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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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배우 이순재
◇ 박재홍>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서 이분이 나온 드라마는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허준, 사랑이 뭐길래, 엄마가 뿔났다,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67년 차 연기 인생 우리 이순재 선생님이 이번에는 여든아홉,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로 연출에 도전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자리에 모시고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순재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 이순재> 반갑습니다.
◇ 박재홍> 반갑습니다.
◆ 이순재> 수고 많으십니다.
◇ 박재홍> 영광입니다.
◆ 이순재> 감사합니다.
◇ 박재홍> 영광입니다. 저희 원래 방송 마치면 사진을 찍는데 오늘은 저희가 한판승부 시작한 지 처음으로 방송 시작 전에 사진을 찍고. 우리 선생님 또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애청자분들께서 굉장히 반가워하시는데 여든아홉이라는 나이, 이제 구순을 앞두셨는데.
◆ 이순재> 그렇게 됐네요.
◇ 박재홍> 연출에 도전하게 되신 이유랄까요.
◆ 이순재> 이번 작품이 연출을 도전한 건 아닌 거고 그전에도.
◇ 박재홍> 몇 번 하셨죠?
◆ 이순재> 많이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 중반에 극단 사조가 조금 저거했을 때 도와달라고 해서 제가 가서 한 세 작품 연작으로 연출을 한 적이 있고 수전노라든지 또 환상살인 그다음에 가을소나타 이런 것들을 연출을 하다가 내 일이 바쁘다 보니까 연출이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내 일 하다가. 그다음에 서울대 동문들이 관악극회라고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쭉 해마다 공연하고 있는데 그때 두 번째 우연으로 아서 밀러의 시련, 크루시블 그걸 제가 연출한 적이 있고 이 작품이 워낙에 제가 좋아해서 이거 한번 좀 해 보자 그래서 왜 그랬냐면 가끔 여러 극단에서 여러 형태로 많이 했습니다. 다 알려진 작품이고 일반화된 작품인데 학교에서도 이제 학생들이 시합하는데 공들인 작품들이고 이걸 학부 4학년 되고 과천대학에서 1년 동안 못 했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문에 발표를 못 했는데 하다 보니까 체호프가 아니더라고요.
◇ 박재홍> 안톤 체호프.
◆ 이순재> 정말로 세계 4대 문화에 속하는 작가인데 그 작가의 집필이라든지 문학이라든지 그 작품 속에 든 철학이라든지 사상 이런 것들이 상당히 깊더라고요. 이걸 한번 오리지널 그대로 한번 해 보자 이 뜻입니다. 고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을 해서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고 새로운 해체도 할 수 있는데 원작 이상이 없습니다. 우리 경험을 봤을 때. 제가 재작년 말에 리어왕을 한번 해 봤는데 그것도 오리지널 3시간 20분이에요. 셰익스피어도 그 이상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후학들이 재간을 암만 부려봤자 그 경지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 박재홍> 원작 그대로.
◆ 김성회> 그 원작 그대로 기획부터 선생님께서 다 준비를 하신 겁니까?
◆ 이순재> 제가 발상을 하고 그다음에 우리 젊은 제작사들 만나서 야, 이걸 원작 그대로 한번 해 보자하고 서로 동의를 하고 합의해서 그 대신 그동안에 연극을 다른 연극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연출자 우선하는 경우가 많아요. 형식이 있어서. 그래서 원작이 줄어들거나 2시간 10분에서 20분 정도 갑니다. 다 잘라버린단 말이지. 그다음에 한 배우의 대사가 대본을 석 장씩 넘어가는데 어마어마합니다. 거기 독백, 방백 배우가 다 끼니까 배우의 연기술이 우선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 없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배우의 연기력도 십분 발휘하고 배우 중심의. 왜, 연극은 배우의 예술입니다. 우리가 흔히 세 장르를 얘기를 하는데 영화는 감독의 예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이건 제가 한 얘기가 아니에요.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한 얘기예요.
◇ 박재홍> 연출만 하시는 겁니까? 이번 작품에? 직접 출연도 하시는 겁니까?
◆ 이순재> 작품이 있어서 그것도 역할 분담을 아마 우리 주호성 씨랑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 김성회> 그렇게 많은 대사를 해야 되고 배우들을 그러면 직접 캐스팅을 하신 캐스팅 과정은.
◆ 이순재> 캐스팅은 제가 직접 관여를 안 했습니다. 제작사 측에서 캐스팅해라, 왜냐하면 제가 캐스팅하면 인근에 가까운 아이들을 하다 보니까 그 공정성을.
◇ 박재홍> 공정? 우리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 이순재> 또 하나는 책임 회피도 하려고.
◇ 박재홍> 혹시 잘 안 됐으면 너희들이 뽑았어야지.
◆ 이순재> 덜 된 배우를 데려와서 역할을 망쳐놓으면 안 되니까.
◇ 박재홍> 연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참 궁금하거든요. 연기 지도 이상일 것 아니겠습니까? 같이 연습도 해야 되고.
◆ 김성회> 선생님들 앞에서 연기하면 기죽어서 어디.
◇ 박재홍> 대선배님 앞에서.
◆ 이순재> 아니, 뭐 이제 우리 작업은 노소가 없어요. 같이 어울려서 같은 분위기에서 같이 해야지.
◇ 박재홍> 수평적으로?
◆ 이순재> 나이 먹었다고 해서 뒤쪽에 앉고 옛날에 그랬어요.
◇ 박재홍> 옛날에는 그랬는데.
◆ 이순재> 우리 학생 때 최고 위가 저 안에 계십니다. 차려서 문 밖에. 가서 인사 드리기도 어렵죠.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게 경륜에서는 하나의 권위인데 그런데 요즘은 나이 먹었다고 해서 권위를 내세울 그런 시기가 아니에요. 또 그건 우리 젊은 친구들이 별로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요. 인정하지도 않아요.
◇ 박재홍> 그걸 또 다 받아들이시고 현실에서 적용하시는 게 놀라운 거 아닙니까?
◆ 이순재> 당연하죠. 그래서 우리라고 하면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에 공동작업 분위기가 좋아야 됩니다. 거기서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그리고 한 20여 명이 지금 모여 있으니까. 전부 더블캐스팅입니다. 20여 명이 어울리니까 서로 갈등도 있을 수 있는데 다행히도 전부 작품이 무겁고 어려우니까 거기 집중하다 보니까 그런 잡념들은 다 없어진 거예요.
◇ 박재홍> 그렇군요.
◇ 박재홍> 작품 얘기도 했으면 좋겠는데 작품이 어떤 내용이고 간단하게 그다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지.
◆ 이순재> 이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시대적 배경을 봐야 됩니다. 이 작가들의 시대적 배경, 제정 러시아 말기입니다. 안톤 체홉을. 그다음에 정치, 역사, 문화, 교양, 천문, 지리 다 터득한 작가예요. 보통 작가가 아닙니다. 이미 갈매기에 담배의 해독 얘기가 나와요, 100년 전에. 나보고 담배를 피지 말란 얘기죠. 그래서 믿지 말라니까 그러니까 의사가 그럽니다. 의사가 바로 체홉입니다. 체홉이 의료업을 했으니까. 담배하고 술 먹으니까 당신 다른 모습이 떠오른단 이거예요. 당신 모습이 없어진다 이러면서 금주 요구했는데 정말로 그런 모든 것이 다 담아서 이 시대적 상황에서 체홉이 생각해낸 게 뭐냐 하면 러시아 말기에 거의 부패하거나 무능한 제정이었어요. 그 밑에서 서민들이 일반층이 크게 고생을 합니다. 먼저 일어난 게 농민혁명이에요.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거예요. 갈아보자는 소리는 못하고 그게 못 살겠다고 아우성만 치는 건데 체홉이 지식인에서 중간에서 봤을 때 이게 연민이 가는 거에요. 그래서 체홉이 늘 작품 속에서 주장하는 게 환경보호입니다. 그 다음에 인권입니다. 이 작품에도 작가의 입을 통해서 자기 희망을 얘기하는 게 나는 인간의 권리와 인권과 뭘 위해서 작품을 소개시키고 싶은데 나는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는데 이 작품은 결국은 뭐냐 하면 체제의 변형입니다. 안톤 체홉의 4대 희곡이 벚꽃동산, 세자매 그다음에 바냐아저씨 이 4개가 있는데 대표작입니다. 거기에 보면 거의 다 체제예요. 벚꽃 넘어가는 건 체제 붕괴를 상징하는 거예요. 정론을 얘기하면 붙들려 들어가니까 희극이라고 위장을 한 거예요. 그래서 한때는 이걸 코미디화라고 들었어요. 전부 비극입니다. 이 작품은 이 체제하에서는 젊은이들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며 설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이 양반이 대단한 작가이냐 하면 어떤 정치권을 형성해서 직접 정론할 수 있는데 한 가정의 얘기예요.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와 아들, 연인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들.
◇ 박재홍> 그 가정의 모습을 메타포, 상징을 해서 보여주는 거군요.
◆ 이순재> 그렇죠. 보여주고 가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기도 보면 엄마, 잘 나가는 엄마와 작가지망생 아들 그다음에 작가지망생 젊은 아가씨 그다음에 어머니가 데리고 있는 촉망받는 작가. 이건 데리고 같이 사는 거예요. 연인 관계예요. 그런데서는 젊은이의 아들로서. 그런데 아들은 벌써 작품 제시가 이미 한 달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게 놀라운 게 이때만 해도 이게 사실 연기의 기본이기 때문에 이미 그후에 몇십 년 후에 나올 수 있는 메소드 연기, 반극 이걸 벌써 전개하고 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아들이 쓴 희곡이 그런 거예요. 그래서 아들이 하는 얘기가 이건 낡았다, 우리 어머니가 하는 건 매일 밥 먹고 연애나 하는 사랑하는 낡은 얘기이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겠다 새로운 형식이 바로 개혁입니다. 이런 것이 작품 속에 그 가운데 다 함축되어 있는 거예요.
◇ 박재홍> 놀랍네요.
◆ 이순재> 이것을 제대로 표현했을 때 체홉이 바로 이런 작가구나 한때 일부는 축소해서 희극을 했어요. 이 희극을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원래 당의 국가에서도 30대 때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희극이라고 명제를 붙였으니까 초연할 때 희극을 했어요. 망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스타니슬랍스키 사실주의 이론의 대가죠. 이 양반이 보고서 아이, 이건 아니야 이건 정극으로 가야 돼. 그래서 대성한 겁니다. 그래서 체홉이 이어서 작가로 유명한 걸작들을 내기 시작한 바로 이 작품입니다. 그래서 다른 작품도 보면 지식으로서 그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그 서민들의 그 어려움, 궁핍 여기에 대한 많은 연민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뭐 있겠는가 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뭐냐 하면 개혁이다 그런데 이 공교롭게도 혁명과 맞물렸던 거예요. 물론 체홉은 공산주의냐 그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그 당시에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소위 막스의 자본론. 그게 뭐냐 하면 무산대중, 노동자, 농민, 못 사는 소시민 다 잘 사는 사회다. 일종의 유토피아입니다. 그 이유가 앞으로도 계속될 희구해야 될.
◇ 박재홍> 방향이겠죠.
◆ 이순재> 조건이 바로 그겁니다. 다만 레닌은 그런 정신을 가지고 했는데 스타인이 들어서서 히틀러가 된 바람에 남아 있는 집단이 그런 의미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그 자체는 유토피아 형상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체홉도 그런 의미에는 동의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체홉 생각도 뭔가 어려운 사람들 못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 뭔가 좀 나은 조건 이거를 희곡에서 이 작품에서 담아낸 겁니다.
◇ 박재홍> 이순재 선생님이랑 러시아 문학사, 러시아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하시면서 갈매기 안에 어떤 관습의 벽에 부딪힌 젊은이의 좌절을 연극을 되풀이하시면서.
◆ 이순재> 그런 작품이죠.
◇ 박재홍> 2023년 우리 젊은이들의 삶도 좀 투영돼 있을까요?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 이순재> 글쎄요. 우리 젊은이 측이 그런 상황은 체제에서 전쟁 체제에서 통제된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마음 놓고 분투할 수 없는데 지금은 다 열린 사회고 다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제적 상황이라든지 우리가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방향, 바라는 목적 이걸 이루기 위해서 조금 더 힘이 든다는 얘기인데 제가 한 가지 희망을 갖고 있는 건 우리 젊은이들이 나는 한마디로 종족이 개량됐다고 봅니다.
◇ 박재홍> 종족이 개량됐다.
◆ 이순재> 여기 보면 지붕뚫고 하이킥에 나왔던 우리 진지희라고. 지금 24살짜리 아이에요.
◇ 박재홍> 진지희 씨. 빵꾸똥꾸.
◆ 이순재> 그런데 잘해요. 왜냐하면 옛날 같으면 못 해요. 욕을 하고 두들겨 패도 못해요. 그런데 그다음에 내가 뭐냐 하면 이건 배우의 예술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런 조건과 의미 해석은 내가 다 해 줬지만 표현은 너희들이 해라, 프로 아니냐. 배우 예술성을 살려라 해서 여지를 많이 줬어요. 그런데 잘 해내요. 그런 게 우리 젊은이들 지금 조건의 변화입니다.
◇ 박재홍> 얼마 전에 장나라 씨도 선생님 현장 방문했다고 기사도 나왔던데 보면 젊은 배우들과 젊은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은 연세가 있으시고 경험이 많으면 젊은, 어린 친구들이 하는 게 못마땅하고 고쳐주고 싶고 막 불편하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전혀 그런 게 없으신가 봐요.
◆ 이순재> 없어요. 왜냐하면 얼마나 예쁩니까?
◇ 박재홍> 예쁘다.
◆ 이순재> 정말 예쁘고 정신 멀쩡한 애들입니다.
◇ 박재홍> 정신 멀쩡한.
◆ 이순재> 아니,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 수업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옛날 한 달 걸렸던 게 보름이면 다 돼요. 그만큼 달라진 겁니다. 그다음에 세계 인류가 나오고 있잖아요.
◇ 박재홍> 대한민국에서.
◆ 이순재> 젊은이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소위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 주고 뒷받침만 해 주면 얼마든지 글로벌 스타가 다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에요, 각 분야에서.
◇ 박재홍> 더 잘할 수 있다.
◆ 이순재> 나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선생님께서 수많은 꼰대들에게 꼰대들아, 스스로 알아라, 꼰대가 되지 않는 법 어떻게 하면 꼰대가 안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
◆ 이순재> 꼰대는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돼요. 그다음에 어른 행세하려고 들지 말고.
◇ 박재홍> 이순재 선생님이 계시는데 어디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해요. 그렇죠?
◇ 진중권> 이 부분은 격세에 비슷하게 젊은 세대들은 바로 윗세대를 꼰대로 느끼고. 그 윗세대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고.
◆ 이순재> 사실 우리 때도 꼰대들이 있었어요. 우리 때 쓰던 말이에요.
◇ 박재홍> 원래. 꼰대는.
◆ 이순재> 그게 60년 잠복하고 있다가.
◇ 박재홍> 새롭게 다시 등장했는데.
◆ 이순재> 꼰대 안녕하시냐. 우리 때만 해도 아버지가 꼰대 짓할 때예요.
◇ 박재홍> 갑자기 요즘 꼰대가 부활을 해서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이순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분명하게 방향을 잡기 바랍니다. 인터뷰하신 내용을 보면 우리 선생님의 삶의 원동력은 미완성이다라고 하신 내용이 있었어요. 아직도 67년 차이시고 대한민국 대표 배우시고 수많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롤모델이신데 여전히 미완성이다, 어떤 의미였을까요?
◆ 이순재> 그거는 뭐냐 하면 우리의 작업이 예술, 일반 행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입니다. 그러니까 설사 드라마를, 이제는 할아버지밖에 할 게 없으니까 이 드라마에서의 할아버지나 저 드라마에서 할아버지나 똑같은 할아버지인데 다른 할아버지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공부를 하고 뭔가 만들어놓으려고 노력을 하는. 그러니까 항상 새로운 거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것들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예술은 완성이 없어요. 항상 걸작과 대작이 있을 뿐이지 그게 세계의 끝이다. 음악의 베토벤, 모차르트가 음악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끝은 아니잖아요. 그 당시 베토벤, 모차르트가 있어도 앞으로 얼마든지 제2, 제3의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우리는 어느 한때 훌륭한 배우, 훌륭한 예술가가 있었을 뿐이지 그게 그 예술의 끝은 아니고 완성은 아니다는 얘기예요.
◇ 박재홍> 그런 의미에서.
◆ 이순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있어서 도전이다 그다음에 정년이 없으니까.
◇ 박재홍> 정년이 없으니까 그게.
◆ 이순재> 자기만 잘 버티면 쫓겨날 일이 없단 말이에요.
◇ 박재홍> 그러네요. 걸작과 대작 말씀을 하셨는데요. 선생님, 67년 연기 인생 중에 걸작, 대작이라 할 만한 건 혹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랄까? 진부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마는.
◆ 이순재> 지금 기록을 보니까 젊은 때 한 게 다 없어졌어요. 언론 통폐합 이전 게 다 없어졌단 말입니다. tbc 것. 그것도 걸작이 많았습니다.
◇ 박재홍> 언론 통폐합 시절 때.
◆ 이순재> 젊었을 때 잘 나갔어요.
◇ 박재홍> 외람된 말이지만 정말.
◆ 이순재> 87년대 이후 언론 통폐합 이후. 공교롭게도 몇 십 년 벌써 80년대 지금 벌써 한 40년 대사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안 주더라고요.
◇ 박재홍> 그러셨어요?
◆ 이순재> 70년대 언론 통폐합 TBC에서 3번 다 제가 대상을 받았어요.
◇ 박재홍> 대상을 받으셨군요. 그 작품이 뭐였습니까, 선생님?
◆ 이순재> 제가 일일연속극 세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일일연속극. 이게 TBC 거예요. 우리 한운사 선생의 ‘눈이 내리는데’가 있는데 그다음에 언론 통폐합 이후에 KBS에서 최장수 1위 연속 우리 나연숙 작가의 보통 사람들. 그다음에 최고의 시청률.
◇ 박재홍> 최고의 시청률?
◆ 이순재> MBC 지금 보니까 재방을 하고 있더라고요. 보고 또 보고 임성한 작가의.
◇ 박재홍> 보고 또 보고는 정말 저희 부모님 세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 이순재> 최고의 시청률을 가지고 있는데. 수백 작품을 했기 때문에 그런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런데 내가 늘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는 연극은 제가.
◇ 박재홍> 연극 중.
◆ 이순재> 60년, 70년대 시라노 드 베르쥬락 연극을 했습니다. 시라노 드 베르쥬락. 코쟁이 얘기에요.
◆ 김성회> 대필 편지 써주는.
◆ 이순재> 대필 편지 써주는. 그 마지막에.
◇ 박재홍> 시라노 드 베르쥬락.
◆ 이순재> 그게 사촌 이야기인데. 사촌 여동생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용모가 그러니까 나서지 못하고 젊은 녀석이 하나 나와서 까불다가 이제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해서 붙여서 둘이 부부가 됐는데 그 검과 시, 검술과 시를 딱 하면 작가의 얘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원래는 에드몽 로스탕이라는 작가가 젊은 작가가 당시 불란서에 코클랭이라는 대배우가 있었습니다. 거기 헌정한 작품이에요, 그분한테. 그래서 꼭 코클랭 코클랭 이럴 정도로 정말로 그분을 위해서 쓴 작품인데 그게 대작입니다. 대사 600만 정도 되는 걸 내가 한 적이 있고 누가 평가를 하든 안 하든 나로서는 그렇게 기억하는 작품이거든요. 그다음에 드라마로서는 KBS, TBC 어떤 것 이런 것 빼더라도 KBS 통합해서 풍운이라고 대원군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 박재홍> 대원군 역할.
◆ 이순재> 왜냐하면 대원군이 영고성쇠가 많은 인물입니다. 정말 드라마틱한 인물이에요.
◇ 박재홍> 그렇죠. 삶 자체가.
◆ 이순재> 그리고 상당히 인생에 대해서 외척이 싫어서 여주에서 연고 없는 며느리 삼았는데 그 며느리한테 쫓겨날 줄 누가 알았냐고. 그런 드라마틱한.
◇ 박재홍> 파란만장한 일들.
◆ 이순재> 그 작품을 하면서 내가 담배를 끊은 사람입니다.
◇ 박재홍> 이걸 하시다가요?
◆ 이순재> 왜냐하면 한 4분 스피치를 해야 되는데. 그러니까 사자후를 떠뜨려야 되는 거예요. NG 내면 안 돼요.
◇ 박재홍> 그래서 담배를 끊으신.
◆ 이순재> 그런데 담배 피우니까 목이 자꾸 걸리더라고요. 담배 끊자, 그래서 딱 끊었어요. 잘 끊었죠.
◆ 김성회> 그때 끊으시고 계속 끊으신 거예요?
◇ 박재홍> 67년째 또 연기 인생에.
◆ 이순재> 그거하고 그다음에 이제 오히려 MBC 와서 여러 작품을 많이 했는데 다른 좋은 작품들 많이 걸려서. 또 대표적인 건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가 그건 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은 작품입니다. 그게 공교롭게도 92년도 총선 때 막 걸린 작품이에요. 그전 가을서부터 시작한 게 그리로 넘어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65%의 시청률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종의 국민 드라마가 되다시피 했으니까. 상대방에서 클레임을 거는 거예요. 방송하지 말라고. 그런데 그 당시 시청자위원장이라는 양반이 와서 안 된다. 내가 당시 시청자 입장에서 온 거야? 정치적 입장에서 온 거요? 내가 상업이요. 그리고 이 작가는 나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한마디도 어드벤티지를 안 준 작가예요. 나도 대본대로 하지 한마디 덧붙인 게 토크쇼가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그래서 싸우다가 끝난 얘기가 있는데 그 작품도 역시.
◇ 박재홍> 사랑이 뭐길래.
◆ 이순재> 기억에 남는 작품이고.
◇ 박재홍>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김훈장 역할한 게 기억에 남는다고 에스더 님이 말씀을.
◆ 이순재> 토지?
◇ 박재홍> 토지.
◆ 이순재> 토지는 그거는 드라마이고 영화도 했어요. 제가. 영화도 했습니다. 영화도 했고 그때 김진미 씨가 연출을 하고 내가 아들 역할을 한 영화를 한 적이 있고.
◇ 박재홍> 저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대발이 아버님을 했을 때.
◆ 이순재> 그거 사랑이 뭐길래.
◇ 박재홍> 사랑이 뭐길래.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 이순재> 그게 사실 그런 인간정이 가족애가 깊은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양반을 바람도 안 피어. 돈도 아까울 뿐만 아니라 아이들 가족 애다 그런 것이. 다만 방식이 좀 강압적이어서 문제가 있지.
◇ 박재홍> 시청자 댓글도 대발이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어요. 배우 이순재 선생님 뵙고 있습니다. 그런데 67년 차신데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시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 진중권 작가님의 선배님이시라고 자랑스럽게.
◇ 진중권> 제가 철학 계열로 들어가서 미학과로 빠졌는데 선배님도 연기하신 거잖아요. 저랑 같은 계열.
◇ 박재홍> 연기를 어떻게.
◆ 이순재> 철학과 중에는 나밖에 없어요. 연기하는 사람이.
◇ 박재홍> 철학과에서?
◆ 이순재> 치과대학의 우리 신영균 선배, 이분들이 있었지만 우리 무대 쪽에는 내가 처음이에요.
◇ 박재홍> 그러시군요.
◆ 이순재> 그다음에 서경이라고 성악을 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1년 선배가 있었는데. 그 양반이 성악을 했었고 이제 직업을 완전히 전환한 건 나밖에 없는데 그것도 철학과니까 가능했어요.
◇ 박재홍> 철학과니까.
◆ 이순재> 원래 사실 나는 처음에는 원래 정치학과를.
◇ 박재홍> 정치? 어울리세요. 대원군.
◆ 이순재> 부산 시절에 내가 대전에서 청강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우리 다 동기들입니다. 그래서 다 시험 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시험 봤는데 또 떨어질 것 같아서 낮춰 간다고 한 게 철학과예요.
◇ 박재홍> 정말 잘하셨습니다.
◆ 이순재> 그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서학들이 다 계신 거예요.
◇ 박재홍> 철학과에.
◆ 이순재> 고영권 박사, 한때 철학의 대가입니다. 철학의 대가 우리 박종원 박사, 거의 다 석권이에요. 내가 와 보니까 내가 4년 동안 이 양반들의 체취만 맡아도 학교 다닌 보람이 있겠다. 왜? 고등학교 이거 때문에 다 날아가버렸어요. 고등학교 과정을. 풍비박산이 났으니까. 대학 4학년 열심히 다녔는데.
◇ 박재홍> 거의 마칠 시간이 돼서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이제 30초 남았어요. 광고 때문에. 우리 청취자나 시청자 여러분께 선생님의 연기인생 또 소망이랄까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그 말씀을 듣고 죄송하지만 마무리하겠습니다.
◆ 이순재> 지금 다 알고 계시는 정도로. 어떻게 마무리를 잘 해야죠. 할 때까지 하다가. 깨끗하게 끝나야 될 텐데. 끝까지 할 겁니다. 그래서 소망은 하다가 쓰러지는 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연기 현장에서?
◆ 이순재> 그런데 제작자는 망하지 잘못하다간.
◇ 박재홍> 대한민국 대표 배우인 이순재 선생님 뵙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더 열심히 연기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이순재>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십시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1/5(목) 이순재 "꼰대 되지 않는 법? 어른 행세 하지말라"
202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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