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5/3(금) 코딱지 대장 김영만 "어린이날? 얘들아 무조건 놀아라"
2024.05.03
조회 21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
■ 대담 :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씨

◇ 박재홍>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함께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새로운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야심차게. ‘한판근황’ 이분은 요즘 뭐 하고 계시지 하고 문득 궁금할 때가 있는데 추억 속의 인물들을 만나서 근황을 전해드리는 코너를 준비했고요. 어린이날이 다가와서 이분을 저희가 특별히 모셨습니다. 다행히 흔쾌히 저희 스튜디오에 오신다고 그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대한민국 아이들의 영원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 김영만> 안녕하세요.

◇ 박재홍> 장관님. 인사 나누시죠.

◆ 김영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무거운 정치 프로에 제가 와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 박재홍> 아닙니다. 프레시해요. 맑은 물을 지금 공급해 주고 계세요, 선생님.

◆ 김영만> 그래요?

◇ 박재홍> 그래서 굉장히 마음 편하게 선생님을 뵙습니다.

◆ 김영만> 오늘 하루 그냥 저랑 종이접기하고 놀죠,뭐.

◆ 진수희> 알겠습니다. 그런데 종이접기를 잘 못해서.

◆ 김영만> 다 못 하죠.

◆ 박성태>이 공기를 청저하게 만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 김영만> 감사합니다.

◇ 박재홍> 공기청정기. 그래요. 사실 세간에는 대한민국 종이접기계의 거장, 종이접기의 선구자다 이렇게 불리시기도 하는데 다시 한 번 선생님 한번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소개를 부탁드리면.

◆ 김영만> 지금 보고 듣고 하죠?

◇ 박재홍> 그렇습니다.

◆ 김영만> 코딱지 친구들, 지금 오늘 불금이죠? 저 여기 올 때 길 막혀서 많이 혼났거든요. 우리 친구들 파이팅. 건강하고 최고의 그런 지성인 되는 거 약속.

◇ 박재홍> 우리 선생님 말씀 듣더니 과거에 TV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추억하시는 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댓글로 많이 남겨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요즘 그런데 우리 선생님이 뭐하고 계시지, 뭐 하고 지내시나 많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일단 최근에 책 한 권 내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코딱지 대장 김영만 에세이 내셨고. 제목이 확 다가옵니다, ‘코딱지’.

◆ 김영만> 제목 아주 잘 정했죠?

◇ 박재홍> 아주 확 들어옵니다.

◆ 김영만> 저희 종이접기 하는 우리 동아리 회원들 단톡에 제가 공모를 했어요. 그중에서 저게 나와서.

◇ 박재홍> 방송은 최근에 많이 안 하시잖아요.

◆ 김영만> 그렇게 고정은 예전에 쭉 했었고 그런데 중간 중간 이렇게 예능 프로다, 다큐멘터리 프로, 이렇게 초대석 프로 그런 건 간간이 했고 그다음에 중간 중간에 그런 거 했고 그다음에 대학은.

◇ 박재홍> 강의.

◆ 김영만> 강의. 계속 초빙교수로 있고. 아이들 학점도 매기고. 그리고 전국의 종이접기 행사 이런 거 또 다니면서 친구들 하면 그 예전 엄마, 아빠들이 아기 데리고 와요. 얼마나 예뻐요. 그렇죠?

◆ 진수희> 예전에 아기들은 또 많이 커서 이 방송 들을 수 있겠네요.

◆ 김영만> 엄마, 아빠가 됐죠, 이미. 같이 뭐 200~300명씩 모아놓고 종이접기 놀이하고 그러고 그런 행사. 그다음에 이제 가장 많이 한 것이 청장년들 토크콘서트. 큰 회사의 직장인들 그다음에 대학교 축제 때 모아놓고.

◇ 박재홍> 대학교 축제 때도?

◆ 김영만> ‘얘들아 힘내라. 내가 있지 않느냐’, 이런 인문학 강의를.

◆ 진수희> 종이접기만 하시는 게 아니네요.

◆ 김영만> 네. 제가 공부를 좀 했거든요. 농담이고요.

◆ 박성태>삶에 활력을 주시는. 자꾸 코딱지 얘기해서 그런지 제가 코가 간지러워서.

◇ 박재홍> 파세요, 그럼.

◆ 박성태> 파블로프의 그런 것과 비슷한 건가.

◇ 박재홍> 그런데 원래 우리 선생님께 종이접기 세계에 들어가시기 전에 평범한 회사원이셨다고 들었습니다.

◆ 김영만> 네, 저는 미대를 나왔고 고등학교도 미술 전공하는 예고를 다녔어요. 그리고 다 졸업하고 큰 회사에 디자이너로 들어가서 어깨에 힘주고 충무로 바닥을 머리카락 휘날리면서 광고 시안, 광고, 이런 거 다 하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진급을 시켜서 갑자기 과장이 되니까 할 일이 없는 거예요.

◇ 박재홍> 6년차에 과장.

◆ 김영만> 과장이니까 그냥 우리 밑에 직원들이 시안한 걸 들고 와서 부장한테 결재 받는 게 일이야.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냥 객기를 부렸죠. 그럼 나와서 나도 기획 사무실 하나 낸다. 그렇게 나와서 아주 요즘 코딱지 친구들 말로 개고생 했죠.

◇ 박재홍> 요즘이야 창업, 창업해야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 소위 말해 창업을 하신 거잖아요.

◆ 김영만>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쉽게 창업 됐으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안 앉죠. 그게 망했으니까 제가 오늘 이렇게 왔지. 그게 창업을 해서 잘됐으면 이렇게 우리 멋진 분들 못 만났죠. 특히 우리 박재홍 아나운서님.

◇ 박재홍> ‘한판승부’ 팬이라고 하셔서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 김영만> 박재홍 아나운서도 옛날에 코딱지 아니에요?

◇ 박재홍> 맞습니다, 저 코딱지였어요.

◆ 김영만> 앞에 놓고.

◇ 박재홍> 알겠습니다. 코딱지로서. 어떻게 종이접기 세계에 들어가신 거예요, 처음에. 종이접기 세계에 어떻게 처음에.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야 되겠다.

◆ 김영만> 아까 얘기대로 폭망을 해서.

◇ 박재홍> 개인사업 폭망해서.

◆ 김영만> 그래서 되는 게 하나도 없을 때 일본에 친구가 있었어요.

◇ 박재홍> 일본에.

◆ 김영만> 그래서 일본의 친구가 ‘야, 너 거기서 그렇게 머리 아파하지 말고.’ 돈 관계가 얽혔으니까 더 진하게 얘기하면 부도까지 나오는데 거기까지는 안 가고. 일본을 갔어요. 가서 걔네 집에 있는데, 두 부부가 둘이 같이 맞벌이를 하니까 애를 유치원을 데려가는 걸 매일 싸움하는 거야. 네가 가라, 내가 가라. 야, 내가 갈게. 이러고 그 여름에 반바지 입고 애 손 잡고 유치원 덜렁덜렁 슬리퍼 신고.

◇ 박재홍> 친구 아이를 데리고.

◆ 김영만> 데려다주고 며칠을 그렇게 하니까 이게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수업을 하나. 그래서 들여다보니까.

◇ 박재홍> 일본 유치원.

◆ 김영만> 5살짜리 여자애가 학 접기를 해요. 학 접기.

◆ 진수희> 되게 어려운 거죠.

◆ 김영만> 굉장히 난이도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애들도 당연히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귀국을 했어요. 한참 있다 한 한두 달 있다가. 그리고 이제 할 일이 없으니까 그때 종이접기가 살짝 생각이 나서 저희 집 주변의 유치원을 갔어요. 그래서 유치원 가서 물어봤어요, 선생님한테. 종이접기 하냐. 안 해요. 왜 안 하냐? 커리큘럼이 없어요. 커리큘럼 그러니까 교육계획안 자체가 없는 거예요, 종이접기라는 게.

◆ 진수희> 그게 몇 년도예요?

◆ 김영만> 그게 80년대일 거예요. 80년, 82년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러니까 거의 유치원이나, 그때는 어린이집이 없었거든요. 그림만 그리고. 그런데 이제 그림 그리는 건 1D잖아요. 종이접기는 3D예요.

◇ 박재홍> 3차원, 3차원.

◆ 김영만> 모양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 진수희> 입체적이니까.

◆ 김영만> 너무 화가 나더라고. 진짜예요. 이게 세상에 내가 봤던 그 일본의 5살 아이, 대한민국의 5살 아이 똑같이 성장하는, 경쟁적으로 올라가는데.

◇ 박재홍> 유치원 한일전.

◆ 김영만> 사명감을 요만큼 갖고 일본을 다시 갔어요.

◇ 박재홍> 다시?

◆ 김영만> 자료 가지러.

◇ 박재홍> 종이접기 자료를 가지러.

◆ 김영만> 도대체 얘네들은 뭘 갖고. 종이 접는 걸 다 사다가 집에서 다 펼쳐놓고 줄 쳐가면서 그 종이접기 기본과 그다음에 이제 어떻게 하면 되고 난이도는 어떻고 저학년용, 고학년용. 이걸 한 달 동안 앉아서 돈을 안 벌고.

◇ 박재홍> 돈은 안 벌고.

◆ 김영만> 우리 집사람이 난리 났죠, 돈을 안 버니까. 그러고 이제 그걸 다 하고 싹 걷어치우고 백지 놓고 나의 종이접기를 만드는 거예요. 내 거. 내 걸 만들어야지.

◇ 박재홍> 김영만 선생님의 종이접기.

◆ 김영만> 그리고 연구를 하기 시작을 했죠.

◇ 박재홍> 그런데 그게 연구를 한다고 해서 종이를 바라본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어떻게 연구하신 거예요? 다양하게 접어보시고?

◆ 김영만> 그러니까 이게 뭔가 있으면 그게 걸리적거려요. 아예 없을 때 그 창의적인 그게 생각이 많이 나요. 제가 그걸 몇 번을 경험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이 나이에 밤에 자다가 생각나면 얼른 일어나서 종이접기 하고. 펴놔야 돼. 그래야 이게 내 게 되니까. 저희 집은 화장실, 침대 머리맡, 자동차 안, 색종이, 풀, 가위는 무조건 있어요. 운전하고 가다가 뭐 생각나면 얼른 또 만들어놓고. 그래서 만들고 쌓이고 하다 보니까 대학 노트에 그림 그려서 쭉 모아놓은 것이 TV유치원 때부터 왕창 모여져서 인터뷰 할 때마다 그거 보여 달라 그러는데 천만다행히도 여기는 보여 달라는 소리 안 해서 다행이에요.

◇ 박재홍> 안 보여 달라고 하겠습니다.

◆ 박성태>아니, 종이를 딱 보고 이놈 가지고 팬더를 만들어봐야 되겠다. 그러면 이 면을 어떻게 접고 여기는 자르고 이런 게 머릿속에 떠오르시는 거예요?

◆ 김영만> 그럼요. 그게 이렇게 머릿속에서 그려져요.

◆ 진수희> 그러니까 특별한 DNA와 탤런트가 타고나신 거지.

◆ 김영만> 그래요?

◇ 박재홍> 그러니까요.

◆ 김영만> 손으로 옮기면 돼요, 저는. 그런데 희한한 게 지금 얘기 들은 팬더를 생각나서 접잖아요. 그러면 거의 완성됐는데, 또 다른 게 생각나. 그러면 여기를 옆에다 놓고 그것도 해야 돼. 그리고 또 생각나면 이것도 옆에 놓고 미완성이에요. 그리고 또 해요. 거의 뭐 빠져서 저 자신이 굉장히 뭐라 그럴까. 만들어놓고 저 혼자 웃어요. 너무 좋아서.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나한테 맞아서. 안 맞으면 안 하잖아요.

◆ 진수희> 그럼요.

◆ 박성태> 80년대 초반이면 그때는 종이접기가 유행이 아니었어요.

◆ 김영만> 완전히 황무지였어요.

◆ 박성태> 그런데 ‘1000번을 접어야만 학이 되는 사연’이 나오기 전까지는 잘 안 접다가 전영록 씨의 노래가 나온 뒤로 그다음부터 이제 여고생들이 학을 접기 시작했거든요.

◆ 김영만> 올해 몇인데, 그거 상당히 오래된. . .

◇ 박재홍> 생각보다 연식이 좀 있으세요.

◆ 김영만> 그래요?

◆ 박성태> 연식이 있습니다.

◆ 김영만> 이따가 이거 끝나고 민증 한번 까죠.

◆ 박성태> 아니, 제가 설마 더 많을 거라고 보시는 건 아니죠?

◇ 박재홍> 그런 건 아닙니다.

◆ 김영만> 맞아요.

◆ 박성태> 그리고 도화지는 일단 가격 대비 200원짜리 하나 사면 한 장에 뭐 10원, 20원인데, 이걸 1시간 놀 수 있잖아요. 색종이는 이걸 가지고 여러 번 접다 보면 소모가 큽니다. 그래서 약간 종이 접으려면 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당시에 80년대 초반에는. 그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방송에서 KBS 등 진출하셔서 종이접기를 많이 하셨는데. 당시 PD들이 ‘1년 전에 했던 건 애들이 다 잊어버려서 한 번 다시 똑같은 거 하셔도 된다’ 그랬는데 항상 새로운 아이템으로.

◆ 김영만> 제가 처음 방송을 처음 녹화를 1988년도 아마 10월 21일인가 그건 제가 기억을 하는데.

◇ 박재홍>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 김영만> 그때 이제. 저 자신과의 약속한 게 있었어요. 절대 똑같은 건 안 나간다. 그건 나의 자존심도 걸려 있었고 그리고 또 자신만만했던 게 만들어놓은 게 많았었어요. 연구해 놓은 아이템이.

◇ 박재홍> 격납고에 아예 쌓여 있었구나.

◆ 김영만> 그러니까 이제 얼마든지 자신 있는 거야. 그럼 나하고 약속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1년 전에 한 걸 기억을 해요. ‘오, 저게 옛날에 했던 건데.’ 그 소리가 듣기 싫은 거야. 내가 선생님, 어른 입장에서. 그래서 항상 새로운 걸 했는데 이제 어느 날 갑자기 아이템이 다 떨어져서 병 걸렸잖아요. 우울증 걸려서 상당히 애를 먹었어요.

◇ 박재홍> 그러셨어요?

◆ 김영만> 그런데 우리 PD님들은 그거 모르죠. 이번에 에세이집에 그러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그때 저랑 같이 일했던 PD님한테 책을 보내드려서 보고 나서 문자가 왔는데.

◇ 박재홍> 이렇게 힘드신지 몰랐다.

◆ 김영만> ‘선생님은 천재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그래서 뭐 미안해. PD님은 PD님 일 한 거고 저는 제 일 한 거고 그거죠.

◆ 진수희> 그렇게 아이디어나 이런 게 약간 고갈?

◆ 김영만> 그렇죠.

◆ 진수희> 그랬다가 다시 이렇게 올라오신 건가요?

◆ 김영만> 그게 한 번 심한 고통이 있은 다음에는 경지에 들어서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팩스로 대본이 오면 그 당시에는 팩스를 많이 썼거든요.

◇ 박재홍> 그렇죠, 그렇죠.

◆ 김영만> 제목만 보면 막 떠오르는 거야.

◆ 진수희> 그때가 슬럼프 기간이셨나 보다.

◆ 김영만> 그리고 가방 들고 준비도 안 하고 그냥 가요. 그래서 바로 큐 하면 그냥 앉은 자리에서 만들었으니까. 그게 그렇게 경지에 올라가더라고요. 저도 몰랐어요.

◇ 박재홍> 대단하십니다.

◆ 김영만>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을 또 다 방송하기는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고 하니까. 어려운 건 또 못하고 그다음에 또 그 프로의 전체 20분짜리에 제가 한 5분 정도밖에 안 나가니까 ‘친구들 안녕하세요’ 하면 벌써 1분. ‘색종이 준비하세요’ 하면 1분. 접으면 뭐 2~3분이면 끝내야 돼. 그러니까 맨날 책상 밑에서 ‘친구들 미안해요, 미리 만들어왔어요’ 하고 조립하죠. 욕 많이 먹었어요, 미리 만들어 왔다고. 자기네도 따라 해야 되는데.

◇ 박재홍> 우리 선생님께서, 이제 어린이날 내일모레지 않습니까? ‘요즘 아이들 너무 불쌍하다’, 이런 말씀하셨잖아요. 부모님들께 우리 아이들 어떻게 좀 대하라, 한 말씀만 해 주시면.

◆ 김영만> 길게 얘기하면 또 안 되니까 편집. 편집은 아니죠. 길게 하면 뭐 하니까 간단하게 얘기해서.

◇ 박재홍> 3분.

◆ 김영만> 공감이에요.

◇ 박재홍> 공감해 줘라?

◆ 김영만> 아이들 키높이에 맞춰서, 아이들 키 높이만큼 눈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라는 얘기죠. 그건 물질적인 게 아니고 마음적으로. 그렇게 공감을 가져야 아이와 소통이 되고 그 아이들의 어떤 성격이나 이런 걸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그걸 한번 이렇게 해 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끈기를 가지고. 저는 엄마들 모아놓고 엄마들 그 인문학 강의할 때 ‘어머니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늦은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자기 전에도 같이 이렇게 앉아서 얼굴 보고 한 번씩 웃고 말 안 해도 돼요. 그리고 자는 시간을 가지면 그다음부터는 아이의 속마음이 다 나와요.’ 그 아이들, 유아 심리에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너무 아이들을 무시하고 ‘야, 내가 엄마, 아빠니까 너는 내 말 들어야 돼.’ 이거는 교육이 아니라 거의 폭행이에요.

◇ 박재홍> 제가 반성했어요, 지금. 그러니까 아이들 눈을 마주치고 소리. . .

◆ 김영만> 요즘 아이들 얼마나 불쌍해요. 놀이터도 없지 어른들은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데 그 놀이터 만드는 데 가보세요. 그네, 미끄럼틀 이런 거밖에 없잖아. 모래사장이 있어야 돼요. 그게 신체활동 영역이거든요. 우리 옛날에 모래사장 가면 서너 시간씩 놀았잖아요.

◆ 진수희> 모래밭에서 놀면 옷 더럽혀지고 더럽혀지니까 못 놀게.

◆ 김영만> 그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아이의 스트레스나 이런 것들이 자꾸 엄마가 쌓아주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가 이제 이렇게 약간씩 비뚤어지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존댓말, 우리 집에서는 ‘존댓말 해야 돼’ 해 놓고 그 7살 아이한테 ‘진지 드세요’, 이런 거 가르쳐. 그거 참.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그거 존댓말 같은 건 크면서 배우는 거 아니에요? 학교에서도 배우고 다 배우잖아요. 그리고 안 가르쳐줘도 아이들이 여행 가면 다른 어르신 만나면 꼭 존댓말 하잖아. ‘야’, 이러냐, 어른한테?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쩌고저쩌고 존댓말 쓴다고. 굳이 그걸 집에서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궁전의 뭐 그런 것처럼.

◇ 박재홍> 헨젤과그레O님이 ‘황희찬 선수가 배웠다는 스승, 접기의 달인 김영만 선생님 반갑습니다.’ 황희찬 그 축구 선수죠, 영국의. 그 선수도 우리 선생님. . .

◆ 김영만> 돌아왔어요?

◇ 박재홍> 돌아온 건 아니고 접기 배웠다. 수많은 제자들이.

◆ 김영만> 그랬구나.

◇ 박재홍>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됐어요.

◆ 김영만> 감사합니다. 황희찬 선수. 사인 하나 해서 보내. . . 감사합니다.

◇ 박재홍> 우리 애청자 여러분들이 ‘성격이 워낙 호탕하시고 유쾌하셔서 전혀 늙지 않으시고 젊으신 것 같다’라는 말씀 주셨는데. 한 1분 남았는데요, 선생님. 이제 부모님을 위한 말씀. 눈 맞추면서 아이들 키워라 말씀 주셨는데 요즘 아이들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우리 아이들에게 또 희망이 될 수 있는 말씀 전해 주시면서 마무리할게요.

◆ 김영만>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어른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한테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너무 힘들고 그 할 말을 다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어른이 돼야 돼요. 저는 어른 되기 싫은 거예요. 아이들은, 저는 아이들한테 거의 친구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어디 이렇게 강의 가면 애들 강의 가면 애들이 발로 차고 옷 잡아당기고 머리 무스 발라놨는데 막 하고 도망가고. 그게 다 친구 같으니까 친구로 대하는 거라 그래서 우리 한마디 딱 하면 ‘얘들아, 놀아라’예요.

◇ 박재홍> 얘들아 놀아라.

◆ 김영만> 놀아라, 무조건.

◇ 박재홍> 가장 행복한 말이네요.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서 ‘한판승부’, 또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선포합니다. 얘들아, 놀아라. 이 메시지 전하면서 오늘 인사드리겠습니다. 영원한 코딱지 대장님 김영만 선생님 고맙습니다.

◆ 김영만> 감사합니다.

◆ 진수희> 반가웠습니다.

◆ 김영만> 건강하세요. 우리 민증 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