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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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유현준 건축가
◇ 박재홍>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2부 문을 열었습니다. 한판클라스 대개는 금요일날 저희가 모시는데요. 오늘은 교수님 스케줄에 저희가 맞춰서 수업 시간을 옮겨봤습니다. 오늘 한판클라스에 모신 분은 건축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연계성에 대해 항상 말씀을 해 주시는 분인데요. 여러분 너무 좋아하시는 유현준 홍대 건축학과 교수이시자 건축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 유현준> 안녕하세요.
◇ 박재홍> 진 교수님과 김 소장님 인사 나눠주시고요.
◆ 유현준> 안녕하세요.
◆ 진중권> 안녕하세요.
◇ 박재홍> 이번에 「인문건축기행」이라는 새로운 책을 내셨습니다. 「인문건축기행」. 그러니까 인문과 건축을 함께 섞었다? 융합됐다?
◆ 유현준> 거창하게 인문학 하니까 미안하기는 한데요. 일단 건물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이 쓰기 위해서 만드는 거고 만드는 주체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삶을 담은 거라서 인문하고는 사실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 같기는 합니다.
◇ 박재홍> 미학적으로도 그렇습니까?
◆ 진중권> 사실은 미학에서도 주도하는 장르가 있잖아요. 르네상스 때는 회화가 주도하고 또 17세기 음악이 주도하고 그러는데 사실 60년대 이후 70년대, 80년대까지 사실 건축이 미학적 방향을 주도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그때 건축가 이름도 주워듣고 그랬죠.
◇ 박재홍> 그렇군요. 우리 진 교수님도 약간 학생 느낌으로 수업 들을 텐데 이번에 내신 책 보면 이게 이제 30개 건축물을 추려서 하신 것 같아요. 3개의 지역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 큰 3개의 지역 나눠서 하신 건데.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30개는?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건축물?
◆ 유현준> 그냥 책이 원래는 33개를 골랐었는데.
◇ 박재홍> 33개.
◆ 유현준> 그래서 3권으로 해서 100개 정도를 내고 싶었었는데 33개를 다 쓰고서 책을 내니까 600페이지 되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책 안 팔린다고 3개를 덜어내고 30개로 줄인 겁니다.
◇ 박재홍> 지금도 491페이지. 500페이지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 유현준> 그래서 안 팔리는 것 같아요.
◆ 김성회> 그런데 이제 청취자 분들 긴장을 하실 건 없는게 중간중간에 설명하는 사진도 많이 있기 때문에.
◇ 박재홍> 그렇습니다. 사진도 많이 있고 이게 또 딱 보고 30개 챕터별로 관심 있는 건물만 공략해도 되고 관심 있는 지역만 공략해도 되고 그렇습니다. 출간 중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같은데요.
◆ 유현준> 잠깐 올랐다가 내려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 박재홍> 그런가요? 그런데 책 보다가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분이 또 건축학 쪽으로 굉장히 중요한 분인가 봅니다. 앞으로 책을 보실 분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을 해 주시면.
◆ 유현준> 보통 건축계에서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건축가 4명 정도를 뽑는데 그중에 한 분이거든요.
◇ 박재홍> 르 코르뷔지에.
◆ 유현준> 실질적으로 영향력은 굉장히 큰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건축의 아버지입니까, 그럼?
◆ 유현준> 거의 그렇다고 봐야 될 것 같고요.
◆ 김성회> 이분이 아파트를 지은 분 아닌가요?
◆ 유현준> 그렇죠.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면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서 철근, 콘크리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쓴 분이다,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 건축물의 재료의 변화를 가져와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돌이나 벽돌이 건축의 자재였다면 이제 철근과 콘크리트를 쓰면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 유현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되게 빠르게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만들어줘야 됐던 그런 시대적인 필요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벽돌과 돌을 하나하나 쌓아서 만들기에는 그 수요를 다 감당할 수가 없었고 당시로서는 신기술이었고 이분은 되게 산업혁명을 신봉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약간 건축물을 기계에 비유를 하거든요. 기계는 공장에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니까 건축 재료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인 시멘트 같은 걸 쓰는 거죠, 철근도 쓰고.
◆ 진중권> 머신 포 리빙. 살기 위한 기계.
◆ 유현준> 그렇죠. 그런 멋있는 말을 했죠.
◇ 박재홍> 진 교수님 미학 얘기하실 때 보면 약간. 그래, 정치 얘기하지 말자. (전체 웃음) 이런 얘기하니까 뭔가 품격 있는 방송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교수님의 「인문건축기행」 2장에 보면 프랑스 퐁피두센터 말씀하시면서 던진 질문. 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 질문 저는 되게 좋더라고요. 건축의 본질은 부동산이냐 이렇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 진중권> 퐁피두센터는 건물 내장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형태잖아요.
◆ 유현준> 맞습니다.
◆ 진중권> 어떤 의미가 있는 거예요?
◇ 박재홍> 건축의 본질.
◆ 유현준> 그러니까 사실 건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은 중력을 이겨야 된다는 거잖아요. 이 건물이 어떻게 서 있을 수 있는가. 중력을 거슬러서. 그걸 대부분 다 현대 건축에서는 숨기거든요. 다 외장재로 마감재로 숨기고 있는데 그걸 다 바깥으로 노출을 해서 이게 어떻게 서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상하수도 시스템과 전기와 공조는 어떻게 돼 있는지 이런 모든 것들을 마치 해부학처럼 다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좀 처음 봤을 때는 되게 기괴하죠.
◇ 박재홍> 그렇군요.
◆ 진중권> 가끔 가다가 술집 같은 데 보면 천장에 마감 없이 통으로 틀어놓은 약간 그런 콘셉트인 거죠.
◆ 유현준> 그렇죠, 그게 일맥상통합니다. 요즘에 레트로라고 해서 카페에 가면 그대로 공장 같은 느낌을 살리잖아요. 그런 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제가 볼 때는 건축에서의 본질적인 구조를 노출시킨 거기 때문이라고 봐요.
◆ 김성회> 중력 거스르는 말씀하시니까 이 책에서도 다뤘습니다마는 CCTV. 그러니까 고인돌처럼 돼 있는데 정말 저는 기괴하더라고요. 어떻게 저게 서 있나 싶은데.
◇ 박재홍> 중국 국영방송사 건물.
◆ 김성회> 그걸 세워놓는 거 자체를 권력으로 보는 건가요?
◆ 유현준> 그렇죠. 말씀하신 대로 기괴하다는 얘기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라는...
◇ 박재홍> 사진 나가고 있는데요. 저게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KBS 건물이 저렇게 생긴 거잖아요, 그렇죠? 중국의 CCTV가 중국의 KBS인데.
◆ 유현준> 약간 그렇죠. 아이젠만의 아이디어. 저런 약간 가분수로 짓는 경우. 가분수로 짓는 경우가 사실은 더 어렵거든요. 고인돌을 지었던 이유도 큰 돌을 위에다 올렸잖아요. 작은 돌을 세우고. 가분수로 중력을 거슬러서 만들기 어려운 걸 만들 때 그걸 만든 사람들의 권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거거든요. 고인돌은 최소한 50명에서 100명 정도는 동원할 수 있어야 만드는 거고.
◇ 박재홍> 혼자 못 짓는 거고.
◆ 유현준> 혼자 못 짓죠. 그 정도의 우두머리가 있고 조직력이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고 CCTV 사옥은 중국이 올림픽 앞두고서 앞두고 자기네가 과시하고 싶었으니까.
◇ 박재홍> 2008년 베이징 올림픽.
◆ 유현준> 그렇죠. 그걸 앞두고서 자기네들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앞섰는지 과시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그런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죠.
◆ 진중권> 다루신 건축물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봤거나 봤을 게 이제 루브르 아니겠습니까?
◇ 박재홍> 프랑스, 프랑스. 프랑스 다시 가겠습니다. 중국에서 프랑스로. 루브르에 대해서 질문 주시면.
◆ 진중권> 어떤 점을 어떻게 봐야 되나요? 저는 딱 보니까 인상적이었던 건 고풍인데 여기는 현대풍인데 이게 어울린다라는 것. 딱 시각적으로 그거 하나 느낌이고요.
◆ 유현준> 사실 피라미드는 인류가 만든 건축물 중 제일 유명한 거잖아요. 누구나 다 아는 형태고. 형태적으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인데 그걸 파리의 심장, 우리나라로 치면 경복궁 한복판에다가 피라미드 같은 걸 그냥 갖다 박은 거거든요. 처음에는 되게 반대가 심했는데 그걸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재료를 현대적인 재료로 바꿨다라는 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 박재홍> 사진 나가고 있는데.
◆ 김성회> 저도 저거 가서 봤을 때는 실제로는 아니, 무슨 위원회가 저걸 통과를 시켰을까 되게 궁금했는데 밀어붙였던 사람이 있는 건가요?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 유현준> 미테랑 대통령이 엄청 밀어붙였습니다.
◆ 진중권> 프랑스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 유현준> 당시에는 아까 진중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60년대, 70년대, 80년대 이때는 해체주의 건축이라고 해서 현대 철학의 사주와 영향을 받아서 건축이 막 되게 난해하고 그런 거 하던 시절이었어요. 그게 유행이었는데. 거기에 느닷없이 저런 모던한 형태의 건물이 딱. 어떤 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기도 하잖아요, 옛날 형태를 따가지고 왔으니까. 상당히 하이테크면서도. 저는 저게 재미있는 게 저게 피라미드가 형태가 피라미드 모양이잖아요. 그런데 저기 조금만 더 가면 반대로 된 형태, 네거티브로 된 게 하나 있어요. 그리고 그 밑에 보면 조그마한 돌로 만든 피라미드가 또 있어요. 이게 약간 순환구조인 거예요, 음과 양에서 음과 양으로 계속 돌고 도는. 약간 중국계 미국인이거든요, 이 건축가가. 그러니까 이 사람이 약간 도가사상, 음양사상 이런 거에 생각을 갖고서 그런 디자인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교수님 말씀 들으면 건축가 직업 자체가 예술가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은데.
◆ 진중권> 또 하나가 독일 국회의사당 있지 않습니까? 다시 이게 이제 파괴됐던 그거 다시 돔을 올려놓은 건데 사실은 기억나는 게 한국의 방송진들 끈질깁니다. 허가를 못 받았거든요. 허가 없이 그냥 카메라 들고 밀고 들어가니까 이게 되더라고요, 이게.
◇ 박재홍> 막 찍어버려.
◆ 진중권> 제가 현지 코디였을 때.
◇ 박재홍> 알바를 그때 하셨구나.
◆ 유현준> 독일에 계실 때.
◆ 진중권> 허가 받지 않고 그냥 들어갔는데 진짜로 허가 받지도 않고 찍어서 내보내더라고요.
◇ 박재홍> 독일 국회의사당. 사진이 준비돼 있는데요. 그 사진 한번 보면서 청취자, 시청자 여러분들도 유튜브로 보시면 사진을 보여드릴 텐데, 저게 독일 국회의사당. 좀 신기합니다.
◆ 진중권> 윗부분입니다.
◆ 유현준> 돔 부분만.
◇ 박재홍> 우리나라 국회의사당도 돔이 있기는 한데, 전쟁이 벌어지면 돔이 갈라지면서 마징가Z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지만 저기는 마징가Z가 충분히 보일 수 있는, 평상시에 세워 놓으면 보일 수 있는 그런 구조군요. 왜 저렇게 지었을까요?
◆ 유현준> 일단 돔이라고 하는 건 건축에서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건축 형태입니다. 그래서 항상 그 시대 최고의 권력자만이 돔 건축을 소유할 수가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 유현준> 그래서 판테온도 그렇고 성 베드로 성당도 그렇고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대부분 다 이런 정치가들이 그런 권력들을 가지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평지붕으로 디자인이 돼 있었거든요.
◇ 박재홍> 평지붕.
◆ 유현준> 평평하게 왜냐하면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니까 다 평등하다.
◇ 박재홍> 원래 돔이.
◆ 유현준> 원래 없었어요. 평평하게 만들었는데 국회의원들이 난리를 쳐서 우리는 돔을 원한다.
◆ 김성회> 그랬나요? 박정희 대통령이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갔다가 돔을 얹어라라고 말씀하셨다라는 얘기를 제가 들었었는데.
◆ 유현준> 정확한 소식은 좀 더 검증을 해 봐야 되겠지만.
◆ 김성회> 그런데 우리나라 돔에서 웃기는 건, 그러니까 국회 돔이 웃기는 건 저게 원래 동이거든요. 구릿빛 나는 금처럼 보이는 건데. 산화가 돼서 지금 초록색이 돼 있는 건데 아무도 저걸 다시 닦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닦으면 금빛이 나니까, 부담스럽죠. 지금은 초록색으로 나둔 건데 산화한 동이라서 그렇지 저기 올라가서 광내기 시작하면 금빛이 납니다.
◇ 박재홍> 그게 원래 금빛이에요?
◆ 진중권> 국회 가시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웃음)
◆ 김성회> 그거 하면 큰일 나죠, 지금.
◇ 박재홍> 사원 느낌도 나고.
◆ 김성회> 저 초록색이 마치 원래 색깔인 것처럼 있는 겁니다.
◆ 진중권> 한번 해 봐요, 원래 색으로 돌려주자. (웃음)
◇ 박재홍>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이 원래 돔이 아니었다는 거 굉장히 좀 재미있는 얘기네요. 그러니까 국회의원들이 뭔가 권위적인 건물 모양을 원했던 건가요? 있어 보여야 된다?
◆ 유현준> 그게 차이가 나는 거죠. 독일 국회의사당하고 우리나라 국회의사당하고 비교하면 두 나라의 정치 수준이 드러나죠. 돔을 지금 이건 보면 투명하게 만들고.
◇ 박재홍> 독일.
◆ 유현준> 거기에 경사로가 있잖아요. 전망대로 만들었습니다.
◆ 진중권> 올라가 봤습니다.
◆ 유현준> 일반 시민들이, 우리가 에펠탑이 근대 시민사회를 완성한 건축물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왜냐하면 보통은 권력자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갖잖아요. 밑에 신하들이 밑에서 올려다보고. 그런데 에펠탑은 높은 높이를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최고 권력자의 시선을 일반 시민에게 돌려준 건데 그거하고 비슷하게 저 돔의 꼭대기를 일반 시민이 올라가서 전망대로 쓰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래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감시할 수 있게 창문이 있어요.
◇ 박재홍> 의정 활동하는 거 볼 수 있게.
◆ 진중권> 다 볼 수 있어요.
◆ 유현준> 다 볼 수 있게.
◇ 박재홍> 휴대전화로 뭐...
◆ 진중권> 돔에서 찍는 거야.
◇ 박재홍> 카메라 DSLR 가져가면 다 볼 수가 있군요? 특별히 기자들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 진중권> 우리도 돔 투명하게 만들자. (전체 웃음)
◆ 유현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저는 그러니까 건축물을 볼 때 그러니까 어떤 시각과 관점을 보면 새로운 게 많이 보이네요. 저는 저걸 보면서 관광도 할 수 있네 그 정도만 생각했는데 교수님 말씀 들으니까 국회의원을 발아래 둔다. 시민들 발아래 둔다, 그런 차원에서 보니까 권력이 시민들 아래에 있다, 그런 차원의 해석이 가능한 거군요.
◆ 유현준> 그렇죠. 그리고 감시를 하는 사람이 권력자고 감시를 당하는 사람들은 권력이 낮은 사람이거든요. 이걸 딱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여기서.
◇ 박재홍> 설계하신 분도 의도한 겁니까?
◆ 유현준> 그렇겠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설계하신 분이 영국 건축가예요.
◇ 박재홍> 영국 건축가?
◆ 유현준> 독일 건축가가 아니고.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영국한테 졌잖아요. 그런데 웬만하면 열등감 가질 만도 한데 공모전 해서 딱 1등 하니까 그냥 지워라.
◇ 박재홍> 우리나라로 치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을 일본 건축가한테 허가해 준 거랑 비슷한 건가요?
◆ 유현준> 그렇죠. 그거랑 비슷하다고 봐야죠.
◆ 진중권> 기억나는 게 육학 중이었는데, 공모할 때 모형 같은 거 몇 개 만들어놓고 시민들에게 다 보여주고 의견 취합하고 이랬던 기억이 나요.
◇ 박재홍> 그렇군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그 정도 시대였군요. 그래요. 그러면 이런 국회의사당 느낌이 다른 나라도 있습니까? 독일만 좀 특이한...
◆ 유현준> 호주가 있습니다.
◇ 박재홍> 호주요?
◆ 유현준> 호주가 공원에서 잔디밭이 연결돼서 지붕으로 올라가게끔 그렇게 돼 있는 콘셉트가 있어요.
◆ 진중권> 건물 쭉 봤는데 여기서 유니테 다비타시옹인가. 그건 그냥 아파트잖아요. 안드레스 고어스키가 사진도 찍었는데 사실 유럽에서는 그런 아파트 보기 힘들거든요. 그게 어떤... 저는 이거 딱 보면서 왜 이런 사진을 찍고, 왜 건물을 왜 이렇게 지었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유현준> 그러니까 그 아파트가 되게 이 사람은 하나의 도시를 하나의 건물에 축소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당시 아까 말씀하신 대로 건축을 기계로 봤잖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 최고의 기계적인 어떤 결정체는 증기선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의 집합주거를 증기선에서 모티브를 따갖고 와서 만들자, 이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밑에 다리 기둥 같은 게 서 있고 붕 떠 있는 느낌인 거예요, 땅에 앉은 느낌이 아니고. 그런데 그 안에 희한한 게 몇 백 세대가 있는데 다양한 콤비네이션이 있어요. 열 몇 개의 다양한 평면들이 있고 그리고 일반적으로 미국의 아파트 가서 보면 가운데가 중복도로 되어 있잖아요. 그럼 중복도는 마통풍이 안 되고 환기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건 중복도이면서 마통풍이 되면서 복층형도 있으면서 그러니까 모든 장점들을 다 가지는. 하여튼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 진중권> 딱 보면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데 나름대로 복잡함이 또 있네요.
◆ 유현준> 그 안에 들여다보면 다양한 패턴들이 있고 유치원은 옥상에다가 올려놔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옥상정원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 주고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아까 독일 국회의사당 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베를린이 점령했던 소련군이 벽면에 남겨놓은 낙서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해 놨다. 저 사진 나가고 있는데 지금 뭐라가 써있는지는 모르겠는데...
◆ 진중권> 키예프라고 쓰여 있는데. 키예프. 다른 건 모르겠는데 키예프는 도시 이름이잖아요, 우크라이나. 그쪽 출신인 것 같고 낙서한 것 같아요.
◇ 박재홍> 누구 어디 출신이 와서 간다 낙서를.
◆ 진중권> 키예프 발르라고 돼 있어요.
◇ 박재홍> 2차 대전의 그걸 기억하자는 의미로.
◆ 유현준> 건축가가 저걸 보존하자 얘기를 했어요. 국회의원들이 와서 이거 너무 창피하다, 지우자 그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건축가가 이건 당신네들 역사의 일부니까 그대로 보존하는 게 맞다.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서 보존했잖아요.
◇ 박재홍> 우리 같으면 안 했을 것 같은데.
◆ 유현준> 우리나라는 안 했을 것 같아요.
◇ 박재홍> 왠지 총독 건물도 허물고 그랬으니까.
◆ 유현준> 우리는 건물도 없애잖아요.
◇ 박재홍> 건물도 허물었는데, 만약에 그런 게 있으면 없애자 했을 텐데. 그렇군요. 어떤 역사를 대하는 사회의 인식이나 그런 것도 좀 보여주는 측면이 있군요.
◆ 진중권> 독일의 역사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
◆ 유현준>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이제 팩트를 인정한 다음에 약간 과거사를 때하는 자세가 되게 바람직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아까 CCTV 본사 빌딩 아까 21세기 고인돌 말씀 하셨었는데 교수님 책의 내용에 보면 과시건축의 끝판왕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정말 중국 경제의 어떤 이 정도로 우리가 잘산다.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물이다. 저 건물은 어느 정도 짓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까?
◆ 유현준> 그건 저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런데 그 기법이 정말 대단한 게 보통 저렇게 높은 건물을 위에다가 지으면 적당히 높으면 밑에서부터 그렇게 비계를 쌓아올려서 위에를 연결하고 철거를 하는데 이건 짓는 과정이 특이해요. 양쪽에서부터 이렇게 나뭇가지 자라듯이 쭉 와서 만나게 해 놨어요. 여기 윗면에 사진...
◇ 박재홍> 사진을 한번 보여주세요. CCTV.
◆ 진중권> 허공에 떠 있네.
◆ 유현준> 사진에 보면 X자로 인면이 돼 있는 게 있거든요. 모양이 다 불규칙해요. 그 이유가 그 부근에는 힘을 더 많이 받으니까 X자로 돼 있는 브레싱 구조가 더 많이 들어가야 돼서 인면의 모양 자체가 이 건물이 서 있을 수 있는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 박재홍> 화면 나가고 있는데.
◆ 유현준> 그러니까 이 꺾인 모서리 부근이 조금 더 많잖아요. 촘촘하게 되어 있잖아요.
◇ 박재홍> 저희는 같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냥 일반 건물이랑 똑같이 지은 건물만 바라보다가 저렇게 뭔가 지어진 건물을 바라보면 뭔가 좀 창조적인 공간인 듯한 느낌도 들고 잘 지었다라는 생각이 드네요,저는.
◆ 유현준> 그런데 재미난 일화가 이 CCTV의 임원진들이 원래 높은 층에 다 방을 갖고 있었다가 저거 딱 지어진 거 보고 1층으로 내렸다고.
◆ 진중권> 불안해서 공중에 떠 있기 불안해서.
◆ 유현준> 도저히 못 있겠다는 거죠.
◇ 박재홍> 그래요? 사장, CCTV 사장은 1층에 있네요, 그럼 지금?
◆ 유현준> 저층에 있다고... (웃음)
◇ 박재홍> 재미있네요, 재미있네요.
◆ 김성회> 우리나라 같으면 언론 자체가 권력이라서 저런 식으로 건물까지 권력을 상징하게는 잘 안 지을 거 같은데.
◆ 진중권> 아니야. 우리는 용적률 따져서 안 돼. 저렇게 하면 공간을 낭비하는 거잖아.
◆ 유현준> 용적률이 떨어지는 디자인이다.
◇ 박재홍> 그렇네요.
◆ 진중권> 한국 건축의 고질적인 문제예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예요.
◇ 박재홍> 재미있는 게 2007년에 타임즈에서 저 건물은 기괴한 건축, 10대 기괴한 건축물 중 하나로 했다고 하는데 미국은 은근히 또 디스한 겁니까? 아니면 실제로 기괴.
◆ 유현준> 글쎄요. 기괴하다는 게 거기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 박재홍> 멋있다는 의미다.
◆ 진중권> 뭐죠? 구겐하임미술관 있잖아요, 빌바오의. 그것도 요즘 관광객들 많이 가지 않습니까? 사실은 거기 미술관에 소장품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건물을 보러가는 그런 효과도 좀 있는 것 같은데.
◆ 유현준> 맞습니다. 확실히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 박재홍>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 건축물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교수님의 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는데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때 교수님 이런 말씀하셨어요. “책 100만 권 소장한 큰 도서관을 하나 짓는 것보다 1만 권짜리 도서관 100개를, 1만 평짜리 공원보다는 1000평짜리 공원 10개를 만드는 게 낫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셔서 말씀하신 건지.
◆ 유현준> 일단은 우리가 건축을 모든 공간이 다 그렇듯이 접근성이 제일 중요한 거죠.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우리가 설악산 국립공원을 몇 년에 한 번밖에 안 가잖아요. 그러니까 크고 멀리 있는 것보다는 작더라도 멀리 있는 게 낫다.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가 마당이 있으면 자연을 많이 접했던 것처럼. 그래서 공원은 걸어서 한 15분 이내에 있어야 되는 거고요. 10분에서 15분 이내에 있는 게 맞고 그래야 사람들이 가죠. 안 그러니까 우리나라 공원에 가시면 은퇴하신 분들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이 갈 시간도 없고. 도서관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저는 특히나 공원이나 도서관 같은 경우는 공짜로 쓰는 공간이잖아요.
◇ 박재홍> 공적인 건물이고 공공재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
◆ 유현준> 그러니까 그게 공짜로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의미가 중요해요. 만약에 이 도시 안에 그러니까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돈을 내야만 쓸 수 있는 공간이 많거든요. 카페가 많잖아요.
◇ 박재홍> 맞아요.
◆ 유현준> 카페가 많은 이유는 벤치가 없어서거든요. 벤치가 가장 적은 돈으로 공짜로 머물게 해 주는 장치죠.
◇ 박재홍> 그러네요.
◆ 유현준> 벤치가 없어요. 제가 세어봤어요.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950m 구간에 벤치가 170개가 있는데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벤치가 3개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커피숍이 많은 동네가 서울이에요.
◇ 박재홍> 목동에는 커피숍 엄청 많습니다, 저희 회사 근처에도 지금 커피숍 엄청 많습니다. 공원이 바로 앞인데.
◆ 유현준> 그게 벤치와 공원과 도서관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생깁니다. 그러니까 돈을 내는 공간밖에 없다는 얘기는 돈이 많은 사람이 가는 공간과 돈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공간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은 5000원 내고 스타벅스를 가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저가 커피숍을 가잖아요. 10년을 같이 살아도 공통의 추억이 안 생기는 거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 지수가 올라 갈 수밖에 없죠.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로 봉합이 됐는데 그 이유는 국민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모래시계나 허준 같은 드라마를 통해서.
◇ 박재홍> 주몽 딱 보고.
◆ 유현준> 감정의 코드를 맞췄어요. 예를 들어서 최민수 씨가 모래시계에서 마지막 회에 죽으면 온 국민이 다.
◇ 박재홍> 나 떨고 있니, 다 그러는데.
◆ 유현준>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죠.
◇ 박재홍> 요즘은 OTT로 보고 넷플릭스에 가입할 수 없는 분들은 오징어게임 한꺼번에 같이 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 유현준> 다 다른 시간대에 보고 다른 프로그램을 보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되는 거죠.
◆ 김성회> 옛날 같으면 마을이 있어서 한 동네 부자도 살고 가난한 사람도 살고 어울려 사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우리나라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각각의 부동산 구할 수 있는 만큼의 지역에 다 서로 몰려 살게 돼버렸으니까 완전히 만나지 못하게 된 것도 맞는 말씀이시죠.
◆ 유현준> 중요한 건 도시의 1층에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강남구 같은 경우가 특히 제일 비싼 곳이라면 그곳이야말로 도서관과 벤치가 더 많이 필요한 공간이 되는 거죠.
◇ 박재홍> 그렇네요, 그런데 못 하니까요.
◆ 유현준> 그러한 것들은 사실 우리가 사실 이 시대에 우리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죠. 재건축도 있고 여러 가지 다시 한 번 판을 바꾸면서. 그건 생각을 하면서 디자인을 해야 되는 거죠.
◇ 박재홍> 그러네요. 도시 디자인 도시 재생 요즘 얘기 많이 하는데 그럼 도시 재생이나 도시디자인도 어떤 양극화 얘기하지만 양극화와 해결과 또 사회 소통 통합을 메시지를 건물 안에 담을 수 있군요, 환경에도.
◆ 유현준> 그렇죠. 사실 건축디자인이라는 것은 관계를 디자인 하는 거거든요.
◇ 박재홍> 관계를 디자인한다.
◆ 유현준>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공간이 사람을 더 화목하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떤 공간은 사회 갈등을 더 부추기는지 이런 걸 생각을 해야 되는 겁니다.
◆ 진중권> 질문 있습니다. 아주 궁금한 건데 지금 최근에 지어진 한국 건축물 중에서 교수님이 보실 때 이건 괜찮다. 제일 좋아하시는 건축물.
◇ 박재홍> 나의 인문학적 철학과 유사하다.
◆ 유현준> 저는 제가 볼 때 제가 좋아하는 건물이 하나, 전라도 광주에 있는 아시아 문화의 전당 그 건물 좋아합니다.
◇ 박재홍> 어떤 점이 좋으신가요?
◆ 유현준> 일단 그 건물은 예를 들어서 보통 그 정도 규모의 건물이라고 하면 대개 도시 내에서 엄청난 볼륨을 차지하면서 과시를 하잖아요.
◆ 진중권> 그렇죠.
◆ 유현준> 그런데 그 건물은 땅에 묻혀 있어요, 거의. 주변에서 이게 건물의 형태가 뭔지 잘 안 보여요. 그리고 되게 다양해요, 그 만드는 공간이.
◆ 진중권> 그 건물을 지을 때 그걸 제가 옹호하러 광주까지 내려가서 지역에서 반대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 유현준> 굉장히 지금도 반대가 많아요.
◆ 김성회> 그리고 전남 도청 건물도.
◆ 진중권> 뿌듯하네. 내가 옳은 일을 한 거구나.
◆ 유현준> 좋은 일 하신 겁니다.
◇ 박재홍> 갑자기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고. 두 분이 통합을 이루어주셨습니다. 뭔가 깊이가 있고 뭔가 좀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었는데요.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건물을 봐도 그냥 보지 않는 나만의 관점. 또 나만의 시각을 배운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간 「인문건축기행」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유현준 교수님 고맙습니다.
◆ 유현준>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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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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