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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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FM 98.1 (18:00~19:3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
■ 대담 :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
◇ 박재홍> 저희 ‘한판승부’ 시즌2, 가장 야심찬 코너 중의 하나인 ‘한판근황’. 이 사람이 궁금하다. 이 사람 지금 뭐 하실까. 한판 근황에 어울리는 분을 저희가 열심히 찾고 있는데, 그중의 한 분으로 섭외가 된 분입니다. 지난 월요일 국내 우주항공 정책을 총괄할 우주항공청 공식 출범했는데요. 약 16년 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첫 번째 우주인을 배출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우주인 후보로 1위로 뽑혔던 분이세요. 현재는 산업단지, 산단에 미친 남자다, 이렇게 소개해 달라고 말씀 주셨습니다. 고산 대표 어서 오세요.
◆ 고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재홍> 우리 두 분.
◆ 진수희> 안녕하세요.
◆ 박성태> 안녕하세요.
◆ 진수희> 처음 뵙는데, 반갑습니다.
◆ 고산> 반갑습니다.
◆ 박성태> 저도 뭐 하시나 계속 궁금했었어요.
◇ 박재홍> 그랬어요?
◆ 박성태> 이달 초부터 궁금하더라고요.
◇ 박재홍> 이달 초부터. 그래서 좀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세요. 요즘 어떤 일 하고 계시는지.
◆ 고산> 요즘에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케파라는 이름의 공장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산단 등지에 있는 공장들을 위해서 수요 기업들도 찾아서 연결해 드리고 공장들이 필요로 하는 그런 자재들이나 이런 것들도 공급하고. 그리고 또 공장들이 제일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인력 문제인데 인력도 연결하고 이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그럼 어떤 제조업 공장을 하거나 그런 회사를 만들려면 그 도울 수 있는 분이 우리 고산 대표시군요.
◆ 고산> 열심히 돕고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산업단지에 미쳐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산업단지가 어떤 제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니까 산업단지.
◆ 고산> 그렇죠. 우리나라 전국에 산업단지가 한 1200여 개가 있습니다. 그 안에 공장이 굉장히 많이 있고요. 사실 우리나라가 제조국가인데 그 제조국가로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해 왔는데, 그 안에 있는 제조업들이 이제 다시 한 번 넥스트 시대에 미래를 좀 준비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아서 저희는 IT 기반으로 이런 제조업체들과 함께 새로운 생태계를 그리고 있고.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산업단지라는 곳이. 그래서 아까 산업단지에 미친 남자로 소개해 달라고 요청을 좀 드렸었습니다.
◇ 박재홍> 산단에 미친 남자 고산.
◆ 박성태> 산단이 이제 국가산단이 있고 각 지자체 내에서도 산업단지를 하잖아요. 다 똑같이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 고산> 그럼요. 그 안에 있는 공장들이 저희의 주요 고객들이고요. 산업단지 밖에 있는 그런 공장들도 많아요, 사실. 그런데 산업단지라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딱 이미지적으로 와닿고. 산업단지가 이따가 또 말씀드리겠지만, 만약에 국가적으로 정책 대상으로 딱 지정해서 뭔가 정책을 펴기에도 적합한 대상이기 때문에 산업단지라고 말씀을 드린 거지 뭐 그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이런 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박재홍> 우리 고산 대표 일단은 가장 우리 청취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건 최초에 우주인으로 선발됐던 남자로 유명하신데 당시로 시계 잠깐 돌려가 보면 당시 프로젝트 정식 명칭은 ‘한국우주인 배출 사업’이었습니다. 당시의 저희가 사진 자료도 있는데. 우리 고산 대표 저때는 완전히 지금 아이돌이었네요.
◆ 진수희> 그러니까요.
◇ 박재홍> 정말 잘생겼어요.
◆ 진수희> 너무 상큼하네.
◇ 박재홍> 우리 진 장관님이 저한테는 절대로 했던 말이 아닌데. 저한테는 안 하시는 단어. 상큼하다. 잘생겼네.
◆ 박성태> 저도 기억이 나는데 그때 뉴스를 보고 이분은 진짜 잘생기고 또 한국 최초의 우주인도 되고. 정말 좋겠다, 생각했어요.
◇ 박재홍> 2006년이었어요, 2006년, 그렇죠?
◆ 고산> 네, 2006년.
◇ 박재홍> 약 18년 전의 일이네요, 그러면.
◆ 고산> 엄청 오래됐죠.
◇ 박재홍> 당시 어떻게 지원하시게 되셨던 거죠, 그 당시에?
◆ 고산> 그러니까 일단 그 이야기하기 전에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게 사실 2006년도면 18년 전 일이거든요. 엄청 오래된 일이고 그런데도 아직도 저를 우주인이라는 타이틀로 기억해 주시고 사실 그렇게 불러주시는 이면에는 어떤 지지해 주는 그런 느낌을 제가 굉장히 많이 받아요.
◇ 박재홍> 우리 고산 대표.
◆ 고산>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그때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그때 온라인 플랫폼에 광고가 하나 떴어요. 광고가 뭐냐 하면 제목이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찾습니다.’ 문구가 딱 그렇게 떴습니다. 그래서 이거 보고 우리나라에서 멋진 일이 일어나는구나. 그래서 내가 한번 여기 꼭 선발되지 않더라도 이 전 과정의 좀 일부가 되고 싶다. 그런 마음에 지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박재홍> 우리 고산 대표가 외모상으로는 서울대 체교과 이렇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서울대 수학과를 나왔습니다. 맞죠?
◆ 고산> 네.
◇ 박재홍> 아주 천재예요, 사실은.
◆ 박성태> 당시 제가 소개 기사를 보면 ‘운동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 박재홍> 복싱도 잘해요.
◆ 박성태> 그래서 ‘외계로 나가면 ET를 만나는데, 왜 이렇게 외모로 뽑았지?’ 뭐 이런 느낌을 제가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뭐 질투였어요.
◆ 고산> 분위기가 너무 띄워주시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 박재홍> 당시에 지원자가 2만 명이 넘었던 걸로 제가 기억하는데.
◆ 고산> 그때 3만 6000명.
◇ 박재홍> 3만 6000명. 3만 6000 대 1을 뚫었던 사람이었네요.
◆ 고산> 네, 운이 좋게 뭐. 우연치 않게 제가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도움이 돼서 끝까지 가서 마지막 2명에 선정이 됐었습니다.
◆ 진수희> 그런데 여기 보면 그 프로젝트 명칭이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이었는데 그다음에 2호, 3호 우주인들이 쭉 있었나요? 제 기억에 없어서.
◆ 고산> 아니요, 없었어요. 그때 이제 한 번 그런 사업을 했었고. 뭐 그다음에는 사실 지금 항공우주청도 만들어졌지만 그리고 누리호도 발사 성공하고 내실을 쌓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머지않아 또 한국에서 우주인 배출하는 일이 오겠죠. 생기겠죠.
◇ 박재홍> 그렇군요. 대한민국 1호 우주인으로 선발되셨는데, 우주로 올라가는 과정은 이제 같이 못 하셨던 그런 또 아픈 기억도 있죠, 사실은.
◆ 고산>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아쉬움도 좀 있으셨죠?
◆ 고산> 물론 아쉬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데, 이제 그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때 저로서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 거기에 대한 결과고. 사실은 단편적으로 보시는 분들은 마지막 결과만 보시지만 저로서는 그 전체 경험이 굉장히 방대한 경험 중에 마지막에 우주에 가고 안 가고는 사실 일부였거든요. 그래서 참 많은 거 배우고 보고 듣고 느끼고 성장하는 계기였던 것 같고. 사실은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경험하면서도 나름 사회적으로 어떤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더 강하게 생긴 그런 기간이었기도 하고. 사실 굉장히 저한테는, 1년이었거든요.
◇ 박재홍> 러시아에 가서 교육을 받고.
◆ 고산> 훈련했던 기간이. 그 기간 앞뒤로 제 삶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던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랬군요. 러시아에서 고산 대표를 많이 견제했습니까?
◆ 고산> 그렇지 않고 많이 도와줬습니다. 좋은 친구도 많이 있었고요.
◇ 박재홍> 그랬군요. 어떤 기억이 가장 많이 남으세요, 그래도 그 1년의 귀한 시간 동안.
◆ 고산> 딱 그렇게 말씀을 물어보시니까 가장 미묘했던 기억이 하나 있는데. 저희가 여름 생존 훈련을 하기 위해서 세바스토폴이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항구에 갔던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여름 생존 훈련이라는 게 뭐냐 하면 바다에 우주선이 귀환했을 때 어떻게 탈출하느냐 이런 생존 훈련입니다.
◇ 박재홍> 바다에 떨어졌을 때.
◆ 고산> 그런데 이제 그 훈련은 정상적으로 잘 했는데 문제는 이제 그거 끝나고 나서 미국 우주인 러시아 우주인들이랑 같이 그 근처를 이렇게 여행을 할 시간이 좀 있었어요, 살짝. 그런데 갔던 곳이 어디냐면 얄타. 얄타 회담이 열린 그 장소로 간 거예요. 그런데 갔는데 그 자리에 이제 예전에 누가 앉아 있었다 뭐 스탈린, 처칠, 루즈벨트 앉아 있었던 자리고 거기 온 사람들도 마침 미국, 소련 우주인들이고.
◇ 박재홍> 코레아.
◆ 고산> 그 자리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좀 다른 열강들이 결정한 자리였는데, 그 친구들은 제가 한국이 여기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여기서?’, 그런 기억이 그때 나요. 그래서 그런 다양한 경험 했던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 당시에 뭐랄까요. 당시에 경험을 하시고 교체되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줄 있을까요라고 문자가 와 있는데 짧게.
◆ 고산> 지금 시간도 굉장히 많이 흘렀고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말씀드리기보다는 이런 질문도 많이 받기도 하고 사실 그때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러시아 언론이랑 또 이렇게 인터뷰해야 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도 비슷한 질문 받았었는데, 제가 그때 한참 고민을 하고 어떻게 대답을 할까 하다가 그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여기 유리 가가린의 나라에 온 이유는 우주 관광객이 되러 온 게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하는 우주인이 되려고 왔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얘기를 했더니 후속 질문이 없더라고요. 그들도 다 이해하고 넘어갔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 박성태> 사실 그때 당시 러시아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거이거만 하라고 했는데, 더 알고 싶어서 따로 공부하다가 규정 위반이다. 그래서 안 됐던 거잖아요.
◆ 고산> 네.
◆ 박성태> 그런데 그 당시에 제 기억으로도 인터뷰를 하면서 되게 담담하게 어떻게 보면 한국인 최초로 우주로 올라가서 지구를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분이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는데도 되게 담담하게 얘기를 해서 저분이 복싱만 잘하는 게 아니라 심지가 굳구나, 생각이 들었던 게 있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지금 그 이후로 고산 대표가 하버드로 갑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로 유학을 떠나셨는데 왜 그 학교를 선택하셨습니까?
◆ 고산> 사실은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가 그전에는 인공지능 연구원을 하고 있었어요.
◇ 박재홍> AI. 지금 완전히 AI시대 난리가 났는데. 그 난리가 나기 한 18년 전부터 우리 고산 대표가 하고 있었군요.
◆ 박성태> 그 진로를 바꾸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 고산> 뭐 국가죠.
◇ 박재홍> 국가죠.
◆ 고산> 그런데.
◆ 박성태> 소송을 거세요.
◇ 박재홍> 그때 18년 전에 이미 AI 하고 있었다?
◆ 진수희> 그런데 하버드대 가신 연도가 얼마예요?
◆ 고산> 그때 2010년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 갔다 와서 제가 한 2년 동안 의무 복무 기간이 있었고. 그런데 이걸 다시 민간으로 가서 연구원을 하기에는 이미 사실 그 사업 자체가 국민 세금을 수백억을 쓴 사업인데, 이거 어떻게든 환원을 해야 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진로를 마음대로 결정하기가 좀 어려웠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좀 많이 하다가 그 프로젝트 중간에 어떻게 보면 우주인 프로젝트가 굉장히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잖아요. 그런데 거기 중심에 있다 보니까 이게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게 뭐 과학기술자만 열심히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좀 긴 안목으로 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과학기술 정책이 잘 마련돼야지 훨씬 빨리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당시에 그런 생각으로 과학기술 정책하겠다고 이제 케네디 스쿨에 가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 박재홍> 미국 생활을 그 이후에 시작하셨었는데 미국 생활 하시던 와중에 그분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싱큘래리티에서의 경험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셨습니까?
◆ 고산> 사실 그 하버드대학교는 다 잘 아시잖아요. 굉장히 명문이고 그런데 싱큘래리티 대학교라는 걸 들어보신 분도 얼마 안 계실 겁니다.
◇ 박재홍> 설명을 좀 해 주신다면, 어떤 대학인지.
◆ 고산> 2009년도에 만들어진. 사실 정식 대학도 아니고요. 어떤 교육단체예요. 교육단체이고 하버드는 미국 동부 끝의 그 보스턴에 위치해 있으면 이 싱귤래리티 대학교는 완전 반대쪽에 실린콘밸리에 위치해 있고 그런데 여기에서 굉장히 미래적이고 그런 인상적인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 박재홍> 지금 사진 나가고 있는데 저 사진의 맨 왼쪽이 고산 대표입니까?
◆ 고산> 맨 왼쪽이 저고요. 저 맨 오른쪽은 그때 저랑 같이 갔던 친구인데 유영석이라고.
◇ 박재홍> 유영석?
◆ 고산> 우리나라 최초의 그 블록체인 거래소. 그때 같이 가서.
◆ 박성태> 빗썸인가요?
◆ 고산> 아니요, 코빗이요.
◇ 박재홍> 코빗 창업자.
◆ 고산> 코빗이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입니다. 그래서 코빗을 창업한 창업자입니다. 여기에 갔는데, 좀 굉장히 미래적인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설명을 드리면 여기 싱귤래리티 대학교의 기본적인 철학은 우리 인류의 과학기술 진보 속도가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잠깐 생각해 보시면 지금 챗GPT가 나왔잖아요. 그런데 이거 보고 있으면 거의 SF 영화에 나오는 그런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약간 돌이켜 보시면 인류 최초의 컴퓨터가 ‘애니악’인데 이게 1946년도에 나왔어요. 저희 어머니보다 어립니다. 애니악. 저희 어머니가 저를 늦게 낳으셔서 애니악보다 연세가 많으세요. 그러니까 거의 한 세대 동안 컴퓨터라는 게 세상에 나와서.
◇ 박재홍> 지금 주도를 하고 있죠.
◆ 고산> 챗GPT까지 나온 거예요. 눈부신 발전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렇게 완전히 선형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과학기술이. 가속화하면서 익스포넨셜하게 발전한다, 기하급수적으로. 그래서 아마도 우리가 당면한 그런 거대한,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을 우리 생각보다도 어쩌면 더 빠르게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이제 거기서 프로그램이 진행된 거예요. 그러면서 여기에 모토가 멋있었는데 ‘10년 안에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사업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 당시에 3D 프린터도 처음 경험을 했었고. 그리고 블록체인 같은 것도 처음 경험을 하는 그런 기술이었고. 또 AI도 마찬가지고. 또 초기에 그런 테슬라 같은 데 막 방문해 보면서 그런 것들이 저한테 엄청난 임팩트를 미쳤고. 그 당시에 어떻게 다음 스텝을 고민하기 위해서 미국에 갔었는데, 완전히 또 다른 새로운 어떤 도전의 주제를 발전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일들이 저로 하여금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창업을 하고.
◇ 박재홍> 그럼 그 싱귤래리티는 어떤 대학은 아니고 어떤 교육기관인, 수업을 듣는?
◆ 고산> 수업을 듣고 거기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어서 마지막에 발표를 하고 또 그 자리에 투자자들이 와서 실제 투자도 하고. 요즘에 보면 사실은 굉장히 우리나라에도 그런 거 되게 많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되게 혁신적이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또 이게 실리콘밸리다 보니까 또 전 세계에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포함돼서 그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까 저도 완전히 또 새로운 눈을 뜬 것 같았어요.
◇ 박재홍> 말씀하신 건 그 실리콘밸리에서 3D프린터 그리고 블록체인 그리고 아까 코빗. 이런 코인 관련 이런 기술을 했는데, 우리 고산 대표가 지금 하시는 근황은 제조업 ‘케파’라는 것이죠?
◆ 고산> 네.
◇ 박재홍> 그러니까 약간 뭐랄까요? 그래도 약간 제조업은 약간 전통적인 산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 고산> 생각을 좀 해 보시면 지금 제가 아까 3D프린팅, 블록체인 이런 게 언제냐면 그때가 2010년, 11년도예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얘기가 2014년, 15년 이럴 때만 나왔거든요. 그런데 좀 아찔한 얘기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저희는 과거에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과학기술, 과학기술이 곧 펼쳐질 미래잖아요. 그리고 그 미래를 보여주면서 사람들한테 어떤 풀어야 되는 문제들이 있고 어떤 기회가 존재하고 어떤 기술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지속 가능하게 풀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업을 한번 만들어보자, 여기에서. 이런 얘기들이 있었던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유영석이라는, 같이 갔던 친구는 블록체인에 굉장히 매료가 됐었고. 2011년도에 또 갔었는데 저는 3D 프린팅에 눈이 많이 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제가 사업 시작할 때는 3D프린터가 저한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게 단순히 좀 신기하죠. 도면만 집어넣으면.
◇ 박재홍> 총도 만들어준다고 하고.
◆ 고산> 총도 일부는 만들 수 있고 여러 가지 만들 수 있고. 자동으로 뭔가 만들어주니까 신기한데. 그 당시에 3D 프린터를 보고 있으면 그 제조의 디지털화 혹은 제조가 더 온라인으로 올라가고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들이 좀 느껴졌었어요. 그래서 저희 사업 처음 시작할 때도 3D 프린터를 주제로 시작을 했는데, 곧 전환을 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보면 수요 기업 입장에서 보면 내 공장이 없지만 그 클라우드상에 내가 원하는 공장이 다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클라우드상에 거대한 3D 프린터가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는 거죠. 거대한 공장, 팩토리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사업을 이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낯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온라인에서 제조하고 이런 것들이. 그런데 이게 이제 미국이나 영국 그런 유럽이나 선도시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서비스들이 이미 나와서 이런 플랫폼들이 성장해 가고 있고 우리랑 되게 유사한 그런 산업환경을 가진 일본 같은 데도 ‘캐드’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거기도 투자 받으면 1000억씩 투자 받고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 인도나 이런 데서 이런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고. 그래서 제가 아까 앵커님께서 저한테 ‘제조업은 좀 과거 이게 아닌가요’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 과거가 어떻게 미래가 돼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 고산> 제조는 사라질 수가 없잖아요. 굉장히 펀드멘탈한 어떤 얘기인데 이걸 어떻게 미래로 가져갈 수 있느냐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이제 2022년에 안철수 의원의 추천으로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활동도 하셨더라고요. 그 당시 사진도 지금 나가고 있는데. 우리 고산 대표가 맨 오른쪽에 있습니다. 혼자 양복 안 입은 분. 인수위에는 또 어떻게 가시게 된 거예요,그러면?
◆ 고산> 뜻밖에도 인수위에서 인수위 구성하실 때 연락을 받아서.
◇ 박재홍> 안철수 의원이?
◆ 고산> 안철수 의원이 직접 주신. 직접도 주셨네요. 그리고 그쪽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까지 쌓아온 스타트업이라든지 제조 관련된 이런 부분이라든지 이런 것도 많이 고려해 주셔서 인수위원회에 여러 분과가 있는데, 경제2분과. 실물경제 담당하는 분과거든요. 중기부, 산업부, 국토부 해서 하는데 거기 가서 저희 중기부랑 산업부 정책 중에서는 그 산업단지 정책 제가 관심도 많이 있고 많이 알고도 있으니까 거기 같이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진수희>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제조업 산단 플랫폼을 지금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그냥 제조업 그러면 아까 앵커께서 약간 전통산업을 떠올리셨는데 노동집약적인 거를 상상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그런 건 아닌 거죠? 그러니까 하이테크 베이스의 어떤 제조업.
◆ 고산> 하이테크가, 하이테크가 들어가죠. 그러니까 제조... 아닙니다, 아닙니다. 노동집약적인 제조업까지 다 포함하는 플랫폼이고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편하겠습니다. ‘배달의민족’은 다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요식업체들이 배달의민족으로 인해서 생태계가 굉장히 많이 바뀌었잖아요. 이제 배달만으로도 뭔가를 할 수 있고 점포가 없어도 운영할 수 있게 된 거고. 사실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 전단지를 뿌리면서 혹은 동네에 있는 지나가시는 분들만 내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이제 온라인에서 고객을 모집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훨씬 확장되고. 마찬가지입니다. 제조업은 공장들이 어디에서 고객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고객을 만나는 것. 그래서 사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영업을 많이 하죠. 그런데 이런 제조업에 IT가 접목되면서 온라인에서 고객도 만나지만 또 제조업이라는 게 도면이나 이런 걸 가지고 많이 소통을 해야 하거든요. 그럼 원격에서는 어떻게 할까요? 원격에서도 도면을 중심으로 굉장히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고 또 더 나아가서는 도면이 올라오면 이 도면에 기반해서 어떤 공정이 최적 공정이고 이 도면을 기반해서 만들면 단가가 어느 정도고 이런 것까지 사실은 미래적으로는.
◇ 박재홍> 컨설팅해 줄 수 있는.
◆ 고산> 해 줄 수 있는. 그러니까 아이디어만 있으면 거의 제조의 전 과정을 온라인상에서 할 수 있게 하는 게 저희가 꿈꾸는 그런.
◆ 박성태> 예를 들면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회사가 있고 해외에서 이제 그 설계도로 해 주잖아요, TSMC처럼. 그런 데가 있는데 이제 그걸 연결해 주는 걸 하신다는 거잖아요.
◆ 고산> 맞습니다.
◆ 박성태> 그런데 제가 볼 때 약간 그런 게 있는 게, 왜 그러냐면 그러려면 TSMC는 워낙 전 세계에서 그런 설계 주문이 들어오니까 생산 주문이 들어오게 되는데, 우리나라 산단에 있는 기업들, 중견이나 또는 중소기업들이 있을 텐데 공장을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되잖아요. 그럴 만한 여력이 있는 회사들이 좀 그런 게 애로 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 금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형을 제작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 고산> 전문용어들만. 그러니까 오히려 반대로 이런 것 같습니다. 공장 가동률이 많이 떨어졌어요. 공장 가동률을 높여주는 어떤 도움이라고 보시는 게 맞는 것 같고요. 거기에서 여러 IT랑 접목해서 그동안 공장 자체로서만 개척할 수 없었던 그런 영역으로 함께 간다고 보시는 게 저는 맞을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이제 대표님을 보내주실 시간이 2분밖에 안 남아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됐고 현재는 산단에 인생을 이제 투자하는 산단에 미친 남자가 되셨는데, 지금 우주항공청이 출범했습니다, 대표님. 작년에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도 발사 성공을 했는데 이런 변화 보시면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우주항공의 미래.
◆ 고산> 항공청도 만들어지고 지금 누리호도 성공하고 한 단계 한 단계씩 다져가는 느낌을 많이 받고요. 사실은 저는 더 놀라운 건 저희 민간에서도 이런 우주 기술이 꽃피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되게 놀랍습니다. 뭐 일반인들은 잘 모르실 수 있는데, 민간에서도 우주 발사체를 만들고 있어요. 그런 스타트업이 있어요. 그런데 이 스타트업이 지금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는 위성 정보를 갖고 그걸 갖고 사업을 하는 ‘컨택’이라는 회사도 얼마 전에 상장을 했고요. 그러니까 실제로 이런 것들이 민간 주도로 경제가 돌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게 사실 이번 정부의 기조였기도 한데, 정부에서는 항공우주연구원에서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민간에서 이런 게 뿌리 내려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꽤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진수희> 그런 데서 우리 스카우트하시는 제의가 들어오면.
◇ 박재홍> 이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 미래를 만드는 거다’라는 얘기를 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었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고산 대표가 그리는 미래는 무엇인지 20초.
◆ 고산> 저는 지금 민간에서 프라이빗섹터에서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저희도 비전이 있고 이 비전을 위해서 뭉친 저희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이 현실을 발을 딛고 한 단계, 한 단계씩 이 비전을 실현시키는 게 가장 제가 제일 해야 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고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게도 제조업, 산업단지 이런 데랑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기여할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앞으로의 고산 대표의 미래도 응원하겠습니다. 여기서 말씀 마무리하죠. 고산 케파 대표였습니다. 고맙습니다.