까? 국정상황실장은?
◆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로 정책적 사안에 대해서.
◇ 박재홍> 모든 게 다 들어옵니까?
◆ 이광재> 다 들어오죠. 그러면 그걸 가지고 하루에 하나나 2개. 암만 많아도 3개 정도의 보고서를 보내면 저녁 8시나 9시 이전에 반드시 거기에 피드백을 주세요. 그러면 그게 바로 실행되는 거죠. 당시에 아주 우수한 사람들로 상황실을 구성했는데 거기서 김경수 지사는 제가 신원보증인이었고 그다음에 인천시장에는 박남춘 시장. 그러니까 광역단체장이 3명 나왔고 우리 부산에 전재수 의원. 그다음에.
◇ 박재홍> 얼마 전에 출연하셨었어요.
◆ 이광재> 네, 구윤철 장관. 장관이 3명 나왔으니까요. 장관하고. 당시 우리가 성적순으로 뽑고 기자들의 평가. 그다음에 해당 부처의 추천. 그다음에 해당 국회의원 보좌진의 평가. 이러니까 거의.
◇ 박재홍> 에이스.
◆ 이광재> 에이스들이 거의 맞더라고요.
◇ 이상민> 일꾼들.
◆ 이광재> 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을 잘 쓰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 박재홍> 국정상황실장에서 그러면 국정을 배우고 거기서 있었던 분들이 나중에 또 장 차관도 되고 의원도 되고.
◆ 이광재> 그렇습니다.
◇ 박재홍> 굉장히 중요한 부처였네요. 이런 가운데 박연차 게이트가 터집니다. 관련해서 또 총장님께서 소해가 있으실 것 같은데.
◆ 이광재> 이건 뭐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게 되는 그런 사건이었는데 참 마음 아픈 사건이죠. 뭐 제가 이런 사건에 관련됐다는 것 자체가 어쨌든 죄송스러운 일이고 또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를 드리는데 억울한 면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뭐냐 하면 한 1심에서 4개 중에 2개가 무죄가 났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재판 과정에서 한 10억 원 이상을 여러 차례 거절한 게 확인이 됐어요. 그러니까 박범계 그때 당시 우연히 변호사였는데 저보고 ‘야, 이 재판 끝났다.’라고 했는데 그 1심, 절반 유죄 절반 무죄가 나왔어요. 그다음에 2심이 됐을 때 박연차 회장이 다시 한 번 또 나와서 나한테 돈을 줬다고 그러면 내가 운명으로 알고 들고 받아들이겠다, 불러달라라고 하는데 검찰이 재판장 출두 반대. 그다음에 재판장은 뭐냐 하면 박현차 회장을 안 부르고 2심 선고를 했어요. 그게 참 마음 아픈 일이죠. 그런데 그 뒤에 박연차 회장은 미안하니까 나한테 계속 뭐냐 하면 돈을 주겠다는 건데 지금 나한테 돈을 줄 문제가. 내가 지금 40대밖에 안 되는데. 마음 아픈 일이죠.
◇ 박재홍> 그래요. 그 이후에 수감되셨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소식을 옥중에서 들으셨던 겁니까? 그러면 그때는 정말 기분이 어떠셨어요?
◆ 이광재> 그때 뭐 노무현 대통령 논두렁 시계가 어떻고 정말 그 노 대통령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여튼 서를 나왔을 때 참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와서 봉하마을로 내려갔어요. 내려가서 그때 너럭바위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왜 요새 봉하마을 가면 박석 있잖아요. 다 이름 새기고. 그때 지관 스님 등 주요한 분의 글은 제가 다 받았고 그때 ‘묘역이라도 내가 하나 완성하고 떠나야 되겠다‘라고 해서 묘역 조성하고 몇 달 거기 있었죠. 먹고, 자고, 거기 도랑에 있는 그 자갈은 강원도에서 가져간 자갈이에요. 그래서 그거 마치면서 ‘내가 이명박 정권을 반드시 심판을 해야 되겠다’라고 해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게 됐고 그리고 몇십 년 만에 최초로 야당이 이기게 됐죠.
◇ 박재홍> 그렇군요. 그렇게 되셨었는데 이후에 9년 정도 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계셨어요. 그때는 제가 기억에 굉장히 공부를 하러 많이 해외에도 가시고, 중국도 가셨던 것 같고.
◆ 이광재> 그러죠. 일종의 유배 생활이죠. 그래서 최문순 지사 당선을 시키기 위해서 정말 그때는 정치 활동이 금지되니까 정말 5일장마다 그냥 걸어다녔어요.
◇ 박재홍> 걸어다녔다.
◆ 이광재> 그냥 걸어다녔어요. 연설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와서 울고 그러면서 그 힘들이 모여가지고 결국 최문순 시장 당선되고 나서 이제 떠나야 되겠다. 그래서 중국의 칭화대학교에 한 2년 반 있었고 그 뒤에는 여시지라는 싱크탱크에 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그게 ‘삼성에서 준 돈이다.’ ‘홍석현 회장이 준 돈’ 그거 아니고 100% 한샘의 조 회장님이 출연하신 거고요.
◇ 박재홍> 한샘의 회장님이.
◆ 이광재> 그래서 거기서 주로 이 세계 정세, 그다음에 국내에서 이 나라를 끌고 나가는 데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이런 걸 공부하는 시간이었죠.
◇ 박재홍> 그랬군요.
◇ 이상민> 작년에 강원지사 선거에 나가셨어요.
◇ 박재홍> 그렇습니다. 사진을 한번 보실까요?
◇ 이상민> 사진 그때 삭발을 하셨습니다.
◇ 박재홍> 낙선 하신 후에 저렇게 삭발을 하셨습니다.
◇ 이상민> 당시 ‘낙선 가능성이 너무 크다’라고 했는데 ‘당이 명령하기 때문에, 당의 권유 때문에 나간다’ 이렇게 얘기하시고 출마하셨죠?
◆ 이광재> 이재명 대표도 저보고 출마를 하라고 많은 분들이 ‘출마 여기 나가면 떨어지는 선거인데요. 떨어질까요?’
◇ 이상민> 매우 어렵다고 했는데요.
◆ 이광재> 그러면 당 지도부가 여러 차례 와서 ‘그러면 떨어지는 선거인데 그래도 또 필요하면 요청을 해라. 그때 내가 거절하지 않겠다.’ 하면서 또 오셨어요. 그래서 출마를 했죠. 그런데 강원도민한테 뭔가 선물은 줘야 되겠더라고요. 내가 선거에 떨어지더라도 그래서 그러면 ‘강원도 특별자치도를 준다고 해라’ 그래서 말로만 해준다고 그래서 민주당 보고 제가 서명을 받았죠.
◇ 이상민> 그때 선거 때 저도 인터뷰 했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 박재홍> 맞아요.
◆ 이광재> 그래서 특별자치도를 해서 선거 며칠 전에 국회에서 특별자치도가 통과됐죠. 저는 비록 떨어졌지만 강원도는 특별자치도라는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그나마 강원도민한테 좀 죄송하지만 그만한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죠.
◇ 박재홍> 사실 정치 여정을 우리 사무총장님도 가만히 보면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아요. 사연이 많으시고 어떠세요? 지금까지 여정을 좀 생각해 보시면.
◆ 이광재> 참 노무현 대통령이 평탄하지 못하니까 저도 평탄하지 못해요.
◇ 이상민> 그분의 참모답게.
◇ 박재홍> 멘토의 삶과 유사하다. 그리고 최재성 전 수석이 저희 방송에 한판열전에 나왔었는데 ‘우리 사무총장님과 쌍둥이 성이 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는 기자도 헷갈려서 뉴스에 사진을 잘못 내보낸 것도 있었고 그리고 ‘이 쌍둥이설로 득을 본 건 본인이 아니라 이광재 사무총장이다.’ 이렇게 본인이 말했는데 맞습니까?
◆ 이광재> 상당히 제가 비교 우위에 있으니까.
◇ 박재홍> 외모상으로, 외모상으로.
◇ 이상민> 사진 나가고 있습니다.
◇ 박재홍> 약간 저희도 그걸 크게 부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하네요. 우리 댓글로도...
◇ 이상민>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게 또 저렇게 사진을 악랄하게 뽑았어요. 또.
◇ 박재홍> 사무총장님 보시기에도 좀 닮긴 닮았습니까?
◆ 이광재> 그럼요.
◇ 박재홍> 최재성 수석이랑? 두 분 만나시면 어떤 얘기했어요? ‘우리 정말 닮긴 했다.’ 이렇게.
◆ 이광재> ‘누가 더 잘생겼냐?’ 항상 다툼이 있죠.
◇ 박재홍> 아무튼 최재성 수석도 지지 않으시는 스타일.
◆ 이광재> 그럼요.
◇ 박재홍> 지지 않으시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최근에 연락 하신 적 있으세요?
◆ 이광재> 만난 적 있어요. 그때도 또 변치 않고.
◇ 박재홍> 변치 않고.
◆ 이광재> 누가 더 잘생겼냐 했더니.
◇ 박재홍> 글쎄 아마 아직까지도 무승무인 상태.
◆ 이광재> 상당히 그렇죠.
◇ 박재홍> 알겠습니다.
◇ 이상민> 라이벌도 아니고.
◆ 이광재> 심판이 없을 때 우리 꼭 싸웁니다.
◇ 박재홍> 심판이 없을 때. 나중에 꼭 두 분이 한번 나오시면 저희가 판정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광재> 아주 좋습니다.
◇ 박재홍> 이광재 사무총장을 뵙고 있고요. 세 번째로 넘어갑니다.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세 번째 뭡니까?
◇ 이상민> 세 번째입니다. 종로 출마입니다. 물음표예요.
◇ 박재홍> 종로 출마.
◇ 이상민> 네, 최근에 사무총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셨고 ‘총선 출마 이거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어요. 이거 사실입니까? 총선 출마 이거 검토 중입니까?
◆ 이광재> 총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러면 어느 지역인지는 명확하게 아직 확정은?
◆ 이광재> 저는 기본적으로 지난번 선당후사인데요. 강원도지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나갔듯이 이번 총선에 저는 반드시 ‘현 정부를 심판해야 된다.’ ‘국정 규제를 완전히 바꿔버려야 된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게 저다운 길이라고 생각하죠.
◇ 박재홍> 그 지역이 어디입니까?
◆ 이광재> 글쎄 그건 당에서 아마 상의하겠지만 당에서 아마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않을까? 저랑 상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재홍> 그럼 아직 종로도 그 옵션 중에 하나인 건 사실이고.
◆ 이광재> 글쎄요. 모르죠. 그거는.
◇ 박재홍> 맞군요.
◆ 이광재> 모르죠.
◇ 박재홍>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종로면 약간 어떤 대권주자로서의 그러한 길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광재 사무총장님께서 여시지에서의 어떤 활동, 그전에 칭화대학교에서 공부했던 부분들, 그리고 어떤 국정 운영을 위한 공부로 해 오셨던 걸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꿈이 있으시잖아요.
◆ 이광재> 글쎄요. 그거보다는 노 대통령이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달라’ 는 저는 그 말씀, 제가 역사 발전의 도구가 되는 거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종로 얘기가 많이 나온 거는 제가 종로에서 대학교 때 야학 교사 생활도 했고 한 30년 살았거든요.
◇ 박재홍> 아, 종로에서.
◆ 이광재> 96년도에 노무현 국회의원이 종로 출마하기 전에 제가 먼저 가서 터를 닦아야 되니까.
◇ 박재홍> 식당을 하고 있었고.
◆ 이광재> 식당도 했고, 그런 연 때문에 아마 그런 거 아닌가 싶고 또 세종시 얘기가 나오는 거는 일부 의원들이 세종시가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했던 일로 아직 마감이 안 됐잖아요. 그리고 국회의사당을 곧 짓게 되잖아요. 거기에. 그러니까 아마 그런 얘기가 이러 저러 얘기하는 건데 기본적으로 저는 선당후사다.
◇ 이상민> 이게 선당후사 그렇군요. 사무총장으로 지내신 지 1년 반 가량이 지난 걸로 알고 있는데 사무총장으로서 이뤄낸 성과, 그리고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 이광재> 성과는 어쨌든 국회 직원들한테 우리가 방송이니까 저는 이게 열심히 싸우는 국회의원보다 열심히 일한 국회의원들이 평가를 받으려면 많이 나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모든 토론 같은 것이 유튜브로 중계되고, 이게 지역 케이블하고 연계되면 더 많이 볼 거 아니에요.
◇ 이상민> 그렇죠.
◆ 이광재> 그래서 이게 법으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을 바꿔서 일을 하면 되지’. 그래서 방송법을 개정했거든요. 그래서 국회 직원들이 법을 바꿔서라도 일하는 공무원이 나와야 세상은 바뀌는 거다라는 자신감, 또 하나는 ‘강변 서재’ 라고 하는 북카페가 생겼는데요. 그거 다 망한다고 9번 유찰됐는데 지금 거의 카카오톡 보면 핫플레이스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게 저는 성과라면 성과고 아쉬운 점은 ‘국회를 이거를 근본적으로 개혁을 해야 된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사무총장 때 전 세계 의회를 비교해 보니까 우리는 1년에 본회의가 37회, 미국은 100회, 우리는 상임위 등 다음에는 500회, 미국 3000회.
◇ 이상민> 우와, 차이가 많이 나네요.
◆ 이광재> 5배, 6배 그래서 저는 ‘국회가 열리는 동안은 지역구 못 가게 해야 된다. 이거 국회의원들’ 그리고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되고 ‘싸우고 뭐냐 하면 막말하는 이런 국회의원들은 뭐냐 하면 국민들의 평가를 받아야 된다.’ 이걸 내가 진짜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정말 국민들이 전쟁 같은 삶을 살잖아요. 너무 살기 힘들잖아요. 집 문제, 일자리 문제, 보육 문제, 언제 보면 똑딱 어플, 이런 것 때문에 애먹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 이광재> 그래서 일자리, 집, 보육, 교육, 의료, 노후 연금, 이런 걸 가지고 1년에 한 번씩 대통령부터 저기 시장, 군수, 구청장까지 평가표를 내야 된다. 마치 1년에 대학 평가하듯이 우리 이강인 선수나 손흥민 선수도 경기 끝나면 바로 평가하잖아요.
◇ 박재홍> 그렇죠. 9.5점.
◆ 이광재>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뭘로 평가를 해요? 대통령을 뭘로 평가하냐고?
◇ 이상민> 4년 참아야 됩니다.
◆ 이광재> 안 되거든요.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할 때마다 ‘머슴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야 ‘일해라’, ‘어디 있냐,’ 그러니까 찾을 수가 없어요'.'안 되겠다, 이거'.
◇ 박재홍> 생산성 높여야 된다.
◆ 이광재> 그리고 평가, 정치인의 평가 성적표를 만들어서 1등부터 하면 1년에 한 번씩.
◇ 박재홍> 300등까지.
◆ 이광재> 발표하면 대통령도 포함돼야 돼요, 장관들도.
◇ 박재홍> 장관도.
◆ 이광재> 그렇게 해야 정신 차리고 일합니다.
◇ 박재홍> 3선이셨고. 또 사무총장으로 일하셨는데. 그러면 여야 의원들 중에 '이 사람은 여야 막론하고 일 정말 잘하는 것 같다'. 이런 분들 혹시 있으셨어요?
◆ 이광재> 제가 볼 때는 김예지 의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이상민> 김예지 의원.
◇ 박재홍>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 여성 의원.
◆ 이광재> 지난번 대정부 질의할 때 여야로부터 박수를 받았어요.
◇ 박재홍> 맞아요. 기억납니다.
◆ 이광재> 사실은 우리가 어느 편에 있지만, 어떤 다른 당에 있지만 다른 당 의원들한테 박수를 받을 수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야 결국은 이게 발전하는 거잖아요.
◇ 박재홍> 김예지 의원. 아까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게 해야 된다'. 이런 말씀도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다음 총선에 나가려고 한다'. 이런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국회 입법부에서 정부를 바라보시는데 어떤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국정운영 어떻게 보셨는지?
◆ 이광재> 저는 아마추어이면서 불통이다. 그러니까 저는 이번에 엑스포가 결정판이었다고 봅니다.
◇ 박재홍>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
◆ 이광재> 유치 실패. 왜 그러냐 하면 첫 번째로는 우리는 사우디 오일머니에 졌다고 그랬는데 오일머니가 아니고 외교 전략이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중국을 비난하고 이란을 공격할 때 사우디는 그 오랜 긴장관계에 있던 사우디-이란이 중국에서 협상을 발표했잖아요. 그리고 프랑스를 자기 편으로 하니까 거의 아프리카를 거의 몰표를 받은 거거든요. 그러면 전 세계를 보는 외교 전략이 없었다는 점, 첫 번째. 그다음에 두 번째, 사우디는 122표라는 걸 정확히 예측했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 이광재> 그런데 119표가 나왔으니까 3표 틀린 거예요. 우리는 몇 표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이거는 결국 뭐냐 하면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 박재홍> 대통령에게.
◆ 이광재> 그렇죠. 왜냐하면 이건 평창 제가 올림픽하러 다녀봤잖아요. 표 계산 정확한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 표 계산을 못한다는 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거죠. 바른 말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세 번째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뭐냐 하면 이 정도의 참담한 결과가 5500억 원을 쓰면서 결과가 나왔으면 적어도 프랑스 현지에서 주요 책임자가 사의를 표했어야죠. 적어도 여기 우리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사의를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사의를 표하면 그때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건 다 제 책임이죠'. 이렇게 하는 것이 국가의 권위가 서고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거는 전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두 번째, 바른 말 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던 거죠. 지금 우리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일들이 지금 그렇잖아요. 이런 면에서 저는 국정운영의 대전환이 있어야 된다. 우리가 이태원 참사가 와도, 잼버리가 와도 누가 지금 책임을 집니까? 엑스포도 책임지는 사람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 국정 기조가 전면적인 전환을 해야 된다. 이제는 이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겁니다. 경제와 외교, 이 부분에서 정말 딴 짓하지 말고 자꾸 홍범도 그런 애국자 이런 분들 흉상 옮긴다, 이런 얘기 하지 말고.
◇ 박재홍> 이념 논쟁.
◆ 이광재> 이념 논쟁 그만두고 민생과 외교에 저는 전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 일했던 공무원들은 다 그대로인 건데 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국정운영 기조가 확확 바뀌거나 혹은 그 일관성이 왜 달라지는 건가요, 그게?
◆ 이광재> 저는 결국은 지난 정부의 것을 잘한 건 이어가야 되거든요. 그리고 대통령은 대통령 과제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너무 많은 일을 지금 하세요. 처음에 뭐냐 하면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방향은 참 좋았어요.
◇ 이상민> 카르텔, 카르텔.
◆ 이광재> 방향은 참 좋았는데.
◇ 이상민> 죄송합니다.
◆ 이광재> 검찰 수사하듯이. 그러니까 교육개혁 이렇게 되면 저게.
◇ 박재홍> 입시 카르텔.
◆ 이광재> 교육 카르텔이 문제인데 저기서 킬러 문항이 문제다. 노동개혁을 해야 되는데 건폭 세력이 문제네.
◇ 박재홍> 노조가 문제예요.
◆ 이광재> 이게 수사하는 거하고 전체 국가를 디자인하는 정책의 틀을 짜는 건 좀 다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 총선 출마를 앞두고 계시는데 국민의힘에서는 한동훈 비대위가 구성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죠. 이제 일각에서는 정치 경험도 없는 분이 과연 비대위원장은 정치 고수가 하는 것인데 '과연 잘할 수 있을 것이냐'. 이런 물음도 있는데 총장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국민의힘의 움직임?
◆ 이광재> 저는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거는 제발 문제는 경제라니까. 그래서 민생과 경제 그리고 외교에서 안정감 있는 국가 운영을 하라. 그리고 소통하라, 이거 아닙니까? 교만하지 마라, 이건데. 한동훈 장관을 여당 대표로 내면 이건 국민과 싸우겠다는 얘기 비슷한 거고. 지금은 국민들은 보다 안정된 나라를 원하는데 지금 어떨까. 국민들은 참 마음이 착잡할 거라고 생각하고. 또 저는 한동훈 장관 같은 경우에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 하락에 저는 큰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윤 대통령 지지도 하락 중에 가장 큰 건 인사 실패인데 인사의 추천에 문제가 있으니 검증에 문제가 있는 건데 검증 책임자였잖아요.
◇ 박재홍> 법무부에.
◆ 이광재> 그렇지 않아요?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윤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중에 큰 거는 불통의 이미지인데 한동훈 장관이 시원할지는 모르지만 와가지고 계속 국회랑 싸우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윤 대통령의 이미지를 더 경화시키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국민들이 별로 좋지 않게 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국민과 싸우겠다는 의미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여권의 대통령 주자 중에 명백하게 1위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권으로서는 그래도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한동훈만 한 카드가 어디 있겠느냐, 이렇게 반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이광재> 저는 결국은 지금은 여당이라는 거하고. 선거 시기, 나중에 선거할 때 들어오는 거는 그럴 수도 있는데 지금은 국정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건가 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여당 대표는 대통령 부하가 아니에요. 국회는 국회 자체로 존중받아야 되거든요. 지금 보면 우리가 이준석 대표, 여당 대표 쫓겨났죠. 김기현 대표, 사실 강서구청 보궐선거 할 때 이번에 낙선한 그분 공천하지 말자고 당에서 그런 여론이 많았거든요.
◇ 박재홍> 김태호 전 구청장.
◆ 이광재> 그런데 결국은 공천에서 졌잖아요. 그러면 대통령실과 국회가 좀 대등한 입장을 하고 국회를 존중해야 합니다. 여당 대표한테 룸을 안 주면 이건 거의 국회는 싸움판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이광재> 지금은 오히려 민생과 외교에 안정감 있는 인물, 여당을 대표할 수 있는,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선거 때만 되면 한동훈 장관이 나오는 거야 그럴 수 있죠.
◇ 박재홍> 한동훈 장관, 오늘 여러 입장을 밝혔는데 직접 나와서 말씀을 해 주시죠. 김건희 특검법, 리스크에 대한 입장도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말씀하셨죠?
◇ 이상민>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합니다만 독소 조항이 있고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 선동을 하기에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 박재홍>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서 한동훈 장관의 입장.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돼서 그 입장 발표가 굉장히 '정국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오늘 발언은 총장님,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 이광재> 국민과 싸우자는 거죠.
◇ 박재홍> 그게 국민과 싸우자는 거다.
◆ 이광재> 결국 김건희 여사 특검이 필요하다는 건 국민의 한 70%가 현재 동의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국민의 70%가 동의하는 부분을 저렇게 무차별로 공격하는 건 별로 맞지 않는 거 아닐까?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정말 살기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해라'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도 참 처음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 잘하기 쉽지 않을 텐데'. '국가는 참 어려운 건데'라고 했지만 정말 잘 되기를 바랐거든요. 그런데 보면 말 실수, 바이든 날리면, 그다음에 해외 갔다 오면 반드시 어떤 큰 뉴스를 하나씩 가져오시고. 그리고 이태원 참사, 그다음에 잼버리 같은 건 세계적인 망신이잖아요. 엑스포 실패. 이런 걸 보면서 정책을 차분하게 논의를 하는 건 불가능한 거예요. 너무 많은 사건, 사고가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은 좀 겸손해져야 된다. 그리고 정말 국정을 좀 다 잡아야 된다. 이번에 엑스포 때 이 대통령한테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지금 이번에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서 국민의 70%가 찬성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언사를 하면 국민들의 마음과는 점점 멀어질 것 같은데요.
◇ 이상민> 그렇군요.
◇ 박재홍> 민주당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와 관련해서. 이낙연 전 대표가 신당 창당설과 관련해 비판적 의견이 많고 '사쿠라다, 배신행위다'. '정계 은퇴해라'.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데. 민주당 의원들도 그런 부분을 많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무총장님 보시기에 신당 창당. 의지가 있으신 건 분명해 보이는데.
◆ 이광재> 저는 이낙연 대표가 신당할 때는 아니고 또 신당을 해도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오히려 지금 신당할 때가 아니고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데 백의종군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 박재홍> 백의종군. 백의종군이라면 어떤 걸까요?
◆ 이광재>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 정말 동분서주하고 전국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이 정부의 실정을 이야기하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왜냐하면 민주당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책임 있는 직책을 하셨잖아요.
◇ 이상민> 그럼 반대로 이재명 대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통합을 위해서.
◆ 이광재> 이재명 대표는 우리가 또 한편으로 인정해야 될 거는 당원이 어쨌든 선출한 대표잖아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끌고 가는 사람이 저는 이재명 대표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또 이재명 대표도 앞으로 선거가 다가오면 재판에 또 나가시고 이래야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내일이 아마 김부겸 총리와의 만남이 분수령이 될 거라고 보는데 28일날 정세균 총리와 또 힘을 합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서 이번 총선에서 이 정부의 따끔한 중간평가를 하려면 정당과 국민들이 연대를 해야 되는데 그런 연석회의 같은 걸 만들어서 국민들의 지혜도 더 모으고 이래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박재홍> 그렇군요. 또 이낙연 전 대표에게 이재명 대표가 손을 더 적극적으로 내밀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만 두 분 사이가 그렇게 또 다시 통합의 길로 가기 또 어렵다.
◆ 이광재> 아마 중간에서 일정 부분들이 일단은 이재명. 이낙연 대표가 신당을 안 만들겠다는 걸 일단 좀 명확히 해야 될 것 같아요.
◇ 이상민> 아, 공헌을 하셔야.
◆ 이광재> 네, 왜냐하면 신당을 만들겠다고 하면 그거 얘기하나마나잖아요. 그래서 약간 어제 발언 보면은 약간 좀 이낙연 대표가 신당 창당에 약간 좀 발을 빼는 그런 것도 좀 보이기는 하는데 어쨌든 신당 창당 부분은 조금 더 자제해 주셔야 서로 얘기를 해 나가기 좋지 않을까 싶네요.
◇ 박재홍>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안 하겠다 한 이후에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송영길 전 대표가 구속됐습니다. 국민의힘에서는 부패한 꼰대 혹은 청렴의식 없이 권력욕만 가득한 구태가 오늘날 586 운동권의 자화상이다 이런 비판까지 했는데 민주당으로서는 전당대회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좀 뭐랄까요 곤혹스러운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 이광재> 어쨌든 가슴 아픈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죠.
◇ 박재홍> 민주당은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요? 그럼 이 부분에 대해서. 이제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도 사과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비명계에서는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하면 송영길 대표가 당대표가 돼서 결국 이득 본 게 이재명 대표다 이런 주장 하시는 분도 있는데.
◆ 이광재> 어쨌든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이고 지금은 재판 결과를 좀 지켜보고 저희가 민주당에 공천할 때 조금 더 좀 더 새롭고 혁신적인 인물들을 많이 공천하는 게 그렇게 보답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요.
◇ 박재홍> 그런데 지금 당내 비명계 의원들, 통합형 비대위 만들자 이런 말이 나왔었습니다.
◆ 이광재> 비대위로 가겠습니다.
◇ 박재홍> 그거 가능한 시나리오입니까?
◆ 이광재> 글쎄요. 지금 비대위. 글쎄요. 저는 비대위보다는 좀 더 뭐냐 하면 분열을 줄이는 어떤 노력은 필요하지만 굳이 그게 비대위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잖아요.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가 됐는데 지지도가 약하다고 그래서 막 흔들다가 결국은.
◇ 이상민> 후보 교체하자 막 이랬잖아요.
◆ 이광재> 후보 교체하자 막 이러다가 결국은 그 역풍을 맞았잖아요. 그러니까 이재명 대표야 우리가 역할이나 이걸 현실로 인정해 놓고 플러스 알파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낼 건가에 지혜를 모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 박재홍> 그렇군요. 당내 문제 이슈는 여기까지 하고요. 책 얘기 좀 해 보세요.
◇ 이상민> 책 정말.
◇ 박재홍> 같이 식사합시다.
◇ 이상민> 같이 식사합시다. 이거 요리 그림도 있고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도시락 그림도 있고 이거 어떤 책입니까? 간략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 이광재> 요새 서울의 밤 영화가.
◇ 박재홍> 서울의 봄.
◇ 이상민> 전두광.
◆ 이광재> 네, 서울의 봄 이후에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두 남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광재.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도 서울의 봄 이후에 고문받는 학생들을 변호하면서 인권변호사로 바뀌면서 대통령까지 가는 과정.
◇ 이상민> 이게 실화 기반입니까? 그러면?
◆ 이광재> 실화 기반이죠. 그래서 저는 당시 또 대학생이었고 그 둘이 만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음식과 같은 추억들. 이런 것들을 하면서 써낸 얘기입니다.
◇ 박재홍> 대개는 뭐 정치 사건 사고로 이렇게 어떤 매듭을 만들 텐데. 음식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을 하셨을까요?
◆ 이광재> 경제가 중요하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 같이 먹고 살자.
◇ 이상민> 눈에 갑자기 청명함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 박재홍> 우리 백종원 씨 잠깐 나와주실까요?
◇ 이상민> 아따, 맛있겠다. 맥주랑 먹을 걸.
◇ 박재홍> 백종원. 요즘 밀고 있어요.
◇ 이상민> 노 전 대통령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이 뭐가 있을까요?
◆ 이광재> 가장.
◇ 이상민> 해 드셨던 음식도 있습니까?
◆ 이광재> 많이 좋아하셨던 거는 저기 종로에 있는 그 왜 토속촌이라는 삼계탕집.
◇ 이상민> 알아요, 알아요, 가봤어요.
◆ 이광재> 거기를 좋아하셨고 제가 많이 갖다 드린 거는 강원도에서 나는 도리뱅뱅이라고요. 그 민물고기 해서 이렇게 도리뱅뱅이 같은 거 많이 갖다 드렸고 그리고 저기 비원 앞에 보면 그 술라집이라고 홍어집이 있거든요.
◇ 박재홍> 홍어.
◆ 이광재> 네, 그런 거 좀 드리고 그랬죠.
◇ 이상민> 굉장히 맛있게.
◆ 이광재> 잘 아주 좋아하시지는 않는데 가끔.
◇ 이상민> 아, 가끔.
◇ 박재홍> 총장님에게는 어떤 음식이 정치 인생을 대표하는 음식.
◆ 이광재> 아무래도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게 부산의 주물공장 다닐 때 제가 수배 받았을 때 충청도에서 막노동 생활을 했는데 비 오면 막노동을 안 하잖아요. 그 옆에 저수지에 갔는데 저수지에서 뭐냐 하면 민물 새우를 잡아서.
◇ 박재홍> 어죽.
◆ 이광재> 라면을 끓여서 새우라면. 제가 새우라면의 원조라고 볼 수 있어요.
◇ 이상민> 새우라면.
◆ 이광재> 네, 시원합니다.
◇ 박재홍> 민물 새우를 넣어서.
◆ 이광재> 맛있어요. 시원해요.
◇ 이상민> 좀 너무 작지 않습니까?
◇ 박재홍> 같이 끓이면 맛있어요.
◆ 이광재> 타이거, 타이거 새우로 먹어야 맛있는 거 아닙니까?
◇ 박재홍> 생각보다 유복하게 잘하셨구나.
◆ 이광재> 큰 게 좋습니다, 뭐든지.
◇ 박재홍> 잠깐 그럼 우리 또 대통령님 잠깐 나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무총장님과의 대화.
◇ 이상민> 아니, 총장님도 그 먹는 거 좋아하시면 우리 쪽 당에 오셔야지 떡볶이 먹방 보셨잖아요. 총수님들하고 같이 먹었는데. 만두 좀 나눠드릴 걸 그랬어. 언제 술자리 말고 저녁 식사 한번 하시죠. 만약에 저를 만난다고 한다면 어떤 말 해 주고 싶습니까?
◆ 이광재>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
◇ 이상민> 국정기조. 메뉴나 좀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참 이거. 한 잔 말아야 되는데.
◇ 박재홍> 역시 쓴소리. 이재명 대표님, 잠깐도 나와주세요.
◇ 이상민> 저는 샌드위치처럼 간단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요. 다음에 이재명 세트로 대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재홍> 이재명 대표랑 소통하십니까?
◆ 이광재> 뭐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에요.
◇ 박재홍>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셨어요.
◆ 이광재> 소통을 해야죠.
◇ 박재홍> 네, 소통을 더 많이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한판열전 마지막을 향해 가는데요. 마지막이 모든 게스트에게 요청드리는,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요청드리는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요청을 카메라를 보시고. 또 미남이시니까 애청자를 위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액션. '한판승부'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 이광재> 네, 저는 이광재라고 합니다. 같이 식사합시다. 좀 책도 좀 사주시고요. 제가 이 유튜브 구독자 1만 명이 안 돼서 제가 엄청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박재홍> 아이고. 우리 이광재 사무총장님.
◇ 이상민> 오늘 방송 출연하신 이유가 이 한마디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 박재홍> 같이, 같이, 같이 식사합시다.
◇ 이상민> 채널 홍보에 이광재입니다. 여기까지 다 들어갔습니다.
◇ 박재홍>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예, 괜찮아요. 우리 한판열전 마지막 질문. 공식 질문 드리는 시간이죠. 내 인생에 한 줄로 요약한다면?
◆ 이광재>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질풍노도처럼 살아왔고 앞으로도 질풍노도처럼 살아가겠습니다.
◇ 박재홍> 질풍노도.
◆ 이광재> 많이 도와주십시오.
◇ 이상민> 질풍노도.
◇ 박재홍> 내년 총선 역시 질풍노도처럼 달려가겠다.
◆ 이광재> 달려가야죠.
◇ 이상민>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는데 달려가야죠로 함축이 됐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우리 이광재 사무총장님 국회에서의 임무를 완수하시고 이제 또 내년 총선을 향해 가시는 것 같은데 그 여정에서도 또 한판승부 많이 봐주시고 또 출연도 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상민 크리에이터 오늘 어떠셨어요?
◇ 이상민> 굉장히 이광재 사무총장님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 박재홍> 아, 이미.
◇ 이상민> 이미 구면입니다.
◇ 박재홍> 이미 구면.
◇ 이상민> 네, 이광재 사무총장님 명함을 등록을 하면 이메일이 날아와요.
◇ 박재홍> 뭐라고?
◇ 이상민> 뉴스레터가 날아오는데. 굉장히 시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걸 간혹 봤는데 저는 부드러운 분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됐죠?
◆ 이광재> 그렇죠. 제가 시를 써서 보낸 적 있어요. 바다가 육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매일 쓰는 편지가 파도입니다.
◇ 박재홍> 이야.
◆ 이광재> 여러분, 두 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수많은 파도를 지금 방송으로 보내고 계시죠.
◇ 이상민> 연애편지를 어떻게 써줄지 가늠이 됩니다.
◇ 박재홍> 네, 너무 좋네요. 너무 좋아요. 저희도 왠지 사명감을 갖고 방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판열전', 오늘 여기까지고요. 또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이광재 사무총장님께 감사드리고 이상민 크리에이터,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고맙습니다.
◇ 이상민> 고맙습니다.
◆ 이광재> 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2/19(화) 이광재 "이재명·김부겸 만남 분수령...통합비대위 불필요"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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